옥효진 선생님과 글쓰는 아이들 : 감성편 - 평생 글쓰기의 첫 단추 옥효진 선생님과 글쓰는 아이들
옥효진 지음 / 로그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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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효진 선생님과 글쓰는 아이들』은 글쓰기를 처음 배우는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쓰는가’ 이전에 ‘왜 써야 하는가’를 먼저 묻는 책이다. 국어 시간의 숙제를 넘어서 글은 내 생각을 꺼내 정리하고, 나를 표현하며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임을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아이의 손을 잡고 글쓰기의 출발선에 함께 서는 이 책은, 겁내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도록 다정하게 길을 안내해준다.

책의 시작은 이런 말로 문을 연다.

“생각을 글로 옮긴다는 건 내 머릿속의 생각을 꺼내 정리하고, 문장으로 만들어 읽는 사람에게 잘 전달되도록 하는 과정이에요. 이건 절대 저절로 되지 않아요.”

이 말은 곧 글쓰기가 선천적인 재능이 아니라 후천적인 연습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피아노를 잘 치고 싶으면 악보를 읽고 건반을 익히듯, 축구를 잘하고 싶으면 드리블과 슛을 연습하듯,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어렵고 서툴 수 있지만, 자주 쓰고 꾸준히 다듬으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다.

이 책은 여러 갈래의 글을 주제별로 소개하며, 각각의 글이 쓰이는 목적과 특징을 짚어준다.

설명문, 감상문, 일기, 편지, 주장하는 글, 이야기 글 등 아이들이 자주 접하는 형식들을 중심으로,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어떤 구조로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안내한다.

여기에 더해 ‘문해력 단어 짚고 가기’를 통해 낯선 어휘를 풀어주고,

‘옥 선생님의 한 줄 더!’라는 코너에서는 질문이나 조언을 던지며 아이 스스로 생각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글의 개념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써보는 흐름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학습 효과를 높인다.

무엇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문장을 잘 쓰게 하려는 목적을 넘어서,

글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는 데 있다.

하루하루 일기를 쓰며 나의 감정을 돌아보고,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하고, 감상문을 쓰며 감정을 오래 간직하는 경험은 모두 글쓰기를 통해 가능해진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단지 정보를 나열하는 법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선과 감정을 담아내는 법을 배운다.

글쓰기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아이들에게도 이 책은 가볍게 다가간다.

멋진 문장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나답게 적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내 생각을 발견하게 되고, 그 안에서 작은 성장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글쓰기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책에 각 장의 첫 부분에는 사자성어를 활용해 글쓰기와 삶의 감정을 연결 짓는다.

예를 들어, 하루하루의 기분에 따라 들쭉날쭉해지는 감정들을 돌아보는 장면에서는 ‘일희일비(一喜一悲)’라는 말이 소개된다. 작은 일에 너무 기뻐하거나 금세 실망하기보다는, 글쓰기를 통해 감정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정리할 수 있는 힘을 기르자는 의미다.

또 ‘요산요수(樂山樂水)’는 자연을 즐기고 삶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말하는데, 이는 감상문이나 자연 관찰 일기와 같은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찬찬히 바라보는 태도를 기를 수 있다는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글을 쓰면서 점점 더 자신의 생각이 구체화되고, 문장 속에 자신만의 말투와 감정이 묻어나기 시작할 즈음엔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는 말처럼, 글쓰기의 재미가 서서히 깊어짐을 경험하게 된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글 속에 담기는 순간들에서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글은 결국 내가 살아가는 방식, 내가 느끼는 감정의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은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의미지만, 이 책은 여기에 이렇게 말한다. “백 번 보고도 한 번 글로 써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글쓰기는 경험을 정리하고, 감정을 정제하며 기억을 오래 남기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것이다.

『옥효진 선생님과 글쓰는 아이들』은 글쓰기를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글을 통해 자신을 만나게 해주는 책이다. 교과서 속 형식을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데 꼭 필요한 말의 도구를 아이 손에 쥐여주는 책이다. 아이가 쓴 첫 문장은 서툴고 짧을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자신만의 시선과 목소리가 담겨 있다. 이 책은 그 시작을 응원하고, 계속해서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이 책을 통해 아이는 글이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다리는 언젠가 세상과 자기 자신을 향해 더 깊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되어줄 것이다.


'로그인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옛날 사람들도 일기를 썼어요.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에 쓴 <난중일기>와 제2차 세계 대전 중 네덜란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쓴 <안네의 일기>가 있답니다. 이런 일기는 개인의 기록을 넘어 그 당시의 시대를 엿볼 수 있어요.
난중일기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의 전쟁 중에 쓴 일기라는 뜻이에요.
전쟁 상황뿐만 아니라 이순신 장군 개인의 이야기도 엿볼 수 있어요.
승정원일기
조선 시대 왕의 비서 기관인 승정원에서 왕이 어떤 업무를 했는지 기록한 일기예요.
이렇게 기록된 <승정원일기>는 국보 제303호이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이에요.
오희문 쇄미록
조선 시대 선조 때 선비였던 오희문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피난길에 올라 9년 3개월 동안의 일상을 기록한 피난 일기예요.
안내의 일기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쓴 일기예요. 나치 정권의 탄압을 피해 은신처에서 생활하면서 겪은 일과 자신의 생각, 감정을 일기로 쓴 것이에요.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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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인 너무나 도덕적인 - 코람라치오네의 윤리학
김재호 지음 / 스누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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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 물음으로 시작하는 책이다.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도덕적인 삶이란 가능한가?”

김재호의 『도덕적인 너무나 도덕적인』은 이처럼 윤리학의 근본 물음을 던지며 시작된다.

그런데 이 물음은 철학 전공자만의 고민이 아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은밀히 자리한 의문이다.

누군가를 배려했지만 ‘호구’ 취급을 당하고, 정의롭게 살았다 생각했는데 불편한 사람으로 낙인찍혔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이게 맞는 걸까?

이 책은 이러한 현실의 갈등 속에서, 여전히 ‘착하게(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철학자 칸트를 다시 불러낸다. 그리고 그의 대표 저서 『도덕형이상학 정초』를 바탕으로 도덕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우리 시대의 언어로 풀어낸다. 칸트는 도덕이란 감정이나 결과가 아니라, 이성의 명령에 따라 ‘의무이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선한 마음이나 좋은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왜 그 행동을 했는가’이며, 그 동기가 이성적이고 보편적일 때에만 도덕적인 행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전통적인 철학 해설서와는 다르다.

각 장의 도입부에는 실제 대학 수업에서 학생들이 던진 생생한 질문들이 등장하고,

본문은 그 질문들을 바탕으로 칸트의 철학을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장의 말미에서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 질문에 대한 응답을 정리한다.

이 구조 덕분에 이 책은 단순히 개념을 설명하고 정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독자가 철학적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며 스스로 성찰해보도록 이끄는 일종의 ‘대화형 철학 수업’ 형태다. 읽는 이는 단지 정보를 습득하는 수동적인 독자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을 전개해보는 능동적인 사유의 참여자가 된다.

이 책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칸트 윤리학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를 짚어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흔히 칸트를 ‘동기주의자’라고 부른다. 즉, 어떤 행위가 옳은가는 결과가 아니라, 그것을 한 사람의 ‘동기’에 달려 있다고 여기는 관점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분류가 칸트의 철학을 단순화시켜 그 핵심을 흐리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는 칸트가 말한 ‘동기’의 개념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동기’라고 하면 ‘좋은 마음’, ‘선한 의도’, ‘누군가를 돕고 싶은 감정’ 같은 감성적이고 심리적인 요소를 떠올린다. 하지만 칸트에게 동기란 그런 감정 차원의 것이 아니다. 칸트가 강조한 것은 “도덕 법칙을 존중하는 마음”, 즉 이성적으로 옳다고 믿는 원칙을 내면화하여 스스로의 행동 기준으로 삼는 태도다. 다시 말해, 자신이 따르기로 한 원칙이 모든 이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보편적인가를 스스로 묻고, 그 원칙에 따라 행동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를 돕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하자. 일반적으로는 ‘착한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칸트는 이 상황을 다르게 본다. 그는 “만약 모두가 같은 상황에서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판단한다면, 그 사회는 과연 신뢰 가능한가?” 거짓말이라는 행위가 하나의 보편적 규칙이 되어도 괜찮다면 괜찮다. 하지만 거짓말이 일반화 된다면, 언어의 신뢰 자체가 무너지고, 사회적 약속과 계약의 기반도 붕괴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선한 목적이 있었다 해도 그 수단이 보편화 불가능하다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이다.

이때 칸트 윤리학의 핵심 개념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코람라치오네(coram ratione)’, 즉 ‘이성 앞에서의 삶’이다. 이 말은 저자가 기독교의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라는 개념을 참고해 새롭게 만든 표현이다. 신이 우리를 항상 지켜보고 있다고 믿었던 기독교 신자처럼, 칸트는 인간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성의 기준 앞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외부의 감시나 법적 처벌 없이도 인간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성’은 마치 양심과도 같다. 누구도 보지 않아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도, 자기 안의 기준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자각이 있다면, 우리는 도덕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플라톤의 기게스 반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만약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반지가 있다면, 사람들은 여전히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 플라톤은 비관적이었다. 그러나 칸트는 달랐다.

그는 인간이 이성적 존재이기에, 그런 상황에서도 도덕적일 수 있다고 믿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 믿음을 다시 꺼내 들며 말한다.

이성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외부의 감시도 신의 눈도 필요 없다.

후반부로 가면, 저자는 니체와 칸트의 철학을 대조하며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책에서 도덕과 종교를 향해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특히 칸트의 윤리학을 ‘의무의 자동기계’라 부르며, 감정과 생명력을 억압하는 차가운 윤리로 평가했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는 칸트 윤리학이 비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고민에서 출발한 철학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떻게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한 사유였으며 자유로운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 도덕적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끝까지 믿은 철학이었다고.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역설적이다. 『도덕적인 너무나 도덕적인』.

니체의 문장을 패러디한 듯 보이지만 실은 도덕을 향한 깊은 애정과 회복의 의지를 담은 말이다.

저자는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도덕적인 것이다.”

착한 사람은 손해를 본다는 말이 진리처럼 여겨지는 이 시대에 이 책은 다시 묻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말한다. 부끄럼 없는 삶은 가능하다고.

그것은 신의 감시가 아닌 스스로의 이성 앞에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삶이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아무도 칭찬하지 않아도, 옳다고 믿는 길을 걷는 것.

그것이 바로 칸트가 말한 도덕의 조건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가능성을 믿는 이들에게 작은 철학적 불씨가 되어준다.

『도덕적인 너무나 도덕적인』은 단순한 철학 입문서가 아니다. 도덕이 사라진 시대에 다시 도덕을 말하는 책, 철학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진심 어린 기록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독자는 아마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안의 이성 앞에서 당당한가?” 그리고 그 질문은 아마도, 우리의 삶을 조금씩 바꿔가기 시작할 것이다.


'우주서평단 @woojoos_story 모집',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첫 문단에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세 학문이 등장한다. 자연학, 윤리학, 논리학이 그것이며 이들은 다양한 분류 기준에 따라 새롭게 나누어진다. 먼저 형식적인 것과 질료적인 것에 의한 분류다. 이에 의하면 논리학은 내용과 무관하게 사고의 규칙만을 다룬다는 점에서 형식적 학문이고 나머지 두 학문은 내용을 다루기에 질료적 학문이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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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서양
니샤 맥 스위니 지음, 이재훈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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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명은 정말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돼 로마, 기독교, 르네상스, 계몽주의로 이어졌을까?

그 계보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누가 선택했고, 또 누가 빠졌을까?

니샤 맥 스위니의 『만들어진 서양』은 바로 이 질문의 이면, 즉 우리가 ‘서양’이라 부르는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추적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박물관에서, 미디어 속에서 익숙하게 접해온 ‘서양 문명’이라는 이름의 역사에는 실은 수많은 선택과 배제가 깃들어 있다. 이 책은 그 서사의 기원을 되짚고, 그 안에서 누구의 이름이 강조되고 누구의 목소리가 지워졌는지를 섬세하게 파헤친다.

이 책은 14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서양’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해부한다.

그들은 사상가, 예술가, 과학자, 때로는 종교인이나 시인이었다.

하지만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그들의 업적보다도 그들이 ‘서양 문명의 대표’로 선택된 방식이다.

그 선택의 이면에는 문화적 편견과 정치적 목적, 인종과 성별, 계급이 얽혀 있다.

서문 「기원의 중요성」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문제를 분명히 드러낸다.

‘기원’은 단순히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정치적 선택이다.

서양 문명이라는 거대한 이야기는 원래 여러 문화와 민족, 사상이 얽혀 만들어졌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단순하고 일직선적인 이야기로 고정되었다.

저자는 이처럼 정해진 서사를 다시 풀어내고, 더 넓고 다양한 서양의 가능성을 새롭게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필리스 휘틀리였다.

18세기 미국의 흑인 노예 소녀였던 그녀는, 열여덟 살에 시집을 내며 문학사에 기록된다.

그러나 그녀가 시를 썼다는 사실은 당시 백인 사회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녀는 법정에 불려나와 라틴어 문법과 성서 지식, 시적 수사에 대한 시험을 받았고,

결국 시의 진위는 인정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자유를 얻은 후에도 사회적 보호는 없었고, 극심한 가난과 자녀들의 죽음을 겪으며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다.

휘틀리는 그저 ‘뛰어난 흑인 시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서양 고급문화의 족보’라는 허상을 뒤흔든 인물이었다. 이 책에서 그녀의 삶은, 선택된 서양 문명의 서사에 ‘포함되지 못한 존재’가 어떤 방식으로 배제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허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책에는 필리스 휘틀리 외에도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중 한 명인 헤로도토스는 흔히 ‘역사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최초의 역사가가 아니다. 그보다 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에는 이미 역사 기록이 존재했고, 그가 태어나기 200년 전에는 고대 그리스어로 된 역사 저술도 있었다. 하지만 헤로도토스는 역사적 사건을 단순히 나열하는 대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초점을 맞추며 역사 서술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그의 글에는 환상적이고 기이한 이야기들이 많았고, 플루타르코스는 그를 ‘거짓말의 아버지’라 부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그리스 바깥의 세계, 비서양 세계에 대해 열린 시선으로 기록했고, 이것이야말로 후대가 만든 서양 중심 서사와의 결정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이 책은 바로 그 간극을 지적한다. 우리가 ‘서양’의 기원을 말할 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누락하고 있는지를.

르네상스 시대의 툴리나 다라고나도 이 책의 중요한 인물이다.

여성 철학자이자 시인이었던 그녀는 남성 중심의 사유 공간에서 당당히 목소리를 냈고, ‘감각’과 ‘이성’의 조화를 주장했다. 하지만 그녀는 서양 철학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그녀의 삶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성적 주체성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지워졌다. 저자는 이런 배제의 반복이 서양이라는 개념을 얼마나 폐쇄적이고 제한된 틀로 고정시켜 왔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프랜시스 베이컨은 ‘근대의 시작’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경험을 중시하는 과학적 탐구 방식의 선구자로 추앙받는다. 처음에는 동명인인 화가가 생각났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베이컨은 근대 과학의 기반을 닦은 사상가를 말하고 있다. 이 책은 베이컨의 역할을 보다 다층적으로 조명한다. 그는 단지 관찰과 실험을 강조한 근대 과학의 기반을 닦은 사상가만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적극적으로 계승하고 미화한 지식인이었다. 17세기 영국에서 고대 문명을 ‘진정한 서양’의 표상으로 삼아 현재 유럽 문명의 정당성을 구축하려는 흐름 속에서, 베이컨은 ‘서양의 기원’이 고대 그리스-로마에 있다는 인식을 강화한 인물이었다.

이로 인해 ‘서양’이라는 개념은 점차 그리스-로마의 미학과 이념을 중심으로 단일화되었고, 나중에는 제국주의적 정당화의 사상적 근거로 작동하게 된다.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서양’은 정말 그렇게 찬란하고 선형적인 진보의 결과인가?

아니면 수많은 편집과 삭제, 오해와 왜곡의 결과로 만들어진 신화인가?

『만들어진 서양』은 위대한 인물을 다시 쓰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인물들을 통해, 우리가 위대하다고 믿어온 서양 문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선택적이고 정치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동시에 이 책은 배제된 사람들의 기억을 복원하고, 그들이 진정한 ‘서양’의 일부였음을 증명하는 데 집중한다.

이 책은 역사라는 무대에서 누가 중심이 되고, 누가 배제되어 왔는지를 다시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이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과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함께 성찰하게 만든다.

📌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독자

- 서양 문명사와 철학, 문화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찾고 있는 독자

- 인문학 전공자 혹은 서사와 권력의 관계에 관심 있는 이들

- 기존의 위인전에서 느꼈던 피로감, 혹은 의문을 가지고 있던 사람

- 여성, 흑인, 주변부 인물의 역사에 주목하고 싶은 독자


'열린책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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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틀리의 성취는 명백히 놀라웠다. 법률로 노예제를 보장하고 인종주의를 그 구조의 핵심적인 신념으로 삼는 식민지 사회에서 흑인 노예이자 젊은 여성이 서양의 고급문화를 안다는 것은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휘틀리의 생애와 저작은 앞선 장에서 조지프 워런과 그의 혁명파 동료들이 선전한, 인종에 뿌리를 두고 생물학적 혈통으로서 틀을 갖추었던 서양 문명이라는 발상에 담긴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상상된 서양의 족보에 속할 수 없는 휘틀리와 같은 사람들이 그 문화적이고 지적인 유산에 그토록 숙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휘틀리는 자신의 존재 자체로써 생물학적 서양이라는 이념에 도전한 셈이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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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예술이야
미사 지음 / 페이퍼독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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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예술이야 (명화 속에서 만나는 나)』는 오래된 명화들이 새롭게 태어나 아이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책이다. 미사는 고전 화가들의 작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그려, 아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다가간다. 그 그림들은 때론 어둠을 비추고, 때론 색으로 감싸 안으며, 아이가 스스로를 사랑하게 만드는 감정의 여행길이 되어 준다. 이 책은 아이가 자존감을 찾아가는 여정에 따뜻한 길잡이처럼 함께해 준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가장 먼저 반기는 건 고흐의 밤하늘을 닮은 소용돌이치는 하늘과 불꽃 같은 갈기의 사자다.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의 하늘이 이 책에서는 아이를 향한 따뜻한 말로 바뀌어 들려온다.

“낮에 뜬 태양은 네 생각을 밝혀주고, 밤하늘의 별과 달은 네 마음을 비춰주지.”

고흐가 원래의 그림에서 표현했던 불안과 고독은 이 책에서는 오히려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으로 재해석된다. 하늘의 빛을 마음의 거울로 삼아 세상보다 스스로를 먼저 이해하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곧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마티스의 색채가 퍼진다.

불 같은 빨강과 생명의 노랑, 그리고 춤추는 듯한 형상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마티스의 「춤」이나 「붉은 실내」 시리즈처럼 이 장면에서는 색 자체가 감정이 되고 리듬이 된다.

“심장은 네 안에 뜬 태양이란다.

너의 태양빛이 쨍쨍하다면 어디서든, 무엇을 하든 넌 즐겁고 자유로울 거야!”

마티스는 원래도 색을 해방의 도구로 썼던 화가였다.

이 책은 그의 의도를 그대로 빌려와, 아이에게 “네 안에도 태양이 있다”고 일깨운다.

자존감은 그렇게 스스로 안에 빛이 있음을 믿는 순간 움튼다.

밤이 깊어지고, 무대가 바뀌면 살바도르 달리의 세계가 펼쳐진다.

기이하게 길쭉한 다리의 동물들, 아이스크림을 이고 가는 코끼리,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서커스가 열린다. 「기억의 지속」이나 「코끼리」 시리즈가 연상되는 이 장면은 밤이라는 시간이 아이에게 두려움이 아닌 자유로운 상상의 시간임을 알려준다.

“밤은 네 안의 달이 뜨는 시간. 감춰진 것들을 찾는 노련한 술래잡이거든.”

달리는 무의식과 환상을 다뤘지만 이 책 속의 밤은 따뜻하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나의 모습까지 천천히 드러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공간이 된다.

그림 속 세상이 조금 어두워질 무렵, 에드바르 뭉크의 정서가 번져온다.

절규하는 이의 고통처럼 두려움과 외로움이 그림 속을 휘감는다.

하지만 이 책은 뭉크의 고통을 도피가 아닌 직면의 메시지로 바꾼다.

“너에게 잔뜩 겁에 질린 모습도 있어. 외면도, 도망도 가지 말고, 가만히 들여다보렴.”

진짜 용기는 두려움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 두려움조차 나의 일부로 인정하는 데서 온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마르크 샤갈의 환상적인 장면도 등장한다.

하늘을 나는 연인과 말, 사랑하는 사람들의 포옹, 동물과 사람,

마을과 우주가 한 공간에 뒤섞인 그림 속에서 이 책은 아이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랑은 내 이웃이 누구이며, 서로 무엇을 주고받으며 살 수 있나요?”

샤갈의 그림이 과거의 기억과 사랑을 떠올리게 했다면,

『난 예술이야』는 아이의 미래를 위한 사랑과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그다음 장면에서는 르네 마그리트의 「인간의 아들」이나 「이미지의 배반」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 그림들이 이어진다. 사과로 가려진 얼굴, 파이프에서 피어오르는 구름, 창문으로 나뉜 수수께끼의 방들.

이 모든 구성은 하나의 선언으로 수렴된다.

“세상도, 너도 수수께끼야.”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드러난 모습 뒤에 더 많은 의미가 숨어 있다는 걸

아이는 이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중반 이후 등장하는 ‘수프캔’ 시리즈는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캔」을 그대로 패러디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난 용감해”, “난 따뜻해”, “난 신비해”… 각각의 캔은 아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말하는 선언이다.

“나는 나의 선물이고, 너는 너의 선물이야. 평범해 보여도 특별하단다.”

이 장면은 특히나 강력하다. 우리가 가진 개성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또렷하게 전달한다.

책의 마지막엔 조르주 쇠라의 점묘화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재구성한 장면이 등장한다.

사람이 휴식을 취하는 풍경 위에 동물들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니? 그럼 멋진 행동을 시작하렴. 거대한 바다도 한 방울의 물이 시작했단다.”

점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그림을 이루듯, 나의 작은 행동 하나도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책은 마무리된다.

『난 예술이야』는 예술가들의 언어를 빌려, 아이가 스스로의 존재를 빛나는 작품으로 인식하게 돕는다.

이 책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나만의 색을 가진 작품이야”라고 대답할 수 있게 해주는 여정이다.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는 방법도 있다.

아이와 함께 각 장면의 원작 화가를 찾아보며 비교하거나, 마지막 수프캔 장면에서는 “너는 어떤 캔이야?”라고 물어보며 자기만의 수프캔을 그려보게 하는 것도 좋다. 고흐의 하늘을 보고 자신만의 별을 그려보거나, 마그리트의 수수께끼 방을 만들어보는 것도 아이에게 큰 영감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서 아이는 말한다.

“난 내가 그려요. 세상에 하나뿐인 내 지문처럼, 나만의 색을 칠해요. 난 예술이야.”

그 말은 이 책은 모든 아이에게 그리고 한때 아이였던 어른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

당신은 당신 자체로 예술이라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로서 충분히 아름답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고 말이다.


'페이퍼독북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평생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외로움과 싸우며 그림을 그린 뭉클.
그의 감정은 깊고 어둡지만, 모든 걸 이겨 낸 빛을 담고 있어요.
"너에게 잔뜩 겁에 질린 모습도 있어. 외면도, 도망도 가지 말고, 가만히 들여다보렴.
그 모습도 너라는 걸 인정할 때 비로소 너에겐 진짜 용기가 생긴단다."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니? 그럼 멋진 행동을 시작하렴. 거대한 바다도 한 방울의 물이 시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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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몽실 몽상구름 - 백 번 자살 시도 끝에 살아난 여자의 찬란한 생의 기록
최애니 지음 / 아빠토끼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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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몽실 몽실구름』은 한 사람의 깊은 상처와 그로부터 회복해 가는 시간을 담담한 고백처럼 풀어낸 책이다. 동화 같은 제목과 부드러운 표지와 달리, 이 책은 눈물겨운 진심의 기록이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기까지의 수많은 밤들을 지나온 저자의 속내 그 자체다.

살면서 누구나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모든 고통이 같은 무게는 아니다. 견딜 수 없어 말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해 더 깊어지는 고통도 있다. 저자는 그 끝을 실제로 마주한 사람이다. 절망의 문턱에 선 경험, 그 끝에서 다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과정은 책 전반에 진한 농도로 배어 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위로나 조언이 아니라, “나도 그랬어. 너도 그랬지?” 하고 조심스레 다가오는 고백이다. 그렇게 슬픔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느낌이 들어, 오히려 따뜻하다.

책 속 고통의 이름은 다양하다. 불안, 우울, 관계에서 오는 상처, 그리고 무엇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 저자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희생했다. 무리 속에서, 연인에게서, 직장에서—그녀는 늘 웃었고 맞춰주었고, 상처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렇게 자신을 조금씩 깎아내리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도 돌아오는 것은 칭찬도, 사랑도 아닌 외면과 조롱뿐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지우며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이 책에서 가장 깊은 상처가 드러나는 장면은, 저자가 사랑이라 믿었던 관계에서 시작된다.

12살 연상의 남자였다. 그의 애틋한 눈빛, 죽음을 입에 담는 고백, 뜨거운 포옹에 마음이 무너졌던 저자는, 점점 그에게 빨려 들어간다. 그가 무너질까 봐, 그를 두고 떠나면 안 될 것 같아 끝까지 붙들며 자신을 버텨내던 그녀. 그와 함께라면 동반 자살도 괜찮겠다는 무모한 믿음 아래에서, 저자는 자신을 지워가며 그의 세계에 흠뻑 잠긴다.

그러나 그 남자의 어둠은 점점 짙어졌다. 질투와 독점욕, 자멸의 그림자가 그녀의 숨통까지 조여왔다.

술에 취해 반복되는 협박. “네가 나를 떠나면 넌 죽는 거야.” 그리고 어느 날, 그의 손이 그녀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도 저자는 그를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그의 눈물 어린 얼굴이 떠올라 끝내 외면하지 못했다.

그렇게 비틀린 사랑 속에서 그녀는 점점 사라졌고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존엄까지 허물어뜨렸다.

그리고 결국,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아주 짧은 찰나, 아주 작은 틈을 노려 도망쳤다.

그리고 얼마 뒤에 들은 그의 소식. 자세한 말은 하지 않지만, 그 기억은 오랫동안 그녀를 붙잡았다.

죄책감, 공포, 심장이 뛰는 것조차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그 감정들. 한때는 사랑이라 믿었던 그 관계에서 빠져나온 이후에도, 그녀는 오랫동안 그 상처를 껴안은 채 허덕였다. 헛된 사랑이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사랑하면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고, 살고자 하는 의지가 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 대상이 사라진 순간, 삶의 목적 자체를 통째로 잃은 듯한 상실감이 그녀를 덮쳤다.

그 고통은 단순히 관계의 실패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저자 안에 있던 무방비한 선의와 착함, 그리고 사랑받고 싶은 절박한 욕구가 만든 치명적인 균열이었다. 그렇게 파괴적인 관계를 지나온 뒤 그녀는 말한다.

그 폭력적인 사랑에 속아준 내가, 이제는 잘 사는 것만이 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그를 가슴속에서 천천히 태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 슬픔을 껴안고, 조금씩 걸어 나왔다.

이 책은 반복해서 말한다. 몽상은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세상과 나 사이의 안전한 거리이자, 나를 지켜내는 공간이다.

저자는 상상 속 구름 위에서, 스스로를 회복시키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낸다.

절망 속에서도 상상은 계속된다는 믿음.

그리고 그 구름은 결국 철학이 되고 방공호가 되며 다시 살아갈 용기로 바뀐다.

『몽실몽실 몽실구름』은 상처받은 이들이 끝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지켜주는 책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그저 한 사람의 감정적인 기록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단지 우울의 그림자를 따라가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이 건네는 위로는 너무도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진실한 언어다.

책을 읽고 나니 문득 나의 몽실구름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힘든 현실이다.

그래도 문득 짧은 시간 틈으로 나답게 서 있기 위한 나만의 구름 한 조각을 찾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것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닐까싶다.

『몽실몽실 몽실구름』은 상처받은 이들이 결코 완전하지 않지만 끝끝내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잔잔한 연대의 언어다. 이 책은 상처받았다고, 쓰러졌다고, 그게 끝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제는 나도, 당신도, 우리도 각자의 구름 위를 조금씩 걸을 수 있다.

그러니 오늘도 한번 살아보자.


'도서출판 아빠토끼'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고통을 피하기 위해 인간은 저마다의 변명이 필요하다. 좀 더 동화적인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상상의 재료가 필요하다. 발버둥 치며 애쓴 노력에 대해 명징한 결과를 고정된 언어로 내놓았을 때, 그것은 현실의 내가 온전히 소화하기에 거북하고 아프다. 진실을 냉정한 성적표로 삼아 겸허히 받아들이고 운명에 나를 맡긴 채 하늘에 굽신거리고 절망의 늪에 스스로를 가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절망 속에서 나는 더욱 상처를 깊게 후벼파면서 쓸데없는 자책과 생각을 더하게 된다. 추락의 늪을 계속해서 깊게 만들고 상상은 지옥에 다다른다. 평면의 땅 위에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감각되는 현재성이란 매 순간, 매분 매초가 나라는 정체성을 끊임없이 정체된 무언가로 고정하는 느낌이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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