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치환하는 번역은 원문이라는 제약 아래 재창조된다. 그 과정의 한가운데에 매개자가 있다. - P9

. ‘소설‘ 하면 다른 사람한테서 받은, 오래 입어서 천이 부드러워진 겉옷 같은 느낌이 있는데 그와 다르게 이 글자들의 무리는 햇볕이 달군모래알처럼 살에 껄끄럽고, 팔을 스르륵 넣어 겉옷을 입듯이 읽기를 시작할 수가 없다. 나는 겉옷이 아니라 달군모래알을 입고 걷고 있다. - P15

거기서는 ‘상처‘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거니와 ‘얼굴‘
비슷한 것조차 안 보였으며 글자 모양을 한 동굴만 보일 뿐이었다. - P19

"이쪽이세요, 아니면 이쪽이세요?" - P20

"어느 쪽도 아녜요. 저는 번역을 하러 이 섬에 왔어요." - P21

"아뇨. 절대 그런 이야기 아닙니다. 정말로 성 게오르크가 나와서 용하고 싸워요. 공주를 현대식으로 바꿔쓰지도 않았고요. 저는 그런 식으로 바꿔 써서 손쉽게 해결해 버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바꿔쓰는 일이 아니라 번역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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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분위기가 뭔가 심상찮다. 플랫폼에 이상하게 사람이 적다. - P9

비참한 운명공동체는 열차에서 내려 터벅터벅 플랫폼을 걸어갔다. - P13

버스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인연과 세월은 기다리는게제일이라고 느긋하게 마음먹은 당신이지만, 이따금 초조함이 밀려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의미 없이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곤 한다. - P14

아이들이 웃음을 뚝 그쳤다. 그 얼굴에 갑자기 존경의 빛이 떠오른다. 익혀둔 재주가 궁할 때 도움된다더니. 다시 한번 공중제비를 넘었다. 그러자 속이 후련해졌다. - P17

당신은 늘 열차 출발시각보다 훨씬 일찍 역에 도착하는 습관이 있다. 이게 해마다 심해지니, 노인이 되면 저녁에 탈 열차의 플랫폼에서아침놀에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P21

이래서야 신발끈을 못 찾아서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는 거나 매한가지아닌가. 당신은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는 앞 열차를 보면 무조건 올라타기로 결심한다. - P25

방언은 돈보다 강하게 인간을 얽어맨다. - P28

뱃속에 칼을 품고 다니면, 그것이 눈을 꿰뚫고 드러나기 마련이다. - P37

당신은 불현듯 지난밤 발끝에 묘한 감각이 느껴졌던 것을 아주 오랜옛일처럼 떠올렸다. 발목까지가 내 몸이고, 거기서부터 끝까지는 크기가 안 맞는 신발을 대충 꿰신은 것 같은 감각이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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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다. - P28

.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허수경, 「고마웠다, 그생애의 어떤 시간) 사랑은 온도와 무관하지 않은 일이다. - P29

모든 창문은이별을 이해시키기 위해존재한다는 것 - P33

그런데 그녀의 등은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이를 악물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이별 앞에선 모두가 가엾은 존재들일 뿐 더하거나 덜한 마음이 없었다. - P36

사실 그건 흔하디흔한 철골더미일 뿐이었는데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부드러운 찰흙 반죽으로 만들었을까. - P47

사랑은 상대를 향해 한없이 기울어지는 마음이고 그 기울기가 크면 클수록 존재는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 P55

"어딘가 가자고 내가 말한다어디 갈까 하고 당신이 말한다여기도 좋을까 하고 내가 말한다여기라도 좋네 하고 당신이 말한다얘기하는 동안 해가 지고여기가 어딘가가 되어간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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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경의 시에 몸에 좋은 ‘비타민‘이나 ‘식이섬유‘가 있기를 바라는 일은 무용할지 모른다.
대신 "근데 봤지 엄마가 나보고 웃었어"라고 말할 때의자신감은 고선경 시를 이끄는 절대반지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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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에 웬 모기가 이렇게 많아숨은 적이 없으니까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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