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우리는 젊고 가난했다. 첫 에세이집인 『온전히 나답게』라는 책이 나올 무렵이었다. - P56
그 시절 우리의 가난이라는 것은 어딘지 낭만적인 데가 있었다. 그 가난은 뭐랄까... 막막한 동시에 깔끔했다. - P58
우리에게는 돌발상황이 변수가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그 시절 나는 적건을 코앞에 둔 야전사령관처럼 살았다. - P61
우리는 지금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체험하는 거야. - P54
이제 내게는 케이크를 구울 시간 같은 것은 없다. 나는 그 시간을 돈과 맞바꾸었다. 돈을 버느라 너무 피로한나머지 좀처럼 케이크를 구울 마음이 솟지 않는다. 뭐, 그래도 괜찮다. 케이크는 이미 충분히 구웠다. 그리고 케이크를 구울 수 있는 시간은 곧 다시 돌아올 것이다. - P67
지금은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그러니까 나의 가난을감사하게 생각한다. 추운 방에 텐트를 쳐놓고 넷이 껴안듯 누워 동화책을 읽던, 볼이 붉게 물든 아이들이 따뜻한숨을 내쉬며 깊게 잠들던 그 겨울밤들을 소중한 기억으로간직하고 있다. - P67
잠시 후 남편과 딸이 집으로 돌아왔다. 세상에 수능을 못보다니. 늦잠을 자서 수능을 못보다니. 그게 내 자식이라니, 뭐라고 욕을 할 수도 없었다. 나도 수능 날 늦잠을 잔 엄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험장 입실 마감 시간도 몰랐던 엄마이기 때문이다. 알람조차 맞추지 않았던엄마이기 때문이다. - P77
당혹스러웠다. 아이의 성적에 대한 실망과 나 자신에대한 실망이 교차했다. 하지만 실망하긴 아직 일렀다. 나는 이제부터 내게 있는 줄 몰랐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체했던 무수한 편견과 무지와 오만과 가식과 위선을내 아이들의 인생을 통해 발견할 예정이었다. - P82
요는, 여왕 역시 똑같다는 사실이다. 그에게 애초에어두운 욕망이 없는 게 아니다. 단지 최선을 다해 그것을억누를 뿐이다. 유혹에 흔들릴지언정 적어도 무엇이 옳은지를 그는 알고 있다. 나는 여왕의 그 얼굴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아이를 미워할 때 내 얼굴도 그것과 비슷했으리라.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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