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책 읽을 때 책 소개는 잘 읽지 않는 편입니다. 쓸데없는 편견이 생겨 책의 내용에 몰입하기 힘들거든요. 이 책 역시 구입하고 시일이 지나 책 소개를 잊은 상태였고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펼친 첫장 첫 문장에 반해버렸습니다. 호감도 가득 채워진 상태에서 읽기 시작한데다 그 이후 이어지는 글도 정갈하면서도 진한 사건물의 향기가 나서 도저히 끊어 읽을 수가 없었어요. 성적 학대를 받고 자란 이정윤과 동급생들에게 성적 학대를 받은 권해원(이정윤이 아빠라고 부르며 따름), 직접적인 학대를 받았는지 자세히 나오진 않았지만 정윤을 근거리에서 지켜보고 자라서 역시 정신이 온전치 않은 박준석 셋의 이야기가 원래라면 기피 대상 1호인 소재인데도 큰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정윤의 담백함과 해원의 무관심이 학대라는 주제에 너무 몰입하지 않고 현실감을 가질 수 있게 해준 것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또한 정윤과 해원의 상처가 서로를 보듬고 이해하는데 더하거나 모자람이 없어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읽는 사람 또한 마음을 편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에게 구원이 된 정윤과 해원의 절묘한 밸런스가 읽는 내내 마음을 울렸습니다. 이렇게 피폐해질 수 있는 소재로 이토록 따뜻한 소설을 써내시다니, 제가 받은 감동을 글로 다 적어내는게 어렵네요.요즘 읽은 책들은 단권으로 끝나서 아쉬운 것이 많았는데, 이 책은 똑떨어지는 단권에 할 말을 모두 적어 내셨단 생각이 들었어요. 보통은 외전을 외치는 편인데, 이 둘은 이대로 서로를 아끼며 남아주면 되지 않을까, 외전이 없어도 즐길 건 다 즐겼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운이 남지만 아쉬움은 없고 다 읽은 후 마음이 개운해지는 소설을 만나 즐거웠습니다.
남에겐 카리스마있는 냉정남이지만 마음연 사람 한정 보들보들 다정남 좋아해요. 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냉정남이 겉으로 튕기는것도 참 좋아합니다. 커플이 같이 츤츤하면 더 좋아요. 사건이 있는 성장물 참 좋아해서 클로엘 작가님 신작 언테임드 기대됩니다.
넘쳐나는 성욕을 얏옹 커뮤니티에서 내려받은 썰과 동영상으로 풀고 있는 이도경은 성당에서 만나 과외를 해준적 있는 4살 연하 서지호를 수년간 짝사랑 중입니다. 나이 차이도 있고 첫 만남 때 중학생이던 그에게 욕정을 느끼는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 도경은 지호와 거리를 두려 하지만 지호는 도경에게 계속 들이대고, 끝내는 욕정에 함락되어 버리는 요망한 도경이가 귀여웠습니다. 한 순간의 쾌락을 위해 곧 찾아올 허무함을 알면서도 얏옹을 끊지 못하고, 디...딜군을 선물받아 놓고서도 안절부절 못하며 사용도 하지 않고, 소중한 직박구리 폴더가 있는 생활은 실제의 여성에게도 있는 일면인데도, 남성에게만 공개가 허락 된 설정이라 여겼는데 소설속 여주인공의 일상으로 만나니 반갑네요. 애용하시는 얏옹 커뮤니티 소개좀 해주십사 부탁할 뻔 했습니다. 보통 성당에서는 오빠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가녀리고 청초하고 풋풋한 여주를 만날 수 있는데 이 소설은 성당 '누나'인 것도 참 좋았고요. 풋풋한 소년을 보고 사랑에 빠진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는 도경의 모습이 양심적이고 현실감 넘쳐 좋았습니다. 이 반대 설정은 참 많이 봤는데(대학생 성당 오빠를 좋아하는 여주가 마음을 고백하면 오빠도 널 좋아했었다는 설정은 고전이면서도 흔하죠) 그걸 반대로 했을 뿐인데 낯선 느낌에 깜짝 놀랐습니다. 딜군과 오바이트와 직박구리가 만나 평범한 사람이면 수치스러움을 이기지 못했을 것 같은데 그걸 극복하는 도경의 요망함이 유쾌했어요.도경과 지호 커플과는 달리 도경이 친구 박성철과 진달래 커플은 정석커플의 맛이 있어 이 또한 나쁘지 않았습니다. 도경이의 요망한 매력에 가려서 그렇지 둘 다 지고지순하게 서로만 바라보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것이나, 과거 고아인 성철을 반대했던 달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허락받을 사람이 없다고 방황하던 성철이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달래 어머니 무덤 앞에서 허락을 구하는 장면에선 마음이 짠했어요.전체적으로 클리셰와 클리셰 비틀기가 적절히 섞여 있어서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너무 자주 출현하는 오타와 비문, 잘못된 관용구 사용은 쾌적한 독서를 방해하였습니다. 두 커플이 마음에 드는 것과는 별개로 글의 완성도가 전체적인 만족도를 떨어트릴 정도여서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