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의 유전자는 수많은 개체의 몸을연속적으로 거쳐 생존하는 단위라고 생각해도 좋다.
- P85

여기에서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유전자를 정의하는 속성은 유전자가 사본 형태로 거의 불멸이라는 것이다. 유전자를 하나의 시스트론으로 정의하는 것은 어떤 목적에서는 적절할지 모르나, 진화를 논하려면 그것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 P101

갓난아이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은 거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한 아기와 또 다른 아기 사이에 있는 차이, 이를테면 다리 길이가 차이 나는 원인을 추적해 보면, 환경이든 유전자든 하나 내지 두세 개의 단순한 차이를 쉽게 발견할 수있을지도 모른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중요한 것은 차이이고, 진화에서 중요한 것은 ‘유전자에 의해 제어되는 차이‘이다.
- P104

이 논의의 기초가되는 것은 유전자가 불멸인 데 비하여 몸 이상의 큰 단위는 일시적이라는 가정이었다. 이 가정은 두 가지 사실, 즉 유성생식과 교차가 있다는 사실과, 개체는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명백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왜 사실일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우리와 대부분의 다른 생존 기계는 유성생식을 하는 것일까? 우리의 염색체는 왜 교차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영원히 살지 못하는가?
- P107

‘우리는 왜 늙어서 죽는가‘라는 의문은 복잡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그 내용을 상세히 기술하는 것은 이 책의 영역을 넘어선다. 우리가 왜 늙어서 죽는지에 대해 경우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이유뿐만 아니라 더 일반적인 이유도 몇 가지 제시되어 있다. 예를 들면 노쇠는개체의 생애 동안 일어나는 복제 과정의 유해한 오류와 유전자 손상이 축적되어 생기는 것이라는 이론이 있다. 피터 메더워 Peter Mecaves 이 주장한 또 다른 이론은 진화를 유전자선택에 근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의 좋은 예가 된다. 메더워는 우선 다음과 같은 전통적인 가설을 기각하였다. "늙은 개체가 죽는 것은 그 종의 나머지 가체에 대한 이타적 행위다. 왜냐하면 번식할 수 없을 정도로 늙어서도살아 있는 개체는 세상을 어지럽히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라는 종래의 설은, 메더워가 지적하고 있듯이 순환 논리다.
- P108

일반적으로 이 원리는 다음과 같다. ‘목적기계‘, 즉 의식적인 목적을 갖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기계 내지 물건은 사물의 현재 상태와 자신이 ‘바라는‘ 상태의 차이를 측정하는일종의 장치를 가지고 있다. 이 차이가 클수록 기계는 더 열심히 돌아가도록 만들어진다. 이렇게 해서 기계는 자동적으로 그 둘의 차이를 좁혀 가며 (이 때문에 ‘음의 피드백‘이라고 불린다), 자신이 ‘바라는‘ 상태에 도달하면 작동을 멈춘다.
- P126

복잡한 세상에서 예측이란 불확실하기 마련이다. 생존 기계가 내리는 결정은 모두 도박이다. 따라서 유전자가 할 일은 뇌가 평균적으로 이득이 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뇌에 미리 프로그램을 짜놓는 것이다.
- P134

크고 복잡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는 눈앞의 경쟁자를 없애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그 경쟁자의 죽음으로 당사자보다 다른 경쟁자가 이득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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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일 년도 안 되는 동안에 그런 일들이 다 일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 또 아무리 한동안 소식이 끊겼었다 해도 여고 동창생에 대해 궁금한 게 얼마나 예뻐졌을까,
연애는 해 봤을까 따위가 아니라 죽었을까, 살았을까라는 것은 환갑이나 지나고 나서야 할 것이 아닌가. 
- P125

"웬 놈의 겨울이 이렇게 길다냐?"
김숙이 파고드는 밤바람에도 봄기운이 완연하건만 엄마는이렇게 딴전을 피웠다.
- P281

그러나 이 굴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좀 더 이 굴욕의 시간을 견디어 내야 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 P291

나는 일주일을 견디지 못하고 말문을 열게 됐다. 일단 말문이 열리자 수치심이 사라졌고, 수치심이 사라지자 이 군 식의 엉터리 영어가 술술술 잘도 나왔다. 굴복했다기보다는 무너진 것 같은 자포자기였다. 
- P293

그럴 때는 밑도 끝도 없이 불쑥 자애慈愛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사는 일의 악착같음 때문에 거의 잊고 지낸 자애라는 게 따뜻한 물에 언 몸을 담갔을 때처럼 쾌적하게 스미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 P309

장난 끝은 피곤하고 허망했다. 피곤도 회복될 수 있는피곤이 아니라 서서히 마모돼 가는 피곤이었다. 툭하면 시가 줄줄줄 나오는 감정 과잉도 나에겐 버거웠다. 엄마한테 맞을 정도로 지섭이한테 엎드러져 있는 동안에 오히려 나는 지섭이를 저만치 밀어내고 냉담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섭이뿐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도 곰곰이 돌이켜 볼 계기가 되었다.
- P340

나는 마모되고 싶지 않았다. 자유롭게 기를 펴고 싶었고, 성장도 하고 싶었다.
- P342

나는 어떤 가문에도 안 속할 테니. 당신이 나를 찢어 내듯이 그이도 그의 어머니로부터 찢어 낼 거예요. 우린 서로 찢겨져나온 싱싱한 생살로 접붙을 거예요. 접붙어서, 양쪽 집안의 잘나고 미천한 족속들이 온통 달려들어 눈을 부릅뜨고 살펴봐도 그들과 닮은 유전자를 발견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돌연변이의 종이 될 테니 두고 보셔요.
- P352

야만의 세월을 기록한 글들은 많다. 그러나 어떤 영혼의 문체가 그 세월을 기록했는가에 따라서 그것들은 큰 차이가 난다. 야만의 세월을 고발했기 때문에 훌륭한 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야만의 세월 속에서도 인간적 가치를 버릴 수 없어 더욱 큰 고통을당했던 영혼이 그 야만의 세월을 기록할 때 훌륭한 글이 되는 것이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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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숨이 막히는 것은 우리 식구의 끈끈한 결속력이었다. 나는 몰래몰래 모반을 꿈꾸었지만 돌파구는 없었다.
- P42

올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더군다나 알 수 없었다.
매사에 가장 의젓하게 구는 게 올케였지만 나는 가끔 올케가 울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이곤 했다.
- P44

그날 올케하고 나 사이엔 육친애나 우정보다 훨씬 더속 깊은 운명적인 연민 같은 게 심금에 와 닿았기 때문에 그 밖의 것은 그닥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 P47

우선 이질감을 안 느끼게 하는 게 수였다. 이질감이란 얼마든지 적대감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것은 얼마나 치사한 일인가.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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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국 진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오류다. 아마도 최초의 자기 복제자는 더 많은 오류를 저질렀을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오류는 생겨났고, 이 같은 오류가 누적되어왔다는 것은 확실하다.
- P70

 자기 복제자는 기나긴 길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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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는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은 심오한 질문에 마주쳤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미신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 P45

자세히 들여다보면, 겉보기에 이타적인 행위는 실제로는 이기주의가 둔갑한 경우가 많다.
- P50

그러나 집단의 절멸은 개체 간에 치고받는 경쟁에 비해 느린 과정이다.
집단이 느리게 그리고 확실히 쇠퇴해 가는 중에도 이기적인 개체는 이타주의자의 희생을 발판 삼아 짧은 시간 안에 그 수가 불어난다.
세상 사람들이 선견지명을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진화는 미래를 보지 못한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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