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젠더론 안 사요: 트랜스멍멍이의 논리


 2) 나(시스젠더)만이 주체가 될 수 있다


   시스젠더 이성애자인 나로서는 내가 그러한 권력적 지위에서 세상을 바라봐 오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남/여 이분법적 위치에 맞춰 섹스와 젠더를 일치시키는 데 실패하거나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가짜'나 정신병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태도는 오직 시스젠더만이 모든 것을 다 알고 판단하고 결정할 능력과 권한을 가진 주체라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 이와 같은 믿음은 주체를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며 모든 것을 다 알고서 선택하고 판단하는 존재로 상정하는 근대적 통념을 따르고 있는데, 이런 식의 주체 개념을 주디스 버틀러는 '의지주의적 주체voluntarist subjent'라고 부른다.                - 143쪽


  2장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이러한 주제들을 살펴본다. 

  

  그 책(<젠더 트러블>)에서 버틀러는 '이성애는 자연의 섭리가 아니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는 사실상 구성된 것이다'를 입증함으로써 퀴어들이 존재할 자리를 이론적으로 마련했다. 하지만 '젠더가 구성되었다'는 주장은 많은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


 ① 젠더가 구성된다는 건 무슨 뜻인가? (생략)

 ② 젠더가 구성되는 거면 섹스는? 젠더와 섹스의 관계는? 젠더가 구성되어도 '생물학적 여성'과 '생물학적 남성' 자      체는 변치 않고 남아있는가?

 ③ 만약 우리가 젠더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젠더가 우리를 결정하는 거라면 사람의 행위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        나?     - 147쪽 


 예전에는 생물학적 성은 섹스, 사회적 성은 젠더, 음 그렇군! 밑줄 쫙쫙. 하고 별 의문없이 넘겼는데, 위 질문들을 보고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골치가 좀 아파진다... 



2. 젠더는 규범이다

 

 1) 생물학적 성별?(X) 성별 이원론 체계로서의 젠더(O)


보부아르의 명제,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에 대해 버틀러는 되묻는다. '처음부터 여성이 아니었다면 언제부터, 어떻게 여성이 될 수 있는 건데?'  - 149쪽

  그러니까, 섹스로서의 여성(female)은 언제나 젠더로서의 여성(woman)이, 섹스로서의 남성(male)은 젠더로서의 남성(man)이 되는 것이 섹스와 젠더를 구분하는 것의 전부에 불과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male이 woman으로, female이 man으로 연결되거나, 그 사이 어딘가에 속하는 존재들에 대한 설명은 어떻게 가능한가? 


female, male이 생물학적인 성별이고 woman, man은 사회적인 구성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결국엔 female은 반드시 woman이 되고 male은 무슨 일이 있어도 man이 되어야 한다면, 사람의 몸은 항상 이미 젠더화된 몸이 되는 셈이다. 다시 말해 이 사회가 '진짜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남성/여성의 몸은 정말로 반박 불가능하고 자연스럽고 중립적인 물질이 아니라 남/여라는 단 두개의 항으로 이뤄진 젠더 이원론인 것이다.  - 149쪽 


 인간은 태어나면서 주로 의사에 의하여 호명되는 성별, 즉 지정성별을 갖게 되는데, 이때 이미 젠더화 된다. 즉 "신생아를 둘러싼 사람들은 이 호명이 신생아의 '진짜' 섹스, 즉 타고난 몸의 물질성을 '그대로' 기술하는 것뿐이라고 믿지만, 버틀러는 이 호명의 순간에 인간의 몸이 항상 이미 젠더화된 몸으로 산출된다고 본다."(150쪽) 몸이 나타내는 성별에 대해 사람들은 이분법을 의심없이 받아들이지만 사실 생물학적 성별이라는 것도 분명하지 않다(인터섹스들의 존재가 이를 증명한다).  


 생물학적 성별의 결정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성호르몬이 생물학적 성별을 결정한다고 믿었으나 두 호르몬 모두 모든 몸에서 생성된다는 것이 진작에 밝혀졌고, 그 다음에 성염색체가 핵심 요소로 등장했으나 그 연구에 있어서도 성차별적 편견을 전제로 깔고 있다는 문제점이 비판되어 왔으며 성별을 결정하는 단 하나의 생물학적 기준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153,154쪽). 


이런 논의들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젠더가 섹스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젠더가 우리의 몸을 규정하고 해석하고 재현하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주류 사회가 진짜 성별이라고 믿는 것은 남/여 이원론으로서의 젠더일 뿐이고, 그런 점에서 섹스는 항상 이미 젠더이다.  -155쪽 


 인터섹스 아이들에 대한 성기 수술 이야기는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에도 나온다. 브루스는 생후 7개월경 포경수술을 받았다가 의사의 실수로 음경이 거의 다 타 버린다..(컥) 그의 부모는 존 머니 박사의 설득으로 브루스를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고 이름도 브렌다로 바꾼다.. (컥) 그러나 청소년기에 브렌다는 여성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해 고통을 겪었고, 다시 수술을 받아 데이비드라는 이름의 남성이 된다..(컥) 그는 남성으로서 가정을 꾸리고 잠시 행복을 누리지만 결국 여러가지 문제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ㅜㅜ (이 책 전자책 기준 99/191쪽에 나오는 내용) 








 이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데이비드 라이머 이야기를 다룬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를 읽고자 찾아봤었으나 절판이다. 

 정말이지 부모가 또는 의사가 아이의 성별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요상한 믿음에 의하여 희생당한 대표적 케이스 같다. 애초에 음경을 태워버린 의사는 뭐야.. 아 진짜 너무 안됐다ㅜㅜ 












그러므로 우리가 '섹스', '생물학적 성별'이라고 알고 있는 남/여 범주는 처음부터 규범적이다. 버틀러는 이 섹스 범주가 푸코 식으로 표현하자면 '규제적 이상'이라고 말한다. 왜 규제적 이상인가?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이 거기 도달하길 원하고 노력하게끔 유도하는 '이상'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모두가 바라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도록 '규제'하기 때문이다. '섹스'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젠더 이원론 규범 체계를 통해 물질화된 인식론적 범주이다.  - 160,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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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지음 / 가나출판사 / 2018년 1월
평점 :
판매중지


관계로 인한 고민이 많은 20대(특히 여성)에게 선물해주면 좋을 책이다. 사회에서 어느 정도 굴러본 30대 중반 이상에게는 새로운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솔직한 태도가 좋았다. 무례한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면 멘토링 받는 느낌으로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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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트랜스 멍멍이를 버틀러가 논박하다

  => <젠더 트러블>을 시작으로 주디스 버틀러가 발전시킨 '젠더 수행성 이론'에 대한 해설! 


섹스는 무엇이고 젠더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수학 방정식 풀듯 단 하나의 근을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섹스가 무엇이고 젠더가 무엇인지 답하는 것 자체가 많은 이들에겐 은유적으로든 문자 그대로든 생존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여 이분법을 해체하는 이론적 작업이 존재 자체만으로 폭력과 차별과 살해 협박을 겪는 트랜스젠더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일이라고 수잔 스트라이커가 말했듯, 섹스와 젠더를 어떻게 정의하고 이해하는가에 대한 담론들은 어떤 사람들의 삶을 살아도 되는 삶, 살 만한 삶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만들어가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 131쪽


1. 젠더론 안 사요: 트랜스 멍멍이의 논리 

  '트랜스 멍멍이'가 무슨 뜻인가 했더니 터프(트랜스를 배제하는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를 조롱하는 뜻으로 쓰는 단어인 모양이다. 여기에서는 터프들의 젠더 관련 주장들을 열거하며 이를 하나하나 반박한다.


 1) 젠더는 선택할 수 없고 생물학적 성별은 절대 건드릴 수 없다 


퀴어들을 겨냥해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선택을 어느 정도까지 자유롭게, 어느 정도까지 사회구성의 범주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하는 질문을 던지는 (...) 이 사람들이 보기에 젠더는 선택할 수 없는 것이고, 선택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소위 '생물학적 성별'로 이해되는 섹스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사수해야 하기 떄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젠더는 크게 네 가지로 이해된다.  - 135-136쪽

   (1) 젠더는 섹스를 반영할 뿐이다 (X) - (X)표시는 내가 넣었다^^


      보부아르의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라는 주장에 따라 섹스와 젠더를 구별하듯이 보이는 페미니즘에서, 사실은 섹스와 젠더가 본질적으로 일치하는 '시스젠더'만을 '진짜 여성'으로 인정하고 그것이 불일치하는 트랜스젠더는 배척함으로써 섹스와 젠더의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일부 주장이 왜 나왔는지, 그게 어떤 점에서 논리가 결여되었는지를 지적한다. 

원래 페미니즘에서 섹스/젠더 이분법은 정치적 자원으로 도입된 것이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생물학은 운명이다'라는 논리(...)에 맞서기 위해, 즉 생물학적 본질을 여성 억압의 근거로 끌어다 쓰는 지배 문화에 맞서기 위해 섹스/젠더 이분법을 활용했다. (...) 그런데 섹스와 젠더를 구분하고 젠더에 변화 가능성을 부여한 이 도식을 그저 당연한 듯 받아들이기엔 의문점에 생긴다. 섹스와 젠더가 나눠진다면 둘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 다시 말해 '생물학적 성'을 female과 male로, '사회적 성'을 woman과 man으로 이해하는 이 이분법에서 어떻게 female이 woman이 되고 male이 man이 되는지, 왜 female이 man이 아니라 woman과 연결되는지에 대한 논리석 설명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설명이 빠지 그 자리를 '당위'가 차지한다.  - 136-137쪽


   (2) 젠더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뜻한다 (X)

   

      탈코 운동의 긍정적 측면이 분명 있다. 그런데 탈코를 주창하며 그에 따르지 않은 채 여전히 자신을 꾸미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태도는 또 다른 여성 혐오라고, 저자는 분명히 지적한다. 


젠더를 섹스가 정해준 한계에서 약간의 일탈을 감행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관점에서 젠더는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과 남성성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최근 버틀러의 '젠더 수행성' 개념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자주 보인다. (...) 최근에는 젠더를 문제 삼는 이 움직임이 주류 사회에서 '여성성'으로 읽혀지는 모든 젠더 표현을 그것이 표현되는 몸이나 위치의 특수성, 맥락, 의도, 나아가 야기하는 효과와 전혀 무관하게 '코르셋'이라고 낙인찍는 방향으로 획일적으로 굳어졌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이는 여성성으로 혐오하고 남성성을 기준 삼는 방식의 또 다른 여성 혐오다.  - 138, 139쪽


   (3) 트랜스젠더 = 젠더 (X)


     '젠더' 개념 자체를 '트랜스젠더'와 등치시키면서 젠더 개념 자체를 통째로 버리자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4) 섹스=몸 / 젠더=정신 이분법 (X)

  

섹스는 진짜고 젠더는 가짜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관점에서 섹스는 반박 불가능한 물질인 반면 젠더는 (...) '뇌 내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도 모든 젠더가 '뇌 내 망상'인 것은 아니다. (...) 오직 이 섹스-젠더의 일치 관계를 벗어나는 젠더만이, 즉 '터프'의 관점에서 감히 '진짜 몸'에 따르지 않는 정신'만이 문제가 된다. 

 

2장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인데 시간이 없어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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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24 1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려운거 같으면서도 이해는 되는거 같네요 ㅋ 독서괭님 페이퍼 보고 조금씩 배워가는중 ^^

독서괭 2021-09-24 22:14   좋아요 2 | URL
영광입니다^^ 직접 읽어보시면 훨씬 이해가 잘 되실 거예요 ㅎㅎ
 




3. 퀴어의 유연성과 확장성을 둘러싼 논의 


 1)퀴어라는 이름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가? 

  퀴어를 마치 마음대로 입고 벗을 수 있는 젠더 개념으로 오인하여 비웃음을 던지는 혐오세력들이 있고, 그에 대한 비판과 논의가 담겨 있다. 


퀴어라는 용어를 무한히 확장시킬 수 있는 자유롭고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취급하면서 '퀴어'라는 용어와 그 이름으로 불리어왔던 혹은 스스로를 그렇게 불러왔던 사람들을 서로 떼어놓을 때, 그리하여 트랜스를 배제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상상하는 단일한 여성 정체성을 위한 이론적 자원으로만 끌어다 쓸 때, 이는 퀴어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퀴어 정체성을 부정하고 이 사람들을 페미니즘 의제에서 배제한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는 퀴어를 전면 거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교묘한 퀴어 혐오일 것이다.  - 88, 89쪽


 2) 물질, 현실, 역사를 사유하기


(즉,) 혐오폭력 가해자들이 어떤 사람을 희생자로 선택하는 이유는 그 희생자에게 차별(처벌)받을 만하다는 물질적인 증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터너는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왜 가해자들이 인종적 차이나 성적 차이를 기반으로 희생자를 선택하는가?'하는 질문이 자주 등장하지만 이 질문이 그러한 차이에 책임을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 언론과 경찰이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서둘러 단정한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가해자는 왜 아무나 죽이지 않고 여자가 지나갈 때까지 세 시간이나 기다렸는가? 젠더퀴어로 보이는 사람은 왜 희생자로 선택되는가? (...) 이는 "범주에 관한 질문이고, 재현에 관한 질문이고, 개인들을 그들의 정체성에 부착시키는 과정에 대한 질문이자, 관습적으로 정의된 정치와 법에 대한 질문이다."  - 93쪽


 3) 경계 짓기/열어놓기의 변증법

   위 1)의 문제와 관련된 논의로, 적절히 경계를 지으면서도 그것이 또다른 규범이 되어 누군가를 배제하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열어놓을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경계를 가로지르고 한 곳에 고정될 수 없는 퀴어 개념의 특성이 마치 마음만 먹으면 위치성을 초월할 수 있는 양 오용될 위험을 어떻게 경계할 수 있을까? 위치를 본질적인 것으로 사유하지 않으면서도 위치성을 중시할 방안은 어떻게 모색해야 할까?  - 95쪽


 그리스의 패럴림픽 수영 챔피언이라는 안토니스 차파타키스가 찍은 화보(구글에서 Antonis Tsapatakis를 검색하면 사진이 나온다. 수영장 물 속에서 옆으로 쓰러져 있는 휠체어 곁에 우뚝 서 있는 안토니스의 모습이다)를 예로 들면서, 


지금 이 사회에서 규범적인 것은 매우 이분법적으로 범주화되어 있는 데다 더 좋고 나쁨의 위계가 그사이를 촘촘하게 채우기 때문에 이런 위계질서에서 이미 가치가 낮춰진 존재들이 재현될 때마다 이 재현이 과연 규범을 전복시키는 것인지 공모하는 것인지 확답할 수 없는 복잡한 의미가 덕지덕지 쌓이게 된다.  - 98쪽

 이 부분 굉장히 공감이 간다.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외모 품평 같은 것에 대해서도 이를 뒤집는 광고라든지 언어가 전복인지 공모인지 약간 헷갈릴 때가 있다. 



4.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식론적 겸손의 정치


무엇보다도 퀴어 이론을 퀴어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주장이 토대삼은 것들도 심문하면서 스스로를 항상 비판에 열어놓는 태도다.  - 101쪽

우리는 인간이 무엇인지 인권이 무엇인지 여성이란 무엇이고 누가 여성이 아닌지 등에 대해 하나의 정답을 딱 말할 수도 없고 그럴 수 있다는 오만을 가져서도 안 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발언하고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싸움에 침묵하는 자는 방관자고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또한 인식론적인 겸손함으로 이 무지를 받아들이고 이 무지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윤리적 책무이기 때문에.  - 104쪽


 위 인용문과 관련해서, 각주 137(127쪽)에서는 저자가 주디스 버틀러의 <Undoing Gender(2004a)>(<젠더허물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중 일부 내용에 대한 번역의 잘못을 지적한다.

 



 












원문: Indeed, I think we are compelled to speak of the human, and of the international, and to find out in particular how human rights do and do not work, (...) 


한글판 번역: 사실 나는 우리가 인간에 대해, 또 국제적인 것에 대해 말하도록 강요받는다고 생각하며, 특히 인권이 어떻게 작동되고 또 작동되지 않는지, (...) 알아내라는 강요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번역: 사실, 내 생각에 우리는 인간에 대해, 또 국제적인 것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특히 인권이 어떻게 작동하고 작동하지 않는지(...)를 찾아내지 않을 수 없다. 


 => 위 한글판 번역은 우리의 윤리적 책무를 담아낸 원문의 표현을 '너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라는 말이 부담스럽고 그건 강요다'라는 내용으로 해석될 수 있어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127쪽)


 이런 내용을 읽으니 주디스 버틀러 책을 읽어보기가 더 두렵다. 안 그래도 어려운 책이 번역상 오류까지 있으면.. 곤란한데.. 



각주 20(109쪽) 

여기에서 저자는 수간이나 소아성애까지 성소수자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면서 퀴어이론이 아이들을 위협한다는 혐오세력의 여론몰이에 대해 단호하게 비판한다. 이건 이번 EBS 위대한수업에 주디스 버틀러가 출연한다는 것에 대해 반대하며 항의성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좀 읽으면 좋겠다. 


수간이나 소아성애를 행하는 부류의 인간들은 집단적인 억압과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겪어오지도 않았고 사회의 규범성에 도전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욕망이 실천에 옮겨질 때 상대방(동물과 아이)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성폭력으로 구현된다는 점에서(그리고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는 대다수가 남성이라는 점에서) 이 사회를 지배하는 특정한 폭력적 규범성을 따르고 강화한다.  - 109쪽 


 또 이 각주 부분에서 퀴어 페미니스트 학자 게일 루빈이 쓴 <일탈>이라는 저서를 소개하면서, 그에게 붙은 소아성애를 옹호했다는 오명에 대해 상세히 비판하고 있다. 

















휴, 이제 1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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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9-24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독서괭님 진정 휴~~~하실 만합니다. 이리 어려운 책도 소화하시다니. 엄지 척!!!👍👍👍^^

독서괭 2021-09-24 10:10   좋아요 0 | URL
완전히 소화하기에는 제 능력이 부족하구요^^; 그래도 저자가 필력이 좋아서 읽어나가기가 많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엄지 감사합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Midnight 중 제임스 조이스의 <죽은 사람들>을 읽었다. 

첫번째 실린 단편 '애러비'는 뭐지 싶었고, 두번째 실린 단편 '가슴 아픈 사건'은 그럭저럭 재미있었는데, 세번째 실린 중편 '죽은 사람들'은 아주 재미있었다. 

'죽은 사람들'은 모컨 자매가 여는 연례무도회에서 벌어지는 하루 저녁의 일을 다루고 있다. 이 연례무도회에 참석한 모컨 자매의 조카 게이브리얼은 교사로서 이곳의 다른 사람들보다 지적 수준이 높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이밤 그의 유일한 걱정은 준비한 연설의 성공 여부이다. 게이브리얼은 함께 춤을 추게 된 동료 교사로부터 "친영파"라는 비난을 받고 마음이 착잡해지지만(이 대목에서 새삼 아일랜드의 폐쇄성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교사가 예상 외로 일찍 자리를 뜨고 준비한 연설이 성공하자 잔뜩 고무된다. 무도회가 끝나고 떠나기 직전 바라본 아내 그레타의 모습이 게이브리얼에게 신혼 무렵 같은 뜨거운 욕망의 불을 지피는데... 잔뜩 기대하고 호텔방에 들어선 게이브리얼은 막상 그레타는 전혀 다른 생각, 오래전 죽은 연인을 떠올리며 슬퍼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데... 


마침 이 책을 읽은 것이 추석 연휴 아닌가. 

나는 그레타의 마음을 즉각 이해했다. 한마디로, 명절에 시가에 간 며느리 아닌가! 매년 가야만 하는 시고모네 파티... 지치고 힘들어 죽겠는데 주책맞게 욕정에 들뜬 눈치 없는 남편... 

아, 게이브리얼아, 이 눈새야... 


예상 외로 재미있었기 때문에 <더블린 사람들>도 읽어보고 사두고 싶어졌는데, 여러 판본 중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조언 부탁드립니다..



































 소설을 읽을 때 취향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부분이 "무거움과 가벼움의 배분 비율"이다. "비극과 희극"이라 해야 하나, "눈물과 웃음"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저런 걸 생각해 봤지만 역시 "무거움과 가벼움"이 제일 적확한 것 같다. 시종일관 무겁기만 한 소설도 별로고, 시종일관 가볍기만 한 소설은 더 별로고. 전체적인 줄기나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묵직하지만 농담이나 일상 대화 등을 통해 적절하게 환기를 시켜주는 소설이 좋다. 그것이 실제 세상이나 인생의 모습에도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복자에게>는 상당히 내 취향을 저격한 소설이었다. 무거움 8, 가벼움 2 정도 되려나. 그러고보면 예전에 좋아했던 박민규도 이런 이유였던 듯하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무거움 5, 가벼움 5 정도 되려나. 가벼움의 비중이 그 이상 올라가면 읽을 때는 재미나도 기억에는 오래 안 남는 것 같다. 아무튼 김금희는 <너무 한낮의 연애> 이후로 처음이었는데, 더 읽어봐야겠다 생각하고,


 "무거움과 가벼움의 배분 비율"의 최적화로 강경옥의 작품 중 나의 최애가 된 것이 바로 <노말시티>이다. 주인공 마르스가 자신이 연구소에서 실험체로 태어났다는 점, 성별이 주기적으로 바뀐다는 점,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능력으로 인해 괴물 취급을 받는 점 등으로 인해 대단히 혼란스러운 시절을 보내는 와중에, 이샤와의 로맨스는 그 캐릭터 특유의 밝음과 풋풋함으로 인해 만화 분위기 전체에 많은 영향을 준다. 비율은 무거움 7, 가벼움 3 정도 되려나? 처음에는 가벼움 쪽이 좀더 높았고 뒤로 가서는 무거움이 상당히 높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그 정도이다. 






  어디 보자, 얼마전 읽은 <피프티 피플> 또한 그 점에서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는데, 무거움 6, 가벼움 4 정도? 리뷰를 써야하지 하면서 아직 못 썼다.. 시스템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인간이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악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지극히 품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인 듯 하다. 사실 팟캐스트 책읽아웃, 김하나의 측면돌파에 정세랑 작가가 출연한 적이 있어 책은 진작에 사 두었었는데 이제야 읽었고, 그 방송도 다시 들었다. 벽장 속 동성애자 이야기를 상당히 발랄한 어조로 풀어낸 것이 마음에 들었는데, 방송에서 들으니 작가님 말투도 꽤나 발랄하다. 

 더 읽어보려고 <시선으로부터>도 사 두었다. 








EBS에서 하는 <그레이트 마인즈-위대한 수업>을 첫회에 딱 본방 보고 나서 못 보고 있다가, 월요일부터 3일 연속 본방사수에 성공했다. 주디스 버틀러의 강의를 들으니, 또 요즘 읽고 열심히 페이퍼를 쓰고 있는 <퀴어이론 산책하기>에 버틀러가 계속 나오다 보니, <퀴어이론 산책하기>를 끝낸 뒤에 버틀러 책을 한 권 쯤은 읽어보고 싶다. 어렵겠지.. <젠더트러블>은 하도 어렵다 얘길 들어서 손이 안 가고, 주디스버틀러에 대한 해설을 담은 책과 관심이 가는 책 두 권을 담아봤다. 그나마 덜 어려운 책은 이중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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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3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23 0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1-09-23 06: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죽은 사람들 깜짝 반전에 완전 놀랐어요.
저는 더블리 사람들 열린책들로 가지고 있는데 다른 판본은 안읽어봐서😅 열린책들 괜찮았어요 ^^

독서괭 2021-09-23 08:10   좋아요 3 | URL
완전 동상이몽이더라구요. 어쩜 이렇게 눈치가 없나 했어요ㅋㅋ 새파랑님은 열린책들이군요.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1-09-23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더블린 사람들> 예전에 문학동네 세계문학 전집으로 읽었는데 괜찮았습니다. 최근에 다시 다른 버전으로 읽고 싶어져서 열린책들 <더블린 사람들>을 사두었네요. 괭 님은 이번에 열린책들 버전으로 읽은 셈이나 마찬가지니... 문동 버전은 어떨지 추천드립니다.

독서괭 2021-09-23 10:45   좋아요 2 | URL
오 잠자냥님은 이미 재독을 준비하셨군요! 문동을 추천받기도 했고 저 중에 문동이 젤 예뻐 보여서 ㅋㅋ 아무래도 문동을 사게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막시무스 2021-09-23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거움과 가벼움의 비율로 소설의 느낌을 표현하니깐 재미있는데요!ㅎㅎ...라면맛 품평회하는 느낌도 들구요!ㅎ 저도 말씀하신 8대2 내지 7대3 정도의 레시피가 황금비율이라고 생각합니다.ㅎ....‘눈새‘가 무슨 뜻일지 1분가량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환자 해석하고 나서 커피 뿜을 뻔 했습니다.ㅎ 오늘도 즐건 하루되십시요!ㅎ


독서괭 2021-09-23 10:47   좋아요 1 | URL
라면맛 품평회 ㅋㅋㅋ 레시피라고 표현하시니 더 재밌네요. 8대2 7대3 정도 비율이면 저는 홀랑 넘어갑니다 ㅎ 물론 유머코드가 맞아야 하지만요. “눈새”를 모르셨군요. 진지하게 고민하셨다는 말씀에 저도 웃었네요 ㅋㅋ 막시무스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초딩 2021-09-24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동 더블린 사람들 읽었었어요.
음 정말 ㅜㅜ 더블린에 내가 좀 살았어야하나. 왜 이렇게 동네 이야기가 많지 이랬었어요.
더블린 사람들 보다,
문동의 해설이 제임스 조이스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어서 좋았어요 ^^

독서괭 2021-09-25 00:07   좋아요 0 | URL
문동으로 읽으셨군요. 모르는 동네이야기 세밀하게 많이 나오면 집중이 힘들죠 ㅜㅜ 이걸 아는 사람이 읽는 거랑 모르는 내가 읽는 거랑 많이 다를 거란 생각에 맘도 아프고..
해설 좋다 하시니 꼭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