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퍼를 몇 년 쓰다 좋은느낌으로 바꿔 지금까지 써 왔다. 라이너는 애니데이를 쓰다가 얼마 전 나트라케어로 바꿨다. 20년간 발암물질을 달고 살았다는 거 아닌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화가 난다. 더불어 기저귀는 괜찮은 건지, 그럴리 없을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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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9-04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한킴벌리 생리대 발암물질 검출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기저귀뿐만 아니라 물티슈도 걱정됩니다. 십 년 전부터 말이 많았는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유해물질 관리와 대책이 허술합니다.

독서괭 2017-09-04 15:5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여성들이 반평생동안 매달 일주일 정도를 사용하는 물건인데 말이죠. 아기가 쓰는 기저귀와 물티슈는 더 엄격하게 관리해야 할 텐데요...
 

3박 4일 입원하고 나니 늙은 것 같다. 입원한 건 100일
된 아가고 늙은 건 나. 여린 손발에 바늘 찔리는 걸 보며 울고, 좁은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며(침대가 좁은 건 아니었는데 대자로 뻗어 자는 아기 옆에서 꾸겨져 자느라) 체력이 방전되는 걸 느꼈다.

다음에서 기사를 보면 보통 베댓까지 확인하는데, 여성문제에 관한 기사에 달린 베댓은 늘 나를 실망시킨다. ˝성폭력 원인은 옷차림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내세운 ‘슬럿 라이드‘에 관한 기사에 달린 베댓 ; ˝옷차림도 영향이 있다. 부처도 아니고...˝
구호의 취지를 완전히 잘못 해석한 반응이다.
저 베댓은 여성을 남성의 시선의 대상으로 객체화 하는 고질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여자의
몸을 남자에게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으로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무슨 옷을 입든 나의 문제고, 그것을 보는 남자가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그의 문제다. 그럼에도 그의 생각을 그녀의 탓으로 돌리는 이유가 뭘까. 유독 성범죄에서 그런 남탓을 하는 이유가 뭘까. 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한 피해자에게 ˝네가 약해서 때리기 좋게 생겼으니 맞은 거잖아˝라고 비난하지는 않지 않는가?
또 하나, 누가 야한 옷차림이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데 영향이 없다고 했나? ‘성욕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범죄를 유발 또는 자초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노출 많은 옷을 입은 여자를
보고 음심이 동했다고 해서 모두가 성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건강한 성욕과 도덕성을 가진 남자라면 다가가 시간 있어요, 하고 묻거나 그럴 용기가 없다면 상상만 할 테지, 다가가 엉덩이를 만지거나 따라가 강간하지는 않을 테니까.

얼마전 ‘시선 강간‘에 관한 기사에 달린 베댓의 취지는 이랬다.
1. 내가 내 눈 달고 내 맘대로 보지도 못하냐?엉?
2. 남들 보는 게 싫으면 입지를 말든가.
이것도 기사의 취지를 곡해한 반응이다(‘강간‘이라는 과도한 표현 때문에 더 반발심을 일으킨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일단 본다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는 점. 예쁜 옷, 노출 많은 옷 입을 때 남의 시선 전혀 신경 안 쓰는 사람이 있을까? 남자 뿐 아니라 여자도 노출 많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시선을 주게 되어 있다. 그 정도는 감내하고 입는다. 그러나 ‘시선 강간‘이라는 과격한 표현을 쓸 만큼의 몹쓸 시선도 분명 있다. 위아래를 요리조리 훑어본다거나 특정 부위를 계속 본다거나. 의심할 여지 없는 끈적한 시선으로 말이다.
옷 선택의 여지가 의외로 크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옷 사러 가 보면 대부분 유행에 따르는 옷들. 반바지는 놀랄 만큼 짧고, 예쁜 치마는 다 미니다. 연예인들은 과감한 노출로 시선을 끌고, 그것이 미의 기준이 된다. 결국 남자들이 ˝보기에 좋다˝ 하는 것이 여자들의 눈에도 예쁜 게 된다. 예쁜데 짧은 옷을 입느냐, 안 예쁘고 조신한 옷을 입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너 보라고 입은 거 아니거든요˝다. 정말이지 (일부!)남성들의 자기중심적인 시각에는 진저리가 난다. 보고 싶으면 봐라. 근데 변태처럼 훑어보지는 마라. 네 성욕 돋구려고 입은 거 아니거든.


간혹 ˝여자들 부럽다. 다시 태어나면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남자들이 있었다(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아니고). 정말? 여자가 살아가면서 겪는 일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인지 의심스러웠다. 그들이 본 여자는 뭘까. 연애할 때 돈 덜 쓰고 남자에게 늘 집에 데려다 달라도 할 수 있는 존재? 군대문화에서 비껴나 있는 존재? 임신과 출산이라는 경이로운 경험을 할 수 있고 아기에게 대체불가능한 사랑을 받는 존재? 다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돈을 덜 쓰는 것이-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 남자에게 돈을 쓰게 하는 여자를 몹시 싫어한다- 사실은 수천 년간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온 역사의 산물이라 평등을 외치면서도 쉽게 수정되지 않는다는 것을(심지어 남자보다 경제력이 좋아 더 내고 싶은 여자들도 남자의 자존심을 위해 내색하지 말아야 할 때도 있다는 점을). 집에 데려다 주는 것이 너무 일상화 되어버리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 원인은 이 세계가 여자에게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남성들의 군대문화는 그에 속해 있는 남성들 일부에게도 힘든 굴레지만, 그래도 그것은 주류에 속해 있다는 반증이라는 것을(여자는 그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껴주지 않는 소외된 존재였다). 임신과 출산의 가능성만을 위해 수십년 동안 월경을 해야 하고, 임신과 출산과 육아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작고 큰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희생만큼 아기에게 사랑받는 것일 뿐임을.
임신과 출산과 육아에서 경험하는 고충을 구구절절 밝히려면 한참인데, 그것이 도통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아직 작아서인 걸까. 안타까운 일이다.

페미니즘에 늘 관심은 있지만 정작 관련 도서는 별로 읽은 것이 없었다. <이갈리아의 딸들>, <자기만의 방>, <성의
정치학> 정도? 그런데 최근 어쩌다 연속해서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와 <시녀이야기>,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게 되니, 생각이 많아져 버렸다. 안 그래도 출산 후 만성 수면부족인데 생각이 많아져 더 잠을 못 잔다.. 그만 읽어야 하나... 다음 베댓 덕에 울컥해서 여기다 괜한 토로를 해본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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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9-03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아기 상태는 어떤가요? 많이 나아졌습니까? 정말 마음 고생이 심했겠습니다.

남자가 ‘여자들 부럽다.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라고 말하면 저는 이렇게 말대꾸하고 싶습니다,

˝여자가 되고 싶으면 니 X이나 잘라라.˝

독서괭 2017-09-03 11:59   좋아요 0 | URL
네 싸이러스님 아기는 다 나아서 쌩쌩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여자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아 화가 날 때가 있지요.

겨울호랑이 2017-09-03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밤에 응급실을 갈 일이 있어 다녀왔는데 아이들도 제법 있더군요. 아이들의 울음 소리를 들으면 모르는 아이여도 마음이 짠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자식있는 부모들은 더욱 그렇겠지요.. 독서괭님 고생하셨습니다.

독서괭 2017-09-03 12:34   좋아요 1 | URL
에구 겨울호랑이님은 어쩌다 응급실에 가셨나요? 괜찮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낳고 보니 다른 집 아이들도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위로 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7-09-0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독서괭님도 아기가 아팠었군요. 아이도 아이지만 엄마들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부디 힘내시고 빠른 쾌유 소식 기다릴께요.

독서괭 2017-09-03 12:37   좋아요 0 | URL
병 자체는 별거 아닌데 아기가 너무 어려서 이것저것 검사하느라 입원했었죠. 이젠 다 나았습니다. 시이소오님 감사합니다^^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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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경제를 배울 때 금과옥조처럼 외워 받들었던 말이 있었으니, ˝보이지 않는 손˝이다. 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알아서 잘만 굴러가니 늬들은 그저 타고난 욕구에 따라 열심히 경쟁하면 모두 다 함께 잘 살 수 있으리라. 물론 수정자본주의도 우리에게 익숙하고, 정치가 어느 정도 시장에 개입하여 분배의 정의를 실현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만, 여전히 경제학의 기초에는 시장은 그 자체로 정의로울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믿음의 근저에 있는 ˝경제적 인간˝이라는 초상은 환상에 불과하며,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과 의존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마치 ‘우주 속에 혼자 유영하는 것처럼‘ 고립된 개체로 취급함으로써 실제로 발생하는 많은 문제를 외면해왔다고 지적한다. 또 한 가지, 경제적 인간은 남성을 의미하므로 여성을 모조리 소외시켰고, 전통적으로 여성이 담당해 온 ˝돌보기˝의 역할을 무시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애덤스미스의 저녁은 어머니인 마거릿 더글라스가 차려준 것‘으로, 애덤 스미스가 이룬 학문적 성과는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이는 불가능하였을 것임에도 그의 학문에서는 그 존재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꼬집으며 재치있는 제목을 지었다. (원제보다도 번역한 제목이 흥미를 끌기에 좋은 것 같다)
저자는 저널리스트답게 쉽고 재미있는 문장으로 경제학과 페미니즘을 엮어나간다. 다만 뒤로 갈수록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듯 하고, 한 단락에 한 문장만 들어간 데가 많아 쓸데없이 양을 늘린 게 아닌가 싶다. 책 말미에 실린 각주에는 본문에 나온 정보의 출처나 약간의 추가 정보가 들어있는데, 특이하게도 본문에는 각주 표시가 없어서 다 읽고 나서야 그 존재를 알았다.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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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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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이라니. 그러면 ‘안‘은? 표지의 여자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시원한 푸름을 뒤로 하고 어두운 어딘가로.
<풍경의 쓸모>라는 단편에 그 실마리가 있다. 손 안의 작은 겨울, 스노우볼. 싱싱한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깊고 추운 겨울을 품은 모습은 얼마나 쓸쓸한 풍경인가.
김애란은 이 소설집 전체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엮어가는 삶을 담담히 조명하고 있다. 훌륭한 리뷰가 워낙 많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특히 마음에 남은 두 작품만 언급하고 싶다.
<노찬성과 에반>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소년 찬성은 어느날 휴게소에 버려진 늙은 개를 데려다가 에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키우기 시작한다. 스마트폰을 살 돈이 없어 같은 반 친구들의 스마트한 세계로부터 소외된 찬성은 에반과의 감정적 교류를 통해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에반은 병들고, 찬성은 수술과 안락사 중 안락사를 택한다. 찬성의 아버지는 트럭사고로 죽었지만 고의사고-자살-라고 판단되어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았고, 함께 사는 할머니는 늘 습관처럼 ˝어서 죽어야지˝ 하므로 찬성에게 죽음이란 이세상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찬성은 에반의 안락사를 위한 비용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러나 처음 손에 쥐어본 큰 돈은 스마트한 세계로의 편입이라는 강렬한 유혹이 되어 찬성을 뒤흔든다. 찬성이 유혹에 넘어가 스마트폰을 개통한 후, 폰을 들여다보느라 곁에 있는 에반을 돌보지 않는 장면은 너무나 씁쓸하다. 소외된 개체가 다시 다른 소외된 개체를 소외시키는 이중의 소외. 주류세계로부터 소외된 자는 다른 소외된 자와의 교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에반은 또한번 버려진 셈이다.
동남아에서 온 남자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 재이를 이혼 후 홀로 키우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가리는 손>에서도 같은 구조가 나타난다. 재이는 심한 따돌림 따위를 당하지는 않지만 은근한 소외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재이는 어느날 동네 청소년들과 파지 줍는 할아버지 사이에 일어난 다툼과 그 결과 할아버지의 죽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그 모습이 찍힌 cctv가 공개되어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된다. cctv 속 재이는 다툼을 지켜보던 도중 손으로 입을 가린다. 충격을 받았구나, 엄마는 생각한다. 그러나 가해자인 청소년들이 할아버지에게 던진 틀딱-노인 비하 호칭이라고 한다. 처음 알았다..-이라는 말을 언급하면서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아들을 보았을 때.. cctv에 찍힌 아들의 손 뒤에 가려진 얼굴에 충격이 아닌 비웃음이 서려 있을지 모른다는 가슴 아픈 가정에 도달한다.
소외된 자가 다시 다른 소외된 자를 소외시키는 이중의 소외. 그건 주류가 비주류를, 다수가 소수를 소외시키는 것보다도 더, 얼마나 처절하게 쓸쓸한 풍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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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19 1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어른들의 언행을 보면서 따라합니다. 기성 세대를 비하하는 시선은 다음 세대에게도 이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기성세대를 비하하는 지금 세대는 자신들도 늙는다는 사실을 몰라요. 비하당하는 입장이 되면 괴롭습니다.

독서괭 2017-08-19 19:32   좋아요 0 | URL
젊음은 아름답지만 누구나 거쳐가는 것이므로 과시할 것은 아닌데 말이죠. 맘 충이니 한남충이니 김치녀니 이런 비하언어들이 난무하는 현실이 슬픕니다.
 
확신의 함정 - 금태섭 변호사의 딜레마에 빠진 법과 정의 이야기
금태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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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다. 법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여러 가지 쟁점들을 문학작품 속의 이야기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논한다.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히기는 하지만, 독자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넘어서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책 끝부분에 본문에서 언급한 문학작품들의 목록을 실어둔 것도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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