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Now You See Me 2 (나우 유 씨 미) (한글무자막)(Blu-ray+DVD)
LIONSGATE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가 너무 길다. 전편에 비해 지루함. 중반부쯤 호스맨이 칩을 훔치기 위해 서로에게 칩이 부착된 카드를 날려보내며 숨기는 장면은 볼 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선 분명히 하자. 이 책에서 개연성과 현실성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이야기 구성을 찾고자 한다면, 실망할 것이 틀림 없다. 차라리 세 편의 그림을 감상한다고 마음 먹는 편이 낫겠다. '채식주의자'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고기를 씹어먹는 영혜의 모습을, '몽고반점'에서는 온몸에 강렬한 색채의 꽃을 그린 채 교합하는 남녀의 모습을, '나무 불꽃'에서는 비 내리는 숲 속에 우두커니 한 그루 나무처럼 선 영혜의 모습을. '채식주의자'라는 제목에서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윤리의 문제는 이 책에서 실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어떤 강렬한 이미지로부터 예고 없이 습격 받았을 때, 당신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영혜- 인혜의 남편(영혜의 형부) - 인혜로 이어지는 세 편의 연작은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세 가지 대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영혜는 그 이미지에 온몸을 던져 대항하면서 그야말로 끝까지 가는 사람이고, 인혜의 남편은 그 이미지에 열정을 바쳐 빠져드는 사람이며, 인혜는 그 이미지를 회피한 채 현실을 붙잡고 간신히 버텨내는 사람이다. 그것은 이미지와 실재의 대립이고, 무의식과 의식의 대립이다.

 

  다시 개연성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로 주되게 거론되는 것은 꿈인데 대략 이런 내용이다. '혼자서 숲 속을 헤매다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고기가 매달린 헛간 속에서 그 고깃덩이들을 씹어먹었고, 어찌어찌 헛간을 빠져나와 찬란하게 밝은 봄의 숲에서 사람들이 평화롭게 소풍 중인 모습을 보았는데,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너무나 무서웠고, 온몸에 피가 묻은 채 헛간에서 보았던 날고기를 씹어먹던 자신의 얼굴이 낯선 듯 익숙한 듯 지독히 생생하게 떠올랐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어릴 때 영혜를 물었던 개가 오토바이에 묶여 끌려다닌 끝에 도살당하여 밥상에 오르는데, 그 고기를 아무렇지 않게 씹어먹었던 과거의 기억 역시 하나의 이유인 것처럼 등장한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로부터 영혜가 죄책감으로 인해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라고 해석한다면 뭐야 이게, 하고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영혜가 채식을 하게 된 것- 아니, 고기를 거부하게 된 것이라는 게 더 맞겠다 -은 동물에 대한 연민 같은 윤리적 감정과는 전혀 무관하다. 오히려 그녀가 거부한 것은 그녀 안에 숨어 있는 야수적 폭력성이다. 어린 시절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로부터 학습되고 증폭되어 내면에 조용히 도사리고 있던 폭력성(개가 도살당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후 그 고기까지 먹었다는 과거의 일화는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영혜의 폭력성을 추측케한다)은 꿈에 의해 발현된다. 꿈을 꾸기 전날, 영혜는 아침식사를 재촉하는 남편을 위해 언 고기를 썰다가 손가락을 베는데, 날이 부서진 식칼 조각이 불고기에 섞여 들어간 것을 씹을 뻔한 남편이 화를 내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때 영혜는 남편을 향한 폭력의 욕구, 또는 살의를 느낀 것은 아닐까. 꿈 속에서 피로 범벅 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본 후, 영혜는 단호하게 그 욕구를 거부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 고기를 거부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 그러니 영혜의 채식은, 인간의 내밀한 폭력성에 대항하는 아름답고도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에 비해 '몽고반점'에서 영혜의 형부이자 인혜의 남편(이름은 안 나오는 것 같다)은 몽고반점이라는 이미지에서 촉발된 예술에 대한 욕구와 영혜에 대한 성욕을 동시에 실현시키고자 뛰어든다. 인혜의 동생으로 처음 소개받았을 때 영혜를 보면 느꼈던 호감(인혜에게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어떤 부분들을 채워주는 특징들)- 의식적으로는 호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느꼈을 욕구, 다만 도덕성에 의해 숨겨졌던 - 이 몽고반점을 계기로 일깨워지자, 그는 인혜와 딸에 대한 죄책감, 윤리적 방어선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결국 그 이미지에 굴복한다. 그 대가로 그는 가정에서 쫓겨나 딸과도 만나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

 

 채식을 고집하다가 아예 섭식을 거부하는 데까지 나아가 정신병원에서 피를 토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영혜와 비교할 때, 양 극단의 선택을 한 두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불행할까?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모두 지켜보아야만 했던 인혜는, 언뜻 보기에는 완전한 피해자로서 연민의 대상이다. 하지만 정말로 인혜는 두 명의 정신이상자에 의해 삶이 망가진 피해자일 뿐일까?

 인혜의 성격적, 행동적 특징은 '회피'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맞지 않기 위해 자처하여 아버지에게 술국을 끓여 줌으로써 폭력을 회피한다. 그녀는 삶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그다지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고 할 수 없는 남자와 결혼하여 홀로 사는 삶의 어려움을 회피한다. 심지어 동생과 남편 사이에 벌어진 충격적인 일을 목도하고도 식탁에 엎드려 버리고, 정신병원에 신고하여 두 사람을 보내버리는 방법으로 사건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것을 회피한다. 그녀는 영혜를 이해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임에도 이해의 노력을 회피하고, 영혜가 숲에 서 있는 꿈, 자신이 눈에서 피를 흘리는 꿈을 반복하여 꾸면서도 그 이미지에 저항하거나 뛰어드는 것을 회피한다. 마지막까지 구급차에 실려가는 영혜의 귀에 대고 '이건 말이야. ...어쩌면 꿈인지 몰라.'라고 속삭이면서 끔찍한 현실을 꿈으로 치부하는 방법으로 회피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그녀가 감당해야 하는 이 모든 난장판은, 과거에 저질렀던 모든 회피가 마치 징벌처럼 덮쳐 와 벌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그럼에도 인혜를 비난할 수 없는 것은, 인혜의 방식이 우리 대부분이 삶을 지속하기 위해 택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가진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오랜만에 읽어본 유형의 소설이다. 정말 좋아, 하는 작품이 될 수는 없겠지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소설을 쓰는 사람이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책을 썼었다니(<소년이 온다>), 어떤 글을 썼을지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꾸는 책들의 미로
발터 뫼어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흠뻑 빠져들어 읽었던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후속편! 역시나 눈앞에 그려지는 듯 생생한 묘사가 훌륭하지만, 전작만큼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미텐메츠가 200년만에 다시 찾은 부흐하임의 달라진 모습과 인형중심주의라는 새로운 풍조를 설명하는 데 대부분을 할애하고, 드디어 모험이 시작되려는 순간에 끝내버리는 발터뫼어스.. 한국드라마 작가에게 배운건가 ㅠㅠ 다음 편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지만 무척 기대된다. 이번 책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건 책와인. 한모금만 마셔봤으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농가 1가구당 대개 5에이커 정도의 경작지를 가지고 있는데 여유가 있는 가구는 10에이커 정도를 경작하기도 한다. 적정한 경작지 면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일할 수 있는 가족의 수이다. 대략 한 사람당 1에이커 정도가 그 적정 면적인데 이곳 농부들에게 그 이상의 땅은 소용이 없다. 기본적으로 이곳 사람들은 경작하지 못하는 농지를 소유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 53쪽

이 지역에 있는 모든 마을의 입구에 있는 `초르텐(Chorten)`이라 불리는 이 석탑은 체스판의 `폰`처럼 생겼는데 마치 거대한 산이 땅에서 우뚝 솟아 올라온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보통 석회석과 진흙을 섞어 만든다는 이 석탑은 20피트 정도의 높이인데 윗부분으로 갈수록 좁아져 끝이 뾰족한 첨탑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이 석탁의 모양은 불교 교리의 기본을 상장한다고 하는데 탑 윗부분의 태양을 안고 있는 초승달은 생명의 단일성, 이원성의 종식, 다시 말해 세상의 모든 생명은 결국 하나라는 의미라고 한다. 완전히 다른 것으로 여겨지는 해와 달이 그렇게 연결되어 있듯 세상 모든 것이 바로 그렇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 61, 62쪽

인간들이 도울 수 없는 곳에서
신들이 우리를 돕게 하소서. - 70쪽

나는 라다크 사람들이 어떻게 그토록 까다로운 환경 속에서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검약`이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서구에서 이 `검약`이라는 말은 대개 자물쇠가 채워진 음식 창고를 지키는 나이 든 아주머니를 연상시키지만, 이곳 라다크에서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른다. 그것은 풍요의 기본이 된다. 한정된 자원을 조심스럽게 아껴쓴다는 것은 인색함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아주 적은 것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것. 바로 그것이 `검약`의 본래 의미라 할 수 있다. - 74, 75쪽

시간을 재는 경우에도 느슨하고 여유롭게 잰다. 1분 단위로 시간을 측정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내일 낮에 찾아올게" 혹은 "저녁쯤 찾아올게"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라다크 사람들은 그렇게 시간에 대해 넉넉한 여유를 남겨 놓는 것이다.
라다크 사람들의 언어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표현들이 많이 있다. `공그로트(gongrot)`는 `어두워진 다음부터 잠잘 시간까지`라는 뜻이고 `나이체(nyitse)`는 `해가 산꼭대기에 걸려 있는 한낮`을 말한다. 또 `새의 노래`라는 뜻의 `치페치릿(chipe-chirrit)`은 해가 뜨기 전 새들이 지저귀는 이른 아침을 뜻한다. 이 모두가 넉넉하고 친숙한 느낌을 주는 표현들이다. - 93쪽

전통적인 라다크 사회에는 사람들이 갈등을 피해갈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장치로 이른바 `자발적 중재자`라는 것이 있다. 양자 사이에 어떤 형태로든 의견 차이가 생기면 제3자가 거기서 조정 역할을 한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그리고 어떤 사람이 관련되어 있든 그에 맞는 중재자는 항상 그곳에 나타나는 것 같다. 그런 일은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그 중재자라는 것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찾는 대상은 아니다. 상황이 일어나는 곳에 있는 어느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중재자이다. 누나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일 수도 있다. 나는 심지어 다섯 살 정도 된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도 그런 중재자가 나타나 언쟁을 하던 다른 아이들 사이를 조정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다투던 두 아이는 기꺼이 중재하는 아이의 말을 들었다. 갈등보다는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제3자의 중재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 113쪽

라다크의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무한정의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 그런 것이 서양 사람들에게는 어린아이를 `버리는 것`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겠지만 실제 라다크의 아이들은 다섯 살 정도만 되어도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의식을 배운다. 이들은 어느 정도 힘만 있어도 자기보다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보살핀다. 이들은 결코 자기의 또래집단끼리 떨어져서 생활하는 일이 없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갓난아이에서부터 증조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생활한다. 다시 말해 라다크의 아이들은 사람들 사이의 주고받는 관계의 사슬 속에서 자신이 그 한 부분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성장하는 것이다. - 145쪽

라다크에 처음 왔을 때 나에게 제일 강한 인상을 남긴 것 가운데 하나는 여성들의 얼굴에 피어 있는 환한 미소였다. 라다크의 여성들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남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농담을 주고받을 때도 거리낌 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어린 소녀들은 때로 수줍음을 보이기도 했지만 성숙한 여인들에게는 자신감과 개성, 위엄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보다 먼저 라다크에 와 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도 이곳 여성들의 강력한 파워와 확고한 지위에 대한 이야기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 근본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균형은 불교 교리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어느 승려의 말을 인용하자면 한 마리의 새가 날기 위해선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처럼 지혜와 자비심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성은 지혜의 상징이고 남성은 자비심의 상징이다. 그 둘이 함께함으로써 불교의 근본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 149 내지 151쪽

"(...) 중요한 건 그 사람 내면이 어떤가 하는 거예요. 외모보다 성격이 더 중요하지요. 라다크에는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지만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라는 말이 있어요." - 153쪽

불교 교리의 핵심을 이루는 것 중 하나는 이른바 `공(空)`의 철학이다. 처음 그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해를 거듭하며 타스 라브기아스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
"(...) 어떤 대상 하나를 예로 들어보지요. 이를테면 마루를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당신은 나무를 다른 사물과 구분하고, 정의를 내림으로써 나무의 본질에 다가서려고 합니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그 나무는 독립된 실체가 아닌 것이 됩니다. 대신 그것은 관계의 사슬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것이지요. 나뭇잎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나 그것을 흩날리게 만드는 바람 그리고 그것을 지지해 주고 있는 토양 등 그 모든 것이 나무를 구성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궁극적으로 우주 만물이 바로 나무라는 존재의 실체를 구성하고 있는 본질인 것입니다. 각각의 존재는 절대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그 본질은 결코 같은 상태로 머물지 않고 매순간 변화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공`의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각각의 사물은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요." - 155 내지 157쪽

만일 라다크 사람에게 `레에 가고 싶으세요? 아니면 그냥 마을에 머물고 싶으세요?`라고 물으면 그는 분명 `레에 가면 좋을 것 같네요. 그런데 안 가더라도 좋을 거예요.`라는 식으로 대답할 것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일상의 음식보다 잔치를 더 좋아하고, 불편함보다는 편안함을, 아픈 것보다는 건강한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보여주는 기쁨의 모습과 마음의 평화는 적어도 외부 환경에 의해 좌우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특성들은 그들 내부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만족이라는 것은 자신이 삶의 흐름에 있어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이해하면서 그것과 함께 여유롭게 흘러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긴 여행을 떠나려는 순간 비가 쏟아진다 해도 굳이 참담한 느낌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당신이 그런 것을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라다크 사람들은 그런 경우 `굳이 불행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지요`라는 반응을 보이리라는 것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 178,17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청난 흡입력, 훌륭한 번역. 그런데 너무 무섭다... 여자라면, 특히 두번째 작품은 각오하고 볼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