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파커는 초인적 힘을 얻은 이후에도 히어로로서의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도망가는 도둑을 목격하고도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며 못본척 지나친다하지만 이후 누군가에게 삼촌이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고살인범이 다름아닌 자신이 예전에 못본척 지나친 도둑과 동일인물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는다이는 피터가 '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사실을 깨닫고 스파이더맨으로 각성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힘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이는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너무나 유명한 말이다하지만 유명한만큼 호불호가 갈리고 패러디와 안티테제가많은 말이기도 하다일단 마블의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데드풀은 이를 ‘ 힘에는  무책임이 따른다.‘ 패러디하고 있고리전은 힘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기는커녕 자신의 힘을 싫어하고 괴로워한다자신이 보유한 거대한 힘으로 인해 자유의지를 박탈당하고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리전은  격언의 안티테제격인 캐릭터라고   있다한편DC 닥터 맨하탄은 자신이 가진 강대한  때문에 오히려 인간사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초능력자는어떻게 해야 ‘‘ 살아갈  있을까?


남산 작가의 <갤럭시 S20 울트라 -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에는 사소한 초능력 덕분에 모든 것을 잃게  주인공 한여름이 등장한다초능력자라 하기에도 애매한 지극히 사소한 초능력을 보유하게  것도 그렇지만그러한 사소한 초능력으로 인해 그동안 쌓아왔던  자체가 허물어진 것이다하지만  사소한 초능력으로 우연히 초능력자 빌런들을 상대하게 되면서 한여름은 소시민적인 히어로로서의 자신을 조금씩 자각하게 된다.


어째서 은서는 남한테 피해 끼치는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초능력을 사용했을까? 초능력자는히어로는 힘을손에 넣은 인간은 모두 이렇게 비뚫어질 수밖에 없는 걸까?


우연히 생긴 사소한 초능력이 오히려 히어로로서의 존재 의의를 깨닫는데 도움을  것일까? 그렇게 한여름은 ‘저주라고 생각했던 사소한 초능력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소설의 제목 그대로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의 ‘오리진이다한여름도 능력이 강화되면 히어로로서의 책임을 절감하는 순간이 올까? 앞으로가  기대되는 친근하고 인간적인 히어로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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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밸런스 게임 (VS 놀이) 이란 게임의 상대방에게 선택해야 하는 양자택일 (兩者擇一) 형식의 질문을 던지고 두가지 선택지 중 반드시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놀이를 의미한다. 예를들면,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콜라냐 사이다냐, 탕수육을 먹을 때 부먹이냐 (소스를 부어서 먹는 것), 찍먹이냐 (소스를 찍어서 먹는 것) 등의 질문을 하고, 상대방에게 이에 대한 질문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진행되는 밸런스 게임의 묘미는 바로 상대방에게 반드시 하나만 선택하기 어려운 난감한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난처해 하는 반응을 살펴보는데에 있다. , 질문의 밸런스가 잘 맞춰져 있어 게임의 참가자가 두 선택지 중 어느 한쪽을 선뜻 고르기 어려울수록 잘 짜여진 밸런스 게임의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Clouidy 작가의 <VS 놀이>는 밸런스 게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다.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밸런스 게임의 질문은 이것이다.

 


“오늘의 주제는… ‘오줌 마려운데 화장실 가기 vs 그냥 침대에 싸기’입니다.”



“이건… 토론할 가치가 없을 것 같은데요.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요?”

 


토론 참가자 D의 말처럼 이는 일반인을 기준으로 하면 말도 안되는 밸붕 (밸런스 붕괴)에 해당되는 질문이다. 애초부터 밸런스가 무너져 있을 뿐만 아니라 토론의 가치 측면에서도 의미를 찾기 어려운 질문이다. 밸런스 게임으로서 묘미를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조금이나마 있었던 흥미와 기대 마저도 차갑게 식혀버리는 질문이다. 하지만 해당 토론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상황과 조건을 제한하면서 질문의 밸런스를 맞추려는 시도를 한다.

 


“글쎄요… 침대에 쌀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던지, 화장실 갈 시간 조차 아까운 수험생이라면 해당 질문이 밸런스 게임의 질문으로 유효할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밸런스가 깨져 있어 흥미가 반감되었을 뿐만 아니라 밸런스를 맞추려 애쓰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모를 질문을 어떻게든 살려가며 토론을 하는 모습이 다소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밸런스 게임의 묘미를 살리는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고민을 하며 극을 전개해나가는 과정을 다듬는다면 더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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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다 완벽해. 인간이 예전부터 갈망한 곳이야. 우리 셋도 이곳에서 만나고 친구가 되었잖아. 그런데...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곳은 진짜가 아니고 모두 가쟈야. 저 푸른 하늘., 이 분수대, 지금 이 거리들, 이 모든게 다 가짜인데 진짜인 듯 우린 착각하고 있어. 그리고 그렇게 믿고 싶은 거고. (...) 이곳이 ‘진짜’라고 믿어버리는 사람들까지 있어. 진짜 세계에 있는 내 자신과 마주치기가 싫고 두려울 뿐이야.”



“그냥 AI 가상세계에 사로잡혀 사는 게 훨씬 행복할텐데 왜 깨어나려고 하는 건지. 현이씨가 사람들을 더 불행하게 만들어요.”



본다펠리스 작가의 <애프트>를 보면서 “무지로부터 비롯되는 행복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SF에서 흔히 묘사되고 있는 시스템으로 인간의 감각을 왜곡시키고 공간을 조작하여 가상화된 허구의 삶을 현실의 삶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 하지만 진실이 왜곡된 삶이 진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불공정과 부조리에 관한 진실을 감추고, 문제 자체를 해결해야할 대상에서 배제시키는 시각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왜곡하고 축소시키는 것 아닐까? 모조사회는 개인을 현혹시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만들지만 그 실상은 사회로부터 착취당하는 거짓된 모조 (模造)의 삶일 뿐이다. 거짓이란 한번 만들어지면 반드시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고, 결국 그것이 진실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 아닐까?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유토피아를 꿈꿀 수 밖에 없다. 인간은 현재의 삶을 딛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서 바람직한 사회나 미래에 달성해야 할 모델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토피아니즘은 기본적으로 희망의 철학이다. 하지만 사회구성원 모두가 동의하는 유토피아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유토피아는 절망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이 주장하는 유토피아를 사회가 추구해야할 유일한 대안으로 강조할 때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로 변질될 수 있다. 누군가 바람직한 미래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그것을 거부하는 타인에게 강요할 때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유토피아는 유토피아를 강요하는 행위와 양립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유토피아는 단순한 공상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꿈을 간직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것은 더 깊은 절망으로 이끄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희망하고, 실패하는 반복되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희망을 꿈꿀 수 있다. 현실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대안으로 유토피아가 제시되고 디스토피아로 변질된 유토피아를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유토피아를 추구하면서 인류는 발전해왔다. 앞으로도 거듭되는 실패를 감내하는 과정을 거치며 인류는 진보해나갈 것이다. 이상향은 혼자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타인에게 강요하면서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희생하면서 또, 자발적으로 희생할 용의가 있는 이들이 모여 거대한 결속을 이루면서 이들이 함께 꾸는 꿈은 유토피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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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SF소설이 그리는 미래는 현시대와는 동떨어진 어쩌면 향후에 도달할지 모를 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SF가 그리는 미래의 어느 시점은 그 아득한 시간의 간극이 걷어내고 보면 또 다른 우리들의 모습이 숨겨져 있다. 언젠가 우리는 현재와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한 누군가와, 또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누군가와 공존하면서 전혀 다른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의 흔적을 걷어내고 바라보면 저마다가 직면한세상에 맞서 살아가는 똑같은 인간만이 남는 것이다. 환경이 달라지더라도 누군가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나가는 삶의 원형은 현재의 삶이나 미래의 삶이나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윈터가든 작가의 <우리 집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를 보면서 저마다 개별적 삶을 살면서도 타인과 또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시대를 이루고, 그것이 되풀이되고 순환되는 과정을 거쳐 역사를 구성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동시대를 같이 호흡하면서도 온전히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한때에 머무르고, 또 누군가는 과거의 기억을 넘어 미래를 응시한다. 우리는 상실과 결핍, 몰이해라는 인간의 한계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계 속에서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한 조각의 진실과 삶의 의미를 구하려 애쓰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테드창의 단편 <거대한 침묵>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한 앵무새들은 인류에게 “잘 있어. 사랑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지만 무심한 인류는 이마저도 인지하지 못한채 지성을 가진 또 다른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해서 광대한 우주를 향해 고정되어 있는 거대한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에만 귀를 기울인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편견과집착에 사로잡혀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거나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윈터가든 작가의 <우리 집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또 미래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볼 것이 많은 엽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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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빙수 작가의 <유폐>는 어느 날 사랑하는 동생을 다른 차원으로 떠나 보낸 언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다루고 있다. <유폐>는 원고지 38매에 불과한 짧은 이야기지만 어린 시절의 철없는 장난에서 시작된 일이 동생을 지하의 암흑세계에 유폐당하게 만든 스토리가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이는 작가의 디테일한 자료 조사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큰 듯하다.



“이건 수신기 (搜神記)라고 하는 옛날 육조시대의 책인데, 여기 보면 수광후 (壽光侯)라는 이름이 있지? 이 분이 한나라 때 살았던 내 조상이야. (…) 수광후, 이분은 요괴와 귀신을 잘 다뤘다고 해. 힘 없이 당하고만 있는 게 아니라, 술법을 써서 그 못된 놈들이 힘도 쓰지 못하게 만들고 저 깊은 곳에 있는 지하에 가둬 두었단다.”



중국 진()나라의 역사가 간보(干寶)가 귀신, 영혼, 기현상 등의 초자연적 소재로 지은 소설집수신기 (搜神記)’와 수신기에서 귀신을 포박했다고 알려진 수광후에서 주요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형성하고, 동시에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복선을 까는 작가의 설정이 인상 깊었다.



의도와는 무관하게 어처구니 없는 형태로 동생을 다른 차원에 유폐시키고 남은 여생을 죄책감 속에서 괴로워할 <유폐>언니를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위치해 있는 공간은 3차원 이상으로 구현되어 있지만 우리가 미처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차원이란 것은 공간내의 특정 위치를 정하기 위해 필요한 수치의 개수라고 정의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직선 위의 점은 하나의 좌표 x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1차원이고, ‘평면상의 점은 그 위에 원점을 잡고 직교하는 2개의 좌표축을 정하면 1쌍의 좌표(x, y)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2차원이다. ‘현실 속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입체 공간은 기준이 되는 점으로부터 가로, 세로, 높이 세 가지 수치 (x, y, z)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3차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럼 4차원이란 무엇일까? 1차원의 선은 점이 이동한 것이고, 2차원의 면은 선이 이동한 자취이며, 3차원은 면이 이동한 흔적이라고 한다면 4차원은 3차원 공간이 움직인 흔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 4차원에는 시간이라는 축이 더 추가된다. 3차원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우리는시간이라는 네 번째 축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4차원 이상을 생각할 수 없다.



3차원에 살고 있는 우리는 2차원 세계의 타원이나 곡선으로 둘러싸인 불규칙한 도형 등을 보면서  휘어진 곡면은 3차원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3차원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가 하위 차원을 바라보면서 할 수 있는 문제제기이다. 예를 들어 1차원에만 머무는 존재는 자신이 있는 곳이 곡선인지 직선인지 알 수 없다. 오직 선을 따라 나아갈 수 있으며 앞이나 뒤를 보아도 점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차원 세계에 3차원의 공이 들어오면 단순히 2차원의 원으로 보인다. 3차원의 입체물체가 2차원 평면에서는 단순하게 삼각형, 사각형 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3차원에 4차원의 물체가 들어오면 3차원으로 보인다. 그래서 4차원 물체를 우리는 3차원으로만 인식할 수 있다.



“나는 유난히 우울한 날이나 절망감으로 기분이 극도로 침잠해질 때면 꿈이나 백일몽을 통해 더없이 이상한 광경을 보곤 한다. 사라지기 직전의 할머니가 이 현상을 예언하며, ‘사람의 기분이 가라앉으면 낮은 차원의 존재들과 감응하기 쉬워진다.’고 말했으니, 어쩌면 정말로 그러한 현상의 일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확실한 것은 모를 일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동생을 다른 차원으로 떠나보면 언니의 고백을 보면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유로 인해 동생을 떠나보냈듯이 기존의 '인계'에서와 같은 만남의 형태는 불가능하겠지만, 역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로 다시 언니와 동생이 만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길 기원해본다. 어쩌면 그것이 <유폐> 그 후의 이야기로 빚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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