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나 강의 다리 대산세계문학총서 39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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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작가가 그려낸 조국의 풍경.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책은 대작(大作)이다. 옛 투르크 제국의 이교도 전사 예니체리들의 징집에서부터 드리나강의 강물은 눈물과 뒤섞인다. 투르크 제국의 위인이 된 인물의 애향심 덕에 세워진 웅장한 다리는 건설에서부터 피와 땀과 눈물과 잔혹함의 혼합물이었다.

주인공은 드리나강의 다리다. 책은 다리를 중심으로 명멸해가는 제국들과 시대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도 지속되는 민중들의 삶을 그린다. 고난의 행렬이라 할만한 그 땅의 역사를 마치 어떤 드라마도 없다는 듯, 역사의 잔인함과 연속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나 담담하게 묘사하는 까닭에 책 읽는 동안 지루하고 허무했다. 그리고 다 읽고 나서는 마음이 무거워지고, 가슴 속에 무언가가 들어차는 기분. 대작이 주는 효과다. 보스니아 땅의 역사는 어쩌면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어려운 시대 고난의 시대를 살아오지도 않았는데, 드리나 강변 소도시 비셰그라드 사람들의 신산한 삶이 눈 앞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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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정병선 옮김 / 돌베개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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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먹거리 국면’이 곧 들이닥칠 거라는 사실도 모른 채 출장 도중 읽을 책 중 하나로 이걸 골라갔었다. 마이크 데이비스의 책은 국내에도 여럿 나와 있지만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재미난 주제를 잘 잡는 것 같다. AI란 것이 지금 유행하는 H5N1 바이러스형 뿐 아니라 여러 종류가 있고 또 역사도 오래됐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 H5N1형이 퍼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정리가 잘 돼있다.

출판사 쪽이 제법 머리가 좋은 모양이다. ‘조류독감’이라고만 하면 안 팔릴 것이라 생각했는지,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이라는 말을 제목에 덧붙였다. 하지만 원제는 ‘우리 문앞의 괴물: 조류독감의 지구적 위협’ 정도로만 돼있다. 한국어판 부제는 약간의 과대포장이라고 봐야 할듯. AI와 가금류 대량생산의 메커니즘이 곧바로 연결되는 것 같지는 않다. 너무 포괄적이고 비약적인 연결이랄까. 광우병과 대량생산의 연결고리와 달리, AI와 대량생산의 연결고리는 약하기 때문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식으로 친다면 ‘모든 질병은 세계화의 산물’이라는 극히 일반적인(그래서 별반 도움도 안 되는) 얘기가 되고 말 것 같다.

실제 본문에는 AI의 확산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그리 상세한 설명이 나와 있지 않다. 오히려 “미국은 AI 백신이 너무너무너무너무 부족하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라, 뒷부분 태반은 읽으나마나 했던 셈이 됐다. 그리고 AI의 위험성에 대해선 과장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싶다. AI로 지구상 10억 이상의 인구가 죽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 근거는 ‘외삽법으로 추산했을 때’라고만 되어있으니 이것은 숫자 장난이 되기 쉽다.

너무 드라마틱하게 쓰려고 애쓴 탓에 오히려 못 미더워 보인 구석이 있지만 어쨌든 재미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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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anga62 2008-07-16 0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 조류독감 발병 매커니즘을 면밀히 드러내지는 못했더라도
철새들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는 조류독감이 대량밀집 사육되어 면역력이 떨어지고,
유전자가 획일화된 축산가금류에서 발병확산되는 것은 맞는 것 아닌지요..

백신에 초점을 맞춘 것은 저도 좀 그렇습니다..

딸기 2008-07-16 20:56   좋아요 0 | URL
저도 동의합니다. ^^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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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국 출장 가기 전 FTA에 대해 뭐라도 좀 알고 가야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책꽂이를 뒤져 골라든 책이 이해영 교수 <낯선 식민지, 한미 FTA>와 이 책이었다. 국내에서 FTA 반대의 이론적 근거가 된 것이 아마도 쌍을 이루는 이 두 책이 아닐까 싶다. ‘낯선 식민지’의 경우 구국의 일념과도 같은 충심은 느껴지지만 좀 감정적인데다 ‘나라 망한다’로 일관된 주장이어서 다소 설득력이 더 떨어졌다. 우석훈씨 책은 조목조목 정리는 잘 돼 있는데, 독설도 좋지만 너무 비비꼬아서 ‘나라 망한다면서 말장난 하나’ 싶은 반감도 적잖이 들었다.

FTA로 나라가 망할지, 나라가 완존 도약을 해 선진국(참 이노무 선진국 주문은 수십년을 울궈먹어도 지치지들 않는지)이 될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는 있어야 하고, ‘최악의 경우’ 어떻게 될 것인지 비관적인 예측도 반드시 해보기는 해야한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 정부나 이메가 정부나 그놈이 그놈이란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지만...

암튼 이 책은 바로 그 ‘최악의 경우’에 대한 예측을 하고 있다. 이 분 말씀하는 대로 “꼭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는 생각 안 한다. 하지만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경고 정도로 생각하고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 이해영 교수 책은 협상의 세세한 항목들을 설명하면서 제도적 분석을 하고 있는데, 거기 비하면 이 책은 좀더 개괄적으로 협상이 추후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을 내다본다. 글로벌한 차원의 분석이 좀더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할까.

노동력의 ‘인적 이전’의 중요성을 얘기한 부분 등 잘 몰랐거나 생각해보지 못했던 내용들을 짚어주어, 재미도 있고 도움도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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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만원 이하 소득 가정은 이민 가라

한미 FTA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생각해 본다면, 최소한 4인 가족 기준으로 연소득 6000만원 이하의 국민들에게 한국 땅은 ‘지옥’이 된다.


▷EU 방식과 나프타 방식의 결정적 차이

EU 방식과 나프타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노동력의 국가간 이전을 포함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나”이다. EU와는 달리 ‘노동력의 국가간 이전’을 나프타에서는 제외하고 있다. 북미지역에서 진행된 경제통합은 상품과 자본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였지만,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까지 허용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이런 ‘작은 차이’가 두 가지 통합방식을 각각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게 만들었다. EU의 경우는 체코와 헝가리 등 구 동구권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한 논란거리가 되었고, 최근에는 터키와 같은 ‘변방의 유럽국가’를 받아들이면서 물질과 인력 사이에 조화를 만드는 것이 본질적인 논의사항이 된 것이다.

‘인적 이동의 자유’라는 요소를 순전히 조직 진화론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강한 국가가 약한 국가를 억누르는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시키고, 또 통합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약한 나라를 무력화시키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즉 미리 의도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로 작동하는 셈이다. 만약 동구 국가 시민들이 파리나 베를린으로 대거 이동해서 끊임없이 노동시장에 저가 노동력으로 공급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 통합의 경제적 사회적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는 점을 금방 상상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유럽 국가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라도 통합을 통해 사회가 붕괴되거나 기본 체제가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여러 가지 배려를 하고 지원책을 만들게 된다. ‘착취’ 혹은 ‘기생’이 아니라 ‘공생’ 관계로 경제협력을 전환시키는 장치가 바로 ‘노동력의 이동’이다.

▷차라리 ‘완전한 경제통합’이 낫다

그런데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협정에는 ‘인적 이동’을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경제적 이득만을 챙겨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다. 미국은 국경에 새로운 장벽을 치는 것, 혹은 군대를 투입시키는 것만으로 멕시코 경제의 붕괴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떠안지 않고 안전하게 이익만 챙길 수 있다.

노동력의 이전을 제외하는 ‘약한 수준의 통합’이라는 장치 하나가, 실제로 상품과 자본 관계에서는 충분한 이득을 취하면서도 노동력이라는 부담을 떠안지 않는, 쉽게 말해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는’ 비대칭적 관계를 형성한 셈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의 극히 일부에서 주장하는 바, ‘어설프게 FTA를 추진할 것이라면 차라리 미국의 52번째 주가 되는 협상을 추진하라’는 주장이 게임이론이라는 시각에서는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한미 FTA에 하나의 옵션, ‘노동자의 자유로운 취업을 보장’하는 장치를 집어넣는다면, 역설적이지만 지나치게 강력한 한미 FTA를 통해 한국 경제와 주권이 회북 불가능하게 붕괴되는 것을 제어하는 안전판이 될 수 있다.

▷APEC 망친 노무현

APEC은 개도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가들이 참여하는 아주 느슨한 공동체였다. 미국은 아시아라는 거대한 경제권역에 속한 국가들끼리 조기 개방에 관한 논의를 힘있게 진행해주길 기대했지만,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등이 ‘눈 시퍼렇게 뜨고’ 참여하는 상황이라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큰 돈은 아니지만 일본이 여러 분야에서 자금과 기술을 제공하고 역내 국가들이 상호 지원하는 ‘아주 즐거운 계모임’으로 APEC은 부드럽게 발전하고 있었다.

이 상호공동체를 다시 ‘차가운 세계화’의 반열로 돌려놓은 것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제주선언’이었다. 이 ‘역사에 남을 바보 같은 선언’ 이후로 APEC은 윈-윈 하는 협력체에서 살벌한 검투장으로 변질됐다.

▷무역협정을 다루는 한미 의회의 시스템 차이

원칙적으로 미국은 상원과 하원이라는 두 개의 국회가 동등한 권한을 보유한 채 별도로 작동한다. 이런 종류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주로 상원이다. 수많은 외교적 문제 뿐 아니라 협상과정에 참여하는 상원은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청문회 절차를 만들고 사전에 권고안을 채택하는 등, 국회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장치들을 다양하게 고안하면서 적절하게 개입하고 협상의 한 주체로 실질적으로 협상에 참여한다.

상원이 이렇게 국회의원 개개인이 스스로 헌법기관처럼 움직이는 한편 하원의원들은 연대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생산이 중요한 지역의 하원의원들 혹은 섬유업과 관련된 지역의 의원들이 연게해서 특정 주에 일정한 내부 입법을 해서 미리 대비하라는 권고안을 채택하는 등 협상과정에 간접적으로 참여한다.

시스템으로만 비교하면 한국 국회도 이런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통상문제에 대한 영웅적 활동의 전통이 약해서 그런지 한국 국회는 잘 움직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외교부의 폭주 과정에서 정부가 국회의 운신의 폭이 좁다는 점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게 실제로 정치문제로 직접 폭발한 경우는 2005년7월 쌀 협상에서의 이면계약에 관한 문제였다.

다른 종류의 이면 계약을 정부가 했는지 안 했는지 국회가 알 수가 없다면 ‘조인’ 절차와 관련된 입법부의 견제기능이라는 것은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말로 이런 일이 있다면 을사늑약 같은 일이 발생할 때 또 멍청히 당하게 된다.

정부가 국회를 속이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면 사실상 순순히 속아주는 것 외에 방법이 별로 없다. 청문회라는 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그걸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몇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국회 왕따 만들기

핵심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에서 국회가 ‘외부’에 해당하느냐라는 문제이다. ‘담당관’이라는 관점에서는 국회의원과 국회 사무국의 통외통위 담당관들은 모두 정부 직제절차에서 담당관에 해당한다. 외교부의 폭주는 원래 국회가 막도록 되어 있다. 이것이 국회 비준권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이다. 따라서 협상문도 공개하지 않는 상황은 군사행위로 비유하자면 친위쿠데타에 해당한다. 자국 국회에 “당신들은 외부”라면서 협상안을 감추는 나라가 대한민국 외에 또 존재할까.

더 이상한 것은 비공개의 이유가 ‘미국의 요구’라는 점이다. 미국은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각종 협회를 통해서 주요 업체로부터 체계적인 의견서를 받아들고 본협상에 임한다. 미국의 철강협회나 자동차협회, 심지어는 풍력발전협회와 이들과 협력관계에 있는 로펌의 변호사들이 실질적으로 한국의 협상초안을 집어삼킬 듯 꼼꼼히 살펴보았을 것이다. 심지어 한국에 있는 미국 기업들도 이미 보았을지도 모르는 한국의 초안의 기본 내용들을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안 보여주겠다는게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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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08-06-14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어와서 좋은 글...잘 읽고 갑니다...세상 돌아가는 것이..근심...근심...

딸기 2008-06-16 14:42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 - 세계화의 새로운 목표와 미완의 과제들
조지프 E. 스티글리츠 외 지음, 송철복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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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티글리츠의 책은 <세계화와 그 불만> 이후 두 번째로 읽는다. <세계화와 그 불만>은 국제통화기금(IMF)으로 대변되는 미국/서구 자본이 개도국들에 강요했던 불공정하고 왜곡된, 잔인하기까지 한 세계화 정책들을 조목조목 비판한 것이었다. 이어진 이 책은 그 후속편 격으로, IMF가 주창하는 방식의 세계화가 아닌 다른 방식의 자유무역정책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 것인지를 정리한 제언에 해당된다. 책은 시사 혹은 경제문제를 다룬 에세이라기보다는 논점들을 정리한 문건에 가깝기 때문에 반복이 심하고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 요는 자유무역이 빈국들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진정한 자유무역협정’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맺어져야 한다는 것.

▷ 도하 시장접근 제안

그 과제는 개발도상국들에게 그들의 개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융통성을 주고, 세계 무역체계에 대한 개발도상국들의 참여를 소외시키거나 남-남 자유화의 이득을 포기시키지 않고 조정 및 이행 비용을 최소화하는 특별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1. 세계무역기구 회원국들은 자신보다 가난하고 작은 모든 개발도상국에게 모든 상품에 대해 시장 자유접근을 제공한다

2. 선진국은 농업보조금을 철폐한다

3. 시장개방은 원산지 규정과 같은 기술적 조항에 의해 손상돼선 안 된다


▷투자유치라는 것의 맹점을 해결하기 위한 제안

개도국들 간 투자유치 경쟁의 주된 수혜자는 다국적기업이다. 종종 개별 국가는 국내 경제에서건 글로벌 체제의 일부분으로서건 경쟁에 상응하는 이득을 얻지 못한 채 오히려 재정손실을 겪곤 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1. 기업과 국가에 대한 투명성 제고: 뇌물방지 조항이 국제협정에 포함돼야 한다. 또 은행 비밀계좌는 국가가 도둑질한 돈의 도피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은행 비밀주의를 금지하는 국제협정이 있어야 한다. 이를 따르지 않는 국가의 은행, 그런 제재를 실행하지 않는 국가들에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선진국은 최빈국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무기판매를 금지시켜야 한다.

2. 반 내전정책과 친 환경정책: 블러드 다이아몬드 등 특정 광물거래와 마약거래 등의 사례. 또 환경보전 필요성과 관련,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20조에 따라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인간, 동물, 식물의 생명을 보호하거나 천연자원을 보호할 목적으로 세계무역기구 회원국들의 무역상 의무를 면제한다’.

3. 위기대응은 ‘근린궁핍화’에서 ‘근린지원’으로: 한 회원국이 위기에 빠지면 세계무역기구는 그 회원국을 지원하는 특별조치를 취할 것을 다른 회원국들에게 권고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가 위기를 맞았을 때 다른 나라들이 아르헨티나산 쇠고기나 포도주에 대해 특별접근을 허용했더라면 아르헨티나의 경기하락이 완화되고 경기회복이 빨라졌을 수도 있다. 국제무역협정을 이끌어낸 최초의 동기 가운데 하나는 대공황으로 인한 근린 궁핍화에 대한 공포였다. 위기사태를 맞아 국가들에게 보호주의 조처를 권고하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나라들에게 그들의 시장을 개방하라는 특별조처를 권고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에 규정된 서비스의 네가지 방식

1번 방식: 국경을 넘는 서비스 공급(예를 들면 외국 소프트웨어나 보험 이용)
2번 방식: 해외 소비
3번 방식: 상업적 주재

4번 방식: 개인들의 이동

4번 방식의 확대는 엄청난 복지이득을 창출할 수 있다. 미숙련 노동자들이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일시 이동하는 것은, 규모가 적을 때조차 세계 복지를 크게 늘릴 수 있다. 자연인의 이동은 1)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고도의 기능을 갖춘 기술자나 관리자들이 이동하는 것 2)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숙련인력 이동 3)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의 미숙련 인력 이동으로 나뉠 수 있다.

이들 이동 모두는 세계 복지에 엄청나게 기여한다. 실증적인 조사결과는 세계무역기구가 현재의 국가간 계급구조를 반영한 시장접근 방식을 벗어나 다른 우선순위를 매길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대안적인 시장접근 자유화 의제는 미숙련 노동자와 미숙련노동 서비스의 선진국 노동시장 접근, 개도국 수출 농산품의 선진국 시장 접근, 제조업 상품의 선진국 진입시 관세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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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진실 - 계급.인종.젠더를 관통하는 증오의 문화
데릭 젠슨 지음, 이현정 옮김 / 아고라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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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읽는 데에 좀 시간이 걸렸다. 날마다 초등 1학년 꼼꼼이 옆에 앉아 이 책을 보는데, 그림책 읽는 어린 딸과 모녀가 나란히 같이 앉아 독서를 하는 다정한 풍경엔 어울리지 않는 책이다. 가끔씩 꼼꼼이는 엄마가 무슨 책을 읽나 쳐다보면서 “거짓된 진실?”하고 제목을 읽어보는데, 책 내용은 표지에 적혀있는대로 ‘계급·인종·젠더를 관통하는 증오의 문화’를 다룬 것이니,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아이에게 쉽게 설명해줄만한 차원은 아니다.
워낙 엽기적인 스토리를 끔찍해하는 차에 ‘증오의 문화’를 파헤친 책이라 해서 내심 위축된 채로 책장을 펼쳤다. 첫머리부터 심상치는 않았다. 1918년 미국 조지아주 발도스타라는 곳에서 ‘감히 남편을 죽인 백인들을 상대로 복수를 선언했던 겁대가리 없는 흑인 임신부’가 어찌나 처참하게 집단린치로 고문을 당하고 살해됐던지, 세기가 바뀌어 2001년 남미의 콜롬비아 알토나야라는 곳에서 부활절 주말에 ‘암살대’라 불리던 사람들에게 마흔명 남성들과 여성들이 얼마나 끔찍하게 살해당했는지.


“이 책의 짜임새와 방향은 이들의 죽음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 죽음들의 관계를 꿰고 있는 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우리의 경제 체제와 증오의 관계는 정확히 무엇인가? 경제와 인종 간에 관계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관계인가? 우리 문화의 파괴적 행위를 깊이 파고들면 만나게 되는 여성에 대한 혐오는 또 어떤가? 어떤 형태의 잔학 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심지어 그것을 불러일으키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있는가? 이 책을 쓰면서 내가 탐구하고 싶었던 것은 인식에 관한 것이다. 또는 인식의 결핍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저자 서문)

출발점은 ‘증오’다. 사실 우리는 그것이 어떤 형태의 증오인지, 심지어는 증오인지 아닌지조차 알지 못한다. 홀로코스트에 동참했던 ‘학살기술자’ 혹은 ‘학살관료’들은 유대인 하나하나를 증오했던가?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프란체스코 피사로가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 아타왈파를 죽일 적에 그를 증오했던가? 혜진, 예슬이를 죽인 범죄자는 두 어린 소녀를 증오했었나? 혹은 효순, 미선양을 압살한 미군병사들은 한국의 소녀들을 증오했었나?

엄청난 내면의 증오를 갖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도저히 저지를 수 있을 성 싶지 않은 살상을 보면서 넘쳐나는 증오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단은 저 질문들에 답하기 이전에, 그것을 ‘증오’라 부르기로 하자. 그 엽기적인 살상, 특히 대규모로 혹은 빈번하게 저질러지는 그런 살상을 ‘증오범죄’라고 부르기로 하자. 인종차별, 흑인 린치, 강간, 홀로코스트, 인디언 학살,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지금 우리 사회, 우리 글로벌 시스템의 바탕이 된 근대의 형성 과정에서 증오범죄의 주요 가해자는 ‘서구 백인 남성’이었다. 저자는 증오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자기 자신도 포함되는 ‘서구 백인 남성집단’의 증오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입에 담기도 끔찍한 범죄들의 리스트를 훑어본 저자가 내린 결론은 현 세계 사회·경제체제를 특징짓는 범죄의 바탕에 깔린 증오감정이 결코 개인적인 현상이라든가 개인의 신체적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우리 사회체제의 일부이자 근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증오의 사회학, 증오범죄의 메커니즘이야말로 (서구에서 시작돼 이미 지구를 장악해버린) 우리 ‘문명’의 특징이라고 결론짓는다.


그 ‘문명’은 서구적 근대성과 일신교의 문명, 다양성을 말살시키고 끝없는 확장으로 지구를 정복해가는 문명, 불필요한 인간들(그리고 자연들)을 제거하는 생산 지상주의 문명이다. 이 문명에서 ‘생산’ ‘효율성’은 절대적인 명령이 되며 방해되는 것 혹은 불필요한 것들은 가차 없이 제거된다.

유대인들이 하나하나 이름과 얼굴을 가진 사람이 아닌 살덩이 지방덩어리로 분리됐듯, 그들을 죽인 이들이 그저 관료적 몸짓 하나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듯, 미군이 이라크 어린이들의 얼굴 따위를 떠올리는 대신 일련번호를 붙인 시설물들에 스위치 한 방으로 폭격을 가할 수 있었듯이, 우리 문명은 구체성을 죽이고 추상화시킴으로써 범죄를 범죄 아닌 것으로 만들고 학살 명령을 모든 이들에게 내면화시킨다.

그 희생자들은 감옥국가 미국의 곳곳에 들어선 교도소의 재소자들, 서부로의 확장 과정에서 절멸된 인디언, 흑인 노예들이다. ‘워블리’라 불렸던 지난 세기 초반의 좌파 노동자들, 유니언 카바이드사의 독극물 누출로 무참히 죽어간 인도 보팔의 노동자들, 지금도 노예노동에 내몰리는 제3세계의 빈민들도 그 희생자들이다. 문명은 희생자 없이는 지탱되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 자연까지 생산이라는 이름 하에 일렬종대로 늘어서도록 만들어 지구를 해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모든 사람들/자연은 모두 홀로코스트적 문명이라는 이 하나의 시스템에 의한 희생자들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생산이라는 명제는 결국 몇 안되는 부자들만을 위한 것인데도 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자동차회사, 화학제품 회사, 석유회사들이 내놓는 물건들 속엔 우리가 세금이나 공공의료비용으로 때워야 하는 ‘숨겨진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숨어있는데도 우리는 그저 속고만 산다. 어쩌면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지금은 제 나름의 아메리칸 드림에 취해 속고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 홀로코스트적 문명에 휩쓸려가는 수많은 필부필부들이 ‘허위 계약’에 속고 있는 것이라 주장한다.

우리의 진정한 출발점은 어디일까.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문명 바로보기’다. 거짓된 진실을 보는 것, ‘그들이 우리에게 믿도록 만들었던 허위계약의 진실들’을 보는 것.

책은 다소 끔찍하면서도, 지지부진 중언부언이 많고 가끔은 기행문에다가 에세이 스타일까지 섞여 있어 긴장감이 떨어졌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중언부언이 많다 싶기도 하고, 내용과 관련해서도 홀로코스트적 문명의 끔찍한 증오범죄들을 결론적으론 기후변화 쪽으로 유도해가는 것 같아서 다소 비약이 있다는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당신이 범죄라고 생각 않고 당연한 권리라 생각했던 것에 대해 누군가가 범죄라는 이름을 씌운다면, 당신은 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흑인을 목매달고 불태운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않겠는가."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지금 우리가 범죄라는 생각없이 저지르는 자연에 대한 홀로코스트 또한 범죄라고, 이를 부인하려는 우리의 마음 또한 흑인들을 린치한 사람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불편한 진실'이다.
증오범죄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범죄들의 메커니즘,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더 크고 더 조직적이고 더 경제적인 ‘문명이라는 이름의 범죄’를 직시하기 위해서라면 이 책은 훌륭한 출발점이 될 것 같다. 그 다음은? 그건 잘 모르겠다. 우리는 눈을 떠 문명의 범죄를 직시하고 이 문명을 거부해야 하는 것인지, 대안의 문명은 어떤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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