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보다 긴 하루 - 양장본
친기즈 아이뜨마또프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2월
평점 :
품절


외국으로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기회가 닿는다면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
그러나 많은 여건들이 발목을 붙들고 있는데.. 책 한권으로 중앙아시아의 사막지대.. 그리고 그 곳의 많은 전설들을 경험함으로써 책을 읽기시작하면서부터 다 읽기까지 긴 여행을 한 것 같다...
직접 여행을 하면 더 좋겠지만.. 집에서도 내가 느끼는 대로.. 상상력을 동원해 가면서 한 여행은 정말 소중했다...

책에서 나왔던 지역은 허상이였지만.. 분명 옛 소련의 잔재가 남아있었기에.. 옛 소련의 넓은 국토를 감을 잡지 못했고 다른 나라와 그 나라의 위치를 소련으로 포함시키기가 낯설었다..내가 훨씬 태어나기 전이였고.. 책으로 배웠다지만 러시아라는 강한 인식 때문에 옛 소련의 방대한 지리적,역사적,민족적 의식이 처음 책을 읽을때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곧 그런 복잡미묘한 것들은 잊어버렸고...
사막의 스텝지대에 있는 철로노무자인 그들의 삶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백년보다 긴 하루>는 오랜세월 철로노무자로 같이 일한 예지게이가 동료이자 그곳으로 인도한 까잔깝을 매장하기 위해 사막근처의 간이역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면서 과거로의 회상으로 인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해설에서 처럼 이런 마을문학은 분명 작은 시간과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얘기인데도 서사적으로 펼쳐지는 얘기는 우주보다 더 무한한 공간과.. 상상력.. 긴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특별한 얘기보단..(우리와 동떨어진 얘기... 그러나 보란리-부 란니 간이역에선 특별한 일이였다...) 이렇게 사람사는 얘기(사막의 스탭지대라서 분명 특별했음에도 불구하고....)가 더 마음에 와닿고... 친근하고 정감가고.. 마음 한 구석에 추억이 남는다...
어느 한구석도 지루한 곳이 없었다.. 책의 끝부분에서 까잔깝을 매장하러 가는 장소에 우주선 기지가 있어서 다른 곳에 묻게 되는데..
책의 첫머리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선이 발사되어서 그 우주비행사들이 다른 별을 찾게 되고 그 사실을 지구에 알리지만.. 지구에서는 경고문과 함께 그 우주비행사들을 추방해 버리고 지구를 방어하는 로켓을 쏘아올린다..
그 광경을 예지게이는 보게 되고.. 그 우주기지 때문에 까잔깝이 묻어 달라는 곳에 묻지 못한다..
책의 내용과 우주의 새로운 별에 관한 얘기가 그렇게 깊은 연관을 보여주지는 않은 것 같았다.. 작가는 그 우주 얘기를 은유적으로 이끌어 냈겠지만.. 예지게이나 나 나... 그런 먼나라 얘기는...순간 지구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더라고.. 동료의 매장에 방해가 되었을 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알고 싶지도 않고.. 알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충실한 삶을 살아왔던 예지게이기에...

그런 삶을 여행해서 너무나 좋았고.. 모든 상상력을 가능케.. 무한하게 펼쳐지게 만들어준 작가의 글 솜씨도 좋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온 듯..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은 듯...
아련한 추억이 마음에 남고.. 뿌듯함으로 힘이 솟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nowcat의 혼자놀기
권윤주 글,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로 된 책을 좋아하지 않는데 열린책들을 좋아하다 보니...
열린책들에서 나오는 만화로 된 책들도 좋아하게 되었다..
나도 스노우캣처럼 서점에 혼자놀러가서 이 책을 보고 왔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혼자놀기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몸에 배어버렸다..
혼자서 안해본게 거의 없다...
음식점에서 밥먹기,영화보기,비디오방,노래방,카페에서 혼자 차 마시기, 산책,콘서트,전시회,공연 혼자 보기(지역,시간,날짜 상관없이...),옷사기,여행 ...등등..
거의 혼자서 하다보니 취미도 많아졌다..
음반과 책 모으기, 편지쓰기,퍼즐,그림감상,십자수,학원다니기(태권도, 수영,피아노,영어학원....)등등..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어느새 나도 자질구레하게 하고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친구들을 만나도 거의 주말에 만나고 평일에는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원래 내가 살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살다보니..) 그래서 스스로 많이 터득하긴 했는데 어쩔때는 고립된 생활이 아닌가 할 정도로 너무 주관적을 띌때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무거움 보다는.. 스스로 잘 할 수 있다는..(놀기를...) 평이함과 조금은 독특한 생각에서 나온다.. 그 독특함이 남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집에 혼자 있는게 우울할때 이 책을 꺼내보면 쓸쓸하지 않는 것 같다..
혼자라는게 얼핏보면 외롭고 쓸쓸하고 허전해 보일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을 먼저 다스릴 줄 알아야 둘이 되었을때.. 셋이 되었을 때.. 여러 사람들의 가운데 있을 때에도 부딪힘이 적고.. 있는 그대로를 보아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놀기를 통해 자신을 한번 들여다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그 끝이 없는 깊은 세계에서 자신을 발견하길 바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롯 - 2007년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제목의 자극성에 홀린 기분이다. 또한 강렬한 붉은 표지와 수상작이라는 이력은 더더욱 나를 옹졸아 들게 만들었다.

분명, 카지노라는 몽롱한 열기와 옛 여자친구와의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묘함은 번잡하고 우울할거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시선을 두고 싶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따라가는 관심은 결국 나의 의지를 꺽지 못하고 내 나름대로 상상한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 발의 들여놓음이 카지노에 처음 가는 주인공처럼 흥분되는 것보다 또 다른 일상을 만날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기에 어리둥절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생각만큼 흩어져 버리는 것들이 아닌, 잔상으로 남아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10억을 카지노에서 써버리자고 이혼한 옛 여자친구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무작정 따라나선 주인공을 봤을 때 옛 여자친구(수진)은 분명 괴로움으로 삶을 낭비해 버리고 싶을 거라고(혹은 수중에 있는 돈을...) 생각했었다.

굳이 그 돈을 카지노에서 쓰겠다는 것은 잃을 걸 뻔히 알면서도 간다는 의미였기에 주인공에게 연락을 한 것은 이미 나의 의중은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였으리라.

그 의중이 단순히 이혼 후의 상실감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정확히 그 의중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정작 수진이 주인공을 데리고 카지노로 왔음에도 그들의 이야기보다 그들을 겉도는 이야기가 많았던 것은 헤어진 연인이라는데에 의미를 둘법하다.

이미 오래전에 끝난 사이고 다시 만났다 하더라도 깨진 접시가 새것이 될 수 없듯, 그들에게는 남녀의 감정이 이미 떠난 후이다.

추억이 있고 서로에 대한 느낌이 있지만 새로운 사랑, 만남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것은 마치 잃고도 한 탕을 위해 카지노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풍기는 분위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이임에도 주인공은 왜 수진을 따라온 것일까.

자신을 버리고 대학 선배와 결혼한 후 이혼을 했다는 수진의 연락이 설레임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수진의 요구에 거리낌 없이 따라온 것부터 주인공은 초지일관 우유부단 하며 결단력이 없고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에도 부족한 모습을 보여준다.

답답해 보이는 주인공,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주인공.

그러나 그 주인공에게 다른 여자는 쉽게 접근해 온다. 여자들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좀 모호하지만(7살의 명혜, 20대 초반의 윤미, 명혜의 엄마) 그녀들의 접근에는 무언가 주인공이 남달리 보였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카지노의 세계처럼 그 안에서 게임을 하며 그 세계를 들여다 보며 잠시 그곳을 벗어나기도 하는 만남이 있었지만 그 끌림은 내게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카지노의 세계를 깊이 파고 들었거나 끝나 버린 수진과의 관계에 대해 지지부진하게 끌고 갔더라면 분명 지루함을 느꼈을 테지만 적절히 흐름을 타고 방향을 바꿔가며 충동적인 욕구에 빠지지 않는 점은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의 이미지를 벗겨주어 안심이 되었다.

무작정 수진을 따라나선 주인공의 행동을 높이 살만한 것은 아니지만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하루종일 일을 해야 하는 것보다 어쩜 그러한 경험이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왔을 때 활력이 될지도 모르겠다(그 댓가는 좀 치뤄야 겠지만..).

분명 그가 간 곳은 카지노이고,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와는 다른 곳이고, 그 곳에서 느낀 인상은 유쾌할 수만은 없는 것이기에 그의 돌아감은 자연스러웠다.

수진이 주인공을 카지노에 데리고 온 의중이 전 남편앞에 모습 드러내기든, 게임을 하는 윤미의 모습이 상처로 인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든, 주인공과 수진이 했던 도박처럼 큰 의미로 자리 잡지 않는다.

그게 주인공에게 어울리는 처사이고 주인공의 스타일이지만 수진과의 헤어짐이 아쉬운 것도 아니고 윤미와의 재회가 기대되는 것도 아니기에 그에게 특별히 변화된 것은 없다.

확률을 믿고 카지노를 찾는 사람들에게 대박이 터지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인생은 때로 무상한 것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나라 요시토모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문득 그리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움은 모든 것이 변한 후에 찾아 온다는 말처럼 어쩜 우리가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이유가 변해버린 나를 아쉬워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변했든 상대방으로 인해서 변해버렸든 이유는 상관없이.

그래서 미쓰코 아빠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어쩜 그리워하기 위해서 아르헨티나 할머니(유리)에게 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부인의 죽음으로 상실감이 클터이지만 유리네 가서 살고 그 집 옥상에다 만다라를 만드는 것이라든지 부인이 좋아한 돌고래 비석을 만드는 모습은 자신을 변화 시켜서 부인을 그리워 하려는 것이 아니였을까.

그러나 유리의 집에 들어가 산다고 했을때까지 그 둘을 남녀의 관계로 보기 힘들었다.

미쓰코도 그렇고 동네 사람들도 그렇고 아르헨티나 할머니로 불리우는 유리는 그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였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자라서 탱고 스페인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유리가 사는 집부터도 소문이 무성했고 외모도 독특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미쓰코의 아빠가 갔다니 그리고 거기서 잘 지내고 있다니.

미쓰코는 엄마가 죽던 날 자리를 지키지 못한 아빠를 원망했지만 유리네 집에서 태연히 엄마가 좋아하는 돌고래로 비석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용서한다.

그리고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유리네 집에 들락거리기 시작한다.

미쓰코도 유리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아빠와 유리 사이에 사내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유리의 나이가 쉰살이라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 채.

그러나 6년뒤 출산 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유리는 죽고 거기서 아빠는 끝까지 남아 아들을 키운다. 이제껏 죽은 사람들을 위한 비석을 만드는 석공이였으니까 앞으로는 산 사람들을 위해 만들고 싶다라는 신념을 가진 채.

 

어떻게 보면 이 얇은 책에 굉장한 줄거리를 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유리와 아빠 사이의 일은 그다지 길게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가 그 이야기를 전할라치면 굉장히 말을 많이 하게 만든다. 묘하다.

그러나 더 묘한 것은 이 모든 것을 미쓰코는 받아 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동새의 존재를 감사히 생각하며.

이런 미쓰코를 의아하게 생각 하는 것은 유리가 미쓰코에게 말했던 엄마를 가슴 속에서 죽게 하지 말라는 말을 나는 못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정서의 차이지만 그런 면에서 일본은 우리네 사고보다 좀 더 자유분방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긍정적인 사고일 수도 있고 환경이 그렇게 만들 수도 있고 미쓰코와 유리만의 교류로 인해 그들의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감추어져 있는 것들이 많다. 미쓰코 엄마에 대한 죽음, 추억 그리고 유리에 대한 것들, 아빠와의 관계 등에 구차한 설명을 붙이지 않는다.

마치 유리네 빌딩의 오래되고 케케묵은 가구와 먼지와 공기처럼 그냥 그렇게 늘 존재했던 것처럼 군다. 상처가 될만한 것들을 드러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한바탕 꿈을 꾸는 느낌이였다. 이 모든 이야기는.

 

그러면서 어쩜 바나나의 책이니까, 나라의 삽화가 들어 있으니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명성이 있으니 나의 느낌도 어느정도 부응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별 느낌이 없는대도 의미를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였을까.

당당히 이게 뭐야! 라고 외치지 못하고 바나나와 나라라는 유명세 앞에 나는 기가 죽었는지도 모른다.

한바탕 에피소드로 끝날 분위기임에도 그들 덕분에 부각 되어지는 것들에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잠시 혼란스럽다.

그러나 아쉬웠다고 말하고 싶다. 독자와 책과 저자와의 공감대 형성이 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나는 나고, 그들은 그들이고, 작가는 작가이고 그 낯섬이 조금은 생경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먼저 책 겉표지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보고 싶다. 겉표지로 인한 책의 판단이 완전히 빗나간 나의 사례가 뻘쭘하기도 하고 조금은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이다.

나는 이 책 제목과 겉표지만 보고 인생에 대한 에세이나 수필 뭐 이런걸로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마 '무덤'이 주는 뉘앙스 때문이였을 것이다.

삶의 마감을 드러내는 무덤. 그것도 나의 무덤이니 무언가를 아쉬워하며 독자들에게 깨달음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책의 겉표지는 이런 생각을 이끌듯이 조금은 딱딱해 보였고 어떠한 문구도 없다.

처음 보여지는 이미지가 이러하기에 책의 장르를 전혀 유추하지 못했다. 그래서 막상 책을 맞이했을 때에 흥미로운 전개와 청소년이라는 내 관심 분야의 소설이라서 속은 기분도 들고(나 혼자서 속고 속이고...) 아쉬운 기분도 들고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읽어 나갔지만 역시 이런 나의 마음을 보상이라도 하듯 잡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 버리는 흡인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2%의 아쉬움을 남긴채 로빈슨과 배리의 이별을 인정해야 했다.

 

처음 이 책이 시선을 끌었던 것은 독특한 구성이였다.

자신이 글을 써가면서 수시로 수정을 하며 다른 각도에서 같은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도 하고 또 이야기와 상관없는 사건 보고서가 중간 중간 드러나기도 한다. 그 사건 보고서가 결국에는 이 책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 사실을 알아서인지 마지막에 가서는 조금 맥이 빠졌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배리의 죽음 때문이거나 그들의 다툼 때문이거나 조금은 방식이 다른 사랑 때문이거나.

무언가 후련하지 않은 껄끄러움이 남아 버렸다. 아니면 동성애에 대한 보수적인 나의 성향 때문이였을까. 아마 그것 보다는 로빈슨의 행동, 마음상태 그리고 그 둘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정곡을 찌르며 정리해 주었던 카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모호함을 즐길 겨를 없이 카리로 인해 정의되어 버린 느낌. 그 느낌이 김빠진 콜라마냥 끝을 향해 갈수록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한 여름 태양의 열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환희, 늦여름의 나른함처럼 보기 싫은 여름 그 자체. 사춘기 청소년들의 세계는 그렇게 전위되어가고 그들을 따라가기엔 나의 뒤쫓음이 너무 느리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정지해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식어가는 청춘이기에.

 

실제 책의 배경이 되는 계절도 여름이였기에 나의 변덕이 더 자주 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배리와 핼(로빈슨의 애칭-로빈슨은 싫어 했지만)의 만남이 이루어진 곳은 바다 한가운데였고 그들이 함께 한 시간은 7주. 그리고 핼과 다툰 후 핼을 찾아 나서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죽은 배리. 그 다툼의 원인은 카리와 하룻밤을 보낸 배리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였고 배리는 그걸 못 견뎌 했다. 그는 속박당하고 구속 되는게 싫었으니까. 그러나 핼에게 배리는 그냥 전부였으까.

그들이 동성이긴 하지만 어느 연인에게서나 볼 수 있는 애틋함, 사랑이였다.

그들 안에는 그러한 사랑만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기에 겪는 진로, 성, 자아발견등이 얽혀 중심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배리의 죽음으로 인해 핼과 배리의 추억은 한 여름밤의 꿈처럼 사그라들어 버렸고 그 단절이 복잡함을 끊어 주었더라도 아쉬웠다. 그들의 만남이 계속 되었다면 동성애에 대한 복잡함이 드러나 버리겠지만 요즘 동성애가 그리 낯선것만은 아님에도 역시 아직까지는 민감한 문제이고 해결책을 제시하기엔 이 소년들은 너무 어리다는 것. 그리고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것을 배재할 수는 없었다.

끈끈한 우정을 기대하기엔 너무 뻔하고 그들의 만남이 지속되는 것은 고통이며 배리의 죽으으로 인한 단절은 잔인하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후에도 미심쩍음이 남았으리라.

 

배리가 핼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약속. 자기가 먼저 죽거든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는 말 때문에 핼은 본의 아니게 무덤을 훼손하고 춤을 추다 체포된다.

배리의 무덤에서 춤을 추는 배리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네가 죽어서 기쁘다는 은유적인 뜻이 담겨 있는 내 무덤에서 춤추기는 배리에게 반대의 기분이였으리라. 그렇게 죽어 버린 배리가 야속하기도 하고 죄책감으로 괴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서 그랬으리라.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은 한 몫 했을 테지만.

그들의 혼란, 그들의 상실감은 그렇게 분출 되었지만 자연스럽게 이끌어 주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배리와 핼을 보며 그들의 혼란을 겪을 때 이끌어 주는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할지라도 그들에게 무기력감으로 다가가지 말아야 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p. 70

 

 사무엘 하 1장 16절에 있는 다윗이 요나단의 죽음 앞에서 외친 아찔한 문장, '나를 향한 그대의 사랑은 어느 여인의 사랑도 따를 수 없을 만큼 값졌거늘'

 

- 정말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사무엘 하 1장 16절이 아니라 1장 26절에 이런 말씀이 있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성경 구절이 약간 다른 것은 이해하나 구절이 차이가 나는 것은 잘못된 표기인지 아니면 원래 다른건지 의문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