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와 늑대 미래그림책 2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지음, 프란스 하켄 그림, 유영미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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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가 들려주는 프로코피예프의 음악동화 '피터와 늑대'를 CD로 듣는다. 아주 낭랑한 조수미의 목소리가 등장인물과 동물을 여러가지 악기소리로 표현한 이야기와 어울려 재미를 더한다. 늑대가 오리를 잡아먹으려고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장면은 맘을 졸이게 하고, 피터가 늑대를 잡아 '당당한 승리의 행진'을 하는 장면에서는 우렁찬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림책 <피터와 늑대>는 가는 선의 섬세함만으로 흑백의 대조를 살려 표현한 판화 기법이 꽤 독특한 인상을 준다. 셀 수없이 많은 가는 선으로 살린 할아버지의 얼굴, 사냥꾼들의 사냥총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같은 것들이 익살스럽다. 초록의 선으로 표현한 넓고 푸른 들판, 주황색 새의 머리와 배, 파란색 동그라미로 표현한 연못, 노오란 고양이의 눈, 피터의 주황색 가로줄무늬 셔츠와 양말에 까지, 밋밋하기 쉬운 흑백의 배경에 진한 인상을 준다. 경쾌한 이야기의 전체 흐름이 잘 느껴지게 구성되어 있다.

겁이 없고 당당한 아이 피터가 꾀를 내어 늑대를 잡고 당당한 승리의 행진을 하는 장면은 노란 햇살이 가득 퍼져있다. 음흉한 눈빛으로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고 진땀을 흘리고 있는 늑대가 어째 밉지만 않다. 어쩌면 피터와 늑대는 서로 닮아있는 지도...... '이 승리의 행진은 너무 길어서, 한 장에 다 그릴 수가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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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39
주디스 커 지음, 최정선 옮김 / 보림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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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이 된 큰딸아이에게 난 그림책을 자주 권한다. 아직 상상과 현실의 세계에 한 발씩을 딛고 살고 있는 아이에게 그림책이 펼쳐주는 신나는 환상의 세계를 벌써부터 빼앗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봐도 즐거운 그 세계를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으례히 벗어나야 하는 것쯤으로 알고 있는 엄마들에게, 아이들은 여전히 그림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상기시켜드리고 싶다.

아이는 이 그림책을 보고 '소피의 따뜻한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독후감을 일기장에 썼다. 아이 나름의 생각이 재미있고 미소를 머금게 해, 그대로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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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 라는 책을 보았다. '주디스 커'라는 사람이 지은 그림책이다.
소피란 여자아이가 간식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소피가 문을 열어 보니, 커다란 호랑이가 서 있었다. 소피 엄마가 '들어오세요' 라고 했다. 그래서 호랑이는 들어와서 식탁에 앉아 간식을 먹었다. 하지만 호랑이는 소피의 집에 있는 먹을 것을 다 먹었다. 마실 것도 다 마셨다. 수돗물까지 몽땅!

그렇게 실례를 하면 안 된다. 그리고 호랑이는 갔다. 난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게 몽땅 먹지 않는다. 소피의 이런, 보잘 것 없는 것도 사랑해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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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친구 요켈과 율라와 예리코 일공일삼 3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에디스 쉰들러 그림, 김경연 옮김 / 비룡소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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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반은 여자, 반은 남자라고 공공연히 말하면서 그들이 가지는 것은 어쩌면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남자와 여자라는 영원한 친구가 진정 아름다운 관계로 살아가려면 최소한 어떤 모습이라야할까 라는 물음에 쉬운 예를 보여주며 대답하는 이야기이다.

요켈과 율라. 이들은 서로 닮아있고 남과 같은 것을 싫어하는 성격도 비슷하다. 한 눈에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끌리는 것도 아주 자연스럽다. 서로 다른 쪽 발이 짝짝이라 불편한 신발을 서로 바꾸어 신고 기뻐한다. 둘은 뭐든 서로 도와가며 해결하려들고 가진 것은 뭐든 나누어 갖는다. 사랑스런 개, 예리코와 햄스터, 요켈의 부모님까지도.

남자라서, 내지는 여자라서 라는 어투는 이야기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율라는 결코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가 아니'다. '바라는 것이 있으면 달라고 요구'하고 '요구하는 대로 해 주지 않으면, 왜 안 해 주느냐고 묻'는다. 순종과 인내만이 여자의 미덕이라고 가르치는 답답한 이야기가 아니다. 또 율라는 신이 나면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자신의 감정을 유쾌하게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있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의 절반은 서로의 것이다. 평등하게 나누어 가지는 것의 의미와 즐거움을 알고 있다.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도 이런 즐거움이 평생 따라다니기를 바란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고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라는 이름의 영원한 친구이기를 바란다. 요켈에게 없는 것들을 율라에게서 얻을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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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랄다와 거인 비룡소의 그림동화 27
토미 웅거러 / 비룡소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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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웅게러는 다소 혐오감을 주는 대상에게 평범한 본성을 되칮아주는 데 관심이 많은 듯하다. 그래서 결론은 언제나 흐뭇한 안도감을 준다. 그의 작품 <세 강도>에서도 받은 느낌을 <제랄다와 거인>에서도 받을 수 있다.

어린 아이들만 골라 잡아 먹는 거인은 외모도 성미도 별나고 괴팍하여 혼자 외로이 살고 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제랄다는 음식 솜씨가 뛰어나다. 거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제랄다는 너무 굶어 허둥대다 다친 거인을 보살피고 맛있는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준다. 어린 아이보다 훨씬 맛있는 음식를 맛본 거인은 제랄다와 함께 살며 어린 아이를 잡아 먹으려는 욕심따윈 잊어버린 채 산다. 세월이 흘러 아름다운 처녀가 된 제랄다와 수염도 깍고 보기 좋아진 거인은 서로 사랑하게 되고 여러 명의 아이들도 낳고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산다.

모두가 피하는 무서운 거인이 허기로 허둥대다 바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장면에서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는 거인을 연상하기 어렵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스꽝스럽다. 모두에게서 외면당하는 혐오의 대상이 친근한 대상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은 진정한 마음으로 그를 대하는 순수함, 즉 어린이다움으로 인해서다.

식욕은 본능이다. 본능에 충실한 아이들의 마음이 어쩌면 거인으로 형상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본능을 아름답고 절제된 행위로 즐기면서 충족하는 법을 무의식 중에 배울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제랄다의 멋진 요리들을 맛보면서 말이다. 이제 거인은 아이들에게 막대사탕을 나누어줄 줄 아는 이웃집 아저씨가 되었다.
더 이상 외롭지도 않을 것이다.

마지막 장의 그림에서 재미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제랄다가 안고있는 갓난 아기를 바라보고 있는 거인의 한 아이가 손을 등 뒤로 하여 쥐고 있는 포크와 나이프. 첫 장에서 거인이 들고 있던 날카로운 칼이 떠오른다. 이 아이도 자신의 파괴적인 본능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차츰 엄마인 제랄다의 음식을 먹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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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일공일삼 6
페터 헤르틀링 지음, 페터 크노르 그림, 박양규 옮김 / 비룡소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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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당당해서 아름다운 할머니를 만났다. 늙음을 안타까와하며 노후를 의지할 자식에 연연해 할 수 없는 할머니를 만났다. 아니, 그런 형편이 되었다해도 결코 그런 나약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 것 같은, 칼레의 할머니이다.

67세에 부모잃은 손자를 혼자서 키워내야할 의무를 안게 되는 할머니의 이름은 에르나 비텔. 당당하게 문패를 만들어 붙여두는 할머니다. 어린 손자와는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함께 광고용지를 돌리고 생활보조금을 억측스럽게 타내어 누구보다 씩씩하게 살아간다.

자기연민에 빠져 슬퍼할 겨를도 없고 생활고에 시달려 허덕이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무기력한 신파조의 삶을 사는 할머니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서 샘솟는 활기를 느꼈다. 신선한 삶의 그림이었다. 삶을 자신의 양어깨로 당당하게 떠받치고 사는 노인의 모습이야말로 어린 칼레를 성숙하게 하는 말없는 가르침이다.

그렇게 강하기만 한 할머니가 2주간 병이 난다. 서로에게 놓인 60년이란 엄청난 세월의 강을 단숨에 뛰어넘어 이 두사람은 강한 끈으로 묶여있음을 발견한다. 혈육의 끈, 서로에 대한 사랑과책임감의 끈이다. '그저 지금처럼만 살게 되기를' 바라며, 할머니는 '칼레의 부모가 살아있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을텐데' 라고 생각한다. '아무렴 날 위해서는 아니고말고', '어쨌든 손자를 위해서'라고 못박는다. 독자는 할머니의 속마음을 읽는 재미가 솔솔하며, 겉으로는 강해보이는 할머니의 약간의 갈등과 자책을 엿보며 할머니의 진심을 이해하게 된다.

이 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생각도 에르나 비텔 할머니와 비슷해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효자식이란 소리를 듣게될까? 그것 이전에, 자신의 존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세상에 당당해 질 수 있다면, 그래서 스스로의 가치를 놓치지 않는다면, 소외니 외로움이니 따윈 먼거리의 얘기가 되지 않을까? 먼 훗날 할머니가 될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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