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tella.K > [펌] 사랑의 문제

[책마을]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 사랑의 문제


며칠 전 찾아왔던 상민이는 4년 전 졸업하고 나서 이제껏 화실에 나가서 만화를 습작하느라고 고정된 직업이 없다. 유머감각이 뛰어나서 늘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학교 성적도 좋아서 원하기만 하면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을텐데 부모님의 반대도 무릅쓰고 상민이는 굳이 만화가의 길을 택했다. 아직 만화가로서 정식 데뷔를 못해서 생활이 너무나 옹색하고 여전히 주위 사람들은 제대로 된 직장 얻어서 남처럼 살라고 하지만 자기는 지금의 생활이 더 좋다는 상민이는 아닌게 아니라 얼굴이 무척 밝았다.

졸업할 때 논문을 16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정치가, 위대한 인문주의자였던 토마스 모어(Thomas More)의 정치공상소설 ‘유토피아(Utopia):1516’에 대해 썼었다는 상민이가 재미있는 말을 꺼냈다. 즉 모어가 헨리 8세의 이혼을 반대하다가 종교적 반역자로 몰려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기 직전 머리를 받침대 위에 올려놓고는 “내 수염은 잘리지 않도록 조심하슈. 그건 죄가 없으니…”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멋있잖아요, 선생님. 죽을 때까지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은 것 말이에요.” 상민이는 말하고 나서 곧 덧붙였다. “그런데 말이죠,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유머감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우리 정치인들의 이미지는 어쩐지 엄숙하고 경직되고, 웃어봤자 계산적인 입술근육의 움직임처럼 보일 뿐, 무언가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밝고 환한 표정은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사실 유명한 정치가들-예를 들어 영국의 벤자민 디즈라엘리나 윈스턴 처칠, 미국의 존 F 케네디 등-은 그들의 탁월한 정치적 수완뿐만 아니라 유머감각으로도 유명하다. 한번은 처칠을 끔찍이 싫어하던 영국의 여성 국회의원 레이디 에스터가 한껏 화가 나서 처칠에게 “당신이 내 남편이었다면 당신 커피에 독을 탔을 겁니다”라고 말하자 처칠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내가 당신 남편이었다면 서슴지 않고 그걸 마셨을 것이요.”

사전을 찾아보면 ‘유머감각’이란 ‘우습거나 재미있는 것을 감지하고 즐기고 표현하는 능력’이라도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유머감각은 그보다 좀더 넓은 관점에서도 볼 수 있다. 누군가 무슨 일을 할 때 상황의 정곡을 찔러 유머감각을 발휘하여 대처한다는 것은 그의 날카로운 상황판단력과 자신의 의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전제로 한다. 이는 또한 근시안적 판단을 유보하고 한 발자국 물러서서 좀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관찰할 수 있는 여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의 믿음에 관한 확신, 그리고 그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는 정직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닥터 지바고’나 ‘아라비아의 로렌스’, ‘미션’ 등의 각본을 쓴 로버트 볼트(Robert Bolt)는 토마스 모어의 생애를 그린 ‘4계절의 사나이(A Man for All Seasons)’라는 각본으로 1967년도 아카데미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한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모어가 사형선고를 받자 주변의 친척들과 친구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왕과 타협해서 목숨만은 건지라고 설득하기에 나서는데, 제발 이성적으로 행동하라는 한 친구의 말에 모어가 답한다. “그렇지만 이건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 (a matter of love)이지 않나.”

가끔 상민이처럼 ‘사랑의 문제’를 좇아 삶의 행로를 결정하는 학생들을 본다. 조건 좋은 혼처를 두고 재정적 능력이 없는 장애인과 결혼을 한다든가, 공부를 썩 잘해서 유학을 다녀와서 교수가 되었으면 하는데 갑자기 사제가 되겠다고 수도회에 입회하는 등, 이리저리 손익을 따져가며 ‘이성의 문제’에만 급급해서 살아온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아직도 젊은 우리 학생들은 한다.

목숨까지 바쳐 자신의 신앙과 ‘사랑의 문제’를 끝까지 고수한 토마스 모어는 이제 성인(聖人)으로 추앙된다. 그러나 나는 연구실을 나가는 상민이의 뒷모습을 보며 지금이라도 만화가의 꿈을 접고 월급 많이 주는 회사에 취직을 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미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나처럼 ‘이성의 문제’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세상에서 용기 있는 우리 학생들의 꿈과 사랑을 지켜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장영희·서강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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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그마한 월간지에서 한국심리상담연구소에서 P.E.T(효과적인 부모 역할 훈련) 전문강사로 일하고 있는 이안영님의 글을 읽었다. 발 때문에 스케이트장에 아이들만 들여보내놓고 휴게실에서 읽었는데, 모든 일엔 제대로 된 방법이 있다는 생각이 간절히 드는 글이었다.

P.E.T에서 제안하는 방법들, 반영적 경청, 나 전달, 환경 재구성, 양승 방법에 이어 마지막으로 '가치 대립에 대처하는 기술'에 대한 내용이다. 아이가 커 갈수록 자주 생기는 문제가 가치 대립인데, 서로의 욕구가 달라 갈등할 때는 자신의 행동이 엄마에게 불편을 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아이들도 가치가 대립할 때는 그렇지 못하고 몰이해의 골만 커진다는 이야기이다.

부모가 자녀와 겪는 가치 대립에 대처할 수 있는 기술 4가지는 아래와 같은데 정리하면...

첫째, 모델 되기.

자녀와 엄마 사이가 좋다면 엄마를 보고 그대로 모방할 수 있다. 그러나 자녀의 기질과 엄마의 기질이 아주 다르다면 아무리 엄마가 모델을 보여도 엄마의 행동을 따라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녀가 어릴 때부터 서로 존중하는 좋은 관계가 되도록 공을 들여야 한다.

둘째, 의논 상대 되어주기

이 방법도 엄마와 사이가 좋아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어릴 때 엄마가 힘을 써서 맘대로 억누르고 휘둘렀다면 자녀가 자라서 힘이 커지면 자녀도 엄마에게 힘을 쓰기가 쉽다. 어렵지만 자녀가 어릴 때부터 서로 힘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세째, 자신의 가치 수정하기

앞서가는 자녀들의 가치를 수용할 필요가 있을 때 부모 자신의 가치를 수정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몇 년 전 휴대폰이 처음 나왔을 때 자녀가 휴대폰을 갖는 문제로 갈등하는 사례가 많았다. 자녀가 왜 휴대폰이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부모가 많았던 것이다. 지금은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가 아주 많이 줄었다. 부모가 자신의 가치를 수정한 결과이며, 부모들도 웬만하면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탓이다.

네째, 평온을 비는 기도하기

이 기도는 자신이 믿는 신에게 하는 기도일 수도 있고 스스로 분별을 얻기 위한 일종의 명상일 수도 있다. 즉, 노력하면 변화될 수 있는 일은 어떤 일이고, 노력해도 변화될 수 없는 일은 어떤 일인지 분별할 지혜를 얻으려는 것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하는 실천을 더해서 부디 자녀와 행복하게 지내길 기도한다. *

#  이 네가지 위에 있는 전제조건은 아이와 나 사이에 흐르는 우호적인 전선인 것 같다. 이 전선에 먹구름이 끼지 않도록 유심히 살피고 기다리고 때로는 먼저 살며시 다가가 아이를 안아주어야겠다. 나는 좋은 모델이 되고 있는지, 최우선의 의논상대가 되고 있는지, 돌아보고 분별을 얻기 위한 명상의 시간을 짧게라도 수시로 가져야겠다. 가치수정은 그런대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의 행복을 보는 게 나의 행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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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아빠, 호호 엄마의 즐거운 책 고르기 - 책의 달인 199명이 말하는 최고의 어린이 책 256
가영아빠 외 198명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글이 실린 사람으로서 리뷰를 써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몇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어 리뷰를 쓰기로 합니다. 그동안 좋은 책을 골라주자는 의도로 나온 책이나 리스트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독자들이 쓴 서평을 토대로 책을 고르고 기획한 책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그 점에 있습니다. 독자들이 자신의 자녀와 함께 읽고 느끼며 벅차올랐던 느낌들을 고스란히 풀어놓은 책이기 때문에, 프롤로그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그 '현장성'이 첫번째 미덕입니다. 또 한가지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독자의 입장에서 쓴 글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공정성'에 있습니다.

독자들의 글이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부분을 상쇄할 정도로 역량이 보이는 분들의 글이 많습니다. 틀에 매이지 않는 시각으로 뜯어보기도 하고 몸으로 느끼고 쓴 글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전문가들의 예리하기만 한 글보다 감동이 더 한 것은 당연합니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어린이책 분야의 스테디셀러는 거의 모여있다는 것입니다. 신간을 원하는 분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오랜 기간을 두고 꾸준히 독자들에게 읽힌 책을 감히 '고전'이라 부른다면 그런 수준의 보편타당하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좋은 책들이 모여있다는 것입니다.

연령대별로 나눈 각 장의 뒷편에는 주제별로 추천하는 책을 모아두었습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3명의 답변자가 자신의 자녀와 그리고 다른 어린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경험했던 사실들을 토대로, 가정에서의 독서지도에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부족한 점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가감없이 솔직하게 평소의 소신과 경험에서 얻은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독서의 중요성은 새삼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하지만 어딘지 부족하고 뭔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평범한 엄마 아빠에게 이 책은 아주 색다른 길라잡이의 역할과 함께 잔잔한 감동을 줄 것입니다.

책이 꽤 두꺼운 편인데, 영유아편과 초등편을 나누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며, 중학생 이상의 청소년편도 기획해 봄이 어떨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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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8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07-08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그러셨어요? 감사합니다.. 부족한 면도 보였던 책이라 생각해요. 즐거운 휴일 보내세요.~~~ 루루랄라~~
 
별볼일 없는 4학년 창비아동문고 152
주디 블룸 지음, 윤여숙 옮김, 오승민 그림 / 창비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초등 중학년의 어중간한 연령, 동생이 하나쯤 있고 완전 고학년 취급도 못 받고 저학년이 아니라 어리광 부리기도 그렇고, 학습의 부담은 커지고 어른들의 기대치는 점점 오르기 시작하는 시점이 4학년이다.

이 책의 주인공 피터는 아주아주 별난 동생 4살 짜리 퍼지와 평범한 부모님과 함께 산다. 시종일관 퍼지는 피터에게 방해꾼이고 걸림돌이며 애물단지다. 하지만 엄마는 어린 동생 퍼지만을 위하고 자신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동생과 형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엄마는 피터에게 동생의 잘못에도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엄마나 아빠가 은근히 믿고 기대하는 대상은 형인 피터이다. 피터는 그런 어른들의 마음에 들고 싶어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예의를 갖추고 상대를 이해하려 든다. 내심 가지는 불만과 아쉬움을 감추고 별로 표현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생은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서 언제나 자신을 난처하게 만든다. 피터가 애지중지하는 거북이를 퍼지가 삼켜버린 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거북이가 죽어없어지고 자신의 마음이 그리 아픈 것 따위는 어른들의 관심 밖이다. 그것을 삼킨 어린 동생만을 생각하는 엄마가 밉기도 하다. 자신의 슬픔은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피터에게 새로운 선물이 안긴다. 아빠가 강아지를 사온 것이다. 피터는 강아지에게 '거북'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이제 동생이 다시는 자신의 애완동물을 삼켜버릴 수 없을 것이다.

이 동화의 사건이라면 집안팎에서 동생이 일으키는 사고들의 연속이다. 동생이 있는 아이라면 날마다 그런 동생을 봐주어야하는 형의 입장에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친지들이 모여도 어린 동생이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아 속이 상했던 경험이 있는 맏이들이면, 난 동생보다 관심과 사랑도 못 받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디 블룸이 이런 제목을 지은 건 반어적 표현으로 보인다. 가만히 지켜보면 피터는 별볼일 없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님에겐 소중한 맏이로, 동생에겐 기대고 싶은 형으로, 다른 어른들에겐 예의바르고 마음도 따스한 좋은 아이로, 친구들에겐 그래도 너그러운 아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아이다. 관심을 못 받고 있는 게 아니라 이제는 어른들이 믿고 바라보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 강아지를 선물하는 아빠를 보면 역시 힘을 좀더 실어주는 대상은 큰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큰아이라는 위치에 선택적으로 있는 게 아니므로, 그에 따른 책임감이 함께 주어지므로, 그 아이에게 힘을 조금더 실어주고 싶은 게 보통의 부모마음이다. 아이들과 부모의 마음을 잘 드러내어주고 있다.

이 동화는 1인칭 시점에서 전개된다. 피터가 화자가 되어 자신의 일기글을 공개하는 것처럼 좌충우돌, 알콩달콩, 생활 속 크고 작은 일들이 피터의 눈높이로 펼쳐진다. 그러니 인물이나 배경면에서도 생활동화의 그것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일상적이다.
가히 엽기적인 퍼지의 말썽은 우리 정서와 다소 다른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피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라면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자신의 임무, 책임, 권리 그리고 자신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고 뿌듯함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는 동화이다.

한번도 이런 말을 드러내놓고 하지 않고, 우당탕탕 난리를 치며 하루하루 보내다 어느 순간 의외의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식이다. 책제목을 그렇게 시큰둥하게 꼬아 놓은 것도, 고리타분하게 가르치려들지 않으려는 작가의 숨은 뜻으로 해석된다. 우리 동화는 이런 부분에서 아직 미흡한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드러내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되는 것 같다. 이런 감각이 부럽다. 이 동화는 위트있고 아름다운 글이 마음에 남는 <백조의 트럼펫>을 번역한 윤여숙님이 옮겼다. 삽화는 간결하며 동양적인 얼굴로 인물을 그려놓아 우리 아이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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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 마음이 아파요 - 청년사 저학년 동화 01
노경실 지음, 이형진 그림 / 청년사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노경실 작가의 동화라면 내가 읽으 것 중에 <열 살이면 세상을 알 만한 나이>가 생각난다. <엄마 내 마음이 아파요>는 그 책과 아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런 류를 생활동화라고 굳이 부를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성장동화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주 사소하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을 얻고 마음의 키가 쑥쑥 자라는 예쁜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건이나 갈등, 모험이라 부를 만한 것은 없지만, 숙제도 제대로 안 하고 학교에 가야하는 아이의 복잡미묘한 마음 자체가 하나의 모험이 아닐까. 이 책 속의 주인공은 열살이며 남자아이다. 개구쟁이 남동생, 엄마, 아빠와 함께 평범한 가족의 구성원이다.

때로는 평범한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행복한 것인지 모른다.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며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좋았겠다고 너스레를 떠는 아빠, 사랑하여 결혼한 남편이면서 불쌍해서 결혼해 줬다고 내숭을 떠는 친구같이 귀여운 느낌이 드는 엄마, 어색한 분위기를 재치있게 넘겨주는 장난꾸러기 동생, 그리고 배부르면 아무 데나 드러누워 잠 자는 바둑이. 사실 주인공아인 이런 바둑이를 부러워하며, 엉뚱하게도 자신은 바둑이보다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남자아인 자신이 불행한 이유를 100가지도 넘게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을 거꾸로 적으니 행복한 이유가 된다는 걸 알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손바닥 뒤집기 처럼 어렵지않은, 생각뒤집기이다. 좋아하는 반친구 연실이에게 고백도 못 하지만 연실이가 결석을 하자 신경이 무척 쓰인다. 연실이가 돌이 되기도 전에 엄마를 잃고 연실이가 엄마랑 찍은 어딘지 어색해 보인 사진은 알고보니, 합성사진이었다. 석주의 새엄마는 아주 좋은 분이지만, 그래도 친엄마가 보고 싶다는 석주의 말에, 의리를 지키기 위해 엄마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이가 우리의 주인공이다.

작가가 의리를 정의하는 건, 유행하는 조폭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아빠의 감동적인, 진실한 친구 얘기를 들으며 주인공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의 마음을 더 이상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형제간에 그리 하면 우애, 남녀간이면 사랑, 친구간이면 우정이란다. 작가의 마음씀씀이가 참 푸근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리 조근조근 들려주니 말이다.

<엄마 내 마음이 아파요>는 연실이의 합성사진이나 석주의 친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알고 나서 주인공 아이가 느끼는 마음 속 울음이다. 이 아이는 평범한 가족이 있어 너무나 행복한 자신을 발견하고, 친구의 어딘가 비어있는 옆자리에 대해 무한한 연민을 느낀다. 성장이란 이런 것인가 싶다. 타인에 대한 순수한 연민으로 자신을 더욱 깨닫고 가슴을 넓힐 수 있다면 이 아인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할까.

이 동화는 저학년(2,3학년)을 대상으로 한다. 다소 훈계조 같은 느낌을 피할 수 없지만 천방지축 아이의 눈으로 보는 가족, 선생님, 동네어른, 친구에 대한 표현이 거름망을 통과하지 않고 통통 튀어, 생동감을 잃지 않고 이어간다. 주제는 무엇 한 가지로 말하기 어렵다. 가족, 우정, 행복... 어느 한 가지로 촛점을 맞추어 독후 활동을 하는 것도 좋겠고,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십분 이용하여 그들의 인물소개를 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인물광고나 각 인물의 입장에서 쓰는 그날의 일기도 써 볼만 하겠다.

일상적인 문체와 이형진님의 살아 움직이는 삽화가 보는 재미를 더한다. 굵고 가는 연필선으로 쓱쓱싹싹 그려서 투명 수채화법으로 가볍게 채색한 삽화는 인물의 재미난 표정과 함께 가만 있지 못하고 꿈틀대는 것 같다. <고양이>나 <외삼촌 빨강애인>에서의 삽화도 인상적이었던 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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