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옥타브의 목소리가 좋다. 

카페에서 마주한 옆 테이블 젊은 여성의 분노와 흥분이 욕설과 함께 배어나오는 시간은 끔찍했다. 

오랜만에 간 서촌 단골 카페의 시간은 두 시간으로 제한되었다. 

책이 가득 담긴 가방을 들고 낑낑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꿈꾸게 만드는 목소리, 그 옥타브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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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내가 한창 『에크리』를 읽으며 논문을 쓸 때 프랑스 친구가 농담처럼 "너의 성경"이라고 지칭했던 이 책은 정말 성경과 비슷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성경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서술되어 있지만 텍스트에 감춰진 비밀과 숨은 의미는 텍스트와 일체가 되어 그것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그리고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는 비유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무한정 가능하게 한다. 『에크리』도 마찬가지이다. 텍스트는 텍스트로 머무는 게 아니라 ‘나의‘욕망의 언어로재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 『에크리』가 던지는 메시지이다.
이렇게 보면 『에크리』는 경직된 텍스트가 아니라 그 속에서 나와 너를 볼 수 있고, 동시에 그 옆에서 넌지시 자신을감추고 있는 라캉의 모습도 훔쳐볼 수 있는 거울 같은 것이다. 아니 『에크리』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요술 거울이라 할 수 있다. 라캉이 말하는 "읽을 수 없음"이라는 단어는 역설적으로 『에크리』의 암호를 푸는 열쇠가 된다. - P29

그리고 세미나 XI에서 처음으로 비중 있게 다뤄진 ‘충동‘ 개념을 통해 라캉이 이제 상징계에서 실재계로 관심을 옮겨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상징계가 주체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의미화의 세계라면 실재계는 상징계의 한계와 욕망의 절대성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충동들이 겨냥하는 부분 대상들은 충동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충동 자체는 계속되는 순환을 통해 만족을 누리는데, 그 중심에는 영원히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욕망 즉 결여가 놓여 있다. 충동이 겨냥하는 것은 상징계를 넘어서는 실재이다. 여러 모로 1964년의 세미나는 중요하다.
그리고 1964년에 라캉은 자신의 학설을 실천할 새로운 조직인 파리프로이트학교(Ecole Freudienne de Paris, 이하EFP)를 주도적으로 창립한다. 라캉이 보기에 정신분석이 주된 탐구 주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욕망의 현실이며, 그것을 새로운 이론을 통해 규명하고 임상적 영역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조직적 훈련을 통해 분석가를 양성해야했다. - P56

이처럼 라캉의 삶은 IPA와의 투쟁과 계속되는 조직의 분화와 재창립의 반복으로 점철된다. 라캉에게 사상은 양보의대상이 아니었으며, 그것의 실천은 욕망에 따라 행동하라는정신분석의 윤리에 의해 정당화된다. 물론 라캉이 말하는 욕망은 개인적 차원의 욕구와는 구별된다. 욕망의 본질은 구체적인 대상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다. 욕망은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이며,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해주는 그런 것이다. 인간은 무엇보다 언어적인 존재이고 언어는 언제나 인간을 속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늘 무엇인가를 찾으며 그것이 욕망의 대상이라고 착각하지만, 어떤 대상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결여는 끈질기게 인간을 괴롭힌다. 그러기에 욕망은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의 복합적 관계 속에서 작용하면서 죽음까지 지속되는것이다. 라캉 이론과 실천 속에는 욕망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이 있다. 욕망이 인간의 고유한 본질이며, 정신분석은 욕망이 무엇이고 어떻게 욕망의 윤리에 충실해야 하는지를 이론적으로는 물론 실천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 말이다. - P58

레비스트로스, 알튀세르, 푸코 등 이상의 구조주의자들 명단에 우리는 『에크리』를 집필한 라캉을 첨가할 수 있을 것이다. 구조주의자라 불리는 사상가들은 자신들이 이러한 명칭으로 불리는 것을 몹시 싫어했지만 우리는 몇 가지 공통점을통해 구조주의를 정의할 수 있다. 구조주의자들은 주체 혹은의미적 차원보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영역인 상징적 질서가 더 본질적이라고 주장한다. 구조주의를 어떻게 식별할 것인가 À quoi reconnaît-on le structualisme」를 쓴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에 의하면 구조주의 사상의 첫번째 특징은 상징적인 것을 제3의 자율적 질서로 발견하고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상징적인 것은 차이화를 발생시키는 미분적인 관계들의 체계와 언어와 같은 구조의구성 요소가 만들어내는 특이성의 체계를 말한다. 구조주의에 의하면 주체의 행위와 의미는 구조의 요소들이 맺는 관계와 위치에서 발생하는 부차적 결과일 뿐이다. 다시 말해 자리들과 위치들이 그것을 점유하는 존재자나 현상보다 더 근본 - P64

적이라는 말이다. 당연히 이들은 자유, 의지, 실천 대신 인간의 죽음과 휴머니즘의 종말을 역설하고, 주체 없는 과정으로서 역사의 진행을 보여주려고 한다. 주체의 동일성을 부정하고 관념과 의미를 비의미적 요소들의 분산과 이동의 파생물로 본다는 점에서 구조주의는 전통적인 이성 중심주의 철학과 철저하게 대립된다. 라캉역시 상징계의 독립성과 우월성을 말하고, 주체를 언어의 효과로 본다는 점에서 구조주의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라캉은 마지막까지 주체라는 개념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주체와 상징계의 관계에 욕망을 위치시키고, 욕망의 윤리를 강조함으로써 여타의 구조주의자들과는 다른 특이성을 보인다. 그리고 에크리』 이후 상징계를 벗어나고 그것에 저항하는 실재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론적인 전환을 보이기 때문에 라캉을 구조주의 테두리에만 묶어두려는 것은 자칫 라캉의 풍부한 이론과 문제의식을 박제화하거나 왜곡할 위험이 있다.
『에크리』가 출판된 1966년에는 구조주의 사유가 프랑스를 휩쓸고 있었다. 만약 『에크리』에서 제시되는 라캉 이론이 전통적인 데카르트적 주체를 부정하고, 상징계의 결정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라캉을 구조주의로 분류한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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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의 강의 4강을 게으름을 피우다 오늘 아침 듣고난 후, '욕망은 관계성 속에서 드러난다.' 여기에 포인트를 잡고 오늘의 일기를 시작.

"주체는 자신의 메시지를 타자로부터 전도된 형태로 받는다." - 라캉

어젯밤 아홉시 넘어서 민이가 베프들과 방학이 시작되고난 후 처음으로 영통을 했는데_ 각자 방학 동안 보지 말고 충실하게 시간을 보내도록 해보자_라고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아니 방학 동안에 보지도 않는 건 베프들 사이에서 가능한 일이니? 묻고 싶었지만 너희들끼리 그렇게 결정했다고 하니 뭐 하고 속말을 삼키고 말았다_ 장장 3시간 넘게 통화를 하더라. 적당히 하고 자라, 얘들아_ 하고 3시간 동안 끝없이 민이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지는 걸 닫힌 문 너머로 들으면서 으흠 했다. 통화를 끝내고 온 민이는 엄마, 우리 2월에 만나기로 했어! 라는 말을 했고. 아무리 민이가 나를 사랑한다고 해서 나와 함께 있는 동안 내내 웃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3시간 동안이라는 제한 조건을 두고서라도 3시간 내내 저렇게 내 앞에서 웃는 일은 없다. 관계성. 어제 읽은 히파르키아가 떠올랐다. 길의 철학자 견유학파에 속하는 크라테스와 결혼을 한 히파르키아. 길에서 살았고 길에서 살면서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낳아 키웠다고 한다. 히파르키아가 맞선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 배를 타고 아테네로 향하는 동안 내 미래의 배우자는 어떤 철학자를 읽을까나 궁금해할 때. 아테네에서 만난 맞선 상대는 몸도 좋고 집안도 좋고 인물도 훤칠하지만 책을 읽지 않아, 서재도 없어, 독서가 취미라는 히파르키아에게 어떤 장르를 읽으시냐 묻고 주로 철학서를 읽는다는 히파르키아에게 농담도 잘 하시는구려 너털 웃음을 짓는다. 크라테스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 남장을 하고 길에서 강의를 듣는 히파르키아. 평상시 모습으로 크라테스의 강의를 듣기 위해 다가갔다가 남자들에게 매춘부인가 라며 희롱을 당하던 히파르키아의 당황해하던 모습은 이후 크라테스와 결혼을 하고난 후 달라진다. 여자가 학문의 장에서 완벽하게 배제되었다는 걸 저 장면으로 캐치. 무수한 남성들이 득시글거리는 학교에서 가끔 한 명씩 특출난 여성이 있기도 했다는 기록들도 겹쳤고. 책의 절정은 크라테스에게 청혼을 하는 히파르키아. 히파르키아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오빠가 크라테스에게 얘 좀 말려줘, 라고 사정을 하는 동안_ 크라테스는 걸치고 있던 옷을 다 벗어던지고 내가 가진 거라곤 이 몸뚱아리뿐, 나와 같이 살겠다고 한다면 나처럼 살아야 하는데 이게 가능하겠는가? 묻고 히파르키아는 순간의 주저함 없이 옷을 다 벗어버리고 나신의 몸으로 난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 당신과 말을 나누고 싶다, 한다. 민이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한데 아이는 현재 읽고 있는 책을 다 읽고 읽겠다 하니 민이 생각은 다음 기회에. 관계성. 히파르키아를 읽고 히파르키아처럼 살고 싶은 어미를 이해해줄 수 있는지 더불어 너 역시 히파르키아처럼 사유하고 행할 수 있는지 그걸 딸아이에게 건네면서 묻고 싶은 마음. 마음들의 관계성. 아침밥 차려줄 때가 되어 오늘은 여기까지만.


생각해보니 할아버지, 책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 집안에서 이 할애비 빼고 유일하게 책을 읽는 손녀딸이라며 좋아하셨다. 방학 때마다 책 사라고 용돈을 그득 주셨다. 책이, 활자가 네 날개가 되어줄 거다, 아가. 하고 할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그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어제 히파르키아를 읽는 동안. 할아버지와 나의 관계성. 히파르키아가 새장 안에서 키우던 새가 새장 밖을 벗어나 창공 속을 날아다닐 때, 아 안돼_ 나직하게 외치던 실망감. 며칠이 흐른 후, 생각에 잠긴 히파르키아에게 살풋 날아와 말을 건네듯 새가 그를 바라볼 때, 히파르키아가 결심을 했을 때, 그 장면들. 그 관계성 역시. 누가 누구를 읽는지, 누가 누구를 만나는지, 누가 누구를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내는지, 어떤 말을 주고받는지, 어떤 사유들 아닌 것들을 함께 할 수 있는지에 따라서 그러니까 그 관계성에 따라서 삶은 바뀐다. 누군가는 내 날개옷을 훔치고 누군가는 내게 날개를 달아주고. 그러한 것들 또한. 동일하게 나 역시 누군가의 날개옷을 훔치려 하는 이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날개가 되어줄 것이다. 관계성의 고찰. 왜 또 갑자기 메를로 퐁티인지는 사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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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1-27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혼 장면 저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완전 멋있네요. 결국은 말이 통하는 사람에게, 갈 수 밖에 없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용해주신 문장 보고 속으로 그랬어요. ˝라캉씨, 기다려요........˝

수이 2024-01-27 15:31   좋아요 1 | URL
카페에서 진심으로 빵 터져서 엄청 웃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캉씨 기다려요, 이거 제목으로 써서 페이퍼 써줘

단발머리 2024-01-27 15:33   좋아요 1 | URL
이 댓글을 강명씨가 싫어합니다😆😆😆😆😆

수이 2024-01-27 16:20   좋아요 1 | URL
강명씨보다는 라캉 🤪
 
철학자, 강아지, 결혼
바바라 스톡 지음, 김희진 옮김 / 미메시스 / 202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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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 안의 새는 하늘에서 실컷 잘 놀다 잠깐 히파르키아를 보러 오고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을뿐, 그 조언을 받아 선택한다. 한 번의 인생, 걷고 또 걸으면서 히파르키아라면 이랬겠지 싶어 어제보다 더 오늘 감정의 파도를 다스렸다. 이혼은 100번을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다. 빛을 찾기로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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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는 고등학교 다닐 때 즐겨 읽곤 했는데 알듯 하면서도 모를듯 하고 모를듯 하면서도 알듯 싶어 이게 대체 뭔 말인가 궁금해하면서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니체와 릴케의 연인으로 알려져 프로이트도 루 언니에게 연모의 정을 품었다고 하던데 언니의 사유력이 어느 정도였을지 새삼 궁금해진다.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언니를 좋아했던 까닭은 생각할거리를 많이 줘서, 그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궁금한 것들이 많아져 잠을 이루기가 힘들 정도였다(는 건 개뻥_ 나는 잠을 아주 잘 자기로 유명해서 사춘기에는 거의 하루 9시간 이상씩 자곤 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혹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그런 것들을 최초로 생각하게 만든 이가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였던지라 그에게 온갖 애정을 품고 광화문 거리를 뛰어다니곤 했다. 내 딸아이는 나와 많이 다르다. 나를 내려다보기 시작하는 딸아이를 올려다보면서 이 아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궁금해지곤 하는데 아이가 들려주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이 아이는 나와 참 많이 다른 삶을 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히파르키아가 주인공인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친구들과 모여 연회를 열 때 히파르키아는 문 너머에 의자를 놓고 앉아 무슨 이야기가 오고가는지 듣는다. 좋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히파르키아는 강아지들을 상대로 자신의 사유를 펼친다. 맞선을 보기 위해서 아테네로 떠나기 전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모여 식사를 하는 동안에 히파르키아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만 무시당한다. 여자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그들은 관심이 없다. 고모의 방문을 받은 히파르키아는 제발 책 이야기 같은 건 하지 말고 조용히 다정하게 우아하게 웃기만 하라고 조언한다. 남편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그것이 여자의 삶이라고 고모는 말한다. 엄마가 계시지 않아 네 아빠는 너를 너무 오냐오냐 키웠다며 고모는 한소리 한다. 등장하지 않은 히파르키아의 어머니를 상상했다. 히파르키아의 어머니는 고모처럼 말하지 않을듯. 뭐 그럴 수도 있지만. 내 상상 속에서 히파르키아의 어머니는 히파르키아와 판박이다. 다만 자신의 생각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파피루스 종이 위에 적었을 것이다. 자신의 맞선 상대인 남자가 어떤 철학자를 읽을지 궁금해하는 히파르키아. 소크라테스의 도시 아테네로 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히파르키아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시대에 여자는 노예와 동급의 존재로 여겨졌다. 노예는 동물과 같은 동급의 존재로 여겨졌고. 그러니 간단한 도식을 만들자면 그때 보통 여자의 삶이란 이렇게 볼 수 있다. 




                                     동물 = 노예= 여자




오늘 나의 화두다. 히파르키아를 처음 만난 날. 보통 여자의 삶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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