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미첼 챕터를 읽다가 재독하면서 또 밑줄 그은 문장, 

눈을 감고서도 선명하게 망원경을 마주하고 검은 하늘을 마주하며 빛들을 찾아 

그 앞에 자리잡고 있는 캐럴라인 허셜이 보였다. 




캐럴라인 허셜은 열한 살에 티푸스를 앓아 목숨을 잃을 뻔한 탓에 왼쪽 눈이 상했고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지구에서 보낸 아흔여덟 해의 생애 대부분의 시간 동안 캐럴라인은 130센티미터 남짓한 몸집으로 6미터에 달하는 망원경의 기단부에 자리 잡고 앉아, 하나 남은 잘 보이는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았다. 캐럴라인은 환경과 선택의 접점이 만드는 길을 따라 이 전례 없는 자리에 도달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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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2-23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저 책 꺼내야겠어요. 완독 못 했음을 고백합니다🙃

수이 2025-02-24 09:26   좋아요 1 | URL
자기 진리의 발견 마니아인 줄 알았는데요!!!
 
시골 생활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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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과 위선을 벗어던질 때 인간이 어떤 풍경을 마주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할 때 어느 정도의 극치를 보여줄 수 있는지, 하여 인간은 인간 앞에서 벌거벗을 수 있는 거다. 허나 요지는 이 사회는 위선과 가식을 필수 요소로 여긴다는 점이고. 인간은 그룹을 지어 서로와 서로 사이에 경계를 짓는다. 그것이 마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듯 번역가 또한 이야기하고. 간만에 활자로 영혼 때 벗기는 작업. 온전한 것을 잃을까봐 노심초사했는데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건 그대로라는 걸 알았다.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다시 깨닫게 해주는 시간. 많은 것들을 바라는 게 아니라 소소한 걸 원하는 거라는 건 어느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이 법의 경계 안에서 이루어지건 그 바깥 테두리에서 이루어지건. 속 편하게 와인을 마시고 속 편하게 다른 인간에게 고통을 주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것이 또 인간이라는 건 무얼 뜻하나. 화형대에서 어떤 살인사건이 일어나건 군중들은 시선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게 마땅히 옳은 일이라 여겼고 그것이 옳지 않다는 건 화형대 위에 있는 이들이나 화형대와 군중들 사이에 있는 경계선에 있는 이들 모두 아는 일이었다.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어떤 정해진 법칙이라는 건 언제나 그 너머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때 그 사건들이 지금에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그 누가 확신할 수 있는지 시인은 묻는다. 그 시선들의 마주침과 어긋남 속에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과정들. 봄이 얼마나 기다려지던지, 이 시집 안에 봄 이야기는 곳곳에 만발했고 더불어 영하를 넘나드는 서울 하늘 아래에서 얼마나 봄이 기다려지던지, 봄인가, 하면 어느덧 초여름이 올 것을 알기에 더더욱 기다려지는 거고. 하여 그 말들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을지도. 시간 여유를 두고 천천히 다른 구절들도 찾아보기로. 오늘 내 산소호흡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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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요가 - 마음의 평화를 찾는 모든 이를 위한 지혜의 한마디
아카네 아키코 지음, 한귀숙 옮김, 김서진 감수 / 버터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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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기다리는 동안 후루룩 읽고 느낀 점은 나는 요기니는 평생 힘들겠구나, 아쉬움은 느껴지지 않고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산스크리트어는 매력적이지만 배우고 싶을 정도는 아니고 그 발음과 뜻도 흥미롭지만 요가할 때 선생님들이 자주 말씀하시던 몇몇 단어만 알아들어도 그만이겠다 싶은 정도. 명확히는 요가 수행자들이 추구하는 그것이 나와 맞지 않아 요기니는 이번 생 아니다, 정도. 평화는 좋지만 그 밋밋함은 거절. 요가 오래 하지 않아 살집이 꽤 붙었다. 이 책을 읽고 정말 좋았던 점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뭔지 확연히 알았다는 것. 그러니까 요기니가 되고 싶어한 건 그냥 그 단련 방식이 좋았다는 건데 요기니들의 철학과는 너무나도 다른 철학을 지니고 있으니 이제 나는 요기니인 척, 요기니가 되고 싶은 척 가면은 그만 쓰기로. 대신 좋아하는 동작들은 꾸준히 습관으로 평생 가지고 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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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페데리치의 책을 충동적으로 꺼내 다시 읽고 있는 중에 슬슬 정리를 한번 더 해야 한다는 마음에 책장을 둘러보다가 마리아 포포바의 책을 꺼냈다. 요하네스 케플러 단락을 읽는 동안 우연히 마주한 에밀리 디킨슨 시를 읽고 찢어진 상처에서 날개가 뻗어나오는 이미지가 저절로 그려졌다. 에밀리 디킨슨의 모든 시가 주는 이미지가 그러하지는 않지만 이 구절에서는 더더욱. 영혼이 공명하는 건 그가 쓴 구절들. 1800년대의 사람이 쓴 그 수많은 활자들이 2025년을 살아가는 이에게 닿기까지. 영혼이 바다로 가라앉는다, 라는 표현은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정확히는 바다에 가라앉는다라는 표현보다는 솟구친다, 가 옳다. 영혼이 바다로 솟구친다. 그 첫느낌이 하도 강렬해서 그 어린 시절에 활자에 탐닉하기 시작했으니까. 얼마 전에 옛사랑과 통화를 하다가 우리가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게 어쩐지 실감이 되지 않았다. 그도 내게 몹쓸 짓을 한 인간이긴 인간이지만 그 수많은 대화의 시간이 어쩌면 우리의 관계를 만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제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맥주를 마시다 말고 퍼뜩 깨달아서 석이는 되게 답답한 게 딱 그 틀 안에서 살아가, 그 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히스테리 증세를 보여. 어느 순간 아 이 인간은 평생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겠구나 그걸 알았어. 라고 말했다. 다들 묵묵부답으로 대꾸를 보여서 나 혼자 그렇군, 그거였어, 스스로를 답답한 인간으로 보는 게 뭔지도 알 거 같네, 라고 또 혼잣말하듯 말하고 맥주를 마저 마셨다. 그냥 혼자 안으로 파고들려고 하는 게 마치 골뱅이를 연상시키기도. 안으로 파고들어 하염없이 홀로. 성정이 맞지 않아 충돌한다는 게 뭔지 오랜만에 다시 느끼면서 하나를 주면 하나를 잃는다는 게 반드시 옳은 공식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정환에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걸 석을 통해 느끼면서 아 이 사람과 오래 가긴 힘든건가 라는 마음과 함께 그래도 마음이 가는 방향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한번 보고난 후 정하도록 하자 했다. 끝내 다다른 길은 같지만 다른 식으로 향방은 만든다, 이런 좀 고집불통 같은 게 있어서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들을 마주하고 피하지 않는 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내가 지금 이걸 속편하게 읽을 일이 아닌데 그래도 한 시간이라도 짬을 내보도록 하자 싶은 마음으로 페이지를 조금씩 펼치다가 또 호기심이 일어서 마리아 포포바 얼굴 사진 찾아봄. 견과류를 넣은 그릭요거트에 꿀을 살짝 올리고 진하게 커피가루를 잔에 담아 뜨거운 물을 호로록 붓는 동안 다가올 것들이 무엇일지, 다가올 이들이 누구일지 궁금해서 고개를 이리저리 휘저어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어리석은 행태에 후훗 웃음을 흘리고 아이가 요즘 빠져 듣고 있는 피아노 소리를 연하게 볼륨을 낮춰 듣는다.







이 시대의 외눈박이 윤리를 납빛으로 칠하는 것이 그토록 큰 죄일까? 이런 글을 통해 지구를 떠나 달의 관점에서 보도록 주의를 이끄는 일이 그토록 큰 죄가 될까?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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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에티카 - 진리와 행복을 찾아서
필립 아마도 지음, 조현수 옮김,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원작 / 이숲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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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하자마자 새로운 이들을 만나 생각을 나누는 동안, 자 어디로 나아가나요, 문화 차이로 인한 충격과 더불어 역량 강화 느낌인지라. 그림과 함께여서 이해되기 더 용이했고 스피노자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너의 스피노자와 나의 스피노자가 다름이 얼마나 다행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기에 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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