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너댓편의 소설만으로 이미 현대의 거장이 되어버린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을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영화로 만들었다. 루헤인의 작품들 중 가장 상업적이라는 평답게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고 결말의 반전까지 놀랍기 그지없다. 영화는 원작 소설과 약간 다르지만 시종일관 진중하고 묵직한 분위기가 일품이다. 이마에 깊은 주름을 지으며 쓸쓸한 눈빛으로 주옥같은 대사들을 날려대던 디카프리오는 원작의 중년 수사관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냈다. ('타이타닉', '로미오와 줄리엣' 시절의 풋풋함은 어디에...) 마지막의 결말은 보는 사람을 절규하게 하는 원작의 충격이 그대로 담겨 있다. 스콜세지 감독은 거장답게 훌륭한 원작을 훌륭하게 스크린에 옮겼고, 디카프리오 또한 훌륭한 연기로 원작의 명성에 근접한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명실상부 마틴 스콜세지의 페르소나는 로버트 드니로가 아니라 디카프리오다.)
감히 성서에 비교된다는 원작은 정말 대단한 작품이었을 것이다.(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난해한 작품이었지만.) 영화 '더 로드'가 대단한 작품은 아닐지 몰라도 주연 배우 비고 모텐슨의 연기는 비할 바 없이 훌륭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대의 명작인 원작소설을 무리 없이 영상화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독하게 세밀한 원작의 묘사는 반의반도 담지 못했지만, 암울한 미래 세계를 실감나게 스크린에 옮겼고,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주제만은 제대로 옮겼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들, 화면 속의 배경, 우울하게 깔리는 배경음악... 이 모든 것이 원작의 묘미를 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암울하고, 암울하다.) 많은 관객들에게 '더 로드'는 긴박감 넘치는 추격전도, 시원한 폭파 장면도 극적인 캐릭터 대결도 없는 90분의 밋밋한 영화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시종일관 잔잔함에 빠져들듯이 몰입할 수 있었다. 비록 진지한 주제 의식에 깊이 공감할 수는 없을지라도 무언가 생각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황폐한 폐허 속의 일상이 아무리 지독하더라도 결국에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원작 소설의 무게에 짓눌렸던 나 같은 평범한 관객들에게는 비교적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괜찮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좀비냐?)
제럴드 버틀러가 제이슨 스테이넘의 길을 따라가기로 결정했나. 이 영화도 '모범시민'처럼 B급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액션 영화다. 우아함이나 박진감은 잘 느껴지지 않을지언정 그럭저럭 신나게 때리고 부수는 액션이 난무한다. 게다가 최근의 유행인지 잘 나가던 이야기가 꼭 삼천포로 빠진다. (폭파 장면들이 약간 쌈마이스럽긴 하다.) 그래도 비슷한 화면을 선보였던 '둠'보다는 훨씬 더 게임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리저리 파편이 튀고, 화면이 흔들리는 것이 꽤나 박진감 넘쳤다. (거칠고 탁한 화면이 꽤 실감난다.) 게임 속 캐릭터의 행동이나 게임에 접속한 게이머들의 대사 또한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300'의 제랄드 버틀러를 떠올리고 블록버스터급 액션영화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뭐,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또한 진지한 가상현실의 폐해와 암울한 묵시록적 메시지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정도의 배우 둘을 이 정도의 영화에서 보기에는 아깝긴 하다.)
문제는 '스토리텔링'이다. 일본책들의 문제이기도 하고, 경영경제분야 책들의 문제이기도 하고, 거의 모든 비소설 분야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스토리텔링으로 누구나 쉽게 배우는'이라는 문구를 달고 있지만 그 스토리텔링이 문제다. 왜 일본인 저자들의 책들은 하나같이 그냥 설명만 하지 못하는 것일까. 결혼, 투자, 여행 등에 관한 실용서적들은 하나같이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서 설명하려고 한다.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 주인공이 어떤 일을 겪으면서 하나씩 배워나가는 구성이 천편일률적이다. 이 책에서도 경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유키가 돌아가신 아버지 회사의 사장이 되고,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회사를 살리기 위해 아즈미 교수에게 회계를 배워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손익계산서를 온도계의 눈금에 비유한 그림 같은 경우는 그나마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거창한 광고와 그럴듯한 표지문구들로 인한 기대와는 달리 이 책은 관리회계에 관한 수박 겉핥기식의 지식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회계학 초보들에게는 굉장히 유용하고 필요한 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그냥 도서관에 가서 회계원리 전공서적을 몇 장 들춰보거나 아니면 인터넷으로 20~30분 검색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을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읽어서 익혀야 하는 건지 의문이다. 앞표지에 거창하게 박혀있는 '1평짜리 구멍가게와 100평짜리 레스토랑 어느 쪽이 돈을 더 많이 벌까?'라는 문구도 한계이익과 고정비 등 뻔한 답변과 식상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아니면 제품의 종류를 정한 뒤 (샤넬처럼) 브랜드가치를 높이라는 케케묵은 조언을 일삼는다. 게다가 너무 다양한 제품의 종류와 브랜드를 문제 삼는 것은 비록 맞는 말일지라도, '롱테일의 법칙'이 유행하는 요즘에는 너무 무심한 조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소녀의 뒷모습과 노파의 옆모습으로 보이는 착시 그림은 그냥 원래의 그림을 싣던지 하지 엉성한 그림이 오히려 이해와 몰입을 방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