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을 이어온 봄도

가난한 자의 마당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작아진다

울타리 말목 끝에 참새 지저귀다가

가곤 없었고

두꺼운 흙을 열고 나타나는 애기상치도

금새 뽑혀가곤 없었다

둥우리에서 막 기어나온 병아리가

걷기 시작하자

장바닥에 팔려가곤 없었다

그 큰 햇볕을 져다 판 돈도

가난한 자에 이르러서는

끝전만 돌아왔다


                               -- 이병훈 시인(1925년~ ), 도서풀판 b <한국대표노동시집>, 210쪽

 

 

--------------------------------------

애기상치도 병아리도 미처 자랄 새가 없는 가난한 자의 마당.
탄식하지 않고 하소연하지 않고 가난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그 큰 햇볕을 져다 판 돈도, 목돈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끝전만......

이런 시를 만나면 시인들이 몹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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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와 연우 2006-05-2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동시를 읽으면 떠오르는 생각.
저 익숙한 가난이 절망으로 변하지 않길, 그리하여 그들의 희망이 나에게도 희망이 되길...

라주미힌 2006-05-2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은 공감만이 시를 살리는 것 같아요...
가난한 자의 마당에는 봄조차 빗겨가는군요...
저의 노동 또한 계절을 지워버려요.. 출퇴근의 옷차림이 바뀌는 정도... ㅎㅎㅎ

로드무비 2006-05-22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나온 <한국노동시선집>에 수록된 시들도 많아요.
괜히 핏대만 올리는 시들도 있지만, 이렇게 노동시 전체를
훑어 보는 것도 괜찮은 듯.

싸늘한 체념이 엿보이는 시가 더 무섭고 힘있지 않아요?^^

twoshot 2006-05-22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릿합니다...헌데 "그 큰 햇볕"들은 다 어디 갔을까요...

하늘바람 2006-05-22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새는 금세인데요. 원래 시에 그렇게 되어 있나요?

로드무비 2006-05-22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rcus님, 한 줄 한 줄 옮겨 적는데 아릿했답니다.
그 "큰 햇볕"들은, 글쎄요....

로드무비 2006-05-22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저도 그건 아는데, 오래 된 시들이 많아 그대로 옮겨 적으려고요.

waits 2006-05-2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이 어수선해서 솔직히 잘 들어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감사해요. '오늘 읽는 시'가 쌓이는 만큼, 제게도 위로가 되리라는...;;;

2006-05-22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하 2006-05-22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연 '천 년을... 갑자기 작아진다.'에 동의(?)하기 어렵네요. 전 가난한 조건이라고 해도 별과 따사로운 봄 날을 느낄 권리를 뺐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생각이 좀 이상하긴 하네요....ㅠㅠ 그래도 가난한 자에게도 봄은 아름다운 법,
그럼에도....

로드무비 2006-05-22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물론 그렇게 읽으실 수도 있습죠, 암만.
님의 말씀이 아름답고 애틋한데요?

우덜끼리만님, ㅎㅎ 님도 알고 계시군요.^^

나어릴때님, 어느 날 님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시가
올랐으면 좋겠어요.^^

싸이런스 2006-05-22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구 닳았다 식었다 정신 없는 요즘인데... 마음 차분해지는 좋은 시여요.

로드무비 2006-05-22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런스님, 저도 이 시 올리고 마음이 좀 차분해져서
일 좀 했답니다.
아까는 하루종일 서재에서 노닥거리고 싶더만요.^^
 

조금 전 점심으로  봉지에 한 조각씩 남은 라면들을 모아
넙적한 어묵을 한 장 잘라 넣고
양파를 듬뿍 썰어 넣어 라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고추장도 병에 여기저기 조금 붙은 걸 싹싹 긁었으니
알뜰한 주부로서의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흡족스러웠다.
그럼에도 맛은 또 어쩜 그리 훌륭하더란 말이냐.

제인 구달 여사의 책도 그렇고 몇 권의 환경밥상 관련 책을 읽은 여파가 있어
음식물 구입에도 신경을 좀 쓰게 됐다.
특히 혼자 먹는 아침과 점심은 남은 반찬과 채소를 이용하여
쌈밥이나 이리저리 비빔밥을 잘 만들어 먹는 편이다.
식당에서도, 아이들이 먹다 남긴 공기밥이나 반찬 등속, 풋고추를
비닐을 달라고 하여 싸오는 건 기본.

그런데 어떤 날은 그 맛에 깜짝 놀란다.
이건 잔반처리 수준이 아니다.
하나의 버젓한 새로운 메뉴로 손색이 없다.(제가 '자뻑파'인 것 다 아시죠?ㅎㅎ)
문제는, 남은 걸 활용하다 보니 음식 양이 좀 많아진 것.
음식국물이 흘러간 하수가 맑게 바뀌는 데 엄청난 양의 새 물이 필요하단 걸 알고
김치찌개든 된장찌개든 남은 국물도 홀라당 마셔  버릇을 했더니......

금요일 밤 모처럼(?) 동네 술집에 진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술이 기분좋게 올라서 생활 속에서의 구체적인 환경보호 실천사례로
최근 몇 달 간 달라진 나의 아침점심 식습관 내용 전말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칭찬은커녕 책장수님과 남동생이 제발 그러지 말라고 정색을 하며 만류한다.
그 눈빛이 너무나 간절하다.

"아니, 뭐야, 지금! 인격보다는 뱃살이란 말이야?"

"자기는, 인격은 너무너무 훌륭해. 지금도 충분해. 그런데 문제는 뱃살이야!"

책장수님의 말은 애원에 가까웠다. 
최근 나의 인격을 의심하기 시작한 남동생도 뱃살에 방점이 찍혀 매형의 말에 끄덕끄덕.

환경을 좀 보호하려고 했더니, 환경이 영 안 받쳐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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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5-2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흐흐~

로드무비 2006-05-22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블루님, 모처럼 오셔서 김빠진 웃음만 남겨놓고 가다니. 흥=3

mong 2006-05-2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데굴데굴~

라주미힌 2006-05-22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힛.

플라시보 2006-05-22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에 굴렀습니다. 환경을 좀 보호하려고 했더니 환경이 안 받쳐주네..하하

nada 2006-05-2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전깃줄 접시다!

2006-05-22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瑚璉 2006-05-2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격보다 뱃살... (-.-)_b

로드무비 2006-05-22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식집 떡볶이님, 그런 염려는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전 완벽한 친환경 엄마가 될 자질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이거든요.
나중에 마이도러에게 잔소리 들으며 살까봐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아, 그리고, 그런 스토리를 갖고 계시군요.^^*

꽃양배추님, 저 접시를 기억하시는구랴.^^

새벽별님, 님은 다요트 이후 어떠신가요?^^

플라시보님, 저 꽤 재치있죠?
님처럼?^^

라주미힌님, 헤헤~~

mong님, 인격이 훌륭하다는 말도 뭔가 수상하죠?ㅎㅎ

blowup 2006-05-22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앗쌀한 자뻑. 넘 귀엽습니다.
저는 잔반 처리에 신경 쓰다가 멀쩡한 야채를 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건우와 연우 2006-05-2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경보다 뱃살...
대다수 아줌마들의 딜레마죠.
그래도 전 아직 지구의 환경을 포기 못해요...

물만두 2006-05-22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여주세요. 저희들이 판단해서 책장수님과 남동생분 응징해드리겠슴다=3=3=3

혜덕화 2006-05-22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처음으로 신나게 웃었네요. 사실은 아침부터 말과 글에 대해 참 생각이 많은 하루였거든요. 웃음을 주는 글, 참 좋네요.
저도 잔반 처리하다 보니 살 안쪄서 고민하던 옛날이 그립네요. 뱃살만 늘어나서리......

로드무비 2006-05-22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을 웃게 했다니 오늘 밥값을 충분히
한 것 같은 기분이.ㅎㅎ

물만두님, 아니 책장수님과 울 남동생이 뭘 잘못했다고.=3=3=3
(사실을 말한 건데요, 뭐.^^)

건우와 연우님, 맞아요. 딜레마.
우짜면 좋지요?
계속 우리가 희생해야겠죠?^^

namu님, 잔반을 전부 제 뱃속에 처리하는 건 문제가 너무 커요.
묘안을 짜봐야겠습니다.^^

Mephistopheles 2006-05-22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가막히고 구구절절 바른말이며 꼭 지켜야 할 사항입니다만...
전 이페이퍼를 읽으면서 자꾸만 생각나는 단어는 `인간정화조'였습니다..^^
쓰고 보니 어감이 좀 거시기 하네요..^^ 사실은 집에서 저도 인간정화조 였습니다..^^

플레져 2006-05-22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매콤해!!! 눈으로 라볶이 시식중입니다...흐흐...
자기는 인격은 너무너무 훌륭해. 오늘의 밑줄 쫘악~! ^^ (동감이어요. 부비~)

chika 2006-05-2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인간정화조... 메피스토님이 모든 걸 다 까먹고 저 말만 생각나게 해부러요! ㅠ.ㅠ

야클 2006-05-22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참치뱃살로 만든 초밥이 생각 났다는...ㅋㅋㅋ

로드무비 2006-05-22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메피스토님, 그리고 치카님,
이, 이, 개구쟁이 어른들 같으니라고!
인간정화조가 어떻고 참치뱃살이 어떻다고라?ㅎㅎㅎ

플레져님, 전 사진 찍어놓고 음식이 맛없으면
페이퍼 안 올리거등요.
역시 매콤한 라볶이 알아보시는군요.^^*

싸이런스 2006-05-2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로드무비님 참 맛깔나는 글들... 마음이 훈훈해지기도 하고 때론 엄청 쓸쓸해지기도 하고 분노도 느끼고.. 그래요. 전 님 무쟈게 말랐을꺼라고 이상하게도... 서재에서 제가 유일하게 로드무비님은 이렇게 생겼을 거야.. 하는 상이 있는 분이랍니다.
그나저나 저거 진짜 맛나겠네요. 아 먹고파!

waits 2006-05-22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은 몇 달 전인데요, 꿈에 로드무비님이라면서 어떤 아줌마가 나타났었어요.
눈이 부리부리하고 몸집이 큰 아줌마였는데... 좀 무서웠어요...;;
이 글을 보니 잊었던 꿈 생각이, 영상은 완전 가물가물한데...
오늘 제가 마음이 왔다갔다해서 겁도 없이 이런 댓글을 남기네요, 미쳤나봐요..^^;;;

로드무비 2006-05-22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제가 님의 꿈속에 왜 찾아갔을까요?ㅎㅎ
그 부리부리하고 뚱뚱한 아줌마 인상착의가 딱 저네요, 뭐.
저도 제가 무서워요.^^

싸이런스님, 요즘 제 글 잘 안 읽으시죠? 흥=3
뚱여사로 불린다고 그토록 나발을 불었건만.....
라볶이, 쉽고 맛있잖아요.
가끔 해서 드시길......^^
(어묵 대신 햄 조금 넣어줘도 맛납니다.)

니르바나 2006-05-22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뱃살만한 환경이 어디 있다고 무시하남유.ㅎㅎ
환경이란 것을 저만치쯤의 심리적 거리에 두고 에둘러 싸고 있다고 보는 견처에
그 문제가 있다고 일찍이 김시인은 한 말씀 하셨답니다.
요컨대 인격과 환경과 뱃살을 구분않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릴케 현상 2006-05-22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전 뱃살을 인격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읽었는데...

비로그인 2006-05-22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3 키로 늘었어요. 호호홍^^ 제 인격도 좋아지는 중이에요^^

날개 2006-05-22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옆지기에게 잔반처리를 맡깁니다..강제로..흐흐~

로드무비 2006-05-22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책장수님은 막내로 자라 그런 면이 살짝 아쉬워요.
그의 뱃살도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캐서린님, 3킬로그램 정도라면 춤추겠습니다.
전 나날이 사납고 황폐해지는 걸 느껴요.;;

자명한산책 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잖아욧.

니르바나님, 그러게, 모든 분별과 경계가 무의미한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그 훌륭한 김 시인이 구체적으로 누구랑가요?^^

rainy 2006-05-23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알라딘에서 놀고 있는중인데 여전히 앗쌀한 로드무비님 덕분에 조용한 새벽에 소리내어 웃고 갑니다^^

로드무비 2006-05-23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ainy님, 제가 앗쌀하다니 기분좋은데요?
웃고 가신다니 또 좋고요.^^

하루(春) 2006-05-23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라뽁이 맛있겠어요. 하는 방법 좀... ^^

로드무비 2006-05-23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고추장 반큰술, 고춧가루 반큰술, 누런설탕 한큰술,
다진마늘 조금, 멸치가루를 한 컵의 물에 넣고 잘 저어서
라면사리와 어묵, 양파를 넣은 냄비에 붓고 끓여주면 됩니다.
흥건한 것 좋아하면 물을 좀 더 넣어주시고요.
대파는 맨 나중에.
양배추, 깻잎 같은 것 채썰어 넣어주면 더 좋아요.^^

하루(春) 2006-05-24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조만간 해먹어야 겠어요. 군침 도네요. 벌써... ^^

로드무비 2006-05-24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운 게 좋으면 고춧가루 좀더 넣어주시고요.
멸치가루 조금 넣어줘야 구수합니다.^^

반딧불,, 2006-05-25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역시나!

검둥개 2006-05-28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하하. 전 로드무비님의 잔반처리 메뉴 사진만 보아도 분명 눈이 튀어나오고 말 거여요. ^______^

로드무비 2006-05-29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사실 잔반이 더 맛나다는 건
알뜰주부라면 다 아는 사실이지요. 음화화=3=3
(오랜만입니다!^^*)

반딧불님, 전 최소한의 재료와 최소한의 요리시간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허름한 밥상'.^^

기인 2006-06-06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10여년 전 쯤에는 환경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는데, 요즘은 어딜가도 밥을 다 못 먹고 남기고 있습니다. 환경보다는 뱃살이 ㅜㅠ 우선 과제가 되어서요 ^^;

로드무비 2006-06-0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님은 요즘 운동 플러스 다이어트 중이시죠?
환경도 중요하지만 저도 좀 살아야 할 것 같긴 해요.;;
뱃살부터 어떻게 좀 하고 환경을 생각할까봐요.ㅎㅎ
 


오랜 오랜 옛적부터
아, 몇백 년 몇천 년 옛적부터
호미와 가래에게 등심살을 벗기우고
감자와 기장에게 속기름을 빼앗긴
산촌의 뼈만 남은 땅바닥 위에서
아직도 사람은 수확을 바라고 있다

게으름을 빚어내는 이 늦은 봄날
'나는 이렇게도 시달렸노라......'
돌멩이를 내보이는 논과 밭
거기에서 조으는 듯 호미질하는
농사 짓는 사람의 목숨을 나는 본다.
마음도 입도 없는 흙인 줄 알면서
얼마라도 더 달라고 정성껏 뒤지는
그들의 가슴엔 저주를 받을
숙명이 주는 자족(自足)이 아직도 있다.
자족이 시킨 굴종이 아직도 있다.

하늘에는 게으른 흰 구름이 돌고
땅에서도 고달픈 침묵이 깔아진
오-- 이런 날 이런 때에는
이 땅과 내 마음의 우울을 부술
동해에서 폭풍우나 쏟아져라--빈다.

               --이상화 詩 '폭풍우를 기다리는 마음'(<한국대표노동시집>37~38쪽)


지난주 박영근 시인의 부음을 접하고 그의 이름이 들어간 모든 책을 검색해 보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김윤태, 맹문재, 박영근, 조기조 공편의 <한국대표노동시집>이 눈에 띄었는데
 810쪽 분량의 아주 두툼한 책이었다.

1920년대 근대 자유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무렵의 시들부터 시작해 1950년까지가 1부,
1951년부터 1980년까지의 2부, 그리고 1981년부터 지금까지 3부로 잡혀 있다.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편집위원회를 구성한 것도 신뢰감이 갔다.

책을 받아 읽다보니 팔봉 김기진의 '백수의 탄식' 같은  겉멋 잔뜩  부린 시들도 섞여 있지만, 
어디까지나
제목이 '한국대표노동시집' 아닌가!
두툼한 책을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쓰다듬고 있자니,  가슴이 설렌다.

앞쪽에 실린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읽다보니 이상하게
평택이라는 구체적인 지명이 떠올랐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두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그동안 교과서에 실린 시들은 이상하게 나의 시선도 끌지 못하고  대접을 잘 못 받았는데,
이 책을 통해 만난 이상화의 시는 논물처럼  자연스레 스며든다.

전태일문학상 수상작품집도 처음엔 관심을 가지고 읽었는데
언제부턴지 내 기억 속에 잊혀졌다.

아무튼 내가  모르는 좋은 노동시들을 만나게 되면 한 편 한 편 페이퍼로 소개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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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6-05-2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화의 저 시는 처음 보네요. 카프였다가 백조 동인하면서 유미주의적 경향을 띄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마돈나, 나의 침실로'만 배웠는데, 아마 "그들의 가슴엔 저주를 받을 / 숙명이 주는 자족(自足)이 아직도 있다. / 자족이 시킨 굴종이 아직도 있다."라는 과격한 구절이 있는 시를 80년대의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치긴 힘들었겠지요... 근데, 웃기는 건 "마돈나, 나의 침실로"는 접할 수 있었다는....

로드무비님의 노동시 페이퍼 예고, 기대됩니다.

로드무비 2006-05-20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님, 하루에 한 열 편씩 읽으려고요.
머리맡에 두고.

글고보니 이상화는 마돈나의 시인이네요.ㅎㅎ
님의 기대를 어짜든동 채워드리고 싶구만이라. 철철.

건우와 연우 2006-05-20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화가 이런시도 썼군요. 교과서속의 이상화는 현실감이 없었는데, 좋네요 ...

싸이런스 2006-05-20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되요!

로드무비 2006-05-20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런스님, 기대돼요?^^
좋은 시가 많아야 할 텐데...

건우와 연우님, 아아, 오오, 탄식이 너무 많아서
그랬던 걸까요?^^

푸하 2006-05-21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시는 '으악!'을 표현하는 것 아닐 까요?^^;
뜨악하진 않으시죠? (부끄부끄~~^^;)
 





 

상품명은 '블랙 보드 클락'.
한마디로 칠판시계다.

자신이 쓱싹쓱싹 그린 그림이나 직접 써넣은 짧은 글로 매일 바뀌는 시계라니
처음 보았을 때 너무 신기해서 위시리스트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오늘 아침 가게에 들러보니, 사용후 상품 평을 쓰면 100프로 환불해준다. 쿠폰으로......

즐거운 상상이 꼬리를 문다.
다음 청소 때 이 시계를 들고 가 2학년 아이 교실에 걸어놓는 거다.
악어룰렛 게임으로(ㅋㅋ)  순번을 정해서
아침마다 이 칠판시계에 아이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넣는 거다.
그러면 아이들도 선생님도 무척 좋아하겠지?

그런데 즐거운 공상도 잠깐!
쿠폰으로 환불받은 돈은 12만 원어치 이상의 상품을 구매해야 사용할 수 있다니!
정녕 그림의 떡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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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6-05-20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이름 쓰기 이런거 해도 재미있겠어요
아침 일찍 아무도 몰래~으하하
[로드무비]
=3=3=3

로드무비 2006-05-20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은 플레져(혹은 사야)를 사랑해, 이런 거요?ㅋㅋ
내 이름은 누가 써주려나?('' )

라주미힌 2006-05-20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만언... ㅎㅎㅎ

mong 2006-05-20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벌써 쓰고 튀었는데요? ( ..)
(근데 다시 와보는건 뭘까~ㅎㅎ)

로드무비 2006-05-20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도 몹시 땡기시죠?
다 알아요. 흥=3

mong님, 못 봤어요. 제 이름.(수줍)^^*

플레져 2006-05-20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 ♡ 주하 =3=3=3

로드무비 2006-05-2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수 ♡ 로드무비 =3=3=3

물만두 2006-05-2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날개 2006-05-2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솜씨가 좀 있는 사람이면 더 좋겠군요....!
저는 글씨도 삐뚤삐뚤에 그림실력도 안되니...ㅠ.ㅠ

로드무비 2006-05-2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저런 칠판시계엔 삐뚤빼뚤 글씨가 더 사랑스러워요.
그런데, 아니 뭡니까, 명필이신 분이!
누가 들으면 진짠 줄 알겠네.=3

물만두님, 재밌죠?
님은 누구 이름 쓰실 건데요?ㅎㅎ

에로이카 2006-05-2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 참 몹쓸 상술이군요... 아니 그보다 그런 쿠폰을 내걸었다는 것 자체가 팔 마음이 별로 없는 것 같네요... 멍청한 것에 더 가까운 듯...
이렇게 쓰면 혼나려나요?
로드무비 ♡ 택배 아저씨 =3=3=3

비로그인 2006-05-20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레리꼴레리~

nada 2006-05-20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너무들 재밌으시다.. (에로이카님 버전 강추!) 12만원이라니..에라이~
근데 양배추 소녀를 괄시했던 아해들이라 조금 걱정..^^

싸이런스 2006-05-20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로드무비님이 만드신건 줄 알았어요. 헤헤

반딧불,, 2006-05-20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쁘당..
로드무비 ♡ 주하
이게 젤 맘에 들어유!

icaru 2006-05-20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폰으로 환불받은 돈은 12만 원어치 이상의 상품을 구매해야 사용할 수 있다니!
지름신이 또다른 지름신을 부르는...
책장수 ♡ 로드무비 가 좋겠어요... 글씨 대신 기왕이면 분필 캐리커처로..

chika 2006-05-20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상상, 도 멋있네요. ^^

로드무비 2006-05-20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멋있을 것까지야, 호호~~
조금 깜찍하죠.=3=3

올리브님, 이쁘죠?

이카루님, 사실 저 가게, 12마넌 돈 쓰기 너무 쉬워요.
탐나는 물건도 많고.
하지만 또 제가 워낙 양식이 있는 인간이다 보니.=3=3=3

반딧불 ♡ 노랑파랑

싸이런스님, 헤헤 그럴 리가요. 재주가 메준디.^^

꽃양배추님, 앗, 잊고 있던 아픈 상처가!
양배추 소녀를 괄시했던 아이들에게 저런 선물을
앵길 필요가 있을까요?ㅎㅎ
(그나저나 에로이카님 버전이 맘에 든다고라?)

캐서린님, 오마나, 뭘 어쨌다고요.ㅎㅎ

에로이카님, 그런데도 마음이 흔들리는 제가 더 문제입니다요.ㅎㅎ
택배 아자씨는,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3=3=3

Mephistopheles 2006-05-20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매너님 페이퍼 보니까 매너님 솜씨가 장난이 아니시던데...^^
매너님께 반값에 부탁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

로드무비 2006-05-20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님이 반값에 해주심 안돼요오?
왠지 손재주도 있으실 듯.^^

하늘바람 2006-05-20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예브네요

뷰리풀말미잘 2006-05-21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라면 저 시계를 사서는 숫자로 1,2,3,4 써 놓고 방치해 버릴 거 같아요. ^^ 하긴 원채 째깍째깍 시계소리 들리면 잠을 못 이루는 체질이라 별로 시계를 좋아하지 않지요. 근데 저렇게 그림 그려놓으니까 이쁘긴 이쁘구만요. 물론 그리는 사람 나름이겠지만.;;

로드무비 2006-05-22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뷰우리풀말미잘님, ㅎㅎ 저도 그럴 공산이 큽니다. 게을러서.
아무튼 지금도 싸우고 있답니다.
사고 싶은 마음과.^^

하늘바람님, 예쁘죠?^^
 

단골 택배 아자씨 얘기다.
4월에 그만둔다더니 계속 다니기로 했다고 해서 '나 때문인가?'하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잠깐 해본 것까진 좋았는데.(착각의 여왕!)

어제 하던 일감을 급히 마무리하여 파주의 출판단지 안의 모 출판사로 보내야 했다.
요즘은 토요일에 아예 출근하지 않는 출판사들이 많아서 일정 안에 일을 진행시키려면
금요일인  오늘은 꼭 편집부에서 내가 한 일감을 전해 받아야 했던 것.
(안 그러면 주말이 끼어 사나흘이나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더러 하루 만에 도착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어제는 내가 신신당부했다.
금요일에 도착하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그랬더니 비장의 주머니에서 빨간 매직펜을 꺼내든 이 아자씨.
택배 상자에 큰 글씨로 이렇게 써갈긴다.

"긴급배송 요망.  생계가 달려 있는 일!"

취미로 돈을 버는 사람도
 있을랑가?
그래도 작은 일감 하나에 '생계가 어쩌고'라는 표현은 너무했다.
그래놓고 너무나 으시대는 그 표정 좀 봤으면.ㅎㅎ

일과 관련된, 몇 통의 전화와 메일만 주고받았을 뿐인 편집장이 너무 놀랄까봐
좀 전에 급히 메일을 보냈다.

--택배 아자씨가 오버한 것이니 택배상자의 그 붉은 글자에 너무 놀라지 마시랑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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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5-19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 저 손가락 끝은 무엇.....을 나타내는 건지...감질나잖아요..??

물만두 2006-05-19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갑인가요? 생계의 표현???

로드무비 2006-05-19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업어온 사진이어서요.
지갑 크기를 비교해 보라고 손가락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물만두님, 딩동댕~~~
좀 매치가 됩니까요?ㅎㅎ

mong 2006-05-19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계가 아니라 지갑이 달려 있는일!
히히

로드무비 2006-05-19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동전지갑들 참 예쁘죠?
장지갑도 오래 들어 나달나달한데......

로드무비 2006-05-19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아무래도 그 아자씨 저를 사모하는 것 같죠? (수줍)ㅋㅋ

건우와 연우 2006-05-19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아저씨 귀엽네요.^^

국경을넘어 2006-05-1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찌릿찌릿하다는(?) 그 택배 아자씨인가요?

날개 2006-05-19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그런 방법도 있군요..^^
저도 요즘 옐로우캡을 이용하는데..(싸길래..) 여긴 이틀만에 가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바람돌이 2006-05-19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급할때는 '나도 저렇게 써야겠구나'라고 잠시 생각!!!
근데 내가 그렇게 급한 일이 있었나? 싶군요. 헤헤~~

치유 2006-05-19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아저씨 정말 귀여워요..ㅎㅎㅎ
아무래도 택배 아저씨는 로드무비님을 너무 좋아해요...생계(?!)까지..신경 써주시는것 보면..

로드무비 2006-05-19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더구나 어제는 머리까지 짧게 잘라서
더 귀엽더라고요.
그리고 절 좋아하는 건(아쭈~), 제가 시원한 음료수 대접을
빠트리는 법이 없거든요. ㅎㅎ

날개님, 게다가 얼마나 요금을 싸게 해주는지.
우체국 택배는 너무 비싼 것 같고.^^

폐인촌님, 제가 찌릿찌릿이라는 표현을 썼던가요?
우리는 서로 희미한 연정을 품고 있다고 믿는다고
우겼던 것 같은데요.^^

건우와 연우님, 고맙습니다.
(택배 아자씨 귀엽다는 말도 이르케 듣기가 좋으니!^^)

바람돌이님, ㅎㅎ 겸손의 말쌈을....
'생계라는 표현은 늘 가슴을 철렁하게 합니다.

조선인 2006-05-19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우물가가 아니라 현관문에서 바람나나봐요. =3=3=3

로드무비 2006-05-19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현관 앞에서.ㅎㅎ
제가 예전부터 택배계, 퀵계, 경비실계 아자씨들과
인연이 좀 있습니다. ^^

nada 2006-05-19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쁜 짓하고 귀여워해달라는 듯한 그 표정이었겠죠? (한 번 그만둔다고 하시고 계속 다니는 것도 혹시 작전...- -a)

로드무비 2006-05-19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꽃양배추님 때문에 요즘 웃고 삽니다.ㅎㅎ

릴케 현상 2006-05-20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이제 우체국 끊고 택배랑 사귈까염

로드무비 2006-05-20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우체국보다 택배가 좋더라고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