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뛰어난 화가와 사진작가를 대동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날아간
요시모토 바나나의 남미 기행과 일곱 편의 단편이 잘 어우러진 소설집을 단숨에 읽었다.

"투명하고 묵직한 아르헨티나의 공기를 멋지게 그려준" 하라 마스미의 유니크한 그림,
왠지 허영이 없을 것 같은 사진작가 야마구치 마사히로의 남미 사진과 바나나의 글은
삼박자가 너무 잘 맞아서,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아르헨티나 혹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하면 머리에 자동점화장치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에바 페론과 피아졸라의 탱고 곡, 이과수폭포가 떠오른다.
노출이 심한 원색의 드레스를 입은 화장이 화려한 남미의 여인들도 빠트릴 수 없다.
그런데 무슨 사정으로인가 남미를 여행하고 있는 일곱 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격렬하고 비장한  멜로디의 탱고나 선 굵은 미인들의 열정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다.

도시의 번잡함이 싫어 '멘도사'라는 도시의 오래된 호텔에 머무는 젊은 여인은
평소 청년들의  활기와 박력에 멀미를 느껴 아버지 뻘의 노인과 결혼하고
낯선 도시를 여행중 적막한 풍경을 남편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일곱 편 중에서도 이 '플라타너스'라는 작품이 나는 제일 마음에 들었다.
돈이 꽤 많은 노인네인 듯 결혼할 당시 살던 아파트 외에는 재산을 상속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했던 노인의 누나.
그런데 어느 날 시누이와 둘이 산책을 하고 포장마차에서 다코야키(문어구이빵)를 사서 먹은 후
불현듯 그녀의 탐욕을 이해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날부터 누나는 반대를 접고 심심하면 내게 전화를 걸게 되었다.
그 순간을 제대로 포착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마음속의 어둠을 드러낸 흔치 않은 순간이었다.
눈을 돌려버리기는 쉽지만, 더욱 깊은 곳에는
갓난아기처럼 사랑스러운 것이 숨어 있다.(101쪽)

갯수가 많은  다코야키 도시락을 탐하는 남편 누나의 모습에서, 그리고 너무나 맛나게
그걸 먹는 모습에서 젊은 주인공은 결혼 당시 이해할 수 없었던 시누이의 탐욕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남동생의 재산도 그에게는 다코야키 도시락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그날 산책 끝에 다코야키 도시락을 사서 함께 먹지 않았으면 영원히 모르고 지나쳤을 
늙은 여인의 사랑스러움이었다.

한편 일 때문에 만나 어쩌다 사귀게 되고 남미를 함께 여행하게 된 덤덤한 중년의 커플은
이과수폭포를 여행하고 얼굴에 큰 흉터가 있는 점원이 권하는 대로 함께 파란색 운동화를 사 신는다.

"돌아가면 같이 살까?"('창밖' 174쪽)

저녁에 뭐 먹을까 하는 질문과 별 다를 바 없는 남자의 프로포즈 장면이다.
남자의 손에 낀  반지가 부담스러워서 쭉 외면하면서 한 번도 그의 아내에 대해 묻지 않았던 여인은
그제서야 남자의 손에 반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래 전 <키친> 이후 처음 읽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 소설집이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편의점 파라솔 밑에서 캔맥주를 마시며 읽는 것같은 엽서 한 장 정도의  다음 문장도.

--그냥 한가하니까 바깥구경이나 하자  싶어 나온 사람들의 표정에는
사람을  푸근하게 만드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파리의 해거름,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과도 비슷하다.
희미한 햇살이 비치고, 오늘의 첫 알코올을 주문하고,
하루의 피로가 서쪽으로 기우는 반짝임 속에 녹아드는 느낌이다.('창밖' 171쪽)

파리의 해거름이 어쩌고 하는 장면을 읽는데 엉뚱하게도 나는 운주사로 가기 위해
십몇 년전 엉덩이를 잠시 걸쳤던 화순의 한 시내버스 정류장 긴 의자가 생각났다.

한 할머니가 내 옆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다가 차가 너무 오래 오지 않자
낡아빠진 가방에서 부스럭 부스럭 뭔가를 꺼내는데 봤더니 막걸리병이었다.
어쩐지 아까부터 술냄새가 난다 했더니.......
그런데 뚜껑은 어디로 갔는지 신문지를 함부로 구긴 것이
막걸리병 주둥이를 틀어막고 있었다.
혼자 드시기가 미안했는지 할머니는 우물쭈물 나에게 한 모금 할라느냐고 물었는데 
얼떨결의 질문이라 나는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그때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그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벌컥벌컥 막걸리를 들이켜시더니 할머니는 아주 소중한 것인양 그 플라스틱 병에
다시 신문지 구긴 엉성한 뚜껑을 틀어막고 가방 한쪽에 조심조심 세우는 것이었다.

이런 해거름이면 꾀죄죄하기 짝이 없던 할머니의 그 가방과 막걸리병이 가끔 생각난다.
무슨 조화속인지 모르겠다만......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우와 연우 2006-06-14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거름이면 쇠락해가는 것들이 가끔 번쩍거리며 슬프게 아름답기도 하지요.
저는 해거름에 빨래를 거둬들일때면 기차에 태워져 낯선곳에 끌려와있는것같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로드무비 2006-06-14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해거름, 쇠락, 한 편의 시 같은 문장이어요.^^

플레져 2006-06-14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지만 여운이 긴 소설과 로드무비님의 여행길이 잘 어울리는데요 ^^
문득 생각나는 소설들인데 죄다 느낌이 일몰의 느낌이어요.
막 일몰이 질 때의 느낌.
어. 리뷰 제목을 염두에 둔 글은 아니었는데... 자연스레 나와버렸네요^^
핵심도 잘 잡으셔라~

로드무비 2006-06-14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딴청 부리다가 오늘 오후에야 단숨에 읽었어요.^,.~
비도 오고 책 내용도 그렇고 술이 땡길 시간인데 말임돠.
핵심을 잘 잡았다니 기분이 좋은데요? 호호~~

새벽별님, 역시 풍류를 아시는 분이랑게요.^^

nada 2006-06-14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은 종류를 막론하고 존경합니다. 그것이 선사하는 취기와 풍류와 약간의 광기를요. 로드무비님과 바나나는 또 새로운 조합입니다.^^

비로그인 2006-06-15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제목보다 리뷰 제목이 더 멋들어져요..;;;

치니 2006-06-15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조화속이긴요, 뛰어난 감수성이시죠 ^-^

Mephistopheles 2006-06-15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리뷰는 말머리(최종수비)부터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오는군요.

sandcat 2006-06-15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 이미지와 제목은 원래의 남미 이미지가 팍팍 풍기는데 소설은 다르군요. 뛰어난 화가와 사진작가를 대동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날아간 바나나라니, 부러워요. =.=
(서울막걸리엔 동의를 표하셨는데, 마이타이주가 그렇게 맛있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맛보셨는지 궁금해요)

로드무비 2006-06-15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샌드캣님, 너무 부럽죠?@,.@
마오타이주는 두세 번 먹어봤습니다.
입에 짝짝 달라붙는 맛이었어요.
죽엽청주도 맛있었고.
고량주 좋아합니다. 자주 먹지는 않지만.....^^

메피스토님,
뛰어난 화가와 사진작가를 대동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날아간
요시모토 바나나.
이 부분 말씀하시는 건가유?
전 자비로 타달타달 배낭여행이라도 가봤으면 좋겠는디.
기력이 쇠하여 될까 모르겠네유.;;

치니님, 호호, 감수성씩이나요?
제가 사실 메마른 듯하면서도 감수성이 촉촉한 인간이랍니다.=3=3

비숍님, 제가 본래 제목을 좀 잘 뽑잖아요. 호호~~

꽃양배추님, 요시모토 바나나와 저, 잘 안 어울리죠? 헤헤.
별로 호감이 없는 작가였는데 이 책은 꽤 괜찮았어요.
다코야키 도시락 장면 하나로도 건졌다는 생각이 드는 책.^^

2006-06-16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6-1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주도 좋지만님, 오늘 같은 날, 심정 이해합니다.
바닷가 횟집이나 파라솔 밑에서 흐린 바다 보며
홀짝홀짝 마시고 싶군요.
그리고 오마나, 반가운 소식이네요.^^
 
로즈의 편지
파스칼 로즈 지음, 이재룡 옮김 / 마음산책 / 200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렬한 눈빛의 작가 사진에 끌려서 책을 주문해 보는 건 참 오랜만의 일이다.

더구나 이 작가가 38세에 쓴 첫 장편으로 공쿠르상을 수상했고, 바로 그 해 자신이
소설 속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동맥 파열과 관련된 병으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왔으니.
어린 시절 존경했던 작가 톨스토이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자신의 내면을 기록했다는
책 소개에 이르면  이 책을 외면할 방도가 없었다.

다석 유영모가 평생의 스승으로 삼은 이가 바로 톨스토이였다.
몇 달 전 <진리의 사람 다석 유영모>를 재밌게 읽으며 톨스토이의 작품을
모두 챙겨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에게 보내는 파스칼 로즈의 편지를 읽으며
다시 한 번 그 생각을 굳혔다.

왜 하필이면 톨스토이였을까?
톨스토이가 82세 되던 해 어느 아침 서재에서 나는 아내의 기척에 진저리를 치며 집을 떠나
그 며칠 후 어느 역사에서 숨을 거두게 되는데 평소 그가 기차여행이라면
끔찍하게 싫어했다는 것도 한 단서가 될 것이다.
자신이 평소 그토록 싫어하던 곳에서 숨을 거둔다는 인생의 아이러니.
인생은 그렇게 사람의 뒤통수를 친다.

톨스토이가 매일 자신의 일기에 다음 날짜를 적고 "만약 내일도 산다면"의 약자  S. J. V를
덧붙였다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하루하루를 산 사람.

파스칼 로즈는 톨스토이를 우상이나 영웅으로 높은 곳에 모셔 두고 사랑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그의 변덕과 단점까지도 모두 끌어안았다. 
세계적인 대문호가 그녀에게는 "티티새처럼 울었기 때문"에
그에게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피티에-살페트리에 병원에서 아프지 않을 때의 삶은 너무 강렬한 쾌락이라
나는 끊임없이 감동을 받습니다.
소시지국수를 세 입 먹으면 그것은 왕의 관능, 비할 데 없는 관능입니다.(30쪽)

밑빠진 독처럼 기억은 모두 달아났지만, 햇살의 청명함과 창문의 투명함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수간호사의 부드러운 음성과 손길의 부드러움에서 성자를 느꼈다니
그녀는 쓰러져 갑자기 실려간 그곳에서 다시 태어난 것이 분명하다.
3년간의 투병생활을 통해.

"산 채로 죽었던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파스칼 로즈의 유일한 다짐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진실, 오로지 진실, 체험의 도장이 찍힌 진리만을 말할 것. 그 외 다른 것을 쓰는 것은
자신에게 허용하지 말 것. 양념을 치지 말 것.(22쪽)

한마디로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것!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나는 지금 애초에 재료가 무엇이었는지도 분간이 안 가는  
조미료 범벅의 냄비를 마구 휘젓고 있는 기분이다.
한 번뿐인 인생이랍시고, 뭔가 나만의 요리를 해보겠다고 하다가 뭐가 잘못되어......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ng 2006-06-12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이옵니다
제 요리는 무슨 맛일까요....곰곰

플레져 2006-06-12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 보다는 톨스토이가 더 좋아요.
다시 읽어보고 싶은 부활은, 너무 어릴 때 읽었지만
다시 읽는 게 조금 두렵기도 하답니다. 그 사랑 느낌을 받지 못할까봐...ㅎㅎ
여인의 얼굴이 정말 강렬하네요. 피할 방도를 저역시 못찾겠습니다.
일단 보관함...^^

로드무비 2006-06-12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보관함은 무신.^,.~
이번주 책 반납할 때 넣어보낼게요.

mong님, 님의 냄비에서는 아주 담백하고 꼬신 냄새가.^^

건우와 연우 2006-06-12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멋진 리뷰,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nada 2006-06-12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험의 도장이 찍힌 진리만을 말할 것.
정신이 뻐쩍 나는 말이네요. 앨리스 워커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얼굴에 반했었는데, 이 분도 땡겨요~~ 톨스토이가 "티티새처럼 울었"다니... 역시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감수성 같아요.

프레이야 2006-06-12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의 정도.. 양념을 치지 않을 것.. 멋진 리뷰에 멋진 작가의 책이네요.. 난 지금 담백한 요리를 하고 있는걸까..

DJ뽀스 2006-06-12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좀 먹어서 동화같은 톨스토이의 단편들 보고 머리속에서 뭔가가 띵~하고 울렸습니다.
앞으로도 섭렵하고 싶은 대작가님, 언젠가 1220쪽에 달하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꼭 완독하고 싶어요 ^^:

반딧불,, 2006-06-1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이 리뷰의 맛이라니!

rainy 2006-06-13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은 절망도, 고민도, 너무 깔끔하고 힘있고 정의로와요^^
속 마음 다 알길 없어도. 그런 믿음이 생겨버렸어요^^

2006-06-13 0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6-06-13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 J. V. 그런 마음가짐, 몸가짐이 제게도 필요한 것 같군요.

로드무비 2006-06-13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님, 저도요.^^

말의 허망함님, 우와, 아침에 우편함에서 엽서를 한 통 꺼내 읽는 기분이에요.
짐작하시는 것처럼 제게 엽서 주시는 분이 많지는 않습니다.
다들 이상한 짐작 속에서 외로워하고 몸부림친다니까요.ㅎㅎ
깔끔하고 당당한 것도 저와는 거리가 먼 얘기고요.
다만 글 속에서라도 좀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달까요?
나이가 가끔 의식됩니다.
너 지금 겨우 이러고 살아야겠냐?
하는 음성을 듣지요.
이곳에서 너무 오래 놀고 심하게 마음을 붙이는 듯할 때.
그래도 좋은 책 읽고나면 간단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요.
나중에 성장한 마이 도러가 읽기를 바라며.

님의 이야기는 약간의 그리움을 품고 읽게 됩니다.
좋아요.
앞으로도 들려주시길. 물론 내킬 때!^^

rainy님, 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꼭 뭔가를 멋지게
속여넘기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반딧불님, 쪼매 입에 맞으신가요? 다행.^^

DJ뽀스님, 우리 함께 꼭 도전해 보자고요. 불끈=3

배혜경님, 담백하고 화사하시기까지 하세요.^^

꽃양배추님, 또 한 명 이 작가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마르그리트 뒤라스.
직접 교유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뒤라스의 가끔 때로 심통 사나워 보이는 얼굴을 좋아합니다.
인생을 알면 심통스러운 표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제 생각. 히히~

건우와 연우님,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차분하게......^^

sandcat 2006-06-1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실, 오로지 진실, 체험의 도장이 찍힌 진리만을 말할 것이라니!
그러니 저 눈빛도 가능한 거겠지요.

검둥개 2006-06-13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압니까, 예상치 않게 멋진 부대찌게가 되어 나올지?
다 끓여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라고요. 홍홍 ^.^

DJ뽀스 2006-06-13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라스..ㅋㅋ
불소설시간에 모데라토 칸타빌레 번역숙제하면서
궁시렁거리던 친구들이 젤 먼저 떠오릅니다. ㅋㅋ

2006-06-14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6-14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체크님,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전 몰랐어요. 그런 데가 있는 줄.
꼭 가볼게요. 랄랄라~~

DJ뽀스님, 친구들이 왜 궁시렁거렸을까요? 궁금.^^

검둥개님, 예상치 않게 멋진 부대찌라니, 어디 저도 오늘
그런 행운을 꿈꾸며 김치찌개에 햄이나 몇 조각 넣어볼까요?^^

샌드캣님, 저 눈빛 가지고 싶기도 하고 안 가지고 싶기도 하고.
묘한 마음입니다.^^

딸기 2006-06-16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렬한 눈빛의 작가의 사진에 끌려서 책을 주문해 보는 건 참 오랜만의 일이다."

리뷰의 첫 문장만 보고 추천을 누르게 되는 건 참 오랜만의 일입니다.

DJ뽀스 2006-06-16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궁시렁거렸냐면 -_-;;;;;;;;;;;;;;;;; 당연히 숙제하기 싫어서죠!!!
그 당시에 번역본이 없어서 베낄 수도 없는 처지라 ㅋㅋㅋ

로드무비 2006-06-1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J뽀스님, 하긴, 아무리 모범생도 숙제는 하기 싫은 법.
요즘 같으면 인터넷 통해 후딱 해치울 수 있었을까요?^^

오오, 월컵러버딸기님, 정말 화끈하십니다.
첫 문장만 보고.^^
 
서울의 밤문화 - 낮과 다른 새로운 밤 서울로의 산책 서울문화예술총서 1
김중식.김명환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서울의 밤문화>라는 책이 나왔다는 걸 알았을 때 내 머릿속으로는 
한때 시궁쥐처럼 들락거렸던 종로 뒷골목의 허름한 주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쩌자고 "밤문화 = 주점"으로 자동연결되어 버렸을까.
그런데 서울의 밤문화는 술, 혹은 향락산업과 뗄래야 뗄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황금빛 모서리>의 시인 김중식이 공동 필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오래 전 우연히 시인과 잠시 공유했던  밤의 문화가 떠올라서.

어느 날 성대앞의 시문화회관에서 주최한 시인들의 시낭송대회가 끝나고
모 주점에서 열린 뒷풀이 자리에 김중식 시인이 참석했다.
어떻게 된 셈인지 시인들의 시낭송은 기억에 없고, 신xx 시인이 그 주점에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부른 <약속>이라는 노래만 한 곡 달랑 귓가에 남아 있다.
대학가요제 은상을 받은,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곡이었는데......

어느 하늘 밑 잡초 무성한 언덕이어도 좋아
어느 하늘 밑 억세게 황량한 들판이어도 좋아
공간 가득히 허무가 숨쉬고
그리고 하늘 밑 어디에라도
내 시선이 뻗어 그 무한의 거리가
까무러치도록 멀어서
혼자서만 외로워지는 그런 곳이면 좋아
거기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모르는 사람이 반가워지면 좋아 음--

때로는 유행가가 시보다 더 절실하게 마음속에 다가올 때가 있다. 
바로 그날 밤이 그랬다.

각설하고 결론을 말하면, 내가 기대한 김중식 시인이 맡은 2부 "현대 서울의 밤문화"는
조선일보 김명환 기자가 담당한 1부  "근대 서울의 밤문화"에 훨씬 못 미쳤다.
책 속이든 활동사진이든 근대 풍경이라면 넋을 잃고 보는 나의 취향을 감안한다고 해도
시인 고유의 감성은커녕 꼼꼼한 취재가 뒷받침된 것도 아닌, 평이한 글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기생의 기원부터 권번 기생들이 창간한 그들의 애환을 털어놓은 잡지 <장한長恨>,
그들이 가정 파탄의 주범으로 몰리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온 '기생 여급과 남편이 연애할 때
처의 태도'라는 <삼천리> 지의 기사, "가정에 섹스압필을 주어라"라는 어떤 이의 웃기는 대안에
이르기까지  근대의 도입 부분은 너무나 흥미로웠다.

이 책은 서울에 관한 담론의 출발로, 서울 문화예술의 원형을 발굴하고 창조하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의 '서울문화예술총서' 제1권이다.
"거대도시 서울에 꽃핀 지난 100년간의 밤풍경"은 취지나 제목만 거창했지,
1909년 문을 연 우리나라 제1호 요릿집 '명월관'에서 현재의 룸살롱이나 주점까지
한마디로 술집 변천사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그 잘난 밤의 문화는 남성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것이 사실이었다.
세상이 달라져서 여성들도 당당하게 밤의 문화를 주도하는 세상이 되긴 했다만
내용을 살펴보면  뭐 그렇게 신통방통할 건  없다.
심야영화관이나, 헬스클럽, 찜질방, 혹은 새벽까지 불 밝힌 마트에서 쇼핑카트를 끄는 모습 정도랄까.

노래방, PC방, 찜질방, 룸살롱 등 방(밀실)에서 이루어지던 밤문화는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과 함께 한 네티즌의 제안으로 시작된 '효순 미순 추모 촛불집회'로
광장으로 나오기에 이르렀다.

밀실에서 광장으로!
 한마디로 "서울의 밤은 밀실과 광장의 아수라백작"(154쪽)이라는 것이다.
이 말이라도 남기지 않았으면 시인에게 아주 섭섭할 뻔했다.

 



본문 속의 사진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udan 2006-06-10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짝. 김중식 시인과 공유했던 밤의 문화. 시는 잘 몰라도 황금빛모서리는 자주 펼쳐보는 시집이에요.

건우와 연우 2006-06-10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각도에서 읽어내리는 로드무비님의 리뷰를 보면 `나는 절대 리뷰를 쓰면 안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저 신기 신기...

가시장미 2006-06-11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통방통.. 이라는 단어가 눈에 딱 들어오네요. ^-^
그런데 '신통방통할 건 없다.'에서 맥 빠집니다. 으흐흐흐

kleinsusun 2006-06-11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생 여급과 남편이 연애할 때 처의 태도' 라는 기사 재미있겠는데요.
근데...이거 남자가 쓴 거죠? 참아라...현명하게 대처하라...뭐 이런 내용인가요?
궁금해요.^^

로드무비 2006-06-1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기사 제목을 소개하는 정도예요.
가정을 음악화(=술집화)하고 아내로서 섹시한 매력을 보강하라,
뭐 그런 대안이랄 것 없는 대안을 제시하더군요.
근대에 대한 책으로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는 책이 있는데
한 번 읽어보셔요.^^

붉은가시장미님, 맥빠지게 해서 지송혀유.^^;

건우와 연우님, 별 말씀을.
저같이 얼렁뚱땅 쓰는 껄렁한 리뷰말고 리뷰다운 리뷰를 써서
올려주시라요.^^

수단님, 저도 한때 애지중지하던 시집입니다.^^

검둥개 2006-06-12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근대에 대한 책이 정말 많이 쏟아져나오는 거 같아요. 눈치 없는 저 같은 사람까지도 읽게 되었으니. 그러나 저러나 섹스압필은 또 뭡니까요? 궁금해죽겠네요. ^^

로드무비 2006-06-12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눈치없는 사람이라니, 자신을 그렇게 구박해야겠수?^ . ^
섹스압필, 저도 궁금한데 기생처럼 외모를 가꾸고 애교를 피우라는
이야기겠지요. 뭐 별 것 있겠어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생각의 힘을 키우는 꼬마 시민 학교 2
마띠유 드 로비에 지음, 까뜨린느 프로또 그림, 김태희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 집 아홉 살 딸아이가 한사코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있다.
2년째 한 갈래로 질끈 묶는 헤어 스타일 고수와,  치마 절대 안 입기,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오는 학습지 젊은 남자 선생님께 반말하는 것.

아이가 낯을 많이 가려서 어른이 묻는 말에 입을 떼 제대로 대답만 해도 다행이다 했더니,
학습지 선생님에게는 그것이 나름의 애정 표현인지 무조건 반말이다.
어른에게 왜 반말을 하느냐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만의 원칙이라는 것이 마음속에 저절로 생기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왜 이렇게 하면 안 돼?"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어른이야말로 원칙 같은 게 좀 확고하게 있어서 아이가 물어올 때마다 자신있게
대답해 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나 역시 그렇지 못하다.

"넌 왜 항상 그 머리만 고집해? 어느 날은 짧게 단발도 하고 땋기도 하고 그러면 예쁘잖아?"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이의 입에서는,

"그러면서 엄마는  왜 항상 그 머리야?"

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치마 문제도 마찬가지.  엄마가 생활 속에서 직접 실천해 보여주지 않는 한,
아이를 100프로 설득할 순 없을 것 같다.

-- 늘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 순 없어요.

그것이 "생각의 힘을 키우는 꼬마 시민학교" 두 번째 권인 이 책의 큰 주제이다.
지금이야 나도 아이가 친구와 놀다가 사소한 잘못을 달려와 고자질해 바치면 
그러면 안된다고 점잖게 말한다.
하지만 간혹 텔레비전에서 왕따나 친구들의 폭력으로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어
흐느끼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철렁하면서......

"친구가 이유없이 때리거나 괴롭히면 숨기지 말고 엄마에게 이야기 해 줘야 해!"

아이가 고학년이 되고 그런 당부를 해야 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내 마음대로 할 거야>는 가스똥이라는 꼬마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따라가며
코믹한 그림과 함께 어떤 주제별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왜 어른들은 항상 이래라 저래라 해요?

어서 가서 자라는 엄마의 말에 아빠의 손에 끌려가며 가스똥이 묻는다.
아빠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아빠 엄마 같은 어른들은 너희보다 오래 살았고, 그만큼 세상에 대해 잘 아니까.
아빠랑 엄마가 너희한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건
너희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거야.

아이의 모든 질문에 나의 대답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부모로서 미처 모르고 있던 현명한 대답이나 대화의 기술을 가르쳐준다기보다는,
솔직한 자세로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하라는 것이다.

아이가 재미있게 읽는 것도 읽는 거지만, 다정하고 코믹한 일러스트에
한 장면 한 장면의 내용이 꽤나 구체적이어서 아이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쩔쩔매는
예비, 혹은 초보 학부모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J뽀스 2006-06-08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딩때 올빽 포니테일이 제 트레이드마크였습니다.
ㅋㅋ

로드무비 2006-06-08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J뽀스님, ㅎㅎ 그랬군요.^^

nada 2006-06-0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똘똘한 주하.. "그러면서 엄마는 왜 항상 그 머리야?" ㅎㅎ

아이 키우자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로드무비 2006-06-08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는 왜 항상 그 머리야? = 엄마는 왜 항상 그 모양이야?

제 귀에는 그렇게 메아리 칩니다.;;

치니 2006-06-08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경우에는 그냥 '모르겠어'라고 한 적도 꽤 많은거 같아요.
그게 더 안 좋으려나...

Mephistopheles 2006-06-0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기회에 머리모양에 많은 변화를 한번 줘보세요..^^

플레져 2006-06-0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테고리 이름 '어린이책'이 유난히 마음에 들어요 ^^
저도 가끔은 어린애...ㅎㅎ
너무 순종적인, 얌전한 아이였던 것 같아요.
아, 그래도 패션만큼은 내맘대로 했습니다 ^^
형제들이 많아서 저 하나쯤은 뜻대로 하게 두신것 같아요 ㅎㅎ

검둥개 2006-06-08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와 같은 헤어스타일이라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어요.
실없기는 ^^;;;

얼룩말 2006-06-08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하면 안돼?' 순간 경직됩니다. 주하 넘 맘에 들어요^.^

프레이야 2006-06-08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당차고 똑똑한 주하네요~~ 님과의 말싸움이 늘 재미나게 들려요.

건우와 연우 2006-06-0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똑한 주하..아이들이 가끔 어른 말문을 턱 막지요. ^^

로드무비 2006-06-10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마이 도러는 아주 가끔 드물게 똑똑해 보여서...^^

배혜경님, 저한테만 당차니 그게 문제지요.ㅎㅎ

얼룩말님, 왠지 님과 마이 도러 죽이 맞을 듯.^^

검둥개님, 그 헤어스탈이 사실 제일로 편하죠?
게으른 사람에게는?=3=3=3

플레져님, 패션 하나만은 마음대로 하셨다니!
그것만 해도 어디예요?
전 매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순둥이였디요.^^

메피스토님, 많은 변화라 하시믄, 삭발 내지는 뽀글이 빠마?=3=3=3

치니님, 저도 모른다고 자주 합니다.
모를 때는 모른다고 하는 게 낫겠죠, 뭐.^^
 


장작을 패며 나는 배운다

싸움꾼의 원칙과 자세에 대하여.


두 눈 부릅떠 결을 가눌 것

옹이는 절대 피할 것

순서는 마른 것에서 젖은 순으로.


한두 시간이 아니라

하루이틀이 아니라

평생을 도끼질할 때

원칙과 자세가 바로 생명이라는 것을.


                          --시집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1990년, (<한국대표노동시집> 475쪽)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는  제목이 좋아서 나도  지니고 있는 시집인데
이상하게 이 시는 오늘 아침에서야 처음인 듯  내 눈에 들어온다.

백무산의 '장작불'이란 시가 있었다.
노래를 만든 이는 백창우였던가?

아무튼 가사도, 비장한 멜로디도 너무 좋아서
한때 음주 후 반주 없이 부르는 노래로 즐겨불렀던 곡이다.

자취 때부터 지금까지 결혼하고도 내 뒤를 졸졸 따라 다니는 남동생은
신촌의 대학가에서는 이름이 꽤 알려진 노래패('맥박')에서 활동했다.
오오래 전,  학교 강당에서 공연이 있다고 오라 해서 퇴근 후 갔더니
조금 늦었는데,  강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로 내 남동생이 무대 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멤버들이 옆에 포진하고, 잠시 솔로였다.

내 가족이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지켜본 이라면 그 기분을 알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노래 '장작불'이라니......
그때의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장작불

                                      백무산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먼저 불이 붙은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늦게 붙은 놈은 마른놈 곁에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몸을 맞대어야 세게 타오르지
마른 놈은 단단한 놈을 도와야 해
단단한 놈일수록 늦게 붙으나
옮겨 붙기만 하면 불의 중심이 되어
탈거야 그때는 젖은 놈도 타기 시작하지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몇 개 장작만으로는 불꽃을 만들지 못해

장작은 장작끼리 여러 몸을 맞대지 않으면
절대 불꽃을 피우지 못해
여러 놈이 엉겨붙지 않으면
쓸모없는 그을음만 날 뿐이야
죽어서도 잿더미만 클 뿐이야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만국의 노동자여』,청사,1988.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6-06-08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움꾼의 원칙과 자세에 대하여.-
장작 패는 걸 생활화 하면 주먹이 단단해 진다고 하더군요..^^

푸하 2006-06-08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작을 패고, 불을 지피며...
장작을 패는 자세로 일을 하면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로드무비 2006-06-08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왜 아니겠습니까!

메피스토님, 마치 주먹이 단단한 싸움꾼인 듯이!=3=3=3

mong 2006-06-08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눈 부릅떠 결을 가눌 것-
부릅~

비연 2006-06-08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군요...퍼갈께요^^ 물론 추천도!

로드무비 2006-06-0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뿔씨를 불씨로 고쳐주세요.
지금 읽어보니 눈에 띄네요.^^

mong님, 이제 그만 '게슴츠레' 모드로!
눈 아파요!ㅎㅎ

프레이야 2006-06-08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적인 시, 잘 읽고 갑니다. 백창우의 곡으로 불린 노래, 저도 듣고 싶어지네요. 뭉클했을 것 같아요 정말..

건우와 연우 2006-06-08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생을 도끼질할때 원칙과 자세는 언제나 생명이었지요!!
이제는 그 원칙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사람으로서 백무산은 조금 쓸쓸...

로드무비 2006-06-08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시인이 너무 멀리 가버렸나요?
어디쯤에서 잠시 마음을 달래고 있는 거라면
그 점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잘은 모르지만......'쓸쓸'에는 동의.

배혜경님, 그 순간, 가슴이 좀 설레더군요.^^

플레져 2006-06-08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 제목 참말로 좋아요.
로드무비님 동생분이 동주 아빠시죠?
참 멋지십니다 ^___^
저 가사에 어떤 멜로디가 붙여졌을지 무지 궁금.

2006-06-08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로이카 2006-06-09 0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변에 '장작불'을 잘 부르던 선배가 있었지요.. ^^ 그 노래는 술이 거나해져서 들어야 제 격이었는데...

비로그인 2006-06-09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있는 시네요 .장작불. 추천 꽝!

로드무비 2006-06-10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서린님, 힘도 좋으셔라.^^

에로이카님, 자칫하면 멜로디가 처지기 쉬워서 부르는 사람도
거나해져서 부르는 게 좋지요.^. ^

마음으로 다가와님, 언제든 말씀하세요.
저도 선물받아 읽은 책이고, 또다른 주인이 있으면
책으로서는 그 이상 기쁜 일이 어딨겠습니까.
마음 내키실 때 말씀해 주세요.^^

플레져님, 동주 아빠 맞아요.ㅎㅎ
그때는 멋졌지요.^^;

2006-06-14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