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박이소, 종이에 먹


설치미술가 박이소(1957~2004)는 미국에서 작품활동을 할 당시
박모(朴某)라는 이름을 썼다. 박 아무개라는 말이다.
이현주 목사가 이 아무개로 글을 발표하고 책을 내는 것처럼....
이름 따위는, 하는 결기가 느껴져 좋다.

사진작가 추영호를 검색하다가 지난해  '박이소의 잔상 展'이라는
사진전시회를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잡지사의 인터뷰 관련 일로  화가의 작업실에 사진을 찍으러 간 일이 있는데 
작업실 분위기랑 화가의 수줍은 모습에 매료되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꼭 다시 와서 친구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해인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미혼인 채로......
'박이소의 잔상' 展은 그를 추모하는 전시회인 셈이다.

추영호가 찍은 화가의 얼굴과 작업실 사진에 매료되어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니
어느 블로그에  이 그림이 걸려 있다.
제목, '그냥 풀'.
이름 박모와 상통한다.

'박이소'는 그가 한국에 돌아와 활동하게 되자 지인들이 지어준 이름이라 한다.
다음은 그의 얼굴과 房 사진이다.










 

 

 

 

 

 

 

 

 

 

 

 

 

 

 

 

 

 

 

 

 


'허공을 응시하는 그'   추영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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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2006-08-26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서늘한 느낌...

로드무비 2006-08-26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아서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얼굴.

클리오 2006-08-26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너무나 다가오는 얼굴이여요. 마음을 움직이는.... 그냥 풀도 맘에 들구요...

건우와 연우 2006-08-26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표한 분이네요...

Mephistopheles 2006-08-27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걍풀~ 이라고 읽어버리고 만화가 강풀을 생각해 버렸다는...^^

로드무비 2006-08-27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걍풀이라니, 메피스토님, 메피스토님답습니다요.=3=3=3

건우와 연우님, 그렇지요?

클리오님, 마음을 움직이는.....^^

비자림 2006-08-27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풀"이 참 좋네요.
힘주어 말하는 말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로드무비 2006-08-30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제목과 그림이 일치하지요?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는 무연한 어른의 얼굴이 보고 싶어요.
 



 



홍대 앞에 살 때는 시립도서관에 책 빌리러 갔다가 근처 쌈지미술관에도 자주 들렀다.
물론 전시가 있을 때.
2001년 봄, 사진작가 추영호의 愛以示發 룰루랄라展을 보러갔더니
다 쓴 필름 깡통을 전시실 한 구석에 쌓아놓았다.
원하는 사람은 기념으로 가져가라고.

평소 깡통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지라 두 개를 가져왔다.
호치키스 알이니 클립이니 명함이니 자잘한 것들을 보관하기에 딱이다.
예쁜 그림이나 사진을 뚜껑에 동그랗게 오려 붙이면 과자통으로도 그만일 텐데
게을러서 그 짓은 못하고.

<씨네21>을 구독하면 몇 개의 사은품과 함께 깡통 필름통을 선물로 준다며
사진을 올려놓았기에 문득 생각나서 연두색 포스트잇으로 올린다.

전시회에 온 손님들에게 이런 선물을 손에 들려 보낼 생각을 다 하다니,
정말 신통방통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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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8-25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이 만화영화제작사에 근무했을 때 몇개 가져다 주었는데 그 필름깡통들 다 어디뒀을까...

mong 2006-08-25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들부들....저도 깡통 디게 좋아해요 ㅜ.ㅡ

로드무비 2006-08-25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생각난 김에 깡통들 몇 개 보여드릴까요?
(저 오늘 한가해요~~~)

브리니님, 색상이 그래서 그런지 필름통만 물끄러미 보고 있어도
좋더라고요.
동생분이 만화영화 제작사에 근무했어요?^^

Mephistopheles 2006-08-25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아이디어도 기발하고 신통방통하네요...
자연스럽게 그 깡통 볼때마다 전시회 생각날꺼 같은데..^^

sandcat 2006-08-25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릇이나 접시보다는 깡통과 유리병이 좋아요. 보여주세요.

로드무비 2006-08-25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메라에 이상이 생겨 새로 찍지는 못하는데
샌드캣님, 예전에 찍어놓은 것 찾아볼게요.ㅋㅋ

메피스토님, 뭐 하나라도 손에 들려 보내는 다정한 마음씨.ㅎㅎ
님은 뭐 전시회 할 것 없나요?=3=3=3

하루(春) 2006-08-25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이시발 ㅋㅋ~
어머, 필름통을 필통으로 읽었어요. ^^;;

루니앤 2006-08-25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들렸습니다만_ 좋 네 요 : - )

nada 2006-08-25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뻐요. 엽서나 사진 담아놓으면 좋겠어요~

2006-08-25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8-25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저도 직장주소밖에 몰라요.
뭘 하시려는지 알겠슴둥.^^

꽃양배추님, 두어 개 더 집어올 걸 그랬나요?=3=3=3

smilesally님, 반갑습니다.^^

FTA반대 하루님, 전시회 제목이 좋아서 간 거디었답니다.^^

로드무비 2006-08-25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로 올리긴 거시기하고 깡통 보여드리겠다고 했으니 댓글로.......
샌드캣님, mong님,  나중에 가스패르 & 리사 양철가방 찍어서 보여드릴게요.^^

반딧불,, 2006-08-26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와...아니 저렇게 이쁜 깡통들이^^
보는ㄱ ㅓㅅ만도 탐이 나는걸요.

2006-08-26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6-08-2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평범한 것도 특별하게, 그래서 갖고싶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세요. 근데 저 시네21 구독하는데...잉....못받은 것 같은데...

로드무비 2006-08-26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최근에 새로 마련한 유인작전용 선물인가 봐요.
그리고 음화화, 제가 좀 그런 면이 있습니다.=3=3=3

아쉽습니다 님, 그런 선물을 생각하시다니
정말 멋지십니다.^^(맞죠?)

반딧불님, 제가 전생에 다리밑의 거지였나 봅니다.
찌그러진 양푼이 그리 좋은 걸 보면.....
패딩턴 양철통은10년 전에 꽤 거금을 주고 샀답니다. 헤헤~~


oooiiilll 2006-08-26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위생적이기는 하나, 게으른 흡연자의 재떨이로 아주 그만이기도 하죠

로드무비 2006-08-26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트님, 딱이겠습니다요.^^
 
핑퐁 1
타이요 마츠모토 지음 / 세주문화 / 2000년 8월
평점 :
절판


최근 두 여배우(고현정, 장진영)와 동시에 또 따로 영화를 찍은 김승우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연기력에 관한 것이었는데, '선천적인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으로......
속으로 나는 '건방진 자식!'이라고 욕을 해주었다.

재능은 그렇게 두부모 자르듯이 단칼에 잘라지는 것이 아니다.
'선천적인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이라면 열에 아홉은 선천적인 재능 쪽을 택할 것이다.
젊었을 때라면 나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다르다.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여 얻은 사랑과 보수가 제일 소중하다는 것.
재미없는 대답이지만 할 수 없다.
세상에 태어나보니 미모와 재산과 재능이 이미 나의 것이었다면 틀림없이 나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내것이 아니었던 그 삶이, 별로 애달프지도 않다.

('재능은 모락모락 냄새를 풍기지만 뭔가 불길하며,
자신의 재능을 확신하고 콧대를 세우는 순간,
천길 벼랑 아래로 추락한다' 가 '재능'에 대한 나의 정리.)

전설적인 절판만화 <핑퐁>을 읽었다.
달포 전 마츠모토 타이요의 <하나오>를 읽고 리뷰를 올렸는데
그의 대표작 <핑퐁>을 보고 싶어한다는 댓글을 읽고 어느 님이 빌려주신 것이다.
핑퐁이 소재인 스포츠 만화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이 만화 처음부터 끝까지
재능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사실 '눈부신 미모'라는 말보다 더 눈부신 것이 '눈부신 재능'이라는 말이다.
재능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마음은  '사무친다'라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겠는데....

어릴 때부터 인생이 심드렁하게 여겨져 잘 웃지도 않는 츠키모토는
단짝친구 호시노의 권유로 핑퐁을 배운다.
하지만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도 탁구도 어차피 죽을 때까지의
심심풀이 땅콩"
이라고 말하는 소년.
무엇인가를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 자체가 소년에겐 넌센스인 것이다.

초등학생일 때 츠키모토에게 탁구를 가르쳐준 호시노는 자신의 등 뒤로
숨기만 하는 이 내성적인 소년의  유일한 친구인데.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인생에 도무지 열의가 없는 츠키모토에게
자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재능(탁구)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난 말야 츠키모토, 네 플레이가 싫어. 상대선수의 심정을 고려해서 치는 네 공은,
정말로 추악해.  방자하기 짝이 없단 말이다."(제2권 47쪽)

승부에 대한 아무런 욕망이 없는 츠키모토의 플레이에 대한 라이벌 선수의 비난이다.
'전력을 다해 싸우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라는 말이다.
자신의 미모에 무심한 여인에게 일렬횡대로 줄을 서서 꽃을 바치는 남자들처럼,
'탁구 까짓것'이라고 생각하며 라켓을 잡은 츠키모토 앞에 죽을 힘을 다해 싸우는
상대선수들은 나가떨어진다.
이것이 인생의 아이러니이고, 또, 재미 아니겠는가.

<하나오>에서 소년을 놀려먹던 구멍가게의 노파가 참 인상적이었는데
<핑퐁>에도 그런 중늙은이가 둘이나 나온다.
무명인 츠키모토의 재능을 알아보고 코치를 자처하고 나선 은퇴한 탁구선수 코이즈미랑,
그와 친구 관계인 타무라탁구장 주인 할머니.

이 만화, 아주 사실적인 그림도 그렇지만 감상적이거나 교훈적이지 않아서 참 마음에 든다.
입에 담배를 달고 사는 무뚝뚝한 타무라 할머니와,
자신의 역할은 "단지 소년을 다음 단계로 데리고 가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코이즈미.

두 사람은 세상에서 말하는 멋진 노인과는 거리가 아주 먼 몰골이지만,
내가 희망하는 미래의 모습에 근접해 있다. 









 








***이승우의 소설 <생의 이면>과 이 만화에 나오는 탁구 용어  '이면 타법'을 가지고
제목을 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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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24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도 근사하고 쫀득쫀득한 맛이 나는 님의 글 잘 읽고 갑니다.^^

Mephistopheles 2006-08-24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견해를 피력할 정도로 김승우의 연기가 뛰어나거나 대단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데 말이죠...^^ 이 책을 복사해서 김승우에게 보내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물론 신장개업이라는 영화에서의 혈압 오르게 하는 연기보다는 발전하긴
했지만요..^^)

중퇴전문 2006-08-24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즈 메달을 사양한 채, 숲에서 버섯을 따고 있다는 분입니다.
 웬만한 재능도 다 처절한 노력으로 보이게 한달까요. 

 그래도 저런 천재성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웬지 맘이 푸근해집니다.

 쌍칼 형님은 좀 오버했군요.;


해리포터7 2006-08-24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저일본만화책 그림이 참 독특하네요.그림이 잊을 수 없게 만드는것 같아요. 진짜로 김승우가 그런말을 했다니...거참...

2006-08-24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6-08-24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 무비님의 리뷰를 읽으면, 직접 읽은 것보다 더 읽은 것 같을 때가 많아요.

반딧불,, 2006-08-24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사족 하나 없는 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8-24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기뻐요.^^

hnine님, 좋아하는 것에 대한 묘사가 세부적이어서
아마 그런 느낌을 받으시는 것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해리포터7 님, 그림 정말 독특합니다.
귀에 쏙쏙 박히는 말들도 많고요.^^

중퇴 전문님, 마법사처럼 보이는 그분은 누구시랑가요?ㅎㅎ
비범해 보입니다.
리뷰에서는 말을 저렇게 했지만 재능 저도 갖고 싶어요.
천재성의 광휘만큼 매혹적인 것도 없는 듯.
쌍칼 형님은 저 말 해놓고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했을까요?^^

메피스토님, 복사비가 아까워서.ㅎㅎ
문방구도 멀고요.
신장개업에서 진희경, 명세빈도 무지 웃겼어요.^^

비자림님, 쫀득쫀득하다는 표현이 범상치 않은데요?^^

건우와 연우 2006-08-25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책도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만화책만 들고 사는데, 이러시면 또 질러야하잖아요...ㅠ.ㅠ

nada 2006-08-25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진영이 무지 섭섭하겠네요. 그래도 같이 영화 찍은 배우들한테 저렇게 표나는 말을 하면 어쩌라구..

sandcat 2006-08-25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인디필름페스티벌에서 상영되는 <핑퐁>이 이 핑퐁인 거지요? 오늘 보러 갑니다, 이 페이퍼 땜에...

로드무비 2006-08-25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컴이 자꾸 다운되어 댓글도 못 쓸 형편이네요.
샌드캣님, 영화 재밌게 보시고 와서 얘기 해주세요.^^

꽃양배추님, 인간이 너무 단순하지요?ㅎㅎ

건우와 연우님, 언제 제 만화 좀 빌려드릴게요.^^

2006-08-26 0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8-26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쓰는 방식 님, 서늘한 핵심이라니,
어쩜 말씀도 그리 서늘하신지.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씀을......^^

2006-08-28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29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30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oldhand 2006-08-31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배를 째고 어쩌고 하는 경황없던 주간에 올라온 리뷰라서 이제야 봤습니다!!
제가 인터넷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본 수많은 <핑퐁>에 관련된 독후감과 감상들 중에 단연 최고의 리뷰입니다. 아, 너무 멋지잖아요.

로드무비 2006-08-3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 맹장수술 하셨어요?
아이고, 고생하셨어요.
경과는 좋으시죠?
안 그래도 이 리뷰 제일 먼저, 아니 두 번째로 보여드리고 싶었답니다.
첫번째는 책을 빌려주신 분이고요. 헤헤~~
 

좀 전, 일은 진도가 안 나가고 몹시 피곤하여 브로콜리 가루를 생수에 타서
한잔 마시려는데 난데없이 '선물'에 대해 떠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브로콜리 가루는 지난 가을 지리산에 함께 놀러간 가족에게 선물받은 것이다.
지리산에 놀러간 세 가족 중 한 가족의 가장은 책장수님의 '선배' 뻘이고,
다른 한 집 가장은  후배 뻘.

그런데 그 후배의 아내가 두 통의 브로콜리 가루를 미리 준비해와
한 통씩 선물하는 게 아닌가!
투명한 예쁜 용기에 가득 담아 리본으로 묶은 브로콜리 가루는
시중에서 구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너무 고마웠던 나머지 돌아오던 날, 큰 초코케이크를 한 상자 사서 손에 들려주었는데
뭔가 미진한 기분을 느꼈다.
그토록 성숙한 어른의 선물에, 급조한 아이의 선물이라니!

얼마 전  만리포 바닷가에 놀러갈 때 그녀는 또 깜짝선물을 준비해 왔다.
매실을 사서 먹기 좋은 뭉근한 액체 상태로 직접 달인 것.
아이들 배 아플 때 한 찻숟가락 물 반잔에 타서 먹이면 즉효라고 한다.
소주 한 병에 소줏잔으로 반 잔 정도의 매실액을 섞어서 마시면 숙취도 없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그의 어른스럽기 짝이 없는 선물에
무엇으로 조금이나마 보답해야할지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별 뾰족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 도로 옆에 천막을 친 그 지역의 특산물 서산육쪽마늘에
관심을 보이는 그녀.(어쩜,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사람이 그토록 성숙하고 알뜰살뜰한지.)

서산육쪽마늘이라니, 어른의 선물 중에서도 정말로 흐벅지고 알토란 같은 선물이 아닌가.
물론 어렵게 공수한 브로콜리 가루나, 직접 달인 매실액에는 견줄 수 없겠지만......

차를 세우고, 세 접짜리 마늘을 큰 망으로 하나 사서 세 자루로 나누었다.
그리고 기세좋게 지갑을 빼들었다.
아아, 마늘 한 자루씩을 선물하고 나니 얼마나 가슴이 벅차오르는지.....
진정한 어른, 성숙한 어른의 세계에 비로소 입문한  듯한 기분.

다음이 바로 자랑하고 싶은 어른의 선물이다.
브로콜리 가루를 탄 물을 마시려다 색이 너무 예뻐서 부랴부랴  카메라를 찾아 한 컷 찍었다.
김치냉장고에 보관해둔 매실액도 덩달아 끌려나와 한 컷.

서산육쪽마늘 사진은 거시기해서 안 찍었다.
이것이 진정한 어른의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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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8-21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브로코리가루라니!!!!
첨 보았습니다..행복해하시는 심정이 여기까지 밀려옵니다~~.

하늘바람 2006-08-21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도 첨이에요 브로콜리 가루라 아주 신기하네요 맛보고 싶어요

sooninara 2006-08-21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차보다 더 진해보여요. 핸드메이드라니..부럽..
어른의 선물이나 아이의 선물이나 선물을 다 좋은거 아닌가요?

urblue 2006-08-2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로콜리 가루를 직접 만든건가요? 부러워요~
어떻게, 만드는 방법 좀 알 수 없을까요? ^^;;

로드무비 2006-08-21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 물론입니다.
어른의 선물이든 뭐든 선물은 좋지요.
그런데 저런 선물을 준비하여 주는 이는 처음 봤어요. 너무 신기해서...^^

하늘바람님, 여동생이랑 반 나누느라 조금밖에 없어서.
맛 좀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

반딧불님, 매실이든 브로콜리든 한잔씩 타마실 때마다 신기하고 흐뭇하고.
사실 반딧불님도 저것 못지않은 멋진 선물을 주시는 분이잖아요.^^

로드무비 2006-08-2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그이의 오빠가 소량(판매용으로)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하던데......
듣자하니 곧 또 만들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정보 입수되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mong 2006-08-2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언제쯤 저런 어른스러운 선물을 해 볼까요? ㅎㅎ
(받는건 꿈도 못꾸는...)

Mephistopheles 2006-08-2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감성포인트는 아기자기한 핸드메이드였군요..^^

로드무비 2006-08-21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잘 만든 핸드메이드요.ㅎㅎ
공산품에도 약하고 먹을 것이라면 더더욱!=3=3=3

mong님, 전 아예 흉내조차 안 내기로 했어요.
그런데 나름대로 '서산육쪽마늘'은 꽤 괜찮은 선물 아이템.
이름부터 멋지지 않습니까!^^


2006-08-21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8-21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걍 뜯어서 님, ㅋㅋ,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무튼 연구 끝에 영양소 조금도 파괴하지 않고 만들었다고 하던데.
비법 알면 갈챠드릴게요.
함께 동업하실래요?^^

2006-08-21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6-08-21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옹 브로콜리 가루, 맛은 어떤가요? 맛만 괜찮으면 흡연가인 저도 시도해보고 싶은데...브로콜리가 니코틴 제거에 좋다고 어디서 주워들어서.

blowup 2006-08-21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과 내용 모두 근사해요. 근데, 브로콜리를 왜 굳이 가루로 먹어야 할까, 궁금해요. 그냥 먹기도 편한데 말이죠. 맛도 좋구요. 가루보다는 데쳐서 먹는 게 더 맛날 것 같은데. 아닐까요? 아님 말리는 과정에서 영양소가 증가하는 걸까요? 알려주세요!!

로드무비 2006-08-21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브로콜리가 아무리 몸에 좋다지만
매일 데쳐 먹게 되지는 않잖아요.
녹차처럼 손쉽게 한잔 타서 쭉 들이키는 게 좀 더 간편할 듯.
영양소 파괴가 전혀 없이 어찌어찌 가루로 만들었다는데
나중에 통화할 때 자세히 물어볼게요.
브로콜리 냄새가 너무 생생해서 물에 타주면 남편은 싫다는데
전 그래서 더 좋아요. 아무래도 몸에 좋겠지 싶어서.^^

치니님, 브로콜리 냄새가 확 납니다.
조금 비린 듯하기도 하고 꼬숩고.
브로콜리 가루를 파는 곳은 아직 못 봤네요.
그래서 더 흐뭇했던 선물.=3=3=3
(맛을 한 번 보게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벌레 먹은 브로콜리 님, 그렇구만요.
벌레들도 브로콜리의 영양가를 아는지.ㅎㅎㅎ
님의 텃밭 궁금합니다.^^

해리포터7 2006-08-21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첨 들었어요..늘 브로콜리를 데쳐서 초장에 찍어먹을 줄만 알았지요..맛은 어떤가요? 영양이 넘치겠군요.ㅎㅎㅎ님께서도 잘 대처 하셨구만요...그만하면 최선을 다했잖아요^^맘이 중요한것이 아닐까요? 님의 마음을 다 아실거에요...

sudan 2006-08-22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게 저렇게 이쁜 컵에 들어 있어서 그렇지, 맨 유리컵에 덜렁 담겨져 있었으면 보나마나 전 '우엑, 녹즙이당.' 했을 것 같아요. (초록 녹즙은 써요. -_-) 어른의 선물도 어른 심성을 가진 분한테만 통하나봐요. ^^

waits 2006-08-21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가 준 마늘 야채칸에 한참 뒀다가 물 줄줄 흐르는 채로 버렸는데... 역시, 선물은 자격 있는 사람에게 가야하는 모양이예요. 그나저나 브로콜리 가루가 저리 예쁜 컵에 담기는 줄 아신다면, 선사하신 분 기분이 아주 좋아질 것 같은데요...^^

에로이카 2006-08-22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로콜리가 몸에 좋군요... 베풀고 베품 받고... 로드무비님 페이퍼의 한 테마인 것 같아요...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부러운... ^^

치유 2006-08-22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게 가루도 있었어요??첨 알았네요..색이 정말 이뻐요..컵색과 환상입니다..정성스런 선물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8-22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이 담긴 선물은 받는이나 주는이나 두고두고 흐믓해요...^^
브로콜리가루 색이 정말 곱네요.^^

2006-08-22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22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24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8-25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

건우와 연우님, 정성이 안 담긴 선물도 선물이라면 좋더라고요.
이 탐욕.ㅎㅎ
안 그래도 물 색상이 너무 이뻐서 충동적으로 사진을 찍었답니다.^^

배꽃님, 마침 저런 컵이 하나 있어서요.
투박하게 생긴 것이 잡으면 안정감이 있어 늘 애용합니다.
부로콜리 가루와 천생연분이죠?^^

에로이카님, 브로콜리 많이 드세요.
그렇게 몸에 좋다네요!
몸에 좋다면 양잿물이라도 마실 기세.ㅎㅎ
흐뭇하시다니 저도 좋습니다.^^

평택 나어릴때님, '평택'으로 붙이셨군요.
마늘은 갈아서 냉동실에 보관하는 게 좋은데 아깝네요.
오늘부터 노는 손에 마늘을 좀 까려고요.
여러 가지 생활정보를 들려주는데 참 유용하더군요.
전 그에 비하면 주부라고 할 수도 없어요.;;
(세 사람이 길을 걸으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

수단님, 전 아직 기분에 천둥벌거숭이 같은데......
가끔 비감스럽고 당황이 돼요.
아직 인생에 적응을 못해서.
그런데 어른의 심성이라고 해주시니... 만세!!!

해리포터7님, 그나마 마늘 선물할 생각이 떠올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집에 돌아와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답니다.^^

올리브님, 컵에 일가견이 있으시죠?
싸구련데 마음에 드는 컵입니다.^^

 

미열이 찾아와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창밖에는 스산한 바람

보름달이 방충망에 걸려 있다

이 밤이 너에게도 가 있다는 건

지금 내가 해본 말이다

젊은 날 우리의 애인은

예쁘기도 했었다

밤은 왜 날마다 찾아왔느냐

술집 문이 닫힌 골목은 길었고

우리 중 한 사람은 더 가난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말할 수 없이 쓸쓸해진다

잠이 달아난 밤에 접어두었던

옛사람의 글도 이젠 그만 펼치고 싶어진다

安貧樂道도 사람을 가리고

한 개뿐인 술잔을 엎어놓은 지도

꽤 되었다.

내게 벗이 있어

만나면 또 헤어질 터

무엇이 차고 무엇이 비어질지

가늠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 중 한 사람은 

먼저 세상을 뜨니

남은 사람이 그런 걸 기억하고

늦은 밤 창문을 닫고 돌아서리라


                                                       --우영창 시집 <사실의 실체>  2006년, 세상의 아침 刊

 

-------------------------------

"우리 중 한 사람은 더 가난했다 / 그런 걸 생각하면  / 말할 수 없이 쓸쓸해진다"

자신의 가난이나 고독에 대해서 대놓고 자꾸 들이대면 외면하고 싶다.
물론 취향의 문제이다.
입만 열면 그렇게 말하는 것도 취향, 그런 걸 싫어하는 것도 어쩌면 가소로운 취향.

누가 더 가난한지, 누가 더 고독한지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으로 말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기막힌 사정을 생각한다.

'사실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나이에 이르고 보니
모든 것이 가소롭고, 또 애틋하다.

(**아참, 그렇다고 해서 가난이나 고독을 관념적으로만 바라보거나 마음속에서
제멋대로 처리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 오해하고 마음 상하실 분이 있을 듯하여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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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16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여기 처음 와 봅니다.
몇 군데서 님을 뵈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인사는 처음 드리네요.
어젯밤의 제 마음의 빛깔이 여기 담겨져 있네요...

로드무비 2006-08-16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반갑습니다.
저도 여기저기서 님의 이름을 마주쳤던 듯.
시 가끔 올립니다.
좋아해 주셨으면......^^

2006-08-16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16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8-16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제 스스로가 가소롭고 애틋할때도 있답니다....ㅠ.ㅠ

2006-08-16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ndcat 2006-08-17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샀답니다. ^^

로드무비 2006-08-17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샌드캣님, 잘하셨어요.^^
어느 시를 올릴까 한참 망설일 정도로 마음에 드는 시가 많았답니다.

마음은 한글창에 님, 저도 뭐 꼭 쓰고 싶은 게 있으면 잠시 들어오고
서재활동이 여의치 못합니다.
제목이 좋은데요? 그런데 무신 뜻인지......
마음 내키시면 저도 한 번 보여주세요.
제가 좀 독선과 아집은 있는 사람이지만 또 아주 객관적인 데가
있걸랑요. 헤헤~~
나중에 시간 날 때 님 방에 들를게요.
우리, 막바지 무더위도 거뜬히 물리치자고요.^^

건우와 연우님, 전 제가 가소로울 때가 더 많아요.ㅎㅎㅎ

뜨거운 커피님, 전 님이 먼 곳에 계신 줄 몰랐어요.
말씀하신 페이퍼(리뷰) 찾아서 읽어봤고요,
새삼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오래 전 제가 그에 대해 쓴 글이 있는데 읽어보셨는지?
어쩌면 제가 닫아버린 서랍 속에 들어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님의 댓글 보고 맥주 한잔 생각이 간절하더군요.^^

괜히 웃음도 나고 님, 맞아요.
세상에서의 모든 분주한 움직임도 알고보면 벗을 구하는 일에
다름아닌지도.......
나이도 상관없고요.
마음이 휑했다가 또 알수없는 의욕에 불타고.
사실 그런 날은 점점 줄어듭니다.
자기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항상 뒤통수로 느껴집니다.
그것만 없어도 좀더 자유롭고 즐겁게 살 텐데.
그나저나 주소 좀 가르쳐달라니까요.
이사가신 것 같아서.^^


2006-08-17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17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