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추하고도 아름다운 세상

무심한 책읽기

따스한 진창

밥풀책방

출입문 혹은 복도

아직 식지 않은 국 건더기

식물성 인간

주지육림의 추억

종이와 필름

증발하고 남은 녀석, 소굼

진심, 네 번째 다짐

낡은 마호가니 책상

허영의 창고

내가 걸었던 거리들

 

--------------------------------

즐겨찾기 해둔 분들의 알라딘 서재 지붕에 주소와 함께 적혀 있는 
문패가  문득 눈에 띄어서......

무심히 읽어나가다가 그가 누구이든, 지금 이 순간 詩語처럼
문득 내 눈(마음)에 들어오는  이름들을 한 번 적어보았다.
생각해 보면 나의 경우에는 별로 심혈을 기울이지 않고 서재 등록 당시
문득 떠오른 책 제목( '쿠오레')을 써넣었다.
닉네임도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영화 제목으로......

처음 서재활동을 할 때 나는 '소굼'과 '느림'님의 닉네임이 참 좋았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간명하고 함축된.

하나하나 옮겨 적으며 생각해 보니 닉네임과 잘 매치가 되는 문패도 있고,
솔직히 언제 즐겨찾기를 했는지 누구인지 모르겠는 문패도 있다.
너무너무 그리운 이도 있고......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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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6-09-18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누님이 댓글을 남기셔도 항상 누님이 그립습니다. 낄낄. 농담일까요 아닐까~요~! =3=3=3 그나저나 '주지육림의 추억'은 참 와닿습니다... -ㅅ-

Mephistopheles 2006-09-18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알았다..로드무비님은 내 서재를 즐찾 안했다는 사실을....=3=3=3=3=3

로드무비 2006-09-18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일레스님은 분점이랬다가 본점이랬다가 무지 헷갈리더군요.ㅋㅋ
'주지육림의 추억' 주인장의 배꼽 빠지는 글들 읽어보셨겠죠?
(그리고 뭐, 저 그리워하는 사람이 한둘이어야 말이지요.=3=3=3)


'서재는 무슨... 그냥 책방'은 읽고도 오늘 아침 아무런 감흥이.
워낙 '시인' 모드여서리.ㅎㅎ
오겡끼데스까였다면 또 모르죠, 메피스토님=3=3=3


페일레스 2006-09-18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알라딘 서재는 분점이고, 소갯말에 써 있는 '본점'은 제 홈페이지랍니다. 링크를 안 눌러보셨군요 누님! ㅋㅋ

2006-09-18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09-18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나도 ㅜ.ㅜ

Mephistopheles 2006-09-18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씩이나.?? 감흥이 안들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한.....흑흑흑.=3=3=3=3

로드무비 2006-09-18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댓글 하나로 합치는 공작을 하다가 하나 삭제하는 걸 까먹었다우.
메피스토님, 우스워 죽겠어요.^^

물만두님, 님도 그러시죠?^^

페일레스님, 저는 알라딘에서만 놉니다.
수선님 도서관에도 안 가본걸요.ㅋㅋ
(좀전에 눌러봤어요. 음악이 좋던데요?)

물만두 2006-09-18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아니라 메피님과 같은 마음이라구요 ㅜ.ㅜ

로드무비 2006-09-18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의 추리책방'을 안 넣어서 삐지셨다고요?=3=3=3

건우와 연우 2006-09-18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패들을 보며 제목을 뽑아내는 이들의 감각에 다시금 감탄을 합니다....^^

2006-09-18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eylontea 2006-09-18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아는 문패도 보이는군요.. 반가와라... ^^

sudan 2006-09-18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소굼님 문패 멋져요.

인터라겐 2006-09-18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운 문패에 제 이름도 있을까요?

로드무비 2006-09-20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라겐님, 그러문요.^^

sudan님, '소굼'만 해도 근사한데 '증발하고 남은 녀석'이라니,
저도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수단님은 mellow가 들어가죠? 뭐였더라? ㅎㅎ

실론티님, 몇 개나 돼요?^^

출입문 혹은 복도 님, 제 맘이지요. 흥=3
(속으로 좋으면서!^^)

진심, 어쩌고 물으신 님, sb 님이네요.
님의 질문 보고 다시 가서 확인하고 왔습니다.^^

건우와 연우님, 어떤 날은 멋을 좀 부린 멋지구리한 문패가 좋다가
어떤 날은 또 가장 단순하고 심심하다 싶은 문패가 좋다가......
대중없더라고요.^^

2006-09-20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9-20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9-20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9-20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슈장 & 법구경 님, 감사 드립니다.^^
 

아무 소용 없을 것 같은 아이들 장난감 같은 것에 아직 마음을 빼앗기고 사는 나는
마이 도러가  제일 좋아하는 곰인형 '베이지'를 위해 세일중인 애견용 티셔츠를 사서
깜짝선물한다든지, 인형들에게 미니어처 살림을 장만해 준다든지, 그러고 놀면서(!)
정작 청소상태랄지 주방상태랄지 내 살림은 개판 오분 전이다.

쓰고 있는 프라이팬들이 낡아서 코팅이 다 벗겨져 계란프라이 하나를 해도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데 왜 새 프라이팬 살 생각을 못했는지.
쇼핑과 관련하여서는 나의 정신연령이 초등 저학년 정도라고 판단한 나는,
3주 전 큰맘먹고 홈쇼핑에서 절찬리에 판매중인 마블 양면프라이팬 세트를 구입했다.

중국집 주방장이 쓰는 것 같은 크고 우묵한 프라이팬을 비롯해
계란말이를 끝내주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각 프라이팬,  그리고 둥근 프라이팬,
거기다 찜 겸용 국수 삶는 참한 솥에, 깜찍한 사이즈의 양면마블냄비까지,
택배로 도착한 상자를 풀 때  탄성이 절로 나왔다.

--때로 인생은 커피 한잔의 문제, 혹은 커피 한잔이 가능하게 해주는
따스함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느 소설에서 인용한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저 얄궂은 구절에
프라이팬을 그대로 대입해 보면, 
때로 인생은 새 프라이팬 하나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우리집 식생활에 일대혁명이 일어났으니......

그동안은 대충 식은밥을 레인지에 데워 있는 국에 한 숟가락 말아서
아침에 아이들 먹여 내보냈는데, 깜찍한 양면마블냄비가 너무 좋아서
 때때마다 2, 3인분의 뜨신 밥을 짓게 된다.
그리고 우묵하고 큼직한 전골냄비형 프라이팬에는 버리지 않고 간직해둔 파뿌리와
멸치와 표고버섯 기둥과 무와 양파와 다시마를 넣어 펄펄 끓여 국물을 내어놓고
된장국을 끓이고 카레에도 넣고 어묵을 볶고 생선을 조릴 때도 자작하니 넣어준다.
생선을 구워도 뜨거운 물로 한 번 씻어주면 말짱하게 새 얼굴로 돌아오는 신기함이라니!
밥에 뜸이 들고 된장국이 펄펄 끓으니 어느 집 아침이 부럽지 않다.

새 프라이팬 세트를  사지 않았더라면 솜씨가 신통찮은 목수처럼 연장 탓만 하며 
계속해서 주방 근처엔 얼씬도 안했겠지.
과장해서 말하면 새 프라이팬이 생기자 인생이 바뀐 듯한 기분이 든다.

프라이팬으로 크게 필을 받은 나는 내친김에 더욱 알뜰주부가 되기로 했다.
지난주 토요일, 모 홈쇼핑을 보다가 콘크리트 벽을 뚫고 철판에 구멍을 내는
전동드릴의 묘기에 매료되어 블랙&데커 전동공구 풀세트를 주문했으니.....

전동공구 풀세트는 평소 못 하나 제대로 박을 줄 모르는 변변찮은 나를
또 어디로 데려가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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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와 연우 2006-09-18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그 프라이팬세트....
홈쇼핑을 신뢰하지 않는 저도 볼때마다 사고 싶었는데, 이렇게 강렬하게 유혹하시다니요...

가랑비 2006-09-18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저도 지난 토요일에 난생처음 무슨 황토 코팅 프라이팬 세트 홈쇼핑에 주문했어요! 제 인생도 바뀌게 될까요?

로드무비 2006-09-18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TA반대벼리꼬리님, 어머, 황토코팅이라구요?@,.@
아무튼, 새 프라이팬을 사셨으니 인생이 바뀔 거라고 확신합니다.^^

건우와 연우님, 이 좋은 걸 왜 진작 안 샀는지
모르겠어요.=3=3=3

paviana 2006-09-18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라서 행복해요까지는 아니지만,새 프라이팬에 계란후라이나 전을 부칠때의 그 미끈함 혹은 만족감을 남자들은 모를거에요.

chika 2006-09-18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어느날 갑자기 로드무비님 댁에 찾아가 문 두들기고, 밥 주세요! 하면, 제 인생이 바뀔 것 같아요. ^^

물만두 2006-09-1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그걸 모르는 집이라서 ㅜ.ㅜ

로드무비 2006-09-1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어머님이 요리 잘하시잖아요.^^

모테치카생일주간님, 님이 직접 프라이팬을 사셔야지요.
밥만 얻어먹어서는!=3=3=3=3

파비아나님, 아, 그 미끈함이 주는 만족감에 대해서도
한 줄 쓸 걸 그랬군요.^^

mong 2006-09-18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달라지지는 말아주세요~
지금의 로드무비님을 좋아라 한단 말입니다아-

해리포터7 2006-09-18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남편이 그거 사자고 해서 콧방귀꼈는데 사야하는군요..제인생을 바꾸기위해서뤼.ㅎㅎㅎ저도 필받았습니다..안그래도 테프론 운운하는 테팔후라이팬이 지겹던찬데요.ㅜ,ㅜ

로드무비 2006-09-18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7 님, 6마넌 돈에.
감격했답니다.
그나저나 그 집도 남자가(!) 쇼핑을 부추기는군요.^,.~

mong님, 제가 좀 유능하고 바지런한 모습으로 바뀌더라도
계속 좋아해 주세요.=3=3=3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저 좋아해 주신 것 다 알아요.( '')

Mephistopheles 2006-09-18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로드무비님댁에 바람구멍이 숭숭 뚫리는 건 아니겠죠..??

waits 2006-09-1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수대 하수구 막혀서 캠프 생활 중인 제게는 정말 꿈 같은 얘기네요...;;
전 프라이팬세트보다 전동공구 풀세트가 더 탐나는데요. 그거랑 널찍한 마당만 있으면 뭐든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로드무비 2006-09-18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액자가 몇 개씩 주렁주렁 벽에 걸리겠죠.
철판을 큰 것 하나 사서 우울한 날 구멍 몇 개씩 내볼까요?
공사 현장에서 남는 것 있으면 부탁 좀.^^

집에서 캠핑 기분 내는 나어릴때님,
화면을 지켜보는데 가슴이 막 두근거리더군요.
전동공구의 묘기도 묘기지만 그런 게 이제 눈에 들어오는
제 자신이 대견해서.ㅎㅎ

클리오 2006-09-18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손잡이를 탈부착해서 공간수납을 쉽게하는 매직핸즈 후라이팬냄비세트가 무척이나 갖고 싶답니다. 좀 있다 사려고 참고 있어요... ㅎ~

비자림 2006-09-18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님의 글 읽다가 "살림은 개판 오분 전"에 정말 가슴이 뜨끔했답니다. 일과 살림만 하던(?) 제가 요새 아주 게으른 여자가 되었거든요. 에공 반성!!!!
후라이팬 하나 갖고서도 이렇게 재미있고 나긋나긋하게 이야기를 하는 님, 미오!!!!!ㅎㅎㅎ

hnine 2006-09-18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라이팬 하나로도, 새 만년필 하나로도, 대청소 한번으로도, 국화 꽃 화분 하나로도... ^ ^

아영엄마 2006-09-18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프라이팬 세트 사고 싶어요~~.오늘 아침에 프라이팬에 계란 달라붙어서 망침..ㅡㅜ). 하지만 청소기를 산 달이라.. 아, 인생이 새 프라이팬 하나의 문제라면 제 인생은 고민과 망설임으로 점철된 인생이어라우~.

로드무비 2006-09-18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땡빚을 내더라도 프라이팬은 사시는 게...^^
청소기는 한경희 스팀 청소긴가요?

hnine님, 프라이팬 사용할 때마다 좋아서 춤춥니다.
그러니 어찌 페이퍼 하나가 안 나오겠습니까!^^

비자림님, 개판 5분 전, 제가 무지 좋아하는 말입니다.
님도 그 말에 주목하시다니!
그리고 제가 보기에 님 정도면 양반이신데요, 뭐.^^

클리오님, 다음달에 곗돈 타면 그것도 살까요?ㅎㅎ
(곗돈은커녕==3 콧김.)

2006-09-18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6-09-18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가 마술 팬이라며 사자고 조르던 그 팬이군요. 하긴 새로 장만할 때가 되긴 했는데 말이죠. 끄응.

chika 2006-09-18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알았어요. 로드무비님 댁 방문시에는 필히 손에 프라이팬을 들고가야된다,라고 생각할텐께! =3=3=3

로드무비 2006-09-20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님, 말없이, 꾸벅.^^

엽서쓰는모테치카님, 감귤쪼꼬렛하고요.^^

FTA 반대 조선인 님, 맞습니다.
밀가루 국물이 팬 밖으로 흘러도 요술처럼 떨어져 나오죠.
마로가 신기했나 봅니다. 이 기회에 장만하시죠.^^

살림살이들도 저랑함께님, 우리집도 10년째 접어들다 보니
농짝, 냉장고, 세탁기 등 뭐 하나 온전한 게 없습니다.
그런 거죠 뭐.
아니 그런데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으시다니!
'늙어가면서'가 어쩌고 저째요?! 떽!^^

sayonara 2006-09-2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로드무비... 그 사람도 그랬구나... ?!... !!... ?... !...
님의 성찰에 경의를 표합니다. *^^*

로드무비 2006-09-20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요나라님도 새 프라이팬을 사고 인생이 바뀌셨나 봅니다.
아니면 전동공구 풀세트?ㅋㅋ
아무튼 반갑습니다요.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 결혼은 "struggle"이다.  (존 업다이크)

일껏 빌려놓고 자꾸 미루던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연달아 두 권 읽었다.
결혼생활 에세이집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는 꽤 쌈빡했는데,
소설 <반짝반짝 빛나는>은 내겐 별로였다.

막연히 호감이 안 간다는 이유만으로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작가들이 몇 있는데
저번에 아사다 지로를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그 인기와 명성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에쿠니 가오리도 마찬가지다.
뻔하기 짝이 없는 결혼생활을, 특히 아내 된 자의 마음을 콕 집어서
산뜻하면서도 여운이 남게 표현한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당신의 주말은~>에서 'struggle' 을 '만신창이'로 번역한  작가.
내 생각엔 그렇게 거하게 표현할 것 없이 '몸부림' 정도가 적당한 것 같은데.
아직 만신창이로 싸워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브로티건의 <레스토랑>이라는 시 인용 부분이 특히 좋았다.
('미국의 송어낚시'의 그 리처드 브로우티건?)

서른일곱 살 / 그녀는 완전히 지쳐 있다
결혼반지란 대체 뭘까 / 그녀는 빈 커피잔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마치 죽은 새의 부리를 들여다보듯
 저녁식사가 끝나고 / 남편은 화장실에 갔다
하지만 곧바로 돌아오리라, 그리고 그 다음은 그녀가 화장실에 갈 차례다 ( 70쪽)

아무래도 들키고 싶지 않은 얼굴이나 표정을 원치 않아도 보여주고 또 보게 되는 것이
부부 사이다.(미혼 때는 이것이 '관건'으로 느껴졌다!)
같은 화장실 변기를 볼일보고 1분도 안 되어 번갈아 사용하는 것이 부부다.
물리적으로는 너무나 밀착되어 멀미가 나는......

"나 9월에 여행 갈 거야!" 하는 아내의 말에 "그럼, 밥은?"하는 비명에 가까운 남편의 물음이 
첫마디로 돌아온다.
그런가 하면 부부란 싫든좋든 '늘 들러붙어 있다'보니, 별이 쏟아지는 환상적인 밤하늘
'싱그런 초록과 물이 아름다운 5월의 고추냉이밭'을 함께 목격하기도 한다.
그 순간, 세상사람들이 모르는 풍경과 냄새와 단 둘만의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
정말 대단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새벽 세 시의 냉장고' 같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냄새를 풍기는 
'자동판매기의 캔 수프'  식의 제목은 가볍디가벼우나,
이 작가의 고집을 엿볼 수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이라 애상이 느껴진다.

다음은 내가 제일 재밌게 읽은 부분.

'척'은 편리한 언어의 하나.
예를 들면 동생과 쇼핑을 하러 갈 때,
"동생인 척해도 돼?
사고 싶은 것을 발견했을 때 동생이 하는 말.
나는 언니인 척하면서 그것을 사준다. 반대로 내가,
"언니인 척해도 되겠지?"
하고 물을 때는 여동생의 남자친구에게 불만이 있을 때.
"너, 최악이다. 그런 남자하고 만나는 거 그만둬."
나는 언니인 척 그렇게 말한다.
(......) 나는 가방에서 반지 두 개를 꺼내 한 개는 내 손가락에 끼고
한 개는 남편에게 건넨다.
"아니, 구속하는 거야?"
남편은 놀랐다는 듯이 허풍을 떤다. 그는 결혼반지를 '구속'이라 부른다.
"그래, 잠시 부부인 척하자는 거지."
(106쪽)

꼭 결혼생활뿐만이 아니라 관계든 뭐든 모든 것이 부담스러워
무작정 뒤로 숨고 보는 사람에게는   그런 식의 '척'이 완충지대랄까,
아무튼 조그만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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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9-14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척' 이 말이죠. 로드무비 님의 '의도적으로 가볍게 처리하는 이야기'랑 닮았구나, 싶어요.^^ 충격 흡수를 위해 범퍼를 만드는 거죠.

로드무비 2006-09-14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충격흡수를 위한 범퍼라니, 참.ㅎㅎ
'의도적으로 가볍게'도 요즘은 양에 안 찹니다.
뭐 좀 더 완벽하게 딴청을 부리는 제목 없을까요?^^

건우와 연우 2006-09-14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밤 내내 건강관리하자며 살빼라고 닥달한 남편에게, 날 너무 좋아하는척 하지마...라고 말하면 삐질까요?^^

쎈연필 2006-09-14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가 이 달 안에 곧 출간된다더군요^-^ 저도 읽어 보고 싶네요.

2006-09-15 0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9-15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청춘에게 고함 님, 저도 이 영화 보고싶어요.
아아, 그런 경험이 있으시군요.
전 누군가를 그렇게 미친 듯이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그게 또 열등감 중 하납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이 산문집은 가벼운 선물로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결혼생활'에 환상을 가진 이나 공포를 느끼는 이라면
읽어볼만합니다.
그 시인이랑은 얼마 전 동네 야시장에서 만나 마시다가
집으로 와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답니다.
시들 괜찮더라고요.^^

또마님, 반가운 소식이네요.
전 오래 전 도서관에서 빌려 봤는데 번역이 나빴는지
그렇게 빨려들진 않았거든요.
출간되면 바로 사볼랍니다.^^

건우와 연우님, 그래 지난밤 그렇게 말해보셨어요?
"날 너무 좋아하는척 하지마!"라는 말을 저도 해보고 싶어도
책장수님이 좋아하는 척도 안해주니 써먹을 수가 없구만요.^^




2006-09-15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9-16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중의 행복 님,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기쁨을 드리도록 할게요.
제가 감사하지요, 뭐.^^

DJ뽀스 2006-09-22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기억에 남는 구절은 "밥은?" 입니다. ㅋㅋ
어제 일일드라마에서 "내가 홍씨네 밥통이냐?"란 대사가 나오길래 어무이께서 "내가 박씨네 밥통이냐?" 따라하시더라구요.(내가 밥하는 기계냐..나만 보면 밥밖에 안떠오르냐...) 결혼하면 끼니 해대는 게 정말 힘들꺼 같아요.

2006-09-22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9-27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J뽀스님, 홍씨군요.ㅎㅎ
우리 어무이 성과 같네요.

DJ뽀스 2006-09-2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로드무비님 홍씨는 19순정에 나오는 가족들의 성씨구요. 저는 박씨~ ^^:
(어제 제사 지냈더니 넘 피곤하네요. 설겆이 밖에 안했는데도...다크서클 -_-;)

2006-11-08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 몇 군데를 얘기해 보라면
바닷가와 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유리창이 큰 횟집이라고
우선 떠오르는 대로 지껄여도 큰 무리는 없으렷다.
바다를 눈앞에 보며 마시는 술과 회와 매운탕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 마음 속에서 이제 막 애인으로 승격하려고 하는 남자와 1박 2일의 바닷가 여행을 떠난다.
바닷가에 도착, 민박이든 모텔이든 숙소를 정해놓고 나와서 어슬렁 해변을 걷는다.
그리고 코가 비뚤어지도록 먹고 마실 횟집을 고르는 것이다.
횟집을 정하고 수족관이나 고무다라이 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횟감을 고를 때,
그리고 창가의 자리에 마주하고 앉을 때의 설렘.

'쾌락을 미리 준비하지 말라'는 뜻의 성경 말씀도 있지만,
그런 자리에서는 그게 무슨 소용이람!
열애중인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시간 그곳에 단 둘이 도착, 누군가와 구체적으로 마주앉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횟집 유리창으로 바다를 내려다보며 정답게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날만은 
남의 어떤 로맨스도  부럽지 않다.

홍상수 감독의 일곱 번째 영화 <해변의 여인>을 보았다.
서해안 해변은 다소 황량했고 바닷물은 잿빛이었다.
이름만 펜션인 수상한 건물들이 드문드문.

대낮의 횟집에 들어가니 테이블을 밀어놓고 자고 있는 종업원이 둘.
남의 단잠만 깨워놓고는 불친절하다며 욕을 하고 나오는 김승우와 또
종업원에게 사과하는 게 인간의 도리라고 바락바락 대드는 후배 김태우의 꼬락서니.

시나리오 구상차 들렀다고 하나 주인공 김승우의 관심은 오직
후배가 데리고 온 여자친구.
후배를 따돌리고 그녀와 잘 수 있을까?
(고현정과 김선미의 리얼 연기와, 무엇인가를 과감히 벗어던진 모습에 감탄감탄.)

모든 것이 꼬질꼬질하다.
현실은 이렇게 누추하고, 알고보면 당신의 머릿속에는 똥만 든 게 아니냐고,
이기죽거리는 듯한 홍상수의 영화.

타인의 위선과 가식만 까발긴다면 몹시 불쾌할 텐데, 홍상수는 먼저 자기 옷부터 벗는다.
그리고 냄새 나는 속옷을 보여준다.
독한 술 한잔이 절로 생각나는 그 냄새가 싫지 않다.

**40자로 평을 쓴다면......

여배우에게서 섹시함을 싹 없앤,
'민박 집의 아침, 때 낀 거울에 비친
숙취의 낯짝 같은' 홍상수의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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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9-1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세 등급이 아마 홍상수 감독 영화사상 처음이라고 하죠...^^

로드무비 2006-09-13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격적인 베드신이 없어서요?
그게 전부는 아닐 텐데...^^

로드무비 2006-09-13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신의 정욕을 도모하지, 아니, 미리 계획하지 말라,는 구절이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쾌락과 같은 의미 아닌가요? 올리브님?
너절한 페이퍼에 성경말씀 그대로 옮기면 생뚱해서
제가 받아들인 의미로 바꿔 썼어요.^^

겨울 2006-09-13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승우의 저 엉거주츰 포즈라니, 영화마다 등장하는 남자 배우들의 모습이 묘하게 닮았어요. 아님, 닮은 꼴로 만드는 건가요? 홍상수표 고현정의 연기도 궁금해요.

로드무비 2006-09-13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님, 더 넓은 뜻? 그렇군요.

우울과몽상님, 그 역할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한편으로 약간 수상한 기분까지 들더군요.
김상경도 그렇고 김승우도 그렇고 멀쩡한 배우 이상하게 만드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데, 본인도 모르던 모습이 나온 게 아닐까요?

건우와 연우 2006-09-13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지난 바닷가 초라한 횟집에서 먹던 소주를 떠올리게하는 페이퍼네요.
그때 내앞에 있던 이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요...
로드무비님의 글은 잊고있던 기억을 종종 심하게 흔들어 깨우시는군요...^^

치니 2006-09-13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독과의 인터뷰를 어디선가 읽었는데, 중간에 나왔던 이미지 그림, 역시나 꽤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더군요. 틀을 깨고 조금 더 벗은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이것이 일곱개 영화 모두 공통이라는 거 같아요.
베드신이 덜해서 서운했을 관객들을 위해 위로를. ㅋㅋㅋ

비자림 2006-09-13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으니 영화를 보고 싶은 충동이 모락모락 이네요^^

로드무비 2006-09-13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저도 그 인터뷰 재밌게 읽었어요.
여배우에게서 섹시함을 싹 없앤, 아침의 민박 집
때 낀 거울에 비친 숙취의 얼굴 같은 홍상수의 리얼리즘이
저는 너무 좋아요.^^
(40자 평으로 페이퍼 말미에 덧붙일랍니다.)

건우와 연우님, 언제 철지난 바닷가 초라한 횟집에서
님과 한잔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댓글입니다요.=3=3=3


비자림님, 전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하루(春) 2006-09-13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재미있죠? 저도 재미있었어요. 웃겨서 중간중간 꽤 많이 웃기도 했구요.
특히 음악이 참 발랄해졌더라구요. 홍상수 영화 중 처음으로 음악이 귀에 쏙쏙 들어왔던 것 같아요.

2006-09-13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9-14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사춘 2006-09-14 0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박 집의 아침, 때 낀 거울에 비친 숙취의 낯짝 같은'
-------> 홍상수의 리얼리즘을 이렇게 적절하게 표현해 주시다니... 지는 항상 놀라기만 하는군요.

로드무비 2006-09-14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 댓글로 달다가 제법 그럴싸해서 페이퍼 꽁무니에
갖다붙였습니다. 저 잘했죠? 헤헤~~

9월말이나 10월초 님, 그럼 부탁드립니다.^^

화사한 가을님 파이팅!!^^

하루님, 정용진이라던가요?
저도 마지막 자막 올라갈 때 이름 확인했습니다.
음악이 좋다는 얘기 듣기도 했고요.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가 제일 재미없었어요.^^

kimji 2006-09-14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님에게 인사를 드렸던 적이 있었던가요? 워낙에 소심, 소극적인 척을 하며 댓글을 잘 남기지 않는 게으름뱅이인데, 오늘은 이렇게 인사를 아니 드릴 수 없는.
ㅡ '민박 집의 아침, 때 낀 거울에 비친 숙취의 낯짝 같은' 홍상수의 리얼리즘
이라는 표현 때문에. 아, 아! 감탄만 하다가, 감탄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렇게 인사를. 저야, 워낙에 님의 서재를 잘 드나들던 사람이었다는 고백을, 또한 이 기회에;;

로드무비 2006-09-15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imji 님, 반갑습니다.
플레져님 방에서 더러 뵈었어요.
'숙취의 낯짝'이 문법적으로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그냥 저렇게 썼어요.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들은 '얼굴'이라는 표현보다
'낯짝'이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
앞으로도 그의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극장에 달려가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말 걸어주셔서 기뻐요.^^

니르바나 2006-09-15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상수는 특히 이런 구도를 좋아하나봅니다.
'이인삼각경기'
영화를 너무 모르니 로드무비님의 글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 익숙한 이름^^

로드무비 2006-09-15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인삼각경기',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갑자기 익숙한 이름이 있어 깜짝 놀랐잖아요.ㅎㅎ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을 몸이 안 따라가 줍니다.
좋은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맛인데.
그리고 솔직히 말해 공부할 만한 글은 아니죠.
되는 대로 지껄이는 것에 불과한데요.^^

세실 2006-09-16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얼한 리뷰보니 영화가 꼭 보고 싶어집니다.
다음 주말에 친구랑 봐야 겠습니다.
가을에 어울리는 영화네요~~

로드무비 2006-09-18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영화 많이 보시나봐요.
영화 보기엔 또 가을이라는 계절이 쥑이지요. 헤헤, 뭔들!
이 영화 좋았어요.^^
 


나는 극적인 것을 믿지 않는다

순간이 연출하는 감정의 거짓을 경계한다

조직화된 군중의

얄팍한 흥분을 알고 있기에

나는 이제

한가운데라는 것을 좀처럼 납득하지 않는다



동그랗게 진(陣)을 치고 싶어하는 '사람'의 습성을

비웃는다는 건 아니다

자네나 나나 사실은 한가운데라는 것에 굶주리고

몹시도 목이 말라 '광장'을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눈망울에 비치는 경치는

원탁이라는 제목의

언더그라운드 연극에 불과하지 않은가



중심을 포위하라 입은 일체

원의 중앙을 향해 열지 마라

말이 보이거든

말의 정면에 자네의 물음을 두라

자네가 묻고 나는 대답하며 내가 묻고 자네는 대답하는

중심의 결락이야말로

원탁의 자동율로 변하리라

'광장'을 키우라 '광장'에는

문답의 조그만 소용돌이가 몇 개고 생겨나며

사랑과 방심이 산책하고

피로가 끄나풀처럼 가로지르기도 하지만

중상(中傷)이나 불평 또는 정략(政略)이 깃들이게 해선 안된다

명령과 복종 집단적인 도취에서

자네는 깨어나라



이구이성(異口異聲)의 '광장'의 활기를

죽여버리는 것이 외부에만 있는 건 아니다

원탁에서 일어난 자네가

별하늘 밑으로 떠나간다 한들

돌린 등으로 이야기하는 비겁한 시절이라고는 난 생각지 않는다

우리들은 다만 분노의 중심이

깊어졌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 <일본 현대 대표 시선>  유정 편역,  창작과 비평사,  1997

 

 

페일레스님이 직접 번역하여 올려놓으신 일본 시인 이시가키 린의
'생활'이라는 시를 읽어나가다 보니  오래 전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이 시를 읽었던 기억이 났다.
어디 시인의 번역과  얼마나 다른가, 호기심에 책장을 펼쳤더니,
거의 똑같은 번역에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다.
도리어 몇몇 단어의 선택에선 젊음의 기백이 느껴진달까.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936541
(페일레스 님의 페이퍼)


이 책에 소개된 그녀의 시들 중 나는 '꽃'이 제일 좋았다.

이슥한 밤에, 문득 눈을 떴다.
내 방 한구석에서
송이 큰 국화들이 깨어나 있다
내일이면 벌써 쇠잔해질
이 만개한 아름다움으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먼 여행길을 앞에 두고
아무래도 잠들 수 없는 꽃들이
모두들 채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모를 그 소란함으로
.
                         ('꽃' 전문)


까치발을 하고 책꽂이에서 어렵게 시집을 꺼낸 김에 시들을 몇 편 읽어보았다.
야마모토 타로오의 '광장'을 접어 놓은 게 눈에 띄었다.
10년 전에 읽었을 때 이상하게 끌리기는 했지만 온전하게 좋아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지금 읽어도 마찬가지.
우리나라의 몇몇  모더니즘 계열의 시들이 주었던 느낌이랄까.

그래도 괜찮아서, 님들도 한 번 읽어보시라 페이퍼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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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와 연우 2006-09-08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살아온게 다르듯 느끼는게 다르긴 하군요...^^
로드무비님이 올리는 시들이라면 거개가 좋았습니다만, 저 시(광장)는 또 달리 좋군요...
마지막부분을 읽는데 갑자기 예전의 일들이 겹쳐져 눈물이 나올것 같았어요.
나이가 사십을 바라보는 이 마당에도 치기는 쉽게 다스려지지 않나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9-08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제맘대로 퍼가겠노라고 말씀드리는걸 잊었습니다...^^

로드무비 2006-09-0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그나마 치기가 없으면 사는 게 더 재미없지 않을까요?
제가 이 시에서 좋아하는 부분을 님도 좋아하시는 듯.
느낌으로 압니다.^^

페일레스 2006-09-0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은 몰랐던 시인데, 매우 좋습니다. 앞으로도 틈틈이 일본 시나 하이쿠를 번역해서 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시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비자림 2006-09-08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퍼 가옵나이당^^
좋은 하루 되시길!!

이리스 2006-09-08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나릅니다~

sandcat 2006-09-08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집도 살까요?
모르는 시인의 좋은 시만 꼭 집어서 소개해주는 로드무비 님, 고마워서 어쩐다지.

산사춘 2006-09-08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로드무비 2006-09-11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 제가 감사하지요.^^

샌드캣님, <일본 근대 대표 시선>도 있어요.
두 권 다 사셔도 좋을 듯.^^

낡은구두님, 네.^^

비자림님, 님도 좋은 하루, 한 주 되시길요.^^

페일레스님, 기대할게요.
하이쿠 참 재밌어요.^^

mong 2006-09-1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297097

2006-09-13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9-13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저 날은 페이퍼 한 개 올리지도 않았는데
들러주신 분이 많았네요.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벌써 10만에 다가가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