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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평점 :
이 소설의 주인공은 급우들로부터 왕따 당하고 치수라는 녀석에게서 린치를 당하는 것이
일상이 된 두 소년, '못'과 '모아이'다.
맞을 때 보면 이마에 못이 박히는 것 같다 하여 '못' , 그리고 남태평양의 거대석상처럼
두상이 커다 하여 '모아이'이다.
책 앞에 보면 작가가 직접 그린 두 소년의 일러스트가 있는데
김영하에 이어 자신의 책에 직접 컷을 그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못 소년의 아이디어는 팀 버튼의 아이들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건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고.
어느 날 두 소년은 학교 뒷산 부근의 벌판으로 불려나와 사이좋게 얻어맞은 뒤
그곳에 버려진 낡은 탁구대와 소파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탁구채를 처음 손에 잡게 되는 두 소년.
하고많은 스포츠 중에 왜 하필 핑퐁이냐, 하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탁구는 1 대 1 스포츠이기 때문에.......
우르르 몰려나가 실력이 더 나은 선수의 들러리가 되고 하는 여타의 스포츠 종목과 달리
탁구는 1 대 1로 깨끗하게 승부를 가른다는 뜻이겠지.
스포츠 세계의 승부사들처럼 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건 그 잘난 2프로의 인간들이고,
못과 모아이는 '세계가 깜빡한 인간'에 속한다.
인류의 속셈은 알 수 없고, 인간들은 대부분 다수인 척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왜 사는지 영문도 모르면서.
침략과 학살 등 인류가 저지른 수많은 악행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망하지 않고 굴러가는 건
듀스포인트이기 때문.
누군가 폐수를 몰래 방류하는 순간 누군가는 또 자연림을 보존하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에
세계는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지금 이 세계의 포인트는 1738345792629921 : 1738345792629920.(118쪽)
사는 걸까. 뭐가? 우리들 말이야... 이러면서 왜 살아야 하는 걸까.(...)
아아, 귀찮게 이유도 모르면서...생활, 생활하는 거잖아. 별로 서로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애를 낳아 기르질 않나, 나라마다 대사관을 설치하지 않나, 불쑥 집으로 찾아와
음식 같은 걸 대접받고 말이야....그러면서 고맙다고 하질 않나. 죽었다고...울고 말이야.
뭐, 별로 서로가...서로를...그러면서 말이지.(62쪽)
묘한 맛이 나는 문장이라 나도 한 번 천천히 소리내어 읽어본다.
뭐, 별로 서로가... 서로를...그러면서 말이지.
책 속에 계속 60억 인구가 되풀이 되고, 인류의 1교시가 어쩌고저쩌고라니, 뭐랄까,
조용한 발라드 곡만 나오다가 갑자기 라디오에서 쾅쾅 대형가수 박경희의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 같은, 국제가요제 참가용 대곡이 흘러나와 깜짝 놀란 기분?
아무튼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이렇게 경쾌하게 조물조물 멋지게 담아내는 솜씨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