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확인할 메일이 있어 피씨방에 들렀더니 이상한 제목의 메일이 한 통 눈에 띄었다.
'이제 난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알아서 하십시오!'
어, 낯이 익은 말인데 어디서 봤더라?
확인해 보니 예전에 내가 다니던 영등포의 작은 민중교회 목사님이 보내신 것으로
지난주 설교문의 제목을 파일로 동봉하며 제목으로 띄운 것이었다.
(낯이 익었던 건 한겨레신문에 연재중인 문동환 목사님의 그 무렵 글 중
가장 인상적인 독백이었기 때문.)
백골단을 다시 만들어 촛불집회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공공연하게 언론장악을 획책하고,
복지예산을 대거 삭감하고, 그 와중에 60일 넘게 단식중인 기륭전자 김소연 노조분회장이
급기야 소금과 효소마저 끊겠다고 선언하자 파렴치하고 딱한 이 현실을 개탄하는 내용이었다.
--하나님, 이제 난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알아서 하십시오.
뻔뻔스럽게 한 일이 뭐가 있다고, 나도 이 말을 입속으로 읊조려봤다.
여름 휴가 중에 이청준 선생님의 부음과 서울시교육감 선거결과를
라디오방송으로 전해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손에 든 책이, 이청준 선생의 소설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부처님은 어찌하시렵니까?'는 선생의 절친한 벗 김선두 화백의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를
쓴 빼어난 단편이다.
스님과 불자들의 대규모 집회 소식이 연일 들려온다.
"부처님은 어찌하시렵니까?"
아침에 신문을 펼치면 나도 모르게 이 말이 입속을 맴돈다.
'최악의 악인'이 버젓이 활개치는 세상인데, 답답한 현실은 더 답답한 소설로
푸는 것도 괜찮다.
내친김에 오쿠다 히데오의 <최악>과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을 연달아 읽어댔다.
주인공들이 처한 곤경과 기막힌 현실이 목을 죄어왔고
희미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것이 바로 일본소설이다!)
'최악의 악인'이라는 제목으로 근사한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다행히 컴퓨터가 고장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를 다 읽고 부랴부랴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을 찾아봤다.
장흥시외버스정류소. 영화의 첫 장면, 이청준 선생님이 주인공(조재현)의 뒤를 따라
무심하고 태연한 얼굴로 버스에서 내리셨다.
그 장면을 몇 번이나 되감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