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1930
E.M.델라필드 (지음) | 박아람 (옮김) | 이터널북스 (펴냄)
패브릭 양장의 표지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던가!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도 했지. 꽃그림이 그려진 찻잔이 자아내는 분위기와 그 찻잔에 발을 담그고 독서 중인 여성의 모습이 책의 내용과 찰떡이다 싶게 잘 어울린다.
편지글 형식의 문학은 종종 접해봤지만 일기 형식의 소설은 아무리 떠올려보아도 읽어본 기억이 없다. 몇 해전 <카프카의 일기>를 읽은 적이 있지만 말 그대로 카프카의 일기니까 일기 형식의 소설인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와는 다르다.
정말 백년 전에 씌여진 이야기가 맞나 싶게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아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부분이 꽤 많았다. 공감되는 부분도 그러하지만 일기의 주인공이 가진 성격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 이유도 있다. 본인의 유머러스함을 과연 그녀는 알고 있을까? 이 영국 여인의 일상은 월급날이 다가오면 통장을 스쳐갈 숫자들을 이리저리 맞춰보며 가계부를 덮었다 펼쳤다하며 한숨짓는 이 시대의 많은 주부들과도 닮았다. 그런데 이 여인은 걱정은 걱정대로 하면서 쇼핑은 멈출 줄을 모른다. "새 옷과 새 모자... 조금은 괜찮겠지... 비키와 로빈의 간식을 줄여야겠다"는 대목에선 이 철없는 아주머니가 귀엽기까지 하다. 홈쇼핑 채널을 보다가 꼭 필요할 것만 같아져서 충동구매하는 우리네 모습과 비슷한 듯도 하고.
얄미운 이웃을 보며 속으로 살인 충동을 느끼고 속시원하게 일갈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접대성 멘트를 하는 그녀를 보며 사람사는 모습은 백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게 없구나 싶기도 하다.
사랑을 만나 결혼하려는 딸에게 청승을 떨어대는 블렌킨솝 부인과 입바른 직언과 막말을 오가는 모드 블렌킨솝, 영국판 경상도 남자인 무뚝뚝한 로버트,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레이디 복스 등 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웃들의 모습이다.
남들에게 초라해 보이고 싶지 않은 허세와 과시가 일기의 주인공에게 쓸데없는 쇼핑과 일거리를 만들어 주지만 완벽한 사람이란 없으니~. 머리하러 미용실 갔다가 망치고 나오는 허당미까지! 미워할 수 없는 그녀~
일기가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