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읽은『투명인간』은 원래의『투명인간』이 아니다˝라는 역자해설이 더 읽고싶게 만든다.
내가 알고있던 투명인간과 어떻게 다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미의 이름 세트 - 전2권 열린책들 세계문학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미의 이름 상,하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악마라고 하는 것은 물질로 되어 있는 권능이 아니야.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이런 게 바로 악마야!

장미의 이름 (하). 801페이지

이런 것들이 악마라면 악마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얼마나 될까? 붙잡고 있는 진리 하나를 절대적 진리로 맹신하고, 두 귀를 막고 두 눈을 가린채 제 할 말만을 떠드는 이들을 드물지 않게 본다. 굳이 종교에 국한해서 생각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상식이라 불리는 편견과 아집들이 교만과 만나 시너지를 일으킬 때 그 사람은 불통의 아이콘이 되기 십상이다.

<장미의 이름>에서는 잘못된 종교적 신념이 살인을 하고도 죄책감은 커녕 살인을 정당화하는 비뚤어진 신앙을 보여준다.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중략)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장미의 이름 (하). 823페이지

책 말미에 윌리엄 수도사가 아드소에게 건네는 충고는 보편적으로 인생 전반에 적용해도 틀리지 않다.

<장미의 이름>은 추리소설의 외형을 한 중세 종교 소설이지만 종교라는 제한된 시야에서 벗어나 좀 더 크게 바라본다면 철학서라 해도 될만큼 깨달음을 주는 보석같은 문장들이 빛난다. 옛 속담에 무엇이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던가. 믿음, 신앙이 지나침을 더해 방향마저 잃으니 종교가 갖는 원초적인 의미마저 퇴색해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과연 신앙뿐일까? 모성애나 애국심은? 방향설정이 잘못된 지나친 사랑도 대상이 무엇이든 상대에겐 폭력이 되고 공포가 될 수 있다. 자신이 믿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자들이 보이는 극단적인 선택과 행동력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어진 것일까? 움베르토 에코가 <장미의 이름>에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이것이지 않았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미의 이름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8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미의 이름 (하)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펴냄)

더듬더듬 기억을 떠올려보면 <장미의 이름>은 처음 출판되었을때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꽤 인기가 있었던 책으로 기억된다.

표지의 그림은 같은 컨셉을 유지하며 매번 개정되면서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장미의 이름>. 첫 개역판이 1992년에 나왔으니 내가 장미의 이름을 처음 읽었던 때도 그 무렵 이었을거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책을 읽는 것에만 의미를 두고 따로 기록을 남기거나 메모하지 않아서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연쇄 살인의 범인과 살인의 이유 그 두가지 뿐이었다. 추리소설로만 <장미의 이름>을 읽는다면 재독을 의미없게 만드는 맥빠지는 기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장미의 이름>은 추리소설로만 읽기에는 그 안에 담긴 종교적인 철학과 세계관이 남다르다. 아마도 움베르토 에코만이 그려내는 분위기 때문이지 아닐까.

영화든 소설이든 결말을 알고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역시 이번 재독에서도 "누가 그랬을까?" 보다 "왜 그랬을까?"를 더 꼼꼼하게 보게 되었다. 무심한 듯 건네는 대사 한 줄과 상황설명은 결말부분에 이르러서야 감탄하게 만드는 용의주도한 복선들이다.

그 어느 곳보다 신성해야하고 경건해야할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연쇄적인 죽음. 셜록홈즈와 왓슨을 연상하게 만드는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의 케미가 양념처럼 버무려져 살인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큰 줄기를 가지고 있지만 수도원 안에서 벌어지는 힘겨루기와 부정들을 통해 종교와 신앙, 종교인의 자질에 대한 비판을 움베르토 에코만의 방식으로 풀어놓는다.

연이은 불가사의한 죽음을 요한의 묵시록과 연결지어 종교적인 예언으로 흐르는 듯 싶다가 여러 가설들을 세워 결국 사건 해결에 한 걸음씩 다가선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수도사와 수도원의 비리와 부패는 종교가 가지는 순기능과 종교의 의미에 대해 되짚어보게 한다. 지금의 종교는 어떠한지, 종교인들은 어떠한지.

이유를 알 수 없던 수도사들의 죽음은 어떤 물건을 손에 넣으려는 사람과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의 산물이었다. 결국 장서관의 비밀을 알게 된 사람은 모두 죽게되는 결말을 맞는다.

장서관의 비밀. 한 개인의 종교적인 신념을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지만 형제라 부르던 사람들의 목숨을 앗을만큼 꼭 지켜야만 하는 중요한 비밀이었나. 충동적, 우발적 살인이 아닌 오랜시간 계획해 온 살의에 더 소름이 끼친다.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일에는 살인마저 정당화 될 수 있는 일인지, 잘못된 신념과 믿음은 그 자체로도 흉기가 될 수 있음을 보았다. 그것이 꼭 종교에 국한된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나만이 옳다고 여기는 자만은 어디서 오는걸까? 대선을 하루 앞둔 오늘, <장미의 이름>과 티비로 보는 선거 운동에서 묘하게 비슷한 공통점이 보여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미의 이름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8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53. 이 일련의 사건이, 공개가 바람직하지 못한 어떤 물건을 두고 생긴 것임은 분명합니다. 말하자면 이것을 손에 넣으려는 사람과,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 사이에서 생긴 갈등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비밀이 드러나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윌리엄 수도사의 추리는 드디어 진실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공개가 바람직하지 못한 물건의 실체가 서책이라는 것을 이제 웬만큼 눈치가 있다면 누구라도 알 것이다. 그 서책의 의미가 무엇이기에, 도대체 무엇이 기록된 책이기에 그 어느 곳보다도 경건하고 신성해야할 수도원에서 연쇄 살인을 일으키게 만드는가?
손에 넣으려는 자는 누구이고, 그것을 막으려는 자는 또 누구일까? 이 와중에도 수도사들의 연이은 죽음보다 수도원의 명예에만 집중하고 있는 수도원장. 종교의 참뜻과 종교인의 자세에 대해서도 숙고하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 인류 -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다 인류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세상에는 넘치고도 또 넘칠만큼 많은 책이 있다.

그 중에서 좋은 책,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선택하는 재미 또한 놓치고 싶지 않은 즐거움 중 하나다. 그냥 단순히 읽고 싶은 책인 경우도 있고, 소장하고 싶은 책인 경우도 있다. 이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겠지만.

제목만 보고 반해버린 <바다 인류>가 딱 그런 케이스다. 역사를 좋아하는 나(오~!! 결코 다 안다는 얘기는 아니다. 좋아할 뿐이다. )는 소설 읽듯이 역사 읽기를 즐기는 편이다. 지식으로 접근해 무조건 외우려고만 들면 또 한없이 어렵고 지루해지는게 역사 아닌가.

알고 있었던 사실은 읽음으로써 잊지 않고 기억 저장소에 유효기간을 늘리고, 몰랐던 사실은 새로운 앎을 더 늘렸다는 재미를 느끼면서 그저 즐긴다. 땅 위의 역사를 저술한 역사서는 많은데 비해서 바다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역사는 어떤 이야기를 주로 들려줄지 기대라는 말로는 부족하게 흥분된 마음으로 시작했다. 시각의 다양화, 여러 관점에서의 해석은 통합과 융합, 글로벌화를 강조하는 요즘의 트렌드와도 딱이지 않은가.

한뼘의 땅을 더 차지하기 위해 피흘리는 전쟁의 역사는 아마도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되어 오지 않았을까?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고대 인류의 이동. 지구 표면은 대륙보다 바다가 더 넓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왜 이동의 경로를 대륙에 한정해서 상상하고 추론해왔을까? 빙하기시대를 전후로 하는 해수면의 높낮이는 그 이동에 분명히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겠지만, (물 위를 걷는 초능력자들이 아닌게 분명한) 고대 인류들이 그 먼 거리를 바다로 이동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들의 지능과 기술은 원시인이라고 낮춰 볼 것만은 아니다. 근현대사 산업의 발달도 강이나 바다의 운송에 큰 영향을 받아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독 고대사에 있어서는 그렇게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땅 위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바다 위에서의 역사도 만만치 않은 치열함과 아픔의 역사가 있어왔다. 정복을 위한 뱃길로 많은 무기와 군사, 노예들을 실어왔다.

정복 전쟁을 통해 생겨난 제국과 식민지. 그 역사에 우리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더 가슴아프게 읽혔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

바다의 역사에 정복과 약탈만 있어왔던 것은 아니다. 상업의 발달이 가져온 무역도 바다가 있기에 더 활발했다. 바다를 통한 무역은 지금 현재도 진행형이다. 세계적 팬더믹인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하늘길과 육로를 통한 무역보다 해로를 이용한 무역이 훨씬 더 방대하다. 이런 무역의 발달에 종교의 영향이 있었다는 사실이 참 흥미로웠다. 상업이 발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살생을 금하는 종교의 이유가 크다고 하니 이런 것을 두고 나비효과라 하지 않을까?

살생금지의 교리는 목축업과 농업에 종사할 수 없게 만들어 상업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고 이어지는 연속된 결과가 해로의 발전이라니, 역사는 알면 알수록 신비하고 재미있는 도미노다.

육지의 자원이 고갈되어 갈수록 해양자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독도를 노리는 저들의 시커먼 속내가 단순히 돌섬인 독도를 노리는 것이 아님을 모두가 안다. 바다 위 국경을 시시때때로 침범하는 북서쪽의 저들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미래와 희망이 바다에 있다는 사실은 한 뼘의 땅만큼이나 한 뼘의 바다에도 치열함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