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캐릭터 300 - 나도 한번 그려볼까? 이지 아트북 시리즈
리즈 헤르조그 지음, 유민정 옮김 / 그린페이퍼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등학교 때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 등의 만화를 즐겨 보았고, 몇몇 장면들을 곧잘 따라 그리면서 한동안 만화가를 꿈꾼 적이 있었다. 혼자서 공책을 찢거나 백지를 반으로 접어 만화책을 만드는 흉내도 내본 적이 있다. 당시 보물섬이나 소년챔프, 아이큐점프 등의 만화잡지가 유행했었다. 거기에 나온 다양한 코너들도 흉내내어 그렸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흘러 만화가를 꿈꾸던 소년의 모습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이후에도 종종 그림을 그리려는 시도를 해보았는데, 아쉽게도 이게 꾸준하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나름 재능 있었다고 판단되었던 그림 실력도 점점 떨어진 것 같다. 지금도 뭔가를 집중해서 따라 그리면 비슷하게는 표현하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새롭게 그려내는 것은 잘 하지 못한다. 그래도 예쁘거나 멋진 풍경이나 인물, 동작, 형상을 따라 그리면 어렸을 때 느꼈던 즐거움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을 느낀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300』은 글이 거의 없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과 결과물이 한 페이지에서 완결되는 구성이다. 인물과 인물의 동작이 거의 대부분이고 동물 같은 것은 어쩌다 한 번씩 등장한다. 말 그대로 따라 그리기 딱 좋은 구성으로 기획된 캐릭터 드로잉 책이다. 전문적인 설명이 아니라 느낌대로,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라도 캐릭터를 그리는 즐거움을 경험하게 해주겠다는 것이 주 목적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편집이다.

예시가 300가지나 되다 보니 따라 그리다 보면 어느새 보지 않고도 몇몇 동작은 자유롭게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캐릭터의 종류는 다양하다. 소년, 소녀, 운동선수, 아이돌, 기사, 중학생, 고등학생, 엘프, 인형 등이 있고, 서러움, 윙크, 분노, 놀람, 짜증, 불만, 두려움, 울음, 비웃음, 슬픔 등 감정 표현의 예시도 풍부하다. 특정 직업의 특징을 묘사한 그림도 제법 있다. 발레리나, 악사,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 화가, 파일럿, 우주비행사, 카레이서, 기타리스트, 동물로는 너구리, 고양이, 상상의 동물인 용 같은 것도 있다.

따라 그리게 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보통 시중에서 파는 애니일러스트화보처럼 화려하거나 세심한 터치를 볼 수는 없다. 그렇게 하면 아마 따라 그리기보다는 감상하다가 그칠 가능성이 높아서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림들의 선도 굵고 색채도 최대한 쉽게 구성한 것 같다.

이 책은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치를 높인다. 책을 만든 사람과 읽고 따라 그려보는 사람이 함께 완성하는 책이다. 그래서 책의 절반은 독자를 위한 공간으로 마련해두었다. 따라서 이 책을 처음 사볼 때는 책의 반이 비어 있는 상태다. 그 나머지를 채워가면서 작가와 한 권의 책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기분, 그것이 이 책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워런 버핏의 8가지 투자 철학 가치투자 시리즈 4
구와바라 테루야 지음, 이해란 옮김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자산은 하나의 미덕이다. 심지어 수단이 어떻다 하더라도 일단 부를 확보하고 나면 나머지 잘못은 어느 정도 가려지는 게 현실이다. 오죽하면 감옥에 몇 년 있는 조건으로 몇 억을 주면 하겠느냐는 질문에 많은 청소년, 젊은이들이 긍정적인 답변을 하겠는가. 그만큼 돈 문제는 우리에게 절실하다. 하지만 그렇게 집착하는 것만큼 돈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공부하는 경우는 또 드물다. 이게 정말 아이러니다. 결국 돈 문제는 돈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삶의 자세와 철학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돈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벌고 축적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현명하고 지혜롭게 소비하며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그 첫 단추는 바로 돈을 많이 버는 데 있어 ‘투자’라는 행위를 간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미 일반적인 노동소득으로는 도시에 제대로 된 집 한 채 갖기가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고 발을 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투자에 성공에 목돈을 쥐는 사람들이 흔치 않다. 미디어에서는 재테크에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엄청나게 떠들어대지만 실상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이런 시대에 워런 버핏의 투자 철학은 단순히 돈과 자산가치에 대한 이슈만이 아니라 우리가 자본주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와 성품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워런 버핏이라고 해서 완전무결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그의 인자한 겉모습에 가려진 냉철한 자본주의자로서의 이면을 폭로성으로 다룬 투자 관련 책도 얼핏 본 기억이 난다. 어쨌든 그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괜히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워런 버핏의 8가지 투자 철학』은 일본의 경제경영 저널리스트인 구와바라 데루야라는 사람이 쓴 책이다. 성공한 기업가들을 연구하고 그에 대한 글을 주로 쓰고 있는 사람이다. 워런 버핏 한 사람에 대해 다룬 책만 해도 시중에 엄청나게 많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어떤 차별성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워런 버핏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핵심은 그가 투자에 대해 어떤 삶의 태도를 일관적으로 지켜왔느냐 하는 것이다. 워런 버핏은 돈이 아니라 돈을 버는 일 자체에 상당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다. 거기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기업보고서를 읽는 모습으로 회자되는 것이다. “소년이 플레이보이 잡지를 탐독하듯이 나는 상장 기업의 재무제표를 탐독한다” 이 말이 그의 인생에서 투자란 무엇이며 어디에 사는 낙을 두고 있는지 보여주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보여준 일관된 원칙 준수와 성실함, 장기적 관점으로 상황을 차분하게 주시하고 결정을 내릴 때 보여주는 과감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워런 버핏은 90세가 넘은 지금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탐내야 할 것은 그의 재산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이런 성실한 마음가짐과 태도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읽기 격차의 해소 - 2023 세종도서 학술부문 격차의 해소 시리즈 1
알렉스 퀴글리 지음, 김진희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각종 매체에서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에 대한 논란이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다. 이를 두고 또 한차례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사회 현상에 대해 재차 언급되기도 했는데, 이를 두고 한 전직 공중파 아나운서가 이를 꼭 그런 측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는 소신을 밝혀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글을 읽고 못 읽고의 문제가 아니다. 글이 말하는 바, 글 속에 담긴 맥락을 읽어낼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말이 가진 특성과 오늘날 우리말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어의 우수성은 독립적인 ‘문자’의 형태적 특성에 있는 것이지 보편적인 ‘말’이나 ‘표현’, ‘뜻글자’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대다수의 어휘들이 한자에서 온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이를 억지로 순우리말이라는 순수하지 않은 억지 개조어로 바꾸는 작업도 어찌 보면 코미디나 다름없다. 한자 교육이 이어지지 못하면서 세대가 거듭될수록 개별 어휘에 대한 속뜻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말 나들이’ 같은 프로를 보면 외래어를 우리말로 쓰자고 하면서도 정작 대체하려는 그 우리말이라는 것이 한자어인 경우를 보면 이 사람들이 도대체 생각이 있는 것인지 묻고 싶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읽기 격차의 해소』라는 책이 비록 영어권 저자가 쓴 책이기는 하지만, 읽기의 의미와 바른 교육법이라는 점에서 시대와 장소, 문화를 초월하는 공통 가치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이 책이 가르쳐주는 해법과 목적이 충분히 적용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사실 이 책이 가르쳐주는 읽기 교육 전략을 돌아보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수학교육이 논리적 사고, 사건이나 사물을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 근본적인 목적이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의미도 없이 복잡한 계산을 해야만 하는 기괴한 과목으로 인식하게 만들면서 다수의 아이들을 수포자로 만드는 것처럼, 읽기 교육이라는 것도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서의 글을 능동적으로 다루는 능력을 키워주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인데, 마치 수학처럼 글의 문맥을 파악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게 만드는 현상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일종의 생존 전략을 배우는 것과 같다. 살면서 접하게 되는 수많은 종류의 글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그 사람의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 만큼의 영향력이 있다. 이 책이 가르쳐주는 다양한 읽기 교육 방법과 사례를 잘 살펴보고, 우리 아이들이 문제를 대했을 대 싫증 내지 않고 깊이 생각하고 바른 판단을 내리는 연습을 할 수 있는 데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성공 후기가 많이 나올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하철에서 읽는 사도신경
윤석준 지음, 한동현 그림 / 퓨리탄리폼드북스(PRB)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 기독교가 가장 문제되는 지점은 바로 기독교의 교리와 현실 교회가 보여주는 불균형에 있을 것이다. 기독교 교리란 성경이 알려주는 기독교라는 종교적 진리의 핵심 내용들을 주제별로 정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사실 교리라고 할 것도 없이 한국 기독교는 거의 맹신적인 집단에 가깝다. 왜냐하면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의 내용과 깊이가 천편일률적이고 단순한데 반해, 그마저도 교인들에 의해서 제대로 곱씹어질 여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근본적인 문제를 메꿔보겠다고 각종 프로그램을 돌리고 별별 수를 쓰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기초조차 제대로 다지지 못하고 있으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사도신경’은 기독교 역사에서 형성되었던 많은 신앙고백들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내용들이 잘 간추려진 정수 중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신앙고백이자 교리이다. 손바닥 하나에 들어갈 정도의 내용밖에 되지 않지만, 성경이 알려주는 가장 중심이 되는 메시지가 이 고백문 안에 들어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기독교의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인류의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이 진리를 깨닫게 하고 궁극의 종교적 목표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적용되도록 역사하시는 성령님에 대한 고백이 사도신경에 담겨 있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신이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는지에 대한 원대한 계획이 인간들의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는 이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적은 양이 아니다 보니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요약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교리이고, 그 교리를 바탕으로 한 순수한 신앙 고백문이 바로 ‘사도신경’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도신경조차도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 또 연구해야 진정한 신앙의 깊이를 맛볼 수 있을 것인데, 교회가 그런 훈련을 교인들에게 시켜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성경공부가 피상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대체로 성실하게 예배에 출석하고 행사에 참여하며, 헌금을 잘 내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으로 인정해준다.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욕먹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이런 본질과 동떨어진 종교 생활을 교회가 교인들에게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기독교인들에게 예배의 장소, 기도의 장소, 신과 동행하는 장소는 물리적인 공간에 한정되어 있는 게 아니다. 자기가 있는 바로 그 장소가 모두 교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연합이 바로 교회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천막 밑에서 모여 성경 읽고 찬송하고 설교 들어도 최고의 교회가 될 수 있고, 으리으리한 건물 안에서 폼 잡으며 예배 의식을 치르고 있어도 썩은 내가 진동하는 시궁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바라보고 있는 ‘지하철’이라는 공간은 그 어느 곳보다도 기독교의 진리가 구현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활동하시고 최선을 다해 성부의 뜻을 구현하려 한 곳이 바로 길거리였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곧 일상생활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것을 ‘신학의 일상화’라고 표현한다. 신학을 깊이 공부하지 않는 교인이라 하더라도, 한국어로 번역된 사도신경의 문장 하나, 개념 하나하나를 차근차근 생각할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을 조금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해설하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은, 기독교 신앙의 차원을 한 단계 높여줄 귀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지하철이라는 상징적인 일상의 공간이 어떻게 예배와 기도, 찬양과 묵상의 장소로 탈바꿈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고 있다는 착각
질리언 테트 지음, 문희경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물이나 사건, 개념의 특성을 파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동일 선상에 있거나 비슷한 수준의 다른 것들과 비교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역사의 흐름은 특이하게도 이 둘의 균등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을 강요하는 형태로 발전되어온 특징이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획일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초기 인류가 생존을 위해 자기들과 비슷해 보이는 존재들과 뭉치는 전략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통해 친교를 다지고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역사 발전의 단계에서 권력자 중심의 획일적 사회 구조는 상당히 오랜 시간 그 효용성을 인정 받아 근대까지 그 생명력을 이어 왔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중세 이후 개인이라는 개념이 부각되면서 집단 내에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독립적이고 개성을 지닌 개체로서의 인간 존재의 중요성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소규모 민족이나 집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흐름은 기존의 강력한 가치관의 탄압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하지만 균형을 맞춰가듯이, 상대주의적 관점은 점점 힘을 얻었고, 현대에 와서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다시 한번 차별과 혐오라는 이름으로 조금 다른 것, 주류가 아닌 것, 내 생각과 다른 것에 대한 불편한 감정과 행동이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사회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치명적일 수 있을 만큼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떤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번에 새로 출간된 『알고 있다는 착각』(원제:Anthro vison)의 저자 질리언 테트는 인류학의 사고방식, 다시 말해 인류학 시야(anthro-vision)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21세기는 복잡성과 다양성의 시대다. 하지만 이런 시대적 특성이 삶의 모든 차원에서 관용과 배려의 관점으로 온전히 구현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자기들의 배를 불리려는 못된 사람들의 선동이 득세하고 있다. 심지어 차별과 혐오를 대놓고 자기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우리의 실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금융시스템 붕괴와 팬데믹에 대한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대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저자는 이런 위기의 시대, 21세기를 탐색하기 위한 핵심으로 인류학적 사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시대가 앓고 있는 치명적 질병인 ‘터널 시야’를 극복하게 해줄 처방으로 적절하다. 다시 말해 우리의 좁은 시야를 벗어나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힘을 인류학적 사고방식이 제공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류학 비전의 유익을 대략 다음의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는 사고방식, 둘째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셋째는 낯섦과 낯익음의 개념으로 남들과 우리 자신의 맹점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사실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통해 우리가 범해 왔던 차별과 혐오, 혹은 무비판, 무지성적 생활에서 벗어나 한 차원 발전된 인간성의 도약을 도모하게 한다. 'x'가 무조건 'y'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인류학 비전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공부한 인류학은 사실 고고학과 민속학, 사회학과 역사가 혼합된 복합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렇게 제한적일 것 같은 성격의 인류학이 정치나 경제, 이념적으로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등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다른 많은 영역에서도 그 방법론이 효과적으로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과연 저자의 인류학 연구가 정치와 자본주의의 중심인 워싱턴과 월스트리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 이유는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가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인류학은 사고방식, 곧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가 절대적 관점을 벗어나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을 인지하고 있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서야 자리 잡은 관념이다. 내 생각이 이러니 상대방 생각도 이래야 돼. 혹은 내 생각이 이러니 상대방은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해, 같은 사고방식은 근대 이후까지도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었다.

저자는 재미있는 비유를 들려준다. 바로 ‘새의 눈’과 ‘벌레의 눈’이라는 개념이다. ‘새의 눈’은 자기중심적인 관점, 혹은 주류 사회나 이념의 관점을 상징한다. 하지만 ‘벌레의 눈’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관찰하는 시각이다. 거시사와 미시사의 방법론이 비교가 될 수 있을까? 특히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이 시선이 어떻게 상업적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었는지 살펴본 부분은 인류학과 비즈니스가 결합하여 ‘비즈니스 인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대의 환상은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만능 열쇠 같은 감각을 일으킨다는 것인데, 이것 역시도 요즘 들어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문화적 차이를 효과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알고리즘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도 인류학의 관점이 접목될 때 어떤 파급 효과가 있는지 설명한다. 특히 인간이라는 요인이 도외시되고 있는 경향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들의 해결책으로 인류학적 사고방식의 필요성은 더욱 커져 가고 있는 모양새다.

21세기 인류학의 가장 큰 미덕은 세계화 시대에서 국가 간 문화 번역 기능의 역할을 가장 충실하게 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한때 인류학자나 사회학자들을 대거 채용하며 팀을 꾸린 일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 인류학이 얼마나 매력적인 학문이며, 동시에 얼마나 실용적인 삶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전해준다. 이 책은 일독의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독자의 생각의 지평을 확실하게 넓혀줄 것이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