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레드 라인
제임스 존스 지음, 이나경 옮김, 홍희범 감수 / 민음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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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로메다 은하 사진과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천체 사진 중 하나가 허블망원경으로 찍은 '허블 딥 필드'일 것이다. 직사각형의 평면 위에 찍힌 다양한 은하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하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수없이 많은 은하들이 새롭게 태어나고 소멸하는 전쟁터와도 같은 모습이기도 하다. 은하와 은하들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광경은 화려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준다. 그 작은 프레임 안에 담긴 은하들만 해도 수백 수천 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더 경이롭고 놀라운 것은 영원히 측정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무한히 뻗은 우주의 한 부분만을 촬영한 장면이라는 사실이다. 그와 같은 광대한 축제이자 전쟁의 풍경은 지구, 태양계를 둘러싼 사방팔방으로 뻗은 전 영역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전쟁을 주제로 한 소설을 말하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예전에 봤던 천체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신 레드 라인'이란 작품 속 상황이 그 천체사진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분은 나만의 착각이길...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늘 있어왔고 심지어 문화와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더 교묘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 태평양 전쟁이란 거대한 틀 속의 한 부분인 한 장의 구체적이고 처절한 묘사가 담긴 사진과 같은 과달카날 전투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볼 수 있는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 감각들은 비교적 안전한 나라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감정이입이 너무나 힘든 고통스런 세계였다. 하지만 분명 동시간대에 지구 반대편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비극이기에 완전히 따로 떼어놓고 생각되는 것도 아닌, 아주 미묘한 느낌이다. 전쟁은 우주적으로 봤을 때 평범한 풍경인가? 아니면 지구 위의 인간만이 만들어낸 광기의 산물인가? 과거의 기록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도 읽을 수 있는 이 느낌이 역사는 여전히 진보가 아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전쟁터로 이동 중인 함선에서부터 시작되는 긴장감과 불안감,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초반부 전투신을 연상시키는 혼란과 광기, 무감각이 뒤섞인 전투 현장의 묘사, 적군을 죽였을 때 온몸을 휘감는 쾌감과 죄책감의 이중주, 성적 쾌감보다 더한 전쟁터에서의 동지애, 경멸, 명예욕... 모든 것이 재산 때문이라는 한 병사의 중얼거림은 전쟁이라는 것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았다. 마치 거대한 하나의 사업 거래 같은 전쟁은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사방에서 터져대는 폭발과 찢기고 뒹구는 시체들 앞에서 어느 순간 초연해지고 두려움을 극복해낸 것 같다가도 모래성 무너지듯이 무너지는 자아의 상실감, 초현실적인 공간감, 씻지도 못하고 더럽고 습한 곳에서 며칠이나 보내면서 온몸에 구더기가 들끓는 것 같은 기분... 도대체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 것일까? 개인은 왜 강하게 저항하지 못하고 이런 처참한 역사의 비극에 내몰려야 하는가? 왜 이용당해야 하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어떤 결론을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반복되는 비극의 한 부분을 뜯어내어 여과 없이 눈앞에 들이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느껴보라고. 이 작품을 어떻게 영상화했는지 영화를 꼭 한 번 챙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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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혁명 - 신화의 경제학에서 인간의 경제학으로
데이비드 오렐 지음, 김원기 옮김, 우석훈 해제 / 행성B(행성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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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특히 오늘날 돌아가는 있는 경제의 실상을 보면 나는 참으로 답답하다. 실제로 존재하는 돈이나 실물 자산의 가치보다 그것을 둘러싼 가상의 자본들이 몇 십, 몇 백 배나 부풀려진 채 정신없이 거래되고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용이라고 하는, 그냥 빚을 가지고 돌리고 부풀리는 과정에서 약삭빠른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빚을 갚거나 하루 먹을 것을 걱정하면서 경제적 고통에 허덕이고 있다. 문제는 이것을 하나의 거대한 게임이라고 봤을 때 무한정 반복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그것을 소비하면서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탐욕의 속도는 그 가속의 힘이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엄청난 금융위기와 자연재해가 가파란 탐욕의 상승세를 주춤거리게 하기는 했지만 상황이 호전되면 그 두 배로 악화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는 권리까지 사고파는 세상이 되어버리다니, 기가 막히다. 

   이 책은 물리학과의 연관성을 통해 과학적 신뢰를 얻으며 오늘날까지 그 힘을 잃지 않은 주류경제학이 실은 얼마나 허점이 많고 심지어 현재에 이르러서는 경제 자체를 거대한 사기의 장으로 만들고 있는지를 지적하고 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 충족될 수 없는 욕망, 행복에 대한 일방적인 이해에 기초하며 환경에 대한 몰이해까지 더한 현재의 주류경제학으로는 더 이상 지구와 인류의 삶에 미래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신고전주의 경제학, 즉 현재의 주류경제학에 대한 대안이 최근 상당히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지구의 환경을 보존하면서 지속적이고 보다 인간적인 경제성장 모델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제라도 그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경제의 원래 인간의 총체적인 살림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기존의 자원과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지속시키는가가 경제의 원래 목적인 것이다. 우리의 생활을 구성하는 것은 금융 외에도 많은 것이 있다. 가족, 친구, 사회, 공동체, 선행 등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의 조화와 균형, 절제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 경제학은 그런 우리의 행복한 삶이 보다 더 안정적일 수 있도록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데 그쳐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술을 먹는지 술이 사람을 먹는지 모르겠다는 말처럼 이렇게 주객이 전도되어서야 어찌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금융이 아닌 실물경제와 생활 중심의 경제와 그것을 지지하는 새로운 경제학이 지금보다 더 큰 힘을 얻어야 한다. 경제를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좀 더 깊은 관심과 이해를 가지고 판을 바꿔나가야 한다. 아무리 모순적이고 경쟁과 다툼의 본성을 버릴 수 없는 인간이라지만, 활동할 무대 자체가 위태로워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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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바꾼 사진들 - 카메라를 통한 새로운 시선, 20명의 사진가를 만나다
최건수 지음 / 시공아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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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사진을 활용한 표현의 가능성은 무척 다양해졌다. 그에 따라 사진은 무엇인가라는 정의의 문제에 있어서도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고 있다. '사진을 바꾼 사진들'에서는 기존의 전통적인 사진의 표현 방법뿐만 아니라 회화, 조각 등 예술의 다른 표현 방식과 사진의 접목을 통해 사진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의 작품들과 새로운 관점과 구도로 사진의 새로운 역할과 의미를 묻는 작가의 작품들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어 사진에 관심이 있거나 배우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시간을 제공해 줄 것이다. 제목 때문에 많은 사진들을 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보니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저자의 글이 더 많다. 사진 감상보다는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책에 소개된 20명의 작가들 중 '데비한'이라는 작가가 비너스를 독특하게 표현한 작품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앉으면 뱃살이 몇 겹이나 접히는 아줌마들로 표현한 여신들의 모습, 자위하는 비너스, 쭈그려 앉아 생각하는 비너스 등 순수하게 사진으로만 표현된 작품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비너스의 모습을 통해 작가의 독특함과 기발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과 다른 방식들을 함께 사용하여 표현한 작품들은 내게 무척 낯설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통해 메시지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사진의 최대 매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이거 하나가 진짜야, 라는 식으로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다. 배부른 예술가도, 배고픈 예술가도 좋다. 그리고 예술이 꼭 창조적이고 독창적이어야 한다고 강제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원래부터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솔직해지는 것이다. 가식과 허위가 아닌 인간 본연의 모습을 아무 부끄러움과 거부감 없이 서로 드러내고 공유할 수 있기 위하여 예술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그런 날이 올지는 미지수지만. 아무튼 예술은 여전히 신기하고 즐거우면서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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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과 결혼하다 -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행복한 나라
린다 리밍 지음, 송영화 옮김 / 미다스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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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 날씨, 종교 등의 이유로 외부세계와 대체로 차단된 역사를 가진 부탄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 서구 문화에 익숙해진 우리에게는 낯선 사고와 생활 방식을 지켜왔던 나라이다. 부탄의 이러한 사정을 읽으면서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전도사님이 해주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한국전쟁 당시 그의 조부모님들은 산속 깊은 아주 외진 마을에 살고 계셨던 관계로 그 처참한 역사의 순간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가운데서도 아무 일 없이 평탄하게 그 시기를 지나오셨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곳도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자연적인 고립으로 인해 생겨난 국지적 문화는 나름의 장점이 있는 것 같다.

   현명한 군주의 국가 운영 철학으로 인해 이제 부탄도 민주주의의 길을 걷게 된다고 한다. 물론 우리가 아는 소모적이고 탐욕을 부르는 민주주의는 아니다. '국민행복지수'라는 단순한 측정이 어려운 가치체계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지켜온 전통과 사상을 유지하면서 민주주의의 장점을 결합시키려는 시도 같다. 경제발전에 기초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는 나라로서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전세계적인 금융 위기 사태를 지켜보면서 부탄 같은 나라가 가까운 미래에 지구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일과 시간에 대한 관념이 매우 유연하고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를 잊지 않기 위해 언제나 애쓰면서도 특유의 평화로움과 여유로운 자세를 유지하는 부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저자 린다 리밍이 얘기하는 것처럼 나에게 있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의 길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외부에서 결정지어준 몇 가지의 삶의 틀을 답답하게 고민하다 마지못해 선택하는 인생을 살지, 오직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며 참다운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지, 이젠 정말 선택의 갈림길이다. 그래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는 말자. 부탄 같은 나라에 있든, 한국 같은 나라에 있든 정말 중요한 건 내 마음가짐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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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 브러시, 오래된 사진
와루 글 그림 / 걸리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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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일 브러시, 오래된 사진'은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자극적 내용의 문화컨텐츠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반대로 잔잔하고 차분한 표현과 스토리 전개만으로도 충분히 큰 감동과 재미, 의미로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줄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이다. 네이버 웹툰에서 처음 접한 이 작품은 확실히 다른 작품들과 구별되는 정서와 메시지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이 작품에서는 작가의 순수한 마음과 성품을 등장인물의 표정과 대사 하나하나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간결하고 단순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정말 부러웠다.  

   짝사랑하는 여자아이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 어린 시절 부모님의 뒷모습에서 느낀 그 당시에는 미처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늘,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소중한 추억들, 스쳐지나가는 만남이었음에도 오래도록 작가의 마음을 울리게 했던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작은 생명체들과의 에피소드, 너무나 조심스러웠기에 오히려 많은 소중한 인연을 놓쳐버린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모습, 궁상스럽고 초라해보일 수도 있는 짝 없는 이의 외로움을 담담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부분 등 작가 자신의 경험을 풀어낸 듯한 이야기 하나하나마다 추억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작가가 어느 시점부터 여자처럼 긴 머리로 일관된 스타일을 유지했던 이유가 밝혀지는 마지막 부분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나도 모르게 눈물 짓게 되는 사연이었다. 

   순정만화 시리즈로 웹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던 강풀처럼 작가 와루의 앞으로의 행보도 무척 기대된다. 자기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게 할 만큼 정신 없고 피곤한 삶을 살게 만드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느린 걸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감동을 꾸준히 우리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멋진 작가가 되었으면 한다. 참, 한동안 음악에 심취했었다는 작가의 기타 연주와 노래하는 모습을 언젠가 한번 감상해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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