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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평점 :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는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그 유래는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자신들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으로부터 나왔다. 이런 특징은 유대인을 가리키는 것을 넘어 타의로 자신의 존재 거점을 이동 당할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인들의 이주 역사는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에 잘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에 번역 출간된 폴 윤의 소설집에서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특징은, 각 단편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한국계이기는 하지만, 꼭 한국계여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 있다. 이 말은, 각지에 흩어진, 한반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인물들의 인생 이야기가 세계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형태를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 인종이나 민족이라는 경계를 넘어, 외롭고 슬프고 뿌리를 뽑힌 것 같은 인간 존재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한국인 특유의 서정적 특징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이름에서 한민족의 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일 뿐, 그 이름이 그리스인이건 아프리카인이건 다른 민족적 정체성을 배경에 두고 있다 하여도, 이야기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 점에서 폴 윤의 소설은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가 잘 융화된 사례라고 생각되었다.

이 소설집은 총 일곱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작품은 독립적이면서도 응집력 있는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한다. 시간과 공간, 서로 다른 나라와 역사를 가로지르는 인물들의 삶을 통해 정체성, 소속감, 그리고 문화 간의 충돌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능숙하게 다룬다.
이 소설집의 가장 큰 미덕은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를 고정된 관념이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고통받고 또 견뎌내는 개개인의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고국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상실감, 고독, 그리고 뿌리내리려는 지난한 노력들이 꾸밈없이 펼쳐진다. 어떤 이야기는 극적인 사건으로 독자의 심장을 움켜쥐고, 어떤 이야기는 일상 속 작은 몸짓과 섬세한 심리 묘사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의 소설에 대한 평가 중 ‘절제되면서도 시적인 문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한강 작가의 작품에 대한 평에서 비슷한 표현이 있었음을 생각나게 한다. 삶의 고단함과 잔혹성이 점철되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움이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