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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오 Rouault Georges- Henri(1871~1958)

신(神)을 찬미한 현대의 단테

(그림을 클릭하시면 더 큰그림을 보실수 있습니다.)

 

거울 앞의 娼婦

  루오는 1902년 이후 무서운 정열로 일련의 창부들을 그리게 된다.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유명한 작품이다. 그는 많은 나체의 창녀들을 그리고 있는데 그들의 고달픈 삶의 탓일까? 모두가 노기(怒氣)가 서린 표정들이다. 이 작품 역시 냉정한 입장에서의 사회 관찰이나 비판성은 전연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노기에 찬 격렬한 고발심과 격정적인 분위기를 표출하고 있다. 이 작품이 단숨에 그린 수채화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드가나 로트렉도 나부를 많이 그렸지만 화면에서 풍기는 냄새가 전연 이질적으로, 루오 특유의 세계가 잘 나타나 있다.

 

娼婦

  창부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이다. 정면으로 대하는 이 창부는 하반신의 넓은 요부(腰部)가 인상적이다. 머리를 만지고 있는 상반신과 양팔의 움직임이 매우 동적(動的)이다. 무릎 아래로 신고 있는 검은 양말은 화면의 안정감을 더해 주고 있다. 그리고 더욱 그로테스크한 맛을 풍기고 있다. 그의 나체화 중에서도 두드러진 소묘력을 보여 주고 있는데, 풍기는 인상은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풍경

  마치 동양화의 대가다운 풍취를 느끼게 한다. 이글 거리는 태양이 기승을 부리다가 고요한 저녁놀의 정취를 무한히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그의 20대의 작품으로 엄격한 형체를 내세우고 있으며, 대자연의 엄숙하고도 고고한 자세를 인간적인 의미에서 관찰하며 표현하고 있다. 1898년 그의 스승의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 이후 1900년경부터 렘브란트 풍의 종교화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대담한 필치의 수채화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2, 3년 후부터 전개되는 작품들을 생각하니 마치 폭풍 전야 같은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북을 치고 있는 道化師

  이 작품은 루오가 사망했을 때 아틀리에에 방치되었던 작품으로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미완성 상태로 버려 두었다. 물론 서명이나 연대는 없다. 1905년경 시작한 그림으로 짐작이 가는데 더 이상 가필(加筆)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흥미 진진할 따름이다. 북을 두드리는 도화사의 모습이 주제가 되어 있는데 필경 손님을 유치하기 위함 이리라. 루오의 예술은 한마디로 인생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 모두가 절실한 '사랑의 눈'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깃털 모자를 쓴 여인

  그의 화필은 노기가 다소 누그러졌다. 화면은 명랑하고 필치는 리듬에 맞추어 춤추고 있는 듯 경쾌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필치의 지나친 속도감은 형체상 애매한 곳도 느끼게 한다. 이 작품과 유사한 수채화가 몇 점 더 있는데 어느 것이든 여자가 강아지를 끌어안고 있다. 루오의 작품으로는 경쾌한 멋을 보여 주고 있다.

 

유객(誘客)

  철저하게 작가의 정신적인 세계가 화면을 뒷받침하고 있다. 곡마단은 서구 작가들이 즐겨 그리는 소재이다. 피카소나 드가, 로트렉 같은 작가들이 특히 즐겨 찾은 소재이다. 곡마단의 유랑민 적인 생활과 인간이 지니고 있는 비애, 사랑, 그 모든 것을 집약시키고 있다. 주역은 붉은 색의 의상과 검은 장화를 신고 있는 여자 단원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 장면은 손님을 유치하기 위하여 간단히 그 특유한 흥을 보여 주고 있다. 왼쪽 구석에는 도화사가 서 있는데 그는 난쟁이다. 난쟁이가 등장된 것은 화면의 구성상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X씨

  루오의 작품 가운데서도 우수한 것의 하나이다. 이것은 어느 특정인을 모델로 정하고 그린 것이 아니다. 오직 그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느날 친지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나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X씨는, 사람들이 그가 죽었다고 생각할 때면 나에게 소생되어 나왔습니다. 내가 그를 잊고 싶어 그리스도의 태형을, 때로는 도화사나 창부들을 그렸던 것입니다. 혹은 풍경이나 현실에서 패배한 군상들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나의 마음속에 항상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필경 루오의 두터운 신앙심에서 우러 나온 소산일는지 모를 일이다.

 

X부인

  필경 이 작품은 돈 많고, 신앙심이 두터운 자선가의 모습을 그린 듯 싶다. 어느 면에서 자기 만족에 도취되어 있는 상이다. 그의 예리한 관찰력과 풍부한 소묘력이 이 그림에 빛나고 있다. 이 작품은 루오가 이사를 하는 날, 의사 지라루단이 와서 도와주자 그 사례로 '어느 것이나 당신이 마음에 드는 것을.' 하고 건네준 작품인데, 두 점 모두 연대나 서명이 없다. 자연스러운 그의 인간미와 서민 감각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풍경

  루오는 1911년에 지금까지 살았던 정든 곳을 떠나 교외로 이사한다. 이 시기를 고비로 여러 장의 전원풍경(田園風景)을 남겨 놓았다. 공원 또는 한적한 농촌의 풍경을 그렸는데 필치는 무척 경쾌하다. 대개의 경우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자연 속의 점경인물(點景人物)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분위기가 감도는 작품이며 세잔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특기할 것은 루오 특유의 암색조(暗色調)에서 밝은 화면으로 변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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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6-23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글, 그림입니다.
 
 전출처 : readers > 루오 Rouault Georges- Henri 1871~1958 (2)

 

루오 Rouault Georges- Henri(1871~1958)

신(神)을 찬미한 현대의 단테

 

겨울(풍경)

  제 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수년 전부터 루오는 많은 풍경화를 수채로 그렸는데, 그 대부분은 20×30cm의 소품들이다. 경사진 언덕과 도로, 수직(垂直)으로 된 나무들, 지극히 의도적인 구성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그린 이와 같은 구성적 의식은 후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 의의는 매우 큰 것이다. 등장 인물들의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인생의 고난과 사랑이 그림 속에서 숨쉬는 것 같고, 그리스도가 금방 그 옆에 와 있는 듯한 절박감을 갖게 한다. 깊은 인간애가 루오의 그림 속에 서식해 있고, 이 인간애는 철학적 차원을 넘어선 종교적 차원으로까지 승화되고 있다.

 

누추한 집

  루오의 예술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 뿌리를 '심원한 사랑'에 두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루오의 예술을 가장 종교적인 회화라고 한다. 그는 카톨릭 신자였으며 많은 그리스도 상을 그렸다. 또한 곡예사, 창부들을 그렸는데 그 어느 것이나 '인간애의 추구'였던 것이다. 이 작품은 실내의 모자상인데 어머니가 병고에 시달리고 있다. 무심한 어린이의 안면과 대조를 이루면서 한층 더 드라마틱한 효과를 이루고 있다. <마을 풍경>, <피난가는 사람들>을 거쳐 드디어는 그리스도가 등장하여 그의 화면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개혁자

  제 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해서 약 10년 동안 루오는 수채화로 인물화(소품)를 많이 그렸다. 그 주제는 거의 가난한 사람들(남녀) 때로는 관리, 교육자 등을 등장 시키고 있다. 굵은 윤곽선으로 그린 이 작품은 과거에 있었던 고발적 정신이나 노기에 찬 열기에서 벗어나 지극히 냉소적인 자세이다. 종교 개혁자 로터를 모델로 그린 모양인데, 화면 오른쪽 아래로 '폰 루터'라고 쓴 것을 보면 그 교만한 표정으로 보아 전형적인 독일인을 꼬집은 듯 싶다. 이 작품이 그려진 것은 1915년, 그러니까 전시 중으로 독일에 대한 반감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교외의 그리스도

  그의 작품이 창작되는 순간, 그것은 항상 기념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왜냐하면 작품이란 작가의 온갖 노력 끝에 생산되는 것으로, 그가 항상 그와 같은 긴장의 연속 속에서 온갖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까닭이다. 이 풍경에서 느끼는 것은 세속적인 소요나 허식이 없다는 것이다. 쓸쓸한 표정을 지닌 집이 몇 채 있을 뿐, 아득히 지평선으로 이어지는 길 저편에는 달이 외롭게 떠 있으며, 길은 그 반사를 받아 환히 비치고 있다. 이것은 도화사들이 그들의 생활에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갔을 때의 고요일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그 도화사들 옆에는 항상 그리스도가 함께 있다.

 

성탄절의 풍경

  달은 안 보이지만 야경에 틀림없다. 민가의 지붕에는 잔설(殘雪)이 희게 비치고 있으며, 보고 있노라면 왜 그런지 쓸쓸한 적막감이 찾아온다. 인물은 안 보인다. 이 화면에서 인물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도화사가 연상되며, 일종의 공통된 세계를 보여 주는 것 같다. 한편 지평선 저쪽으로는 청색이 보이며, 밤 하늘에 무한히 뻗어가는 인상을 더해주고 있다.

 

道化師(도화사)의 이야기

  루오가 소년 시절 스테인드 글라스 공장에 다녔던 적이 있었는데 작품에서는 그때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검고 굵은 선, 많든 적든 간에 단순화된 색조 처리, 투명한 색감 등이 그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얼굴 부분의 광채는 비현실적일 정도이다. 루오는 도화사에게서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을까? 조명을 받은 듯이 보이는 안면 처리, 크게 뜨고 있는 눈, 모두가 너무도 강렬하다. 그리고 상의에 붙어 있는 백색의 리본과 이에 어울리는 색채적 효과는 이 화면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道化師(도화사): 빨간 코

  관객들 앞에 나와서 웃음을 팔던 도화사들이 이제부터 자취를 감추게 된다. 주로 수채를 써서 그린 제 1기에 해당되는 작품들은 인간 사회에서 최고로 노동을 강요당하던 비애와 슬픔에 얽힌 군상들이다. 그러다가 제 2기에 들어서면서 내면적인 변화가 점차 심화되어 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수채화가 아닌 유채화이다. 뿐만이 아니라 관중 앞에 나온 도화사도 아니다. 그의 억세고도 굵은 상과 그리고 강렬한 색채 및 표정 등은 전자보다 더욱 작가의 내면적인 상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양식은 만년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성서의 풍경

PAYSAGE BLBLIQUE

연대 미상 캔버스 유채 22X27Cm

도꾜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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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eaders > 루오 Rouault Georges- Henri 1871~1958 (3)

 

 루오 Rouault Georges- Henri(1871~1958)

신(神)을 찬미한 현대의 단테

 

상처를 입은 道化師

  루오의 예술은 강렬하면서도 구수한 민화적(民話的)인 흐름을 보여 주고 있다. 상징적이면서도 설화적(說話的)인 내용이다. 그 설화 속에는 달, 구름, 도화사의 의상과 표정들이 보면 볼수록 끝이 없이 인생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싶다. 앞의 두 사람은 기운없이 눈을 아래로 뜨고 있으며, 키가 작은 뒷사람은 앞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고 있다. 상단 부분에 안면을 내보이는 인물은 누굴까? 분명 도화사는 아니다. 고달픈 인생항로(人生航路)를 말하는 듯 설화성이 있으면서도 전체가 풍기는 상징적인 효과는 또다른 별개의 예술성을 말하는 듯 하다.

 

법정에 나온 그리스도

 맑은 표정을 가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의연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남녀 각각 상기된 표정이다. 하나하나가 모두 윤곽이 다르고 인상이 다르다. 그들은 천사의 얼굴도 아니요, 사도의 얼굴도 아니다. 피고와 증인 같은 세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인상이 험상궂게 보인다. 얼굴은 모두가 열 여섯이나 되는데, 세 사람을 빼면 열 세 사람이 남는다. 필경 그리스도를 배반한 유태인을 그린 것일까? 혹은 빌라도 법정에 선 그리스도를 조소하는 대사제(大司祭)나 군중일지도 모르겠다.

 

나부

NU

1925년경 캔버스 유채 80X60Cm

스위스 개인 소장

 

소가족

  대작을 별로 안 그린 루오에게는 예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작이다. 높이만 2m가 넘는다. 원래 이것은 규도리 부인에게서 의뢰받은 다피스리를 위한 그림이다. 매우 감동적인 표현이다. 상처 입은 가족 중의 한 사람을 두고 서로가 위로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생활의 고통을 나누려는 표정은 무한한 인간의 사랑을 말해 주는 듯, 아니 보다 더 종교적인 차원에까지 끌어 올리고 있다. 필경 루오는 이와 같은 슬픈 사연의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그것에서 인간의 참다운 행복과 사는 보람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聖顔(성안)

  그리스도가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는 도중 한 여성이 수건으로 땀을 닦아 준다. 이상하게도 그 수건에 그리스도의 상이 찍혀 사람들은 이것을 기적이라고 부르면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때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聖顔(성안)이라고 한다. 루오는 여러 장의 성안을 그렸는데,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은 파리 국립 근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지극히 종교적인 걸작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뇌와 인내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본질에 관해서는 중세 이래 많은 신학자들이 논해 왔다. 루오는 화가로서의 두터운 신앙심으로 성안을 그린 것이다.

 

聖骸布(성해포)

  흑색을 주조색으로 굵은 필치, 대담한 색조 등 유니크한 작품이다. 이것은 수난의 성안(聖顔)을 그린 것으로 어느 친절한 사람(唐墨-당묵-을 선사해 준 분)에게 사례로 건네준 작품이다. 단조롭게 처리된 이 작품은 내용에서부터 풍기는 광채가 형용할 수 없는 품격을 지니고 있다. 신비로운 경지, 동양적인 정감, 여기에 루오의 회화성이 있으며 그 마력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얼굴

  루오의 그리스도는 전능하고 영광에 찬 그리스도 상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가련한 도화사, 재판 받는 피고나 가난한 사람들과 도피하는 사람의 괴로움을 함께 나누려는 고난의 길을 걷는 그리스도 상이다. 루오는 안면을 아래로 숙인 그리스도 상을 무수히 그리고 있다. 배경이 되는 넓은 공간 속에 유독 붉은 구름이 광채를 보이고 있다. 화면 구성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이 구름은 화면에서의 상징적 의미 또한 큰 것이다.

 

푸른 새

  전쟁 중 연극계에서 명성을 얻은 여배우 마리아 라니가 모델이 되었다. 고개를 약간 갸우뚱한 자세로 눈을 아래로 깔고 있는 이 미녀는 루오 자신이 화면 윗부분에 표기해 둔 바와 같이 '푸른 새'를 상징적으로 그리면서 화면을 정리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새에게 노래를 시키려면 눈을 멀게 하라'는 습관이 있다. 그와 같은 속세적인 것에서 취재, 비록 새를 상징한 얼굴을 그렸지만 루오는 이를 자신의 예술과 비유한 것으로 해석된다. 루오는 훨씬 더 차원 높은 그의 인간상을 주제에 용해시켜 더 멀리 노래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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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eaders > 루오 Rouault Georges- Henri 1871~1958 (4)

루오 Rouault Georges- Henri(1871~1958)

신(神)을 찬미한 현대의 단테

 

저녁놀

  루오는 1937년부터 39년까지 많은 풍경화를 그렸다. 1920년경에 그린 <교외의 그리스도>, <성탄절 풍경> 등에 비하면 화면(색조)이 맑아졌다. 이미 그의 풍경화는 시각의 자연에서 심각(心覺)의 자연으로 변해 온 것이다. 구도나 여기 등장되는 건물, 인물들은 물론이지만 광선 처리나 화면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종교인으로서의 심각적 감정에서 솟아난 새로운 차원의 세계이다. 그리스도와 2, 3명의 인물들이 노상에 서 있을 뿐이다. 자유로운 필치, 굵은 선, 충만된 구성 등 실로 놀라운 경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녹색조(綠色調)의 하늘 처리 등은 격조 높은 그의 품위를 말해 주는 듯하다.

 


저녁놀 2

CREPUSCULE

1952년 캔버스 유채 32.5X40.5Cm

도꾜 개인 소장

 


예루살렘

JURUSALEM

1954년 캔버스 유채 69X54Cm

도꾜 브리지스톤 미술관 소장

 


老王

  노왕(老王)의 표정은 몹시 침통하다. 이 작품에서는 왕의 권위나 위신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왕관 그리고 화려한 의상에서도 그와 같은 허영심은 없다. 마치 <수난의 그리스도> 나 <상처입은 도화사> 상과 일맥 상통하는 인간상이다. 신비롭게 가라앉은 화면 처리는 마치 중세 시대의 '글라스 회화'를 연상시켜 준다. 사인이 없는 것을 보면 다시 가필하려는 작가의 고원(高遠)한 인간상을 물씬 느끼게 된다. 한편 이 작품은 루오 인간상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작가의 정신 내부를 잘 표현한 걸작이다.

 


受難(수난)에서(같은 밤 함께 죽어)

  그리스도 좌우로 두 사람이 그려졌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도적들이다. 한편 그리스도의 머리 위로부터는 은은하게 광선이 흐르고 있다. 핏빛으로 물든 골고다 언덕(화면 좌측) 아래로부터는 달이 떠오르고 있다. 뿐만이 아니라 은은한 광선은 하반신을 비추고 있다. 화면 구석구석에까지 드라마틱한 처리를 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화면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마치 액자의 테두리) 부분의 수법은 주인공들을 돋보이게 하는 데 효력을 보고 있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라 여기 루오의 심원한 회화성이 있다. .

 

受難(수난)에서(여기서 이 세상은 없어지고 새 세계가 탄생했다)

  화면에 골고다 언덕은 가운데, 그리고 좌우로 십자가가 그려 있을 뿐 언뜻 보아 적적하고 음산하고 무섭다. 십자가는 하늘을 향해서 치솟아 있을 뿐, 모든 지상의 역사가 이미 종말을 고하는 듯한 느낌조차 든다. 우리 나라에서도 시화전이 가끔 열리고 있으며 앞으로도 열릴 것이다. 그런데 화가가 작가의 뜻을 표피적(表皮的)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라면, 루오의 작품은 인간의 예술적 영감의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는지 모르겠다. 그저 루오의 그림이 심원하고 신비롭기만 하다. 후일 다시 보게 되면 필경 새로운 양상으로 감명을 받게 될 것이다.

 


受難(수난)에서(너희들은 이 세상의 어려움을 아느냐?)

  앙드레 슈아레스의 종교 시집 '수난'(1939년)의 삽화 12매 가운데 10매를 뽑아 동판화를 새로이 유화로 제작한 것이다. 슬픈 사연에 잠긴 여인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그렸는데 박진 감에 넘쳐 흐른다. 멀리 달이 떠 있으며 엄숙한 분위기 표현에 성공한 작품이다. 루오의 작품이 모두 그러하듯이 단조롭게 보이지만, 내용에서 풍겨 나오는 이야기는 보다 깊은 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受難(수난)에서(모든 이의 惡의 지식)

  유리와 같은 투명한 배경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나상은 대화하는 형태로서 중후감이 넘쳐 흐르고 있다. 화면이 양분되기 쉬운 위태로움을 안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가 다리를 벌려 그 위태로움을 덜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반신이 상반신에 비교해서 짧게 표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감있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두 사람 모두의 바깥쪽 다리가 상반신을 받쳐 주고 있기 때문일까? 색채도 대조적인 색을 사용했음에도 품위가 한층 높아 보인다. 중량감이 넘쳐 흐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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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오 Rouault Georges- Henri(1871~1958)

신(神)을 찬미한 현대의 단테

 


受難(수난)에서(무게도 부피도 없이 그는 나간다)

  루오의 작품은 섬세한 묘사가 있다. 그 보다 더 차원 높은 경지를 그리기 위함 이리라. 초기에 그는 모로의 교실에서 배웠으며 모로는 물론 렘브란트의 영향까지 받았었다. 그래서 그의 24세 때의 작품 <그리스도의 죽음을 슬퍼하는 성녀들> 등을 보게 되면 무서운 묘사력을 지녔던 루오이다. 루오는 단연 그 묘사에서 벗어나 대담한 필치와 색면(色面) 처리들을 자유롭게 표출하는데 이는 보다 더 차원 높은 경지를 소망했기 때문이다.

 


受難(수난)에서(풀에 샘물이 속삭이듯)

  조부모도 양친도 모두가 독실한 카톨릭 신앙이 두터운 사람들이었다. 루오의 그와 같은 가정 화경과 거기에다 예술적인 충동이 섞여, 그가 그리는 그리스도는 그의 인간 내부의 전부가 성화(聖畵)의 내용과 일치되면서 유감없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를 앞에 앉히고 영적대화(靈的對話)가 오가는 것이다. 달이 어김없이 닮은 마리아 상 위(위쪽 상단)에 떠 있으며 좌우의 균형을 이루어 주고 있다. 루오의 작품 앞에서는 그저 머리가 숙여진다.

 


그리스도 안에 모여

INTIMITE CHRETIENNE

1945년 캔버스 유채 46X65Cm

파리 개인 소장

 


쟉 보노무

  쟉 보노무는 농민을 가리키는 속칭(俗稱)이다. 백의와 푸른 하의, 그리고 붉은 띠를 두른 이 사나이는 뒤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상반신을 약간 숙인 채로 달이 떠 있는 밤에 어디론가 걸어 가고 있다. 모든 인간들의 보이지 않는 운명적이며 숙명적인 상(像)을 그는 이 그림을 통해서 대변해 주고 있다. 그리고 더욱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고독감이다. 멀리 지평선 위로 외딴 집이 한 채 서 있다. 집의 흰 벽면은 인물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붉은 띠와 지붕이 또한 색채적인 조화를 형성하면서 한층 화면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피난

  루오가 처음부터 시도한 시리즈 <피난>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그림이다. 루오는 그의 '독백록'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피난하는 사람들, 그 모습들은 우리 세대의 모든 사람들의 상(像)이다. 사람들은 병마와 권태와 빈곤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그리고, 겨우 벗어나려고 하면 다시 재난이 닥쳐오며 급기야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만 벗어날 수 없다. 아무 의욕이나 희망을 갖지 않은 피난자들은 얼굴을 숙이고 힘없이 걸어야 한다. 뒤를 돌이켜볼 여유도 없이, 그리고 많은 예언자들이 약속한 행복따위는 잊은 채 거닐고 있다.' 저녁놀은 어느덧 불길한 핏빛으로 물들었으며 희망의 별은 까마득하다.


우리들의 쟌느

  제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면서 나치스 군대가 프랑스로 진주(進駐)했었다. 남달리 프랑스를 사랑하던 루오의 심정은 국민들의 추앙받는 성녀(聖女) 쟌느 다르크를 의식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이 작품을 그리게 되었을 것이다. 조국의 영웅이라기 보다 수난받는 인간상으로 그렸다. 배경은 이 시기에 꾸준히 그린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풍경화와 같다. 주인공은 숨김 없이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조국애의 강렬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작가란 때로는 그 시대의 증인이며 대변자가 된다. 그리고 그 시대를 고발하기도 한다. 그 아름다운 조국애는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우리의 것이리라.

 


그리스도교적 夜景

  루오가 그린 수많은 풍경화 중에서 가장 우주적인 작품으로 보여진다. 구도는 아래 부분에서 윗부분으로 장대하게 울려 퍼졌고, 수 개의 원(圓)과 반원(半圓)의 포름이 화면 중심부에 위치해 루오 특유의 안정감을 나타내고 있다. 내면 세계를 표출 시키는 그의 회화 언어가 그러하듯 이 그림에 등장한 배, 바다, 달, 섬, 집, 수목 등은 달빛을 받은 달밤의 자연 현상을 시각 체험대로 재현시킨 것이 아니고, 그 실체를 보는 루오의 내면적인 세계, 즉 심각적(心覺的) 진실을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티베리야스 호(湖)에서의 그리스도와 제자(그림 아래 부분)가 모티브인데, 신비스러운 빛과 검은 그림자 및 무한히 크고 넓은 화면이 어떤 영겁의 세계, 영원한 정신 세계를 표상하고 있다.

 


풍경(세 사람이 있는)

  루오는 만년에 이르자 화포에 바른 유채 물감을 나이프로 깎아 내고 다시 바르는 기법을 버린다. 따라서 화면은 울룩불룩하고 터치 자국이 더욱 생생하게 나타난다. 중기 작품의 특색인 문지른 듯한 색의 투명감은 없어지고 '용암(熔岩)과 같은 중후한 색채 덩어리(P. 크르테온)'가 조형의 수단으로 화한다. 색채는 선명하고 밝으며 따라서 건강하다.

  이와 같은 분명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조형 의지는 그의 기나긴 고난 끝에 얻어낸 예술 경지와 독실한 신앙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에서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세 인물을 그림 전면에 배치하고 파뿌리 모양의 성당을 그림 원경 중앙에 앉혀 하늘 나라와 인간 사회를 상징적으로 대조, 경건한 분위기가 감돌게 했다. 루오는 이 해에 보라르 가(家)와의 소송으로 되찾은 그림 가운데 315점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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