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땐 니체 땐 시리즈
발타자르 토마스 지음, 김부용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우울할 땐 니체? 니힐리즘의 대명사 니체가 우울한 삶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준다?

   아직은 나에게 니체는 우울한 존재이기만 한데 이 책에선 어떤 모습으로 말을 건넬지 모르겠다.


2. 저자인 발타자르 토마스는 독일계 프랑스인으로서 철학 교수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감이 묘하다. 철학교수면 철학교수이지 철학교수 자격은 또 무엇? 어쨌거나 이 책의 저자는 철학을 연구하는 삶에 앞서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을 얻은 바 있고, 철학 강의와 글쓰기, 사진, 음악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철학에 감성을 더한 글을 기대해본다.


3. 저자는 서문이기도 한 '이 책의 활용법'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고 나서야 비로소 더 넓은 삶의 범위와 삶의 의미에 대해 자문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하겠다고 한다. 진단하기, 이해하기, 적용하기 그리고 내다보기가 그것이다.


4. 니체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다. 몸만 약한 것이 아니라 말년에는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정신병발작을 일으켜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되었다. 니체의 저서 대부분은 육신의 고통과 영혼의 불안정속에서 태어났다. 그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질병을 통해 습관과 단절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질병은 나에게 늘어진 자세, 여가, 기다림과 인내에 대한 의무를 선사한다. 그러나 사유로 인도하는 것이야말로 질병의 가장 큰 선물이다."


5.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본다면, 질병은 가장 큰 고통 속에서 우리 자신 안에 잠들어 있던 생명을 발견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이야기다. 니체는 '위대한 건강'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질병을 특수한 시선으로 바라보자고 한다. "위대한 건강은 우리가 소유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획득하고 있고 획득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끊임없이 이 위대한 건강을 희생시키고 있으며 희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즐거운 학문]


6. 니체가 육신의 질병 못지않게 진단하고자 했던 질병은 일명 '허무주의'다. 이는 존재가 의미를 갖지 않고 삶에 가치가 없으며 노력이 고통보다 가치가 없다는 자각, 모든 것의 가치는 동등해서 선과 악, 부와 빈곤, 아름다움과 추함 사이에 가치의 차이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허무주의 : 이것은 목적이 결여되어 있고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결여되어 있다. 허무주의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고귀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인가?"  [유고]


7. 삶에 의미가 있는가? 인간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원초적인 철학적 질문이다. 명쾌하게 답변 할 수 있는가? 나는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말로, 글로 표현했지만 잘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는 '삶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기 전에 질문 자체의 의미에 대해 자문해보길 원하고 있다. 삶의 가치에 대한 질문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접근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삶의 의미를 판단 할 수 있으려면 삶에서 빠져나와 그 삶을 관조해야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8. 그렇다면 니체는 무엇이라 하는가?  "삶은 무엇인가? 이 점에 근거하여 삶을 더 명확하게 규정하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삶은 힘을 향한 의지이다."   [유고]


9. 저자는 '힘을 향한 의지'를 이렇게 풀이한다. '힘을 향한 의지는 세계라는 혼돈속에 어떤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사물에 자신의 힘을 부과하는 것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10. 니체는 운명과 숙명에 대해 지극한 사랑을 부여했다. 니체는 그의 저서 [즐거운 학문]을 통해 존재의 모든 양상에 대해 '예'라고 답하는 것이 쉽다고 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동적인 긍정의 원칙은 그의 눈에 원한, 양심의 가책, 허무주의에 대한 처방이 된다. 따라서 니체는 추하고 기괴한 것을 더 추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부정하는 대신에 그것을 본질적인 존재 양상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함으로써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11. 자신과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현실과 반대되는 이상을 열망하고, 자신을 넘어서서 또 다른 존재가 되길 원하는 것은 인간이 지닌 특질이자 약점이다. 니체는 이런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리고 생명 자체는 나에게 비밀을 말한다. '보시오, 나는 항상 나 자신을 극복해야 해요'라고 말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2. 니체에게 관건이 되는 것은 인간은 자기 현실에서 도망침으로써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더 현실적인 존재로 만듦으로서 초월함을 보이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충분한 긍정을 통해 초월할 수 있다. 신이 되기를 열망하는 대신에 온전한 인간이 되길 열망해야 한다는 니체의 말을 마음에 담으면서 이 책이 나름대로 책 제목의 값을 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니체와 조금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굳이 우울할 때가 아니더라도 상관 없을 것 같다. 항상 우울하다면 어느 때나 무관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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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음사입니다. :-)

 

민음사의 신간 <결심의 재발견>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미루기 대장,

세계 최고의 늑장 연구가가 되다

 

 

 

 

자타공인 미루기 대장이었던 피어스 스틸은 그동안 자신을 괴롭힌 늑장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진화심리학, 조직심리학, 뇌과학 전 분야를 망라하는 세계 최고의 늑장 권위자가 되었다. 바로 이 순간에도 저자의 늑장관련 논문은 각종 분야에서 활발히 인용되어지고 있다.

결심의 재발견은 고질적이고 백해무익한 늑장'합리적인 미루기'를 구분하면서 늑장에 대한 과학적 해부를 시도한다. 스스로에게 다짐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한 모든 결심,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결국 달성하지 못한 당신의 목표를 위해 늑장탈출에 필요한 과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방법을 지금 여기에 모두 공개한다.

 

 

 

많은 응모 부탁드립니다. :-)

 

 

서평단 모집 상세내용

 

- 응모 방법 : 리뷰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를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 완료.

 

- 응모 기간: 2013.06.05 - 2012.06.14

- 추첨 인원: 20명

- 서평단 발표: 2013.06.17 (월) 오후

- 서평 기간: 2013.06.20-201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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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와 열정
제임스 마커스 바크 지음, 김선영 옮김 / 민음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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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학교는 잠깐 다니고 졸업하면 그만이지만, 배움은 그렇지 않다. 인생을 꽃피우고 싶다면 확 끌리는 분야를 찾아 미친 듯이 파고 들어라. 누군가 날 가르쳐 주겠지라는 기대는 접어라. 열정이 넘쳐야 스승이 나타난다. 졸업장이나 학위는 고민할 필요 없다. 아무도 날 무시하지 못할 만큼 실력을 키우면 된다."


2. 위의 글(말)은 이 책의 지은이 제임스 마커스 바크가 몇 해전 '위태로운 아이들'이 다니는 특수 학교의 초청 강연을 받고 학생들에게 한 말이다. 그 학교는 일반 고등학교를 그만두거나 퇴학당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당시 스물넷이었던 바크는 실리콘 밸리에 있는 애플컴퓨터사에서 소프트웨어 테스트 담당자로 일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담임교사는 바크가 고등학교 중퇴자로서 사회에서 '성공'한 표본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강연을 부탁했던 것이다.


3. 아이러니하게도 강연이 끝나고 학생들의 질문에도 성의껏 답변을 해주고 학교를 나오는 길에 담임 교사가 이런 말을 했다. "바크씨,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당신을 강사로 초빙하는 일이 다시는 없을 겁니다. 당신이 아이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위험하니까요." 무엇이 위험한 메시지였는가?  


4. 바로 이 말. "배움은 중요하다. 그러나 학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게는 학교가 필요 없었다. 너희에게도 필요 없을 것이다." , "학교가 배움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또 학교가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약 학교 생활이 좋다면 학교에 남아라.", "학교가 못마땅하면 학교를 떠나라. 학교 아니면 배울 곳이 없다거나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나를 떠올려라."


5. 만약 내 아이가 이 책에서 학교를 떠날 구실만 찾아 낼 성향이 크다고 생각되면, 위태로운 아이들이 더욱 위태로운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중간에 학교를 떠날 생각은 없고, 최소한 졸업은 하겠다는 의지가 있고, 단지 방향감각만 없다면 권해줄 만하다.


6. 지은이는 스스로 버커니어 기질이 있는 사색가라고 이야기한다. 버커니어의 오리진은 16세기의 프랜시스 드레이크 같은 항해가들이 롤모델이 되었지만, 나중엔 해적으로 불리워지긴 했다. 지은이는 이 버커니어를 배움에 대한 열정이 충만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 어떤 제도나 권위도 이들에게 재갈을 물리거나 멍에를 지게 하고 족쇄를 채우지 못한다고 한다. 여기저기 누비며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또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열망으로 가득찬 사람을 버커니어라고 부른다.


7. 바크가 성공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 공부에 시간을 투자하고 열정을 바쳤다.

- 내 기질과 리듬에 맞는 공부 방법을 개발했다.

- 활자로 된 증명서보다 실력과 괜찮은 발상을 높이 사는 분야에서 일했다.

- 내 아이디어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도록 자신감을 키워 준 스승과 동료들을 만났다.


8. 바크는 책에서 시종일관 버커니어를 모델로 삼으면서 그의 지식과 경험의 항해 과정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는 공부가 하기 싫어서 학교를 그만 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짜 공부가 하고 싶어서 학교를 그만 뒀다. 학교에선 마치 복도를 떠도는 유령이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가 학교를 그만 둘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타임]지에 실린 10대 컴퓨터광 유진 볼로흐 덕분이다. 유진 볼로흐는 열네 살의 나이로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9. 정규 교육을 받았다는 꼬리표 없이 소프트웨어 테스팅 분야에서 경쟁이 가능 했을 뿐 아니라 '테스팅 분야 1인자'로 올라설 수 있었던 바크는 그의 경쟁 우위를 이렇게 설명한다.

1) 공부하는 습관 (살아남아야 했으므로)

2) 틀에 박힌 사고를 의심하는 열정적인 자세

 (난 권위를 불신하고 길들여지지 않았으며 진정한 삶을 열망하는 사람이었으므로)

3) 다방면에 걸친 공부(산만했으므로)

4) 야심(존재감에서 열정이 타오르므로)


10. 바크는 [갈매기의 꿈]을 쓴 작가 리처드 바크의 둘째 아들이다. 이 책의 지은이 바크는 버커니어 중 작가로서는 마크 트웨인을, 화가로서는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빈센트 반 고흐를, 과학자로서는 찰스 다윈을 예로 들면서 그들의 공통점을 "이들이 자기 인생에 대한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남겼고 그 기록이 잘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자신이 택한 길을 후회하지 않았다는 점을 덧붙인다.


11. 부전자전. 아니 이 책의 지은이 바크(리처드 바크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의 아들이 앞서 있다. 바크는 16살 늦은 나이(?)에 학교를 그만 뒀지만, 바크의 아들은 12살 때부터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바크의 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바크의 표현을 빌리면 '그냥 논다.'  바크 부부는 사실 아들이 아무 짓도 안하는 게 '아님'을 알고 있지만, 불안하다. 그 이유는 아들이 하는 행동이 언제나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 바크의 부모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12. 바크의 아들 이름은 올리버이다. 바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대화를 나누던 중 올리버가 소설 114편을 썼다고 말했다. (올리버가 12살 때) 그러나 올리버는 제대로 끝낸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는 이유로 그 누구에게도 소설을 보여 주지 않았다. 드디어 올리버는 16살 때 소설 한 편을 마무리해서 그의 어머니(바크의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올리버가 하는 말이다.

"조만간 혼자 힘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고요. 그래서 팔릴 만한 글을 쓰는 법을 배워야겠어요."


"꽃들에게 학교가 필요 없는 것처럼, 아이들의 정신세계도 저절로 꽃을 피운다."

  바크가 그의 아들의 소설을 읽고 남긴 멘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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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제너레이션 - 좀비로부터 당신이 살아남는 법
정명섭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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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Zombie). 부활한 시체를 일컫는 단어다. 아이티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믿는 부두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의 민속식물학자 웨이드 데이비스는 자신의 저서 [더 서펜트 앤 더 레인보우(The Serpent and the Rainbow)]에서 좀비화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했다. 데이비스의 주장에 따르면 약물 두 종류를 이용해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가사 상태로 만들어 좀비로 부릴 수 있었다. 아이티에서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좀비들이 농장주들에게 노동자로 팔려나가는 범죄가 지금도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내일의 미래는 아무도 확실하게 모른다. 당장 내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간 속을 살고 있는데, 그 큰 흐름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저 짐작과 추측만 할 뿐이다. 인간은 지혜로운 것 같으면서도 참 단순하다. 나안(裸眼)으로 보이는 것만 진짜로 믿는 경향이 있다. 아니, 눈으로 보면서도 인정 안하는 경우도 있으니 더 이상 말을 해 무엇하리. 


최근 미국에서 좀비대응훈련 - 실제로는 일반적인 대피훈련 - 있었다고 하면 좀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지은이의 이야기를 믿기로 한다. 같은 훈련이 아프리카나 남미 쪽 이름도 잘 모르는 국가에서 시행되었다면, 그냥 웃고 말지도 모르지만 미국이라니까 귀가 솔깃할지도 모른다. 하긴 나도 그렇다.


이 책은 좀비사태의 발생 직후부터 이동 과정, 이동하는 와중에 만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규합하는지, 그리고 안전지역으로 설정된 지역으로 탈출하는 과정에 대해서 필요한 장비들과 행동요령이 들어 있다. 따라서 좀비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생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가히 '좀비 대응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야기 속에서...'나'는 카페 사장이다. 어느 날 오후 '프리덤 워치'라고 부르는 모임 회원 여럿이 카페에 들어왔다. 스마트폰 뉴스에선 지난 달 서울 근교에서 발생한 인수공통전염병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고 한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들이 머무르다 간 자리에 뭔가 떨어져 있다. 종이에 쓰인 제목을 읽어보니..[좀비 생존 매뉴얼]이다. '나'는 그들이 미친놈이라는 생각이 든다.


[좀비 대응 매뉴얼]은 만들다 만듯 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음날 부터 좀비들이 판치고 다닌다. '나'가 있는 서울은 완전 혼란의 도가니다. 매뉴얼에 나온 내용들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특정 지역에서 굉장히 빠르게 전염병이 전파 되듯이 퍼지고 있다. 전문가 혹은 정치인들이 나와서 구체적인 상황 설명 없이 안심하라고만 얘기한다.


전염병에 대한 정확한 명칭 없이 그냥 '신종 바이러스'다. 정부와 언론이 보도하는 것과 SNS 사용자들의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증상이 빠르게 전파된다. 


처음엔 그랬다. 읽어야 할 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좀비 이야기라?  그런데, 읽다보니 꼭 읽어야 할 책이 되어버렸다. 어젯밤엔 좀비꿈까지 꾸었다. 좀비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나니 밤새 아드레날린이 많이 분비되어 그랬나. 아침에 몸이 무겁다. 문득문득 그들을 어떻게 물리칠까? 어떻게 건강하게 살아 남을 것인가를 생각했다. 황당하다고 생각들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은이가 책 말미에 붙인 '좀비의 역사와 프리덤 위치'를 보면 '좀비'가 게임의 캐릭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최초의 좀비들은 지금처럼 떼 지어 다니면서 인간을 공격하거나 잡아먹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노예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인간을 공격하는 괴물로 탈바꿈했단다. 종말에 대한 인간의 불안함이 노예였던 좀비를 변화시켰다고도 한다. 좀비에 대한 이런 신화들은  영화나 TV드라마, 책 등으로 퍼져나갔다. 인간들은 좀비에 대해 믿으면서도 믿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프리덤 워치' : 좀비에 대한 감시와 대책을 논의하는 조직인 프리덤 워치는 1987년 미국 샌디애이고에서 발족했다. 이 조직이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도 드라마틱하다. 20세기 후반 유럽과 아시아 각지에 프리덤 워치 지부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 역할엔 유투브를 비롯한 인터넷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프리덤 워치 조직이 '좀비의 진실'이란 제목의 동영상을 통해 좀비 아포칼립스 사태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알렸다고 한다.


여전히 황당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심각하다. 믿자니 뭔가 홀리는 것 같고, 안 믿자니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중에 곤란해질지 모르겠다. 이 책은 잘 갖고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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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계보학 : 하나의 논박서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강영계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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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체는 이 책 [도덕의 계보학]과 [선과 악의 저편]을 거의 같은 시기에 썼다. 이 두 책을 저술하는 동안 '힘에의 의지' 체계를 완성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니체가 '힘에의 의지'체계를 완성 할 수 있었던 근거는 허무주의의 극복이다.


2. 니체의 허무주의(Nihilismus)는 소외다. 인류 문명을 통해서 왜 허무주의가 지배적이 되었는지 묻고 동시에 허무주의의 극복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다각적으로 모색한다. 니체의 고찰에 따르면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가치는 형이상학적인 기독교 도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형이상학적인 기독교 도덕이란, 간단히 말하면 소크라테스의 합리주의적(허무주의적)인, 그리고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삼은 도덕이다. 도덕의 기원은 기독교 사제들의 역할에 직접적으로도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3. 니체의 도덕 비판을 쉽게 정리해보면 모든 것을 비우고, 해체하고 다시 시작하기다. 그리고 그 곳에 새로운 창조적 가치 원리들을 채워넣자는 것이다. 니체는 '군주도덕'과 '가축도덕'이라는 단어를 들어 대비시키고 있다. '가축도덕'을 기독교 도덕, 천민의 도덕 등과 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본다. 


4. 여기에서 기독교에 대한 해석을 현세의 그것에 대입시키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고 생각든다. 중세의 기독교를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어쨌든 니체는 제대로 된 도덕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선 창조적인 군주도덕에 의해 전도되고 해체되며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5. '가축도덕'은 '고통'을 회피하고 부정하지만 '군주도덕'은 '고통'에 과감히 맞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과감히 고통에 맞서는 삶의 모습을 '영원회귀'라고 표현했다.


6. 니체가 '악의 원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열세 살 소년일때부터 였다고 한다. 조숙하기도 해라. 니체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사람들이 '가슴 속에 반은 어린 아이 장난을, 반은 신을'가지는 나이에 최초의 문학적인 어린아이 장난과 최초의 철학적 습작을 이 문제에 바쳤다고 한다. 


7. 니체는 어려서 예술, 특히 음악에 재능을 보였는데 열 살 때 다성(多聲)의 무반주 악곡인 모테토를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열 다섯 편의 시를 쓰기도 했다 한다. 니체는 자신이 열 두 살 때 영광으로 가득한 신을 보았다고 적기도 했다.


8. 도덕의 원천에 관한 그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는 파울 레 박사의 [도덕 감정의 원천](1877)이었다고 한다. 니체는 이 책처럼 모든 문장, 모든 결론을 마음으로 배려하면서 읽은 것은 결코 없을 것이라 한다. 


9. 니체는 '좋다'(Good)는 판단은 '좋은 것'을 받았다고 명백히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그러한 판단은 '선한 인간들'자신에게 있었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판단은 모든 저급한 사람, 저급하게 생각하는 사람, 비속한 사람, 천민적인 사람들에 대하여 자기 자신과 아울러 자신의 행위를 선한 것으로, 곧 첫 번째 순위로 느끼고 정립하는 고귀한 사람, 강한 사람, 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그리고 높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있었다는 부언 설명을 붙이고 있다. 그들은 이와 같은 격차의 파토스로부터 가치를 창조하고 가치의 명칭을 부각하는 권리를 비로소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말은 어렵지 않은데 솔직히 그림은 잘 안 그려진다. 


10. "좋은 그리고 나쁜', '선한 그리고 악한'이라는 두 가지 대립된 가치들은 지상에서 수천 년간 계속된 가공할 만한 긴 싸움을 이끌어 왔다. 그리고 역시 오래전부터 두 번째 가치가 아주 확실하게 지배적이었다고 할지라도, 지금까지도 싸움이 끝난지 않은 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장소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11. 니체는 '금욕적 이상'들은 무엇을 뜻하는가? 라고 묻고 있다. 스스로 답하길, 예술가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거나 너무 많은 것을 뜻한다고 한다. 한편 철학자들이나 학자들에게는 높은 정신성의 가장 유리한 선행(先行)조건들을 위한 후각과 본능 등과 같은 어떤 것을 뜻한다고 한다. 성직자들에게는 고유한 성직자의 신앙, 그들의 최상의 힘의 도구, 힘에 대한 '최고의'면허도 뜻한다.


12. 금욕적 이상의 예를 리하르트 바그너를 통해서 보고 있다. 바그너가 그의 말년에 순결에 경의를 표했다면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를 생각한다. 바그너는 어떤 의미에선 항상 순결에 경의를 표했는데, 금욕적 의미에서 최근에야(니체 시점에서) 비로소 순결에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시 묻고 있다. 만일 어떤 예술가가 자신의 반대로 급변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13. "바그너는 바로 자신에게 걸맞은 귀한 방식으로 우리로부터, 또한 자신으로부터, 무엇보다도 우선 비극으로부터 작별하려고 했다는 것, 말하자면 비극적인 것 자체에 대해서, 이전부터의 전적으로 전율할 만한 지상의 진지함과 지상의 비참함에 대해서, 금욕적 이상의 반(反)자연 안에 있는 궁극적으로 극복된 가장 조야한 형식에 대해서 지나치게 넘쳐흐르는 최고의 방자한 희극시를 가지고 작별하려고 한 사실을 우리는 추측하고 원하기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14. '금욕적 이상'에 대한 니체의 생각을 다시 정리해본다. 인간에게서 금욕적 이상을 제외하면, 인간은, 동물로서의 인간은 지금까지 아무런 의미도 소유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상에서 인간의 현존은 아무런 목표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이것은 대답이 없는 물음이다. 인간과 대지를 위한 의지는 결여되어 있다. 모든 위대한 인간의 운명 배후에는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말만 후렴으로 울린다. 니체는 어떤 것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 엄청난 균열이 인간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는 것, 바로 이것이 '금욕적 이상'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미의 문제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는 대체로 병든 동물이었다.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가?'라는 물음의 외침에 대한 답이 결여되었다는 사실이 인간의 문제였다.


15. 이상하게 니체와는 별로 친해지지 못했다. 내겐 어려운 사람이다. 그러나 더 늦기전에(총기 있을때)자주 만나봐야겠다. 조만간 블로그에 니체의 방을 따로 하나 꾸며주고 싶다. 자주 만나다보면 이해되어질 사람 같기도 하다. 니체가 이 책 서문에 남긴 말은 내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숙제가 되기도 하다.

 

 "생각건대, 이 저술이 어떤 사람에게 이해하기 힘들고 귀에 거슬린다고 할지라도 그 책임이 꼭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우선 이전의 내 저술들을 읽었으며 그때 약간의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고 내가 가정하는 것을 전제할 경우 이 저서는 충분히 명백한 내용을 가진다. (......) 이 논문의 앞에는 하나의 잠언이 있고, 논문 자체는 이 잠언의 주석이다. 물론 이와 같은 기술로서의 읽기를 연습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바로 가장 잘 잊힌 한 가지 일이 무엇보다도 먼저 필요하다. 그리고 그처럼 잊혔기 때문에 내 저술들의 '독서 가능성'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들은 거의 소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어떤 경우에도 '현대인'이 될 필요는 없다. 되새김질..."  

 

니체가 1887년 7월에 쓴 글이다. 여전히 '현대인'보다는 '소'가 많지 않을까?

그럼 내겐 작으나마 위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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