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의 재발견 - 1년 내내 계획만 세우는 당신을 위한 심리학 강의
피어스 스틸 지음, 구계원 옮김 / 민음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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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만약 당신이 95%의 미루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을 미루지 마세요! 라는 멘트가 겉표지에 적혀있다. 그래서 읽어야겠다. 95%에 당연히 포함되기에 그렇다. 이 책의 저자 피어스 스틸은 '늑장심리학'(학문이 세분화되다 보니 이런 분야도 있다) 연구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 저자의 10여 년의 연구 성과를 담았다고 한다. 


2. 저자에게 늑장이란 평생의 과제였다. 그 자신이 미루기 대장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늑장 부리기를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이 책에서도 소개되는 독립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이고, 두 번째는 늑장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 결과를 통합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는 최근에 개발된 과학적인 방법론인 메타 분석(meta-analysis)을 활용하고 있다. 메타 분석은 특정 주제에 대해 독립적으로 수행된 선행 연구의 일치하지 않은 결과를 취합하여 통계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방법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3. '늑장'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 봐야겠다. 도대체 늑장의 정체는 무엇인가? 수많은 설명 중에서 간결하게 옮겨보면 늑장은 '제때 하지 않으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일을 미루는 것을 의미한다.'. 


4. 늑장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다보니 떠오르는 시 한편이 있다. 안도현 시인의 '적멸'이란 詩다.


장독 항아리 뚜껑 위에 눈이 내렸다, 간밤에

뒤뜰에 누가 못을 파서 대여섯 포기 연꽃을 심었느냐

겨울 아침에 브래지어처럼 백련이 벙글어서 좋고

저 연꽃과 나 사이의 눈부신 거리를 거저 얻어 좋다

내 눈썹에다 겨자씨를 뿌리고 가는 북풍도 좋다

마른 풀덤불 잡기장에 참새야, 무얼 그리 총총 적느냐

엄한 원고 마감일을 넘겨야 비로소 시가 오는 습성이

좀 오래갔으면 한다, 오후에는 눈 녹은 물로 손을 씻고

저 연못으로 소금쟁이가 타고 갈 뗏목을 만들어야겠다


이 시를 옮긴 것은 '엄한 원고 마감일을 넘겨야 비로소 시가 오는 습성'이라는 구절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도 늑장에서 자유로운 직업군은 없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작가들이 그러하다고 한다. 애거사 크리스티도 그랬고, 마거릿 애트우드는 "늑장 부리기와 걱정으로 오전 시간을 보내다가 대략 오후 3시쯤부터 미친 듯이 초조함에 휩싸여 원고에 몰두하는" 경우가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고 한다. 


5. 그러나 유명 작가들도 그랬는데 하면서 위안 삼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늑장 부리기는 언젠가 내게 불이익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 틀림없다. 일반적으로 늑장을 부리는 사람들은 완벽주의자에 가깝기 때문에 엄청나게 높은 기준을 설정해 놓고 그 기준에 충족하기 위해 일을 미룬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키포인트다. 저자는 이 부분을 이렇게 마무리 한다. "완벽주의는 완벽한 변명이다."


6. 저자는 늑장부리는 사람의 3가지 유형을 설명한다. 자포자기형, 매사에 흥미를 못 느끼는 타입, 충동적인 성향이 그것이다. 어찌보면 늑장이라는 단어가 발목을 잡는 것도 인간의 삶이 복잡해지는 과정 속에 나타난 현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세상이 이렇게 복잡해지고 피곤해지기 전에 인간들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여유롭지 않았을까? 단지 날씨나 건강 상태만 심각하게 방해를 하지 않았다면 그런데로 사는 데는 별 불편이 없었을 듯 하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면 되지 않았을까? 욕구와 그때그때 해야 하는 행동이 일치했을 것이다. 그러나 차츰 미래를 예상하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타고난 기질에 맞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된다. 자연의 섭리와는 무관하게 여름에 겨울을 걱정하고, 한창 젊은 나이에 노후대책까지 걱정해야 한다. 그러니 늑장 부리는 것에 크게 죄책감을 갖을 필요는 없을 것도 같다. 


7. 그래도 기왕에 늑장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으니 좀 더 읽어보자. 늑장을 피우는 근본적인 원인이 인간이 현재에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페이스북을 로그아웃 할 수 없다는 부류도 소개되고 있다. 페북내 '늑장 중환자'그룹(회원 수 1만 8천명 이상). '내 전공은 낮잠과 페이스북, 부전공은 늑장'(회원 수 3만 명 이상)이란 그룹도 있다고 한다. 


8. 자, 그럼 저자가 권유하는 '늑장을 이기는 기술'은 무엇인가? 실패하도록 만들어진 사람이 없기에 자신감과 열등감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란다. 내가 하는 일은 소중하니까 미룰 수 없다면 사랑하라는 조언도 해주고 있다. 문득 '잡초를 사랑하기'가 오버랩되는 부분이다. 달콤한 유혹의 결과는 언제나 쓰기 때문에 충동의 고삐를 잡으라는 말도 한다. 


9. 저자는 이 책에서 여러가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면서 '늑장'에 대응하는 방법론을 꽤 많이 제시해주고 있다. 늑장의 정체가 파악된 것이 일차적인 수확이고, 두 번째로 늑장은 인간의 보편적인 성향이라는 것이다. 너무 안달복달을 하면서 살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느긋하다 못해 태만한 상황까지 가서 나는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0. 저자 역시 너무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 놓은 것이 멋쩍었는지 슬쩍 한 시인의 시 구절을 인용했다. 웨일스의 방랑 시인 W. H. 데이비스의 詩다. 

"그게 무슨 인생이란 말인가. 근심으로 가득 차 잠시 멈춰 서서 관조할 시간조차 없다면." 

'게으름을 피우고, 경솔하고, 즉흥적이고, 엉뚱해져라, 우리 인생에는 이러한 특징을 위한 자리도 필요하다.' 라는 말이 덧 붙는다. 이 말이 마음에 쏙 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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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늙어갈 것이다
카미유 드 페레티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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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업상 노인 어르신들을 많이 대한다. 나 역시 이젠 아이들이 할아버지라고 부를 정도가 되었다. (아이들 눈은 정확하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면 그냥 받아 들여야한다.나는 특히 머리 색깔 때문에 일찌감치 할아버지 소리를 듣긴 했다) 노인 어르신들을 보면 어렴풋이 나마 그분들이 걸어온 삶의 여정이 얼굴의 표정이나 몸과 마음의 불편함을 통해 전달된다.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들이 "갈데는 이제 한 군데 밖에 안 남았는데.."하시면 내가 웃으며 이렇게 답해드린다. "가시는 길은 아세요?".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인다. "그래도 어르신처럼 이렇게 병원에 오실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하게 받아 들이셔야지요.." 하면 대부분 수긍하신다. 진작부터 거동도 제대로 못하고 지내시는 분이 많기 때문이다.


2. 이 소설의 무대는 요양원이다. 작가 카미유 드 페레티는 1980년생이다. 아직 젊은 고운 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의 심리상태와 상황을 세심하게 그리고 있다. 역시 소설의 첫 문장을 옮겨본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여기, 로비 현관문 앞에 놓인 신발털개 위에서 이렇게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3.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은 좀 불편해도 정신이 맑다면 축복이다. 그렇지만, 정신이 맑지 못한 것도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단지 본인이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면이 안타까울뿐이다. 이럴 때, 정신이 맑지 못한 어르신들을 모셔야 하는 가족들의 입장은 참 난감하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된다. 이 소설에도 당연히 치매 노인들,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스토리가 이어진다.


4. 베고니아 요양원이라는 공동체는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사회이다. 요양원 주민들은 통과해야 할 마지막 문 하나만 남겨 놓은 상태이다. 60세부터 107세 노인까지 함께 생활한다. 작가는 어느 일요일 아침 아홉 시에 시작되어 정확히 다음 날 밤 열두시 사십오분에 이야기의 막을 내린다. 15분 간격으로 이동하고 있다.  요양원 이곳저곳의 모습과 내면의 움직임을 따라 가다보면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듯하다.


5. 이야기의 중심 속엔 전직 판사 니니와 이 소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카미유가 있다. 그들은 대모와 대녀 관계이다.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 중에 작가가 베고니아 요양원을 많이 방문하고 관찰한 것으로 짐작된다. 남편을 애인으로 착각하는 여인도 있다.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그 여인은 애인이 많았다. 남편에게 남편이 오기 전에 얼른 집을 나가라고 한다. 이런 말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들어야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참 안타깝다.


6. 전두 측두엽성 치매를 앓고 있는 드레퓌스 라는 노인은 자칭 '선장'이다. 그는 베고니아를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선박인 양 전두지휘한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요양원은 이 땅에 세워져 있으나, 세상과는 별도로 돌아가는 일상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분명히 세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반대로 세상 역시 베고니아라는 배에 영향 줄 것도 없다.


7. 자칭 드레퓌스 선장은 한 번도 배를 타본 적이 없다. 센강의 유람선을 제외하고는. 그는 파리 토박이다. 그는 무프타르 가에 있는 자신의 철물점을 평생 떠나본 적이 없다. 다행히 베고니아 승객들이 대부분 협조적이다. 그가 휘젓고 다니는 것은 하나의 이벤트다. 

이 글을 적다보니 여러 해전 지하철에서 비슷한 사람을 본 기억이 난다. 옷매무새가 깔끔한 60중반의 남자분이었다. 화창한 날이었음에도 검은 장우산(아마도 통신용 안테나로 활용하는 듯)을 지하철내에서 접었다 폈다 하더니, 드디어 액션!  어딘가로 작전 지시를 내린다. 열려 있지도 않은 폴더폰에 대고 좌표를 읊는다. 카운트 다운...발사. 그리곤 다음 칸으로 기세 좋게 이동하던 그 분. 지금도 어디선가 어딘가를 무수히 폭파하고 다닐 것 같다.


8. 이런 생각이 든다. 요양원 안이던 바깥이던 사람은 부대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이 싫다고 무인도에 가 있는들 마음이 편할까? 젊은이들 중에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고 있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도 종종 접한다. 베고니아에도 호감, 비호감이 존재하기에 당연히 갈등이 있다. 그러나 그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배에 타고 있으니, 하루에도 수없이 부딪힌다. 본인들은 별로 불편하진 않으나 바라보는 사람들만 마음이 편치 않을 뿐이다. 행여나 상태가 더 나빠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엔 웃음이 있고, 사랑도 있고, 작은 감동도 있다. 64장의 스냅 사진을 보듯이 그들의 축소된 삶을 들여다보면서 미래의 나를 본다. 나는 이 중 어떤 모습으로 남길 원하는가.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가게 되는 과정이기에 더욱 마음에 진한 이미지로 남겨진다.


9. 작가의 관찰력과 표현력에 더해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의 롤 모델인듯한 조르주 페렉의 [인생 사용법]에서 썼던 구성 기법이 적용된다.  1) 행마법(체스판 위에서 '기사'가 각각의 칸을 단 한 번만 지나가는 것)을 이용하여 방들의 묘사 순서를 결정하는 것.  2) 목록들과 요소들을 형식상 규칙적인 방식으로 각 장들에 배분하기 위해 10행 정사형 라틴 사각형 이론을 이용하는 것.  3) 목록과 각 목록의 요소들을 정하는 것.  

소설 내용에 시큰둥하다면 구성력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느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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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앙드레 말로 지음, 김붕구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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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기장을 쳐들어 볼까? 아니면 그대로 모기장째 찌를까?" 소설의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이다. 첫 등장 인물 첸은 칼을 손에 쥐고 긴장한 나머지 속이 다 뒤틀리는 것 같다. 결국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죽였다. 소설은 그렇게 시작한다. 


2. 앙드레 말로를 만난다. 말로는 1901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1923년에 앙코르와트 유적 조사를 위해 인도차이나를 방문했다. [정복자](1928), [왕도로 가는 길](1930)을 출간하고, 1932년에 이 책 [인간의 조건]으로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1936년에 스페인에서 내란이 일어나자 참전해 반파쇼 의용군을 조직했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희망](1937)을 출간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참전. 1959년에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되었지만, 1969년에 드골이 국민투표에서 패해 대통령직을 그만두자 그와 함께 은퇴했다. 1976년에 만성 폐출혈로 파리 교외 앙리 병원에서 사망했다.


3. 소설은 혁명의 소용돌이 중심에서 출발한다. 상하이(上海)가 그 첫 무대이다.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의 대립이 플롯이다. 중국 국민당은 중화민국의 양대 정당 중 하나로 1949년 까지는 중국 공산당과 1980년대 부터는 민주진보당과 대립관계에 서게 된다. 그 중심에는 쑨원이 있다. 20세기 중화민국에서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사이에 빚어진 충돌을 '국공내전'이라고 한다.


4. 사상과 이념의 대립은 생과 사를 가른다. 첸은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그의 마음에 지극히 평안함과 혼란스러움이 교차된다. "자네가 그 숙명과 함께 살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즉, 그 숙명을 남에게 전해 주는 거야." "그럴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첸은 붙들려 고문을 당하든지 사형을 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결단과 죽음의 세계 속에서 집요하고도 단호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5. 첸의 주변 혁명 동지들의 공통점은 부평초이다. 전통적인 일체의 연줄을 끊어버린 '고립된'인간이다. 이는 말로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분위기이다. 국민당 야전부대의 상하이 봉기가 성공한 뒤 장제스 사령관이 입성, 무기 반납령이 내려 혁명 진영이 초긴장 상태에 접어든다. 첸은 장 사령관 암살을 결의하고, 동지 두 명과 폭탄을 지니고 잠복한다. 그러나 실패했다.


6. 첸은 사실 이 소설에서 조연급이다. 주연급은 기요라는 인물이다. 기요의 부친 지조르는 프랑스인이다. 불온사상자로 찍혀 베이징 대학 강단에서 쫒겨났다. 기요의 모친은 일본 여인이었다. 기요의 처는 상하이에서 출생한 독일 여인이다. 말로는 어찌 이 가정을 이렇게 국제적으로 형성했는지 모르겠다. 말로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부정형, 부동(浮動)의 전형을 모아 놓은 느낌이다. 

기요가 죽고, 그 아비 지조르 역시 죽음을 앞에 두고 번민과 체념의 시간을 갖는다. "죽음은 모든 힘을 잃고 우주의 무한한 평화 속으로 조용히 미끄러져 흩어지리라. 해방은 바로 저기 있다."


7.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말로가 제목으로 정한 '인간의 조건'을 어디에서 찾아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사상과 이념을 앞에 두고 서로 죽이고, 죽어가는 인간의 군상들을 보면서 도대체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 방향감을 상실한 느낌이다. 전쟁이란 상황이 그렇지 않던가. 지도부는 단지 한 가지 생각만 주입시켜 줄뿐이다. 


8. 지조르가 독백처럼 하는 말이다. "...'한 사람을 만들려면 아홉 달이 필요하지만 죽이는 데는 단 하루로 족하다.'는 말이 있다. 한 인간을 완성하는 데는 아홉 달이 아니라 60년의 긴 세월이 필요한거다. 60년간의 갖가지 희생과 의지와...그 밖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여러 가지가. 그런데 그 인간이 다 만들어졌을 때, 이미 유년기도 청년기도 다 지나가 버리고 정말로 그가 한 인간이 되었을 때, 그때는 이미 죽는 것밖에 남지 않는 거란다."


9. 말로 이야기를 좀 더 적어야겠다. 책 말미에 역자인 김붕구 선생이 '앙드레 말로 연구'를 제법 긴 분량으로 적어 놓은 것을 참고한다. 말로의 정신적 편력과 섭렵의 깊이는 참으로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한다. 20대 청년기에 벌써 프랑스 망명 중인 트로츠키와 이데올로기와 에술에 관해 거침없이 대화, 논쟁을 교환했고 지드, 발레리도 번번이 수세에 몰려 당황을 금치 못하게 했다고 한다. 날쌘 사고의 속도라는 표현을 한다. 후반기(제2차 세계대전후)에는 몇천 년간의 고대 예술을 통해 크메르, 이집트, 그리스, 로마 문화는 물론이고 잉카, 비잔틴 문화, 힌두, 불교 문화와 종교, 중국 일본문화 등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탐색했다고 한다. 말로의 다른 작품을 좀 더 섭렵하다보면 그의 생각을 읽고 정리해 볼 계기가 될 듯하다. 말로를 더욱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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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럴 땐 이렇게 - 분야별, 상황별, 주제별 영어 번역 강의 한영 번역, 이럴 땐 이렇게
조원미 지음 / 이다새(부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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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평은 많을 수록 좋다". "가치있는 책의 번역은 많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번역이라는 과정은 인간의 특별한 수고를 필요로 한다. 인류 최초의 번역은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 귀족들의 묘비에 두 개 언어로 동시에 새겨진 비명(碑名)이라고 알려져있다. 


2. 번역에 대한 아포리즘도 많다. "번역은 반역(反逆)이다"라는 말에서 시작해 "번역이란 거꾸로 뒤집어 놓은 양탄자 같을 것이다 - 세르반테스", "번역이란 사생결단의 결투로 거기서는 번역되는자 아니면 번역하는 자 둘 중 하나가 죽게 되어 있다 - 슐레겔" 같은 살벌한 말도 있고, "번역으로 인하여 작품의 흠은 늘어나고 아름다움은 훼손된다. - 볼테르" 는 비교적 온건한 표현도 있다. 


3. 이 책은 오랜 기간 통번역 분야에서 꾸준한 길을 걸어 온 저자 조원미의 치열함이 묻어 있는 글들이다. 우선 영어와 한국의 구조적 차이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 다음 영어식 표현과 구성에서 벗어나 우리말 표현을 구사하는 방법 그리고 정치, 경제, 문학, 과학, 예술, 정보통신, 기타 분야의 번역 강의를 통해 좋은 번역의 세계로 이끌어주고 있다. 


4. '풍부한 표현력이 충실한 번역을 만든다는 말'은 충분히 수긍이 가는 말이다. 저자가 학생들에게 번역을 잘하려면 표현력이 필요한데 이를 기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다.  독서 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독서를 통해 표현력을 기르는 것은 어느 정도 독서를 통한 내공이 쌓이기 전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In put 만큼 out put 하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래서 이런 말을 해주고 있다. "좋은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부터 '주변의 모든 것이 공부다'라는 생각을 해야한다."  책이나 영화를 보던, TV에서 예능 프로를 보던 간에 내게 감동을 주는 글귀가 있으면 잘 기억해두고 있다가 활용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있다. 


5. 영한 번역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 중에 하나가 초등학생도 알 만한 쉬운 단어의 번역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Be independent."를 직역하면 '독립적이 되어라.'가 되지만, 어딘가 어색하고 생명력이 없다. 저자는 이를 '알아서 하세요.'라고 번역하는 것이 그 의미를 훨씬 더 잘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쉬운 단어임에도 적당한 우리말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우리가 영한사전에 수록된 하나의 뜻만 떠올리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럴 때는 '영영사전'을 참고하길 권유한다.


6. 전문 번역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주는 조언이 있다. "번역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전반적인 배경지식입니다. 지식과 정보 제공은 기본적으로 저자의 몫이지만 번역사는 지식과 정보의 올바른 전달을 위해 자신이 먼저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배경지식입니다."


7. 굳이 번역사의 영역까지 안 가더라도 나는 리뷰를 쓰면서 애매모호한 표현은 자제하는 편이다. 단어하나를 쓰더라도 내가 확실히 알고, 설명해줄 수 있는 단어를 쓴다. 공연히 많이 아는 척 어려운 말을 집어넣고 누군가 내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볼 때 우물쭈물할 것 같은 단어는 아예 쓰지 않는다. 그냥 쉬운 말을 쓴다. 


8. 학생들이 자신의 번역에 왜 그렇게 오역이 많은지 모르겠다고 탄식하는 소리가 종종 들린다고 한다. 저자는 가장 큰 이유는 원문 분석 시간이 짧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문을 여러 번 읽으면서 전반적인 의미를 먼저 파악하길 원하고 있다. 의미 파악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왜'라는 질문과 함께 앞뒤를 계속 반복하여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9. 여러 분야의 강의 중 문학 분야 글 번역에서 주의해야 할 표현에 시선이 머문다. 번역된 문학 작품을 읽다보면 활자는 우리말인데 선뜻 그 의미가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겪게 되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의 번역은 역시 표현력이다. 독자가 한국 소설을 읽듯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번역 작품을 만나는 것도 읽는이의 복이다. 몇 가지 번역의 예를 옮겨본다. 

- It is a powerful story.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다.)

- There will be nothing that can be done about it. (속수무책이다.)

- He makes the first move. (그는 솔선수범형이다. / 그는 앞장을 선다.)

- He caused unnecessary fear. (그는 사람들을 괜히 불안하게 만든다.)

- Her beauty is hard to miss. (눈에 띄는 외모다.)


10. 이 책은 번역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 강의를 정리한 책이다. 책 중간에 '번역 학습에 유용한 인터넷 사이트'를 소개하고 있다. 부록으론 저자가 강의를 하던 중 학생들에게 받은 질문 중 다른 학생들에게도 유익한 질문을 추려서 정리했다. 비록 번역사의 꿈까지는 아니지만 보다 좋은 번역을 꿈꾸고자 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정보와 공부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세르반테스가 한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거꾸로 뒤집어 놓은 양탄자'처럼 모든 무늬는 다 있지만 본래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없는 번역의 운명처럼 뒤집어 놓는 번역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가짐으로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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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 맘대로 베스트5


1) 죽음이란 무엇인가

2) 사이언스 이즈 컬처

3) 건축을 위한 철학

4) 국가

5) 몸젠의 로마사


- 내맘대로 베스트 5 중에 단 한권만을 고른다면?

 

 


@ 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이 책을 보면 이미 오래 전 이 땅을 떠난 마르틴 부버가 흐뭇해할 것 같습니다. 책에 소개되는 2인 1조의 대화를 보면, 한 테이블에서 서로 취향이 다른 두 사람이 각기 입맛에 맞는 음식에 젓가락을 자주 움직이면서 정겹게 식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키워드는 '과학과 문화'입니다. 과학이니 인문학이니 구분을 둔 것은 완전히 인간의 편의상 구분이지요. 과학 속에 인문학이 있고 인문학 속에 과학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사람들이 과학 그룹에 속하면 과학적으로, 인문학 그룹에 들어가면 인문학적인 사고로 생활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사는 것이지요. 안 그러면 왕따가 될지 모르니까요.



- 알라딘 12기 신간평가단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제게 여러모로 유익했습니다.

제 주변에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선망하는 리뷰어들이 많습니다.

서평 서적을 무작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 신간평가단들이 희망하고 선정한 도서들이 손에 쥐어지기에 

책에 대한 애정과 책임이 함께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라딘 신간평가단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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