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말 - 사회를 깨우고 사람을 응원하는
루쉰 지음, 허유영 옮김 / 예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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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의 역사 속에서 '계몽적 지식인'으로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던 세계적 대문호 루쉰(魯迅,1881~1936)은 중국 현대문학의 선구자이기도 하지만, 첸리췬과 왕후이 같은 저명한 학자들이 그를 통해 오늘날의 중국을 사유할 만큼 위대한 혁명가이자 사상가이다.

 

2. 우연한 각성의 계기로 의학대신 문학을 선택한 루쉰은 투쟁과 혁명의 길을 걸으면서 중국의 굵직한 현대사에 참여한다. 5.4 운동은 물론 중국의 현대혁명사와 문학사, 학술사, 사상사 또는 미술사를 논할 때도 루쉰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그가 남긴 흔적은 방대하다.

 

3. 루쉰은 한국 독자들에게도 널리 읽혀진 『광인일기』와 『아Q정전』외에도 세 권의 소설집 『외침『방황『고사신편, 그리고 다수의 잡문집과 산문집이 전해진다. 이 책 『루쉰의 말』은 주로 잡문집과 지인에게 쓴 편지 등에서 인용했다고 한다.

 

4. 그는 어찌하다 의학에서 문학으로 급방향전환을 했을까. 이 터닝 포인트가 루쉰 사유의 원형질이 되므로 언급이 필요한 부분이다. 흥미로운 것은 동아시아 근대 지식인의 지적 행보가 대개 의학에서 출발하고 있다. 신해혁명을 이끈 손문(孫文)이 그랬고, 우리 근대사의 서재필이나 이승만 같은 인물이 그러했다.

 

5. 루쉰에게도 의학적 세계관 자체가 계몽운동의 지침이자 방법론이었다. 그런데 유학을 하던 센다이 의전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진다. 흔히 '환등기 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이기도 하다.

미생물학 시간이었다. 강의 시간중 환등기를 이용해 미생물의 형상을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시간이 남으면 선생은 풍경이나 시사에 관한 필름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곤 했다. 때는 바야흐로 러일전쟁 당시였다. 전쟁에 관한 필름들이 많았다. 한번은 화면상에서 중국인 무리를 보게 된다. 한 사람이 가운데 묶여 있고 허다한 무리들이 주변에 서 있다. 사진의 해설에 따르면, 묶여 있는 사람은 아라사(러시아)를 위해 군사기밀을 정탐한 자로, 일본군이 본보기 삼아 목을 칠참이라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 구름같이 몰려든 구경꾼들이 있었다. 동족이 처형되는 것을 무감각한 시선으로 구경하는 중국인 무리들이었다. 이 사진을 보고 루쉰은 분노와 치욕을 느낀다. 저들(구경꾼 중국인들)의 정신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문예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된다.

 

6. "환멸은 대부분 거짓 속에서 진실을 발견할 때가 아니라, 진실 속에서 거짓을 발견할 때 찾아온다."  《삼한집》.  _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환멸의 시대이다. 진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거짓을 진실이라고 계속 우겨대는 무리들이 그 힘을 더욱 키워가고 있다.

 

7.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깼을 때 갈 길이 없는 것이다. 꿈을 꾸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하다. 아직 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를 꿈에서 깨우지 않는 것이다."  《무덤》. 월드컵의 열기가 대한민국을 휘감을 때 '꿈은 이루어진다' 역시 온 땅을 덮었다. 그러나, 그 꿈은 내 꿈이 아니었다. 공동체의 바람이었을 뿐이었다. 붉은 열기가 온 몸을 뒤덮어도 배고픈 사람은 여전히 배고프고, 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로웠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 역시 여전히 백수 상태로 지내야만 하는 차갑고 고통스러운 현실. 그냥 꿈 속에서 헤매이게 둬야만 할까. 이미 그 꿈이 이뤄진 사람들은 자나깨나 행복하기만 한데, 그들이 이룬 꿈을 나눠줄 생각은 왜 못하고 있을까. 그네들 욕망의 꿈은 깨고 외롭고 힘든이들의 작은 소망들이 현실화되는 일을 간절히 희망한다.

 

8. "사람의 말과 행동은 낮과 밤, 태양 아래와 등불 밑에서 언제나 아주 다르다." 《준풍월담》.

_ 짧지만 가슴을 서늘하게 스치는 말이다. 혼자 있을 때 특히 생각과 행동을 삼가라는 말이 있다. 밤, 등불 밑은 딴짓 하기 좋은 때와 장소이다. 마음 속에 만용이 가득차면, 낮과 태양 아래에서도 하고 싶은 일 다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인간이라 불리워지는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이 걸림이 없이 사는 사람이 진정 자유인이다.

 

9. "사람에게는 결핍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남강북조집

  _ 사족이 필요없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덧붙인다면, 결핍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소소하게 채워지는 일상에 감사하지만, 그 반대인 사람들은 내 소유에서 없어지는 것에만 마음을 두고 살아간다.


10. 루쉰은 암흑의 시대에 부엉이가 내는 불길한 소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 소리는 시대를 변화시키고자 호소하고, 경고하는 루쉰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루쉰이 이곳저곳에 남긴 아포리즘은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유효하다. 유효기간이 없다. 부엉이가 낮에도 울던가. 밤에 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깨어 있으라고 우는 것일 것이다. 아무리 칠흙같은 어둠이 이어져도 희망을 잃지 않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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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경영학자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
이리야마 아키에 지음, 김은선 옮김 / 에이지21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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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영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경영에 대해서도 가끔은 접해야한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내 삶의 경영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 시대에 경영, 경제의 흐름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아서 손해볼 일은 없다고 생각든다.

 

2. 그러나, 경영학 전공자들이 많은 만큼 경영학이론은 많고도 많다. 이 책의 감수자인 김기찬 교수는 이를 '경영이론의 정글'현상이라고 표현한다. 이 책의 저자 이리야마 아키에는 경영전략론및 국제경영론을 전공한 석학이다.

 

3.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세계 각국의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영학자'가 추진하고 있는 연구, 즉, '경영학의 최신동향'을 알기 쉽게 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 필요성에 대해 두 가지로 축약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일선에서 활약 중인 해외 비즈니스 스쿨의 교수가 경영학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지, 경영에 관해 어떤 의문을 품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연구 성과는 과연 유용한 것인지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두 번째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막연하게 상상하는 경영학과 세계의 경영학자가 발전시켜나가고 있는 경영학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4. 3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세계의 경영학, 세계 경영학의 최신 동향, 경영학의 미래 등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에도 피터 드러커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드러커리안이 많다고 알고 있다. 저자는 현재 미국 경영학의 최전선에 있는 거의 모든 경영학자가 드러커의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미국의 경영학자들에게 드러커가 별 매력 없는 인물이 되었을까? 그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드러커의 말이 '명언'이기는 해도 '과학'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5. 따라서 세계의 경영학자는 '과학'을 지향한다고 한다. 드러커가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사회과학적인 차원에서 이론적으로 구축된 것도 아니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검증된 것도 아니라고 한다. 국내의 수많은 드러커리안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급궁금해진다.

 

6. 세계의 경영학자는 그들이 지닌 다양한 사고방식에 따라 세 가지 유파로 나뉘어 열띤 경쟁을 펼치면서 저마다 옳다고 믿는 사상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데, 그 세 유파는 다음과 같다. 경제학 유파, 인지심리학 유파, 사회학 유파 등이다.

 

7. 실적이 좋은 경쟁 기업의 흉내 내기에만 급급한 사례로 K마트의 몰락을 예로 들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미국 할인점업계를 제패한 월마트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K마트. 월마트의 성공 이유 중 하나가 철저한 저가 전략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K마트는 월마트의 복잡한 인과관계를 철저히 스터디하지 못한 상태에서 저가 정책이나 IT 시스템만 무작정 따라하다보니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8. 기업 혁신이란 '기업이 혁신적인 기술이나 제품, 혹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혁신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이 단순하고도 심오한 질문에 세계의 경영학자가 합의를 이룬 대답은 "혁신을 만들어내는 방법 중 하나는 이미 존재하는 지식과 지식을 조합하는 것'이라고 한다. 해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9. 조직은 다양한 방법으로 지식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방법이 인재의 다양화라고 한다. 조직 내에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서로 지식을 공유하고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혁신적인 상품 및 서비스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베스트셀러를 낳는 방법'이라고 표현한다. 미국 출판업계의 만화책 제작을 예로 든다. 팀을 구성하는 만화작가들이 다양한 배경에 기초한 지식을 서로 공유한다면 혁신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선 팀장의 역할이 막중하다. 그 지식을 공유하고 통합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대작이 나오느냐, 졸작이 나오느냐는 통합의 지혜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든다.

 

10. 저자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세계의 경영학이 이러저러하니까 경영학은 이러해야 한다'는 결론을 기대하지 말길 당부한다. 그저 이 책을 통해 '경영학의 발전 방향'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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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설렘으로 집을 나서라 - 서울대 교수 서승우의 불꽃 청춘 프로젝트
서승우 지음 / 이지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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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안녕하십니까?' 덕분에 입에 붙은 듯 내놓았던 '안녕하십니까?'라고 묻는 것도, 답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진짜 안녕한가? 짐짓 안녕한 것처럼 지내고 있는 것는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된다.

 

2. TV 미드에서 봤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이혼한 부모 때문에 10대 초반의 딸이 몹시 혼란스럽다. 딸이 집에 없는 줄 알고 딸의 양육문제로 부부는 서로의 입장을 강도높게 표현한다. 설전의 막바지에 이를 때쯤 집안 한 귀퉁이에서 딸아이가 나타난다. 울상을 지으면서 딸이 하는 이야기다. "아빠, 엄마가 나를 걱정해줘야지. 어떻게 어린 내가 부모 걱정을 하게 만들어." 부부는 할 말을 잃는다.

 

3. 이 시대를 함께 호흡하는 청년들에게 미안하다. 기성세대들이 청년들의 앞날을 염려하며 길을 잘 열어줘야 하는데 돌아가는 상황이 도무지 마음이 안 편하다. 청년들이 내 앞가림하기도 바쁜데 기성세대들이 풀어야 할 숙제마저 떠 안고 고민하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4. 안개 속을 더듬어 가듯 힘든 상황에 그나마 이 책을 통해서라도 마음을 추스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자 서승우 교수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생들 사이에 열정과 도전을 불러일으키는 최고의 멘토로 꼽히고 있다.

 

5. 삶을 살아가면서 '성공'이란 단어에 대한 생각은 개인별로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것은 공통된 현상일 것이다. 저자는  성공을 위한 실행 방안의 단계별 키워드를 JP-DRAMA로 소개한다. Justification (명분), Plan of goals(계획), Distinction(차별성), Role(역할), Accuracy(정확성), Making a team with professionals(전문가 도움), Advertisement(알림) 등이다. JP는 계획 수립의 과정이고 DRAMA는 이행의 과정이라고 한다.

 

6. 저자는 후배이자 제자들인 학부생들과 함께 '무인자율주행자동차 경진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끈기, 창의력, 협동심을 키워주고 있다. 물론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 더욱 비중을 두고 있다. 


7. 중간 중간 동양 고전속 인물과 에피소드가 곁들여진다. 공학자이지만, 인문학적 사고를 병행하는 균형감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와 제갈량의 경우를 제시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적절히 구사하는 전략이 성공의 핵심요소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8. 레프 톨스토이도 한 몫 도와주고 있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  - 진정한 앎 : 레프 톨스토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중에서.


9. 부천 필을 25년째 이끌어오고 있는 마에스트로 임헌정이 책읽기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좋은 음악을 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특히 고전 음악은 당대의 미술, 문학, 건축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인문학적 소양이 필수적이에요. 인문학을 이해하면 음악을 해석하는 능력이 달라집니다." 프로 정신은 마음만 갖고는 안 된다. 쇠절구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심정으로 매시간, 매일, 매해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저자의 표현대로 장인과 테크니션의 차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10. 그대는 이 책의 제목처럼 설레임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집을 나서는가? 아니면, 아침이 오는 것이 몹시 두렵고 떨리는가? 저자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여러분 인생의 네비게이터는 바로 자신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이 갈 길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라. 자신이 발견한 길이 최선이라고 믿으면 그것이 최선의 길이 되는 것이다. 그 길이 과연 만족스러웠는지 판단을 내리는 이도 바로 당신이다."  

그대의 아침이 가벼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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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함께 사는 법 - 오늘을 살리는 과거 청산의 현대사
김지방 지음 / 이야기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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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적과 함께 사는 법』이라는 책의 제목에서 벌써 느낌이 온다. 죄악, 청산, 용서, 화해 그리고 공존이라는 단어들이다. 이 책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중에서 '용서'라는 단어는 참으로 마음이 힘든 부분이다. 혹자는 용서는 나를 위해서, 내가 살기 위해서 내가 먼저 풀어야 한다고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은 모두 공감하리라고 생각든다.

 

2. 저자 김지방은 시종일관 무거운 주제를 끌고 가는 마음의 부담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프로필은 우선 독자를 무장해제시킨다.

"청소년신문 '트임'을 창간했다가 말아 먹고 국민일보 기자로 일하고 있다. 금융 분야를 취재했을 때는 주가가 폭락했고, 교회를 취재할 때는 안티기독교가 창궐했다. 통일외교 분야를 담당할 때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다. 2008년 인터넷 생방송 뉴스를 만들고 '촛불시위 참가했다 군홧발에 밟힌 여대생'을 보도해 얼떨결에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3. 기자들이 쓰는 글은 추측보다는 사실에 입각한 글쓰기 훈련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상대로 저자는 이런 말을 적고 있다. "이 책에 묘사된 인물의 자세한 내용까지도 99%는 당시 언론에 혹은 그 뒤의 역사적 자료를 통해 기록된 내용에서 찾아내 옮긴 것이다."

 

4.「오늘을 살리는 과거청산의 현대사」라는 부제에 걸맞게 과거청산의 현대사 7꼭지의 글이 실려 있다. 이 땅을 휩쓸면서 아직도 그 깊은 상흔이 아물지 않고 있는 여수, 순천 사건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저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갈등 청산, 캄보디아의 좌파 독재 청산, 아르헨티나의 우파 군사정권 청산, 프랑스의 제2차세계대전 나치 부역자 청산, 미국의 흑인 차별 역사 청산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 올린 한국의 두 가지 사건과 앞서 열거한 외국의 사례의 차이점은 한국의 두 사건은 진정한 '청산'이 붙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 모두가 계속해서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5. 남아공의 흑백 분규를 보느라면, 생각나는 가요가 있다. 김민기가 만들고 양희은이 노래한 '작은 연못'.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 아무것도 살지않지만 /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마리 / 살고 있었다고 전해 지지요. / 깊은 산 작은 연못  /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속에 붕어 두 마리 /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위에 떠오르고 /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 연못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6. 아무도 살지 못할 지경이 되기 전에 다행히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가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설치한다. 남아공 성공회의 대주교 데스몬드 투투가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된다. 순탄치 않은 과정이었지만, 7,112명이 사면 신청을 했고 그 중 1,200여 명이 사면을 받았다.

 

7. 캄보디아의 좌파 독재는 초법적 국제 사법 절차와 특별법 도입으로 킬링 필드를 처벌한다. 아르헨티나의 우파 군사정권은 오월광장 할머니 모임의 힘이 그 빛을 발하고, 피해자들이 연대해서 과거 청산 작업에 적극 참여했다. 프랑스의 제2차 세계대전 나치 부역자 청산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알베르 카뮈는 프랑스의 과거 청산은 실패했다고 토로했다. 프랑스에선 과거청산보다는 숙청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미국의 흑인 차별 역사에는 마틴과 말콤이 기록되어있다. 동 시대에 태어난 두 사람은 흑인인권운동에 상이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사랑을 이야기 할 때, 말콤 엑스는 증오를 이야기했다. 마틴이 숨진 뒤에도 40년이나 지나서 흑인이 미국의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적지 않은 성취를 가둔 것도, 흑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이기도 한 역사의 책임자로서 과거의 청산과 극복을 주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8. 자, 이제 드디어 한국의 상황이다. 아직 미결의 두 가지 사건은 여전히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고 있다. 1948년 10월 여수, 순천에서 벌어진 10월의 군사 반란 사건. 이 사건은 당시 제주도의 4.3 사태와 단독정부 수립 과정의 혼란 속에서 군인과 민간인들이 동족상잔의 토벌에 반발한 성격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들은 '반란 사건'이라는 명칭보다는 '봉기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여순사건은 당시 한반도 상황의 축약판이었던데다가, 대한민국이라는 신생 국가의 성격을 규정한 역사의 축약판이기도 했다. 2005년에서 2010년까지 조사를 펼친 진실화해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국가는 군인과 경찰, 공무원을 대상으로 전쟁중 민간인 보호에 관한 법률과 국제인도법 교육을 실시하는 등 전시인권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국가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평화인권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평화인권교육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관료들이 우선적으로 받아야 할 사항이다.

 

9. 1980년 5월 18일 광주. 직접 그곳에 있었던 이들은 대부분 이 세상에 없다. 남아 있는 이들은 여전히 그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2013년 조사에 따르면, 광주 시민의 43.2%가 "5.18 민주화운동을 생각할 때 매우 강한 정서(분노, 슬픔, 죄의식)를 느낀다"고 답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과거청산은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하지만, 피해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상흔을 적극적으로 치유하지 못한 점에 대해선 점수를 못 받고 있다.

 

10. 다시 '용서'란 단어를 생각해본다.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투사이자 제2차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재판에 참여하기도 했던 스테판 에셀은 이런 말을 했다. "용서라는 낱말은 희생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 덧붙여 유신정권때 금지곡에 오르기도 했던 김민기의 '작은 연못'은 날이 갈수록 좌,우로 치우치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 한국의 현시점에서 다시 불러야 할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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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아프지 않은 습관 - 척추, 관절, 허리, 일상의 통증을 이기는 법
황윤권 지음 / 에이미팩토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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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 사당역 인근에 있는 대형 서점에 들렀습니다. 신,구간 도서중 읽을만한 책은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도 접할 수 있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오프라인 서점을 들립니다. 인문, 사회, 역사코너를 지나 문학 잡지코너를 들른 후 습관적으로 건강, 의학 코너를 들렀지요. 단연 척추, 관절 질환에 대한 책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2.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마치 한 집 건너 하나씩 늘어나는 척추, 관절 전문 병원이라는 간판을 보는 듯 합니다. 그 중에서 과연 몇 권이나 독자를 만나게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마 저자가 자신이 쓴 책을 찾으려해도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새로 출간되는 서적에 밀려서 슬그머니 자리를 뺏길 수도 있지요.

 

3.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은 소박한 장정과 함께 제목이 우선 맘에 들었지요. '내 몸 아프지 않은 습관' - 척추, 관절, 허리, 일상의 통증을 이기는 법. 아마 이 책의 저자도 책을 쓰면서 망서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척추, 관절 서적에 한 권 더 보탠다는 부담도 가졌겠지요.

 

4. X-ray 기계도 MRI 장비도 없는 이상한 병원, 약 처방도 거의 하지 않는 병원, 10여 년간 10만 명의 환자가 알음알음으로 찾은 병원, 그 병원을 평화롭게 운영하던 의사는 왜 이 책을 썼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환자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궁금해졌습니다.

 

5.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런 대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환자의 상태를 손으로 만지고 환자의 호소를 귀로 듣는 일에는 소흘하고, 천편일률적인 약물 처방만 하거나 심지어 값비싼 진단과 무리한 치료법을 강권하는 의료 현실이 답답했다. 증세의 원인을 제대로 알려주고 어렵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치료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설명해주는 대신, 다짜고짜 위협하고 겁을 주어 지갑을 열게 하는 관행에 화도 났다. 또한 그러한 진료 형태에 익숙해져 도리어 약물이나 주사, 수술 등으로 증세만 없애는 치료, 득과 실을 재지 않은 수술 치료를 요구하는 환자들을 보고 안타까움도 느꼈다."

 

6. 아마 이 부분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들은 환자가 아닌 같은 의료인이겠지요. 환자나 보호자 신분으로 소위 척추, 관절 전문 의료기관에 들렀던 사람들은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7.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 황윤권(정형외과 전문의)은 어떻게 환자를 진료하고 지도하고 있는가. 책은 정형외과 주요 질환인 무릎, 허리, 근육과 힘줄, 머리와 상체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선 무릎에서 가장 흔한 병인 퇴행성관절염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1) 무릎 퇴행성관절염은 환자가 증세를 느끼기 이전부터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것입니다.  2) 무릎 퇴행성관절염은 환자 스스로 치료하고 관리할 수 있습니다.

 

8. 치료방법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관리 방법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우선 병의 '실체를 아는 것'에 역점을 두고 비교적 쉬운 문체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이 이해를 돕고 있군요. 비슷한 류의 책과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는 전혀 사진이 없습니다. 오직 간단한 그림만이 전부입니다. 보기엔 단순해 보이지만 아마 저자는 수없이 그리고 다시 그리고 했겠지요. 

 

9. 무릎 퇴행성관절염의 자가치료법에선 연부조직 두들기기와 관절 체조를 권유하고 있습니다. 연부조직 두들기기는 자칫 오해 소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저자는 자신있게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습니다. "슬개골 주위 연부조직 중 두꺼워지고 부드럽지 않은 곳을 두드려 봅니다. 먼저 슬개골 주위 연부조직 중에서도 가장 아픈 곳을 찾아냅니다. 대개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슬개골 하내측 '중심'이 제일 아플 것입니다. 아픈 곳인지 아닌지는 한두 번 눌러봐서는 알기 어렵고, 반복해서 깊게 눌러보아야 찾아낼 수 있습니다.  가장 아픈 곳을 찾아냈으면, 이제 두들겨봅니다. 손에 쥐기 적당한, 부엌에서 쓰는 작은 나무방망이나 바닷가에서 주운 매끈한 돌멩이 등을 이용해서 집중적으로 두들겨봅시다. 이때는 '아프다'할 정도로 두들겨주는데, 도마 위에 마늘을 올려놓고 나무방망이로 찧을 때의 느낌 정도로 해봅니다. 두들길 때마다 입에서 조금씩 비명이 흘러 나오고 두들긴 곳이 부어오르고 멍이 들 정도가 되어야 더 빠른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10. 차라리 아프고 말지. 어떻게 부어 오르고 멍이 들 정도로 두드리라는 것인가? 사실 의학 본류에선 벗어난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저자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당사자가 아닌 가족 입장에서는 병원에서 뭔가 전문적이고 수준 높고 세련된 치료를 해주리라 기대합니다. 설령 비용이 좀 더 들더라도 보호대를 차거나 약물을 복용하거나 활동에 제한을 두는 등의 치료법이 당연하다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석기시대에나 했을 법한 돌이나 방망이로 두들기기를 권했다니 어리둥절해질 따름입니다."  이 말 역시 다른 사람이 아닌 저자가 쓴 이야깁니다.

 

11. 이런 이야기만 올려놓으면, 이 사람 의사 맞나? 의심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의사 맞습니다. 실력있는 정형외과 의사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처방을 줄까? 바로 저자가 환자의 증상만 가라 앉혀주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 스스로 내 몸의 병을 이해하고 관리해서 병원에 가서 진통제, 근육이완제, 값비싼 검사, 수술 요법 등의 과정 후에도 찾아오는 재발을 염려해서 나온 처방이라고 이해됩니다.

 

12. 이렇게 이야기는 허리, 목, 어깨, 팔, 손, 두통, 이명, 가슴 통증, 알레르기성 비염, 아토피, 턱관절 통증 등등  그리고 우리 몸을 감싸고 있는 근육, 힘줄로 이어집니다. 다행히 돌멩이로 두드리라는 이야기는 무릎에만 국한 되는군요. 건강한 관절과 척추를 유지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도움이 되는 조언을 많이 해주고 있습니다. 권해드리고 싶은 건강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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