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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평점 :
모기향에서 빠져 나온 연기가 뿌연 공간 사이로 피어올랐다. 작가가 되고자 했던 나의 꿈도 뿌옇게 흐려졌다 사라지는 연기와 닮아져있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다.
“굳이 책을 내는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책을 내는 것이 자신의 글을 보이기 위한 목적이라면 블로그 같은 데에 글을 올려도 되는 거잖아요.”
꿈에 대한 의지가 희미해져가는 것에 대한 자기변명을 해본다.
“그러면 서평을 써 보는 건 어때요?”
선생님이 제안을 하셨다.
“서평이요?”
“그래요.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책에 대한 서평을 올리는 거죠. 꾸준히 책을 읽어가면서 서평을 올리면 좋아하는 글도 쓰고, 사람들이 댓글도 달아주니 반응도 볼 수 있고……. ”
“배경지식이 얕은 제 주제에 무슨 책에 대한 평을 할 수 있겠어요?”
자신감을 잃은 마음이 무심코 표현된다.
“서평은 평론과 달라요. 굳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책에 대한 느낌도 쓰고, 그 책을 다른 이들에게 소개해주는 거죠. 좋았던 점이나 아쉬운 점도 표현하고…….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이제부터 시작해보세요.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거예요. ”
서평이라……. 간혹 책에 대한 감상문을 생활문 형식으로 써본 적은 있어도 ‘서평’이라는 형식으로 글을 쓴 적은 없다. 내가 그런 글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독서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한 달에 대여섯 권의 책을 읽으면서 책에 끌려 다닌다는 생각도 들고, 책을 읽는다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지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지 목적조차 잃어버린 듯 방황하던 무렵이다. 음... 솔직하게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을 표현하면 굳이 어렵게 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한 번 해볼까? 그래!
서평을 쓰려고 결심했다는 사실보다도 나의 꿈에 대하여 진지하게 의논했던 그 날이 군데군데 빛나던 조명의 불빛처럼 선명하게 새겨졌다. 그날 밤, 나는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밤을 새웠다.
새로운 꿈이 어렴풋이 가슴에 새겨진 후 처음 접하게 된 책이 ‘삶을 바꾸는 책 읽기’라는 것은 우연이었을까? 이 책은 ‘책을 왜 읽는가?’에 대한 답과 내가 나아가야할 삶의 방향에 대한 답을 속 시원히 제시해주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서였을까? 하룻밤 사이에 빠른 속도로 읽어 내린 글자들은 내 눈을 지나 마음 깊숙이 들어와 작은 설렘으로 테두리 지워진 꿈으로 자리를 잡았다.
‘진정한 독해력이란 문자를 정확히 읽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읽건 거기에서 삶을 바라보는 능력(p58)’이라 한다. 나에게도 진정한 독해력이 조금이나마 생겨나는 것일까? 책 안에 담겨있는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내 삶을 되짚어가고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게 된 것을 보면.
‘책 읽기는 쉬는 시간이며 숨 쉬는 시간(p64)’이라는 말에도 공감이 갔다. 직장 일에 치여 내가 일을 끌고 가는 것인지 일이 나를 끌고 가는 것인지 경계가 애매해지는 순간이 많다. 그럴 때면 자존심이 슬쩍 상하기도 한다. 내 삶의 주인이 스스로가 아닌 것 같아서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책읽기는 그런 면에서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사실 없는 시간에 짬짬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은 힘이 들고 때론 피곤한 일일 지라도 며칠 전처럼 하룻밤을 세운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 책을 읽은 다음 날은 유난히 기분이 좋았다. 분명 몸이 피곤해야 하는데도 마치 편하게 한 숨 잔 것처럼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온전한 내 자신의 시간을 호흡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이 자꾸 자신을 만나게 한다(p100)’고 하나 보다. 내가 책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으니까……. 저자의 말처럼‘책은 마치 남의 일처럼 보는 내 이야기(p125)'라서 책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음 아픈 사건들은 나의 옛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고, 주인공의 입장에서 또는 내가 새로운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책은 읽는 동안 뭔가를 덧붙이게 하고, 우리가 보고 듣고 겪은 일과 새로 읽은 것을 연결하게 하고, 책과 아직 책으로 쓰인 적이 없는 것들(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포함해서)을 연결하게 한다.(p137)' 아직 쓰여지지 않은 내 이야기를 미리 상상해본다는 것은 얼마나 새롭고 재미있는 일인가?
‘책은 모든 것을 새롭게 볼 능력을 준다(p143)'. 책을 읽고 나서 보는 세상은 그전과는 분명히 다르게 보인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나서 달라진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밤을 새고 오후가 되어서 눈꺼풀은 무거워졌지만 아주 재미있는 일을 기대하는 아이처럼 내 마음은 마냥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딱히 꼭 집어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없는데, 분명 말할 수 있는 것은 뭔가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책의 운명은…(중략)…어떤 사람이 책을 읽는 바로 그 순간에 결정 난다.(p157)’는 말처럼 나에게로 향한 이 책의 운명은 제목처럼 내‘삶을 바꾸는 책 읽기’를 하도록 결정되어졌다. ‘진짜 잠재력은 “내가 이런 일을 할 줄 몰랐는데, 하는구나!”“나에게 그런 힘이 있는 줄 몰랐는데, 있구나!”(p116)'라더니 내가 이런 글을 쓰게도 되는 구나. ‘지금 내 삶은 운명이 아니라 운명이라기보다는 내 의지와 선택의 결과(p88)'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 출발점에서 이 책을 만난 것은 차라리 행운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네가 책을 읽고 무엇을 하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 주겠다.(p236)'고 말한다. 아직 무엇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미 무언가를 시작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