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원 1 - 요석 그리고 원효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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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강신주는 에피소드 철학사특강에서 철학의 정의를 설명하며 아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면 알게 된다.”고 하였다. 저자 인터뷰 글에서 원효를 가리켜 내가 가장 강력하게 사랑하는 한 남자라 표현한 작가의 말에서 나는 얼마 전에 인터넷 강의로 들었던 철학의 정의를 떠올렸다. 3백 쪽이 훨씬 넘는 두 권의 책을 단 이틀 만에 완독하게 하는 힘, 그것은 작가의 아름답고 세밀한 문체를 넘어 원효라는 남자에 대한 앎의 깊이가 주는 흡인력이었다. 학문적인 접근을 넘어서 대상에 대한 사랑이 전해져왔다.

 

요석 그리고 원효라는 부재가 붙어있지만, 소설이 담고 있는 것은 남녀의 사랑을 뛰어넘는 광범위한 사랑이다.

요석은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로서 행복했을까? 소설에서 그려진 요석의 사랑은 헌신적이었지만, 그녀에게로 향한 원효의 사랑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마지막 선택이 파계이기는 했지만, 결과만으로 모든 과정이 덮어지지는 않는 거니까.

요석이 행복했을 것 같기는 한데, 원하는 사랑에 대한 범위'의 문제일까? 세상에 바람직한 사랑이라는 것은 없으니. 사랑은 저마다 주관적인 것이니 누구든 자신이 하는 사랑이 정답인 것이다. 사랑하면 늘 같이 있고 싶고, 만지고 싶기 마련인데 좁은 범위에서 바라보면 1% 아쉬운 사랑이다. 그렇다면 요석이 바랐던 사랑은 좀 더 넓은 범위의 것이었을까?

요석에게서도 원효와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세상에 대하여 드넓게 펼쳐지는 사랑.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보인다. 원효를 계기로 그녀의 사랑이, 더 나아가서 삶이 업그레이드되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사랑, 사랑……. 나는 어떤 사랑을 바라고 있는 걸까?

 

아름다움 중 제일이 당당한 아름다움이다.’(p22)

나를 돌아본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을 하는 것이 늘 곤혹스러웠다. 어색함에 얼굴도 빨개지고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왠지 모를 주눅이 들어있었다. 지금도 말을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말을 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많이 없어졌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면 되는 것이었는데 무에 그리 어려웠을까? 내 위에 덧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은연중에 있던 걸까? 실제의 나와 다른 모습을 표현하려니 어색할 수밖에 없던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나는 내 목소리를, 야신은 야신의 목소리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p113)

나도 내 목소리를 따라가면 되는 거겠지. 나에 대해서, 주변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당당한 삶을 살고 싶다. 꾸미지 않고 나의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하며 살아가고 싶다.

 

중학교 때 생각했던 변화변하지 않는 것이 진리였다. ‘법칙에 대한 정의와는 모순되는 생각이지만 변화변하는 것이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생각이다. 변화된 내 생각처럼.

변화하기 때문에 흘러가는 것인가, 흘러가기 때문에 변화하는 것인가.’(p76)

나는 흘러가기 때문에 변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지금도 흘러가는 시간처럼 그저 변화하면서 흘러가는 것이 이제껏 바라본 세상의 모습이다.

나는 이제 머무르지 않음에 머문다, 그 어디에도 머무름 없이 머문다.’(p209)

가장 밝은 빛에서 가장 선명한 어둠이 만들어지듯이 정반대의 것이 공존하는 것이 세상이 가진 매력일까?

 

매월 1일이 되면 그 달의 실천목표를 세운다. 올해부터 세운 계획이다. 이번 달은 말을 많이 하지 말 것이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많이 웃느니만 못하다. 많이 아는 것은 많이 느끼느니만 못하다. 많이 안다고 줄기차게 떠드는 사람은 둥실 뜬 달을 보고 한 번 웃는 사람보다 허무하다.’(p216~217)

지난달은 글을 잘 쓸 수 없었다. 생각이 뒤엉켜버린 느낌이었달까? 책을 읽고 리뷰를 많이 쓰거나 시를 많이 쓰리라 결심했던 연초의 계획이 살짝 무너진 시기였다. 그런데, 말을 많이 하지 않다보니 내 내면을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뭔가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리뷰부터 시작해야겠어.’책장을 둘러보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책이 발원이었다. 다시 돌아본 문장들은 어질러진 내 집 마당에 쓱싹쓱싹 비질을 하는듯한 기분을 가져다주었다.

 

가끔 새벽에 잠을 깰 때가 있는 데, 얼마 전 깨었던 새벽에도 이 책이 함께 했다. 멍하니 누워있다 시를 지었다.

새벽 3, 갑자기 눈이 떠졌다/ 가만히 누워있다 방을 쓸어본다/ 어느새 길어진 손톱을 깎아본다/ 바삭 마른 빨래를 곱게 개켜본다/ 검푸른 바다를 지나는 파도처럼/ 다가왔다 멀어지는 자동차 소리

어제 본 눈물이 떠오른다/ 환하게 쏟아지던 웃음도 스친다/ 책 안에서 마음속으로 흘러넘치던/ 요석과 원효의 사랑을 생각한다/ 군데군데 네모난 별인 듯/ 아직 잠들지 않은 창문이 따뜻하다

점점 깊어가는 시간 속으로/ 다른 이의 모습이 하나 둘 사라지면/ 짙게 덧입혀진 공간 속으로/ 잔잔해지는 감성이 물결처럼 일렁인다/ 오롯이 나만을 돌아보는 고요의 순간/ 새벽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오늘이면서 아직 다가오지 않은 오늘/ 어제가 아님에도 어제를 바라보게 하는/ 누군가의 끝이며 시작이 되는 새벽은/ 새로운 오늘을 건네며 나를 깨운다

영원이란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현재로구나. 깨어 있는 현재만이 영원이구나.’(p283)

늘 깨어있는 사람이고 싶다. 과거만을 돌아보며 지나간 시간만을 붙들고 있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싶지 않다. 나의 생각이 언제나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기를.

 

너도 꽃이고, 나도 꽃이고, 모두가 꽃처럼 아름다운 존재’‘모두가 자신 안의 부처를 발견하고 꽃피워야 한다.’는 원효의 사상을 접하면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정지원 시, 안치환 노래)도 가사를 음미하며 다시 한 번 들어보았다.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내내 어두웠던 산들이 저녁이 되면 왜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꾸다 밤이 깊을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 안은 채 느긋하게 정들어 가는지를 으음--- //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 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의 온기를 품고 사는/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우린 참사랑

3년 전에 지었던 어설픈 시도 찾아보게 되었다.

너희는 모두 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봄/ 노릇노릇 점을 찍는 개나리/ 쨍쨍한 여름/ 햇살을 향해 생명을 뿜어내는 신록/ 바람 부는 늦가을/ 서리 속에서 고고한 국화/ 새하얀 겨울/ 눈 이불을 덮고 있는 동백꽃이다// 누군가에게 부드러운 휴식을 주며/ 당당하게 하늘을 마주하고 누워있는 잔디/ 물고기를 자유롭게 팔딱거리게 하며/ 연못 위에 둥둥 떠 있는 개구리밥/ 장난꾸러기 성호의 코를/ 살랑살랑 간지럽히는 강아지풀이다// 세상 모든 꽃이 한순간에 피어난다면/ 얼마나 어지러운 현란함이 될 것인가/ 세상 모든 꽃이 한순간에 져버린다면/ 얼마나 삭막한 쓸쓸함이 될 것인가// 따스한 햇살의 속삭임에 깨어나는 꽃/ 휘몰아치는 비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내는 꽃/ 반가운 단비를 흠뻑 맞으며 고개를 내미는 꽃/ 저마다 피어나는 시기가 다를 뿐이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면/ 그 끄트머리에서는/ 눈부신 생명력이 서서히 움튼다// 너희는 모두 꽃이다// 세상에 이름 없는 잡초가 어디 있나/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지/ 세상에 의미 없는 꽃이 어디 있나/ 그 의미를 보지 못하는 마음만이 있을 뿐이지// 너희는 모두 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피어나려는

 

초반에는 신라의 골품제도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가 부족해서 신분에 대한 용어를 찾아보느라 읽는 걸음이 더뎠다. ‘.이라는 말이 왕족을 대상으로 하는 골제(성골, 진골)와 귀족과 일반 백성을 대상으로 하는 두품제를 합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학창 시절에 무조건 암기만 했던 용어였건만. 역시 스스로 알고 싶어서 하는 공부가 의미 있는 공부이다.

당시의 역사적인 사건들과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김춘추선덕여왕이라는 역사적 인물도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없어진 신분 제도가 과연 없어졌다고 볼 수 있는가 생각도 해보았다. ‘역사라는 것이 가진 자의 주관적인 기록임을 새삼 절감하였다.

 

발원은 소설이다.‘원효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역사적인 지식은해골 물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화, 얼핏 주워들은 얕은 풍월로 요석 공주와 연관 검색어로 뜨는 스님이라는 것, 하지만 그 공주와 뭐를 했는지는 별 관심이 없던 인물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소설이라는 장르가 나타내는 특성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다. 한 사람을 중심으로 묘사된 글은 사랑에 대해서, 내 자신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 역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얻게 된 마음의 울림은 원효에 대한 접근이 얼마나 사실적이었냐 여부를 의미 없게 만든다.

원효(元曉). 으뜸 원, 새벽 효. 새벽까지 이어진 독서에서 이 책이야말로 새벽에 읽기에 적당한 책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점이 좋았다.

길을 만들 수 있다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나타나는 것이 아닐는지요, 길이란 게 어차피 본래부터 있던 건 아니니까요.’(p336~337)

다른 사람을 생각 없이 따라가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고 싶다.

 

발원'. 책의 제목이 내게 묻는다. 네가 진실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혜공 스님이 원효에게 했다는 말도 생각난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게냐, 너를 바꾸고 싶은 게냐?’(p334)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바로 답을 하기에 어려운 질문이다. 일단 나는 나를 바꾸고 싶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기에는 뭔가 아쉽다. 존재 자체가 가지는 의미를 넘어 세상에 내가 태어난 이유가 한 가지쯤은 더 있을 것 같기에. 그렇다고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은 너무 묵직하다. 그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래서 스스로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작은 도화선 같은 계기가 된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다, 이 책이 내게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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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춘향과 이도령이 만났다는 16세. 그들 사이에 꽃으로 피어났던 사랑처럼, 알라딘과 우리 사이에도 많은 책들이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알라딘은 사랑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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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인문학 - 공부하는 엄마가 세상을 바꾼다
김경집 지음 / 꿈결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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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화 마징가제트에는아수라 백작이 등장한다. 좌우가 다른 얼굴과 목소리를 지닌 괴상한 악당이다. 책의 내용에 공감하면서도 막상 행동으로 하자면 망설이는 마음, 보여지는 세상과 감추어진 세상. 쓰고 있는 글과 써야 할 글과의 경계에 있는 나를 느끼면서 책을 읽는 내내 이 캐릭터와 함께모순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몇 주 전,‘416, 세월호, 아이들, 416, 세월호, 아이들...’며칠 동안 한참을 고민한 적이 있다. 지난 3월 독서 모임, 같이 참여하시는 분이 416일에세월호 추모 행사를 주관하는데, 추모시가 필요하다 했다. ’혁명, 노동, 민주이런 말에 여전히 낯선 나는 손사래를 쳤다.

제 시의 주제는 대부분 사랑이예요. 저는 그런 글 못 써요.” “그냥 써주세요. 할 수 있을 거예요, 충분히.”몇 분간 뜸을 들인 끝에 그럼 한 번 써볼께요.”라 했지만, 여전히 자신감은 없었다. 도대체 그런 어마어마한 소재를, 더군다나 그토록 먹먹한 소재에 어떻게 접근을 한단 말인가!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416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내 감성대로 한 번 써보자!’ 결국 <416>이란 제목의 시가 만들어졌지만, 시를 쓰면서 깨닫게 된 것은 이제껏 나는 ‘416의 변두리에 있던 방관자였다는 것이었다. 마음 한 켠 부족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416

 

1997/ 벚꽃 한 가득 펼쳐지던 날/ 눈부신 세상을 만났습니다/ 하늘과 만나 짙푸른 바다는/ 구름 같은 꿈들을 한껏 담았습니다/ 점점 더 번져가는 따스한 봄날에

2014/ 하늘 향해 벚꽃 흩날리던 날/ 새하얀 꿈들이 가라앉았습니다/ 검게 변한 바다는 침묵 속에서/ 그들의 미래를 조용히 삼켰습니다/ 마음을 도려내 듯 차가운 봄날에

2015/ 흐드러진 벚꽃만큼 먹먹해지는 날/ 하늘하늘 꽃잎들도/ 그 많던 꿈들도/ 봄처럼 화사했을 언젠가의 사랑도/ 이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스러지는 영혼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나는/ 어루만지지 못한 바다를 생각합니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봄날이/ 묵직하게 심장을 잡아당깁니다/ 매달린 리본이 바늘처럼 시큰거립니다

 

<엄마 인문학>역사, 예술, 철학, 정치, 경제, 문학분야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엄마들의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책이다. 각 분야의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그리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주고 있다.

독서 모임에서 3예술분야의 발표를 맡았다. 이 장의 주제는 한 마디로 예술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것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음악가와 미술가들이 당시 시대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고, 어떻게 시대의 영향을 받았는지 적혀있다. 베토벤, 백남준, 피카소 등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친숙하게 접했던 예술가부터 생전 처음 들어본 현대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가장 인상 깊었던 예술가는장샤오강이었다. 그림에 빛을 나타낸다는 중국의 화가. 대표작은 <대가족>이란 작품인데, 삼삼오오 짝을 지어 표현된 인물들에게는 아메리카 선주민의 얼굴에 그려진 문양처럼 독특한 빛의 자국이 그려져 있었다. 인터넷으로 그의 작품과 이력을 찾아보면서 그가 중국 현대 미술의 사대천왕으로 불린다는 것도 알았다. 어느 매체와 인터뷰를 한 기사를 보았다. “빛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나타내고, <대가족>에 표현되어 있는 얼룩 같은 빛은 시간의 흔적을 의미한다.”고 했다. 인물들에게 드리워진 빛들은 오랫동안 나의 시선을 끌었다.

내 글에도 빛을 담고 싶었다. 내면에 채색되고 싶은 사랑을 향하여. 오랜 고민의 흔적, 감정의 울림,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감성과 아픔, 그 먹먹한 그리움들이 빛으로 드러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를 짓기 위해 고민했던 몇 주 전이 떠올랐다. 예술이 시대를 반영해야 하는 것이라면 문학도 마찬가지겠지. 남녀 간의 사랑만을 표현한 시가 과연 빛이 될 수 있을까. 사랑의 영역을 좀 더 확장해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에 대한 시도 결국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니. 사회와 시대를 외면한 글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제껏 나는낯섬을 가장하여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외면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니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했던 것을.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세상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 보면아수라 백작과 다르지 않다. 너무 많이 먹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며칠 동안 한 끼조차 먹지 못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연탄 한 장이 아쉬워 추위를 껴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겨울에도 집안에서 반팔만 입고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깊어지면 행복한 만큼 아픔이 되기도 하니까. 늘 양면적인 세상. 그래서 제대로 표현하려 한다면, 그 빛과 어둠을 다 드러내야 할 것이다. 빛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면서 정작 어둠은 바라보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불완전한 글이 될 것이다. 어둠과 함께 드러나는 빛이 가장 선명한 것처럼.

우선은 내 자신부터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려 한다. 밝은 이면에 감추어 놓은 모순적인 어둠을. 다음에는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하지만 내가 표현하고 싶은 어둠은 온전한 어둠은 아니다. 빛을 바라보는 어둠이라 할까. 그렇게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누군가는 나의 글을 통해 빛을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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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4-30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호 유족들, 을 방송을 통해 보면서 열 번 넘게 눈물 흘렸던 것 같아요.

나비종 2015-04-30 19:16   좋아요 0 | URL
정말 마음아픈 일입니다. . 지금까지도. .

2015-04-30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5-04-30 19:4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어쩔 수 없는 일은 비난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쩌지 못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
참 어려운 세상입니다. .
 
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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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이라는 노래(윤종신 작사)가 있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소설을 읽어가는 동안 종종 이 노래의 앞부분 가사가 생각났다. 노래 후반부에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 곳이 나오지만, 소설 속 현실에서의 정상은 어디쯤일까 가늠되지 않는다.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글에 묘사된 상황을 금방 끄집어내 다큐라 칭한다 해도 전혀 과장된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나를 짓누른다.

 

누가 주인공이랄 것도 없이 소제목으로 등장하는 16명의 사람들이지만,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가장 많이 나오는 지환엄마 수정이라 생각한다. 그녀에게서는 경계가 연상된다. 잠실동에 살지만 대치동을 바라보고, 잠실동과 빌라 촌 사이에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안정된 소속을 갖지 못한 인간처럼 불안정한 모습은 그녀의 이름처럼 금방이라도 깨질 듯 수정을 닮아있다. 지환의 담임교사 미화를 겨냥한 집단 시위에 완전히 동조하지도 못하고, 강하게 거부하지도 못하는 모습은 우리 주변 흔한 엄마들의 모습이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서도 독자적으로 행동하기에는 감수해야 할 것들이 많기만 하다.

누구누구의 엄마로 불리는 보다 많은 엄마들은 이렇듯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주류에 휩쓸려 간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스프링 벅의 질주처럼 씁쓸한 현실이다.

 

3월 들어 미니의 두통이 벌써 두 번째다. 오후 355분에 7교시 수업이 종료되면 청소, 종례를 마치고 4시 반 정도에 집에 도착한다. 저녁인지 간식인지 애매한 식사를 하고 5시 반에 학원가는 버스를 탄다. 저녁 840분에 집으로 와서 출출해진 배를 다시 채우고 만만치 않은 학원 숙제를 마치면 밤 11시가 넘는 건 다반사다. EBS로만 집에서 공부하다 올 초부터 달라진 일과이다. 병원에서는 감기라고 하지만 엄마가 보기에는 심리적인 요인도 다분히 섞인 듯하다. “학원가기 힘들어서 아픈 거 아냐? 힘들면 그만 다녀도 돼.”“정말 아픈 거야. 힘들지만 다니긴 다녀야지…….”무조건 학원을 강요하진 않지만, 말끝을 흐리며 힘없는 답하는 아이의 말 속에 소설 속 아이들의 모습이 느껴진다. 마음이 무겁다.

 

어디서부터 잘못 꿰어진 걸까?

지난 해 전국 4년제 대학의 한 학기 평균 등록금이 318만원이라 한다. 대학 5학년생들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대학생 서영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래서 낯설지 않다.

교육 현장은 교육 시장이라는 용어가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고 팔 듯 최상의 가치를 얻기 위해 사람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몰아치는 분위기에 아이들의 영혼이 휩쓸리듯 쓰러진다.

지환아빠 인규를 통해 묘사되는 조직 사회의 먹이사슬, 어학원 상담원 윤서와 과외교사 승필, 원어민 강사 지미, 학습지 교사 현진이 보여주는 사교육의 현장은 구석구석이 적나라하다.

어디부터 되돌려져야 할까?

허구라 밝힌 작가의 말에도 불구하고 초등교사 미화를 둘러싼 사건들은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알고 보면 나름의 이유들이 있지만, 때로는 목적을 상실한 채 무모한 방향으로 거침없이 진행되어가는 일들에게서는 두려움조차 느껴진다. 소설보다 더한 현실은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갑갑한 마음이 들던 책. 결코 유쾌하지 않음에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그들의 부모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대로 살게 할 수는, 이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끝도 모를 오르막길을 강요당하는 어린 영혼들이 하루 빨리 평평한 곳에 앉아 바람 부는 풍경을 바라보는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expensive’의 비교급은 몰라도 다친 비둘기를 안아 따뜻한 체온을 느낄 줄 아는 초등학생 지환의 모습에서 희망의 빛줄기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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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 소중한 것은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정철 지음, 어진선 그림 / 허밍버드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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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한 글자는 무엇이었나요?’ 띠지에 나와 있는 글귀를 보고, 겉표지를 넘겨보기도 전에 한참을 생각했다. 중요한 일들이 나를 통과해 흘러갔고, 그만큼 중요한 시간들이 흘러갔지만, ‘한 글자라니! 한 글자로 된 낱말들이 뭐가 있었더라? 본문을 읽기도 전에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라니.

 

 

좋은 책의 기준은 무엇일까? 방대한 지식을 담고 있는 책, 진리와 지혜를 전해주는 책 등 다양한 기준들이 있으리라. 나의 기준은 얼마나 많이 생각하게 하느냐이다.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이 없더라도 구석진 한 문장에 꽂혀 한참을 생각했다면, 초등학생을 위한 동화라도 내 마음을 움직여 발걸음까지 변화시켰다면, 적어도 내게는 좋은 책이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 참 좋은 책이다.

 

읽는 데 느려 터져 달라는 저자의 부탁을 뒤로 하고 몇 시간 만에 냉큼 읽어버렸다.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에서야 달팽이의 걸음처럼 마음을 느리게 옮겨야함을 깨달았지만. 다시 읽었을 때에는 며칠이 걸렸다. 세 번째는 마음에 와 닿은 한 글자를 아직도 읽는 중이다.

, , , , , , 는 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싶을 정도로 기발하다.

, , , , , , , , 은 맞아!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공감이 간다.

, , , , 은 일본 시 하이쿠가 연상된다. 발음이 비슷하거나 라임을 맞춘 우리말이 아주 적절한 문장으로 배열되어 있다.

, , , , , , 은 내용은 좋지만 한 글자라는 제목에 맞추려 살짝 억지스러워 보인다.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글자는 이다.

‘ “불이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다.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불이 나를 삼키기 직전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가장 무섭지 않은 말은 무엇일까.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도 듣는 사람은 하품만 나오는 말은 무엇일까. “불이었다.” 이미 재가 되어 들꽃 하나, 풀잎 하나도 삼킬 수 없다는 뜻이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늘 과거를 사는 바보들은 나도 한때 불이었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그것으로 사람들을 위협한다.’ (p284~285)

며칠 동안 생각을 하고, 카톡 프로필에도 적어놓았다. “ㅂㅇㅇㄷ라고. 간혹 예전에 이런 적도 있었다며 자랑하듯 얘기하곤 했는데, 이 글귀를 보는 순간 흠칫했다. 항상 겸손해야함을 아주 적절한 비유로 정곡을 찌르며 알려주고 있다. 요즘은 불이었다가 와 닿고 있지만, 살아가면서 마음에 와 닿는 글자도 그 때 그 때마다 달라지리라. 곁에 두고 틈틈이 펼쳐보아야겠다.

 

두 번째 책을 읽고, ‘나도 한 글자에 대한 멋진 말을 해봐야겠어!’라 야심찬 생각을 한다. 차례를 꼼꼼히 살펴본다. 후아~! 도대체 얼마만큼 사유를 해야 저 방대한 양의 한 글자와 그에 따라 마음에 와 닿는 글귀가 나온단 말인가! ! 이게 있지! 하며 겹치나 찾아보면 여지없이 어딘가에 떠억 하니 자리하고 있다. 물론 그 글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나와 다른 부분도 있지만. 책에 나와 있지 않은 소중한 한 글자는 없을까? 구름처럼 떠있는 생각을 머리 위에 이고 다니며 며칠을 보냈다.

2월 말 즈음,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별의 짧은 말을 할 기회가 생겼다. 그때까지도 내 머릿속은 온통 한 글자생각으로 가득했다. 이 책에 대한 얘기를 어떤 식으로든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불이었다!’가 제일 좋았다며 책에 있는 내용에 대한 단순한 감상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서운한 마음과 무슨 말이든 의미 있는 말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뒤엉켰다. 갑자기 머릿속에 사람 인()이란 한자가 떠올랐다.

얼마 전에 제가 <한 글자>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한 글자로 된 여러 낱말들에 대하여 기발하고도 마음을 울리는 글귀가 적혀있는 책입니다. ‘, , , , 이런 거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한 글자는 무엇일까 오랜 시간 생각해봤어요. 그러다 사람 인()’이란 한자(漢字)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이 만나서 서로 지탱하며 기대어있는 모습이죠. 두 사람 중 어느 누가 힘을 빼버리면 다른 사람은 쓰러지게 되요. 사람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서로 의지하고, 받쳐주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고, 그것이 ()’이라는 한 글자가 주는 의미가 아닐까요. 저는 여러분들이 이 사람 인()’이라는 한 글자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입니다.”

 

 

유난히 사람들과 많이 대화했던 한 해였다. 같은 말을 해도 표현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나의 의도를 기분 좋게 전달할 수 있음을 알았고, 공적인 일을 한다 해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란 사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부탁을 하고, 도움을 주면서 더불어 살아가야 함을 느꼈던 시간들이었다.

차례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굵은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명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안다. 무엇이든 동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보다 행동이 중요하며 사랑이나 그 어떤 일들도 명사의 방향을 결정해주는 것은 결국 동사라는 것을. 그리고, 무엇이든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어야만 하리라.

‘2014년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한 글자는 무엇이었나요?’ 그래! 사람, ‘()’이었다. 내게 가장 중요했던 한 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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