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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사전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1월
평점 :
길을 가다 무릎을 구부리고 쪼그려 앉아 새하얀 봄꽃을 한참동안 들여다본 적이 있다. 주위는 온통 고요한데 숨죽이며 지켜봐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자그마한 외침. 핸드폰 렌즈로 담아 봐도 좀처럼 선명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음 가까이 렌즈를 대고 본다면 이런 사유를 끌어낼 수 있을까. 멀리서 보았을 때 모래 알갱이가 흩어진 듯 보여도 작은 별의 경이로움을 숨겨놓은 별꽃, 마음은 나태주의 <풀꽃>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비로소 짐작할 수 있는 대상인가 보다.
‘차는 사람의 마음에게 주는 음식이다. (p24)’
작가의 말처럼 마음은 차의 본질에 닿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끊임없이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찻물이 우러나듯 그 향기를 드러내는 것 같으니. 두껍지 않았는데도 오랜 기간 이 책을 붙들고 있었다. 간혹 운율이 느껴지는 단어에 개념을 구겨 넣는 듯 억지스러움이 보이기도 했지만, 시처럼 짧은 문장과 켜켜이 여백에 담긴 생각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고, 주변을 바라보는 시간 속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는 차단되기 싫은 마음. 그것이 유리를 존재하게 한 것이다.’(p21)
‘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은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것이다.’(p133)’
다른 책 안에 기술된 ‘유리’와 ‘손’에 대한 생각에 매력을 느껴 구입한 책이었다. 지층을 연상시키는 표지처럼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마음을 정밀 묘사를 하듯 세밀하게 정의한다.
‘마음에서 무언가 사라지길 원해서 우리는 말을 하는 걸까. ’(p141)
말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렇다면 마음에 무언가 간직하고 싶을 때는 말을 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을 홀로 마음에 둔 사람은 그를 오랜 시간 간직하고 싶어서 말을 할 수 없는 걸까. 작가가 한 말을 뒤집어 보고, 다른 경우도 생각해보았다.
오랜 시간을 읽다보니 의기소침한 순간도 찾아왔는데, 이 책에 나온 몇몇의 문장은 따스한 이불을 덮듯 많은 위로를 건네주었다.
‘슬픔은 모든 눈물의 속옷과도 같다. ’(p78)
‘위로란 언제나 자기한테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형태대로 나오는 것이다. ’(p152)
‘우울. . 어떤 것을 맛보아도 이게 아니었나 여겨진다는 점에서, 마음이 식욕을 잃어버린 상태’(p309)
우울하고 슬픈 마음을 정면으로 바라본 표현들이 오히려 마음을 토닥이는 데에는 더욱 적절했다.
‘입이 심심할 때에 먹을거리를 찾듯이, 마음이 심심할 때에 사람들은 무언가를 찾는다. 음악을 듣든 산책을 나가듯 친구를 만나든, 그것이 어떤 것이든 무언가를 한다. ’(p95)
마음이 허전할 때는 주로 음악을 크게 듣거나 ‘심심해’라며 친구에게 문자를 보낸다. 심심하다는 말은 내 방식으로 의역하면 외롭다는 말이다. ‘마음이 심심하다’는 작가의 표현을 ‘마음이 외롭다’는 표현으로 바꾸어 다시 읽어본다.
‘언제나 두 개의 당신을 견딘다. 당신이었던 당신과 당신인 당신을. ’(p34)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당신이었던 당신’이란 말이 먹먹하고 슬프다. 한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p57)
나는 소중한 존재일까, 중요한 존재일까 생각해보고, 주변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대입해본다. 비슷하지만 미묘하고도 분명한 차이가 느껴진다.
‘나의 편안함은 누군가의 불편함을 대가로 치르지만’(p62)
어렸을 때는 흰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너무나 멋져 보였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하면서 ‘저걸 스스로 다려 입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깨끗한 집안 뒤에는 그림자처럼 일하는 어머니의 손길이 숨어있듯이, 내가 누리는 편안함 역시 누군가의 희생 위에 자리 잡고 있겠지.
가끔 새벽에 깰 때가 있다. 새벽은 고요하게 빛나는 푸른 호수와 닮아있다. 그 시간에는 고운 빗자루로 방을 쓸어내듯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보곤 한다. 이 책에서 나는 새벽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마음이 칠흑일 때, 차라리 마음의 눈을 감고, 조금의 시간이 흐르길 차분하게 기다린다면, 그리곤 점자책을 읽듯 손끝으로 따라간다면, 이내 사물을 읽을 수 있고, 마음을 읽을 수 있다. ’(p31)
수많은 새벽이 담긴 문장들을 읽으며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그마한 풀꽃 사진을 찍듯 조심스레 들여다보며 마음 사진을 찍었다. 오래된 책장을 정리하듯 구석에 자리 잡아 뽀얗게 먼지가 일던 마음까지 정돈되는 듯 개운했다.
* 개념의 오류가 보인다.
‘혀가 앞부분으로는 짠맛을, 뒷부분으로는 쓴맛을, 옆 부분으로는 신맛을 감지하고 전체로는 단맛을 감지하듯이...’(p36)
→ 과거에는 혀의 부위별로 각각 다른 맛을 느낀다고 알려져 과학교과서에도 그렇게 실려 있었으나, 최근 교과서에는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다. 실제로 혀의 모든 미뢰에서 모든 맛을 감지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위의 표현이 과거의 지식을 토대로 마음을 사유한 것임을 감안해도, 널리 알려졌던 지식에 비추어볼 때 오류가 있다. 과거 교과서에서는‘혀의 앞부분으로는 단맛을, 전체로는 짠맛을 느낀다’고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