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퀼라의 그림자 요다 픽션 Yoda Fiction 7
듀나 지음 / 요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베토벤이 블랙핑크나 아이브를 위한 음악을 작곡했다면 이런 느낌일까? 거장의 주특기가 마치 성대한 축제처럼 피어나 있는 책이다"

팀을 이루어 악당들과 싸우는 정의의 용사들... 그런데 그 용사들이 마치 팬 무리를 이끌고 다니는 아이돌 같다고 할까? 이 연작 소설집 <아퀼라의 그림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바로 그러하다. 우선 이 책에는 각각 6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각각의 단편들은 시간의 흐름이 약간 뒤틀리고 주인공과 화자가 바뀌는 식으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아퀼라나 블루 스펙터스라는 이름의 팀을 이루는 이 아이들은 불을 일으키거나 염력을 쓰는 등의 능력이 있고 알파 히어로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아이돌과 비슷하다는 의미가 과연 뭘까?

연작 소설집 <아퀼라의 그림자>의 세계관을 이루는 배경은 대충 이러하다. 과거의 어느 날, 지하철 공사를 하던 대구의 어느 지하에서 프로스페로 생태계라는 것이 발견되면서 엄청나게 퍼져나간 적사병으로 인해 남한 인구 거의 3분의 1이 피를 토하면서 죽는다. 이로 인해서 남한은 전 세계로부터 격리가 되고 보균자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위에서 말한 능력 ( 감응력, 염력, 발화력 등등)을 드러내며 알파가 된다. 이렇게 능력을 가지게 된 사람들 중에서 악당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폭주하며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지만 ( 늙은이들만을 표적으로 삼는 경우도 있음 ) 그런 악당들의 대척점에서 그들을 막아내고 처단하는 알파 히어로들이 생기게 된다.

이미 남한은 무정부 상태로 보이고 ( 내 생각에는 ) 아마도 폐허가 되었을만한 남한을 이끌어가는 세력들은 알파 히어로들을 보유하고 훈련시키고 그들을 아이돌처럼 만들어서 방송 프로그램과 팬픽 소설까지 만들어내는 K-포스와 같은 회사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책과 같은 제목이자 첫 번째 이야기인 <아퀼라의 그림자>를 비롯하여 나머지 5편의 단편들이 누군가가 쓴 팬픽이라고 가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읽고 있는 이 단편들은 이 책 속에서도 캐릭터들이 읽는 팬픽으로 등장한다는 점. 소설 속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 하여간 설정이 재미있었다.

라스푸틴이 과연 누구이고 왜 이 일을 저질렀다는 말인가?를 추적하는 게 재미있었던 단편 <아퀼라의 그림자> 어쩌면 라스푸틴의 탄생? 혹은 기원이라고도 볼 수 있을 단편 <마지막 테스트> 대구의 지하철 공사장에서 발견되었다던 그 프로스페로 생태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던 단편 <캘리번> 이 단편에서는 아마도 최초의 아이돌 알파 히어로라고 할 수 있을 블루 스펙터스 멤버들의 탄생을 볼 수 있다. 여기서는 또한 적사병으로 죽은 시체들이 갈기갈기 찢겼다가 다시 붙으면서 아나콘다와 같은 괴물이 되는 기괴한 장면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단편 <모두가 세니를 사랑했다>에서는 슈퍼히어로와 슈퍼 악당들의 끝없는 전투라는 틀 안에 갇혀버리게 되어버린 고립된 한국을 위해 희생하는 알파 히어로 세니의 모습이 집중 조명된다.

우리가 보통 "아이돌을 사랑하는 일" 즉 "덕질"에 푹 빠져버린 사람들을 광팬이라 부르지 않는가? 이 책 <아퀼라의 그림자>는 누군가의 광팬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읽는다면 참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계에서 온 알 수 없는 존재가 퍼트린 치명적인 질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지만 보균자가 되어 살아남은 능력자들은 "알파 히어로"라는 강력한 집단이 된다. 이들은 악당들을 깨부수지만 동시에 음악에 조예도 깊고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팬픽도 보유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아이돌스타"라는 사실. 이들은 악당을 무찌르는 동시에 남한을 "고립"과 "격리"라는 지경으로 빠뜨린 프로스페로 생태계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과연 이들은 이러한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뭔가 기괴하고 독특하면서도 알록달록한 미래 세상을 보여주는 작가 듀나. 이 책을 읽다 보니 내란 종식을 위해서 컬러풀한 응원봉을 든 이 땅에 있는, 다른 누군가의 팬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혼란과 절망을 종식시키는 것은 누군가를 향한, 아니 온 존재를 향한 사랑이라는 사실. 그 사실이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간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응원이 보이고 느껴지는 듯한 SF 소설 <아퀼라의 그림자>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기는 스토리 - 잘 팔리는 콘텐츠에 숨은 4가지 스토리텔링 법칙
캐런 에버 지음, 윤효원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잠깐 반짝하고 사라질 것들이 아닌

뇌에 각인될 '단 하나'를 창조하는 방법

우리는 현재 뭐든지 잘 팔아야 살아남는 시대를 살고 있다. TV를 켜도, 유튜브를 봐도, 지나가는 버스 광고에서도, 온통 사람들에게 뭔가를 사라고 설득하는 광고들로 가득하다. 그 수많은 광고들 중에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소수의 광고만이 사람들을 사로잡아서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게 만든다. 과연 어떤 광고만이 그런 일을 해낼까? 최근 들어서 유독 스토리텔링을 강조한 광고가 돋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을 쓴 저자 캐런 에버도 강력한 힘을 가진 것으로 "스토리텔링"을 강조한다. 캐런 에버는 컨설팅 기업의 CEO 이자 스토리텔링 전문가인데, 특히 TED 강연 '뇌가 스토리에 반응하는 방식과 리더에게 스토리가 중요한 이유'로 큰 화제를 모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 <이기는 스토리>를 통해서 특히 비즈니스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어떻게 하면 기업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지, 그것을 스토리텔링을 만들 수 있는지의 본질을 파헤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서 뇌가 이야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설명하고, 비즈니스 리더라면 반드시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할 것을 이야기하면서, 스토리텔링을 구성하는 4가지 기본 요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책 <이기는 스토리>는 이 4가지 법칙 - 맥락, 갈등, 성과, 핵심 메시지 - 을 기반으로 쓰였고 그 주제에 따른 내용이 무려 18장이나 된다. 기업을 이끌어가는 힘이 바로 스토리텔링에 있다고 하는 저자.

우선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 첫 번째 요소가 바로 "맥락"이다. 이것은 이야기 안에 사람과 스토리를 연결하는 메시지를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된 저자의 주장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5장 : 스토리는 청중에서 시작한다>였다. 보통 강연을 할 때 강연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듣고 있는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이야기할 때 집중도가 높아진다. 청중의 마음을 읽듯, 고객의 마음을 읽으라는 의견으로 들렸다. 두 번째 요소 "갈등" 은 바로 몰입과 공감을 유도하는 역발상 기술인데, <10장: 감각을 일깨워 감정을 느끼게 하라>에서 이야기 안에 색깔을 넣거나 무엇인가의 재질, 냄새 등을 집어넣어라는 이야기에 큰 공감이 갔다. 감각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뇌 활동을 자극하여 청중을 이야기에 몰입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세 번째 요소인 "성과" 부분을 다루는 이야기에서는 리더십과 조직의 역량을 강화하는 공식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15장: 공감은 의도적으로 설계된다>에서는 어떻게 하면 스토리텔링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 그 전달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이야기를 하면서 청중의 행동 변화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인다거나 전달 방식의 패턴을 바꾸기 그리고 청중이 이야기를 듣고 구체적인 디테일을 떠올리거나 지지 표시를 한다면 그날 강연은 성공을 거두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바로 "유일한 브랜드를 구축하는 법"이다. 그녀는 파도타기에 익숙해져가는 서퍼의 이야기를 전하며 반복과 연습을 이야기한다. 서핑처럼 스토리텔링은 복합적인 기술로 더 많이 이야기할수록 더 잘하게 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

우리는 바야흐로 "콘텐츠"에 목숨을 거는 시대를 살고 있다. 기업의 리더이든, 가게를 소유한 주인이든, 혹은 시작하는 유튜버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뭔가를 팔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제품이든, 서비스이든, 아이디어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대중의 집중과 몰입을 이끌어야지 일에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잘 팔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즉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법을 제시한다. 기업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주로 비즈니스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책이므로 회사에서 뛰어난 실적을 거두고 싶어 하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 < 이기는 스토리 >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천일괴담
왓섭!.베베 지음 / 북오션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괴의 위협에 처한 조선을 구하라

요즘 나라가 뒤숭숭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악의 위협으로부터 조선을 구한다는 주제의 이 책이 눈에 확 들어왔다. 처음엔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으나 이 책 <조선천일괴담>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 우선 캐릭터에 대해 설명하자면, 대단히 매력적인 주인공 이현이 있다. 그는 우리가 아는 그 세종대왕의 이복동생으로서 귀신이나 요괴를 볼 수 있고 그들과 소통을 할 수도 있다. 귀신이나 요괴로 인해 피해를 입는 마을을 찾아가서 해결을 해주는데, 무조건 그들을 없애는 게 아니라 원한이 있으면 대화로 풀어서 스스로 이승을 떠날 수 있게 한다. 한마디로 아주 정의롭고 이상적인 캐릭터이다.

소설의 구성과 스토리에 대해서 좀 말하자면, 이 책은 일종의 연작 소설이다. 12편의 단편이 이어지면서 하나의 큰 이야기를 형성한다. 각각의 단편에서는 조선의 요괴들이 등장하는데, 도채비 ( 도깨비 ), 구미호, 태자귀 등등 내가 알고 있던 존재들도 있지만 인로골설, 그슨대, 영노 등과 같이 그전에는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희한한 요괴들도 등장한다. 이현의 이복형제들인 세종과 대군은 해괴한 존재들로 인해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 이현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고 마치 암행어사처럼 각각의 마을로 그를 파견시킨다. 이현의 곁에는 아주 든든한 봉이라는 하인이 있는데 아주 어릴 적에 만난 사이라서 계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치 친구처럼 지낸다.

이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를 말하자면, 우선 "드라마적 요소"가 풍부하기 때문이라 하겠다. 어릴 적에 엄마를 잃은 이현. 엄마였던 설화도 이현과 같은 초능력이 있다고 들었으나 이현은 엄마가 어떻게 돌아가신 줄도 모른다. 말하자면 출생의 비밀이 있다는 것. 이런 비극적인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는 이현이기에 이복형제들인 세종과 대군은 그를 알뜰살뜰 챙기고 돌본다. 이런 사연을 가진 게 이현뿐만이 아니다. 봉이는 제주도 출신으로, 한때는 부모님과 행복하게 살았으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게 되고, 곧이어 아버지마저 목숨을 잃는 비극을 당했다. 그리고 이현을 도와서 함께 요괴를 처리하는 도깨비 소하의 사연도 슬프고 극적이다.

한 5~6번째 에피소드까지는 조선의 여러 마을을 혼란에 빠뜨리는 소소한 요괴들과 귀신들을 처치하고 이승으로부터 떠나보내는 내용이 나오지만 이후에 소설은 이현을 최종 빌런에게로 이끈다. 이 거대하고 악독한 빌런을 만나기 전까지는, 연작 소설이긴 하나 각 이야기에 독립성이 있었다면 이후 부터는 좀 더 이야기에 응집성을 띤다. 이제 이현은 자신뿐만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를 송두리째 잡아 삼키려고 하는 거대 악과의 대결을 준비한다. 최종 대결을 하기 전에 그와 맞서는 데 도움이 될만한 존재들을 끌어모으게 되고 자신의 힘을 좀 더 키워줄 신성한 물건을 찾아다니게 되는데... 과연 이현은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도 탄탄하고 캐릭터들의 개성도 뚜렷하다. 그러나 이 책이 가장 좋았던 점은 바로 조선이라는 공동체, 즉 위기에 빠진 우리 자신을 구한다는 그 주제의식이었다. 물론 다양한 요괴들의 등장과 그 요괴들과 맞서는 스토리도 재미있었지만 결국 엄청난 빌런에 맞서서 이현뿐만 아니라 이현과 대치하던 요괴들까지 함께 힘을 합친다는 스토리는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내란이라는 혼란이 빠른 시일 내에 종식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이러한 책이 더욱더 재미있게 느껴졌을 지도 모르겠다. 요괴나 귀신으로 인해서 괴로움을 겪는 백성들... 백성들의 괴로움을 잊지 않는 왕... 능력도 있고 정의롭기까지 한 이현.... 그 외에도 자신을 희생하여 공동체를 살리려는 여러 캐릭터들... 딱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스토리가 아닐까? 기대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던 책 <조선 천일 괴담>을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 이경규 에세이
이경규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사는 것이 농담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도 아주 완벽한 농담."

아는 연예인은 별로 없지만 나는 개그맨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항상 남들을 웃기려고 노력하기에 가볍게 취급받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남을 웃길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재능이다. 번뜩이는 재치와 창의성이 있어야 하고 내 상황이 어떻든 간에 밝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아무나 개그맨이라는 직업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더욱더 그들을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나는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보다는 그 사람이 평소 하는 말이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 아주 까칠해 보이지만 실속 있는 뼈그맨 ( 뼛속까지 개그맨 ) 인 이경규 씨를 아주 좋아한다.

이번에 그가 낸 책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은 "이경규"라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잘 보여줬다. 우선 이 분은 "소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영화 제작자로 훌륭하게 변신한다. 107쪽 "소년과 운명의 극장 삼거리"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영화를 보다 잠든 소년 이경규를 찾으러 극장에 오는 어머니 이야기가 나온다. 124쪽 "복수는 누구의 것인가?"에서는 그가 최초로 만든 무술영화 "복수혈전"과 관계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본인은 아주 진지한 마음으로 만들었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가볍지 그지없다. 하지만 이후로도 "복면달호"나 "전국노래자랑"같은 영화를 계속 만들면서 제작자로의 꿈을 지켜간다. 순수한 마음으로 품은 꿈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추구하는 면이 아주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매우 책임감 있고 성실한 분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44쪽 "대기실의 침묵"이라는 에피소드에서 방송국 대기실에서 너무 조용히 있는 이경규 씨가 냉정하다거나 차갑다는 말이 흘러나왔지만 사실 본인은 좀 더 완성도 있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자신의 에너지를 오롯이 방송에 쓰려는 자세가 느껴졌다. 62쪽 " 일본 유학 1년을 빼고는 40여 년간 단 한 주도 녹화를 쉰 적이 없다. 아파도 주사를 맞고 촬영에 들어갔고, 다치면 방송에 지장이 있으니까 위험한 운동도 피했다 " 일을 위해서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거나 수술도 녹화가 끝나고 나서 했다는 것을 보면 직업윤리가 대단히 높은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한 분야의 리더가 아무나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외에도 번뜩이는 창의성이나 다가올 미래를 읽는 혜안, 그리고 생각보다 많이 소탈했던 점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TV 프로가 주요 방송국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넷플릭스와 같은 OTT나 유튜브 쪽으로 플랫폼이 옮겨간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젊은이들처럼 재빠르게 현실에 적응해 나가는 면이 이 분을 오랫동안 현업에 종사하게 해 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몰래카메라"나 "양심냉장고"같은 당시 큰 히트를 친 작품들도 이 분이 시작한 것이고 그런 포맷을 가진 프로그램들이 이후에 많이 만들어진다. 정말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반려동물과 관련된 프로그램도 많이 하시는데,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참 따뜻하고 인간적인 분이라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그맨들은 슬프거나 화가 나도 일단 웃음을 만들어내고 보는데, 이경규 씨도 그런 것 같다. 이 책 속에 오래된 친구와 삼겹살을 구워 먹다가 친구가 뇌출혈을 일으켜서 병원으로 달려간 일화가 나오는데, 급박했던 순간을 다룬 이 에피소드에서도 웃음을 뽑아내는 경규 옹. " 참고로 재권이는 내 앞니 두 개를 해주었다. 안동의 어느 치과에 가면 입구에 내 수술 전후 사진이 붙어 있다. 생명의 은인을 홍보에 이용해먹다니. 역시 배신자들은 가까이에 살고 있다." 롱런하는 개그맨, 히트작 제조기, 영화 제작자, 그리고 개버지 ( 강아지 아버지 ) 내가 이경규 씨에게 붙이고 싶은 수식어는 정말 많다. 이 모두가 그의 재능에서 비롯되었기도 했지만 그의 인간성과 성실성도 한몫을 했다는 걸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후배들에게 존경받고 스태프들이 같이 일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 어떤 수식어보다 "진솔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누군가의 이야기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 : 역사 1 - 근현대사 사물궁이
김명재 지음, 사물궁이 잡학지식 기획 / arte(아르테)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서는 주로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영향력이 컸던 사건 위주로 기록되긴 하나, 사소한 하루하루가 모여서 역사의 큰 흐름을 이룬다는 점에서 우리는 일상의 사소함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는 역사서의 형태에 대해서 편견이 없다면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주로 한국의 근현대사에 초점을 맞춘 내용인데, 특정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 3.1 운동의 모습은 어땠을까? 와 같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질문도 있지만 언제부터 사진 촬영이 대중화되었을까? 나 한국의 교육열은 언제부터 심해졌을까? 와 같은 평범하지만 뭔가 흥미를 자극하는 질문들도 많다.

나는 이 책을 쓴 저자 김명재 씨가 프롤로그에 남긴 글에 큰 공감을 했다. 저자는 작년 12월에 일어난 대통령의 계엄 선언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렇듯 역사에서 사소한 질문은 현실 사회와 사건, 사람들의 의식에 따라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게엄 선언 전과 후 사람들의 계엄에 대한 인식은 정말 달라졌을 것이다. 말하자면 과거의 유물에 불과했던 계엄, 즉 사소한 일에 불과했던 계엄이 어느덧 우리의 현실을 위협하는 사건이 되어버린 것. 나는 작년 12월 3일 이후 계속 벌어지고 있는 혼란과 소요사태 등을 보면서 일본에 지배를 당했던 한국의 근대사가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의 정치나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과 6.25 이후 미국이 내정 간섭을 했던 것 등등 지금의 한국을 만든 주요 근현대사에 대한 궁금함이 생겼다.

이 책 <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 1>은 1부 - 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던 근현대사 이야기부터 5부 - 한 번쯤은 궁금했던 근현대 생활 이야기로 구성된다. 1부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지배당했던 시절에 관한 질문으로 이루어졌는데, 3.1 운동은 우리가 상상하듯 태극기의 물결로 이루어진 집회가 아니었다는 점 ( 일제의 감시를 피해 밤새 등사기를 돌려야 했고 채색 과정이 번거로워서 대량 생산이 어려웠다고 함 ) 공격적인 독립운동의 하나였던 폭탄 투척에 쓰인 폭탄은 영국인, 중국인 등 외국인들을 통해 전수받은 기술로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몇몇 친일파들은 조선인도 일본인처럼 대우해 주겠다는 일본의 선전 전략에 넘어간 민족주의자들이었다는 점 등등의 흥미로운 사실들이 소개된다.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이었다.

105쪽에는 "일본인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루머를 왜 믿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있다.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일본이 혼란에 빠지자 당시 내무 대신이었던 미즈노 렌타로가 다음 날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소문을 퍼뜨리도록 지시한다. 군대 출동과 계엄령 발포를 준비하는 동안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일본인 자경단에 의한 조선인 학살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사실 이 사건은 그전부터 일본 정부와 언론이 식민지 통치에 불만을 품은 조선인을 억압하기 위해서 조선인에 대한 혐오 정치를 해온 결과라고 하는데, 특정 집단이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용한 최악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 들어서 주요 정치 사안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라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을 분노 등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세력과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집단이 있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역사서"라고 하면 길고 지루한 책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좀 다르다.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 40개를 뽑아서 거기에 대한 답변 위주로 글이 쓰여 있는데 정말 흥미진진해서 가볍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일제강점기 시대에 대한 질문이 많은데, 예를 들자면 "독립운동가의 가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일제강점기 조선에 살던 민간 일본인은 조선인과 어떻게 지냈을까?" 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당시 조선 사람들이 너무나 빈곤하게 차별당하며 힘들게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뿐만 아니라 "자유연애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나 "여름 납량 특집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와 같은 신변잡기 위주의 질문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나와 같은 독자들이 전에는 몰랐던 흥미진진한 정보와 사실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성별이나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 <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 1>을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