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남자가 무대위에 앉아있다. 그를 비추는 스폿라이트가 켜지고, 그는 독백 ( 가끔은 관객과의 대화 ) 을 시작한다. 이제는 빛바랜 이야기지만 잔잔하게 시작되는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열정적인 연애 이야기.  중간 중간 위트넘치는 농담을 던지며 연애이야기를 꺼내지만  분노에 사로잡혀 절망을 토로하기도 하는 1인극.


그는 관객들에게 이야기한다.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 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

사랑의 본질은 도대체 뭘까다소 진부한 질문을 자꾸 되묻게 만드는 이 소설. 연애의 기억. 연애의 기억이라기 보다는, 연애의 결과로 인한 고통의 기억? 이 더 적절한 제목일 듯한 이 소설은,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 작가의 다소 무거운 연애 소설이다.


이 글은 대부분 주인공의 1인칭 시점 나레이션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난 소설을 읽는 동안 내내 노쇠해진 한 신사가 1인 연극 에서 한때는 열정적이었으나 끝내 퇴색되어버린 자신의 젊은 날의 사랑 이야기를 고백하는 것 처럼 느꼈다.


연극 무대에서 그는 이렇게 읖조린다.

" 저는 그때 어렸습니다. 젊었죠... 그녀는 제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빠져들었어요 "


소설 속의 주인공 19세 대학생 폴 은 방학을 맞아 집으로 잠시 쉬러 온 틈을 타서 테니스 클럽에 가입한다. 거기서 그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만난다. 48세의 원숙한 아름다움을 가진 수전.


" 그녀는 다른 어른들과 달랐습니다. 뭔가... 자유롭고 사회와 인간을 풍자할 줄 알았죠. 저의 냉소적인 유머에 곧잘 웃어주었으니 "


관습에 물들어버린, 클리셰를 대표하는 듯 지루한 어른들과 달리 자유분방하고 유머감각이 넘치는 수전. 폴은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아니면 클리셰가 아닌 사랑 - 또래와의 유치한 사랑이 아닌 - 과 사랑에 빠졌을 지도 모르고.


그런데 이 소설이 그냥 주인공의 젊은 날, 불같았지만 빨리 끝나버린 진부한 사랑 이야기였다면 이렇게 나의 마음이 무겁진 않을텐데..... , 연극 무대의 주인공이 이렇게 말했다면, " 사실 그녀를 사랑했지만, 우리 둘 다 빨리 이성을 되찾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죠. 하하하 "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순수했고 사랑이 영원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런 사랑의 색깔이 바래지고 믿음이라는 장막이 걷히면서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사실 폴은 불행한 결혼 생활 에 빠져 허우적대는 수전을 자신이 구해줬다고 느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그 관계는 또다른 진부한 관계로 변해버린다. 책 속에 나오는 문구처럼. 폴이 그렇게도 싫어했던 부모님의 결혼 관계처럼.

 

우리 부모의 결혼은 나의 열아홉 살의 용서없는 눈으로 보기에는, 클리셰가 자동차 사고처럼 난무하는 현장이었다. 클리셰를 심판한 사람으로서, "클리셰가 자동차 사고처럼 난무한다 " 라는 말 자체가 클리셰라는 것은 인정해야겠지만

 

결국  자신을 조금씩 파괴하는 수전을 보다 못한 폴은 그녀를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데...…..

 

위에서도 말했듯, 이 소설은 연극무대의 주인공이 읖조리듯 늘어놓는 독백같은 소설이다.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사실 폴 이외의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작가의 영국인다운 절제하듯 써내려간 문장의  사이 사이로, 순수한 첫사랑에 대한 기쁨,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 그러나 결국 마주치게 된 분노와 갈등... 마침내는 망가져버린 관계에 대한 절망이 언뜻 언뜻 엿보인다.

 

자기 중심적이었던 젊은 날의 폴은, 나이가 들어서야 자신의 사랑만이 특별한 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클리셰라고 믿었던 자신의 부모님도 사랑하던 시절이 있었고, 수전을 괴롭히기만 한다고 생각했던 남편 고든도 한때는 그녀를 열정적으로 사랑했을 거라는 걸 깨닫는다..  

 

쉽게 읽히지 않는 소설이었다. 자꾸만 되새김질 하게 되는 문장도 많았던 것 같다. 이해가 잘 안되서. 그러나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답게 사랑이라는, 쉽게 규정지을 수도 없고 한계를 지을 수도 없는 감정을,  성찰하는 듯한 그의 독특한 방식으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 책은 마냥 사랑하는 연애 소설이라기 보다는 연애를 추억하며 주인공이 느낀 인생에 대한 통찰을 그려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소 어려운 감이 있으나 사색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나, 나는 여성!  내 삶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의 내 자신을 존중해! 라고 외치는 듯한 소설이 나왔다.  이름하여 비바 제인.   다른 삶을 살고 있는 5명의 여성을 보여주는데 결국은 같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 5명의 여성의 삶을 극히 자연스러운 어조로 보여주면서 여성이 이 세계에서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크고 작은 차별과 억압 그리고 편견과 선입견에 대해 고발하고 있는데 사실 그 고발이 너무 진지하거나 심각하게 흐르지 않도록 시종일관 위트와 풍자가 넘쳐난다.

그들을 잠깐 소개하자면,

레이첼 : 주인공 아비바의 엄마.  아비바를 너무나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제인 영 : 주홍글씨처럼 낙인찍인 비밀스러운 과거를 간직한 여인. 고통스런 경험 만큼 성장했다.
루비 : 제인의 딸. 8살이지만 50살의 성숙한 영혼을 가진 아이. 그러나 그런 독특함때문에 왕따를 당한다
엠베쓰 : 철부지 정치인 남편 때문에 병에 걸릴 정도다. 그러나 그것도 극복하는 강한 여성.

그리고 아비바가 있다.  이 소설은 그녀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될 수 없다.  20대 초반 젊은 시절,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은 불같은 사랑 때문에 인생이 폭망했다.  전도유망한 한 정치인과 불륜을 일으키고, 그 사건때문에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찾아다니는 언론과 네티즌들의 사냥감이 된다.

한순간 성실한 인턴에서 개걸레가 되어버린 아비바. 그런데,,,, 그 성추문 스캔들의 주인공인 정치인의 도덕성 문제는 쏙 빠져있다...  참,, 이건 뭐지??? 책의 띠지에 나와 있는 #강한기시감 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를 유혹한 한 인턴의 단정치 못함과 비도덕적 행태만 가십거리가 된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책의 띠지에 나와있는 #여혐, #이중잣대,#2차가해 등은 소설 속 여성들이 대면하는 남성들의 입을 통해서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레이첼의 소개팅남, 시장 선거에 출마한 제인 영의 경쟁 후보, 그리고 다소 여성스럽지 못한 루비를 괴롭히는 남자아이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어딜가나 여성의 삶을 옥죄는, 보이지 않는 제도? 체계? 선입견? 같은 것이 있구나~~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이 와중에도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여자들끼리의 우정을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성의 사회참여와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 하다.  바람직한 여성 운동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는 느낌?

사회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의식을 던져주긴 하나, 결코 무겁지 않은 소설.  페미니즘을 다루는 책들은 다소 전문적이고 어려운데 이런 위트와 풍자가 넘치는 재미있는 소설을 통해서 페미니즘이 뭔지 알아가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별 5개 만점에 4개 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스커레이드 나이트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  독자의 뒷통수를 아주 세게 가격하는 듯한 이 소설. 작가에게 큰 배신감이 느껴지는 하루다. 물론 이 말인즉슨 작가가 매우 훌륭한 추리소설을 써냈다는 것.  독자 ( 나 ) 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내놨으니.

다 읽고나서 말하는 거지만 범인이 ( 혹은 작가가 ) 작정하고 덤비면 얼마나 치밀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비열 혹은 사악해질 수 있는지,  도저히 같은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못할 범죄행각과 그것을 합리화하는 논리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이 소설은 공포심이나 불안을 자극하는 심리스릴러라기 보다는 다양한 트릭을 갖춘 소설이다. 말하자면 결말에 이르기까지 여러 의문점을 풀어야 도달할 수 있는 미로같은 소설이라고나 할까?  따라서 작가가 내주는 수수께끼같은 트릭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그야말로 꿀잼일 소설.

이 소설의 제목인 매스커레이드 나이트는, 소설의 배경인 호텔 코르테시아 도쿄에서 12월 31일과 신년 사이에 열리는 가면 무도회이다. 경찰들은 무도회가 있기 며칠 앞서서 경찰팀들을 프런트 클럭이나 벨보이등으로 위장시켜 잠입 수사를 진행한다. 그 이유는 그전에 있었던 한 여성의 살인사건의 범인이 무도회에 나타날 것 이라는 믿을만한 제보 때문.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지난 시리즈에서도 등장했던 닛타형사와 컨시어지인 야마기시 나오미. 그들은 이번 편에서도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며 한 명은 범인 색출에, 나머지 한 명은 고객 응대에 최선을 다한다.

그 와중에 웬지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 이벤트 요구하는 사업가, 모형 케잌을 요구하는여인, 불륜현장에 가족을 데리고 온 남자 그리고 가방을 누가 뒤졌다고 항의하는 젊은 커플 등등. 
웬지 작가가 얘기하는 듯 하다. 유심히 살펴보라고. 닛타 형사도 그들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드는 생각.  혹시 작가가 여러 잠재적 용의자들의 기이한 사연들을 늘어놓으며 독자의 판단력을 흐려놓는 건 아닐까? 즉, 끊임없이 사건과 관련없는 고객의 개인사를 늘어놓으며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린다는 느낌?  독자들이여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어쨌든 범인의 윤곽이 명확히 잡히지 않은채 운명의 날은 다가오고야 만다.  12월 31일 자정을 알리는 시계소리.  그러나 유난히 형사로써의 직관이 발달한 닛타 형사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는 무도회 밖으로 뛰쳐나가는데....

이 소설의 결말은 과연 무엇일까?   호텔이라는 독특한 설정아래, 비밀스럽게 , 즉 가면을 쓴 채 호텔을 오고가는 고객들.  함부로 민낯을 드러내면 안되는 잠재적 용의자들. 과연 이 중에 범인이 있을까요?   이제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면아래 숨겨진 추악한 진실을 대면해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도 중학생은 처음이라고! 13살 에바의 학교생활 일기 2
부키 바이뱃 지음, 홍주연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은 사춘기 에바가 중2 병을 앓으며, 좌충우돌하는, 성장기 드라마 같은 만화+소설이다.  그림 반, 글 반인 이 책은 읽기가 너무도 쉬운 반면, 이 글의 주인공 에바는 사는게 너무도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왜 그럴까?

이제 중학교 생활이 너무나 힘든 에바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에바는 소심대마왕이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는게 너무 싫고 적응도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에바는 머피의 법칙을 믿고 있다.  일이 잘못 되려면 반드시 그렇게 돼!  세상의 불행이 모두 자신에게 달려오는 듯 느끼는 에바.

 

 

우선 집에서 발생한 머피의 법칙!  새로 집 식구가 된 고양이 펠릭스 맥스너글스3세는 에바에게 큰 골칫덩어리이다. 에바는  다른 식구들에게는 얌전한 고양이가 유독 자신만 괴롭힌다고 생각한다. 에바의 가방과 책을 물어뜯어놓는 희한한 이름의 그 고양이.  ( 사실 고양이는 물어뜯거나 스크래치가 일상생활이죠 )

학교에서도 불행은 그치지 않는다.  어디선가 미스터리한 여학생이 나타나 자신의 사물함을 강탈한다. 이 무슨 불행의 연속인가?  그 여학생은 새로 전학 온 제시카라는 여학생.  학교의 행정 착오로 제시카는 에바의 사물함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에바는 제시카와 사물함을 함께 쓰고 그녀를 관찰 분석한 후 그녀가 제법 괜찮은 아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변화의 시작이다.

 

 

 에바는 과학 시간에 제시카와 한조가 되고 펠릭스 맥스너글스 3세에게 자동 급식기를 만들어 주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지만,, 발명대회 당일날 급식기는 작동하지 않는다. 계획이 쫄딱 망한 것이다. 역시 머피의 법칙은 우리의 에바를 피해가지 않았다.  좌절하는 에바. 



그러나 제시카는 달랐다. 그녀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말썽없는 인생이란 의미없다고 말하는 유연한 사고방식을 보인다.  대단한 어른스러움이다.

 

이때부터 조금씩 생각을 달리하는 에바.  에바는 서서히 변하고 성장하기 시작한다...

발명대회의 성적이 나온 당일날.. 제시카와 에바는 발명 과제 성적이 낮게 나올 것을 예상하고 우울해 하지만, 어라.. 예상외로 A- 의 성적을 받는다.   과학 선생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 너희들의 발명품은 실패했지만 보고서와 발표는 너무나 훌륭했어. 과학은 원래 실패의 연속이야! 인생처럼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지 .  그래서 매력적이야 ."


이 책은 소심하긴 하지만, 재치넘치는 에바라는 소녀가 겪는, 사춘기 시절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 스트레스 등을 귀여운 그림을 통해서, 그리고 유머러스한 글을 통해서,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에바는 한낱 고양이의 장난 때문에 괴로워하고 친구를 사귀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다소 소심하고 예민한 여학생이다.  그리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경우에 두고두고 곱씹는, 다소 내성적인 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변화하고 성장한다. 그 괴로운 상황을 통해서.  자신을 괴롭히는 고양이와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새로운 친구를 통해서.... 이런 말을 하면서...

 

 

어쩌면 모든 걸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몰라. 어쩌면 모든게 관점의 문제일지도

 

이제 펠릭스 맥스너글스3세, 그리고 제시카와 잘 지낼 수 있겠지? 에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철학 수업 잠 못 드는 시리즈
김경윤 지음 / 생각의길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철학은 내게 아픈 기억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대학 시절, 교양 철학 수업을 들었는데 문자가 눈으로 왔다가 뇌로 안 가고 바로 튕겨나갔었다...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교수님은 자꾸 눈 앞에 놓인 의자가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의 여부를 물어보시고,,,,, 너무나 지겨워진 나는 퍼질러 잠만 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여교수님이 우리들에게 뭘 물어봤는지 조금은 알 듯도 하다. 인간과 사물의 관계성을 물어보셨던 건 아닌지....  이 책에 나오는 " 후설 " 이라는 철학자는 인간과 사물의 " 관계의 철학 " 에 대해서 언급하기 때문이다.  " 노에시스 "는 대상에 대한 ' 의식작용' 이고 " 노에마 " 는 그러한 의식작용을 거쳐 ' 의식된 대상 ' 을 의미한다.  후설, 그리고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노에시스 없는 노에마란 있을 수 없고, 노에마를 떠난 노에시스는 있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이것이 바로 후설의 현상학 이론 중 일부분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간단한 책 소개를 하자면 지은이 김경윤 님은 여러 연령층 - 청소년, 학부모, 교사 등 - 을 대상으로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계신 분이다.  쉽게 전달하려는 저자의 노력 덕분인지,  위대한 16명의 철학자들의 삶과 저작 활동이 이 책을 통해서 매우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따라서  막 철학에 입문하려고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너무나 좋은 입문서라고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는 시대별 순으로 19세기를 대표하는 유명한 철학자 마르크스부터 20세기의 들뢰즈까지, 그들의 작품활동이 차례대로 소개되어 있고, 생애 전반을 통한 사회 참여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책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너무도 놀라운 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방 안에 앉아서 책이나 쓰는 작가에만 머물지 않고, 시대의 문제점을 꿰뚫어 인간이라는 존재가 겪는 고통을 사회에 알리거나 아니면 더 나아가서 사회 운동가나 정치가로써 그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는 실천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의 순서를 보자.

(1) 의심의 대가 3인방 :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2) 인간의 의식과 존재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려했던 철학자들 : 후설, 하이데거, 사르트르
(3) 현대의 변모한 조건 속에서 새롭게 변혁의 가능성을 모색한 철학자들 : 그람시, 루카치, 프랑크푸르     트학파
(4) 삶의 보편적 규칙을 발명한 구조주의 언어학자 소쉬르, 그 규칙을 인류에게 적용한 레비스트로스, 구조주의를 다양하게 변형, 변모시킨 라캉, 알튀세르, 푸코, 들뢰즈

그 중에서 내가 좀 더 깊이 알고 싶다고 생각했던 철학자들은 니체, 그람시, 그리고  푸코 였다. 그들은 각 다른 시대에 태어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랐지만, 인간이 뭔지,  사회, 즉 공동체는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게 생각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분들인 것 같다.

우선 [ 니체 ] 라는 철학자, [ 망치로 철학하기 ] 라는 이론을 통해  " 인간은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하려면 늘 새롭게 자신을 창조하는 강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을 노예화하는 사슬을 망치로 부수고 해방해야 한다 " 말함.  ---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시대를 앞서가신 철학자.

철학자 [ 그람시 ], 그는, 서구사회를 분석하면서,  강력한 강제력을 가진 정치사회 보다는 시민의 동의를 전제로 한 시민 사회의 균형을 통해서 지배력이 관철된다는 이론을 피력하며 시민사회의 헤게모니와 집단의지에 대해서 언급한다 ---- 현대의 시민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생각이 듬.

그리고 철학자 [ 푸코 ]. 그의 출발지점은 사회적 질서가 배제된 광기, 감옥, 성 등의 영역이었다. 거기서 그는 타자의 담론을 복구하면서, 이성 대 광기, 정상 대 비정상 을 가르는 " 타자의 시선 "의 문제를 언급하였다.  그는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고 하면서, 스스로를 타자의 시선에 가두지 말고,  " 자기 " 를 배려하면서 " 쾌락 " 을 활용할 것을 주장한다.  ---  시선이라는 " 권력 "에 포섭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주체의 가능성 제시.

전반적으로 책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위에서도 말했듯이, 철학에 입문하려는 독자에게는 아주 훌륭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각 철학자들의 사회활동과 저작활동이 잘 요약되어 있고 압축되어 있어서 비교 분석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 책에 여러 철학자들의 작품활동을 한꺼번에 담으려니, 살짝 맛만 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 이론에 대한 깊은 이해는 부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사르트르의 " 타인은 지옥이다 " 라는 말이나, 푸코의 " 지식은 권력이다 " 라는 말의 근거를 찾고 깊이 이해하려면 그들의 책을 찾아서 다시 읽어봐야 한다는 것.

허나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매력이 넘친다. 한마디로 볼매이다. 처음 보다 두번째 읽을 때 두번째 읽을 때보다 세번째 읽고 이해를 어느 정도 한 뒤에, 이 철학자들의 이론을 내 삶에 비추어보는데서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자본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소외라는 것이 뭔지 조금 알 듯도 하고,  니체가 말하는 현실의 삶에 집중하는 초인이 되보려 노력할 수도 있을 것 같고, 푸코나 들뢰즈가 제시하는 자신의 욕망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진정한 현대의 유목민이 되는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육즙이 우러나는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