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스
제시 볼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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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밝혀져 있듯이, 이 소설의 저자는 다운 증후군을 앓던 형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 형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서 쓴 글이다.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가 어떤 것인지, 그런 장애를 앓고 있더라도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가족들 못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소설의 내용을 살짝 들여다보면, 주인공은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다. 그런 후 자신도 몹쓸 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다. 그러나 주인공은 맘 편하게 아내를 따라갈 수 없는 사정이 있다. 그에게는 성인이지만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들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온전치 못한 상태로 세상에 홀로 남는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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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항상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했다. 우리 그냥 훌쩍 떠나지 않을래? 아내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아들이야말로 어디론가 떠날 가장 합당한 이유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도 떠나는 걸 꺼려했다.


아무튼 아내 생전에 우리는 떠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하지만 아내의 죽음과 동시에 이제 떠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덮쳐왔다.“(p. 25)


주인공 아버지는 아들과의 여행을 위해 인구조사원이 되어 알파벳으로 된 지역들을 하나씩 방문해 인구조사도 진행하고, 아들과의 추억도 만들어 나가며 북방의 끝인 Z를 향해 나아간다. 그는 아들은 데리고 A~ Z로 이동을 하면서 각 알파벳 마을마다 인구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삶 속에서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집들을 방문하게 된다. 그가 그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도 저마다 각자의 삶이 있고,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Z까지 쉬지 않고 가야 할 것만 같았다. Z까지 죽 달리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 동시에 병세가 악화되면서 도저히 Z까지 못 갈 거라는 예감이 짙어졌다. 그러면 어떡하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되는 만큼, 아무리 하찮아도 되는 만큼 하는 거다.”(p. 224)

 

이 혼잣말에는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음을 나타나고, 사랑하는 아들에 대한 막중한 보호자로서 책임감이 느껴져서 애잔함이 묻어난다.

 

아들은 떠났다. 기차는 가고 기차와 함께 아들도 가고 없다.”(P. 300)

 

장애를 가진 아들과의 마지막 여행.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여행. 이들에게 있어 이별 여행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보다는 서로를 더 알아가고 그동안의 추억들을 되새기며 서로가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렇게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독자도 알기에 뒤로 갈수록 더 마음이 애틋했던 것 같다.

책 뒤쪽에 저자의 가족사진이 여러 장 실려져 있다. 앞에 언급하였던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었던 형과 저자의 다정한 모습이 담겨진 사진들이다. 사진을 보면 저자가 얼마나 형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지가 나타난다. 오랜만에 따뜻하고 감동적인 책을 읽었다. 가족애의 소중함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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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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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가타카 ]를 보면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신체 때문에 우주로 나갈 수 없는 주인공이 나온다. 아이를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미래에 자연 임신으로 태어난 주인공은 엘리트만 될 수 있는 우주비행사는 꿈도 꾸지 못한다. 청소부로 살아가던 그는, 그러나, 치밀한 계획 끝에 모두를 속이고 날아간다... 광활한 우주 속으로.

 

인간은 언제부터 우주로 나가고 싶어했을까? 아마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생겨난 그때부터가 아닐까? 칠흑같이 검은 하늘 속 반짝이는 별과 달을 바라보며 초월적인 존재를 떠올렸을 그들. 이제 현대인들은 발전한 기술로 인해 실제로 우주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특히나 우주를 동경하는 무리가 있기 마련. 이 책의 주인공인 평범한 샐러리맨 이진우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왜 우주에 나가고 싶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 초등학교 삼학년 때인가, 어린이 잡지 [ 어깨동무 ]를 보다가 [ 화성탐험 ] 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월면차처럼 생긴 탐사 차량이 불그스름한 계곡을 지나는 것을 멀리서 내려다보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제가 꼭 그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자면서도 몇 번 꿈까지 꿨던 기억이 납니다 ”

 

평범한 이유 같지만 어린이의 마음에 불을 지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 이유 뿐일까? 책을 읽고 보니, 우주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지구의 중력을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에 살아가는 이상 우리는 중력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무게를 지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중력, 학업과 직업에서 성공을 이루어야 한다는 책임감이라는 중력 등등.. 우리는 그런 짐들을 이고 걸어가고 있다.

 

주인공 이진우에게 있어서 개인적인 중력은 뇌종양을 앓았던 여동생을 잃은 묵직한 슬픔이고 자신이 일하고 있는 연구소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중상모략이다. 그는 이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듯 하다. 아무런 무게를 느낄 수 없는 무중력 속의 우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누이에게 더 가까이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 내 누이는 열 살 때 모닝듀를 머리맡에 두고 눈을 감았다. 소아 뇌종양이었다. 수영이는 살아있을 때는 천연덕스러운 장난꾸러기였다. 모닝듀 앞에서 물을 주고 노래하고 도깨비 감투를 쓰고 춤을 추던, 그 아이는 내 눈동자에 슬픔이 스미는 걸 슬퍼할 것이다 ”

 

우주와 우주인을 다루는 소설이라고 하여 SF 모험 소설을 기대했으나 웬걸,,, 이 소설은 우주 비행사가 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이자 그 속에서 치열한 심리전을 펼치는 우주비행사 후보들의 변화 무쌍한 심리를 다룬 드라마이다. 환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처절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우주 비행사가 되기까지 그들이 거쳐야 하는 여러 테스트들과 실험들.... 테스트를 받다가 기절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험난한 여정을 거쳐서 러시아의 가가린 우주센터에 도달하게 된 사람들은 총 4명이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지만 엄청난 노력파에 리더쉽까지 있는 주인공 이진우, 미국 고더드 센터에 있고 웬지 우주에 대해 빠삭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김태우 (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경쟁 상대로 생각한다 ), 문과를 전공했지만 수재와 천재 사이를 오고가는 정우성 그리고 유일한 여성 참가자이지만 체력이나 정신력 면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김유진.

 

책의 막판에 다다르면 타향에서 서로 도와가면서 4명은 정이 든다. 그러나 딱 한 사람의 우주비행사만 뽑는 상황에서 미묘한 긴장감과 경쟁심은 어쩔 수 없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의 미묘한 심리를 잘 포착하고 있다. 정이 들었지만, 그래서 친구고 동생이고 형이지만 일생 일대의 꿈인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서는 밀어낼 수 밖에 없다는 내적 갈등....

 

책은 진우가 우주 비행사가 되는 것을 끝으로 해피엔딩이 되는가 싶었는데.... 아뿔싸.... 그는 또 지역만 달랐지 러시아에서 발생한 세력 다툼에 휘말리고 만다. 시험과 테스트에 앞서 예비 우주 비행사들이 돌려본 자료를 가가린 우주 센터에서 문제 삼은 것. 나라의 기밀 정보를 함부로 이용했다는 죄목이었다. 그러나 진우는 알고 있었다.. 이 다툼은 다름아닌 큰 세력의 줄다리기라는 것....... 어떻게 보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우는 떳떳하게 우주 비행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기로 한다. 일생 일대의 꿈이었지만 옳지 못한 방식으로 갈 바에는 차라리 마음 속으로 그려보던 우주를 그대로 간직하는게 좋을 거라는 결론을 내린 듯 하다. 무중력을 꿈꾸었으나 이제 중력이 끌어당기는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있을 곳은 그곳이 아닌가? 결국 인간의 눈은 하늘을 향해있으나 발은 단단히 땅을 디디고 서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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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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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근원적이고 기본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는 듯한 소설을 만났다. "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 " 이 소설의 주인공은 끊임없이 본인이 어느 시공간에 놓여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유는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 나 " 는 정신줄을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 나 " 라는 정체성이 무너지고 허물어져갈때 우리는 공포를 느낀다. 네가 미쳐가고 있는 걸까? 나는 분명히 봤고 공격을 당했다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나를 비웃듯 세상은 네가 틀렸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곤 덧붙인다. " 넌 정상이 아니야.. 넌 미쳤어 "

독자들을 많은 혼란 속에 빠뜨리는 소설 [ 소포 ] 를 읽었다. 주인공은 엠마라는 이름의 능력있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녀는 세미나를 마치고 투숙한 호텔에서 당시 여성들을 두려움에 빠뜨렸던 연쇄 살인범 " 이발사 " 에게 강간을 당하고 머리칼이 밀린 채 거리에 버려진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엠마는 그 사건 때문에 유산을 하고 만다.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려 바깥에 나갈 수도 없고 제대로 된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된 엠마. 그런데 마침 그녀에게 날아든 한 통의 소포. 알고보니 옆집 남자에게 온 소포였으나 그녀가 받게 되었다. 그 소포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던 엠마는 두려움을 억누른채 옆집에 누가 사는지 정찰을 나가는데...

엠마는 사건 이후로 사회성을 한순간에 잃어버린다. 즉 다시 말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모두 잃어버린다는 것. 그녀의 주위에 맴도는 남성들이 모두 그녀를 공격한 살인범으로 보인다. 강박증에 걸린 사람들이 가스불을 제대로 껐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주위 남자들이 자신을 공격한 그 살인범 " 이발사 " 인지 아닌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일종의 병에 걸린다. 편집증과 망상 때문에 해서는 안될 일들을 저지르는 그녀... 책을 읽다가 심장이 쫄깃해지고 조마조마해서 몇 번이나 책 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팔을 잡고 싶었다. 그러지마 엠마!!!!

독자들도 혼란에 빠진 채 글을 읽어내려가게 된다. 엠마의 상태가 과연 정상일까? 아니면 이 모든게 그녀가 만들어낸 망상의 연속일까? 어릴 때부터 옷장 속의 괴물 아르투어를 목격하고 대화를 해온 엠마. 사건 당시 호텔엔 1904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거기에 머물렀었다고 주장하는 그녀. 거울 속 " 도망가, 빨리 " 라는 문구를 목격했던 엠마. 옆집 남자 대신 받았던 소포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나고 자신에게 쪽지를 건넸던 남편의 동료 형사는 쪽지를 건넨 일이 없다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엠마가 미친 걸까? 누군가 엠마를 스토킹하면서 그녀를 미치게 만드는 걸까? 실제로 많은 영화와 책들은 아내를 정신병자로 몰아서 병원에 가두기 위해서 덫을 놓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럼 남편이 그녀를 공격한 범인인가? 도대체... 실마리를 잡을 수 없는 소설.

사실 신경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엠마는 많은 범죄를 저지른 이후이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자신을 변호해줄 콘라트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있는 엠마. 그 대화 안에서 섬뜩하고 소름끼치는 그녀의 망상과 범죄 등이 드러난다. 우리말 표현 중에 미치고 팔딱 뛴다.. 라는 표현이 있다. 나는 분명히 봤고 들었고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이 부정해버릴 때 사람은 미치는 것이 아닐까? 소설 끝으로 갈때까지도 도저히 엠마의 상태와 범인에 대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소설... 엠마의 정신적인 불안감과 심리적 압박이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살인범에게 공격당했을 때 느꼈던 그 진동소리.... 냉장고나 핸드폰의 진동소리에도 깜짝 깜짝 놀라는 그녀. 엠마는 정신병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걸까? 믿을 수 있는 변호사인 콘라트가 그녀를 둘러싼 음모를 밝혀내고 그녀의 결백을 증명해줄 수 있을까?

한편의 잘 만들어진 전형적인 사이코 스릴러이다. 두려움에 덜덜 떠는 엠마가 곁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파헤치는 소설 [ 소포 ]. 이 책을 읽고 나면 뒤를 돌아볼 것이다.... 누군가 나를 쫓아오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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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 - 독일아동청소년문학상 60주년 기념 작품집
다비드 칼리 외 19인 지음, 알료샤 블라우 그림, 슈테파니 옌트겐스 엮음, 김경연 옮김 / 사계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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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자신의 집에 들어오게 하는 사람들,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여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친구가 될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언어, 카리브제도나 숲의 도서관 같은 낙원, 어쩌면 외계인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

 

 

독일 아동청소년문학상 60주년 기념 작품집인 < 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 > 을 읽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어른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싶은 작품들이 많았어요. 인종차별, 이민자문제, 전체주의 사회의 공포, 사회의 약자에 대한 차별, 등등 성찰을 유도하는 메세지를 던지는 작품들이 있어서 읽고 나서도 여운이 많이 남았습니다.

 

동화의 세계속엔 신비와 마법이 있어요. 비유와 상징을 통해서, 그리고 순수한 어린이의 눈을 통해서, 함부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예민한 주제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펼쳐놓고 있습니다. 어릴 적엔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사실들, 남을 배려하고 포용하고 사랑하는 일들, 이 어른이 되면 왜 그렇게 어려워질까요? 이 책의 제목처럼, 어른들이 볼 수 없는 것을 아이들은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유달리 감각이 발달한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 나의 여섯 번째 감각 > 이라는 이야기엔, 남들에 비해 과도한 감각을 가진 한 소녀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여섯 번째 감각이 유달리 발달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을 볼 수 있어요. 그녀는 사회적 약자 - 부랑자들, 걸인들, 노숙자들 - 에 대해서 유독 편협하고 공격적인 어른의 모습 뒤에 가려진 상처받은 아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불이 켜져있는 벤치에서만 자는 한 남자가 어릴 때부터 어둠을 무서워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에게 전등을 살며시 건넵니다.

 

 

“ 갑자기 난 남자의 엄마가 불러 주던 자장가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남자의 눈이 커다래지더니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주저하며 이쑤시개처럼 가느다란 손을 내밀어 손전등을 받고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 몇 개가 빠져 있었지만, 그 미소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 ( 73쪽 )

 

 

상처받은 어린이를 마음에 지닌 채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그걸 알아봐주는 어린이가 있구요. 갈수록 약자에게 냉정해지는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어요. 그러나 약자에게 손을 내밀고 진정한 관심을 보이는 동심을 보게되어 한편으론 안심했던 이야기였습니다.

 

 

< 태양은 여전히 거기 있다 > 에서는 태양이 가득했던 조국을 두고 온 아를리요와 엄마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햇빛을 사랑하고 수영을 즐겼던 아를리요는 시무룩합니다. 눈이 내리는 추운 나라로 와야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아를리요의 나라에서는 사람이 서로를 총과 칼로 죽이는 무시무시한 일이 발생하므로 갈 수 없어요. 눈을 싫어하는 엄마도 눈을 좋아하는 척하며 이 나라에 머무를 수 밖에 없죠. 그러나 그렇다고 아를리요와 엄마에겐 더 이상 희망이 없을까요? 옆집에 사는 친구인 기젤라와 즐겁게 썰매를 타는 아를리요의 환한 미소 속에서 희망이 반짝거립니다.

 

 

“ 썰매를 언덕으로 끌고 올라가는데, 회색 구름이 갈라졌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를리요는 그 뒤의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 거기 태양이 있었다! 태양은 흐릿하고 작고 아주 멀리 있었다. 아무튼 아주 강렬하게 빛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거기 있었다. 태양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 ( 122쪽 )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징검다리인 것 같습니다. 너무 바빠서 여행을 할 수 없다면 책을 통한 여행도 괜찮은 것 같아요.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등장합니다. 인종을 차별하는 무리를 떠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쿠키들의 이야기가 있고 폭압적인 권력을 휘두른 한 리더가 없어지면서 다시 평화로운 삶을 되찾는 거북이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결국은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좀 더 조화롭게, 좀 더 평화롭게 가꾸고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죠. 동화는 치유의 능력이 있어요. 읽는 동안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 밝아지고 순수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쁜 현실이지만 시간을 조금 내서, 마법과 신비 그리고 치유가 존재하는 동화의 세상으로 놀러오시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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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온 Go On 1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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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각의 가족은 비밀스러운 사회라 할 수 있다. 그 가족들에게만 특별히 존재하는 법칙, 규칙, 한계, 경계의 영역이 존재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도저히 말도 안되는 규칙이 어느 특정한 가족들 사이에서는 능히 통용될 수 있다 “

더글라스 케네디 작가의 < 빅 픽쳐 >를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작가는 겉보기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부부 사이에 곪을 데로 곪아서 곧 터져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함이 도사리고 있음을,   주인공의 심리상태와 그가 저지른 사건을 통해 잘 표현했었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시도 편하게 쉴 수 없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가 매우 빠른 호흡으로 묘사되어서, 매우 박진감 넘치고 스릴감 있는 작품이라고 느꼈었다.

이처럼 더글라스 케네디 작가는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가족 간의 갈등과 반목 그리고 가족들끼리서로  감추고 있는 어두운 비밀 등을 다루는데 특히 일가견이 있는 작가이다. 그는 그렇게 소통불능, 일그러진 가족의 군상을 미국의 역사적 흐름과 정치 상황과 연계시켜서 보여준다. 개인의 운명이 사회의 운명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일까? 주인공의 친구와 가족들의 일신상에 발생하는 사건들은 당시 미국을 휩쓸던 사회적 정치적 사건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 빅 픽쳐 > 가 다소 짧은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이번 책 < 고 온 > 은 다소 호흡이 긴 편이다. 긴박함과 스릴이 넘치는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보다는, 여주인공 앨리스가 학생일 때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일생을 따라가면서 특정 시기마다 그녀와 그녀 가족들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차근차근 풀어내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70~80년대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매우 예민한 부분을 다루는데   그것은 바로 동성애 혐오. 동성애자인 엘리스의 친구 칼리와 하위가 사람들로부터 무지막지한 폭력을 당하여 칼리는 행방불명되고 하위는 코뼈가 내려앉는 사고를 당한다. 인종차별과 더불어 동성애 혐오가 도처에 널려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앨리스의 아버지는 자신의 칠레 광산을 지키기 위해 칠레 군부정권에 영합한다. 좌파 정권을 무너뜨리고 무자비하게 인권탄압을 하는 그의 뒤에 미국 정권이 버티고 있음은 당연지사. 그 무렵 비교적 도덕적인 카터 정부가 물러나고 경제를 강조하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 취임을 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드는 미국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어찌 이렇게도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 자본의 논리가 미국을 좌지우지하기 시작했던 시기가 이때쯤이 아닐지? 자신이 자고 나란 미국을 강하게 비판하는 더글라스 케네디 작가의 입장이 보이는 부분이다. 
 
처음엔 가족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토대로 한 추리 스릴러 소설인줄 알았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이것은 휴먼드라마였다.  사랑하지만 서로 이해할 수 없어 반목하고 갈등하고 배신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신경증인 어머니와 냉정한 아버지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자라난 아이들. 여주인공은 사랑에 매번 실패하고 ( 물론 아일랜드에서는 테러집단의 테러에 의한 폭발물 사고에 의해 연인을 잃기도 했지만 ) 부모님께 사랑받지 못해서 불안해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이 보였다, 큰오빠와 작은 오빠는 각각 아버지에게서 받지 못한 애정 결핍을 다르게 표현한다. 큰오빠는 칠레 군부 정권에 영합한 아버지와 맞서고 아버지를 꼭 닮은 남동생의 금융 비리를 고발하는 방식으로, 작은 오빠는 사회 속에서 성공하고 많은 돈을 벌어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쪽으로. 결국 그의 꿈은 하루 아침에 조각나 버리지만.
     
이 책은 조금만 더 길게 쓰면 한 미국의 중산층 가족을 통해 미국의 역사, 사회, 정치의 변화와 흐름을 들여다보는 대하 소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더글라스 케네디 작가는 조국인 미국을 싫어해서 다른 나라로 떠돌아다닌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미국의 쇠락과 영광 그리고 성공과 좌절을 대변하는 인물들을 훌륭히 잘 그려내는 것을 보면 마음은 여전히 조국에 가 있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앨리스는 끝내 아버지와 제대로 된 화해를 못 한 채 그를 떠나보내야 한다. 그러나 이제 짐스럽던 가족과의 관계를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면에서 그녀는 성공을 거두었다. 너무 미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사랑하지도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비록 완벽한 가족은 아니지만 개인의 선택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시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남긴 채 이 책은 마무리를 짓는다.

“ 미래는 알 수 없어. 무슨 일이 기다리는지 절대 알 수 없어. 계획을 세우고 희망을 품을 수는 있지. 그러나 우연의 음악이 늘 기다리고 있어. 끝없이 이어지는 변수가 삶에 존재해.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한 일도 언제든 슬프고 비극적이고 끔찍한 일로 변할 수 있지.........( 중략 )..... 그러나 아직 살아가고 있고, 아직 여행하고 있는 우리는, 우리 자신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이어갈 이야기를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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