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22 호/2011-08-29

엉뚱한 과학법칙의 거짓과 진실
우리는 과학을 접할 때 무조건 어렵다고 느끼거나 모두 사실일 것이라는 선입관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과학 관련 글을 읽을 때 비판적으로 읽기보다는 설명된 내용을 받아들이기 위해 집중한다. 지금까지 천재적인 과학자들 덕분에 어려운 과학 이론이나 법칙들이 완벽하게 잘 정립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과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과학자들이 지금 보면 엉뚱해 보이는 이론들을 그럴듯하게 내놓고 실패를 거듭하며 탐구한 결과다. 현대과학으로 보면 사실은 아니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엉뚱 과학 중 역학 관련 법칙을 몇 가지 소개한다.

● 무거운 것이 빨리 떨어진다? - 낙하속도 질량비례의 법칙

오래전부터 믿어 온 법칙으로 중력에 의한 낙하속도는 질량에 비례한다는 법칙이다. 누구나 경험한 바와 같이 무거운 물체는 떨어질 때 육중하게 떨어지는 반면 가벼운 물체는 사뿐하게 떨어진다. 고층건물에서 사람이 떨어지면 크게 다치거나 죽지만 어린아이인 경우 상처 하나 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동물로 예를 들자면 고양이는 사뿐히 내려앉으며 먼지나 날파리 같은 것들은 떨어지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낙하속도가 질량에 비례한다는 법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제시한 이론이다. 그리스 최고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대학자가 한 얘기이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후에 갈릴레오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 오래된 법칙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낙하속도는 무게와 상관없이 일정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피사의 사탑에서 수행한 실험을 통해서 무게가 다른 두 물체가 동시에 지면에 도달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 뜨거운 것이 더 무겁다? - 열 질량 이론

온도가 올라가면 대부분의 물체는 부피가 늘어난다. 이를 열팽창이라고 하는데 부피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도 함께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이론이다. 온도가 올라가면 ‘열(caloric)’이라고 하는 입자가 물체 속으로 들어가서 부피와 무게를 증가시킨다. 여기서 열 입자는 유체와 같은 물질로, 탄성을 가지며 일반 물질에 부착돼 있다고 생각했다.

17세기 과학자들은 열 입자의 무게를 측정하기 위해 정밀하고 체계적인 실험을 수행했다. 하나는 뜨겁고 다른 하나는 차가운 상태인 똑같은 물체를 천칭 양쪽에 올려놓고 무게 차이를 측정했다. 온도를 변화시키면서 실험을 반복했지만 온도 차이에 따른 무게의 차이를 확실하게 구별해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당시 과학자들은 성공적인 실험결과를 얻지 못한 이유를 저울의 정밀도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열 입자가 존재하는 한 뜨거운 것이 더 무거워야 한다고 믿었다.

● 열에도 관성이 있다? - 열 관성의 법칙

관성의 법칙(뉴턴의 제1법칙)에 의하면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해서 등속운동을 하려고 한다. 이것은 질량에 관한 관성의 법칙인데 열 흐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흐르지 않을 때는 열이 관성에 의해 물체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만 일단 흐르기 시작하면 마치 봇물이 터지듯 계속 흐르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경험에 의하면 뜨거운 물체에 살짝 손을 대면 처음에는 그리 뜨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열이 물체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을 꾹 누른 채 한참을 접촉하고 있으면 점점 뜨겁게 느껴진다. 열이 한번 흐르기 시작하면 관성에 의해 계속해서 흐르기 때문이다. 식당주인이 건네주는 뜨거운 밥공기를 손에 쥐고 생각해 봄 직한 법칙이다.

● 속도가 빠르면 가벼워진다? - 속도에 의한 무게 저감효과

빠르게 날아다니는 것들은 대개 가벼워 보인다. 하늘을 나는 새나 비행기가 그렇다. 무게가 가벼워야 잘 날 수 있고, 반대로 빨리 날수록 가벼워진다. 이러한 현상은 속도에 의한 무게 저감효과에 의한 것으로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활용하며 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끊어진 교량을 통과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빨리 지나가면 가벼워져서 바닥에 무게를 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앞에서 설명한 낙하속도 질량 비례법칙에 따라 천천히 낙하하므로 짧은 시간에 그대로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속도가 무한대가 되면 무게는 제로가 되고 따라서 낙하속도도 제로가 된다. 걸어갈 때도 마찬가지다. 축지법과 확지법을 쓰는 도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수면 위를 최대한 빨리 걸어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왼쪽 발이 빠지기 전에 오른쪽 발을 내딛고, 오른쪽 발이 빠지기 전에 왼쪽 발을 내딛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인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는 속도가 빨라지면 질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 속도가 빠르면 차가워진다? - 고속의 냉각효과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물체의 운동에너지(kinetic energy)는 질량과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 물체가 가지고 있는 전체 에너지는 보존돼야 하므로 운동에너지가 커지면 다른 에너지가 작아져야 한다. 즉, 속도가 빨라지면 운동에너지가 커지고 그만큼 열에너지가 작아져야 한다는 이론이다.

열에너지가 작아진다는 것은 온도가 내려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속도가 빨라지면 온도가 내려가는 냉각효과가 발생한다. 일상에서 바람이 세게 불면 온도가 낮아져 시원한 것을 느끼고 빠른 물체가 지나가면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또 고속 주행하는 자동차 표면이나 하늘을 나는 비행기 동체 표면의 온도가 상당히 낮아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런 효과를 공학적으로 이용해 냉동기나 에어컨을 만들었다는 보고는 없다.

여기서 밝힌 이론들은 사실이 아니니 행여나 오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우리는 과학 이론을 접할 때 너무 진지하고 엄숙하게 생각하거나 내용을 받아들이기에만 급급한 경향이 있다. 말도 되지 않는 엉뚱한 과학이론이지만 비판적으로 읽으면서 잘 정립된 이론을 받아들일 때 보다 많은 과학적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한화택 국민대학교 기계시스템공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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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23 호/2011-08-29


대구세계육상대회 최대 관전 포인트는 신발?
#1.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승전. 유력한 우승 후보인 우사인 볼트 선수가 출발선 위에 섰다. 모든 관중이 숨을 죽이며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순간, 드디어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출발 신호가 울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 우사인 볼트가 마치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뛰어가는 것처럼 몇 차례 펄쩍 펄쩍 뛰어오르더니 넘어지고 말았다. 고꾸라져 있는 볼트 뒤에 덩그러니 벗겨져 있는 신발을 보니 놀랍게도 육상 신발이 아닌 ‘농구화’였다. 대체 볼트의 신발은 어떻게 된 것일까?

#2.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전 경기. ‘미녀 새’로 불리는 이신바예바 선수가 장대를 움켜 잡고 숨을 고르고 있다. ‘훕’ 하는 짧은 기합과 함께 바람처럼 내달리기 시작한 그녀. 그런데 장대를 찍고 도약하려는 순간, 주르륵 미끄러져 버렸다. 파란 매트 앞에 엎어져 있는 이신바예바. 그런데 이게 웬일? 이신바예바 선수의 신발은 여성들이 즐겨 신는 ‘플랫 슈즈’였다. 이신바예바 선수는 왜 플랫 슈즈를 신고 경기에 나선 걸까?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8월 27일부터 시작됐다. 위의 두 장면은 물론 실제 경기장면이 아니라 꿈속에서나 일어날 일이다. 하지만 우사인 볼트와 이신바예바가 각각 농구화와 플랫 슈즈를 신고 경기를 한다면 정말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만큼 육상 경기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이는 데 신발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계 유수의 스포츠용품 업체들은 첨단 과학을 총동원해 선수들의 경기력을 높여 주는 신발을 개발하고 있다. 이번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선수들의 신기록 수립을 도울 특급 도우미로 단연 ‘신발’을 꼽고 있다.

축구화에 들어가는 스터드나 농구화의 에어쿠션만큼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육상 선수들이 신는 신발은 역학과 재료공학, 생리학 등 다양한 과학 분야의 지식을 총동원해 만드는 종합 과학 작품이다. 육상 경기 종목마다 선수들이 신는 신발에 적용되는 기술과 재료가 모두 다를 정도로 육상에서 신발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딱딱하거나 푹신푹신하거나
육상 선수들이 신는 신발에서 가장 크게 구분되는 것 중 하나는 밑창의 강도다. 농구화를 신은 우사인 볼트 선수가 넘어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밑창에 푹신푹신한 에어쿠션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점프 동작이 많은 농구 경기의 특성 때문에 농구화 밑창은 발목과 무릎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 푹신푹신한 재료로 만들고 에어쿠션도 넣는다. 하지만 지면을 박차고 나가는 힘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육상 단거리 종목에서 이런 신발은 치명적이다.

단거리 선수들은 대부분 가볍고 바닥이 단단한 신발을 신는다. 몸의 무게를 줄이고 지면의 반발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우사인 볼트는 가벼우면서도 탄성을 높이는 탄소섬유와 강화 플레이트로 만든 신발을 신고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9초 58의 100m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그림 1] 가볍고 바닥이 딱딱한 단거리용 신발(좌)과 바닥 뒷부분에 쿠션이 처리된 중장거리용 신발. 사진 제공 : 아식스
반면 신발 바닥이 푹신푹신해야 최고의 경기력을 낼 수 있는 경기도 있다. 마라톤이 그 대표적인 종목이다. 42.195km를 두 시간이 넘도록 쉬지 않고 뛰어야 하는 마라톤 선수들의 신발은 발에 가해지는 충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우레탄 등의 푹신한 재료를 넣어 만든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이봉주 선수가 신었던 신발은 15m 높이에서 날계란을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을 만큼 충격 흡수가 잘 되는 신발로, 개발하는 데 무려 1억이나 들었다고 한다.

스파이크와 무늬에도 이유가 있다
밑창에 송곳 같은 스파이크가 달려 있거나 물결무늬 같은 잔무늬 처리가 돼 있는 육상용 신발도 있다. 뾰족한 스파이크는 바닥과 신발 사이의 마찰력을 강하게 해 줘서 순간적인 힘을 내도록 돕는다. 또한 높이 뛰어오를 때처럼 동작을 바꿀 때 미끄러져서 일어나는 힘의 손실을 막는 역할도 한다.

스파이크도 종목에 따라 달려 있는 부위가 다른데, 100m 경기나 멀리 뛰기처럼 순간 스피드가 중요한 경기용 신발은 발 앞부분에 스파이크가 집중돼 있다. 반면에 높이뛰기나 창던지기 같은 종목의 신발은 달려오던 동작을 뛰어오르기나 멈추기로 일순간에 바꿔야 하기 때문에 온몸의 무게를 지탱해 미끄러지지 않도록 발바닥 전체에 스파이크가 달려 있다.




[그림 2] 앞부분에만 스파이크가 달린 멀리뛰기용 신발(좌)과 전체적으로 스파이크가 달린 높이뛰기용 신발(우). 사진 제공 : 아식스

우리가 보통 신는 운동화처럼 바닥에 무늬가 있는 신발도 있다. 이 무늬에도 중요한 기능이 있는데 마라톤화의 바닥 무늬는 빗물 등이 잘 빠져나가 미끄러지지 않게 한다. 원운동의 힘으로 물체를 최대한 멀리 던지는 것이 중요한 원반, 투포환, 해머던지기용 신발은 원운동에 적합하도록 축이 되는 발의 바닥은 아무 무늬 없이 매끄럽게 만들고, 속도를 내기 위해 구르는 쪽의 발바닥은 요철 모양으로 만든다.

이 밖에도 최고의 기록을 얻기 위한 다양한 과학적 연구가 육상 신발 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 달리는 동안 무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마라토너의 신발 속 온도를 낮추기 위해 적용된 항온 섬유를 비롯해 창던지기 선수의 발목 부상을 막아 주는 부츠 모양의 ‘하이 컷’ 신발까지, 그 범주도 재료 과학과 인체 공학을 넘나든다.

이번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우사인 볼트와 이신바예바가 넘어지고 미끄러지는 불상사는 아마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해프닝을 기대하기보다 각종 경기에서 벌어지는 선수들 간의 불꽃 튀는 경쟁을 숨죽이며 지켜보자. 치열한 경쟁 속에서 빛을 발하는 육상 신발 속 과학을 알고 있다면 대회를 즐기는 재미도 두 배가 될 것이다.

글 : 최영준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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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시즈 7SEEDS 19
타무라 유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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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시즈 18권이 지나치게 늦게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국내 발간이 늦었던 건가보다. 19권이 무려 한 달 만에 나왔으니 말이다. 덕분에 19권은 금방 볼 수 있었지만, 그 덕분에 20권에 대한 기다림은 조금 더 길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 책상 위에 놓인 이 책을 보고 형부가 아직도 나오네!하고 놀라버렸다. 오래 전에 형부가 만화책 딜러할 때 나오던 책이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오랜 시간 애쓰고 계시는 작가님께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달까.  

18권 마무리에서 여름 A팀의 안고와 료는 모두 총을 들고서 위기감을 느꼈다. 안고는 동굴 같은 곳에서 자신의 오랜 트라우마인 시게루를 환각 속에서 보는 바람에 아라시를 향해 총을 쏘았고, 료는 세미마루를 향해 발사했다. 평소 불량스럽게 살아왔지만 총에 손댈 생각 없었다며 반성하는 세미마루의 중얼거림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자신이 쏜 총알은 불발이 되었고 오히려 자신이 총을 맞았음에도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 착한 녀석! 지난 번에 안고가 자신의 실수로 배를 놓친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새와 똑같다. 여름 A팀은 최정예 부대로 이 세계로 넘어왔고, 여름 B팀은 본시 살던 세계에서도 낙오자 그룹에 속하던 녀석들이지만, 이 친구들이 훨씬 긍정적이고 삶에 대한 전망이 건강하다. 그렇다고 여름 A팀을 나무랄 수도 없다. 오로지 지구 멸망 위기에 미래로 보내지기 위한 최정예 부대 7명에 선발대기 위해서 살아온 아이들이 아니었던가. 그런 사정을 모르는 세미마루는 아무 것도 해본 게 없다는 료를 지나치게 촌구석에서 온 줄 알고 있지만 말이다.  

탁구대나 농구 골대를 보고서 놀이감이 생겼다고 좋아하는 세미마루와 달리, 구기종목은 생존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니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료를 비교한다면, 단연코 료 쪽이 훨씬 가엾다. 이제 그런 모습들이 조금씩은 변화될 거라고 기대하지만 말이다. 

 

수직으로 세워진 배 안에서 몇 차례나 죽을 위기를 겪게 된 이들 앞에서 결국 료의 분노가 폭발한다. 팔랑팔랑 소년 세미마루도 기가 팍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 특유의 유쾌함으로 또 다른 진보의 한 발자국을 내딛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마츠리도 마찬가지다. 칠칠치 못한 성격으로 보였는데 밝고 명랑하며 건강하다. 대두를 가지고 나눈 대화가 인상 깊었는데, 농가소녀였던 마츠리의 역할이 앞으로 더 커질 근거를 남겼다. "마츠리는 진화한다"라는 글자가 재밌으면서 믿음직하다.  

안고가 미래 세계에선 컴퓨터나 기계 쓸 일이 없을 것 같아 배우지 못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렇게 모든 게 사라져버린 세계이니 농사의 중요성이 더 클 테니 말이다.  

안고와 아라시를 구하는 과정에서 나츠의 역할이 무척 컸다. 늘 소심해서 큰 소리로 말도 못하던 아이가 이제는 누군가의 생명을 책임지는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시게루에 대한 기억으로 나츠더러 위험한 일은 전혀 못하게 하는 안고에게 자신의 쓸모에 대해 항변할 수 있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츠야말로 제대로 진화한 셈이다.  

문제는 배의 상태다. 이 배가 작동을 멈추었을 무렵, 그러니까 아직 이 배에 사람들이 살고 있을 때에 그들은 일본 열도를 향해 미사일을 쏠 것과 배의 자폭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오랜 시간동안 멈춰있던 그 프로그램이 이들의 등장으로 재가동되었고, 12시간 이상 남아있을 때만 멈출 수 있었던 프로그램은 12시간을 넘기는 바람에 자동 멈춤은 불가능해졌다. 어떤 명령어로 멈추는 게 가능할지, 혹은 배의 상태가 안 좋아서 미사일이 발사가 안 될지 아직 알 수가 없다.  

또 쇠붙이를 먹고 증식하는 박테리아가 아주 빠르게 번지고 있다는 것도 위험 신호다. 하나의 시험을 통과하면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인류라는 종이 아예 멸망할 만큼의 큰 시험이 온 뒤니, 이 정도의 테스트는 군소리도 없이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빠르게 진화하고 적응하고 있다. 이전이라면 옛날 세상에서 보던 물건들과 마주했을 때 그리움이 더했겠지만, 이제는 그런 것 없이도 살 수 있게 된 것에 스스로를 칭찬할 만큼 강해졌다.  

부디 인류 보존의 프로젝트 세븐 시즈가 무사히 뿌리 내리고 싹을 틔워 열매까지 맺기를! 그리하여 이 지구를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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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1-08-29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바사라'를 읽던 학생시절이 생각나네요. 벌써 언제적 이야기인가요.

마노아 2011-08-29 12:17   좋아요 0 | URL
바사라는 꿈의 작품이었어요. 지금도 그때의 왈랑거림이 선명히 떠올라요!!

pjy 2011-08-29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엊그제도 책장의 바사라 완전판을 한번 쓰다듬고 므흣하게 웃었더랬지요^^

마노아 2011-08-29 14:17   좋아요 0 | URL
바사라 완전판이 친구 집에 있는데 친구가 여행 간 동안 그 집에 알바 하러 갔더니 옷걸이가 무너져 내려서 그 위에 있던 바사라도 아래 떨어져 있더라구요. 다시 쌓아놓기는 했지만 도로 집어서 갖고 오고 싶었어요. ㅎㅎㅎ
 
자축, Lost Heritage
바위에 침뱉기

화요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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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8-26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어디든 책이 있다는 사실, 와. 진짜 대단해요. 감동 ㅠㅠ

마노아 2011-08-28 21:08   좋아요 0 | URL
지나치게 과열된 공부 욕심 등이 다 조상님들에게서 내려왔나봐요.
가난한 집에도 꼭 있는 책이라니, 뭉클해요.

BRINY 2011-08-26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부터 박물관 영상자료들이 참 볼만해지더라구요.

마노아 2011-08-28 21:08   좋아요 0 | URL
한 시간짜리는 너무 길어서 볼 엄두가 안 나는데 이 정도면 길이도 적당하고 내용도 충실하고 딱 좋았어요.^^

yamoo 2011-08-26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규장각 반환도서 문제는 예전부터 있어 왔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미테랑 대통령의 한국방문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미테랑 대통령은 당시 우리에게 외규장각 반환 약속의 선물로 의궤 2권을 가져 왔었는데요...하나는 어람용, 하나는 일반용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사서도 동행했었는데, 이걸 한국에 선물로 준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반대했다네요...대통령은 선물의 present라는 용어를 썼는데, 사서는 이를 '보여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당시 프랑스가 이를 선물로 갖고 온 것은 자기부상열차를 프랑스걸로 낙찰해 달라는 댓가였죠. 결국 1권만 주고 어람용은 다시 갖고 돌아갔습니다.

이후 우리는 껀수만 있으면 프랑스에게 돌려주겠다는 거 얼른 돌려달라고. 약속 지키라고 했고, 프랑스는 계속 미적거렸죠. 그러다가 주요한 국책 사업의 대상자에서 프랑스가 계속 우리에게 물을 먹자, 반환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위기의식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반환절차가 이루어졌습니다.

아마도 제국주의 시대에 약탈했던 문화제를 돌려받는 건 약탈당했던 나라 중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막 돌려달라고 해서 받은 케이스. 물론 약탈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었지만...국제 문화재법상 완전 반환은 어렵고 대여의 형식으로 계속 서류를 갱신하는 것이라네요...

어쨌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건...우리의 국력이 그만큼 높아져서 일겁니다. 이거 반환 뉴스를 보면서 국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다시 깨달았다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마노아 2011-08-28 21:14   좋아요 0 | URL
'세계도서관기행'을 보면 그때 그 프랑스의 사서 이야기가 꽤 자세히 나옵니다. 돌려받을 기회가 있을 때 받지 못한 건 외교적으로 참 미숙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문제는 지금 정권까지 줄곧 이어지고 있는 것 같고요.
저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문제를 문화연대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는데 정부가 나서서 오히려 좀 긁어부스럼 만든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대여 형식으로 돌아온 것도 그래서 많이 아쉽고 불편한 선례가 된 것 같아 씁쓸합니다.

yamoo 2011-08-29 19:40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글을 보니 저도 꼭 가보고 싶어서요...실물을 좀 구경이라도 해야 겠어요~ㅎㅎ

마노아 2011-08-29 21:40   좋아요 0 | URL
9월 18일까지 전시회가 진행되니 그 전에 다녀오셔요. 지금은 초등학생도 개학해서 조금 숨 돌릴만 할텐데, 곧 추석 때문에 또 붐빌 테니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합니다.^^

마녀고양이 2011-08-26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여름에 코알라랑 국립중앙박물관 다녀왔거든요.
그런데 조선 관련 전시보고는 주욱 뻗어서, 그 옆에 있는 외규장각 의궤는 포기했어요.
담에 가서 다시 천천히 보려구요... 하루에 보기에는 너무 넓어요, 아님 저희가 평발에 형편없는 체력이던가. ㅋ

마노아 2011-08-28 21:15   좋아요 0 | URL
전시관이 너무 넓지요? 처음 오픈했을 때 다리가 퉁퉁 붓도록 돌아다녔던 기억이 나서 그 다음에 갈 때는 탐이 나도 하나씩만 보고 오자 결심하고 있어요. 마고님도 코알라와 다시 한 번 데이트 날짜를 잡으신 게 잘한 거예요. ^^ㅎㅎㅎ

pjy 2011-08-29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비 억수로 올때 7월에 의궤전시 직전에 박물관에 갔었지요^^; 비가 너무와서 정원은 둘러보지 못했는데 파김치된 기억이 어렴풋이-_- 조만간 또 가봐야겠네요, 저번에 갔을때 의궤그림있는 우산샀어요, 이쁜데 비싸더군요ㅋㅋ

마노아 2011-08-29 12:19   좋아요 0 | URL
궂은 날씨에 다녀오셨군요. 저는 이번에 의궤 그림이 들어간 가방이 탐났는데 품절됐는지 전시용만 있고 매장 안에는 없더라구요. 보조가방으로 쓰기엔 값이 나가서 샀을지 미지수지만 가까이서 제대로 보고 싶었는데 좀 아쉬웠어요.^^
 
삼촌이랑 선생님이랑 결혼하면 얼마나 좋을까? 초승달문고 20
김옥 지음, 백남원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품절


여덟살 기백이 눈엔 12시가 넘어서 일어나 느즈막하게 밥을 먹고 과자를 삼키며 TV를 시청하고, 밤을 꼴딱 세워 게임을 하거나 무협지를 읽는 백수 삼촌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런 삼촌을 본받고 싶어하면 엄마에게 불호령이 떨어진다.
엄마는 법대를 졸업하고서 사법고시에 떨어지고 집에 돌아와 내내 놀고 있는 삼촌이 못마땅해 죽겠다. 기백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기백이네 담임이신 김성환 선생님이 아프셔서 새 선생님이 오셨다.
김성환 샘은 기백이의 엄마와 아빠 모두를 가르치신 선생님이다.
시골 학교니까 가능한 이런 시스템! 뭔가 뭉클하고 감동적이다.
대를 이어 같은 선생님께 배워서 엄마 아빠 어릴 적을 함께 기억해주고 제자의 자녀들을 보면서 옛 추억을 반추할 수 있는 선생님이라니....

새선생님은 통통하고 둥근 얼굴의 아가씨 선생님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새로 오신 것보다 덕분에 받아쓰기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것에 더 열광한다.
아이들답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첫번째 맞이하는 소풍이어서 따라가고 싶었지만, 녹차밭으로 녹차 따러 다니느라 바쁘신 엄마는 기백이를 따라갈 수가 없다.(이곳은 보성이다!)
그 바람에 삼촌이 대신 따라가게 되었다.
군소리 없이 따라갈 삼촌이 아니다.
엄마는 미끼로 만원을 제시하셨다.
백수 삼촌으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대부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집에서는 쓸모없다고 구박받는 삼촌이지만 소풍 장소에서는 할 일이 생겼다. 김소명 선생님이 보물찾기 종이를 숨겨달라고 부탁하신 것이다.
좀처럼 보물을 못 찾는 기백이와 달리 단짝 친구 혜진이는 보물찾기 선수다.
자신이 찾은 보물을 나눠주기까지 하는 마음씨 착한 혜진이는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어서 얼굴이 까맣다. 친구들이 많이 놀리고, 그보다 먼저 혜진이의 주먹이 날아가기도 하지만 기백이와는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이다.
두 아이의 우정이 예쁘고 정겹다.

선생님들이 이웃 학교와 배구 시합을 하게 되었다.
연습 게임 중에 기백이 삼촌이 학교에 불려와 경기 상대가 되어주기도 했다.
집에서는 빈둥빈둥 논다고 늘 구박만 받던 삼촌이 모처럼 날쌘돌이가 되어서 주가를 올렸다.
게다가 경기 당일에 차 시동이 걸리지 않는 교감 선생님 차 대신 기백이네 트럭을 삼촌이 운전해 주게 되었다.
밖으로 나가면 뭔가 쓸모가 많아지는 삼촌이었다.
볼품없는 트럭이라 할 수도 있지만 탁 트인 배경을 뒤로 하며 다 함께 올망졸망 모여 앉아 시합 하러 가는 장면이 따스하다.
시합에서 이기지 못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장면들이다.

봄바람이 가득한 어느 날에는 야외 수업을 가졌다.
저렇게 멋진 풍경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이곳이 시골 학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많지 않고 또 어린 까닭이기도 하지만, 그림이 주는 힘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림을 수채화로 그린 것일까? 우리의 자연이 주는 색을 제대로 옮긴 듯하고, 나무 그림자 하나하나에서도 들풀의 향기가 날 것만 같다.
저 속에 끼어서 나도 '꽃'이라는 글씨를 배우며 바람도 익히고 싶다.

여름 방학이 되어 광주 집으로 돌아가신 선생님이 학교로 놀러오셨다.
선생님과 짜장면도 시켜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기백이는 오후 늦게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삼촌과 마주쳤다. 삼촌이 그냥 운동장에 들어선 것은 아닐터!
제목을 생각한다면 분명 무슨 썸씽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저렇게 아름다운 별밤에 삼촌이 모처럼 분위기를 잡았다.
어릴 적 꿈을 설명하며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람"이 되는 거였다나.
반칠환 시인의 시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에서 인용했다고 작가가 밝혔다.

찾아보니 이런 시다.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 반칠환

보도 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제목의 힘이 더 큰 시다.
선생님과 삼촌의 사이가 급격히 가까워지게 만든 결정적 계기의 꽃 한송이 이야기는 굳이 밝히지 않으련다. 거기에서 기백이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도...
그건 독자의 보너스니까.

사이사이 혜진이에게도, 삼촌에게도 위기가 있었지만, 모두 바람직하게 해결되었다.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웃음이 사랑스럽다.
저 모습에서 내가 위로를 얻고 안도하게 된다.

제목이 너무 길다는 것이 쪼끔! 불만이지만, 이야기가 참 예뻤다.
조카는 내 책장의 이 책을 뽑아서 절반 정도 읽었다고 하던데 뒤가 궁금해서 어떻게 참았나 모르겠다.
시골적 정서에 대한 어떤 그리움과 동경 같은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나중에 다시 한 번 권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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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1-08-28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페이지로 연결되는 해변가에서 아이들의 노는 모습도 좋구요, 바닥에 온통 떨어진 빨간 꽃잎인가..석류인가..를 담으며 보물찾기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좋아요. 동화작가의 글도 좋지만 그림작가 백남원씨의 작품은 정말, 멋지네요. 실지로 떨어지는 벚꽃나무 옆에 환히 웃는 아이들이라니요..와~

ㅎㅎ 역시나 독자의 보너스, 궁금궁금!

마노아 2011-08-28 21:07   좋아요 0 | URL
그림이 참 좋지요? 이번에 남도 답사 여행길에 석류나무를 처음 보았어요. 저는 석류 열매가 그렇게 클 줄 몰랐거든요. 완전 신기했답니다.^^
독자의 보너스는 얘기하는 순간 너무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참았어요. 아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