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87 호/2011-11-28

모든 수염엔 이유가 있다!

“아! 아! 아파요!! 따갑단 말야!! 제발 다른 벌을 내려주심 안 돼요?”

“당연히 안 되지. 이거보다 재밌는 벌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거든!”

아빠는 까끌까끌한 턱으로 태연의 보드라운 볼때기를 마구 비벼대고 있다. 심부름을 거역한 죄로, 태연에게 가해지는 형벌 가운데 가장 고통스럽다는 부비부비형에 처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오히려 벌을 준다기보다 사랑하는 딸과 볼을 맞대고 있는데서 행복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태연의 표정은 상당히 고통스럽다.

“아빠는 가해자라서 몰라. 이게 얼마나 아픈지 알아요? 다음날까지 얼굴이 따끔거린다고요. 도대체 남자 어른들 수염은 왜 생겨난 거야? 급할 때 무기로 쓰라고 하나님이 주셨나? 차라리 깎지 않고 내버려두면 내가 잡아당기면서 놀기라도 하지, 이건 고문이 따로 없다고욧!”

수염이 왜 생기냐고? 그건 남성호르몬 때문이란다. 사춘기 이후에 남성호르몬의 작용으로 수염이 돋게 되지. 제 2차 성징의 하나로 남자의 상징이라고나 할까? 남성호르몬은 머리털 성장을 억제하는 대신 수염과 털의 성장을 촉진시킨단다. 반대로 여성호르몬은 수염 등의 성장을 억제하는 대신 머리털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거지. 요즘엔 대부분 깔끔하게 수염을 깎지만 백 년 전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남자들이 수염을 길렀어. 이집트에선 상류층 남자들에게만 수염을 기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기도 했단다.”

“아, 그러니까요. 그걸 귀찮게 왜 자꾸 깎냐고요. 길러서 땋고 다니면 남자들도 편하고, 또 예쁘고, 아이들은 고문을 당하지 않아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냐고요. 그런데 아빠, 세상 만물 가운데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 없거늘, 어찌하여 수염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면서 생겨난 것일까요?”

“넌 심히 짜증날 때마다 순간적으로 똑똑한 말을 하는 습관이 있더구나. 놀라운 내 딸. 암튼, 원래 모든 털은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단다. 체온을 외부로 빼앗기는 것을 막고, 마찰이나 충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지. 예를 들어 흑인의 곱슬머리는 뜨거운 열대 태양으로부터 두피가 상하는 것을 막아준단다. 동물의 경우 사자의 갈기는 적의 이빨로부터 목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말이나 소의 꼬리털은 해충을 막아 몸을 보호하고….”

“아, 그러니까요. 그런 것들은 다 역할이 있는데 남자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턱수염은 왜 생겨나서 절 괴롭히는 것이냐 이 말씀이에요. 제 얘기는.”

“글쎄다. 아직까지 정확히 수염의 역할이 무엇인지 밝혀진 바는 없지만 동물들의 수염 역할을 알아보면 뭔가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 싶구나. 수염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고양이란다. 고양이 수염은 일종의 안테나 역할을 한단다. 길고 딱딱한 고양이 수염의 끝에 뭔가가 닿으면 고양이는 매우 민첩하게 움직인다고 해. 고양이의 눈은 가까이 있는 물체를 잘 보지 못하기 때문에 윗입술, 눈 위, 뺨, 턱 아랫부분에 나 있는 수염을 가지고 근처에 있는 사물을 인식하는 거지. 특히 먹잇감을 물었을 때, 까딱 잘못하다가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먹잇감에 물릴 수 있기 때문에 이때는 예민한 수염을 적극 사용하곤 하지. 또 쥐 같은 설치류도 수염을 일종의 센서로 이용한단다. 특히 쥐는 수염 한 올 한 올이 마치 곤충의 섬세한 더듬이처럼 사물을 느끼면서 움직이는데, 그 덕분에 어두운 밤에도 재빠르게 잘 활동할 수 있는 거지.”

“헉, 그러면 남자의 수염도 가까이 다가오는 적을 감지하기 위한 안테나였을까요? 어떤 적? 혹시 못생긴 여자를 피하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하고…! 또 다른 경우를 살펴보자면, 바다표범 같은 경우 물속에서 수염만으로 최대 180m 밖에 있는 사물의 움직임까지 밝혀낼 수 있단다. 초음파로 사물을 추적하는 돌고래의 감지 범위가 110m인데, 그것보다 훨씬 먼 곳을 감지할 수 있다는 거지. 수염이 초음파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는 게 대단하지 않니?”

“아~ 그러니까 이번엔 남자의 수염이 180m 밖에 있는 미녀의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감지하려고 생겨났다는 말씀?”

“우리 태연이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삐딱하실까? 아직까지 남성 수염의 역할을 확정할 수는 없지만, 보통 더 남자답고 멋져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단다. 새의 볏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것처럼, 남성의 덥수룩한 수염도 강한 남성의 매력을 여성한테 어필하기 위한 것이란 얘기지.

“음…, 그건 확실히 맞는 얘기인 것 같아요. 전 정말이지 수염이 긴 남자만 보면 사랑스러워 미치겠다니까요~. 그러니까 아빠도 한 번 길러보시는 게 어때요? 차승원보다 백배는 멋질 거 같은데.”

“저, 정말? 그럴까? 내가 워낙 기본이 되는 얼굴이니까 수염을 기르면 더 멋지겠지? 그럼 까끌까끌한 턱으로 태연이 볼때기 비비기 딱 삼천 번 만 더 해보고 길러봐야겠다!”

“꺄악~~!!”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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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하기 보고서 - 은지와 호찬이 1 사계절 저학년문고 53
심윤경 지음, 윤정주 그림 / 사계절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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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조카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데 숙제할 때마다 아주 애를 먹고 있다. 집중력이 많이 떨어져서인지, 일기 한 편을 쓰려면 두 시간은 기본으로 잡아야 한다. 제목 한 줄 쓰고 한 20분 딴짓하고, 다음으로 날씨 쓰고 10분 딴짓하는 식이다. 그래서 숙제를 봐주는 언니는 조카와 으르렁거리기 일쑤! 숙제도 이러니 학과 공부는 더 심한 모양이다. 오늘 있을 시험 준비를 위해 전날 공부를 시켰는데 역시나 합이 맞지 않았다 한다. 아이의 입은 자꾸 삐죽삐죽 나오고, 엄마의 목소리는 높아지다가 공부를 덮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교통지도 때문에 아이보다 일찍 학교로 출발한 언니는, 아이가 혼자서 차려 입고 나온 옷이 유난히 얇아서 속이 상했다. 같이 교통 지도를 나온 다른 엄마도 애가 왜 이렇게 옷을 춥게 입었냐고 뭐라뭐라 하시니 또 속이 상한 모양이다. 그런데 아이가 전날 삐진 것으로 속이 안 풀렸는지 등교길 엄마를 보고도 홱 지나가버렸다고... 언니의 속에서 불이 화르륵 타올랐음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집에 돌아오면 야단을 쳐야겠다고 다짐하는 언니에게 이 책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화해하기 보고서'가 필요해 보여. 

이 책의 주인공 은지는 엄마와 크게 싸우고 울며불며 떼를 쓰다가 내복 바람으로 대문 밖으로 쫓겨났다. 이전에도 쫓겨난 경험이 있었는데, 말없이 친구네 집으로 놀러가버려서 한참 찾았던 기억이 있던 엄마가,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내복 바람으로 아이를 쫓아낸 것이다. 그런데 하필 같은 반 남학생이 집앞을 지나갔고, 내복 차림의 은지는 엄마에게 싹싹 빌며 집안으려 들여달라고 소리를 높였는데, 예의 바른 친구 이민우는 문 열러 나온 엄마에게 깍듯이 인사까지 하는 게 아닌가. 민우 엄마와 은지 엄마가 서로 얘기를 나눌 때에도 뒤돌아서 처참한 제 신세를 비관하고 있던 은지가 집에 들어가서도 울며 불며 떼를 썼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서로 상대가 잘못했다고 목청을 돋우다가 엄마가 내놓은 절충 방안은 '화해하기 보고서'를 쓰는 일이다.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원인을 되짚어가는 무척 합리적인 방법으로 보였다. 하지만, 감정이 상했는데 처음부터 잘 써질 리 만무!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화해하기 보고서는 훈훈하게 마무리가 된다. 이렇게 모두가 짐작할 수 있는 대로만 흘러간다면 이 책이 별점 다섯 개를 거뜬히 받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름의 반전이 있다는 거!! 

게다가 이야기가 시리즈인 모양이다.  

 

등장인물이 잔뜩 소개되었는데 이 중에서는 은지와 민우만 등장해서 의아해 했다. 다시 보니 시리즈여서 그랬던 것이다. 호찬이와 지수, 그리고 규태의 활약까지 모두 나오고 이들의 좌충우돌 이야기가 잘 섞이려면 이 시리즈가 제법 길어질 것 같다.  

심윤경 작가님의 창작동화인데, 이야기의 기승전결과 긴장감을 적절히 배분한 것이 무척 능수능란해 보였다. 은지와 엄마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되었고, 차분하게 글로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좀 더 냉정하게 서로를 돌아볼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록으로 '화해하기 보고서'도 같이 따라왔다. 단지 보고서를 작성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화해'로 가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기에, 화해하고 난 뒤의 기분이 어땠는지를 묻는 것이 특히 좋았다. 더불어 사진이나 그림을 덧붙일 수 있으니 시각적으로도 훌륭한 보고서가 완성될 것이다. 

이런 공책을 훗날 다시 보게 된다면 왜 싸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도, 화해하고 난 뒤의 기뻤던 마음은 또렷이 생각날 것 같다. 부모 사이는 물론 형제 자매, 그리고 친구 사이에도 좋은 '화해'의 도구가 될 것이다. 학교에서는 잘 활용하면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멋진 연결 고리가 되지 않을까. 기획과 내용, 그림까지 삼박자가 예쁘고 재밌게 조화를 이룬 수작이다. 다음 시리즈도 꼭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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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1-27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지와 호찬이 시리즈 세권 모두 읽어보고 싶어요. 이 작가는 소설 뿐 아니라 어린이 책도 잘 쓰네요. 세권을 같이 한번에 출판한 것을 봐도 작가의 역량을 알 수 있지만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썼다고 해서 어떻게 썼을까 궁금했어요.

마노아 2011-11-27 13:40   좋아요 0 | URL
세 권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쓰고서 나눠 낸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소설가답게 호흡이 좀 더 길었을 텐데 아이들 읽기 편하게 구분하지 않았을까 뭐 그런..^^
저도 조만간 남은 두 권도 읽어야겠어요.

2011-11-27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11-27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은지, 은근 매력있어요. 조카들 떼쓰면 혼내주지만, 주인공 강은지는 어쩐지 응원하고 싶다니깐요. ^^

마노아 2011-11-28 20:55   좋아요 0 | URL
은지의 떼씀은 어째 이유도 있고 설득력도 있더라니까요. 물론, 부모 입장이라면 열불이 날 거예요. ㅎㅎㅎ

2011-11-28 0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8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8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8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돼지의 왕 - The King of Pigs
영화
평점 :
현재상영


폭력으로부터 안전해지기 위해 폭력 뒤에 숨는 것은 돼지나 개나 모두 마찬가지. 잔인하고 충격적인 진행과 결말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더 불편하고 무참해진다. 청소년관람불가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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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신청이에요. 

길벗어린이 달력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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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紫霞) 2011-11-22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개인회원은 벌써 끝났어요!

마노아 2011-11-22 22:54   좋아요 0 | URL
제가 신청할 때만 해도 1200장 남아 있었는데 순식간에 끝나버렸네요!

책가방 2011-11-22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대머리가 아닌게 정말 신기해요.
공짜 달력 받으려고 길벗 홈페이지 가입했습니당..ㅋㅋ
어린이 달력이 예쁘잖아요..^^
전 아까아까 오전에 신청했습니다.
마노아님~~~ 고마워요..^^

마노아 2011-11-22 22:55   좋아요 0 | URL
달력이 오고 가야 한 해가 저물고 새로 시작되는 느낌이 나지요.
발빠르게 잘 움직이셨어요.^^

2011-11-22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2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11-11-22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페이퍼에 단 두 줄 적고 추천을 많이 받는 재주는?! ㅎㅎㅎㅎㅎㅎㅎ

마노아 2011-11-22 22:57   좋아요 0 | URL
마치 무임승차한 기분이랄까요.^^ㅎㅎㅎ

전호인 2011-11-22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청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ㅋㅋ

마노아 2011-11-22 22:57   좋아요 0 | URL
이미 품절이라고 하네요.^^

순오기 2011-11-23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개인회원이 아니라 도서관으로 신청할 수 있어요.
룰루랄라~~~~~~했는데, 23일 10시부터 신청할 수 있대요.
난 10시면 도서관봉사자 교육받는 중인데 어쩌라고~~~~~ ㅠㅠ

마노아 2011-11-23 23:25   좋아요 0 | URL
이 시간에도 많이 남아있네요. 무사히 신청하셨죠? ^^
 
머니볼 - Moneybal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수학적 통계로 분석해내도 야구의 드라마와 감동은 멈추지 않는 법! 그리고 츄리닝만 걸쳐도 매력이 좔좔 흐르는 브래드 피트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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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11-20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도 책도 못보고 있네요. 책도 사뒀는데 ㅠㅠ 저 일상이 너무 빡세요 마노아님. ㅠㅠ

마노아 2011-11-21 01:42   좋아요 0 | URL
저두요! 저 원래 리뷰대회 시작하면 읽으려고 쟁여둔 책들도 많은데 한 장도 펴볼 수가 없어요.
일이 아직 안 끝나서 잠들 수도 없어요. 출근을 안 해도 이리 바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