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온 길고양이 카니
문영미 지음, 이광익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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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동물에 대해서 무척 혐오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집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엄마의 영향으로 나도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간혹 예쁜 강아지를 보면 귀엽다!라는 소리는 해도 손을 내밀어 만져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개에게도 그런 모양새니 사람에게 예민하게 구는 고양이는 언감생신일 뿐!  

그렇지만 고양이를 소재로 한 만화나 드라마 영화 등등을 접하고, 실제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을 지켜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고양이와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가 든다. 사실 아직도 고양이를 키우거나 따뜻하게 만져볼 엄두는 전혀 나지 않지만, 그래도 고양이가 요물이나 마물처럼 느껴지던 어린 시절의 공포감은 벗어 버렸다. 그 정도라도 어디인가. 

이 책은 우연한 기회에 고양이와 친구가 된 열살 소녀 한지민의 일기를 빙자한 길고양이 성장기를 담고 있다. 

맨 처음에는 배고픈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 게 시작이었다. 그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고, 그 새끼 중 한 마리가 지민이네 집에 정착하면서 징기스칸에서 따온 '카니'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본능을 여전히 갖고 있는 고양이는 낯선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면서 전 세계에 퍼졌다고 한다. 그야말로 지구를 점령한 고양이이니 징기스칸의 이름이 버겁지 않다. 그렇지만 사막에서도 살고 추운 지방에서도 사는 고양이라니,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고양이를 처음 키워보는 지민이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운 도전이다. 지민이의 도전기에 따라 독자도 고양이에 대한 놀라운 세계를 함께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출산 흔적을 지운다는 얘기에 깜짝 놀랐다. 새끼 고양이가 희끗한 주머니에 싸인 채 태어나는데, 그게 바로 태반이라고 한다.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동물들로부터 공격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태반을 씹어 먹는 어미 고양이. 어째 좀 으스스하긴 하지만 그게 곧 생존본능이고 나름의 지혜로운 전략일 것이다. 

 

고양이 꼬리하면 가제트에 등장하던 악당 '제트'가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칠 때 잠자고 있던 고양이 꼬리가 밟혀서 카악! 소리를 내지르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럴 때의 고양이는 마지막 그림처럼 '나 건드리지 마!'하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어휴, 무서버라!! 

고양이니까 당연히 생선을 가장 좋아할 거라고 여겼는데, 사실 고양이는 모든 고기를 다 좋아하는 육식동물이라고 한다. 아, 이 자그마한 몸체에서 '육식'이란 단어를 들으니 좀 후덜덜하다. 고기를 좋아하는 고양이이지만 우리가 먹는 양념된 참치 캔을 주는 건 금물이라고 한다. 인간이 먹는 대부분의 음식들은 양념이 강해서 고양이에겐 해롭다는 것이다. 오호, 그런 면에서도 확실히 키우기에는 개 쪽이 더 편해 보인다. 물론, 내가 키울 생각은 여전히 없지만....;;;; 

지민이는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차츰차츰 고양이 도사가 되어간다. 거기에는 부지런함은 필수요, 무엇보다 '애정'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고양이를 반기지 않았던 식구들도 차츰 카니에게 중독되어 간다. 아파트 생활이 익숙한 친구들도 집에서 고양이를 키운다는 소리에 너나 할 것 없이 지민이네 집으로 놀러오고 싶어한다. 카니는 동네의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새끼 고양이의 입양은 태어난지 8주 정도 지났을 무렵이 가장 좋은 거구나. 알아두면 유용한 정보! 

고양이를 부르는 여러 나라 말도 재밌다. 

영어로는 캣
일본어로는 네코
중국어로는 마오
몽골에서는 머루
인도네시아에서는 구칭
터키에서는 케디
프랑스의 샤
독일의 캇체
스페인의 가토
러시아의 코트
케냐의 파카 

실로 다양한 이름들이다. 어감으로는 '샤'가 참 우아하게 들린다. 마오는 중국스럽고, 네코도 일본스럽다. 독일의 캇체도 마찬가지. 그래도 우리 입에는 고양이가 정겹다. ^^ 

 

고양이의 오감은 실로 대단하다. 저렇게 예민하게 발달되어 있으니 야생에서 살아남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길고양이들의 평균 수명이 3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인간들의 탓이다. 인간만 편하게 살 수 있는 아파트만 잔뜩 지어놓은채 고양이는 모두 도둑 취급하고 추방하고 구박하기 바쁘니 말이다. 어디서나 자신들만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못된 심보는 좀처럼 고쳐지지가 않는다. 

 

고양이를 자주 만나는 사람들, 접하는 사람들은 저런 표정들을 잘 구분해낼 테지. 생각해 보면 난 아직 눈도 맞춰보질 못했구나. 정면으로 보는 것을 싫어한다고는 하지만....(확실히 비싼 녀석이다. 흥!) 

지민이는 카니를 집에 두고 스키 여행을 다녀왔다가 카니가 집을 나간 줄 알고 크게 놀라기까지 했다. 다행히 카니는 집으로 잘 돌아왔다. 발정기가 되어서 암컷 고양이를 찾으러 다녔던 것일 뿐 집을 나간 것은 아니었다. 정말 집을 나갔다면 독자인 나도 무척 섭섭했을 것이다. 고양이는 음식 없이도 3주 동안 버틸 수 있고, 위기상황에서 개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햐! 역시 영물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동물인데 인간들의 가장 오랜 반려가 되어 있다는 것도 오묘하다. 심지어 한 집에서 잘 사는 개와 고양이도 있으니......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았을 때 단 3년 만에 늘어날 수 있는 고양이 개체 수가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 아, 끔찍하다. 인간과 고양이의 공존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작업이구나....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일이지만 카니는 그림 그리는 재주까지 있었다. 그저 장난친 것에 불과하지만 인간들의 눈에는 예술하는 고양이쯤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마 나라도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 카니의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고, 소박한 규모지만 경매에 붙여서 그 수익금을 길고양이들을 위해 쓰겠다는 지민이의 생각이 참 대견하다.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면 괴롭히지 말고 친절하게 대해달라는 당부는 또 얼마나 당차고 고운가. 나 역시 그곳에 모인 사람들처럼 기꺼이 박수를 치고 싶다.  

고양이에 대한 사전적 정보가 많아서 자칫 지루할 수도 있건만, 그것을 지민이가 카니를 만나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로 덮어 이야기와 온기를 보태었다. 이렇게 친해지다 보면 언제고 나도 고양이 앞발을 만지작거리며 그 촉감에 행복해하는 날도 오겠지? 그랬으면 좋겠다.(아직까진 키워보고 싶은 욕구는 솟구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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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1 0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1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2 0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2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그 2011-12-06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1학년인 조카에겐 너무 어려울까요??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을 사주려고 모으고 있거든요. ^^

마노아 2011-12-07 00:10   좋아요 0 | URL
초등학교 1학년이 읽기에는 글밥이 많은 편이에요. 그림 위주로 본다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해요.
특히 고양이를 좋아한다면요. 이 책 사면 고양이 사료도 주었는데 지금도 주는지 모르겠어요.^^
 
잃어버린 진실 한 조각 그림책 보물창고 14
더글라스 우드 지음, 존 J 무스 그림,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포토리뷰로 올리려고 했는데 계속 오류가 생겨서 사진이 안 올라간다. ㅠ.ㅠ 

 

옛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름다운 땅이 있었다.
그 땅에서는 돌이 가르침을 주고 바람이 말이 되고,
강물이 거울이 되고 나무는 별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되어 주었다. 

이 아득하고도 아름다운 땅에 진실이 떨어졌다.
밤하늘 별로부터 길게 꼬리를 그리며 떨어지던 진실은, 그만 두 조각이 나고 말았다.
한 조각은 불빛을 내뿜으며 밤하늘 어딘가로 사라졌고 다른 한 조각은 아름다운 땅 위로 떨어졌다.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여우, 코요테, 너구리 같은 동물들도 곧 진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진실 조각이 너무 날카로워 가져가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그 빛이 서서히 아름다움을 잃어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조각난 진실은 필요 없어. 완전한 것을 찾을 거야." 

나비와 곰 역시 진실을 발견하고는 그 달콤함에 빠져들었지만 그 끝에 쓴맛만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진실에는 뭔가가 빠져 있어." 그들 역시 진실을 떠났다.  

반쪽짜리 진실의 위험함과 무용성에 대해서 동물은 먼저 알아차렸다. 인간들보다 지혜롭다.
조각난 진실이라도 그 아름다움에 취해서 덤벼들 이라고는 역시 인간들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이 진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조각난 진실 조각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당신은 소중합니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이던가. 그 자체로 '완벽'해 보였다. 진실은 오직 나만을 위해서 빛나는 것 같을 것이다. 남자는 참으로 자랑스럽고 행복해 했다. 

남자는 자신과 더불어 살고, 자신처럼 말을 하고, 자신처럼 생긴 사람들에게 그 놀라운 진실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새로 발견한 진실을 소중히 간직하며 그 힘을 믿기 시작했다. 이제 진실은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바람과 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직 진실의 소리만 들었다.
또 강물에 비치는 아름다운 것들과 별로 올라가는 사다리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반짝이는 진실만을 볼 뿐이었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사람들은 그것을 '위대한 진실'이라고 불렀다.

자신과 더불어 사는, 자신처럼 생긴 사람들에게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흠칫 놀라고 만다. 여기에 어떤 편견과 차별이 들어가 있을까. 그들만의 진실로 남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위대한 진실이 사실은 위대한 '착각'이 아닐까 하고... 그리고 위험한 진실이 아닐까 싶어서...... 

사람들은 진실 때문에 자랑스러움과 강인함을 느꼈고 행복해 했지만, 이러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땅 위에 살고 있는 다른 생명체나 다른 사람들이 점점 쓸모 없게 느껴졌다. 이제 바람의 말은 더 이상 들리지도 않았다.  

역사 속에서 이렇게 위험한 장면들을 얼마나 많이 마주쳤던가. 그 끝의 비극적 귀결도 빤히 보인다.  

이후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조각난 진실을 빼앗고 빼앗기기를 반복했다.
진실의 힘과 아름다움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돌과 나무, 그리고 바람과 강물은 고통스러워했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했다. 

더 가지려 하면 할수록 더 허기져 하고, 더 들이키려 핤무록 더 목마름을 느끼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고통이 선명하게 보인다.  

어느 날, 작은 소녀가 지혜로운 거북을 찾아 나섰다. 소녀는 '상상의 산'을 넘고 '호기심의 강'을 건너고 '발견의 숲'을 헤치며 먼길을 갔다. 동물들은 소녀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마침내 세상 한가운데 있는 큰 언덕에 도착한 소녀. 거북을 만났을 때 소녀의 두 눈에는 경이로움이 가득 찼다. 소녀는 거북에게 지혜를 구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물었던 것이다. 

 

거북은 소녀에게 또 다른 진실 한 조각의 존재를 이야기해 주었다. 세상이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또 다른 진실 한 조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소녀는 잃어버린 조각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다시 물었다. 지혜로운 거북이 답을 준다. 

진실은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한 가지 진실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진실이 수많은 진실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다고...  

존 무스는 '禪'적 가치를 중시하는 글을 많이 써 왔는데, 이 책의 저자인 더글라스 우드 역시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이쪽의 전문가인 존 무스의 그림은 그런 글의 가치를 200% 이상 보여주는 그림으로 호흡을 맞춘다. 색깔의 변화는 계절의 변화와도 같고 세상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리고 소녀가 건너왔던 상상의 산과 호기심의 강과 발견의 숲을 보여주는 것처럼도 보인다. 보이는 것 그 이상을 설명해주는 아름다운 그림들이다. 

 

거북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돌아오는 소녀의 뒤로 인간들을 떠났던 동물들이 뒤따른다. 변화의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인간에게서 희망을 본 까마귀가 그동안 진실을 감춰두었던 곳으로 소녀를 인도한다. 

 

그리고 마침내 제 짝을 찾은 두 조각의 진실! 

'당신은 소중합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소중합니다.' 

아, 이 얼마나 숭고한 말인가. '그들 역시 소중합니다'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와락 눈물이 솟았다. 며칠 동안 황폐했던 마음으로 통 웃어지지가 않았는데, 울면서 미소가 지어졌다. 당신은 소중합니다!라는 문장보다도 더 위로가 되는 문장이었다. 그들 역시 소중합니다... 그 그들 안에 나도 있고 우리가 있다. 우리 모두가 있다.  

 

다시 아름다운 땅에서 나무가 사다리처럼 별을 향해 올라갔고, 강물이 거울처럼 반짝였다. 사람들은 이제 바람이 들려주는 음악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작은 진실들은 밤낮으로 눈과 비처럼 부드럽게 찾아왔고, 사람들은 그 작은 진실들을 마음 속에 고이 간직했다. 그리고 서서히 다른 사람들을 만났고, 자신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반쪽짜리 진실은 아무리 아름다와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그리고 위험하다는 것을 이제 그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작은 진실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책, 아름다운 이야기를 자꾸 찾는 어른들이 많아지는 모습을 꿈꿔본다. 감동 받고, 그래서 가슴이 벅차지는 모습도 그려본다. 상상으로도 아름답다. 그들이 찾아갈 진실 한 조각을 떠올린다. 내가 찾아야 할, 그래서 맞춰야 할 진실도 떠올려본다. 그렇게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우리의 세상을 그려본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추운 밤 옷깃을 여미고 길을 떠나야겠다.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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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전쟁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70
서석영 지음, 이시정 그림 / 시공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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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고생 학생들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모든 문장이 욕으로 끝난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문장 끝 뿐 아니라 사이사이에도 욕은 쉴새 없이 등장한다. 욕이 없으면 말이 되지 않을 것처럼 군다. 애석하게도 이런 현상은 초등학생으로 내려가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집에서 엄마 앞에서는 조신하게 굴어도 학교에 가거나 친구들끼리만 모이면 말씨가 크게 변하는 애들도 무척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아이들이 이렇게 욕을 달게 사는 것일까, 욕이라는 것이 또래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궁금해한 작가님에게 욕과의 전쟁을 시작한 어느 선생님 소식이 들려왔다. 현장의 모습을 제대로 관찰해서인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욕전쟁은 그야말로 생생 그 자체다. 실제 모습을 그대로 재현시켜 준 것도 놀랍지만, 이야기가 기승전결을 타고서 점점 극적으로 치닫고 올라가더니 아주 바람직한 방향에서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갈수록 태산인 내용들이 등장해서 어찌 수습할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아이는 '관찰'을 많이 하는 것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엉뚱이'로 통하는 지선이다. 같은 반에 짝꿍까지 되어버린 최시구는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힘 센 녀석인데 늘 욕을 달고 살아서 지선이가 인상을 찡그리는 아이이기도 하다. 여학생들 중에는 '흑장미파'의 두목으로 통하는 박채린이 최시구와 거의 맞먹는다. 모든 대화를 '존나'로 마무리 짓는 존나 종결자라고나 할까. 지선이는 어느 쪽에도 끼지 않으면서 친구들의 유치함을 비웃기도 하고 궁금한 부분이 생기면 열심히 관찰하는 그런 아이다.   



학생들의 욕 수준이 장난 아님을 알게 된 담임 선생님은 욕과의 전쟁을 선포하셨고,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욕 수호 전쟁에 돌입했다. 초반에는 투명의자 벌을 받았지만, 학생 하나가 벌 받다가 쓰러진 이후로는 자신이 사용한 욕을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벌을 주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이것을 아예 '놀이'로 인식하고 즐기는 것이 아닌가! 안 되겠다 싶었던 선생님은 이번엔 그날 사용한 욕을 100번씩 써오는 벌로 바꾸셨다.  

가산점이랄까. 이자라고 할까. 욕을 자꾸 쓰다 보면 벌도 가중되어서 아이들은 팔이 떨어질 것 같은 고통을 호소한다. 평소에는 그다지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창의성을 내보여서 가면 씌운 욕으로 근질근질한 입에 해방구를 달아주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내부 고발자에 의해 선생님께 들키기 일쑤! 선생님이 단속법을 늘리면 늘릴수록 아이들의 잔머리도 고수가 되어간다. 심지어 '바보' 소리를 늘 달고 다니는 학급의 정겨운 친구 준기를 위해서는 '바보'는 욕 목록에서 빼달라며 단식투쟁을 하기도 한다. 이 아이들이 어디서 이런 생각을 해냈는지, 게다가 이렇게 의리를 보이는지 신기하고도 기특할 지경이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투쟁은 모두 나름의 이유와 합리성을 갖고 있었다. 각자의 의견을 전개하는 방식은 때로 비민주적이기도 하고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의견을 조율해 가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비민주성의 민주성을 보여준다. 더불어 성장하는 모습이랄까.  

학교 대회인 교내 피구 시합을 소재로 삼은 것도 탁월했다. 이웃 반과의 대항전에선 욕 대항전도 벌어졌지만, 어떡해서든 욕을 줄일려고 용을 쓰는 아이들은, 상대방의 도발을 무시하고 오히려 악을 선으로 갚아 두 배의 복수를 해내는 지혜로운 모습도 보여준다. 아이 수준이라고 보기엔 지나칠 만큼 나쁜 잘못도 저지르지만,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아차린 다음에는 부끄러워할 줄도 아는 게 대견했다. 그것 제대로 못하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던가.   

아이들과 선생님이 서로에게 배워가며 성장하는 모습이 흐뭇했다. 그것을 교훈적으로 알려주는 게 아니라 재미난 이야기 속에 풀어낸 작가의 재주가 빼어나다. 피구시합의 결승전과, 학년이 올라 초등학교 최고 학년이 된 아이들의 모습까지 지켜보니 내가 키워낸 아이를 보는 것처럼 마음 속이 감동으로 차오른다. 이들이 함께 보여준 노력의 모습들을 어른들의 세계로 옮겨가면 어찌 될까 상상해 본다. 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방해도 많을 것 같지만,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비슷한 성과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름 핵심 얘기들을 피하면서 얘기하자니 설명이 어렵다. 책을 본 사람이라면 무엇에 찡한 감동을 느꼈는지, 어떤 결과를 더 보고 싶은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입버릇은 환경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아이의 언어습관과 부모의 언어습관을 비교해보는 노력도 필요하다. 아이가 곧 자신의 거울이 되어줄 것이다. 요즘 크게 유행하는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은 무척 적절한 시점에서 적확한 표현으로 욕을 쓰기에 시청자로서 속이 시원해지는 효과까지 줄 때가 있다. 모든 욕을 싸잡아서 써서는 안 되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욕이 욕을 부르고 무분별한 사용으로 고운 말을 해치는 힘도 있다는 것을 놓쳐서도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혼란스러움을 잘 정리해주는 신호등이 되어줄 것 같다.  유익하고 무엇보다 재밌어서 적극 추천한다. 

 

익살스럽고 역동적인 그림이 무척 재밌다. 당찬 아이들의 개구진 모습과 잘 어우러진다. 이런 작품에 정적인 느낌의 그림이 들어갔다면 절대로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작가님들을 알게 된 것도 이 책이 주는 선물 중 하나다. 무척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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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17일에 강화 냄비가 하루 특가였다. 

작년에 웬디양님 구매자 평을 보고서는 다시 특가 세일하면 사야지! 했는데 특가는 다시 잡히지 않았고 1년이 흘렀다. 새벽에 출근 전에 특가 세일하는 것을 보고는 출근해서 주문해야지~ 해놓고는 바쁜 와중에 잊어버렸다. 다시 또 일년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11번가에서 주문해서 지난 주말에 받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다음주 월요일에 알라딘에서 다시 특가 세일이 잡혀 있다. 너와 나의 연은 알라딘에서 이뤄질 수가 없는 모양이구나! 

 
2. 문학동네 장바구니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책이 도착했다. 

무거운 책이 싫었던 나는 모두 반양장으로 골랐는데 이렇게 다섯권이다.  

그런데 이벤트에 응모하고나서 무심코 책장을 올려보니 떡하니 '더블린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닌가. 호곡! 있는 책을 갖고 싶다고 러브러브 페이퍼를 썼구나!  

아무튼, 이벤트에 당선이 되었고, 저 책들을 받게 된 나는 중복된 더블린 사람들을 두고 고민했다. 출판사가 달랐다면 비교하는 재미라도 있을 테지만 정확히 같은 책이니까 중고샵에 되팔기로 결심했다. 마침 계약 기간 만료가 다가왔고, 그 말은 내가 책을 열심히 팔아야 할 때가 왔다는 의미! 그래서 문학동네로부터 발송 문자를 받고나서 책을 팔겠다고 신청해 놓았는데, 도착한 책 상자에는 '더블린 사람들'만 없었다. 아뿔싸! 다섯 권 다 주는 게 아니라 랜덤인가? 스스로의 삽질을 다시 자학하며 반성모드로 돌입했는데, 문득 착오가 아닐까 싶어 고객센터에 문의를 넣었다. 역시나, 문학동네에서 포장하면서 한 권이 누락된 것이다. 후후후훗, 삽질을 만회... 했나?  

3. 머니볼을 본 게 19일이었으니까, 이것도 일주일이 지났구나. 대한극장에서 마지막 마일리지를 털어먹고 바이바이 할 생각에 조조를 예매했다. 10시 반이었는데, 전날 피곤에 지쳐 12시도 전에 곯아 떨어졌던 나는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영화 시작하고 약 2분 뒤에 입장했다. 다행히 좌석이 중앙 통로 바로 뒷줄이라 다른 사람 시야를 가리거나 불편하게 이동하지 않고 바로 착석이 가능했는데 내 자리에 어떤 할아버지가 앉아 계시고, 할아버지 왼쪽에는 할머니가, 그리고 오른쪽 빈 자리에는 할머니의 핸드백이 놓여 있었다. 내 자리는 할아버지가 앉은 정 가운데 좌석이지만 그 옆에 앉는다고 뭐 크게 문제가 되겠는가. 그래서 가방만 치워달라고 하니까 싫다는 것이다. 헐! 그래서 정중히 말씀드렸다. 할아버지 앉아 계신 자리가 제 자리라고. 그랬더니 다른 자리 많으니 다른 데 가서 앉으라신다. 그러니까 지금 이 옆자리에 앉겠다는 거잖아요? 가방만 치워주세요. 하니, 가방을 슬그머니 치워주신다. 배낭도 아니고 '핸드백'이라 아주 작았는데 그것 치우는 것조차 왜 싫다고 하신 것일까? 남의 자리에 앉아서는..;;;;  

4. 원래 이달 9일에 알라딘에 중고팔기를 신청해 두었는데 19일이 되도록 책 가지러 오질 않았다. 그래서 취소하고 다시 신청했더니 그 다음날 바로 가져갔다. 그 과정에서 새로 '팔기' 등록을 하니 며칠 사이에 십원 단위로 떨어지던 금액은 모두 절삭하고 금액이 깎여버렸다. 오, 뭔가 얍삽해...;;;;;

5. 이건 10월 15일에 찍은 사진이니 더더더 오래 되었다. 

 

여름 시계는 줄만 만들어 보았는데 몸체까지 만든 건 처음이었고, 그 덕분에 어설퍼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끊어졌다. 결국 다시 만들었는데 사진이 흔들려서 다시 만든 사진은 패쓰! 

6. 일요일에 나가수를 시청하게 되면 내 안에서 창작본능이 마구 끓어올라, 자꾸 비즈든 뭐든 만지게 된다. 이번에... 라고 하지만 역시 2주 정도 지났다. 새롭게 도전한 것은 머리핀이다. 

 

앞머리가 많이 자라서 눈을 찌르게 된지 어언 2주. 머리를 다시 볶을 것인가, 계속 기를 것인가 고민 중이었다. 앞가르마였는데 옆가르마 타서 삔 하나 찔러주고, 꽁지 머리를 묶어두는 게 요즘의 나의 스타일. 그때 옆머리 찔러주는 용도로 제작했다. 쉽게 해보겠다고 글루건으로 붙인 녀석들은 모조리 다 뜯어져서 낚싯줄로 다시 엮어줘야 했다. 쉽게 가려다가 꼭 두 번씩 가게 되곤 한다. 

7. 오늘 수영 선생님이 나더러 뭐 안 좋은 일 있냐고 하신다. 네? 하니 살 빠진 것 같다고... 음, 반가운 얘기여야 하지만 전혀 빠지지 않았는데 빠져보인다고 하니 이건 얼굴 축났다는 의미 같고, 이젠 그게 반갑지 않다. 근데 이 이야기를 한 바퀴 돌고 올 때마다 하신다. 어쩌라고...;;;; 남자 선생님인데 나보다 체격도 왜소하고 키도 작으시다(물론, 머리도 작다...;;;). 나더러 뼈대가 커서 부럽다고 자꾸 그러시네. 아씨, 내가 뼈대 있는 집안 자손인 게 맞긴 하지만, 나로서는 반가운 얘기가 아닌 것을...;;;;  

8. 멀리 다니던 학교 일이 끝나고 잠시 쉴 뻔 했는데 다른 번외의 일을 잠시 맡게 되었다. 야곱의 덕이 크다. 해보지 않았던 종류의 일인지라 무척 헤매고 있는 중이지만 배우면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그러다보니 자꾸 일이 밀려서 서재 마실도 잘 못 다니고 있다. 글도 거의 패쓰패쓰, 댓글도 패쓰패쓰.  

9. 학교를 정리하고, 다시 다른 학교 일을 구하는 과정에서 몹시 힘든 일이 있었다. 차마 설명하기는 곤란하고, 말하자니 더 서글픈 그런 이야기. 스트레스가 좀 많았고, 수영 선생님이 얼굴 축나 보인다고 느꼈다면 그건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다. 통 웃어지지가 않는 날들이다.  

10. 내일은 김용민 피디 시사부흥회에 당첨되어서 다녀올 예정이다. 야곱과 함께. 이곳에 가면 좀 웃을 일이 있지 않을까? 물론, 웃으면서 뼈아플 일이 많을 것 같지만. 

최근에 책이 많이 나왔는데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도 아직 읽지를 못해서 이 책들은 주문도 못 넣었다. 시사부흥회 다녀와서 차차 읽어볼 생각이다.  

근데 동대문 구민회관, 찾아가는 게 너무 복잡하다. 나와 야곱은 모두 길치....;;;;  

 

 

4-1. 주말 동안에 시세이도 폼 클린징에 대한 예찬을 접하고서 나도 주문을 하나 넣었더랬다. 그런데 오늘 아침 추가로 주문할 책이 생겼는데 아직 상품준비 중이어서 취소하고 재주문을 넣었다.  알고 봤더니 하루 특가 화장품이었던지 그새 가격이 올랐다. 하아, 폼클린징은 취소하고 다른 책들을 구겨 넣었다. 삽질을 고이 접어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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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11-30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쁜 와중이라 삽질도 약했군요.^^
나도 정신없이 바쁘고 스트레스 팍팍 받는 중이라 알라딘 서재마실도 글도 뜸해요.
나는 뭔가 맞추기 위해 거짓을 만들거나 꼼수를 부리는게 체질적으로 싫어요.ㅠㅠ

마노아 2011-11-30 09:53   좋아요 0 | URL
차마 쓸 수 없는 몇몇 삽질은 패쓰했어요. 그래도 많이 양호해졌어요.^^;;;
순오기님도 체질에 맞지 않는 일 마무리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세요.
행정 일은 정직하게 해도 참 피곤하게 만들어요...;;;;

무스탕 2011-11-29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94, 총 504504 방문

저 강화 냄비는 울 엄니가 몇 년전에 구입해서 잘 사용하고 있어요. 집에서 군고구마 구워먹기 완전 짱이에요! 엄니는 저 냄비 안에 작은 조약돌들을 넣어 돌 위에 고구마를 넣고 구우시더라구요. 바로 철판에 놓는것보다 나은가봐요.
머리핀 이쁘요!! 시계도 이쁘요!! 저런 시계 차고 나가면 다 보여달라 하겠어요. 근데 시계를 두른 손목이 요만해 보여요. 저 굵기의 손목으론 수영하기 힘들어요. 째끔만 늘리세요 ^^

BRINY 2011-11-29 12:18   좋아요 0 | URL
오호~ 저도 조약돌을 어디서 구해봐야겠어요! 철판이 잘 타고 검댕이 잘 안벗겨지거든요.

마노아 2011-11-30 09:54   좋아요 0 | URL
앗, 언제 50만이 넘었지? 넘기 며칠 전에 곧 되겠구나 했는데 훌쩍 넘었네요. ㅎㅎㅎ
앙, 강화냄비 사고서 아직 개시도 못했어요.
엄니가 어제 고구마를 사오셨으니 조만간 먹지 싶어요.
조약돌! 좋은 팁이에요. 저도 꼭 활용해 보겠습니다.
제가 뼈대 있는 가문 자손인지라 뼈다귀들이 굵어요. 특히 어깨가...;;;;
사진은 용케 좀 가느다랗게 보이네요. ㅋㅋㅋ

무스탕 2011-11-30 18:36   좋아요 0 | URL
자잘하고 동글동글한 애들보다 손바닥정도 두께에 넙적한 애들을 골라보세요. 빈 틈을 채워주는 애들만 자잘한 애들이면 되어요. 우리 냄비엔 지금 손바닥 만한 애들이 넷, 미니쉘만한 애들이 넷이에요 :)

마노아 2011-12-01 01:24   좋아요 0 | URL
집에 와보니 이미 고구마가 완성되어 있었어요. 호박 고구마라서 그런지 아주 자그마한 것이 밤톨 만했어요. 조약돌 얘기를 아직 못했는데 내일 해야겠어요. 크기 조언도 고마워요. 우리 집에 그런 돌들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찾아봐야겠어요. 손바닥만한 것과 미니쉘! 아주 적절한 표현이에요.^^

전호인 2011-11-29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엣지넘치는 시계입니다.^^
수영강사님이 혹시 마노아님에게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ㅋㅋ
요즘 통 운동을 못하고 있다보니 중부지방이 참으로 비옥하기 이를데 없습니다.ㅠㅠ

마노아 2011-11-30 09:55   좋아요 0 | URL
하하핫, 어제 차고 나와서 칭찬 받았어요. 유후~
수영강사샘이 저보다 많이 어리십니다. 막내 동생뻘이에요. ㅋㅋㅋ
그분도 제가 많이 누나라는 것 아십니다.;;;;;
운동을 해도 중부지방은 늘 비옥해요. 거름이 필요가 없어요....ㅜ.ㅜ

희망찬샘 2011-12-01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마지막에서 웃음이 나와 버렸어용~

마노아 2011-12-02 10:45   좋아요 0 | URL
주먹 대신 웃음을 부르는 삽질이라 다행이에요.^^ㅎㅎㅎ
 

   FUSION 과학

제 1488 호/2011-11-28

삼각팬티도 특허였다고?! 별난 발명이야기
“이거 또 오디션 열풍이구만! 매회 시청률이 10%를 훌쩍 넘는다던데? 우리는 뭐 색다른 거 없나?”

KHBS 제작팀의 분위기가 또 심상치 않다. 경쟁사들이 금요일 저녁에 방송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입을 다물고 눈치만 보고 있다. 이때 천진난만하기로 소문난 허특 PD가 자신만만하게 기획안을 내놓는다. 제목은 <슈퍼특허, 위대한 탄생>이다.

“‘슈퍼특허, 위대한 탄생’? 이거 뭐야? 이젠 경쟁사 프로그램 이름까지 따라해? 허 PD 자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여기저기서 이럴 줄 알았다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오늘 허 PD 때문에 기획회의로 밤을 샐지도 모르겠다.

“예, 국장님! 발명이나 특허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려고요. 프로그램 제목은 뭐 바꾸셔도 될 것 같고요. (긁적긁적) 여하튼 발명이야기 재미있습니다!”
“뭐가 재밌다는 거야?!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게 재밌지, 사람들이 고리타분한 발명을 알고나 싶어 하겠어?”
“아, 저는…. 그러니까 우리가 편하게 쓰고 있는 것도 특허 받은 제품이 많고, 또 특허로 돈을 많이 번 사람들 이야기도 꽤 재미있어요.”

허 PD의 해맑은 표정에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던 김 국장도 두 손 들고 말았다. 우선 들어나 보자. 다른 뾰족한 대안도 없는 게 사실이니까 말이다.

일반적으로 발명이나 특허라고 하면 전화기나 전구의 발명처럼 굉장히 거창하고 유명한 이야기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먹는 아이스크림콘이나 도넛, 또 일회용 밴드, 삼각팬티, 옷핀(안전핀)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사용하는 것도 발명품입니다.
“그래? 아이스크림콘이나 도넛도 발명품이었어?”
“네. 원뿔형태의 아이스크림콘은 1903년 12월 13일에 이탈리아 사람인 마르치오니(Marchiony)가 특허권을 획득한 것인데요. 이 사람은 뉴욕으로 건너온 이민자였고, 수레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았답니다. 처음에는 그릇에 담거나 종이에 둘둘 말아서 아이스크림을 줬는데 뒷처리가 힘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와플조각 같은 빵 과자로 아이스크림 아래를 감싸는 콘을 생각해 냈죠. 마르치오니는 아이스크림콘에 대해서 곧바로 전매특허를 내고 아이스크림 세계에 새 역사를 열었던 거예요. 어때요? 다들 잘 모르셨죠?”

이이스크림콘처럼 간단한 것에 특허가 있을 줄은 잘 몰랐다. 하지만 특별한 사례 하나만 가지고 방송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김 국장은 다른 것은 없냐고 허 PD를 보챘다.

“물론 있죠! 삼각팬티와 일회용 밴드, 옷핀이 발명된 이야기들은 좀 감동적이에요. 우선 삼각팬티는 1951년 일본에서 특허출원 됐어요. 발명자는 놀랍게도 손자를 돌보던 사쿠라이 여사였어요.
“할머니가 삼각팬티를 발명을 했다고? 왜?”
“사쿠라이 여사는 늘 손자를 돌보고 있었는데요. 무더운 여름날 손자가 무릎까지 내려오는 속옷을 입고 있는 걸 본 거예요. 당시에는 속옷이 반바지에 가까웠기 때문에 겉옷 입기에도 불편하고 더운 여름에는 특히 더 불편했다고 해요. 손자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던 사쿠라이 여사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죠!”
“그게 뭔데?”
“속옷은 단지 가리기만 하면 된다.”

풉!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이런 반응에 굴할 허 PD가 아니었다.

사쿠라이 여사는 데드론이라는 천으로 만든 헌 자루를 싹둑 잘라 다리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만 내고 꿰매서 삼각팬티를 만들었어요. 가볍고 편리한 훌륭한 속옷이 탄생한 거죠. 사쿠라이 여사는 이 팬티의 특허를 받았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삼각팬티로 갈아입었어요. 손자에 대한 사랑이 대히트를 친 거예요!”
“정말 대박특허가 됐겠구만. 아이디어는 작은 거였지만 말이야.”

일회용 밴드는 아내에 대한 사랑 덕분에 탄생한 거였어요.
“아내에 대한 사랑?”
“네, 1920년대 미국에 얼 딕슨(Earle Dickson)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요. 딕슨의 아내는 유난히 요리에 서툴러서 손을 많이 다쳤다고 합니다. 딕슨이 그때마다 붕대와 반창고를 가져와서 한바탕 소동을 피웠죠. 하지만 자신이 없을 때 아내가 다칠까봐 걱정이 됐어요. 그래서 혼자서도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반창고를 만들기로 했답니다. 아내의 손에 붕대와 반창고를 붙였던 경험을 살려서 치료용 테이프를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그 안에 거즈를 작게 접어 가운데 부분에다 붙였습니다. 그런데 치료용 테이프가 너무 끈적끈적해서 오래 보관하기도 힘들고 깨끗이 떨어지지도 않았죠.

“그래서 어떻게 했는가?”
오랫동안 수소문한 끝에 나일론과 비슷한 종류의 직물인 크리놀린을 찾아냈습니다. 표면이 매끄러워 테이프가 깨끗이 떨어지고, 빳빳해서 보관하기도 좋았어요. 결국 이 아이디어는 당시 딕슨이 다니던 회사인 존슨앤존슨에서 상품화하게 됐어요. ‘밴드에이드(Band-Aid)’라는 이름으로요.
“허허. 그거 참 대단한 아내 사랑이구만.”

“에이, 그 정도는 대단한 게 아니에요. 특허권으로 벌 돈보다 애인을 선택한 ‘로맨스 발명’도 있는 걸요!”
“특허권과 애인을 바꾸다니? 대체 어떤 발명품인가?”
“바로 옷핀이에요. 1840년 12월 영국에 월터 헌트(Walter Hunt)라는 청년이 옷핀을 발명한 사람인데요. 그는 헤스타라는 아가씨와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해요. 헌트는 헤스타의 아버지에게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찾아갔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가난한 자에게 딸을 줄 수 없다고 했답니다. 헌트는 물러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두뇌가 있다’고 했어요. 그러자 헤스타의 아버지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제안? 발명품 만들라는 건가?”
“아뇨. 10일 안에 1,000 달러를 벌어 오라는 거였어요. 헌트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눈앞이 막막했죠. 밤새 궁리해도 특별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가진 손재주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살을 찌르지 않는 안전한 핀’을 만들기로 결심했죠.”
“갑자기 웬 안전한 핀인가?”
“당시 미국인들은 부활절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바늘 핀으로 리본을 꽂았거든요. 그런데 이런 바늘 핀은 리본을 단단하게 고정시키지도 못하고, 찔릴 위험도 있었어요. 헌트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철사와 펜치를 가지고 씨름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9일째 되던 날 헌트는 안전핀을 만들게 됐습니다. 그는 헤스타의 손을 잡고 특허출원을 마치고 리본가게로 안전핀을 팔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1,000 달러를 받고 특허를 팔았죠.”
“저런…. 안전핀 특허를 그냥 가지고 있었으면 훨씬 부자가 됐을텐데!”
“헌트에겐 특허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중요했던 거죠. 결국 두 사람은 약속대로 결혼했고 안전핀을 사들인 리본가게 주인도 백만장자가 됐다고 해요.”

허 PD가 말을 마치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 박수가 나왔다. 발명과 특허 뒤에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허 PD, 재밌게 잘 들었네. 결국 ‘필요’가 아니라 ‘사랑’이 발명의 어머니였군. 이런 이야기를 잘 소개할 수 있는 포맷은 없을까? 그거 고민해서 가져와. 그러면 설날 특집으로 한번 만들어보자고. 자네도 새로운 프로그램 하나 발명해야 할 거 아닌가? 허허허.”
“와! 정말요? 국장님, 감사합니다!!!!”

눈치 없기로 유명한 허 PD가 도움이 되는 날도 다 있다. 김 국장은 회의를 끝내고 돌아가면서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이 발명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위해 애쓰는 그대는 모두 발명가가 아닌가 말이다. 기특한 허특 PD 덕분에 사람들이 ‘자기만의 발명’을 꿈꾸게 되면 좋겠다. 퇴근하는 발걸음이 왠지 가볍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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