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SION 과학

제 1498 호/2011-12-12

수많은 희생 끝에 탄생한 ‘미터법’

1999년 9월, 화성 궤도에 진입하던 미국의 ‘화성 기후 궤도선(Mars Climate Orbiter)’이 대기와 마찰을 일으켜 파괴됐다. 이 탐사선을 제작했던 미국 기업 록히드 마틴은 야드파운드법을 기준으로 제작했는데, 탐사선을 실제로 운용한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계기에 표시된 숫자들을 미터법 단위로 이해해 조종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추진력 수치를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탐사선은 화성에서 예정보다 100km 아래인 60km 지점의 낮은 궤도에 진입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지대에서는 과속으로 인한 사고가 빈번히 발생한다. 미국의 속도 단위는 마일(mil)이고 캐나다의 속도 단위는 킬로미터(km)로 다른데, 국경을 넘어서면서 단위 변화를 무심코 과속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는 단위들. 그런데 국가별로 다르게 사용되는 단위들로 인해 자칫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단위의 통일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중 길이를 재는 단위, 미터(meter)는 현재 미국, 미얀마, 라이베리아를 제외한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미터법이 제정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미터법은 1799년 12월 10일, 프랑스에서 도입됐다. ‘미터’라는 용어의 어원은 ‘잰다’는 의미의 그리스어인 메트론(metron) 혹은 라틴어 메트룸(metrum)에서 유래됐다. 18세기 말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는 시민 혁명이 한창이었다. 혁명을 이끌어낸 계몽사상가들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척도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실제로 그 당시 프랑스에는 약 800개의 이름으로 25만개나 되는 도량단위가 쓰이고 있었다. 이를 통일하려는 시도는 ‘혁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측정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었고, 여러 측정 장치들이 개발되고 끊임없이 개선되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다양한 양들에 대해 정밀한 측정을 시도했다. 과학이 정성적 단계에서 정량적 단계로 발돋움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당시 유럽 과학의 중심지였던 파리 과학아카데미에서 주도했다. 과학아카데미 회원들은 과학사의 잠재력을 국가를 위해 유익하게 쓸 수 있는 예로써 도량형의 개혁을 주장했다.

과학아카데미의 회원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했던 새로운 도량형 체계는 임의적이지 않고 표준 원기(原器)를 잃어버리더라도 쉽게 재생이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단순해서 사용하기 편리하며 합리성, 보편성을 갖춰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10진법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프랑스과학아카데미는 최종적으로 ‘북극에서 적도까지 지구 자오선(子午線) 길이(90도)의 1,000만분의 1을 새로운 단위 미터로 한다’고 공표했다. 이 결정에 따라 프랑스과학아카데미가 선발한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장바티스트조제프 들랑브르(Jean-Baptiste-Joseph Delambre, 1749∼1822)와 피에르프랑수아앙드레 메솅(Pierre-Francois-Andre Mechain, 1744∼1804)은 측량원정을 떠났다. 이들은 정확한 자오선 길이의 측정을 위해 1792년 6월 각각 파리의 북쪽과 남쪽으로 떠난다. 정치적 대변혁기에 이뤄진 그들의 측량원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그림 북극에서 적도까지 정확한 자오선의 길이를 측정하기 위해 원정을 떠났던 천문학자들. 좌측이 들랑브르, 우측이 메솅.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들랑브르는 싣고 가던 관측기구들이 고성능 무기로 오인돼 민병대로부터 몰수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넉 달간 겨우 64km 밖에 전진하지 못할 정도의 악천후를 만나기도 했다. 남쪽 원정대장 메솅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가 넘어야 했던 피레네 산맥은 사람을 공격하는 늑대는 물론 총기를 불법으로 거래하는 밀수업자, 산적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또 바르셀로나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늑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또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전쟁이 터지면서 남쪽 원정대는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원정대원들이 파리로 돌아오고 나서도 정확한 수치를 가져오는 데는 7년이나 걸렸다. 그 이유는 메솅이 숨진 뒤 들랑브르가 그의 측량노트를 검토하면서 밝혀졌다. 메솅은 자신의 데이터를 더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자오선 측량작업을 조작했던 것이다. 그는 결벽에 가까울 만큼 정확성을 중요시했다. 그런데 측량노트를 작성하면서 오류를 발견한 것이다. 귀국 후 프랑스 최고 천문가로 대접받은 메솅이지만, 자신의 실수로 인해 자살을 시도할 만큼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1m가 탄생했다. 프랑스는 1799년 6월 미터법을 국가 표준으로 할 것을 법령으로 공포했다. 하지만 미터법은 보급되기까지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프랑스에서는 1840년 강제로 법령을 집행하기에 이른다. 이후 1870년 8월에는 파리에서 국제 미터법 위원회가 발족됐고 1875년 5월 20개국 참가국 중 17개국이 미터 협약에 서명했다.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쳤지만 이제 미터법은 미국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사용하는 ‘만물의 척도’로 자리 잡았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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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N 과학

제 1497 호/2011-12-12

가습기 관리, 어렵지 않아요~

엄마 아빠와 태연이 가사분담을 주제로 가족회의 중이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일을 덜 맡을까, 치열한 두뇌싸움과 눈치작전이 벌어지고 있다.

“자, 이제 각자의 주장을 들어봤으니까 최종적으로 내가 결정을 내리겠어요. 태연 엄마는 주방에 관한 모든 것, 즉 요리와 설거지를 일임해 주세요. 나는 퇴근 후에도 할 수 있는 빨래와 청소를 맡을 테니까. 아무래도 이런 건 힘센 남자가 더 잘 하는 분야인 데다가, 당신의 가냘픈 허리가 힘든 청소 땜에 다치는 건 정말 싫고… 기타 등등….”

아빠는 또 다시 엄마에 대한 무한 애정공세에 들어간다. 언제나처럼 짜증이 난 태연은 버럭 큰소리를 낸다.

“아, 그러니까 전 뭘 하냐고욧!”

“넌 몽몽이 화장실 청소와 목욕, 그리고 온 집안의 가습 관리를 맡는 게 어떻겠니?”

“어머머, 정말요? 넵, 열심히 하겠습니닷!!”

뭔가 엄청 귀찮은 일을 떠맡을 줄 알았던 태연, 이게 웬 떡이냐~ 싶다. 여태 하던 몽몽이 관리에 겨우 가습 하나만 추가되다니…!!

“자, 그럼 저는 가습을 하러 가겠습니다. 가습기통에 물만 떨어지지 않게 하면 되는 거죠?”

“음, 그것 말고 주의할 게 몇 가지 더 있단다. 지난 봄 임산부들 사이에 집단 발생해서 5명이나 사망했던 폐 손상 질환이 가습기 살균제(세정제) 때문이라는 건 너도 알고 있지? 살균제에 들어있던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포스페이트’를 비롯한 4가지 화학약품은 샴푸나 조리기기 세척제, 곰팡이 제거제 같은 용도로 쓰이는 독한 성분이야. 당연히 사용한 뒤 물로 깨끗이 씻어내고 몸에 남아있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는 물질들이지. 그런데 이걸 가습기에 넣어 수증기와 함께 공기 중에 퍼지게 하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에 직접 닿게 되고, 당연히 폐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건 저도 알아요. 그런데 왜 임산부들만 더 피해를 본 거예요?”

“임산부들은 외출을 잘 못하잖아. 그래서 방안에 있는 시간이 길었고, 뱃속의 아기를 위해 특별히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려고 가습기 살균제를 꼭꼭 챙겨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단다. 게다가 임신 8개월 이상이 되면 숨이 가빠지면서 평소보다 호흡량이 30% 이상 늘어나기 때문에 독성물질에 똑같이 노출돼도 흡입량은 더 많을 수밖에 없었던 거지.

“그렇구나. 정말 안타깝네요. 그런데 그 사건이랑 제가 가습기 물 채워 넣으러 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아, 제가 세척제 쓸까봐 그러세요? 에이, 제가 아무리 무식해도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세척제 대신 온몸으로 철저한 세척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그래. 첫째, 가습기에 넣는 물은 매일 갈아주되 끓였다가 식힌 물이 가장 좋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정수기 물을 넣어야 해. 아빠가 명하노니, 넌 꼭 끓였다 식힌 물을 쓰도록 하여라. 둘째, 가습기 통은 일주일에 한번 씩 청소해줘야 한단다. 물통의 경우 1/4정도 물을 남긴 후 마구 흔들어서 세척한 다음 밤새 바짝 말려야 하고, 본채 안쪽은 부드러운 청소 브러시를 이용해서 구석구석까지 아주 꼼꼼하게 닦아줘야 해.

셋째, 가습기를 무조건 계속 틀어놓으면 오히려 실내 습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세균이나 집먼지진드기, 곰팡이가 생길 수 있으니까 잠들기 한 시간 전부터 켜고 아침에 일어나면 꺼야 해. 가습기를 끈 다음엔 꼭 환기를 해주는 것도 잊지 말도록! 아,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티트리 오일도 한 두 방울 꼭 가습기 통에 떨어뜨려 주겠니? 상큼한 아로마 향도 맡을 수 있는데다, 원래 티트리 오일이 강력한 살균효과가 있거든. 그래서 여드름이나 상처, 세균질환 같은데 발라도 아주 좋아. 가습기통에 넣으면 당연히 물도 소독되니까 꼭 잊지 말아라. 암튼, 부탁해~~!”

“머, 머가 이렇게 복잡해요! 초등학생한테 이렇게 과중한 일을 시키시다니, 이건 아동학대라고요!”

“정 그렇게 힘들다면, 가습기를 대체할 방법들을 활용해 보는 것도 좋겠구나. 방에다 빨래 널기, 숯에다 수시로 물 뿌리기, 수족관에 물고기 키우기, 키가 크고 잎이 넓은 관엽식물 키우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단다. 한 가기만 해가지곤 가습기를 대체하기 힘들 것 같고, 빨래 널기랑 물고기 키우기 정도만 하면 어떻겠니? 어항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면 충분하지만 빨래는 매일 해야 해.”

“빨래는 원래 아빠 담당이잖아요!!”

“어허? 그랬나? 네가 가습을 담당한 덕분에 아빠가 해야 할 빨래까지 도와주게 됐구나. 이런 착한 것 같으니. 이참에 찌인~하게 효도 한 번 한다는 셈 치고 열심히 빨래를 널어보렴~!”

“아빠~!!!”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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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딸 - 맛있고 심플한 삶, 코즈모폴리탄의 이야기
나카가와 히데코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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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력이 무척 흥미롭다. 일본 태생의 귀화 한국인이며 아버지는 프랑스 요리 셰프이고 어머니는 플로리스트이다. 아버지가 서독의 일본대사관 전속 요리장으로 파견되면서 일곱 살에 서독으로 이주해서 3년을 지냈다가 일본으로 귀국했다. 대학을 독일어학과로 진학하면서 교환 유학생으로 '동독'을 택했다. 서독은 이미 경험했던 바, 타고난 호기심과 도전 정신으로 사회주의 국가로 갔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로는 홀연히 스페인으로 떠났다가 1994년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이 가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요리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심지어 한국궁중음식 연구원에서 3년간 공부한 최초의 일본인 수강생이라니, 놀라운 스펙트럼이다. 이렇게 다양한 이력이 성인이 되기 전부터 생에 펼쳐져 있었으니, 이런 사람이 평범하게 사는 것도 어쩐지 사회에 못할 노릇이랄까. 남들이 좀처럼 접하지 못할 다양한 경험들을 해보았으니, 그것을 어디에든 풀어놓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그러니 저자가 요리 교실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 경험들을 이렇게 책으로 담아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본인이 생각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주변에서 충분히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요리사의 길을 꿈꾸지 않았지만 어릴적부터 자연스럽게 요리하는 아버지를 관찰하며 또 요리에 흥미를 가지는 시간을 보내왔다. 손때 묻은 레시피 노트는 이제 집안의 가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어린 두 아들이 외할아버지와 엄마의 뒤를 이어 요리사의 길을 걸을 지는 알 수 없지만,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에게도 훌륭한 보물이 될 것이다. 수기로 쓴 노트이기에 더 값어치 있어 보인다.

 

아버지는 이미 요리의 장인이고 달인이지만 어릴 적부터 아이에게 그 값어치를 강조하지 않으셨다. 대신 몸소 프로 요리사의 원칙을 지키면서 나태해지지 않는 것으로 아이에게 훌륭한 유산을 물려주셨다. 수프를 내기 전에는 접시를 데워두어야 한다는 지나가는 말들은 강조하지 않아도 아이의 머리속에 잘 각인되고는 한다. 이모는 커피나 차를 내오실 때도 찻잔을 미리 더운 물로 한 번 헹군 뒤 물을 따르셨는데 그 생각이 떠오른다. 한 번도 실천해보지는 않은 것 같지만...;;;

 

독일에서 귀국한 뒤에 저자는 본격적으로 '셰프의 딸'로서 활동한다. 좀 더 설명하자면 '셰프의 조수' 노릇이랄까. 아버지의 피가 흐른 탓인지, 그렇게 정해진 운명인지, 신기하게도 커다란 도마를 앞에 두고 정신을 집중해서 사과 껍질을 벗기고 은행잎 모양으로 썰 때면 학교에서 있었던 싫은 일, 괴로운 일을 모두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전략은 확실히 성공했다. 조수 역할을 통해 요리를 만드는 즐거움,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기쁨, 요리와 마주하는 신성한 가치까지도 모두 알게 하신 것이다. 참으로 지혜로우신 분이다.

 

 

플로리스트 엄마는 아주 꼼꼼한 분이셨고 오래된 물건도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해 두시는 분이었다. 저자가 도시락 생각이 나서 우편으로 부탁하자 바로 바다를 건너온 미니 도시락. 어른 숟가락으로 크게 두 번 뜨면 사라질 밥 두덩이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다. 오래되어 옛스럽기는 하지만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고전미가 있다.

 

식탁에서는 애들을 절대 혼내면 안 된다는 일본 어머니의 한 마디도 인상 깊다. 식사만은 언제나 즐겁게 하도록 노력하라는 이 한 마디는, 밥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우리의 전통 가르침과도 통한다. 물론, 절대로 쉽지 않음을 알지만!

 

저자의 어머니는 365일 내내 손수 만든 간식이 없는 날이 없게 하셨다고 한다. 세상에! 정성과 노력도 대단하지만, 그런 게 가능한 삶이란 경제적으로 얼마나 풍족한 것일까? 최소한 삼시 세끼 걱정은 절대 없는 삶이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저자의 화려한 이력을 생각할 때 남다를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이쯤에서는 좀 질투가 나려고 한다.

 

저자는 '엄마의 맛'을 언급했는데,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맛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엄마가 곧잘 해주셨던 감자 샌드위치가 떠오른다. 감자를 소금 간 약간 해서 으깬 다음 갖은 야채와 함께 마요네즈로 버무린다. 그리고 식빵에 발라서 먹으면 무척 맛있었다. 그러고 보니 먹어본지 한참이다. 지난 여름에 한 번 해주셨는데 다이어트 중이라 먹지 못했다.ㅜ.ㅜ 크리스마스를 기념 삼아 좀 해달라고 졸라보련다. 6^^

 

대학 시절 기숙사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가득했는데, 그들이 서로 자국의 요리를 만들어 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 기억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무척 흥미다 돋고 부러운 추억들이다. 고등학교 시절 가사 선생님이 졸업생이 일본에서 자국 요리를 대접할 기회가 생겼는데 할 줄 아는 음식이 없어서 김밥을 말았다는 소식에 무척 안타까웠다는 얘기를 하신 게 떠오른다. 지금이야 워낙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으니, 급하면 레시피를 긁어와서 어떻게든 시도는 가능할 것 같다. 그래도 이런 날을 대비해서 나만의 필살 요리가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요리를 해보았지 시리즈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가....;;;;;

 

저자가 동독 유학 시절에 식재료 배급에 깜짝 놀란 사건도 이채로웠다. 일본에서 보내온 카레가루로 모처럼 포식할 기회가 왔는데 한 동양인 유학생이 카레가루를 나눠줄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누군가 했더니 북한에서 왔다고 한다. KAL기 폭파 사건이 있은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지라 위화감에 거절하고서 마음이 불편했다고... 동족이라 그런지 괜히 더 짠하다. 그이도 피해자일 텐데 말이다. 먹는 것 가지고... 흑흑...ㅜ.ㅜ

 

집으로 돌아갈 무렵 짐을 쌀 때 기숙사 친구가 독일의 통일에 대해서 얘기하는 부분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언젠가 동서독이 통일 되면-이라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하는데,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통일이 당연한 거라고 여기지도 않고, 아예 아웃 오브 안중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참으로 아프고 씁쓸한 일이다.

 

바르셀로나 시장의 모습이란다. 확실히 남부 유럽이란 생각이 든다. 침 넘어가는 과일들이다.

 

남편과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도 음식이 먼저 떠오르고 그 다음에 에피소드가 떠오른다고 하는 셰프의 딸. 내게도 그런 음식이 있던가..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니 떠오르는 게 있다. 오래 전 남자친구가 우리가 맞은 첫번째 크리스마스 때 배고픈데 내내 걷기만 해서 붕어빵이라도 사오라고 했더니 정말 붕어빵을 사와서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먼저 떠오르네. 그 녀석이 며칠 전 통화에서 와이프가 임신 6주라고 했다. 하하하... 역시 씁쓸하다. 끙!

 

 

저자가 운영하는 요리 교실의 간판이다. 구르메 레브쿠헨. 저자의 작은 아들이 흰 도자기 접시에 그린 그림이다. '구르메'는 프랑스어로 '미식가, 식도락가'라는 의미다. '레브쿠헨'은 독일어로, 진저브레드 같은 독일의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과자를 뜻한다고... 아아, 진저브레드도 처음 듣는 것을...;;;

 

아무튼, 저자의 코즈모폴리탄스러운 이력이 들어나는 간판 되시겠다. 귀엽고 정감이 가는데,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면서 보아서는 정체를 알기 어려울 듯하다. 그 비밀스러움이 또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책 속에서 소개된 음식들은 파트가 끝나면 레시피가 뒤쪽으로 실렸다. 여러 요리들이 있었지만 감히 시도해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부엌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내 수준은 아직 '작품'을 모방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책을 꽤 오랜 시간 걸려서 읽었다. 바쁜 일이 많이 겹치기도 했지만, 한 번에 주르륵 읽기보다는 조금씩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기도 했다. 맛있는 메뉴가 많이 등장했지만 눈으로만 맛볼 수가 있어서 때로는 고문이기도 했다. 가장 인상에 남는 음식은 '죽'이다. 아픈 사람에게는 최고의 영양식, 더불어 만드는 사람에게는 꽤 정성을 요구하는 따뜻한 음식 말이다.

 

요리하는 사람은 정직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요리가 맛에 있어 정직한 것처럼 말이다. 여러 나라의 색깔이 들어 있지만 그것들이 서로 등돌리지 않고 하나로 섞여서 제 멋을 내고 있다. 저자의 삶이, 그리고 요리의 맛이 그래 보인다. 과하게 힘주지 않고 오버하지도 않는 담담한 말투는, 비록 번역이라는 중간 과정을 한 차례 거쳤지만 진솔함을 담아내기에 부족하지 않다. 겨울이 깊어가는 시간에 보다 어울리는 책이기도 하다.  

덧글) 오타가 있다.

165쪽 4줄 스페인이 EU 회원국이 되어 값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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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2-12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겠네요. 일본인들 특유의 장인정신도 엿보이고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니 자식이 요리에 대해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겠어요.
마노아님 한참 제빵에 몰두하던 이야기, 저도 이 리뷰 읽다보니 생각나요. 그런데 저 위의 레시피를 보니 전문가라서 그런지 그리 간단해보이지 않아요. 벌써 집에 없는 재료가 등장하면 저는 움찔 ^^ 저의 초간단 요구르트 케이크 레시피가 초라해보이네요 ㅋㅋ
마노아님의 붕어빵 에피소드도 재미있고요. "붕어빵이라도 사와라"고 말하면 남자들은 정말 충실하게 붕어빵을 사오지요. 정말 붕어빵이 먹고 싶어서 "붕어빵 사와라"해도 정말 붕어빵만 사면 될까? 수십번 생각해보는 게 여자들이고요.
음식 하나에 웃음 나기도 하고 눈물 나기도 하고... 요리사는 정말 책 쓸 소재가 많을 것 같지요?^^

마노아 2011-12-12 16:13   좋아요 0 | URL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이 늘 부러워요. 굉장한 자산으로 보여요. 그런 것들이 일본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오늘 모처럼 자극 받아서 팬케이크를 구웠는데 엄마가 한 입 드시더니 포크를 내려놓으시네요. 이번에도 실패예요..;;;;
저 레시피는 그나마 좀 짧은 레시피였어요. 저는 읽으면서도 @.@;;;; 상태가 되었답니다.ㅎㅎㅎ
남자와 여자의 언어는 참 다르고 그래서 재밌어요. 분란도 많지만요.
요리하는 사람, 참 로맨틱하게 보여요.^^

2011-12-12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2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1-12-12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일까 궁금했는데 정말 흥미로운 책이네요.^^
결혼하고 살면서 가끔 엄마의 맛이 생각나요. 어떤 음식이든 만들어 놓고 왜 나는 엄마가 만들었던 그 맛이 아닐까를 생각하거든요. 남편은 제가 만든 것을 먹으며 시어머니의 음식맛과 다른 걸 느끼는 것 같기도 하구요. 각기 엄마의 맛에 길들여져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엄마도 늘 손수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셨는데 전 귀찮아서 잘 안해주거든요.

마노아 2011-12-13 10:52   좋아요 0 | URL
엄마가 최고의 요리사는 아니지만 엄마의 맛이 주는 그 향수와 추억, 그리고 정성을 따라잡을 수 있는 음식이 없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시어머니가 음식을 잘하면 며느리는 꽤 스트레스를 받을 거예요.. (>_<)

꿈꾸는섬 2011-12-13 20:21   좋아요 0 | URL
저희 시어머니는 조미료를 많이 사용하셔요. 건강에 좋지 않다고 드시지말라고 해도 맛이 안난다고 꼭 넣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처음엔 남편이 제 음식 맛에서 느끼지 못하는 조미료 맛을 이제는 시댁가서 느끼죠. 이제는 제 음식맛에 길들여져서 시어머니 음식보다 제가 해주는 게 더 좋다고 아부를 하는데 그게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구요. 저희 시어머니께선 제가 있으면 절대 음식 안 하세요.ㅜㅜ 저도 누군가 해주는 음식이 먹고 싶은데 말이죠. 그래서 더 친정이 좋은가봐요.

마노아 2011-12-13 23:41   좋아요 0 | URL
울 엄니도 사실 조미료를 좀 많이 쓰셔요. 언니는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아서 무미하지만 엄마는 많이 쓰니까 아무래도 맛은 더 있죠. 형부가 그래서 엄청 좋아했다가 이제는 조미료의 힘을 알아차렸어요. 그래도 기본 손맛이 있어서 조미료를 빼도 엄마 맛이 더 맛있을 거예요.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의 차이는 정말 하늘과 땅.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해주는 시어머니들이 필요해요. 꿈섬님은 며느리 생기면 꼭 그렇게 해주세요.^^
 

완벽한 망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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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12-11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위는 대통령으로도 장로로도 개념 상실한 오만이군요.
어디 감히 `완벽`이란 말을~~~~~~~ㅠㅠ

마노아 2011-12-11 14:27   좋아요 0 | URL
저 입에서 `도덕`이란 단어가 나온다는 것이 뒷목 잡고 쓰러질 일이에요...;;;;;

귀를기울이면 2011-12-11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 발언에 대한 저의 코멘트
1번. 그러니까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는 소리가 나오져.
2번. 망언 목록을 보다 보면 2번 자신은 망언이 아닌듯.
3번. 그럼 삽을 던질까요? 아니다. 고소미같은걸루다가..
4번. `다들 죽어삐라` 이런 뜻 아닐까요? 그래도 고맙네요. 천국간다 해주니.
5번. 발언보다 발언장소가 더 의미심장. 니들 모여서 이러는줄 몰랐다!

마노아 2011-12-11 14:28   좋아요 0 | URL
시의적절한 코멘트입니다. 완벽 망언 해석 종결자 되십니다;;;;

전호인 2011-12-11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설마요, 가카께서 저러케 고급시런 말씀을 조딩이로 지껄엿쓸리가 업써용.오타가 분명합니다. 가카께서 만약 씨부렁 거려따면 분명 "도적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해쓸 겁니다. 가카의 품위엔 이말이 딱입니다. 딱. '도덕'이란 단어는 가카를 모독하는 말임돠.ㅋㅋ가카는 절때루 그럴 뿐이 아니죵ㅎㅎ

마노아 2011-12-12 00:20   좋아요 0 | URL
`도둑적으로`의 오타 같습니다.ㅎㅎㅎㅎ 발음이 꼬여서 도덕이라고 잘못 나왔을 거예요..;;;;;

전호인 2011-12-12 09:32   좋아요 0 | URL
흑흑, 마노아님, 가카를 그렇게 과소평가하시면 어버0연합등 이상한 단체에서 화낸다니까요ㅠㅠ가카께서는 좀도둑이 아니잖아요. 사돈의 팔촌까지 다 해먹으려는 도적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도적적"이 맞지 않을까요?ㅋㅋ 도적은 도둑과 같은 말이지만 떼거지가 들어있어요.ㅎㅎ

마노아 2011-12-12 16:16   좋아요 0 | URL
도둑과 도적은 사전적 의미로 동의어에요. `무리`라는 의미를 쓰려면 `도적떼`라고 쓰지 않나요?
뭐 아무튼, 그분들이 도적 무리인 것은 확실히 맞습니다. 좀도둑 정도의 의미를 가카의 신성함을 훼손할 수 없어요...;;;;;

LAYLA 2011-12-11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러워서 욕이 나오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노아 2011-12-12 00:20   좋아요 0 | URL
우리의 입까지 세탁하게 만드는 그분이십니다...;;;;;;

비연 2011-12-1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ㅍㅎㅎㅎㅎㅎㅎㅎ

마노아 2011-12-12 16:16   좋아요 0 | URL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개인주의 2011-12-12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강연으로 수입짭짤하다는 양반이.. 춘향이 따먹는 얘기라니.ㅡ,.ㅡ
천국..그러니까 죽는다는 얘기겠지요..
누가 돌을 던지랴.. 드러운 패거리 인증..ㅋㅋ
억압대신 그저 가두고 고발하고..징계만 내릴뿐..
..1위는 ..1위답게..헉 소리나는.. - -

마노아 2011-12-12 16:17   좋아요 0 | URL
청취자는 최고경영자라는 사실에 다사ㅣ금 헉이에요.
1위는, 언제나 부동의 1위죠. 누구도 그 아성을 넘볼 수 없어요..;;;;;

조선인 2011-12-12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하에게 축하드리기 위해 성지순례 댓글 어때요?
http://media.daum.net/politics/president/view.html?cateid=100012&newsid=20110930105930442&p=Edaily

마노아 2011-12-12 16:17   좋아요 0 | URL
성지순례! 다녀오겠습니다. 충성!

소나무집 2011-12-12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방팔방 완벽한 인간들로 포위된 가카십니다.ㅋㅋ

마노아 2011-12-13 10:50   좋아요 0 | URL
끼리끼리 모인다고 온 몸으로 알려주고 계십니다.ㅎㅎㅎ

비로그인 2011-12-12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요 -ㅅ-!!
얼마 전에 가카 달력도 나왔다던데, 그거 살까말까 고민 중이에요. 가격이 쬐끔 비싸서..
(그러고 보니 마노아님 서재 오랜만이네요 ㅎㅎ)

마노아 2011-12-13 10:51   좋아요 0 | URL
저도 달력 때문에 지금 고민이에요. 살려고 했는데 또 막상 그분 얼굴 달린 달력을 돈을 주고 사려니 영..;;;;;;
수다쟁이님 글 재밌게 보고 있어용~ ^^

꿈꾸는섬 2011-12-12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위가 압도적이네요.ㅎㅎㅎㅎ

마노아 2011-12-13 10:51   좋아요 0 | URL
타의 추종을 불허하시는 그분이에요.ㅎㅎㅎ
 

1. 11월에 머리에 폭탄을 한 방 맞았고, 그 덕분에 그 주와 그 다음주였던 지난 주에 무척 우울했더랬다. 지난 주 화요일에 야곱과 함께 시사부흥대성회를 가던 날도 꼭 그런 기분이었는데, 그날 야곱이 내게 천사가 되어주었다. 어떤 위로로도 내 기분이 풀릴 것 같지 않았는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야곱은 글만 잘 쓰는 게 아니라 말도 잘하는구나!

 

2. 아무튼, 그렇게 해서 화요일 밤에 떡볶기와 맥주 만찬을 즐기며 해피모드가 될 수 있었다. 수요일은 추적추적 비가 내렸고 여의도에 같이 가자고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혼자라도 가자!하는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역시나 좀 외로운 길. 사람이 너무 많아서 화면도 안 보이지만 소리도 잘 안 들렸다. 몇 번을 자리를 옮기고 옮겨서 마침내는 바닥에 돗자리 깔고 앉을 수 있었다. 앉으면 덜 추울까 싶었지만 역시나 콧물은 고드름이 되는 수준!

 

많은 게스트가 있었는데 정동영 의원이 나왔을 때 야유가 터져나오고, 김선동 의원이 나왔을 때 환성이 터져나와서 좀 의외였다. 정동영 의원이 안티가 많은 것은 알지만 그래도 요즘은 좀 진성성이 보이지 않던가? 다른 건 몰라도 이 때는 김선동 의원이 좀 속상했다. 체루탄이 제대로 터지기라도 해서 뭔가 성과가 있었다면 방법이 후졌더라도 좀 좋게 봐줬을 것도 같은데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괜히 아군 전력만 낮춘 것 같아서 말이다.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것일까?

 

나꼼수 4인방의 목소리 중 정봉주 전 의원 목소리가 가장 선명했다. 마이크를 어떻게 쥐느냐에 따라서 들리는 소리가 다른데, 주진우 기자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역시 정봉주 의원이 마이크를 쫌 안다.ㅎㅎㅎ

 

3. 이날 꽁꽁 얼어서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가 무슨 얘기를 하시려다가 관두신다. 피곤해서 더 묻지 않았는데 다음날 사정을 알았다. 엄마는 내가 수영도 가지 않고 갑자기 뛰쳐나가길래 속상해서 바람 쐬러 나갔다고 여기신 것이다. 그리고는 큰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애가 담대하지 못하다는 둥, 속상해서 어쩌냐고 하소연을 하셨단다. 하하하....;;;;; 내가 쫌 많이 속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길게 고민하지 않는다는 걸, 엄니가 아직 모르신다.ㅎㅎ

 

4. 요새 한 주 늦는 타이밍으로 보고 있는 드라마는 '천일의 약속'이다. 김수현표 대사는 듣는 사람을 몹시 피곤하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배우의 목소리에 따라서 피로도를 낮출 수도 있음을 알아버렸다. 수애의 나직하고 차분한 목소리는 많은 양의 대사를 치고 나와도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김해숙의 재발견을 보여주었는데, 연기 잘하는 것이야 알고 있었지만 특유의 인상 찡그리는 표정이 싫었더랬다. 맡는 배역마다 지지리 고생 많이 하는 엄마의 전형이어서 그것도 싫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주 고상하고 교양 있고 소양 있는 어머니 역을 맡았다. 드라마 속 있는 집 여사님들은 하나 같이 양심도 없고 가식적이어서 그것으로도 참 피곤한데, 그렇지 않은 좋은 어머니 역할이다. 김수현 작가가 만들어 놓았지만, 그걸 잘 소화해 주어서 참 기쁘다. 그나저나 백지영은 대박 드라마 ost만 부르나보다. 잘 부르기도 하지만, 작품을 잘 만나는 운도 대단하다.

 

 

 

 

 

 

 

 

 

5. 드라마에서 수애는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선택한 김래원의 캐릭터는 그야말로 순애보 그 자체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아무튼 그들은 목숨 걸고 사랑을 하고 있다. 지난 주 목요일에 만난 친구의 오빠는 1월 초에 결혼하기로 식장 예약까지 되어 있었다. 그런데 5년 전에 갑상선암을 앓았던 예비 신부가 병이 재발했음을, 그리고 폐에 전이 되었음을 알려왔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결국 결혼식은 깨졌고, 예비 신랑이었던 친구의 오빠는 현재 폐인 모드가 되어서 술로 지새우고 있다 한다. 중매 결혼이었으니 이 정도지, 만약 연애 결혼이었으면 파장이 더 컸을 것 같다. 드라마 속에선 치매 환자하고도 기꺼이 결혼을 하는 그런 순정파 사내가 있지만, 현실에서 그같은 결론은 참 힘들어 보인다. 어느 한쪽을 편들 수도 없는 난처함과 속상함이 있다. 지난 주까지 보았는데 수애가 임신까지 했더만, 참으로 잔인한 운명이다.

 

6. 그나저나 요새 내 안에 자꾸 수애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주에 교무실에서 있었던 일인데, 오전에 먹으려던 약을 오후까지 안 먹었던 게 생각나서 물 한컵 뜨러 일어났다. 교무실 왼쪽 자리였는데 오른쪽 끝에 정수기가 있었다. 컵을 들고 가서 물을 한 컵 시원하게 마시고 자리에 돌아오니 남아있는 내 약들. 아뿔싸, 물을 뜨러 갔는데 물을 마시고 왔구나! 결국 다시 물을 뜨러 갔고 물 두컵 연달아 마셔야 했다.

 

그리고 오늘, 약을 먹고 컵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는데 방금 먹은 약봉지 말고도 뜯어진 약봉지가 하나 더 있다. 얼라? 보아하니 내 철분약인데 이 무슨.....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제 먹겠다고 약봉지를 뜯어놓고 물만 마신 채 방치해 둔 거였다. 그걸 오늘 알아차린 거다. 하아... 요새 이런 사례가 너무 많아....;;;;

 

얼마 전부터 야곱 덕분에 하게 된 알바가 있는데 며칠 전에 그와 관련해서 어떤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전화 너머에서 야곱은 우리 책에는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아깝지만 버려야 한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어서 알았노라며 전화를 끊었는데 왠지 기시감이 든다. 아뿔싸! 약 두 달 전에 이 일과 관련해서 모니터링을 먼저 했을 때도 내가 똑같은 제안을 했고 그때도 야곱은 본질에서 벗어난다며 사양했었던 게 떠오른다. 아, 챙피해 챙피해....;;;;

 

이런 식의 사례는 무지 많지만, 내 안의 수애가 자꾸 커져서 에피소드들을 잊어버렸다. 킁...;;;

 

7. 지난 달에 알라딘이 달력을 2종 내면서 이벤트를 열었다. 포토 리뷰 쓰는 거였는데 적립금 3천원 주는 거던가 그랬다.

마일리지를 천원씩 차감하는 달력인데 나는 서재 달력만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리뷰 쓸 때 비교하면 좋을 것 같아서 두 개 다 구입했는데 바빠서 쓰지 못하는 사이 이벤트가 조기 종료되었다. 흑... 슬프다...ㅜ.ㅜ

 

 

 

8. 그리고 리브로. 지지난 달과 지난 달이었나? 50% 할인 이벤트가 있었다. 구간 도서에 한해서, 이미 할인된 가격의 책들을 다시 50% 할인해 주는 거였으니 할인 폭이 꽤 컸다. 그 바람에 엄청 질렀다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 암튼, 그 바람에 리브로 달력도 많이 생겼다. 여기에는 구간 도서를 2만원 이상 사면 3천원 할인해주는 쿠폰이 매달 들어 있다. 하여, 혹시 리브로에서 구간도서를 살 일이 있으신 분은 리플 달아주시면 쿠폰 번호 알려드릴게요. 2명 가능합니다. ㅎㅎㅎ

 

9. 올해도 어김 없이 머그컵 행사 시즌이 돌아왔다. 2일부터 행사 시작한 것은 나름의 홍보 전략일 테지? 신한 카드 소지자들은 대개 1일에 이미 질렀을 테지만, 나처럼 머그컵 행사를 피하지 못하는 인간은 다시 또 주문을 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도착한 머그컵은 노랑색이다. 색을 고르기 위해선 차후 8만원 어치를 더 지를 것인가, 아님 컵 하나로 만족할 것인가 고민해 봐야겠다. 컵이 좀 얇아 보이고 투박한 편이어서 아주 큰 미련은 없지만, 그래도 집착은 남아서 말이지....;;;;

 

그리고 다음 번 주문에는 아마도 이 녀석이 포함될 것이다.

이걸 보면서 웃을 수 있을지, 아니면 짜증이 더 날지는, 보고 나서 판단해야겠다.

 

 

 

 

 

 

10. 지난 달에 이벤트로 발급 받은 롯데 포인트 3천 점이 있었다. 사용하지 않으면 12월 초에 회수한다고 해서 7일 날짜로 영화를 예매해 놓았지만 바빠서 영화 시간을 세 차례나 연기했는데도 결국 보지 못하고 취소했다. 그리고 8일 날짜로 다시 브레이킹 던 1편을 예매했다.

 

목요일에는 낮에 약속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헤어져서 내가 예매한 시간이 2시간 이상 붕 떴다. 6시에 극장에 도착해서 8시 40분 표를 6시 20분 표로 바꿔달라고 했다. 직원 분이 친절하게 예매 취소를 해주고 재예매를 진행했는데 또 다시 8시 40분 표를 끊은 것이다. 해서 다시 취소하고 예매를 하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전광판에서 보았던 6시 20분 표는 금요일 시간표였다. 목요일 당일 표와 금요일 시간표가 함께 제시된다고...(제기랄!)

 

해서 다시 예매해도 8시 40분인데, 내 표는 이미 취소되었고, 난 포인트도 쓰지 못했고, 할인도 받지 못했고! 어쨌든 시간을 죽이긴 싫어서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영화를 골랐다. '오싹한 연애'. 우리 동네 극장에선 평일 주말 구분없이 7천원인 것을, 천원 더 주고 예매하고, 게다가 할인도 못 받고... 히잉.... 아무튼, 영화를 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서웠고,  기대보다 더 재밌었고 애틋했다. 난 이민기가 참 좋더라. 태릉선수촌 시절부터 눈에 띄었다. 손예진이 연상이라는 게 너무 각인되어서 몰입을 방해했지만, 아무튼 참 예쁘더라. 어휴....!!!

 

극장에서 쓰지 못한 포인트는 결국 귀가하면서 롯데 슈퍼에 들러 다이소표 털바지 하나 샀다. 포인트 회수되기 전에 쓰기, 참 힘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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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12-10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떤 핵폭탄인지 철렁, 내안의 수애~~~ 어쩐지 동감하고픈.

1~10까지 쓰고도 번호가 모자라 못 쓴 삽질이 또 궁금해져요.ㅋㅋ

마노아 2011-12-10 23:32   좋아요 0 | URL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여서 차마 할 수가 없었어요.
내 안의 수애가 자꾸 자라나서 큰일인데 떼어낼 수가 없어요. 너무 사랑하나봐요..;;;;
삽질 이야기는 다음 편에 또 이어서 하겠습니다.ㅎㅎㅎ

BRINY 2011-12-10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이미 공짜 달력과 머그컵이 생겨서, 적립금 차감해야하는 알라딘 달력은 패스요~
작년에는 알라딘 달력이 넘쳐서 고민이었기 때문에, 적립금 차감하는 제도가 차라리 나을지도 몰라요.

마노아 2011-12-10 23:32   좋아요 0 | URL
이벤트 사라질 줄 알았으면 달력 하나만 사는 건데 그랬어요. 크흑..;;;;
올해도 머그컵 생긴 것도 있고 제가 산 것도 있는데 알라딘 머그컵의 유혹을 비켜가질 못했답니다...;;;

프레이야 2011-12-10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소소한 일상 이야기 늘 좋아요.
저도 요새 수애가 제 속에 자라고 있어서 깜짝깜짝 놀래요.
글쎄 며칠 전엔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시동도 안 끄고 그냥 극장 들어가 `고양이 춤` 보고 나온 거에요.
차는 그동안 계속 부릉대고 있었구요. ㅠㅠ
김해숙은 정말 연기 좋더군요. 인간적이고 고상하고 지적인 분위기도 잘 어울렸어요.
`오싹한 연애` 꽤 괜찮았어요.^^

마노아 2011-12-10 23:33   좋아요 0 | URL
으윽, 프레이야님의 수애가 조금 더 난감하군요!
덕분에 영화 보고 나와서도 차가 따뜻했겠어요...;;;;;
김해숙씨의 안정된 연기 좋았고, 오싹한 연애도 좋았어요.
히힛, 봐야 할 영화가 참 많아요.^^

2011-12-10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0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11-12-1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달에 사무실에서 알바하면서 같이 알바하는 알바2가 (물론 알바1은 탕이 ^^) `요즘 수애가 나랑 똑같아` 라고 말하니 알바 3이 `달라요. 얼굴이 틀리잖아요` 라고 한 방에 쥑이더군요. ㅎㅎㅎ
저 위에 책꽂이에 자리 잡은 `삐약이 엄마` 는 보고싶은데 구입하긴 쫌 아까운듯 싶어서 도서관에 신청했더니 선정됐어요. 곧 연락이 올거에요 :)

마노아 2011-12-11 16:45   좋아요 0 | URL
저도 감히 수애와 얼굴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 안에 있을 뿐..ㅋㅋㅋ
삐약이 엄마 저도 궁금한데 실물부터 먼저 보려고 해요. 책방에 가서 살펴보고 살 것인지, 기다렸다가 가격 떨어지면 살 것인지를 정할 거예요. 그림책은 페이지가 적은데 가격은 단행본과 비슷해서 아무래도 한 번씩은 더 생각하게 되어요.^^;;;

마녀고양이 2011-12-12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오싹한 연애 보러갈거예요, 잼난다면서요!
그리고 머그컵을 받기 위해 책도 주문했다지요... 흐흐.
이미 알라딘 달력은 세개 확보... 으흐흐.

그런데, 전 슬퍼서 `천일~` 못 보겠어요. 솔직히 브레인의 신하균 마성에서 허우적대느라,,
오늘 하균하균이 또 나오네요, 행복~

헙! 작게 볼 때는 소녀 사진인줄 알았더니, 마노아님 대문 보니 마노아님이군요.
이렇게!! 이쁘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너무 곱당~

마노아 2011-12-12 16:50   좋아요 0 | URL
머그컵을 하나 받았는데 다음 번 주문에서 색깔 안 겹치고 받을 수 있을지 지금 긴장하고 있어요.ㅎㅎㅎ
저는 알라딘 달력 두 개에 리브로 달력 무려 네 개..ㅎㅎㅎ

지난 주 천일의 약속을 오늘 보았는데 보다가 울었어요.
어휴, 정말 너무 슬퍼요. 슬플 걸 알고 보아도 눈물을 막을 수가 없네요.

으하하핫, 사진 잘 나왔나요? 무료 인화권이 생겨서 오늘 사진 신청했어요.
사진 찍히는 거 너무 좋아해요.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