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단다 I LOVE 그림책
릭 윌튼 글, 신형건 옮김, 캐롤라인 제인 처치 그림 / 보물창고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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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와 '사랑해 모두모두 사랑해'에 그림을 그린 캐롤라인 제인 처치가 역시 그림을 담당한 신간이다. 아기가 태어나서 돌이 되기까지의 성장 과정을 담고, 그 과정에서 아기를 지켜보는 가족들이 겪는 즐거움에 대해서 표현하였다. 아기가 있는 집이라면 누구든 겪어보았을 보편적 감정이고 그래서 더 크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또한 돌잡이 아기(사실은 그 아기의 가족)에게 주기 좋은 선물로 구성되어 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이렇게 눈을 뜨고 있고 이렇게 '멀쩡하게' 예쁘지는 않다만.... 이상하게도 내 가족은 이렇게 예뻐보인다. 조카들이 태어났을 때, 신생아실에 있던 다른 아기들은 모두 꼼지락 거리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건만, 유독 우리 조카만 멀쩡하게 보이고 유난히 빛나 보였다. 아, 이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가봐....

 

큰 조카가 태어나던 날은 신생아실 앞에서 느꼈던 새로운 감정이 가장 선명하다면, 둘째 조카는 일주일에서 이주일 되었을 무렵의 모습이 생생하다. 가뜩이나 9개월 만에 태어난 터라 더 가벼웠던 다현양은 손으로 들어올리는 것도 몹시 조심스러워서 얼마나 주의를 기울였는지 모른다. 그때는 언니네 집이 지금처럼 가깝지가 않아서 현관을 나서다가 아쉬워서 되돌아가기 일쑤였다. 아, 손에 잡힐 듯 선명하건만 벌써 만으로 다섯 해도 더 지나버렸다.

 

 

세균 감염이라도 될까 봐,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감히 뽀뽀도 양껏 하지 못할 만큼 조심스러웠다. 입에다가 하고 싶은 걸 꾹 눌러 참고 뺨에다가만 살짝 입을 맞추면, 그 보드라운 피부가 주는 감촉에 자지러지게 웃고 좋아했다. 날마다 보는 사이가 아니었던 그때는, 오랜만에 만나면 아기가 낯설어 하니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 앞에서 내가 재롱을 떨고, 아기가 까르르 웃게 만들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까꿍 놀이는 필수요, 하지도 못하는 성대모사를 동반하고, 온갖 '쇼'를 다 해내었던 그 기억들이 이제는 모두 추억이 되었다.

 

아기는 재채기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게 웃고, 간지럼을 태우면 부서질 것처럼 몸을 흔들며 웃는다. 내가 부를 줄 아는 모든 동요를 다 부르고, 좋아했던 만화영화 주제곡을 오랜만에 1.2절 다 부르고, 그러다가 가사가 생각이 안 나서 멋대로 지어도 부르던 그 기억들. 이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들도 조카를 갖게 되면, 그때 또 나같은 이모가 되고 또 그런 엄마 아빠가 될 테지...

 

 

 

아기가 처음으로 목을 가누던 날, 혼자서 기던 날, 혼자서 앉고 혼자서 물건을 잡고 일어서고 마침내 걷기까지 하던 그 모든 과정들은 실로 경이로웠다. 언제 이 다음 단계를 할까 목이 빠져라 기다리면 어느 틈인가 그것들을 모두 해내고 그 다음 단계로 고스란히 넘어간다. 앙증맞은 입술 사이로 뾰족한 이가 삐져나와서 손가락을 콱 물기라도 하면 아얏! 과장된 소리도 내보고,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들을 빨아서 단단하게 만드는 재주도 구경하게 된다. 이 무렵에 만나는 책은 책이 아니라 그저 장난감이다. 빨고 물고 뜯어내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시도한다. 아이는 모험가이고 도전자이며 개척자다.

 

이런 아기가 옹알대던 그 입술을 열어 마침내 '엄마'라고 발음을 하면, 온 집안에 경사가 난 듯 전화통에 불이 나고 그 장면을 찍어야 한다, 녹화를 해야 한다 부산해진다. 그리고 내 아이가, 우리 조카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라도 된 것처럼 자부심에 불이 붙는다. 사실 나의 조카들은 둘 다 말이 많이 느렸고, 걷는 것도 느렸으므로 그런 착각은 해보지 못했다. 너무 늦어져서 걱정은 해 보았지만..^^

 

 

 

그렇게 단계단계 차분히 밟아 마침내 돌잔치를 할 무렵이 되면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 어른들은 또 얼마나 바빠졌던가. 백일 무렵에는 혼자 앉을 수 있어야 사진이 예쁘게 나오고, 돌 무렵에는 걸음마가 되면 또 사진이 폼이 나지만... 우리 조카들은 역시나 늦었다. ㅎㅎㅎ

 

다현양 돌잔치 하던 날의 사진이다. 쇼핑몰 하던 언니가 갖고 있던 촬영 장비를 동원해서 집에서 찍었다. 바닥에 깔아놓은 밍크털을 가장한 저 털뭉치 옷은 올해 입었으면 유행했을 옷인데 작년인가 아름다운 집으로 보내버렸다. 아까비...ㅎㅎㅎ

 

아무튼 저날, 밤새 풍선 부느라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어줍잖은 실력으로 풍선으로 강아지 만들고(언니가 동영상으로 익혀왔다.) 조그마한 촛불을 테이블 따라 모두 세우고 불 붙이느라 또 애 좀 먹었다. 그렇게 소란을 떨고 요란을 떨었지만 그 수고도 모두 좋은 추억이 되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들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며 물어보면 해줄 이야기가 참 많다.

 

오늘은 인화된 사진을 스캔해서 디지털 작업으로 바꾸는 쿠폰의 마지막 사용 날이었기 때문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외출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 집에 있는 앨범들을 모두 들여다 봤는데, 어릴적 사진들을 보니 콧등이 잠시 시큰! 여유롭지 못한 생활 탓에 어릴 적 사진이 많지도 않았고, 온 가족의 단란하고 화목한 모습, 또는 행복에 겨운 모습 등은 찾기 어려웠다. 그래도 많지 않은 그 사진들이 찍혀질 당시, 내 부모님은 우리들을 보면서 자그마한 행복을 느꼈을 거라고 짐작해 보았다. 금세 금세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두려움도 느끼고 막막함도 느꼈겠지만, 한편으론 또 얼마나 대견하고 뿌듯하고 사랑스러웠을까, 내 멋대로 상상해 보았다. 부모라면 필히 그랬을 거라고...

 

세상의 모든 아기들은 아름답게 태어난다. 그 아이들은 당연히 사랑 받아 마땅하다. 이 책의 제목처럼 사랑받기 위해, 또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소중한 생명들이다. 그렇게 값지게 태어난 우리이니, 지금 이 순간도 살며, 사랑하며, 그리고 행복해야 한다. 당신 옆의 사람들과 더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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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주에 꿨던 꿈이다. 꿈 속에서 동창회에 갔는데 옆에 고교 단짝 친구가 앉았다. 동창회 소식지에서 친구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한 소식을 보았고, 충격을 받은 나는 꺼이꺼이 울었다. 얼마나 힘들었냐고, 왜 연락 안 했냐고... 친구는 경황이 없었다고 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친구 손을 붙들고 서럽게 울다가 다시 한 번 소식지를 보았다. 사망 연도가 93년도다. 친구와 나는 95년도에 처음 만났다. 얼라? 다시 얼굴을 들어 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 친구가 아니다. 꿈에서도 생각했다. 내가 이젠 꿈에서도 삽질을 하는구나!

 

2. 역시 지난 주의 일인데, 버스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급커브를 도는 순간 내리는 문쪽에 서 있던 여중생 두 명이 내 무릎 위로 쏟아졌다. 화들짝 놀라서 잠에서 깼다. 버스는 매번 내게 안전한 장소가 아니다. 끙!

 

3. 지난 주 토요일에 영등포에서 대학로로 오던 지하철 안에서의 일이다. 할아버지 한 분이 타셔서 자리를 양보했는데 몇 번을 사양하시고 앉으셨다. 그리고는 내게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인사해 주시는 게 아닌가. 당연한 일에 고마운 인사를! 그런데 두 정거장 지나고 나서 할머니 한 분이 타셨는데 외관상 할아버지 보다는 연하로 보였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셨고, 할머니는 사양 한 번 하지 않고 당당하게 앉으셨다. 하하하...;;;

 

4. 몇 주 전의 일인데, 아주아주 스트레스를 받았던 어느 날, 집에 돌아와서 멍하니 내리 tv만 보았더랬다. Btv로 연속 시청한 드라마는 '뿌리 깊은 나무'

 

 

 

 

 

 

 

 

원작 소설을 몇 해 전에 보긴 했는데 기억이 거의 나지 않았고, 드라마가 꽤 호평을 받고 있었지만 바빠서 보지 못하다가 뒤늦게 합류한 것이다. 과연 얼마나 재밌던지 우울함을 잠시 잊고 몰입할 수 있었다. 초반 3회까지 등장한 송중기는 또 얼마나 예쁘게 나왔던가. 맥스무비에서 출석체크를 하는데 이날의 질문이 '사극에 잘 어울리는 배우는?'이었다. 나는 머리 속으로 '송중기'라고 생각하면서 그만 '꽃중기'라고 적고 말았다. 이날이 수요일이었나, 화요일이었나... 암튼 곧 있으면 영화 '티끌모아 로맨스'가 극장에서 내려갈 것 같아서 언니와 함께 영화를 보고 왔다. 영화 끝나고 언니가 계속 궁시렁거렸다. 뭐, 나도 할 말이 없긴 했지만, 그냥... 우정으로 보았달까.

 

5. 월요일에는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수영장 셔틀버스를 타러 집에서 나갔다. 내가 타는 곳에 도착하는 지정 시간은 28분. 나는 집에서 24분에 나왔다. 코앞이고, 보통 버스가 늦게 오는 경향이 있어서 대략 5분 정도 기다리고 탑승하곤 했는데, 이날은 어찌된 영문인지 평소보다 빨리 와서는 내앞을 지나쳐 가는 게 아닌가. 내가 타는 지점에서 회원을 태우고 유턴을 하는데, 날 보지 않고 가버리시는 기사님. 새로 오신지 얼마 안 되었는데 전의 분 같았으면 왜 안 보이나 고개 한 번 돌리셨을 것이다. 아무튼 이날 셔틀을 놓쳤고, 나는 버스를 타야 했다. 수영장에 가려면 일반 버스를 한 번 타고 마을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내려서 다시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버스가 좀 전에 지나쳤는데, 다른 버스들만 내리 왔고, 한참 걸려서 내가 타야 하는 버스에 올랐다.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한 번 건넜다. 배차 간격은 무려 15분.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수영장에 도착하니 이미 7시 15분이다. 준비운동도 없이 입수해서 바로 접영부터 시작한 웃긴 상황. 월요일은 오리발을 끼는 날인데, 앞사람 오리발에 두 차례 얻어맞았다. 특히 팔꿈치는 뼈에 제대로 맞아 대따 아팠다. 게다가 내 오리발이 레일에 걸려 두 번이나 벗겨져서 급 당황! 배영하다가 벽에 머리도 쾅 박아버렸고, 샤워하러 올라가니 샴푸와 린스가 똑!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아아 총체적 난국이었다.

 

6. 그저께 일이다. 새벽 두시였는데 스탠드가 갑자기 꺼졌다가 켜졌다를 반복했다. 터치형식인데 꺼졌다 켜졌다 하니 옆에서 누가 자꾸 만지는 기분이 들어 섬뜩했다. 꺼두었는데 그 다음 날부터는 지금까지는 아직 멀쩡하다. 그런데 오늘 낮에 설거지하면서 나는 꼽사리다 4회를 듣고 있는데 이어폰에서 지지직 거리는 소리였는지 입김소리였는지, 아무튼 어떤 잡음이 들렸다. 순간 스탠드 사건이 떠오르면서 이어폰에서 나온 소리인지, 누가 내 뒤에서 소리를 낸 것인지 혼란이 왔다. 어제 시작한 추리 소설 때문인가??

 

7. 어제는 전날 주문한 책이 배송완료 메일이 오면서 5%할인 쿠폰을 받았더랬다. 5만원어치 더 주문할 일이 있어서 머그컵 받을 때 할인 쿠폰 써서 2천원 아끼려고 했는데 편의점으로 받기로 한 머그컵이 무슨색인지 몰라 일단 주문을 유보했다. 그 와중에 절판된 책이 중고로 올라와서 이 책을 먼저 주문했다. 그런데 5% 할인 쿠폰이 또 뜨는 게 아닌가. 그래서 주문을 취소하고 할인쿠폰을 써서 500원인가 할인 받고 재주문을 넣었다. 새 주문 넣었으니 출고완료 되면서 또 할인 쿠폰이 왔고, 당당히 받기 버튼을 눌렀는데 계정당 하나만 주는 거였나보다. 이미 받았다고 더 이상 다운이 안 된다. 아뿔싸!

 

8. 며칠 전에 주문한 책은 너무 지저분해서 반품 신청을 넣었는데, 가격 조정만 되어서 재조율을 해야 했고, 새책으로 받은 한 권은 껍질이 벗겨진 채로 도착해서 맞교환을 해야 했다. 그런 건 뭐 조금 귀찮은 걸로 끝나니 대수롭지는 않다.

 

9. 아직 날이 완전히 밝기 전 무렵에 배가 아파서 깼다. 식은땀이 났다. 화장실로 향하다가 중간에 한 번 주저앉았다. 이건 심상치 않은 징조다. 여차하면 또 암전이다. 새파랗게 추운 날이었지만 몸에선 계속 열이 나고 땀도 주르륵, 그러다가 어느 순간 차가운 기운에 눈을 떴다. 아, 또 실신했구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예술의 전당에서 넘어간 게 1월이었는데, 한 해를 넘기기 전에 또 이모양 이꼴. 속상해서 세수하면서 한참 울었다. 속상한 이유는 좀 복잡한 부분인데 그건 차마 말할 수 없다.

 

10. 오늘 편의점으로 배송 받은 책상자를 열어보니 또 다시 머그컵이 노랑색이다. 아아아, 이런 일이 생길까 봐 어제 또 주문 넣을 때는 머그컵 대신 적립금 천원을 골랐다. 머그컵 주는 책 포함해서 5만원어치 세 번 주문을 넣었는데, 세가지 색상 컵이 다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노랑 머그컵을 두 개 받은 게 실신한 것보다 더 속상했다면 말도 안 되겠지? 근데 그랬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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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1-12-18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말 액땜이 한꺼번에 터지고 있군요...^^ 새해엔 좋은 일이 생길지도..??

마노아 2011-12-18 16:40   좋아요 0 | URL
액땜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사실은 대수롭지 않은 일들의 나열이지요.
그래도 새해엔 분명 행운이 따랐으면 좋겠어요. 헤헷^^ㅎㅎㅎ

2011-12-18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8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11-12-18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 이쁜 호피무니의 마노아님을 왜 이렇게 일찍 내린거에요?
난 공장장님의 삐뚜러진 입술과 손가락보다 마노아님의 맑은 이마가 훨씬 좋단 말이에요 :)

전 2주간 출퇴근 하면서 오늘 아침까지 두 번 시동이 안걸려 보험불러 시동걸고 출근했어요. 1년에 5번 긴급출동인데 두 달이 안 된 시간동안 벌써 두 번 사용했어요 ㅠㅠ

마노아 2011-12-18 21:49   좋아요 0 | URL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서 사진이 마구 바껴요. 어제는 갑자기 침울해져서 사진을 내렸어요. 공장장님 보면서 방긋! 웃었죠.ㅎㅎㅎ

그렇지만 요청 들어오면 또 바꿉니다. 제 핸드폰에 셀카 기능이 있다는 걸 좀전에 알았어요. 핸드폰 쓰고 만 2년 다 되어서 말이지요.ㅜ.ㅜ 그래서 기념으로 한 컷 찍었어요.ㅋㅋ

아아아, 1년에 5번 모두 채울 필요 없는데 말이지요. 자동차가 무스탕님 마음을 몰라주네요..;;;;;

2011-12-19 0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9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 신 DIEU DIEU - 어느 날, 이름도 성도 神이라는 그가 나타났다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글 그림 / 휴머니스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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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연극 표가 있다고 연락을 해왔다. 제목은 '예수와 함께 한 저녁 식사'. 책으로 재밌게 만났던 작품이다. 애석하게도 연극 상영일이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변경되면서 수영 때문에 참석을 못하게 되었고, 대신 엄마가 보셨으면 했는데 날이 지나치게 춥고 거리도 멀어서 결국 관람을 포기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문득 그 연극이 더 보고 싶어졌지만 다음 주 월요일에 수영을 빠질 수밖에 없으므로 오늘은 내 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신이다. 초월적 존재의 그 신, 맞다! 그의 등장은 해프닝 같았다. 인구조사 현장에 주민번호도 신분증도 없이 나타난 이 정체 불명의 사내는 자신의 이름을 '신'이라고 했고, 성 역시 '신'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를 부를라 치면 '신 신'이 되어버리는 것.

 

많은 사람들이 신의 등장에 코웃음을 쳤다. 신의 존재를 믿거나 안 믿거나,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 사람을 '신'이라고 인정하기엔 우리의 문명은 지나치게 발달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자칭 신이라는 자를 심문하기 위한 책임자로 정신과 의사가 나섰다.

 

 

 

첫 질문부터 눈앞의 인물을 '신'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물음이었다. 신이라는 자는 그걸 바로 지적했다. 자신의 질문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정신과 의사도 인정한다. 그가 다시 묻는다.

 

당신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모든 정의를 초월한 자. 나 자신의 정의까지 포함해서.

만약 당신이... 한 권의 책이라면, 어떤 책일까요?

모래의 책

만약 당신이 하나의 숫자라면?

제로. 의미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엄연히 존재하오.

음악이라면?

침묵.

만약 당신이 동물이라면?

인간.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인간일까요?

갓난아이. 그리고 내가 진짜 갓난아이라면, 계속 그 상태로 남아 있도록 애쓰겠소.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 이 사내를 신이라고 인정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평균 이상의 지적 능력을 가진, 몹시 철학적인 느낌의 인물이라는 것은 용납할 수 있겠다. 이제 신이 반격할 차례다. 보통의 사람이 뇌의 10%를 사용하면서 산다면, 신의 뇌는 99.91%가 가동되고 있었다. 인간의 두뇌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치다. 완벽한 100%가 아니어서 오히려 더 완벽해 보이는 숫자! 그는 사람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힉스보존을 발견해냈고, 도서관 안에 들어 있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분자 수를 세어버렸고, 천체망원경으로 발견하지 못한 외계행성을 육안으로 찾아냈다. 그밖에 여러 사건들이 연일 사람들을 놀래켰고, 그때마다 신문은 '놀라운' 것이 '몹시 놀라운' 것이 되어버렸고, 그 다음에는 '완전 놀라운', 이어서 '놀라 자빠질 만한' 등등의 이름으로 변신하였다. 이러한 사건들을 명명하기 위한 수식어들을 모두 갖다 썼지만 더 이상 쓸 수 있는 말이 없을 만큼 놀라운 일들이었다.

 

자, 이쯤 되면 신의 존재를 믿는 무수한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다음에는? 신의 존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인간들에 의해 초유의 대량 소송 사건에 휘말린 신! 불행의 직접적인 원인이 신에게 있다고 고소한 이들이 있다. 이들은 신에게 무엇도 요구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 태어나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신에게 보상을 요구했다. 신이 세상을 잘못 다스렸다고 나무라는 이들도 있고, 신의 보수적인 면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소송에 대처하기 위한 변호인단의 규모 또한 어마어마하다. 무려 250명의 변호인! 이들은 소송에 질 경우를 대비해서 보험 회사들과 제휴를 맺고, 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리'하기 시작한다.

신의 얼굴은 변호인단에 의해 초상권 등록이 되어 법적으로 보호를 받았고, 신의 대필가들은 베스트셀러 목록을 도배해버렸다. 사상 초유의 재판은 모든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객관성과는 거리가 먼 배심원단들도 눈길을 끌었다. 신의 변호인들은 신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가능한 한 신이 인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 시키는 방향으로 변론을 펼칠 예정이다. 승소하기 위해 신을 평가절하시킨다는 게 그들의 전략! 반면 원고 측에서는 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논거들을 계속 내놓을 예정이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서 오히려 신의 존재 가치를 역이용하는 이들이다.

 

이후 등장하는 여러 변론들과 반론, 그리고 신의 대답 등은 무척 형이상학적으로 들린다. 실제로 많은 철학자들이 했던 말들이 인용되고 각색되고 재활용되었다.

 

그들의 말을 다시 가져오는 것도 나에게는 힘든 일. 오히려 환경미화원 남자가 건넨 한 마디가 피고인들의 불만을 응축해준 액기스 같았다. 만들기는 하되 애프터 서비스는 없다!라... 그야말로 세상을 창조했다는 신을 향한 인간의 불만의 정점 아닌가. 물론, 누가 망가뜨렸는가에 대한 과정이 빠지기는 했지만, 신이 창조자라면 인간 세상에 대한 책임은 분명 있는 것이다. 옆에 졸고 있는 그림은 저 재판에서 바로 나온 장면은 아니지만 붙여놓고 보니 어째 저 모양새가 되어 괜히 송구하다. 인간들이 갑론을박하는 모양새가 웃길 법도 하다. 또 얼마나 지루했겠는가.

 

재판은 끝을 모르고 진행이 되어가지만, 그 와중에도 신을 둘러싼 각종 비지니스는 춤을 춘다. 얼마나 좋은 마케팅 대상이던가. 또 얼마나 흥미로운 모델인가.

신의 등장을 기회로 설교자로서 재도약의 기회로 삼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현장학습 장면을 살펴보자.  "당신은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란 익숙한 문장은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신은 이미 인간들 사이에 와 있으니까. 그랬다고 "오오오 신이시여, 우리는 당신이 와 주실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하기엔 너무 기회주의자 같고, "오오오 신이시여, 어찌하여 오래도록 기다리게 하셨습니까?"라고 하면 그건 기도지 설교가 아니다.

 

 

심각한 와중에 가끔 유머가 나와 쉬어갈 여지를 주고, 재판의 공방을 들여다 보면 신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더 들여다 보게 된다. 장 폴 사르트르의 글을 인용한 '신, 그것은 곧 인간의 외로움이다.'라는 문장은, 비록 내가 유신론자 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공감이 간다.

 

재판은 어느 쪽으로든 결말이 날 것이고, 그 전에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돈을 벌어야 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만든 신의 왕국-테마파크-을 보라.

테마파크에 방문한 입장객들은 입구에서 '세례'를 받고, '영혼'으로 거듭난다. 그 후에 '정화의 샘'에 발을 담그면서 공원에 입장할 수 있다. 마음의 양식만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의 메뉴판에는 주문, 기도, 묵상, 명상 등이 올라가 있다. 투자 없이 확실한 마진이 보장되어 있다. '지옥'으로 표현된 뜨거운 냄비 기구가 하이라이트다. 사람들은 괴로움을 당하기 위해서 줄을 서고, 실제로 그 안에서 고통을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했다는 점을 오히려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그 밖에 다양한 기념품 샵이 준비되어 있다. 이러니 신은 또 얼마나 많은 '저작권료'를 챙기겠는가. 자본주의의 홍수 속에서 최고의 반사 이익은 신이 차지하고 앉은 꼴이다. 그는 과연 '신'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작품의 결말은 책 소개에 이미 나와 있다. 요지는 반전의 내용이 아니라 그 속에 깔려 있는 메시지다.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는 특유의 냉소적인 시선으로 신이 창조했다고 하는 이 세상과, 그 세상을 요지경으로 만들고 있는 인간들에 대한 풍자의 화살을 날린 것이다.

 

앞서 읽었던 '아크파크, 꿈의 포로' 시리즈보다 더 기발하지는 않다. 신이 현신해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이야기는 무척 많았으니까. 또 그 입을 빌려 인간을 비틀고 풍자하는 예도 드물지 않았다. 그래도 흑백 컬러의 단호한 색을 제대로 활용해서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고, 그러면서도 냉소적인 시선도 거두지 않는 조화를 잘 지켰다. 역시 이름값에 뒤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단 한 번도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신의 등뒤 그림자가 왠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이상은, 신을 믿고 의지하지만, 또 신이 너무도 두려운,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의 감상이다.

 

덧글) 오타가 하나 있다. 73쪽의 '요컨데'는 '요컨대'로 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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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7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7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식객 22 - 임금님 밥상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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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호의 선장으로 오랜 시간 항해를 하다 보니 팬도 많이 생겼고, 그 바람에 팬들로부터 받는 편지와 선물도 많을 것 같다. 이번 편에서는 그런 편지와 선물 등이 잠시 소개되었다.

 

 

첫번째 사진은 독자가 보낸 진정 어린 편지였으며. 두번째는 군복무 중 패러디 작품으로 만든 '식충'이란 작품집이고, 세 번째는 독자가 그린 캐리커쳐다. 이런 선물들을 받으면 작품 활동에서 오는 고단함을 씻어낼 수 있는 좋은 에너지가 될 것이다. 나 역시 마음으로는 그런 고마움의 박수를 함께 보태어본다. 

앞쪽에는 항상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요리들을 실연해 본 장면들이 나온다. 취재 과정에서 찍은 사진, 혹은 재연하느라 직접 만들어본 음식 등등... 게 중 호박잎쌈과 보리 쌈밥이 배가 부른 상태에서 보았음에도 식욕을 돋우었다. 카메라를 언니가 빌려가는 바람에 핸드폰으로 찍어서 화질이 좀 구리지만 여전히 사진을 보니 침이 꼴깍이다.

 

첫번째 이야기는 '병원의 만찬'이다.

 

뇌수술 후 신경을 다쳐서 성욕이 많아져서 여자만 보면 무조건 덮치려는 환자와 식욕이 왕성해져서 입원 한 달 만에 체중이 20kg이나 불어버린 남자, 위아래를 구분 못하고 깍듯이 존댓말만 쓰게 된 남자, 후각이 없어져서 미각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남자, 거식증에 걸린 스님까지... 여러 인물들이 한 병실에서 만났다. 맛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니 삶의 의욕이 오죽할까. 그런 그들이 '수요일'에는 병원 식사를 거르고 몰래 모여서 집에서 들여온 별미로 일주일을 기다리는 낙을 채운다. 이때 등장한 요리가 호박잎쌈이었는데 흑백으로 보아도 여전히 침이 주르륵!!! 그렇지만 미각을 잃은 할아버지는 이 좋은 맛을 느낄 수가 없다. 그러자 비장의 무기 '오이소박이'가 등장한다. 맛도 맛이지만 일단 아삭!하고 씹히는 소리가 입 안에 생기를 돌게 한 것이다. 아, 소리만 들어도 그 맛이 떠오른다. 역시 이 밤중에 침이 꼴깍! 지난 여름 한참 다이어트 할 때 오이소박이가 있었는데, 그 무렵에는 후각이 너무 예민해져서 오이 비린내를 견디지 못해 소박이를 멋지 못했다. 아, 먹고 싶다. 엄니 말씀으로는 지금은 비싸서 못해 먹는다고.... 슬프다!

 

그밖에 두릅을 가지고 상상 음식도 만들고, 도다리 쑥국도 등장하고, 야식으로 닭발도 등장했다. 닭발은 내가 먹지 못하는 음식이니 탐나지 않았지만, 설명하는 매운 맛에 절로 미간이 움직인다. 매운맛은 혀가 느끼는 게 아니라 뇌가 느끼는 통증이라고 하는데, 우린 너무 자극을 좋아한다.

 

 

이렇게 맛있는 메뉴들이 등장하니 일주일이 모두 수요일일 수밖에! 금요일을 기다리는 직장인의 마음보다 더 간절할 것이다. 마지막 마무리는 스님의 퇴원 전 송화밀수 한 잔으로 건배! 의식을 잃은 환자에게도 평소 좋아하던 별미 이야기를 곁에서 해주면, 자연반사적으로 정말 침이 꼴깍 넘어가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의학적으로는 모르겠지만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그게 회복을 당겨주는 역할이 된다면 얼마나 고마운 처방인가.

 

작품 후기를 보니 대형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미각과 후각을 관장하는 신경을 다친 환자들 얘기가 나오는데, 맛을 느끼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삶은 상상으로도 끔찍하다. 입맛이 살맛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는 나로서는 지극히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아침에 먹을 굴비 한 마리 생각에 다시 침이 꼴깍!

 

취재 기간에 뇌수술 현장을 직접 참관했는데, 수술이 끝나고 수술을 집도한 박사님이 놀라셨다고 한다. 기자나 의대생들도 개봉된 뇌를 직접 보면은 구역질에 기절까지 하곤 하는데, 허영만 화백은 사진도 찍고 중간 중간 수술 용어도 받아적었다나. 그동안 식객 취재를 위해 도살장 같은 곳도 직접 다니면서 내성이 생긴 덕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인간적인 감성이 메마른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부분이 지극히 인간적으로 보였다. 샘의 감성은 여전하시니 걱정 무, 이상 무!!

 

두번째 이야기 '올갱이 국'에서는 성찬과 진수의 러브러브가 꽤 로맨틱하게 진행되었다. 취재 나왔다가 본의 아니게 야영을 하게 된 두 사람. 때는 여름이고 하늘엔 별이 가득하다. 별 다섯 개 호텔보다 별 억만 개 노상 호텔이 더 좋다는 진수가 참으로 예뻤다. 밤바람을 맞으며 와인 한 잔씩 기울이고 행복이란 놈이 오고 있다고 중얼거리는 두 사람,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다.

 

본인에게 있던 추억을 얹어서 먹는 음식이라면, 고유의 맛 이상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올갱이 편에서는 그런 사람이 등장한다. 문학적 감수성을 곧잘 자극하시는 허영만 샘, 역시 짱짱하십니다.

 

 

방배동에 집을 구하려다가 삼선동으로 옮긴 성찬이의 새집 전경이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더 정감이 간다. 작가의 말처럼 곡선이 없어지고 자꾸 직선만 늘려가는 세태가 나도 못마땅하다. 골목이 사라지고 동네 구멍가게가 사라지고 사람 사이의 끈끈한 정도 점차 사라진다. 재개발이 되고 나면 원래 살던 주민들이 다시 입주할 확률은 17%밖에 되지 않으니, 그들은 정주고 살던 곳을 떠나 이방인이 되어야 하고, 정감 어리던 동네는 투기꾼들의 먹이가 되어버린다. 안타깝고 괴로운 현실이다.

 

세번째 이야기 '은어 수박 향기' 편에서는 직장에서 내몰리고 가정에서 설 곳 없는 우리시대 보편적인 가장의 이야기를 다뤘다. 드라마에 심취해 남편은 안중에도 없는 마누라의 행태는 독자의 눈으로도 얼마나 밉살스럽던지! 삶의 주어를 '아이I'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에 크게 공감했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이번 이야기에는 시골 폐교를 사진 전시관으로 쓰고 있는 실제 인물이 등장했다. 그가 12년 동안 찍은 독도 사진은 그림 상으로도 흠뻑 취할 만큼 매혹적이었다. 처음 정착했을 때는 긴 겨울과 긴 밤이 지나치게 외로워서 견딜 수 없었다는 그의 말에 조금은 시큰해진다. 그 외로움이 사무쳐서 촛불을 켰다는 사람. 느림의 상징 촛불. 아주 좁은 공간만큼만 비추니, 넓어 휑한 느낌을 지워주었을 것이다. 지혜롭고 로맨틱한 위로법이다.

 

정상을 향해 달려가던 예술가가, 정상에 도착하는 순간 장사꾼이 되어서 내려가더라는 이야기에 섬뜩해진다. 그런 지경에 이르기 전에 내려놓는 삶을 꾸린 그의 용기에 박수를!

 

금슬 좋은 부부가 한 명은 도시를 좋아하고 한 명은 시골을 원해서 인생 후반기에는 주말 부부로 만나더라는 실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같은 이유로 원한다면 침대를 따로 써서 잠자리를 편하게 갖는 부부도 이해가 된다. 서로 합의가 된다면, 그 쪽이 부부의 사이를 더 원만하게, 더 애틋하게 만들 것도 같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은어가 주제인데, 강에 정착한 은어가 매일 먹을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이끼가 붙은 돌 주위 1m 안팎 구역을 갖는데 이를 '먹자리'라고 한단다. 먹자리를 확보한 은어를 먹자리 은어라 하고... 독점욕이 강한 성질을 이용한 낚시법도 함께 소개되었고, 환경과 습성에 따라 달라지는 여러 은어들도 함께 소개되었다. 작품의 특성상 요리의 재료와 맛, 효과와 역사까지 장황하게 설명하기 쉬운데, 그걸 적절히 배치해서 주제와 부합되게 하고, 또 독자로 하여금 뭉클한 감동과 메시지까지 전달하는 작가의 내공에 늘 감탄하게 된다. 여기서도 어깨가 짓눌린 가장에게 좋은 위로와 깨달음을 주었으니 독자의 가슴도 훈훈하다.

 

다음 이야기는 보리밥, 열무김치 편! 앞서 사진으로 선보였던 그 메뉴다. 꽁보리밥을 깡보리밥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깡'은 완전히, 전부라는 뜻이라 한다. 그래서 안주 없이 소주만 마시는 걸 깡소주라고 한다고... 호오~ 재밌는 우리말이다.

 

가장 재미있게 본 것은 마지막 이야기 '갯장어' 편이다. 운암정 숙수가 등장해서 이번에도 밉상에 진상 짓을 했다. 여수 아주머니의 호된 호통이 참 시원했다. 맛을 품평해줄 상대는 모 기업의 회장님 한 분! 두 사람의 기 싸움을 중간에서 잘 중재해 주었고, 맛의 편가름도 진정어리게 해주었다. 역시 사람을 다룰 줄 아는 분이다.

 

우리말로는 '갯장어 데침회'라고 써야 하지만 요리의 유래가 일본인인 까닭에 '하모', '유비끼'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고 한다. 저자의 주장처럼 햄버거가 햄버거로 불리듯이 일본식 이름도 때로는 유연성이 필요할 것이다. 일본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면 일단 경계부터 하게 되는 게 우리의 자연스런 반사신경이기는 하지만...

 

식객을 오랜만에 읽었는데 여전히 궁극의 맛을 자랑한다. 작품 속 등장하는 이야기를 보니 촛불 집회가 한참이었던 2008년에 연재된 내용인가 보다. 3년이 더 지나서야 읽게 되다니 내가 참 늦어버렸다. 이번에는 완결편까지 좀 달려보자. 쭈우욱!

 

덧글) 오타가 있다. 312쪽의 '전체요리'는 '전채요리'로 수정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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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6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6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6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6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법천자문 5 - 열려라! 열 개開 손오공의 한자 대탐험 마법천자문 5
시리얼 글 그림, 김창환 감수 / 아울북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조카네 집에 마법천자문이 몇 권이 있냐고 물었더니 달랑 한 권 있다고 한다. 그것도 1권이 아닌 5권. 1~4권은 도서관에서 읽고 5권만 산 것일까? 뒷권은 왜 없는지랑 물어봐야겠다.

 

1권부터 보지 못했지만 5권부터 본다고 크게 문제될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등장인물 설명이 되어 있고!

 

 

이 인물들이 마법천자문 조각을 지키거나 되찾아오는 임무를 지녔다는 것, 그리고 그 천자문을 모아서 부활하려고 하는 대마왕의 음모가 있다는 것은, 척 봐도 딱이다.

 

 

책 한 권에 등장하는 한자를 몇 자로 정해두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는 이렇게 20자만 등장한다. 심하게 어렵거나 심하게 쉽지 않은, 딱 적당한 수준의 한자들이다.

 

처음부터 보질 않아서 주인공들이 마법 한자 주문을 어떻게 익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아이들은 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한자들을 사용하면서 지혜롭게 군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막강한 상대에게 찾을 탐! 주문을 써서 약점을 찾아내고, 한 방 먹고 정신을 잃은 친구에게는 기운 기! 주문을 써서 일으켜 주었다. 정말 마법 같은 일이긴 하지만 꽤 그럴싸하며 또 몹시 탐나는 주문들이다.

 

 

게다가 들을 문과 물을 문의 차이점까지 은근슬쩍 설명하면서 한자 학습의 효과까지 제대로 보이고 있다. 누가 생각해 낸 묘안인지 모르겠지만 대박 설정이다. 

앗, 세장의 사진을 멋드러지게 배치한다는 것이 흰 배경 덕분에 휭~ 해보인다. 나의 실수!

 

열려라 열 개! 주문은 '열려라 참깨!'를 떠올리게 해서 재밌었다. 꽤 상승 마법에 속하는 없을 무! 주문은 쓰고 난다음에 기력 소모가 커서 반격의 여지가 있는 주문이다. 모 아니면 도 주문이랄까. 용맹한 호랑이 주문도 마음에 든다. 글자로 싸우는 거라면 상상의 동물도 얼마든지 소환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늘을 날며 불도 뿜어내는 용도 부를 수 있고, 전설의 새도 불러내며, 내친김에 사방위 신을 다 모아서 싸울 수도 있겠다. (뒤에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아직 못 봤지만....)

 

문득, 어릴 적에 즐겨보던 '모래요정 바람돌이'가 떠올랐다. 노래에도 나오는데 '하루에 한 가지, 바람돌이의 선물'처럼 이런 주문을 하루에 하나씩만 쓸 수 있다면, 개인적 욕심이 아닌 사회적 차원의 선한 동기로 쓸 수 있는 마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일단 가장 먼저 빌어볼 소원은 어제 날짜로 1000회 집회를 가진 위안부 할머니들의 통한을 풀어주는 것! 진정 꿈같은 일이지만 그런 생각이 났다. 이런 걸 한자로 풀어내려면 어떤 단어가 필요하려나. 해원(解冤)! 이런 단어면 될까.

 

 

꽤 흥미진진한 부분에서 이야기가 끝이 났는데 모험이 진행되는 한 이야기는 오래오래 이어질 수 있겠다. 그러니 다음 권을 또 눈독들일 수밖에.

 

뒷부분에는 등장한 한자들에 대한 풀이와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부록처럼 들어 있다. 그래, 이 정도 수고는 해줘야 저 한자들을 내것으로 만들 수 있지!

 

요새는 초등학생들이 한자 자격증 따는 열풍이 거세던데, 그 기운에 맞추어 시의적절한 기획의 책이다. 물론, 출간된지 꽤 된 것을 내가 늦게 알아본 것이지만.

 

 

이 책의 한자마법을 함께 만든 아이들이라고 한다. 어떤 의미로 함께 만들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도움이 된 것인지, 어떤 역할을 한 것인지 궁금하고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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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2-15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오오오오오옷- 호피 무늬!!!!!!!!
호피 무늬 가방도 아니고 모자도 아니고 외투도 아닌, 무려 무려 블라우스!!!!!
게다가 비로도? 벨벳!!! ^^;; 신선합니다. 으흐흣.
뜻밖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기분이랄까요^^
근데 호피무늬가 참 잘, 어울리심^^;;;

마노아 2011-12-15 23:47   좋아요 0 | URL
아하하핫, 정확히는 호피무늬 원피스입니다. 쟤는 블랙 계열인데 황금색 계열도 한 벌 있어요.
내가 샀으면 엄두가 안 났을 텐데 언니가 파는 옷을 제게 주었어요. 따뜻해서 자주 입고 다녀요. 근데 호피무늬 플랫 슈즈는 너무 벗겨져서 실패했어요.;;;;;;;

마녀고양이 2011-12-16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법천자문도 마법천자문이지만,
알라딘 서재 메인에 뜬 마노아님 사진 보고 냉큼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나날이 풋풋해지셔도 되는겁니까, 그리고 호피 무늬옷 정말 잘 어울립니다.

마노아 2011-12-16 02:25   좋아요 0 | URL
우헤헷, 저기 떡볶이집인데 제 옷이 가장 화려했을지 몰라요.ㅎㅎㅎ
입어보지 않았으면 어떤 느낌일지 몰랐을 옷이에요. 가끔은 이런 옷도 입으면 좋아요. 기분전환이 되어요. 호호홋!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