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과학

제 1503 호/2011-12-19

좋은 소음도 있다? 백색소음 효과

소음이란 듣는 사람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소리를 말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듣는 사람의 처해진 환경이나 심리상태에 따라서는 그 소리가 방해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례로 애타게 보채고 있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엄마나 아기에게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소리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시끄러운 소음으로 들릴 뿐이다. 그런데 이런 소음 중에도 좋은 소음이 있다. 어떤 소음이 좋은 소음일까?

소음의 유형에는 특정 음높이를 유지하는 ‘칼라소음(color noise)’과 비교적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white noise)이 있다. 백색음이란 백색광에서 유래됐다. 백색광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7가지 무지개 빛깔로 나눠지듯, 다양한 음높이의 소리를 합하면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이 된다. 백색소음은 우리 주변의 자연 생활환경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생활환경에 따라 주변소리가 다르듯이 백색잡음도 다양한 음높이와 음폭을 갖는다.

우리 생활주변에서 들리는 백색음으로는 비오는 소리, 폭포수 소리, 파도치는 소리, 시냇물 소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 등이 있다. 이들 소리는 우리가 평상시에 듣고 지내는 일상적인 소리이기 때문에 이러한 소리가 비록 소음으로 들릴지라도 음향 심리적으로는 별로 의식하지 않으면서 듣게 된다. 또 항상 들어왔던 자연음이기 때문에 그 소리에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자연의 백색음을 통해 우리가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서 주변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는 보호감을 느끼게 돼 듣는 사람은 청각적으로 적막감을 해소할 수 있다.

이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백색소음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반적인 소음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우리는 다년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소음도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먼저 사무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백색소음을 평상시 주변소음에 비해 약 10데시벨(dB) 높게 들려주고 일주일을 지냈더니 근무 중 잡담이나 불필요한 신체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한 달 후 백색소음을 꺼버렸더니 서로들 심심해하면서 업무의 집중도가 크게 떨어졌다. 즉 백색소음이 없는 것보다 어느 정도 있는 것이 업무의 효율성을 증대시켰다.

여름에 해변가에서 텐트를 치고 있노라면 불어오는 해풍에 시원하고 쾌활한 느낌이 들지만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깊은 잠을 자게 된다고 한다. 특히 일본에서는 오키나와 해변의 파도소리를 CD에 수록해 팔고 있는데, 도심의 슬리핑 캡슐 등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때 숙면 유발용으로 아주 인기가 좋다고 한다. 이는 파도소리에 숨겨져 있는 백색소음이 인간 뇌파의 알파파를 동조시켜 심신을 안정시키고 수면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의 백색음을 학생들에게 들려주면 학습효과가 크게 개선된다. 남녀 중학생을 대상으로 서울 노원구 소재의 한 보습학원에서 영어단어 암기력 테스트를 실시했다. 일상적인 상태와 백색음을 들려주었을 때의 상태에 따라 전혀 새로운 고교 2학년 수준의 영어단어를 5분간 암기하도록 했는데, 평소에 비해 학업성취도가 35.2%나 개선됐다.

또 다른 실험으로 독서실에서 백색소음을 들었을 때 집중력이 얼마나 개선되는가를 알아봤다. 각자의 책상 위에 백색소음이 발생되는 장치를 부착하고 공부하면서 옆 좌석에 고개를 돌리거나 주변에 관심을 갖는 횟수를 시간 단위로 비교 파악했다. 이 경우에도 백색소음이 들렸을 때 주변에 관심을 갖는 횟수가 약 22% 정도 줄어들었다.

실험 결과를 좀 더 명확히 입증하기 위해 백색소음을 들려주었을 때의 뇌파반응을 검사해 봤다. 한 의과대학의 도움을 받아 피 실험자에게 백색음을 들려주고 뇌파를 측정했더니 베타파가 줄어들면서 집중력의 정도를 나타내는 알파파가 크게 증가했다. 이는 뇌파의 활동성이 다소 감소되고 심리적인 안정도가 크게 증가했다는 의미다.

또 다른 실험으로 우리 주변의 자연음을 들려주었을 때 집중력의 변화를 관찰했다. 5분 단위로 주변의 소리를 다양하게 들려주고 10대, 20대, 30대 등 연령대 별로 공부 중 신체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10대와 20대 피 실험자는 약수터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소나기 내리는 소리 등 비교적 넓은 음폭의 소리를 선호했고, 이때 공부의 집중력이 높아졌다. 한편 30대는 작은 빗소리나 큰 시냇물 흐르는 소리 등 중음 폭의 백색소음을 더 선호하면서 업무 집중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한편 생후 3~4개월 미만의 신생아가 우는 경우 태아시절에 들었음직한 심장박동소리, 숨 쉬는 소리, 엄마 아빠의 목소리 등을 녹음해서 들려준다면 과연 아기가 안정을 취할까? 하지만 실험 결과 아기는 점점 더 불안해하고 엄마의 품을 찾아 더 애타게 울먹일 뿐이었다.

이때 TV의 빈 채널에서 나오는 쉬이익 거리는 소음을 들려주면 울던 아기가 금방 울음을 멈추고 안정감을 찾는다. 어떤 부모는 진공청소기 소리를 들려주었더니 울던 아기가 안정을 찾았다고 하고, 부드러운 비닐봉지를 만지작거리면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들려주면 아기가 금방 밝은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신생아를 달래는 이런 소리 역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백색소음이다.

백색소음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실생활에 활용하고 있는 분야도 있다. 소음으로 소음을 잡아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것이다. 백색소음은 넓은 음폭을 가지기 때문에 목소리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은행이나 보험사 등에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쓰일 수 있다. 즉 개인적인 주민등록번호나 계좌번호 등의 숫자를 말하게 되면 옆 사람이 알아듣고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 이때 백색소음이 일정한 레벨로 들리게 하면 옆 사람은 숫자의 발음 차이를 잘 구분할 수 없게 사운드마스킹(sound masking)이 된다. 때문에 목소리를 통한 개인정보의 유출이 보호될 수 있다.

이렇듯 듣는 사람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소음이라도 백색소음은 우리 생활 주변의 자연소리와 유사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은 소리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가 첨단화될수록 사회 요소요소에 백색소음의 수요가 점차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의 오감 중에서 청각과 촉각을 만족시키는 백색소음에 대한 연구가 더 많이 진행돼 인간에게 두루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길 바란다.

글 :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소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FUN 과학

제 1502 호/2011-12-19

반짝반짝 금모래 만들기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거리는 떠들썩하게 빛났습니다. 작은 제비의 입에 물려 있는 금조각의 빛은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도 몰랐습니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 작은 금 조각이 시청 앞에 서 있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왕자님’ 동상이 마지막으로 벗어던진 최후의 조각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제비는 지친 날개를 재빨리 저어대며 날았습니다. 날씨는 너무 추웠고, 매일 밤 날아다니느라 기력도 쇠한 상태였어요. 하지만 제비의 머릿속에는 오직 마지막 금 조각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디작은 뇌를 달콤하게 지배하던 따스한 이집트에 대한 향수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작고 쓰러져가는 오두막의 창가에 내려앉은 제비는 떨리는 부리를 조용히 열어 금 조각을 떨궜습니다. 창가 앞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가난한 과학도의 눈에 띌 수 있는 정확한 위치에 말입니다. 깜짝 놀라 반짝이는 조각을 집어 든 과학도는 조심스레 조각을 깨물어 보고 주위를 휘휘 둘러본 뒤 그 자리에 꿇어앉았습니다. 과학도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제 그는 생활고를 잊고 자신의 논문을 완성할 수 있을 겁니다. 과학도는 눈물로 얼룩진 눈을 들어 창가를 바라보며 외쳤습니다.

“누구신가요, 이런 고마운 성탄 선물을 주신 분은!”

제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과는 대화를 나눌 수 없으니까요. 그저 떨리는 날개를 모아 쥐고 비틀대는 다리를 어렵게 유지한 채 고개를 갸웃댔을 뿐입니다. 제비를 본 과학도는 다시 한 번 부르짖었습니다.

“오오, 네가 전해준 거였구나!”

제비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댔습니다.

“그래, 창가에 앉아 추위에 떨지 말고 잠시나마 들어오지 않겠니? 너를 통해 이러한 선물을 주신 분께 변변치 않지만 작은 선물이나마 돌려 드리고 싶어서 그런단다. 아주 잠시만 기다리거라.”

제비는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왕자님의 보석이며 금을 온 마을에 뿌려왔지만, 보답을 주는 사람은 처음이었거든요. 조심스레 발을 들이밀어 창가의 작은 촛불 옆으로 간 제비는 온몸을 감싸는 따스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그 사이에 부스럭대며 이런저런 준비를 하던 과학도가 작은 시험관을 내밀었습니다. 제비는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금색으로 반짝이는 가루들이 아름답게 춤추고 있었거든요. 이리도 금이 많다면 애초에 나누어 줄 필요가 없었을 텐데, 왕자님의 마지막 사랑을 이런 곳에 던지지 말았어야 했는데. 깊은 후회와 분노에 몸을 떨기 시작한 제비 앞에서 과학도가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습니다.

“오해하지 말렴, 작은 제비야. 이건 진짜 금이 아니란다. 요오드화납이라는 물질의 작은 결정일 뿐이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다시 한 번 따스한 공기에 몸을 맡긴 제비를 보며 과학도는 조용히 미소 지었습니다. 촛불 불빛을 받은 시험관은 아까보다 훨씬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마치 햇빛 속에서 늠름하게 서 있는 왕자님의 몸처럼 말이지요.

“네가 몸을 녹일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으니 짧게나마 설명을 해 주마. 내가 넣은 건 질산납 용액과 요오드화칼륨 용액이란다. 이 두 물질을 물에 녹여 섞으면 요오드화납이 만들어지지. 요오드화납은 아주 강한 노란색을 띠고 찬물에 녹지 않아. 그래서 처음에는 노란 가루들이 물속에 가라앉아 있을 뿐이지. 이 용액을 다시 한 번 가열하면 요오드화납 가루가 물에 점점 녹아들어가면서 용액이 다시 투명해진단다. 그 용액을 찬물에서 재빨리 식히면 요오드화납 가루가 다시 나타나지. 그래, 찬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말이야. 이때는 결정이 자라날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마치 금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아주 작은 가루들이 만들어지지. 반대로 천천히 식히면 결정이 커지고 달라붙어서 원래의 노란 덩어리가 나타나게 될 거야.”

말을 마친 과학도는 시험관을 가로로 내밀었습니다. 살짝 날아올라 발끝으로 시험관을 붙잡은 제비는 다시 한 번 과학도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눈가에 하얗게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환한 촛불 불빛 속에서 마치 은처럼 반짝반짝 빛나 보입니다.

“진짜 금은 줄 수 없지만, 어쩌면 싸구려 눈속임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빛나는 계절에 이 작고 초라한 사람 하나를 구원해주신 분도 함께 빛났으면 하는 마음에 드리는 거란다. 어쩌면 그 분께 이런 걸 드리는 것부터 누가 될지 몰라 마음이 조금 무거워지는구나. 혹시라도 너무 무겁거나 들기 버거우면 중간에 버리고 가렴.”

제비는 고개를 저으며 날아올랐습니다. 확실히 아무리 작다고는 하지만 물이 가득한 시험관은 지친 제비가 감당하기에 많이 무겁고, 또 미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제비는 마지막 힘을 짜내 발끝에 잔뜩 모으며 시험관을 단단히 그러쥐었습니다. 소중한 마음은 절대 떨어뜨릴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법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거리는 여전히 떠들썩하게 빛났습니다. 제비 다리에 끼어 있는 시험관 속의 빛은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도 몰랐습니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 작은 금가루가 시청 앞에 서 있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왕자님’ 동상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따스한 보답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지만 제비가 알고, 왕자님도 조만간 알게 되실 겁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길 위의 이야기, 길 위의 사진들. 당신을 끌어당기는 매혹적인 목소리. 결국 당신 속내의 울림으로 들을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이운경 옮김 / 한문화 / 200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빨간 약을 먹을 것인지, 파란 약을 먹을 것인지는 당신의 선택!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곧 매트릭스로 사유하기, 그리고 살아가기의 문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못 말리는 까미 황마훔 책내음 창작 1
이성자 지음, 김창희 그림 / 책내음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규에게 새 짝꿍이 생겼다. 눈이 크고 얼굴이 거무스레한 여자 아이. 아주 짧은 머리는 젤을 발랐는지 소나무 이파리처럼 뻣뻣하게 솟은 아이였다. 친구들은 서로 잘 알고 있어서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했는데, 이 아이는 자기 소개가 유별났다. 

"내 이름은 황마훔이야. 아빠는 한국 사람이고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지.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데, 특히 달리기를 잘해. 별명은 까미. 안양 할머니 집에 가면 까미 소나무도 있어. 작년 식목일에 삼촌이 심어 준 거야. 그리고 난 돼지고기 절대 안 먹어!"

 

색깔이 분명한 자기 소개다. 모두가 궁금해 할 피부색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했고,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도 밝혔고, 자신에게만 있는 독특한 특징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신에겐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것도 같이 밝혔다.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있었던 것이다. '마훔'이라는 이름이 재미있는데 어떤 의미인지는 밝히지 않아서 아쉽다. 순수 우리말인지, 필리핀의 어떤 말인지 궁금했는데 말이다.

 

자기 소개를 할 때 이렇게 각별한 느낌을 담아서 하는 조건을 내주면 좋겠다. 당장에 머리는 아플 수 있지만 준비하면서 스스로도 재밌고 유익할 것이다. 아이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텐데, 상상해 보는 것으로도 즐거움을 준다.

 

자신의 별명을 '까미'라고 했던 마훔이는 현규에게도 대뜸 별멸을 물었다. 현규의 별명은 '쌩영감'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쌩~하니 제 할일 하는 현규에게 딱 어울리는 별명이다.  

금요일마다 진행되는 짧은 문장 받아쓰기는 아이들에게 대재앙이다. 게다가 마훔이에겐 날벼락 수준. 우리 말을 제법 잘 하지만, 받아쓰기는 만만치 않다. 세종대왕님께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시험지를 보니 억울하게도 생겼다. 파랑이나 파란이나 의미는 같은데 점수는 빵점! 그래도 우리나라 학생들을 포함, 어른까지도... 대개의 사람들이 평생 영어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의 총합을 생각한다면 일방적인 설움은 아닐 것이다.;;;;

 

"선생님, 한글은 도대체 네모랑 동그라미가 왜 이렇게 많아요?"

라고 따지듯 묻는 마훔이. 그러게! 생각해 보니 한글에는 네모도 많고 동그라미도 많고... 이미지로서 떠올려도 훌륭한 디자인이 되는 예쁜 한글이다. 그제야 다들 놀랐다는 듯 네모와 동그라미를 세어 본다. 내가 방금 읽은 첫번째 문장에도 벌써 9개나 들어 있다. 재치가 넘치는 아이들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먼저 읽기 책의 문장 한 줄을 정해서 네모와 동그라미를 세는 게임을 만들어냈다. 이른바  '네모 동그라미 찾기' 게임! 

 

복도에서 뛰어놀지 않고도, 앉은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놀이를 만들어 내는 이 창의력 넘치는 아이들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세종대왕께서도 대견해 하실 것이다.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마훔이는 급식을 배식 받고서 탕수육을 모두 버리는 바람에 아이들의 지탄을 받았다. 자신들에게는 더 먹고 싶어 안달인 맛있는 탕수육이었으니 수근거림이 더 컸을 것이다. 아이들의 불만 어린 목소리 속에서 담임 선생님은 꽤 지혜롭고 공정하게 문제들을 해결해 가셨다. 그래도 누군가는 불만이 남았겠지만, 줄곧 보아온 바로는 꽤 근사한 선생님이시다. 어쩐지 부럽다!

 

현규는 탕수육 사건을 고자질 하는 바람에 토라진 마훔이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 바람에 '마늘 사건'도 벌어졌고, 이래저래 속이 상한다. 급기야는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었고, 둘은 다시 사이 좋은 친구로 돌아간다. 함께 숙제도 하고, 곧 다가올 생일 잔치에 초대도 한다. 친구들의 의견을 모아서 하림이네 짜장면 집에서 잔치를 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마훔이다. 자신이 처음으로 받아본 생일 초대장인데 친구들과 다른 메뉴를 먹고 싶지는 않은 마훔이 때문에 현규는 고민이 크다. 그렇다고 생일의 주인공인 자신이 손해를 보고 싶지도 않다. 이는 곧 엄마들의 고민이 되기도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까 궁금했는데, 비교적 잘 넘어갔다. 조금 토라지는 녀석들도 분명 있었지만, 그 모든 과정들에서 아이들은 '배려하는' 마음을 배웠을 것이다. 아직 어린 친구들이지만 친구를 위해서 손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분명 깨달았을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참 즐거웠던 부분은 의성어와 의태어를 아주 적절한 곳에서 잘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짜장면을 '잘근잘근' 씹으며 연방 웃고 있는 마훔이라든가, 볼이 터지도록 자장면을 불근불근 씹는 현규, 쫄깃쫄깃 맛있는 짜장면 등이 그렇다. 다같이 먹는 똑같은 짜장면이지만 상황에 따라 입장에 따라 의성어와 의태어가 변한다. 우리 말의 묘미다.

 

또한 캐릭터 역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줄 만큼 차별화 되어 있고 그마저도 또 성장한다. 귀엽다는 칭찬에 그런 소리 많이 듣는다며 넉살 좋게 굴던 마훔이는 친구의 생일에 자신만의 특수성을 내세워 요구하는 바가 많았지만, 조금 더 지나면 그런 것이 누군가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사과할 줄도 알게 된다. 현규와 다른 친구들도 서로 견제하며 토라지기도 하지만, 친구에게 기쁜 일이 내게도 기쁜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예쁜 녀석들이다.

 

돌아온 식목일에 까미네 할머니 집에서 삼촌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의 이름을 건 소나무를 심는 아이들. 소나무와 함께 아이들의 우정도 식목일에 새롭게 태어났다. 부디 이 아이들의 우정이 소나무처럼 늘 푸르게 자랐으면 좋겠다. 비록 아주 천천히라 할지라도!

 

'우정은 배려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작가님 또한 후기에서 밝히셨다. 당연히 동감한다. 비단 어린이들 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배려를 통해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을 만들어 간다. 참으로 아름다운 단어다.

 

덧글) 오타가 있다. 후기에 '산에 사는 사무들이'라고 나온다. '나무'라고 고쳐야겠다. 요며칠 동안 읽은 책 중에서 오타가 없는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누가누가 더 많이 틀렸나 내기라도 하는 것 같다. 끙!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찬샘 2012-04-16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에 읽은 책들에서 줄줄이 오타 발견했어요. 왜 그렇죠. 편집자들이 과도한 업무에 짓눌리고 있는 걸까요? 중학년 정도 읽기에 좋을 동화로 여겨지네요.

마노아 2011-12-19 10:30   좋아요 0 | URL
편집자님들의 직무유기 같아요.ㅎㅎㅎ 실수는 가능하겠지만 심하게 오타와 비문이 많으면 성실성을 의심하게 되어요. 저는 이책 초등 고학년이면 되겠다 여겼어요. 등장인물들이 초등학생이면 으레 그리 생각하게 되나봥.^^

희망찬샘 2011-12-19 18:23   좋아요 0 | URL
저도 오타 투성이군요. 왜 그렇죠--->? 추가 / 과도한 업문--->업무 !!! ㅋㅋ~ 물론 다 이해하고 보셨겠지만요. 지금 초등 저학년 중학년 도서 찾고 있거든요. 안 읽은 책인지라 마노아님 의견 따를래요. 초등고학년!

마노아 2011-12-19 23:24   좋아요 0 | URL
조카가 이제 초등4학년이 될 차례인데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줄 책에 포함시키려고 해요. 이해할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헤헷^^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