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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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지가 다 먹고 남은 것들, 그 찌꺼기, 자투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를 놓고, 거기서부터 경제라고 얘기하지. 지가 처먹는 것까지는 경제가 아냐. 그건 분배의 대상이 될 수 없어. 그건 경제에 포함되지 않아. 그건 그냥 당연한 내 권리일 뿐이지. 내가 배 터지게 먹고 남는 게 생기기 전에는 나누자는 말은 꺼내지도 말라는 말을, ‘파이를 키우자’로 바꿔 이야기하지. 공포라는 게 많이 가진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거든. 그래서 만족할 줄 모른다고. 자기가 먹는 것만 생각하니 항상 부족하고 그걸 나누는 건 아깝기만 하다고. 그런데 나누자는 말을 반박하자니 욕먹을 것 같아서, 파이를 키우자고 돌려 말하는 거지.
-41쪽

우를 유일하게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가 바로 자존심. 그게 없으면 그냥 동물. 그리고 기질적 우가 그런 자존심을 가져야 비로소 하나의 정치 세력, 우파라고 불러줄 수 있다. 우리나라 우파는 그게 없어. 우파가 자존심이 없으면 겁먹은 동물. 자존심이 없으니까 미국에 빌붙는 걸 그저 이익의 문제로 치환. 전시작전권 반환이나 한미동맹 이야기하면 우파는 항상 돈 이야기를 한다고. 미국에 분담시키는 게 국방비가 더 저렴하다고. 그게 무슨 우파야. 장사꾼이지. 군사작전권을 남에게 넘겨준다는 건, 전장에 나가 죽으라고 말하는 권리를 남에게 넘겨준다는 건데, 자기 자식더러 죽으러 가라고 명령할 권리를 남에게 넘겨주면서, 그게 더 싸게 먹히니까 넘긴다는 논리를 내세운다는 게 말이 되냐고. 자기 재산을 지켜주기만 하면 그게 누구든 상관없다는 거잖아. 어쨌든 나만 살고 나만 배부를 수 있다면 좀 비굴해도 된다는 거잖아. 그래서 걔네들은 그렇게들 군대를 안 가려고 하는 거야. 친일도 친미도, 결국 자존심 없는 우가, 동물 주제에, 인간 우파인 척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우리 정치는 우파가 많아서가 아니라 우파가 없어서 문제라고. -42쪽

우가, 쎈 놈은 더 가져가도 된다는, 질서와 위계를 당연시하는 수직적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좌는 누구나 같은 조건에선 같은 정도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지. 그러니 연대가 키워드가 되는 거고, 그 연대를 작동시키는 엔진은 염치가 되는 거지. 인간이 가진 염치. 우의 엔진이 욕망과 공포인 데 반해서. 그렇게 우는 동물의 반응이고, 좌는 이성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지.
-44쪽

좌의 취약점이 뭐냐. 좌는 스스로 지적으로 우월하고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는 거. 그게 왜 문제냐면, 좌가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다 보니 부지불식간 드러나는 지적 오만이 대중들로부터 좌를 유리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거. 자기들만의 언어로, 자기들끼리만 대단하고 자기들끼리만 정당하지. 그러고는 자신들의 언어로 거대한 담론을 설법하려들지. 예를 들어 우리 좌파가 입에 달고 사는 ‘신자유주의’란 용어만 해도 그래. 그 언어로 대중을 설득하려는 시도 자체가 어리석은 거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선, 자기들끼리의 리그에서 자기들끼리의 언어로 자기들끼리만 잔치를 하고 만다고. 자기들끼리 거룩한 순교자가 되는 거지.
-47쪽

우에게 격차는 자연스러운 거라고 했잖아. 지가 못사는 건 그냥 지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들에게 그런 불평등은 당연한 거고, 자연의 이치인 거지. 그러니 복지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그들의 게으름을 방조하고 조장하는 거라고 생각해. 아니 왜 자기가 잘못한 걸 국가가 대신 책임져주냐는 거지. 그렇게 돈이 아깝다는 소리를 ‘모럴 해저드’라는 그럴듯한 용어로 돌려 말하지. 그들이 복지와 관련해 할 수 있는 최대치는, 훨씬 더 강한 내가, 약해빠진 널 불쌍히 여겨 다소간의 도움을 주도록 하겠다, 지. 그건 복지가 아니라 시혜라는 걸 몰라. 복지란 불쌍해서 돕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공동으로 보장해주려는 사회적 염치라는 걸 이해할 수 없는 거야. 나는 우리나라 우파는 원시인을 설명하는 수준에서 백 퍼센트 해석된다고 봐.
-52쪽

미국에서도 보면 총기 소지의 절대적 자유를 주장하는 애들이 우파란 말이지. 우란 게 결국은 이 두려운 무한 경쟁의 세계에서, 나 혼자서 나를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공포감에서 출발한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내가 날 보호하는 자위의 수단을 갖는 건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일 수밖에 없는 거지. 미국에선 그게 총이지. 우리나라에선 부동산이고. 그래서 우파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자위, 국방 같은 개념에 대단히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자신을 지킬 권리를 설파하지.
-53쪽

우파들은 본능적이고 일차원적인 만큼 나름의 매력도 분명히 있거든. 자존심 있는 우파들이, 자기 목을 내놓더라도 그건 못하겠다고 덤빌 때의 결기, 그 비장함, 짠함 같은 게 분명 있거든. 내 머리카락을 자르려거든 차라리 내 목을 따라는 식의. 그럴 때 우파는 대중의 정서를 다이렉트하게 자극한다고. 열광시킨다고. 그런데 이명박은 완전 유인원인 거야. 창 대신 돈을 든. 그래서 조갑제가 이명박을 싫어하는 거야. 자존심 있는 우파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폼이거든. 비장미가 거기서 나오거든. 그런데 이명박은 압도적인 수준의 동물적 천박함을 발산하고 있으니까. 인류가 쌓아온 정신적인 성과물 자체가 흔적도 없는 거지. 난 그래서 이명박이야말로 순결하다고 봐. 뇌에 구김살이 없어. 뇌가 완전 청순한 거야. 그래서 이명박에게 중요한 건 이념이 아니라 이권인 거지. 오로지. 그래서 내가 만날 그러잖아. 이명박은 국가를 수익 모델로 삼는다고. 비유가 아니라 실제라니까.
-54쪽

이명박이 그동안 안겨준 피로감은 정말 역대 최고 수준이거든. 난 군사정권보다 훨씬 심각한 규모의 피로를 안겨주고 있다고 봐. 군사정권이 구사한 전략은 물리적 협박이었어. 그런 주먹을 휘두르는 위협에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고. 그래서 그게 무서워 입을 다무는 사람은 기분이 나쁘긴 해도 적어도 스스로 초라하다고 생각하진 않아. 그 정도면 무서운 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이명박의 방식은 밥줄을 끊는 거야. 정치 보복의 금전화, 정치 탄압의 생계화, 긴급조치의 민사화가 바로 이명박 식이라고. 국민이 직원이고 자기가 대한민국 CEO니까. 까불어, 그럼 벌금 먹이고 정직시키고 파면시키고 소송 걸고. 이게 본질은 다 돈이고 생활이거든. 한마디로 밥줄공안의 시대가 개막된 거지.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이명박의 이념은 돈이니까. 그런데 물리력이 아니라 이렇게 자기 밥줄 걱정에 입 닥치는 건, 자조와 자괴로 돌아온다고. 너무 초라하잖아. 이게 진짜 나쁜 거야. 자기 하나 살자고 나머지 국민들을 자기비하하게 만드는 거니까. 그로 인한 정신적 피로감이 대단하다고.
-59쪽

삼성이 나쁘다는 주장에 적극 동의하는 사람들조차 품질이 더 우수해서 쓰고 있는 삼성 제품이 분명히 있거든. 그럼 그런 사람들은 죄의식을 느끼거나 자기 합리화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게 된다고. 삼성과 이건희를 동일시하는 전략의 성공이 사람들에게 그런 딜레마를 안긴 거지. 삼성 제품 불매운동이 효과적이지 않은 요인 중 하나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삼성 물건을 좀 불매한다고 해서 이건희에게는 전혀 타격이 안 가요.
-167쪽

진보 진영이 대중을 상대하는 자세를 보면 딱 사제야. 자신들의 율법이 절대선인데 왜 너희는 그렇게 살지 않느냐. 자기들은 그걸 이미 알고 믿고 실천하건만 너희는 왜 이렇게 올바르고 참된 가치를 좇지 아니하느냐. 그러면서 외치지. 회개하라, 그러면 구원을 얻을 것이니. 그 절대 가치의 전도를 위해 헌신하는 자신들의 노고가 어쩌면 당대는 아니더라도 먼 훗날 진짜 진보 정권의 탄생으로, 그 구원으로 보상받을 거라고 서로서로 위로하면서. 그렇게 그들의 주장은 말씀이고, 그들의 언어는 방언이며, 그들의 희생은 순교가 되는 거지. 그렇게 모두를 절대적인 진보 가치를 외면한 죄인으로 만들어버리지. 그래서 불편한 거야. 그 죄의식 마케팅이. 그래서 듣기 싫다고.
-192쪽

우린 섬이 아닌데도 섬처럼 사고하잖아. 삼면이 바다고 나머지 한 면은 벽이니까. 분명 육지로는 이어져 있는데 ‘프랑스에 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해 가봐야겠다.’, 이런 상상이 불가능하잖아. 그래서 항상 우린 세계를 우리와 별도의 공간으로 인지하지.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이런 구호, 조금만 생각해 보면 웃긴 말이라고. 그럼 우린 화성인인가. 우리도 세계 속에 있어. 그런데 자꾸 세계로 가자고 하잖아. 섬나라 의식이지. 세계는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거야. 예를 들어 북쪽엔 스웨덴·핀란드가 있고, 남쪽엔 벨기에·프랑스 동쪽엔 룩셈부르크·독일이 있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아이를 생각해보자고. 걔는 이미 중고생 시절부터 배낭 지고 주변국들을 여행하며 자기의 상대적 위치를 입체적으로 인지하게 된다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 세계와 분리된 게 아니라, 그 속에 있다는 의식. 그래서 나로부터 시작해 가족, 지역, 국가, 세계로의 인식 확장에 단절이 없는 거야. 로컬과 글로벌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 그래서 걔네들은 바이크 타고 북경까지 오는 상상을 할 수가 있는 거야. 땅이 연결되어 있잖아.
-204쪽

그 나이대 청년들이 군대 가지 않고 취직해서 받을 평균 급여를 생각해보자고. 아무리 낮게 잡아도 최소 100만 원대는 될 거야. 그러니까 그 나이대 청년들은,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도, 월 100만 원씩 나라에 내면서 군 복무를 하는 거라고. 이걸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말 한마디로 다 덮어버리는 건 대국민 사기지. 그렇게 신성한데 왜 거지 대우를 해, 씨바.

그러니까 군가산점 문제로 여자들과 싸우는 남자는 스스로의 멍청함을 자백하는 거야. 왜 여자들과 싸워. 정부와 싸워야지.
-209-210쪽

난 이명박이 역사적으로 굉장한 일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찌나 시대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지, 정치에 전혀 관심 없던 일반인들까지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온몸으로 자각하게 해준 공로를 따로 기록해서 역사에 길이 남겨야 마땅하다고 봐. 난 이명박 퇴임 후에는 동상 세워줘야 한다고 봐. 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한 안티히어로로.
-240쪽

자신은 권력이 작아서 부조리한 걸 알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면 인간적으로는 이해 가. 하지만 그럼 정치하지 말아야지. 좋은 교수, 착한 기업인, 성실한 검찰 해야지. 그런 말은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이 국회에 취직한 직장인이란 소리밖에 안 돼. 할 일이 그건데. 해야만 할 말을, 하라고 국회 보냈는데. 그따위 정치인 코스프레는 다 집으로 돌려보내야 해. 물론 그러면 국회가 거의 텅 비겠지만.
-249쪽

가장 중요한 건 균형 감각이야. 행정은 언제나 생활과 관련이 있어. 생활이란 결국 욕망인 거고. 그런데 그 욕망의 주체가 개인만 있는 게 아냐. 기업도 기업의 욕망과 그로 인한 생활이 있거든. 기업뿐이 아니지. 욕망의 주체는 엄청나게 많아. 그래서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갈등이 반드시 있다고. 이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균형 감각이야. 행정적 균형 감각이 아니라 철학적 균형 감각. 하지만 행정과 실무의 균형만으로는 세상의 균형을 찾을 수 없어. 사실은 둘 다 옳을 때가 많거든. 둘 다 옳을 때 우선순위의 문제가 생기고 바로 그때 가치의 문제가 발생해. 그럴 때 필요한 게 철학이야. 그래서 대통령은 사상가가 되어야 하는 게 맞아. 지금이 세계가 어떠하고, 어떤 가치가 우선 구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 철학과 통찰이 분명하게 있어야 해.
-257쪽

그러니까 투표는 사실 민주주의를 위한 게 아니야. 그런 건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야. 투표는 내 스트레스의 근원을 줄이려는 노력이야. 그게 줄어야 내가 행복해지니까. 내 행복과 정치의 연결 고리를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이명박이 얼마나 고마워.
-259쪽

현재 대중의 거대한 결핍이 뭔가를 봐야지. 그것부터 받아 안아야지. 당장의 요구도 받아 안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20년 뒤를 이야기해. 사람들은 당장 죽겠다는데, 20년 뒤를 이야기하는 건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야. 두 달 뒤도 모르는 인간이 어떻게 20년 뒤를 이야기해. 그건 사기야. 자신 없는데 딴 길은 안 보이니까 사기 치는 거야. 도망가는 거야, 씨바.
-309쪽

이념이 사람을 구하리라. 아니다. 이익이 나라를 구하리니. 아니다. 인간이 모두를 구해야 하는 시대다. 이념과 명분과 논리와 이익과 작전과 조직으로 무장한 정치인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보편준칙을, 담담하게, 자기 없이, 평생 지켜온 사람이 필요하다. 시대정신의 육화가 필요하다.
-3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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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2-26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비수로 와박습니다.
정말 필독해야겠어요.ㅋㅋ

마노아 2012-02-26 20:28   좋아요 0 | URL
재밌고도 바람직한 교과서랄까요.^^;;;
 
눈의 음악 큰북작은북 음악여행 1
린레이 퍼킨스 지음, 이상희 옮김 / 큰북작은북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겨울 음악 모음 cd가 들어있는 그림책이다. 언뜻 '피터와 늑대'가 떠오르는 설정이다.

 

 

 

표지를 열면 시디가 한 장 들어 있다. 눈 내리는 겨울 풍경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 열 세곡이 담겨 있다.

 

1. 슈만-어린이정경 중 '미지의 세계'

2. 웰리-'성당의 종소리

3. 비발디-사계 중 '겨울2악장'

4. 그리그-페르귄트 중 '아침'

5. 차이코프스키-호두까기인형 중 '중국의 춤'

6. 슈만-어린이정경 중 '술래잡기'

7. 레오폴드 모차르트-음악썰매 중 '썰매타기'

8. 르로이 앤더슨-썰매타기

9. 헨델-하프협주곡 Bb Op.4 no.6 중 1악장

10. 차이코프스키-호두까기인형 중 '풀피리의 춤'

11. 헨델-수상음악 중 '미뉴엣'

12. 파가니니-베니스의 축제

13. 슈만-어린이정경 중 '난롯가에서'

 

그래도 익숙한 곡들이 몇 곡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클래식을 열심히 들었던 때라곤 고등학교 때 겨울 방학 숙제로 여러 음악들을 들어야 했던 때가 전부인 것 같다. 그때 들었던 노래들이 지금 이 목차에 들어있다. 새삼, 반갑고 기쁘다. 어린이정경은 무척 익숙했고, 비발디의 사계는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을 연상시켜서 재밌었다. 그리고 아주 마음에 들었던 곡은 4번의 '아침'이다. 요새 매일 시사 관련 뉴스만 청취하다가 이렇게 고운 음악을 들으니 심신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밤새 눈송이가 사락사락 내렸다. 새들의 둥지에도, 토끼의 아늑한 보금자리에도, 그리고 침대에 누워 꿈나라로 여행을 간 어린아이의 머리맡에서도 눈이 소복하게 쌓이는 정겨운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밤새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가운데 문을 열자마자 검둥이가 밖으로 뛰쳐나갔다. 잡을 새도 없이!

 

 

 

 

눈밭에는 제일 먼저 발자국을 찍은 동물들의 흔적이 저마다 제 영역을 표시했다. 발자국의 모양으로도 어떤 동물이 선수를 쳤는지 짐작 가능하다. 눈이 내리는 소리를 하느님의 발자국 소리로 표현했다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들려주신 신춘문예 당선작 이야기도 떠오른다. 아이는 검둥이를 찾기 위해 친구와 함께 다른 동물들처럼 새하얀 눈 위에 제 발자국을 찍는다. 발자국의 모양이, 그 깊이가 마치 음표처럼 춤을 춘다. 모두 이으면 하나의 노래가 될 것만 같다.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서야 멀리 검둥이가 보인다. 착하다고 칭찬을 해주며 목끈을 달아본다. 그렇게 달래야 집으로 순순히 돌아갈 것을 알고 있기에...

 

 

 

 

구름이 다시금 눈을 뿌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밤새 내릴 모양이다. 차가운 눈이 내리건만, 그 눈이 감싸안는 마을 풍경은 포근하기만 하다. 저 눈송이가 모두 하나의 이야기를 제각각 품고 있는 것만 같다. 저 따뜻한 풍경 속에 가족이 있고, 그들의 충만한 삶이 있고, 그리고 이렇게 노래가 있다. 각각의 곡들이 그림 속의 모습과 하나하나 연결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겨울'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구성되어 있으니 이 분위기를 만끽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그리고 대망의 반전이랄까.

 

 

 

 

 

시선을 멀리 잡아보니, 이 모든 이야기가 펼쳐진 저 평화로운 풍경의 마을은 바로 '스노우볼' 속의 모습이었다. 스노우 볼 속에서 가득가득 담겨 있는 눈송이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이다. 저 불빛, 저 초록 지붕, 저 나무까지 모두 세세히 담아낸 장인의 솜길이 느껴진다. 지난 크리스마스 경에는 스노우볼이 갑자기 마구 갖고 싶어졌다가 그 마음이 지나갔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다시금 스노우볼이 갖고 싶어졌다. 다현양이 보면 까르르 웃으며 아주 좋아할 것만 같다.

 

'피터와 늑대'처럼 각각의 그림에서 연상되는 소리와 노래가 모두 접목이 된다면 더 좋았겠지만, 겨울과 눈이라는 주제로 묶여 있으니 이 책도 나쁘지 않다. 그림이 아주 섬세하거나 정교한 것은 아니지만 이것 역시 음악의 힘으로 아쉬움을 모두 메워준다. 역시 음악은 위대하다. 원래 겨울을 싫어하는 나였지만, 어쩐지 겨울과 이 풍경들이 사랑스러워진다. 그림속 겨울이라서 그럴 테지만, 그래도... 그래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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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2-2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그림책은 시디가 맘에 들어요. 겨울 분위기 제대로죠. 애들하고 한 때 겨울만 되면 이 음악 틀어줬는데. 아 그 때의 아늑함은 이루말 할 수 없어요.

마노아 2012-02-22 23:49   좋아요 0 | URL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림이 그려져요. 아름답고 포근한 풍경이에요. 글과 그림과 음악의 조화, 곱디 고와요.^^

2012-02-23 0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2-02-23 11:30   좋아요 0 | URL
아앗, 등록하고서 다시 살펴봤어야 하는데 꼭 이렇게 오탈자가 있어요.^^ㅎㅎㅎ
지금 수정했습니다.
http://gift.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8069635X
알라딘에서도 파네요. 크리스마스 전이라면 정말 하나 구매했을 텐데...^^
 

제 1546 호/2012-02-20

상체에 비해 하체가 상대적으로 튼실한 하체비만의 경우 살이 잘 빠지지 않아 고민하는 여성들이 많다. 하지만 하체비만이 건강에는 더 좋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연구팀은 복부가 아닌 하체에 축적된 지방이 HDL의 수치는 높여주고 LDL의 수치는 낮춰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HDL은 좋은 콜레스테롤로,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작용을 하는 반면 LDL은 나쁜 콜레스테롤로 알려져 있다. 또한 연구팀은 풍만한 엉덩이가 당뇨병의 위험을 낮춰준다고 밝혔다.

영국 국민의료보험(NHS)재단 햄머스미스병원의 지미 벨 교수는 “허벅지 주변에 축적된 지방은 위험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염증성 지방을 소탕하는 완충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한 “엉덩이 쪽의 지방은 복부지방보다 늦게 빠지게 되므로 당뇨, 심장질환, 비만을 유발하는 염증성 화합물인 사이토카인을 덜 생산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연구팀은 하체에 있는 몸에 좋은 지방을 너무 많이 태워 없애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경고했다. 물론 복부의 과도한 지방은 건강에 좋지 않으므로 없애는 것이 좋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 비만 저널에 실렸으며 영국 일간신문 데일리메일에 2012년 2월 7일 보도됐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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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2-22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마노아 2012-02-22 16:01   좋아요 0 | URL
옷 입기도 상체비만보다는 하체비만이 낫죠. 실제로 여자들도 상체비만보다는 하체비만이 차라리 낫다!하고 여긴다는데, 건강상으로도 낫다고 하네요.^^

다락방 2012-02-22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엉덩이로 추측해보건데 당뇨 걱정은 안해도 되겠네요. -_-

마노아 2012-02-22 20:00   좋아요 0 | URL
울 엄니가 꽤 오래 건강히 지내신 것은 하체비만인 덕분 같아요.
하지만 울 엄니는 당뇨 초기 증상...ㅜ.ㅜ

책가방 2012-02-22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우리딸이 완전 하체비만형 체형인데..ㅎㅎㅎ
근데 그게... 교복을 입으면 감쪽같이 감춰져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답니다.
엉덩이와 허벅지만 유난히 굵어서 요즘 운동중인데.. 말려야 되는걸까요??

마노아 2012-02-22 20:01   좋아요 0 | URL
제 친구도 그런 경우가 있는데, 옷만 잘 입으면 아무도 모르는 체형이에요. 얼굴 작고 상체 말라서 캡 날씬해 보여요. 운동으로 관리가 되면 좋긴 한데, 아직 한참 자랄 때니까 좀 더 지켜봐도 되지 않을까요? ^^

웽스북스 2012-02-22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복부는 없애야겠군요. ㅋ 하체에 축복이 너무 과하게 임했는데 ; ㅋㅋ

마노아 2012-02-22 20:01   좋아요 0 | URL
복부에 대해선 면죄부가 없어요. 과도한 축복에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ㅎㅎㅎ

Kitty 2012-02-23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물론 복부의 과도한 지방은 건강에 좋지 않으므로 없애는 것이 좋다' <- 이거 보고 좌절;;;;;;;;;;;;; OTL

마노아 2012-02-23 18:18   좋아요 0 | URL
이래서 조선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나봐요. 크흑...ㅜ.ㅜ
 

FUSION 과학

제 1547 호/2012-02-20

 
경주로, 육상트랙 부럽지 않아~

다정한 연인에 도시락 싸온 가족까지! 오늘도 많이들 오셨군요. 이런 날은 뛸 맛이 납니다. 함성 소리가 커지면 제 심장은 더 힘차게 뛰지요. 히이잉~ 히잉~ 어서 달리고 싶어 자꾸 달그락거리게 되네요. 오늘은 예감이 좋습니다. 어제 내린 비로 경주로의 모래가 단단해져서 기록도 꽤 좋을 것 같습니다. 라인도 안쪽이라 승산이 있어 보입니다. 관람객 여러분, 제가 지난 몇 번의 경기에서 꽤 기록이 나빴지만 그건 염두에 두지 말고 절 찍으세요. 경마는 말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사실 경기장 상태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거랍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요? 믿지 못하시겠다고요? 제 얘기를 좀 들어보세요. 다행히 오늘은 날이 좋습니다만, 어제는 비가 꽤 많이 내렸지요? 저기 4코너 주변을 보십시오. 아직도 물이 고여 있지 않습니까? 멀리 관람석에서 보기에 말들이 달리는 경주로는 평평해 보이지만 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경륜 벨로드롬이나 빙상 쇼트트랙 경기장처럼 눈으로 식별이 가능한 정도는 아니지만, 경마 경주로 역시 안쪽과 바깥쪽의 기울기와 높낮이가 차이가 납니다. 직선 주로 부근은 가운데가 약간 높고 양쪽이 낮은 형태입니다. 배수(排水)를 빠르게 하기 위해 그렇지요. 곡선 주로는 안쪽이 낮고 바깥쪽이 높은 형태입니다. 이런 형태는 배수를 원활하게 할 뿐만 아니라 원심력이 작용하는 코너에서 말들이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게 도와주지요. 육상 트랙경기에서 선수들이 안쪽을 차지하려고 싸우다가 넘어지는 것을 보신 적 있죠? 안쪽이 확실히 유리합니다. 제가 오늘 딱 좋은 자리에서 출발하네요.

4코너에 물이 고인 이유는 그곳이 경주로에서 가장 낮은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높은 곳은 결승점입니다. 가장 낮은 지점과 가장 높은 결승점은 높이의 차이가 4m에 이릅니다. 상당하지요? 결승점은 마치 언덕길마냥 점점 높아져서 말들이 지나치게 가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합니다. 오르막이 힘들어 적정 속도를 유지하니까 지나친 가속으로 인한 말과 기수들의 부상도 막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경주를 원활하게 하려는 세심한 배려의 결과입니다.

히잉히잉~~, 이제 제 발 밑에 깔린 모래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까 4코너 주변에 물이 고였다고 했습니다만, 근래 내린 집중호우를 생각해 보면 경주로는 참 신기할 정도로 물이 없는 겁니다. 마치 맑은 날만 계속된 것 같이 말이지요. 경주로는 배수를 원활하게 하고 말과 기수의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 꼼꼼하게 디자인됩니다.

전 세계 경마장의 경주로는 모래주로, 잔디주로, 인조주로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마장은 3곳으로, 모두 모래주로입니다. 이 모래주로는 땅 속 60cm에서 시작됩니다. 먼저 4~10cm의 굵은 모래를 33cm 깔고, 그 위에 4cm의 돌을 10cm 깝니다. 그 위로 마사토 10cm 위에 굵은 모래 8cm를 덮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건 모래층 8cm 뿐이지만요. 제일 위의 모래층은 맹렬하게 달리는 말의 말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일본의 삿포로, 하코다테 등의 경마장은 8.5cm, 미국의 사라토가나 벨몬트 경마장은 9.5cm로 우리나라보다 더 두터운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 국내 경주로는 모래주로로 두께가 무려 60cm나 된다. 사진 제공 : 한국마사회


경주로에 사용되는 모래들은 아무 곳에서나 퍼오는 게 아닙니다. 강의 모래인지, 바다의 모래인지 모래의 출신성분도 중요합니다. 강의 모래는 염분이 없어 좋지만, 입자가 바다모래보다 거칠고 점토의 비율이 높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강의 모래를 쓰지만, 일본의 경우는 바다 모래의 염분을 세정한 뒤 사용한다고 하네요. 아, 그런 곳에서 저도 한 번 달려보고 싶군요.

모래층의 모래가 균일한 크기가 되도록 유지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사회 직원들이 손으로 일일이 큰 돌을 골라냈다고 합니다. 그 풍경을 상상해보면 웃음이 먼저 나오네요. 하하. 물론 지금은 기계가 모래를 선별하는 작업을 합니다. 모래층의 두께와 굵기를 한 번에 조절하는 특수장비지요. 모래 크기가 제 각각이면 배수 기능은 더 좋겠지만, 말의 발굽을 보호하는 기능은 떨어집니다. 저에게는 당연히 모래 크기가 비슷하게 관리되는 편이 좋지요.

잔디주로는 유럽의 많은 경주로에 채택되는 방식입니다. 푸른 들판을 달리는 느낌이니 얼마나 좋을까요. 관람객들이 보기에도 그만이겠지요. 하지만 잔디를 키울 기후 조건이 갖춰져야 하고, 또 관리하기 힘들어 경기 횟수가 적은 상황에서만 가능합니다. 제가 있는 서울 경마공원은 1년에 1,100개의 경주가 치러지는 곳이니 잔디주로는 아무래도 어렵습니다. 미국 등에서 설치가 늘고 있는 인조주로도 있습니다. 모래주로의 단점을 보완한 인조주로는 폴리트랙, 쿠션트랙, 타페타 등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래주로에서 잘 달리는 말이 잔디주로나 인조주로에서도 역시 잘 달릴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잔디주로에 익숙한 유럽의 말들은 모래주로에서는 성적이 나빴지만, 인조주로에서는 성적이 좋았다고 합니다. 저처럼 모래주로에서 성적이 그저 그런 말도 잔디주로에 가면 훨훨 날지도 모르지요. 아 한 번 달려보고 싶군요! 그 푸른 잔디 위를 말입니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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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타 마리코 지음 / 베틀북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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