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자연 - 정선의 진경산수화로 배우는 옛 그림 학교 3
최석조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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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친구의 딸에게 주려고 샀던 책이다. 선물로 주기 전에 내가 먼저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읽다 보니 아주 재밌었고, 친구를 만날 때까지 다 읽지 못해서 결국 친구의 딸이 아닌 내 책이 되어버렸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마음에 드는 결과라고 할까.^^

 

이 책 아트북의 옛 그림 학교 시리즈는 우리 조상들이 그린 옛 그림을 읽어주는 학교라고 할 수 있다. 앞서 '김홍도의 풍속화로 배우는 옛 사람들의 삶'과 '신윤복의 풍속화로 배우는 옛 사람들의 풍류'에 이은 세번째 시리즈다. 초등학생과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아주 친근한 말씨와 어렵지 않은 설명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마치 정선의 그림 속으로 뛰어들어간 것처럼 생생하게!

 

정선의 그림은 유명한 게 워낙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이 그림의 장엄함은 특히 인상적이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저 가사로 익숙한 금강산의 모습이다. 노래 가사처럼 정말 일만 이천봉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하겠다.^^

정말 금강산의 봉우리는 1만 2천개일까요? 이렇게 알려진 건 금강산의 이름과 관련 있습니다.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 “동북쪽 바다 가운데 금강산이 있는데 법기보살이 1만2천 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구절이 있거든요. 여기서 1만 2천봉우리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만큼 산세가 험하고 다양하다는 뜻도 되겠지요. 실제로 금강산에는 1000m 이상 되는 봉우리만도 100개가 넘는답니다. -15쪽

 

일만 이천봉우리는 아니더라도 금강산을 실제로 본다면 그 절경에 입이 쩍 벌어질 것만 같다. 살아서 금강산에 오르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었고, 금강산을 직접 보면 소원을 이룬다는 말까지 생겼으니, 이 산이 얼마나 경탄의 대상이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오죽하면 금강산 때문에 머리 깎고 속세를 떠나려고 하였을까.

 

조선시대에는 한양을 출발해서 보통 4~5일이면 금강산에 도착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단발령이란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이곳에 오르면 저 멀리 금강산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단발령은 ‘머리를 깎는 고개’라는 뜻입니다. 처음 마주치는 금강산의 절경에 감탄한 나머지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 금강산에 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요. 그래서 화가들도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의 모습을 즐겨 그렸습니다. -32쪽

 

다시 그림을 보자. 사계절 다른 이름으로 불리었던 금강산! 이중 '금강산'은 봄의 이름이고, 여름엔 신선이 산다는 뜻의 '봉래산', 가을엔 '풍악산', 그리고 저 그림의 모델이 되어준 계절인 겨울엔 뼈를 드러낸 것 같다고 해서 '개골산'이라고 불렸다. 이름 탓인지 그림의 산이 더욱 앙상하게 느껴진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왼쪽과 오른쪽 산의 풍경이 무척 달라 보인다. 왼쪽 산은 나무가 울창하고 오른쪽은 바위 봉우리들이 뾰족뾰족해서 영어 이름 '다이아몬드 마운틴'을 연상시킨다. 왼쪽은 육산, 오른쪽은 골산으로 보면 된다. 자세한 설명을 옮겨 보면 이렇다.

골산은 바위산을 가리킵니다. 마그마가 그대로 땅속에서 굳어져 생성된 화강암이 오랜 세월을 거쳐 땅 위로 드러났지요. 아름답기는 하지만 식생이 빈약합니다. 설악산, 관악산, 인왕산은 골산에 속합니다. 육산은 흙이 많이 뒤덮인 산을 가리킵니다. 흙산이라고도 하는데 완만한 산줄기에 숲이 울창하며 여러 가지 식생이 잘 발달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육산으로 지리산을 꼽지요. -19쪽

한 글자의 한자가 그림 속 산의 풍경을 잘 표현해 주었다. 이름으로 다가가니 산이 살아있는 인격체로 느껴질 정도다.

 

정선은 이 그림을 금강산에 다녀온 후 무려 22년 만에 그렸다. 이렇게 정교한 그림을 어찌 그렇게 오랜 시간에 뒤에 그렸나 놀라울 법하다. 하지만 정선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그려본 게 아니었으니까.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수도 없이 그려보았다.

 

금강산은 멀고 험해서 쉽게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금강산 유람이 유행처럼 번집니다. 너도나도 앞 다투어 유람을 떠났지요. 여행이 끝난 후에는 무얼 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행 중에 찍었던 사진을 꺼내보며 추억을 되새기겠지요. 선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억을 더듬으며 그림을 감상하지요. 이렇게 방 안에 앉아 그림을 한 장씩 펼쳐보는 일을 와유(臥遊)라고 합니다. ‘방 안에 누워서 유람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려면 썩 잘된 그림을 구해야 합니다. 바로 정선이 선비들 입맛에 쏙 맞는 그림을 그렸지요. -26쪽

만화가가 같은 얼굴의 주인공을 계속해서 그려낼 수 있는 것처럼 정선 역시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금강산을 방금 본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려낼 수 있지 않았을까. 수없이 그렸던 경험과 감동의 기억을 더듬어서 말이다.

 

이 책은 2박 3일 동안 정선의 그림 세계를 여행한다는 취지로 구성을 했는데, 첫째날의 주제가 금강산이었다. 그리고 여행 사이사이에는 마치 휴게실에 들러서 잠시 쉬어가는 것처럼 다른 주제를 하나씩 담아냈는데, 그 첫번째 휴게소에서는 동물 그림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그 중 내게 인상깊었던 그림은 이것이다.

 

 

 

어라? 고슴도치 등에도 오이가 한 개 얹혔군요. 어쩌다 등에 떨어진 것이라고요? 하하하, 고슴도치가 직접 딴 것이랍니다. 오이 위에 그대로 뒹굴면서 가시를 이용해 포크처럼 쿡 찍어 따지요. 그래서 ‘고슴도치 오이 걸머지듯’이란 속담도 생겨났답니다. 남에게 진 빚이 많다는 뜻이지요. -49쪽

포크처럼 콕! 찍어서 오이를 나르는 고슴도치의 모습이 재밌다. 나름의 신성한 노동이 아니겠는가! 이 그림에는 많은 자식을 계속해서 주렁주렁 낳으라는 기원이 담겨 있다. 쭉쭉 뻗은 오이 넝쿨과 셀 수 없이 많은 고슴도치의 가시가 바로 그 뜻을 보여주고 있다.

 

정선이 그린 내금강 그림 중 '백천교'도 눈길을 끌었다. 까닭은 그림 속 가마중 때문이다.

 

 

 

금강산의 절에 사는 스님들이 선비들이 탄 가마를 메기 위해서 대기 중이다. 참으로 천대 받고 괄시 받던 조선 승려들의 처지를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것에 대한 복수일지 모르겠지만, '백천교' 그림에는 다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림 제목에 있으면서도 말이다. 다리가 없는 곳은 필시 선비들도 발을 적시며 건너야 할 것이다. 물론, 하인 등에 업히는 방법을 택할 인사가 더 많을 것 같기는 하지만!

 

 

 

지난 5월에 간송미술관에서 정선의 그림들을 보았다. 그때 보았던 '총석정'을 이 책에서 다시 만날 수가 있었는데, 덕분에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해금강에는 육각형의 돌기둥이 다발로 묶여 세워져 있는데, '총석'이란 돌 다발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총석적은 그 옆에 있는 정자를 말한다. 육각 돌기둥은 지각 변동으로 생긴 것이다. 바위가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아 풍화된 것인데, 금강산의 화강암과 달리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문용어로 '주상절리'라고 하면 되겠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제주도! 그곳에 가서 저런 모양의 돌기둥을 보게 되면 그땐 또 다시 정선의 그림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

 

첫째날의 주제가 금강산이었다면 둘째날 여행의 주제는 수도 한양이었다. 정선은 한양이 곳곳을 그림으로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송파 나루의 모습이다. 유유히 떠가는 배의 모습도 눈길을 사로잡지만, 송파진에 대한 설명에 눈길이 더 꽂혔다.

 

송파진은 한양과 경기도 광주를 잇는 중요한 나루터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 10대 상설시장이 세워질 만큼 붐비던 곳이지요. ‘임금님께 진상하던 꿀단지도 송파를 거친다’는 속담까지 생길 정도였습니다. 왜 이렇게 붐볐냐고요? 한양 4대문 안의 상권을 독점하던 시전상인들에게 밀려난 영세 상인들이 이곳에 송파장을 크게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송파장의 규모가 커지자 시전상인들이 송파장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당할 송파상인들이 아니지요. 구파발·애오개·녹번·아현 등에 있던 놀이패를 끌어다가 산대놀이를 공연했거든요. 이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장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지 뭡니까. 그런 송파진이 지금은 왜 사라지고 없을까요? 홍수 때문에 자주 물이 넘치자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송파진은 흙으로 메워버렸습니다. 바로 지금 놀이공원이 서 있는 자리입니다. 그래도 나루터가 있던 흔적은 남았습니다. 놀이공원 옆 석촌호수 말입니다. 바로 이 석촌호수가 바로 송파진이 있던 흔적이랍니다. -101쪽

이제 롯데월드를 가게 된다면, 그래서 자이로드롭을 타서 멀리 석촌호수를 바라보게 된다면 정선의 이 그림을 떠올릴 수 있을까? 긴장으로 손발이 오그라들었을 텐데 아무래도 그건 무리겠다. 그래도 땅을 다시 밟으며 안도의 숨을 내쉴 때 석촌호수와 송파진을 함께 떠올린다면 좋겠다. 혹시 마음이 평화로워질지도 모르니까.^^

 

아마 김홍도나 신윤복이었다면 사람들이 북적이는 송파장을 더 선호하며 그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선비 체면에 풍속화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을 터! 정선의 입맛에는 풍속화보다 산수화다. 그것도 진경산수화!

 

 

 

드디어 기다리던 그림이 나왔다. 내가 보지 못한 금강산보다 내가 본 인왕산을 그린 이 그림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두 그림 모두 리움미술관을 가야 하지만, 비온 뒤의 인왕산을 직접 보는 쪽이 더 끌린다. 물론, 비오는 날의 산행은 좀 두렵긴 하지만... ^^

 

셋째날의 그림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주제를 가졌다. 금강산과 한양을 제외하고도 정선의 그림 소재가 된 곳은 조선 팔도에 널려 있었다. 그중 그림이 소리를 재생시켜주는 효과를 주는 멋진 그림이 있다. 바로 박연폭포다.

 

 

 

 

 

같은 소재지만 아주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하나는 박연폭포, 하나는 박생연이란 제목으로 되어 있는데, 폭포수가 떨어지는 물길 옆의 정자와 오른쪽 위의 성문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래도 저 장대한 물줄기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그 힘의 파괴력이 그림 밖으로 생생하게 전달된다. 당장 이무기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모양새다. 힘있는 그림에 거칠고도 섬세한 붓질이다.

 

 

 

수많은 그림을 그렸던 정선이지만 자신의 초상화는 그리지 않았을까? 이 그림을 보자. 부채를 든 선비가 툇마루에 비스듬히 앉아서 꽃을 감상하고 있다. 책장엔 책이 가득하고, 그 앞에는 그림이 걸려 있다. 선비가 들고 있는 부채에도 그림이 옅게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이 실린 것은 '경교명승첩'이라는 화첩이다. 그것도 제일 첫번째 그림으로 실려 있다. 이병연과 정선이 서로 시와 그림을 교환하며 만든 화첩에 첫 장에 실렸다면, 이 그림의 주인공은 정선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병연이었다면 책장 앞에 그림이 아니라 시가 걸려 있었을 테니까.

 

자세히 보면 그림은 아주 많은 정성을 기울인 표시가 난다. 책장의 꽃무늬, 마루의 결, 돗자리의 촘촘한 무늬도 꼼꼼하게 담아냈다. 선비를 상징하는 난과 부귀영화를 뜻하는 모란꽃이 한자리에 있어 선비다우면서도 세속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도 그림에 비친다. 참으로 솔직한 그림이다.

 

 

 

 

'목멱조돈'이라는 제목이다. 남산 해돋이란 뜻이다. 정선은 이 그림을 서울 한복판에서 보고 그린 게 아니라 강서구 가양동 근처에서 보고 그렸다. 당시 정선이 양천현령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붉은 해가 산 중덕에 걸려 있지 않고 비켜서 걸쳐 있다. 그런데 그 편이 더 운치가 있다.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서울시 엠블럼을 만들었다고 한다.

 

 

 

오호라! 정말 그럴싸하다. 알고 보니 참 반갑다.^^

 

 

 

 

부록같은 코너에서 소개받은 조선 양반들이 쓰던 모자다. 천원짜리 지폐와 오천원짜리 지폐에 등장하는 모자를 비교해 보시라.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사모'의 날개가 아래로 쳐졌는데, 성종 이후로는 평행을 유지하는 모양새로 바뀐다. 사극을 자세히 보면 그 변화를 눈치챌 수 있다.

 

 

진경산수화는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정조의 그림이어서 특별히 애정이 가서 한컷 찍어봤다. 이 재주많은 임금님은 이리 잘 하는 게 많아서 명이 짧으셨나... 조선 시대 기준으로는 단명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움에...^^;;;;

 

책 속에서 옮겨 적은 내용 중에 또 마음에 드는 대목을 옮겨본다.

 

4대문에 얽힌 이야기

조선시대에는 수도인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둘레에 17km의 긴 성을 쌓고 출입문인 4대문과 4소문을 만들어 저녁 10시에 닫고 새벽 4시에 여는 통행금지 제도를 실시했습니다. 정식 명칭은 남쪽의 숭례문, 북쪽의 숙정문 또는 숙청문, 동쪽의 흥인지문, 서쪽의 돈의문입니다. 4대문의 이름을 지은 사람은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인데, 유교의 다섯 가지 덕목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방위에 맞게 나타냈지요. 숭례문은 ‘예를 숭상한다’, 흥인지문은 ‘인을 일으킨다’, 돈의문은 ‘의를 돈독하게 한다’입니다. 북쪽도 원래는 지혜 ‘지’자를 넣어 홍지문으로 하려 했는데 백성들의 지혜와 지식이 늘어나면 왕실이 위태롭다고 하여 쓰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자를 사용하지 않은 건 지혜는 ‘인의예’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보물 1호인 흥인지문은 다른 문과 달리 이름에 갈 지(之) 자가 들어갑니다. 흥인지문이 위치한 곳의 지형이 낮아 ‘갈지’ 자를 넣어 약한 기운을 보완한 것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신(信) 자는 바로 종로 한가운데 있습니다. 바로 보신각입니다. 원래 ‘신’자의 방위가 가운데라 중심에 보신각을 지었지요. -135쪽

이런 설명과 마주칠 때면 불타버린 숭례문이 다시금 안타깝기만 하다. 복원된 숭례문을 예전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한양의 풍수지리

한양은 크게 바깥의 4개 산(외사산)과 안쪽의 4개 산(내사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외사산은 동쪽의 용마산, 남쪽의 관악산, 서쪽의 덕양산(행주산성), 북쪽의 북한산이고, 내사산은 북쪽의 북악산, 동쪽의 낙산, 남쪽의 남산, 서쪽의 인왕산을 말하지요. 한양을 둘러싼 17km의 성곽을 바로 이 내사산을 연결하여 쌓았습니다. 처음 경복궁을 지을 때 서쪽의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고 궁궐을 동향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결국 개국공신 정도전의 주장대로 북쪽의 북악산을 주산으로 삼고 남향으로 자리 잡은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한양은 주산인 북악산을 중심으로 청룡인 낙산(125m, 일명 타락산), 백호인 인왕산(338m), 주작인 남산(265m, 일명 목멱산)의 맥들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입니다. 내사산에서 시작된 물이 한데 모여 서울의 내수인 청계천을 이루고, 청계천은 중랑천과 합쳐져 외수인 한강과 만나게 되지요. 이처럼 한양은 산세가 빼어난 여덟 개의 산과 여러 줄기의 물이 한데 어우러진 명당 중의 명당입니다. 한양의 ‘양’은 산의 남쪽, 강의 북쪽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산은 북악산, 강은 한강을 가리킵니다. - 149쪽

21세기를 살면서 풍수지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명당 관련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오늘은 시내에서 타로점 치는 집이 유독 눈에 띠어서 유혹을 느꼈는데, 그것도 혹 이런 관심사를 반영한 것일까? ^^

 

내가 읽은 그림책의 넘버 원은 언제나 '오주석의 한국의 미특강'이었다. 앞으로도 그 순위는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비록 그 책을 넘어서지는 못하더라도, 비슷한 종류의 재미와 감동을 주는 책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이 책도 독서 대상으로 삼은 연령대를 고려한다면 무척 즐겁고 의미있는 책읽기였다. 그럼에도 별점이 다섯이 아니라 넷이 된 것은 편집 상의 아쉬움과 몇몇 오타 때문이다. 내가 만나지 못한 이 책의 시리즈 1,2권도 찾아볼 생각이다. 애정을 담아서!

 

*

43쪽 설명에 '몽고를 물리치기 위해 만든 팔만대장경은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라고 나와 있다. 몽고는 '몽골'로 고쳐주면 좋겠고, 팔만대장경은 '장경판전'으로 바꿔야겠다. 유네스코는 움직일 수 있는 유물이 아닌 움직이지 않는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 팔만대장경이 훌륭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그 훌륭한 대장경을 이렇게 완벽하게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을 지정하여 기리고 있다.

 

119쪽에는 영지버섯이 '생각대로 되다'라는 뜻이 들어 있다며, 새해 인사용 그림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다. 그런데 영지버섯이 들어간 그림은 제목이 '노송영지'인데 책에서는 앞서 나온 그림 '노백도'라고 표기했다. 수정해야 마땅하겠다.

 

121쪽 이인좌의 난 설명에서 청주성을 정령하고라고 적었다. '점령하고'로 고쳐야겠다.

 

179쪽에서 '평양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는 속담을 소개했다. 감사가 곧 관찰사이니 아래쪽 평안도 관찰사라고 쓴 것처럼 '평안감사'로 고쳐야겠다.

 

215쪽에 '조선중화중의의 결과라는 의견과'라는 구절이 있다. '조선중화주의'의 오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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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2 0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03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온과 마법사 압둘 카잠 노란상상 그림책 1
안젤라 맥앨리스터 지음, 김경연 옮김, 그레이엄 베이커-스미스 그림 / 노란상상 / 2010년 5월
구판절판


표지를 열면 나오는 첫 그림이다. 금빛이 빛나는 것이 정말 마법의 세계에 들어간 기분이다. 게다가 저 하얀새! 마술사들에게선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 아닌가.

이어서 뒷장으로 넘어가면 검은 배경에 "아이들이 있는 곳, 그곳이 낙원이다."
라는 문구가 나온다. 어쩐지 뭉클해진다. 몹시 이상적인 말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는 진리로 보이는 문장!
이제 본문으로 가보자.

레온은 친구들과 함께 마술을 보러 갔다.
서커스 공연장 같은 천막이 보인다.
뒤따라온 친구들은 마술 같은 거 믿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친다.
다 속임수라고 비아냥거리듯 말하기도 했다.
여자 아이인 리틀모는 시작도 하기 전에 실망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레온은 이 친구들이 크게 놀랄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마술은 마법이야. 믿어 봐!"
믿는 자에게 복이 있으리니... ^^

불이 꺼지고 황금빛 장식에 잔물결이 일더니 커튼이 천천히 열렸다.
커튼 사진은 찍지 않았는데, 보라빛이 도는 푸른 천과 금빛의 장식이 아주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펑!' 소리와 함께 세 명의 곡예사가 공중제비를 넘으며 무대 위로 내려왔다. 곤봉이 휙휙 날아다녔지만 결코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곡예사들이 재주를 부린 것이다. 관중들은 환호했다.

희미한 조명 속에 손풍금이 울렸다. 손잡이가 돌아가지만 손잡이를 돌리는 손은 보이지 않는다.
책날개를 펼칠 수 있게 편집이 되어 있는데, 접혔던 부분을 펼치면 마치 어둠 속에서 마법이 펼쳐진 것처럼 곡예를 부리는 온갖 인형들이 환상적인 느낌의 소품들과 함께 등장한다. 그림을 어떻게 그린 것인지 모르겠다. 콜라쥬 기법으로 만든 것인지, 하여튼 엄청 화려하고 근사한 분위기이다. 이 책 자체가 마법이 아닐까!

손풍금의 연주가 조용해지자 드디어 주인공 레온이 등장한다.
보랏빛 연기가 구름처럼 무대를 꽉 메웠다.
그리고 마술사 압둘 카잠이 나타났다. 그의 이름을 표시한 글씨조차도 남다르다.
재밌는 것은 곡예사들의 현란한 몸짓보다 글자가 나오는 부분의 프레임이 더 마술쇼처럼 보였다. 그래픽의 느낌도 나는 것이 마치 3D 안경을 끼고 애니메이션을 보는 기분이다.
레온이 얼마나 흥분했을 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무 것도 믿지 말라면서 무엇이든 믿으라고 말하는 압둘 카잠!
그의 선문답 같은 말이 마술이든 마법이든 뭐든 만들어낼 것처럼 보인다.
그의 소매에서 종이꽃이 나왔고, 비단 스카프의 색이 변했고, 하얀 손수건들은 비둘기가 되었다.
여기에 눈이 홀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심장은 톱밥으로 만들어진 것일 게다.
마법 상자 속으로 들어갈 자원자를 찾았을 때, 레온이 번쩍 손을 들었다.
겁도 없이 성큼성큼 상자 안으로 들어가는 레온! 모험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

단지 종이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을 뿐인데, 그 바람에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해 주는 통로처럼 보이는 효과가 나타났다.
신비로운 곳으로 떨어진 레온. 그 레온을 마중 나온 소년이 있다.
소년은 이곳을 '사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저기와 여기의 사이라는 말이다.
공간의 이름조차도 환상적이다.
객석에 앉아 있을 때보다 더 멋진 광경들이 연출되었다. 마술 양탄자라도 탄 듯 레온은 신나게 '사이' 속 세상을 즐겼다.
마법과 마술을 믿은 대가라고나 할까.

다시 객석으로 돌아온 레온. 그 사이 이곳에서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상기된 표정의 레온을 맞이하는 친구들 역시 이제 더 이상 마술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마술을 뛰어넘어 마법을 경험한 사람같은 얼굴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얼마나 신났을까.

사실 내용보다는 그림이 엄청 환상적이어서 더 먹고 들어간 작품이다. 동심이 살아있는 아이들이라면 더 신나게 이 작품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글쓴이와 그림 작가가 다른데, 그림 작가분의 다른 책은 또 없는지 찾아봐야겠다. 몹시 매혹적이다. 금붕어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의 작가 데이브 맥킨을 떠올리게 한다. 좋은 작가를 만나게 해준 행운의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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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CUS 과학

제 1634 호/2012-06-25

오디션 프로에서 우승하는 득음법이 있다?

최근 몇 년 새 TV에서는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케이블 채널 ‘슈퍼스타 K’를 시작으로 KBS 위대한 탄생, SBS K팝스타‘, MBC ‘나는 가수다’까지, 일반인은 물론이고 가수들까지 경연에서 우승하기 위해 그야말로 열창을 한다. 그동안 허각, 존박, 장재인 등 오디션 프로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가수들도 줄지어 데뷔해 인기를 얻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격인 슈퍼스타K는 시즌 4 제작을 앞두고 지원자를 모집한 결과, 4개월 만에 180만 명이 넘게 몰렸다고 한다. 이렇듯 노래를 잘 하고 싶고,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과연 과학적으로 노래를 잘 하는 방법이 있을까? 노래를 잘한다고 인정받은 가수들은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노력해서 얻은 결과일까.

삼성경제연구소의 평가에 의하면 국민가수로 불리는 이미자 씨의 노래 가치는 자그마치 1,650억 원에 달한다. 가수활동 46년간 약 560종의 음반과 2,069곡의 노래를 발표했으며, 1,500만~2,000만 장의 음반을 판매했다고 한다. 여기에 공연수익, 가요계 영향력 등을 감안한 평가금액이다.

“목소리가 변할까봐 치아 교정도 못한다.”

이미자 씨가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치아 교정을 하게 되면 입안 모양이 변하며, 목소리도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자 씨는 얼굴에 비해 입이 큰 편이다. 입이 크다는 것은 입 안의 공간이 넓다는 것으로, 이는 소리가 커다란 울림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필수요건이다. 하지만 입이 크다고 해서 모두 다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입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소리 자체를 만들어내는 성대와 발성능력이다.

노래는 발성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발성의 기본은 허파에 공기를 모아 방출하면서 만들어진다. 즉 노래를 부르면서도 사이사이에 공기를 모아서 오래 동안 목소리를 지속하게 하는 폐활량이 중요하다. 이미자 씨의 빼어난 가창력은 바로 남들보다 2.5배 이상 길게 목소리를 유지하는 큰 폐활량에 그 근본이 있다.

그녀의 숱한 노래 가운데 초창기 노래인 섬마을 선생님, 동백 아가씨 등 몇 곡을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물론 다른 사람에 비해 발성하는 음역대가 넓고 빼어난 미성임은 당연한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탁월한 성대 떨림을 보여주었다.

또한 성문분석기에 나타난 그녀의 목소리는 보통사람들의 목소리와 달리 톤이 명료하고 배음의 울림이 마치 악기음 같았다. 일반적으로 소리가 갈라지기 쉬운 고음대역에서도 음정의 대역 차이가 뚜렷했고, 음정의 높낮이 변화가 무려 3옥타브(8배 음폭)에 걸쳐 매우 안정적이었다. 특히 이미자씨의 목소리는 저음에서 중음을 거쳐 고음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강한 바이브레이션이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어 구구절절 애절함이 더한다.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20대 때의 목소리와 60대 때의 목소리가 아주 유사했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수록 톤은 낮아지고 표현할 수 있는 음 대역은 좁아진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무척 희귀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천부적으로 매끄럽고 정교한 성대를 갖고 태어난 것이다. 한마디로 평가하면, 조물주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빼어난 악기다.

이미자 씨 만큼이나 빼어난 목소리를 가진 우리 선조들은 타고난 성대 외에 엄청난 노력의 결과로, 일종의 ‘득음’과정을 거쳐 명창으로 거듭났다. 명창이란 판소리나 민요 등, 우리 소리를 빼어나게 잘하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우리 국악계만의 별칭이다. 명창이 되려면 득음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데 득음을 이루기 위해선 ‘목구멍에서 피를 세 번 토할 정도로 노력해야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실 노래 솜씨란 아름답고 탁 트인 목소리에 음정과 박자, 기교가 어우러지면 충분할 것이다. 그럼에도 ‘피를 세 번 토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판소리는 2003년 유네스코의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된 일종의 솔로 오페라이다. 판소리는 노래와 대사가 쉼 없이 반복되며 무엇보다 완창을 하는데 무려 3~4시간 동안 줄기차게 소리를 내야 하는, 그야말로 엄청난 에너지와 다양한 목소리를 필요로 하는 장르다. 때문에 명창들의 소리 훈련과정인 득음을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첫째, 영화 <서편제>에서 나오는 한 장면처럼 산 속 계곡 폭포 아래서 소리를 내는 훈련이 그것이다. 모든 소리성분을 포함하고 있는 폭포 소리를 뚫고 자신의 목소리가 뻗어 나갈 수 있어야 1단계 관문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우렁찬 폭포수의 백색소음을 뚫고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려면 얼마나 크고 또렷해야 할까. 이 과정을 통해 일단 엄청난 음량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둘째 단계는 동굴에서의 훈련이다. 건조한 동굴 안에서는 모든 소리가 울린다. 동굴의 흙이나 바위벽 등이 고르지 못한 탓에 소리의 난반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목욕탕에서의 울림과 유사하다. 메아리 반사효과 때문에 음량은 목소리보다 크게 들리지만 소리가 뒤섞여 윙윙거림으로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듣기 힘들다. 따라서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마침내 동굴의 울림을 극복하고 목구멍에서 공명을 잘 일으켜 섬세하고 명료한 소리를 뽑아낼 수 있을 때, 명창의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한 셈이 된다.

다만 우리 주변의 산하에는 동굴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선조들은 시골의 토담집을 대신 활용했다. 토담집의 실내구조는 규칙적이지 못해 흙이 보일 정도로 울퉁불퉁했고, 여기 저기 지지대가 삐져나와 있기에 소리의 난반사를 불러일으켜 동굴에서의 소리울림을 잘 대체할 수 있었다. 술상이 차려진 허술한 주막집도 소리의 반사 특성을 고려한 울림현상이 두드러지는 잔향실로 사용하기에는 손색이 없어, 자신의 소리가 뚜렷하게 울려 퍼지도록 목청을 다듬는 훈련을 할 수 있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셋째, 명창이 되려면 갖가지 소음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도록 훈련해야 한다. <서편제>에서 보면 왁자지껄한 시골장터에서 소리를 하는 대목이 나온다. 처음엔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 가닥 선율이 시장의 온갖 소음을 뚫고 뻗어 나온다. 장사치들의 호객소리, 다툼, 동물울음, 자동차 소리 등등, 다양한 소리가 뒤섞인 소음을 유색잡음이라 하는데, 명창이 되려면 이 모든 소리를 극복하고 독창적인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넷째 관문은 해변이나 들판 같은 광활한 곳에서의 훈련이다. 벌판이나 평지에서는 소리가 초라해진다. 소리가 부딪혀 되돌아오는 반향이 없기 때문이다. 파도소리가 끊이지 않는 해변이 특히 그렇다. 벌판에 바람이라도 불어대면 소리가 흩어지게 된다. 그런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낼 수 있을 때, 그는 명창이 되기 위한 가장 어려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게 된다.

명창이 되기 위한 득음의 4단계. 옛 소리꾼들은 무심코 이런 과정을 밟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소리의 특성을 감안할 때 모든 훈련과정이 무척 치밀하고 과학적이라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선조들의 득음과정을 똑같이 따라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천부적으로 빼어난 성대와 발성기관도 중요하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일구어 낸 득음을 통해 명가수가 배출된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 :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

과학향기 : http://scent.ndsl.kr/sctColDetail.do?seq=4984&classes=200&subclas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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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SION 과학

제 1633 호/2012-06-20

건물은 지금 ‘친환경’ 변신 중!

건강과 웰빙, 에너지 절약, 지구환경보호에 대한 수요자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면서 최근 몇 년 새 친환경건축물을 짓는 추세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국가적으로도 친환경건축물 인증제도를 도입해 세금 감면 혜택을 주고 있다. 친환경건축물은 이제 건설사들의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민감한 피부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새집 증후군’과 같은 부작용 때문에 새 아파트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새집 증후군에 대한 수요자들의 우려가 높아지자 건설사들은 유해물질이 적게 나오는 친환경적인 마감재를 사용하고 있다. 벽체는 물론 천장, 바닥에 사용하는 마감재와 도배지, 풀, 접착제, 집안 내부에 들어가는 가구 원자재도 친환경 재료를 사용한다.

친환경건축물은 친환경 자재를 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기술이 사용된 건축물까지 포함된다. 오히려 친환경건축물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에너지절약 부분의 배점이 가장 크다. 친환경마감재, 태양광은 물론 분해해서 다시 조립할 수 있는 집, 화장실에서 사용한 물을 정수해 얻는 식수, 폐플라스틱을 태워 얻는 전기 등 친환경건축물의 종류는 다양하다.

새로 짓는 아파트 단지에 ‘중앙 정수시스템’을 설치해 1차 정수된 물을 각 세대에 공급하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미생물로 발효시켜 악취가 나지 않고 유해물질이 없도록 걸러주는 ‘음식물 쓰레기 분해기’를 설치해 친환경적이면서도 사용자들의 편의성을 높이고 있다.

한 건설사에서 에너지 절약을 위해 도입한 태양광 발전시스템은 매일 전력 사용량의 5%에 달하는 600kW를 생산해 건물 복도와 주차장에서 쓰고 있다. 또한 지하 주차장 등에 햇빛이 통하도록 해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태양광 집채광 시스템’도 개발돼 있다. 열병합 발전시스템은 발전기에서 전기를 만들 때 발생하는 열을 모아 난방과 온수 공급에 사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인다.

친환경은 창문을 통해서도 실현할 수 있다. 단순히 유리를 통해 햇빛을 받아들이고 환기를 시키는 전통적인 역할에서 발전된 환기창이 이미 개발돼 있다. 이 환기창은 문을 여닫을 수 없는 밤에도 환기가 가능하도록 문을 닫은 채 환기를 시켜준다. 창틀 안에 필터를 내장해 깨끗한 공기를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이물질이나 빗물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구조의 공기청정기 시스템을 창호 안에 넣은 것이다. 외벽이 유리로 이뤄진 아파트나 환기가 어려운 주상복합건물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고, 황사나 폭우 등으로 창문을 열고 생활하기 어려울 때도 유용하다.

창문으로 전기 생산도 가능하다. 건물 외벽 유리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태양광 발전이 가능하도록 만든 ‘솔라윈’은 발전설비 설치를 위한 공간이 충분치 않은 도심에서 유용하다. 발전시설을 추가로 설치하지 않아도 돼 건축비용 절감효과가 있고,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어 환경 친화적이다.

이 밖에 이중창의 유리 사이에 공기 대신 적외선을 흡수하는 화학물질을 넣은 물을 채워 에너지 효율을 놓인 ‘물 창호’, 창문틀에 특수 장치를 달아 환기를 위해 창문을 조금 열어놓아도 밖에서는 열 수 없도록 한 ‘안전창호’ 등도 개발돼 있다. 창문도 에너지 절약이 가능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친환경·저에너지소비형 창호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를 잡아먹는 주범으로 꼽히는 건물의 외벽도 에너지 절약 대상이다. 열전도율이 높은 콘크리트 안에 흰색 스티로폼을 넣어 열을 막는 기존 설계방식으로는 에너지 손실을 막는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콘크리트 바깥쪽에 스티로폼의 일종인 ‘네오풀’을 30cm 두께로 설치하면 단열 효과를 7배가량 높일 수 있다. 이런 시설들을 도입한 건축환경연구센터의 냉난방 에너지 소비량은 20%로 급감했다. 한 가정이 1년 난방비로 150만 원을 사용한다고 했을 때 120만 원을 줄일 수 있는 셈이다.

현재 친환경건축물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유럽이다. 유럽에서는 초에너지절약주택(패시브하우스) 시범보급 사업이 2001년 마무리돼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중심으로 1만여 채 이상의 에너지 절감형 주택이 보급됐다. 또한 유럽연합 의회에서는 2019년부터 EU 내에서 지어지는 모든 신규 건물을 대상으로 건물 내에서 소비하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도록 규정했다. 친환경건축물 건설을 필수사항으로 제도화 한 것이다.

서울시는 최근 2012년 6월 현재 10%에 그치는 공공건축물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14년부터 2배로 대폭 확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올해 하반기부터는 공공건축물의 조명을 100% LED로 설치할 계획이다. 한국의 전체 에너지 소비 가운데 건물부문에서 소비되는 비중은 약 30%이다. 2002년 뒤늦게 친환경건축물인증제를 실시한 우리나라의 경우 2007년까지 친환경 인증을 받은 건축물은 300여 개에 불과한 상황이지만 공공건축물을 시작으로 친환경건축물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며, 다양한 친환경 건축 기술들이 적용되길 기대해 본다.

글 : 심우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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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세계사 창비청소년문고 5
이영숙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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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길에는 지하철에서 내려서 버스로 갈아탄다. 그때 질러가기 위해서 교보문고를 휙 지나가는데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핸드폰에 제목을 저장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내 보관함에 이미 이 책이 있다. 먼저 찍어놓고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와 만날 책이었나보다.^^

 

 

200쪽이 채 되지 않는 가벼운 책이다. 말투도 엄마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더 가볍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다루는 역사 이야기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식탁 위에서 마주치는 것들 속에 담겨 있는 역사 이야기지만 식탁 위에서 가볍게 버려질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사실, 입으로 들어가는 먹는 것이 차지하는 중대함이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법! 표지에 이 책에서 다룰 소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위트가 넘친다.

 

첫번째 이야기는 감자에서 시작했다. 감자라면 응당 아일랜드가 떠오르기 마련, 역시나 아일랜드 사람들의 한을 다루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감자가 유럽으로 전해졌을 때는 그야말로 찬밥 신세였다. 악마의 음식 취급을 받으며 괄시 당하던 감자가 어느덧 식탁을 점령하며 가난한 이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고마운 식량이 되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기대를 했음일까. 그 감자가 병충해를 입으며 아일랜드는 대기근을 겪었다. 그리고 그때 영국이 취한 행동은 아일랜드인들의 민족 감정을 건드렸다. 오늘날까지 사이가 좋지 않은 두 나라의 관계가 흡사 일본과 우리나라를 보는 느낌이다. 간밤 버터에 노릇하게 구운 감자를 늦은 시간에 먹으면서 죄책감을 느꼈고, 그렇지만 그 황홀한 맛에 만족감을 느꼈는데, 책 속에서 다시 만나는 감자의 녹록치 않은 역사를 보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영국 여왕이 아일랜드 땅을 밟은 저 역사적인 사진은 무려 백년 만의 발자취였다. 사진의 구도는 빌리 브란트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 사진만큼 감동적이지는 않다.

 

두번째 이야기는 소금이었다. 가장 중요한 금 세 가지에서 황금과 어깨를 견주는, 아니 사실은 그보다 더 중한 소금의 이야기이다. 이번 이야기를 아주 감동적으로 이끌어준 인물은 간디였다. 마하트마 간디, 그 위대한 영혼의 눈물 겨운 투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생산한 목화를 식민 지배중이었던 영국은 헐값에 사들여서는 공장에서 만든 면제품을 인도에 비싼 값에 되팔았다. 여기에 저항하기 위해 간디는 직접 물레로 실을 자은 다음 옷을 만들어 입었다. "아름다움으로 옷을 입지 말고 위엄으로 입읍시다."라는 그의 말은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그가 행적으로 보였기에 더 울림이 크다. 그 어떤 명품 딱지를 붙인 옷도 따라잡을 수 없는 '위엄'이다.

 

 

그의 소금 행진은 또 어떠했던가. 영국은 식민지 인도에 소금세를 매겼다. 제 집 앞에 소금밭이 있는데도 영국 것만을 먹어야 한다니, 얼마나 폭력적인 법이던가. 이 위악적인 법에 간디는 평화적으로, 비폭력으로 저항했다.

 

"악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선에 협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의무입니다."

 

아아, 간디는 명연사이기도 하다. 언행의 일치가 보여줄 수 있는 힘있는 말의 무게다. 1930년 3월 12일 사바르마티 아쉬람이라는 곳에서 시작해서 4월 6일 염전이 있던 구자라트 주의 단디 해변까지, 장장 370km를 26일간 계속 걸었다. 환갑을 넘은 나이의 간디가, 우리가 알다시피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타오르는 볕을 자랑하는 40도 이상의 온도에서 모자도 쓰지 않고 맨발이나 다름 없는 허름한 신발로 길을 걸어냈다. 오죽하면 사람들의 그의 발앞에 나뭇잎을 깔아 주었을까. 마치 예수님이 지나는 길목에 옷을 깔아주었던 성경의 한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마침내 해안가에 도착한 간디는 침묵 속에서 소금을 집어 올려 맛을 보는 행위로 인도 사람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전해 주었다. 그 무엇보다 영적이고, 그 무엇보다 강렬한 이 투쟁을 영국은 힘으로 억눌렀지만, 역사는 간디의 정신을 기억해 주었다. 그리고 이젠 나도 그를 기억할 차례다.

 

세번째 주제의 키워드는 '후추'다. 콜럼버스를 함께 기억하면 좋겠다. 죽을 때까지 인도로 착각한 그에게 노출된 아메리카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이야기했다. 그 시절에 왜 후추가 그리 귀했는지, 긴 항해 끝에 괴혈병으로 죽는 선원들의 사연을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인과관계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 정도로 쉬운 설명이라면 초등 고학년도 얼마든지 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오쩌둥의 대장정과 문화 대혁명에서는 돼지고기가, 그리고 유월절에 먹는 무교병과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덧씌워진 오해를 다루면서 빵이 등장한다. 음식과 역사가 함께 버무려져 서로를 당기는 기분이다. 바게뜨 빵이 '평등 빵'이라고 불려지게 된 사연에서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을 새겨보고, 초승달이라는 이름을 가진 크루아상 빵에서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튀르크의 과거를, 그리고 다시 마리 앙투아네트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도 재밌게 보았다. 바게뜨 빵과 크루아상을 먹을 때마다 그들의 나라를, 그들의 이름을 한번씩은 더 떠올리게 될 것이다. 덕분에!

 

프랑스의 앙리 4세와 미국의 후버 대통령을 함께 엮은 닭고기 편도 재밌었다. 최근에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죽은 메리 스튜어트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앙리 4세를 함께 떠올렸는데 며칠 만에 다시 만나게 되니 그 우연성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 황미나의 '불새의 늪'도 같이 떠올렸다. 종교개혁의 절대 군주, 유럽의 얽히고설킨 혼인관계 등이 포개지는데, 복잡하기보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흥미로움이 따라 붙었다. 이 책을 보면서 다른 책이 함께 보고 싶어지는 이 아름다운 효과!

 

감자와 함께 대표적인 구황작물 옥수수 편에서 흐루시초프의 남다른 면을 보았고, 바나나에서는 플랜테이션 농업에 스며있는 착취의 무서운 얼굴을 함께 보았다. 어릴 적 부의 상징이었던 바나나가 요즘처럼 마구 먹을 수 있는 값싼 과일이 된 이면에 '살충제'라는 무서운 특수효과가 번쩍번쩍 섬광을 일으킨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치르는 동안 전쟁에 쓰이는 화학 무기를 개발하던 공장들이 전쟁이 끝나고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자 업종을 바꾸었다고 해. 살충제나 제초제, 과일을 오래도록 보존하는 약품 등을 개발하는 일을 하기 시작한 거야. -143쪽

 

 

칼을 녹여 곡괭이를 만드는 평화의 시대를 꿈꾸기엔 기술이 지나치게 발달했지만, 그래도 분명 저런 용도 말고도 다른 이로운 쪽으로 전쟁 기술이 인류에게 이바지한 일들이 있을 거라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았다.

 

칠레가 세계 제일의 포도 생산국이라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래서 칠레산 포도주가 유명한 것일까? 오래 전 뜨겁게 덥혀진 와인을 마셨던, 아주 덥던 날의 특별한 소풍이 떠오른다. 그때 마신 와인이 칠레산이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가 근세로 넘어오면서 몸살을 앓던 시절에 가장 눈길을 끌었던 대목이 아편전쟁이었다. 장사의 이문을 남기기 위해서라면 아편도 밀수할 수 있고, 전쟁도 얼마든지 일으킬 수 있는 탐욕의 인간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또 그만큼 인간을 잘 설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차는 영국인들 모두가 즐기는 일상적인 음료로 자리 잡았지. 차에는 카페인 성분이 들어 있어서 각성 효과가 있거든. 졸음이 오지 않고 일시적으로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말이야. 그래서 공장 같은 데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차를 제공했다고 해. 게다가 차에 넣는 설탕은 열량을 보충해 주는 효과가 있거든.  -173쪽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는 잠을 깨라고 옷핀으로 찌르는 공장주가 나오는데, 그에 비하면 각성제 효과를 내는 차를 마시는 건 그나마 로맨틱하다고 해야 할지...

 

이 책 '식탁 위의 세계사'는 기획을 아주 잘 잡은 책으로 보인다. '식탁'이라고 공간을 한정 지었지만, 그 안에서 다뤄지는 역사의 이야기는 아주 긴 시간을 품고 있고, 우리의 일상과 아주 가까운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흥미를 끌었다. 내용이 진행되면서 곁들여 소개되는 이야기들도 재미있고 유익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독서가 정말 가볍고 산뜻하게 끝났다.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마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기왕이면 시리즈로 나와서 부엌 안의 세계사, 욕실의 세계사 등등... 다양한 내용들이 소개되었으면 한다. 응원과 기대를 담아서 기꺼이 읽을 것이다. ^^

 

덧글) 전 근대사회가 지난 이후에도 국민이 아닌 백성으로 표현한 것에서 아주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아편전쟁을 1839년이라고 썼는데 1840년 아닌가? 이건 좀 찾아봐야겠다. 185쪽에는 대처 수상을 새처 수상이라고 표기했다. 다음 쇄에서 수정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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