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9 - 고종실록 - 쇄국의 길, 개화의 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9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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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8권에서는 헌종·철종실록을 함께 다뤘는데, 삼정의 문란을 구체적으로 언급했고, 아울러 조선 왕조가 500년 동안 어떻게 망하지도 않고 근근이 그 명맥을 이어 왔는가를 설명했다. 세계는 탐욕의 각축장이 되어 있었고, 믿었던 중국도 종이 호랑이라는 것을 입증했으며, 일본 역시 바로 꼬리 내리고 힘 기르기에 열중했다. 그런 세계의 흐름 속에서 조선은 임금이 후사 없이 죽었다. 그렇게 19권을 맞이했다.

 

 

19권은 당연히 고종의 즉위부터 다룬다. 12세 어린 임금을 대신해 대왕대비 신정왕후 조씨가 수렴청정을 맡게 되었다. 순조, 헌종, 철종에 이은 4대 연속 수렴청정이다. 왕실의 손이 얼마나 귀했는지, 얼마나 위태롭게 이어왔는지가 한눈에 보이는 순간이다. 효명세자의 요절로 현실 속 중전은 되지 못했던 신정왕후. 한때 세도가로 이름 높았던 친정 풍양 조씨도 안동 김씨 앞에선 맥을 못 추었고 궁궐의 존재감 없는 왕대비로 살아가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조카가 찾아왔다. 흥선군 이하응이다. 그는 자신의 둘째 아들을 익종대왕(효명세자)의 아들로 삼아 왕실의 후사를 이으라고 권고했다. 큰 아들도 아닌 둘째 아들을 내민 것은 ‘수렴청정’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그 정도 딜은 되어주어야 대왕대비도 마음이 움직일 게 아닌가. 종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남연군의 자손 중에서 왕위 계승자가 나오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야사에서는 그녀가 안동김씨에 뒤쳐진 친정을 부흥시키고 안동김씨 일가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그보다는 흥선군이 제안한 개혁 구상에 동의하고 지지했다는 게 더 합당하겠다.

 

 

드라마에서 표현되는 대원군은 늘 대궐을 출입하며 직접 회의를 주재하고 명을 내리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대원군의 사저 운현궁에서 궁으로 들어오는 전용문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대원군의 출입은 드물었다. 몇몇의 경우를 빼고는 그는 좀처럼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의 구상과 개혁은 더러 대신들의 건의라는 형식을 통했고, 대부분은 대왕대비의 입과 언문 하교를 통해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그녀는 대원군의 개혁 파트너였던 것이다. 그리고 왕실의 재건이라는 대원군의 구상을 실현하는 수렴청정의 주체로서 각종 개혁을 이끌었다. 그녀의 수렴청정 기간은 2년 3개월. 고종이 15세가 되자 망설임 없이 수렴청정을 거두었다. 이후 83세가 되는 고종 27년까지 살았는데 단 한 번도 정치에 무리하게 개입하거나 하지 않았다.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가야 할 때를 잘 아는 삶이었다. 절제와 위엄이 돋보인다.

 

살아서 '대원군'의 호칭을 받은 유일한 인물 흥선대원군. 그는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한다. 야인으로 살던 시절부터 오래 구상하고 계획했으리라. 그야말로 준비된 지도자였다. 안동김씨 세도 정치를 털어냈지만 피바람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가 인재라면 노론, 소론, 남인을 구별하지 않았고, 심지어 언제 나왔는지 까마득하게 잊혀진 북인과 차별받던 서북인들, 그리고 안동 김씨 마저도 들어서 썼다. 동원할 수 있는 인재는 다 동원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종친이라는 굴레로 재주를 썩혀야 했던 관례를 깨고 과거를 보게 했으며 관직도 내줬다. 어찌 보면 안동 김씨 세도를 능가하는 전주 이씨 세도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용서 없이 철퇴를 내리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국가 재정 운용에 가장 큰 곤란은 세금 체납이었다. 그렇다고 백성들이 정말 세금을 안 냈냐하면 무슨 쏘리! 어떤 험한 꼴을 당하려고.... 세금은 냈지만 국가로 들어가지 않고 부패한 관리들의 곳간으로 쌓였다. 저기 저 모습들... 어디서 많이 본 모습 아닌가? 심지어 세곡을 빼돌리고 조운선을 일부러 침몰시키는 관행조차 있었다. 나라 꼴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눈에 선하다. 공무원이 먼저 이렇게 썩어버린 나라에 무슨 기대를 품을 수 있을까. 그리스가 언뜻 떠올랐지만, 남의 걱정 할 때인지 모르겠다.

 

각종 폐단에 대한 경고, 시정, 처단이 이어지고 바로잡는 과정들이 뒤따랐다. 권력이 집중된 비변사의 기능을 의정부에 합치면서 폐지해 버렸고, 개국 초의 삼군부도 회복해 비변사의 군사 지휘 업무를 맡겼다. 법전을 정비했고 민생 관련 개혁 조치들도 박차를 가했다. 가장 화끈했던 부분은 양반에게도 군포를 부과하는 호포법이 실시된 것이다. 영조는 역을 균등하게 한다며 균역법을 시행했지만, 사실상 아랫돌 빼서 윗돌 괴어버리는 수준이었다. 그걸 대원군은 해낸 것이다. 영조도, 정조도 못했던 작업이다. 

 

 

서원을 철폐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카리스마는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기득권만 있고 의무는 없는 이 뻔뻔한 기생충들에게 본때를 보여준 것이다. 명분이 있으니 양반들은 속이 타고 애가 타도 할 말이 없는 상태.

 

 

1000여 개가 넘던 전국의 서원이 다 정리되고 47개 남았다. 유학의 나라 조선에서 이보다 엄청난 개혁이 있을 수 있을까. 집단 멘붕 소리가 들릴 법도 하다.

 

임진왜란 때 불탄 이후 여태 재건하지 못한 경복궁의 중건. 백성에게 짐이 된 것은 사실이나 불필요한 일을 무리해서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중건 과정에서 잇따른 화재발생은 그야말로 불우했고, 당백전의 발행은 제 발등을 찍는 무리수였지만 경복궁 중건 자체는 왕조 국가에서 피할 수 없는 숙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원군은 해냈다. 지금도 전 세계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멋진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는 경복궁의 재탄생이다.

 

 

개혁의지 확고했고, 능력도 빼어났던 흥선대원군. 그러나 그에게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외교정책이다. 때는 바야흐로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열강들이 서로 뜯어먹기 바쁜 아주 살벌한 시기. 그렇지만 문 닫아 걸고 소중화만 외치는 조선은 그런 세계 정세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다. 심지어 청나라가 아편전쟁으로 개망신 당하고 수도 베이징까지 열리는 것을 눈으로 지켜보고도 말이다.

 

 

저 엄청난 격변의 시기를 연표로 확인하시라. 숨이 막힌다. 체급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먼저 문 열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다면 일본처럼 한 번 맞고 바로 생각을 돌려먹기라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조선은 순진해도 너무 순진했고, 상대 국가들의 탐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조선 후기 이후 지나치게 사대로 흐른 대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큰나라 눈치만 살피다가 그 나라마저도 제 앞가림 못하는 것을 목격하고 일어난 멘붕. 그 멘탈붕괴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고, 눈치껏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무능했다. 정말 속상한 일이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명백한 조선의 패배였다. 그들은 실컷 불태우고 부수고 죽이고 훔쳐서 떠났다. 사상자와 우리측 피해를 생각하면 명백한 패배이건만, 이제 그만 가자~하고 가버린 그들을 '물리쳤다'고 여겼다. 그리고 여전히 통상수교거부... 다 잘 하고도 하나를 잘못하면 실기하기 쉬운 정치판에서 엄청난 판단오류이다. 그게 조선의 한계였다.

 

대원군에게 아쉬운 것은 이렇게 외교정책이지만, 대원군이 쇄국을 고집했다고 해서 바로 몰락했던 것은 아니다. 세도정치 60년 동안의 폐단을 과감히 도려냈던 카리스마 대원군의 진짜 천적은 며느리였다.  바로 고종비 민씨.

 

 

외척의 발호를 경계해서 '한미한' 가문에서 며느리를 들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세도정치를 경계하느라 믿을만한 가문을 선택했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부인 민씨 가문이었다. 민유중은 인현왕후 민씨의 아버지이다. 그 민유중의 5대손 민치록의 딸이 중전이 된 것이다. 비록 민치록은 죽었지만 어머니는 살아계셨고, 양오라비도 있었다. 양오라비 민승호는 대원군의 처남이기도 하다. 대원군은 이 간택을 완벽한 선택이라고 믿었겠지만 그가 후회했을 것처럼, 그리고 내 생각에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민비가 스무살이 넘고도 친정을 하지 못하는 남편의 불만을 건드린 것은 나름 자신의 처세술로도 보인다. 대원군은 탁월한 개혁가에 정치가였지만, 그가 왕은 아니었다. 열다섯에 수렴청정도 거두었는데 그후 7년이나 더 섭정을 한 셈이다. 수술대 위에 올려진 조선의 갈 길이 너무 멀어 보였겠지만, 대왕대비처럼 물러날 때를 알아야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지체하다가 그는 꼴사납게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다. 가야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대원군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애석하다. 대원군과 민비의 사이가 그렇게 나빠지지 않았더라면 이후 역사의 격동기에 조선 왕실은 조금은 덜 부끄러은 모습으로 대처하지 않았을까 하는, 하나마나한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면서 동시에 불평등조약인 강화도 조약의 체결과정을 보면 일본이 보인 고압적인 자세와 말도 안 되는 생떼와 물고 늘어지기에 잠시 혈압이 올랐다. 이제 서문 첫 글자 떼었을 뿐인데 벌써 이러면 곤란하지 싶어 호흡을 가다듬지만, 역시 화나는 건 화나는 일이다. 버럭버럭!!!

 

게다가 중국의 우산 아래 안전하게 머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조정 대신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결코 낯설지 않기 때문에 역시 더더더더욱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친정 이후 고종이 보여준 정치력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열두 살에 임금이 되어 정치밥 먹은지 벌써 십년도 더 되었으니 이 정도는 해줘야 기본이지만, 그동안 아버지와 마누라 기에 눌려 살았다고 생각한 이미지와는 다소 달랐다. 평범한 시절에 임금이 되었으면 보통 이상은 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랴. 시절이 평범하지 않은 것을. 각별히 불우한 시절에 임금이 되었으니 그 이상의 정치력을 보여줄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괜찮기는 했어도 역시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내게 있어 고종은.

 

개화파들도 마찬가지다. 명문가의 자제에, 권세가의 자제에, 임금의 부마이기도 했던 젊은이까지 개혁에 나섰다. 일신의 영달만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 의도의 첫 순수함과 열정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방법이 잘못 됐다. 급진 개화파들이 모델로 삼은 일본의 메이지유신. 단순히 엘리트들이 정변으로 권력을 잡고 개혁을 진행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랜 존왕운동의 연장으로 '대중적 지지기반'이 있었고, 저항을 막아낼 자체의 무력이 있었다. 급진개화파에게는 둘 다 없었다. 위로부터의 개혁의 한계였다. 대중적 지지기반이 없는 개혁, 성공할 수가 없다. 오늘날 진보 운동 하는 사람들이 새겨볼 부분이다. 무지해서 생각 없이 1번 찍었다고 생각하면, 또 지는 거다.

 

역사는 거울이다. 과거를 통해 오늘을 진단하고, 미래를 예단한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미래도 가망이 없다. 망국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 이유이다.

 

저자 박시백은 이 시리즈를 '철종실록'에서 마무리 지어야 하는가 고민했다고 했다. 이후 실록은 일제 감정기에서 편찬되었기 때문에 일본의 개입이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전 실록에서도 집권 당파나 세력의 입김은 작용했었다. 실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실을 담고 있고, 그러니 고종실록도 진행하는 게 마땅하다고 여긴 것이다. 다행히 오늘날에서 가까운 시기인지라 실록말고도 관련 기록이 아주 풍부하다. 당대 우리나라 사람뿐 아니라 외국인의 시선으로 기록한 객관적 자료들도 많다. 사진 자료도 있고 말이다. 참고문헌을 보니 독자 역시 보고 싶어지는 책이 많아서 다소 흥분되었다. 역으로 이런 도움이 가능하였군!

 

 

언제나 진지함과 핵심을 뚫는 정교한 실력을 보여주지만 유머도 결코 잊지 않는 박시백이다. 소매 폭을 줄이라는 고종의 명에 대한 사대부의 저 반응을 보시라. '스키니 소매'에 빵 터졌다. 이런 순간순간의 웃음은 자주 포착된다. 바로 이 맛에 초등 저학년만 벗어나면 누구에게든 권할 수 있는 책이 되었다. 많은 역사적 내용을 담고 있어서 글밥도 무척 많은 편이지만 지루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리고 열심히 읽은 보람이 분명 차곡차곡 쌓이는 책이다. 세계가 인정한 이 방대한 역사 기록을 이렇게 읽기 편하게 정리해 주었는데, 이 정도 수고도 하지 않는다면 역사에 미안한 일이다. 닥치고 필독, 다시 한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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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que 2013-02-20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고 사진에다 표시해도 될 것을 왜 아까운 책에다가 노랑 천지를..ㅠ

마노아 2013-02-20 16:14   좋아요 1 | URL
공부의 흔적인 거죠. 근데 제 책에 필기한 것을 지금 아까워하시는 건가요?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 삶의 본연을 일깨워주는 고요한 울림
세스 지음, 최세희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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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구쪽 만화는 확실히 정서 차이를 많이 느끼게 한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그림보다 내용의 충격성에서 꽤 감명을 받았는데, 마찬가지로 내용 쪽이 충격적인 조 사코의 '안전지대 고라즈데'는 읽어내는 게 무척 힘들었다. 아무래도 지나치게 빽빽한 그림과 사전을 읽는 것 같은 피로감을 주는 과한 글자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그 중간쯤 되겠다. 간결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그림에 글밥도 아주 많지는 않다. 하지만 무척 조용한 서사로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만화와 일본만화에 익숙한 독자로서 다소 낯선 편이긴 했다.

 

이 책은 저자 세스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만화가이면서 오래된 만화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던 작가는 어느날 우연히 오래전 뉴요커 잡지에서 확 꽂히는 그림을 그린 작가를 발견해냈다. 그에 대한 정보를 수소문 했지만 찾을 수 있는 작품은 무척 한정적이었다.

 

 

무언가에 꽂히면 올인하는 성격인가 보다, 세스는. 이후 출판사에 직접 연락을 해서 작가의 신상을 알아내고, 그가 자신이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래서 직접 그 동네로 가보기도 했다. 작가는 이미 죽은지 오래였고, 세스는 그의 흔적을 쉽게 찹지 못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파고드니 캘로의 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집으로 다시 찾아간다. 그러나 딸은 아버지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사진 몇 장을 얻고 어머니에 대한 추억 몇 가지만 들었을 뿐이다. 대신 아직도 살아계신 캘로의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 자기 아들 얘기 마다하는 어미 봤냐는 아흔 셋의 노모와 캘로의 옛 친구도 찾아가서 만난다. 이 모든 작업들이 무려 십년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무척 집요한 면이 있는 작가 세스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도 집착하게 만든 것일까?

 

 

캘로가 그린 삽화들이다. 왼쪽 그림에는 "어머, 신기해라! 내가 당신 바로 전 해의 미스 오클라호마였다우!"라고 적혀 있다. 1947년 5월에 실린 그림이다. 오른쪽 그림에는 "아니, 혼자 있겠다는 게 아니야. 그냥 좀 내버려둬달라고."라고 적혀 있다. 1954년 10월에 실렸다. 왼쪽 그림에서 유머를 읽었다면 오른쪽 그림에서 어쩐지 좀 짠한 기분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는 청소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캘로는 미국에서 한동안 활동을 했지만 세스를 홀린 만큼 많이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내 캐나다로 돌아왔고, 그 다음에는 부동산을 운영하면서 지내다가 사망했다. 가족들조차 캘로가 남긴 그림을 소장하지 못했다. 본인이 직접 그림을 없앴을 수도 있고, 가족들이 못 찾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만화가로서 활동했던 경력에 비해 그 흔적이 많이 남지는 않은 편이다.

 

화려하게 불탄 것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사그라져간 그 예술 혼에 세스는 더 관심이 갔던 것은 아닐까 싶다. 세스는 무척 내성적인 성격이다. 아주 친한 친구가 있지만 그다지 사교적인 편은 아닌 것 같고, 꾸준히 여자 친구도 만들지만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밤에 자다가 깨어보니 스케이트 타는 사람이 있었다. 다음 날 왕년의 솜씨를 떠올리며 스케이트를 타보지만 바로 엉덩방아 찧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릴 적에는 비가 오면 종이 배를 띄워놓고 혼자 놀기도 했다.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지만, 또 외로움도 많이 타는 사람으로 보인다. 캘로의 일로 낯선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난 뒤에 절친에게 전화를 걸어 익숙한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을 더 잘 알아보는 법!

 

 

캘로를 찾는 과정에서 하루 머물렀던 여관 이웃방에 장기 투숙 중이던 화가가 있었다. 동종 업종이긴 하지만 애니가 보여준 과도한 친밀감은 도리어 그녀의 외로움을 더 짙게 드러내고 말았다. 피곤하다고 그만 방으로 돌아가려는 세스를 그녀가 얼마나 간절히 붙잡았던가. 다음날 떠나기 전에 세스는 그녀의 방문에 쪽지를 하나 남긴다. 얼굴을 보면서까지 인사할 정도는 아니어도 훌쩍 떠남으로 그녀에게 상처를 다시 만들지 않으려는 소박한 배려가 돋보인다. 거창하진 않더라도 작고 따뜻한 마음씀이다.

 

 

작품은 아주 천천히 물 흐르듯이 잔잔하게 진행되는데, 세스의 동선과 시간을 고스란히 그 속도로 담아내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어린 시절에 읽었던 만화책의 한 대목을 떠올리는 부분이다. 에르제의 "땡땡의 모험"에서 땡땡이 기차 위를 달리다가 터널에 머리를 부딪칠 뻔하는 위기의 장면이라고. 출판사 편집자는 어린이들이 따라할지도 모르니 그 장면을 지우자고 했지만 에르제는 거절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터널만 보면 그 만화의 한대목을 떠올리는 애독자도 생겼다.

 

어떤 기분일지 나도 알 것 같다. 어릴 때 언니가 읽던 셜록 홈즈 시리즈를 몰래 가져다가 읽었더랬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2층집 창문에서 시체를 기차 위로 던졌고, 기차가 달리다가 커브 길에서 도는 바람에 시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살해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엉뚱한 곳에서 사체가 발견된 것이다. 홈즈는 단번에 2층집 창문을 생각해 냈고, 기차를 타고서 지나는 길목에 위치한 2층집을 찾아낸다. 당시 내가 살던 동네에 꼭 그런 집을 연상시키는 2층 집이 있었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홈즈의 그 대목이 생각났고, 하얀 페인트 칠이 되어 있는 아주 깔끔한 그 집이 음산하게 보였다. 날도 환한데 괜히 무섭다고 뛰어서 돌아가기도 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찾아보면 이런 식의 추억은 꽤 많을 것이다.

 

작품의 미덕은 이렇게 느린 속도의 전개가 독자로 하여금 마찬가지로 추억을 되새기게 하고 나도 그랬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는 것이다. 극적인 변화를 싫어하고 지금 이대로를 좋아하는 세스. 본인이 만났던 사람들 전부를 리스트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는 세스. 이거 무척 재밌는 생각이다. 사람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 못하는 나는 과연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적을 수 있을까? 그들을 학연 지연 그밖에 취미, 업무 등등의 카테고리로 나누고 친밀도를 떠올려 본다면, 마치 핸드폰 속 전화번호부 카테고리가 구현될지도...

 

작품의 제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더 강해진다면'이란 가정이 아니라 '약해지지만 않는다면'이라고 했다. 모두가 더 강하고 더 빠르게를 외치는 시대에서 약해지지만 않는 정도로도 만족할 수 있는 삶이라니, 그 느려보이지만 가볍지 않은 삶이 흐뭇하게 다가온다. 내가 참 좋아하는 가수 이승환이 그런 말을 했다. 불행하지만 않으면 행복한 거라고... 동의한다. 불행하지 않으면 그걸로도 행복한 거지. 마찬가지로,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그 정도면 괜찮은 인생이다. 조금만 빈틈을 보여도 루저 취급받는 세상에서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라고 말해주는 것, 정말 최고의 위로 아니던가. 크게 욕심 부리지 않고 자족하는 삶,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는 삶... 그런 삶을 지향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살고 싶다.

 

 

독특한 주석이다. 작품에 등장한 여러 만화책과 작가들을 맨 뒷장에 소개했는데, 저렇게 캐릭터들도 같이 실어주었다. 이런 스타일의 그림이구나... 감상하는 게 즐거웠다. 이렇게 재미난 주석이라면 귀찮다고 패쓰패쓰할 일이 없을 텐데...

 

오른쪽 붉은 바탕의 사진은 책의 앞뒤 날개를 펼치면 나오는 장면이다. 캘로의 아내 헬렌과 딸의 모습이다. 캘로를 찾아내면서 시작된 세스의 여정이 다시 캘로에서 끝난다. 기승전결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구나, 세스는!

 

 

1940년대 말에서 50년대 초로 추정되는 뉴욕 시절의 캘로 사진이다. 통 넓은 바지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나보다.

 

오른쪽의 제목은 내지 표지인데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다시 한번 강조하는 의미로 한컷 찍었다. 괜찮은 인생이라는 말이, 오늘 여러모로 나를 안심시킨다. 

 

덧글) 오타가 하나 있다. 37쪽 맨 위 두번째 컷 : 교정를 보다가 >>> 교정을 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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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용법 - 제1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작 신나는 책읽기 33
김성진 지음, 김중석 그림 / 창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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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독특했다. 엄마 사용법이라니? 아이가 원하는 엄마상 같은 걸까? 내 짐작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아이는 정말로 본인이 원하는 엄마 스타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엄마가 배달되어 온단다. 이 무슨 놀라운 상황인가?

 

작품의 배경이나 시대는 크게 신경쓰지 말자. 어느 시대 어느 때건, 작품 속에선 '생명장난감'이라는 게 등장한다. 조립한 다음에 작동을 시키면 살아서 움직인다. 주인공 현수는 이전에 '익룡'을 샀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조립을 다 하기 전에 작동을 시켜서 눈이 없었던 익룡은 여기저기 부딪히다가 사고를 내고 파란  사냥꾼에게 잡혀갔다. '파란 사냥꾼'이란 바이오 토이 사의 직원들이다. 파란 옷에 피노키오 모양의 마크를 단 작업꾼들.

 

 

창밖으로 떨어져 나뭇가지에 걸린 익룡이 파란 피를 흘리고 있다. 마치 찢어진 연처럼 걸린 익룡은 현수에게 상처로 남았다. 파란 사냥꾼들은 생명장난감이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익룡은 분명 비명을 질렀다. 마음이 없는 생명장난감은 고통도 없다고 했다. 그 얘기, 믿을 수 있을까?

 

그때의 경험으로 아빠는 현수가 '엄마'를 사달라고 했을 때 단번에 거절했다. 그러나 출장 중에 손자를 돌봐주기로 했던 할아버지가 다리를 다쳐서 병원에 가시는 바람에 당장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빠는 결국 엄마를 사주기로 한다.

 

마침내 배달되어 온 엄마. 현수는 택배 상자를 직접 집 안까지 들고 갔다. 제법 무거웠지만 어린 아이가 들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 생명장난감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무겁지 않은 거라고 했다. 마음의 무게라... 왠지 마음이 묵직해 진다.

 

생명장난감은 깨어나서 처음 본 사람만 따르게 되어 있다. 엄마를 처음 만나는 소중한 자리다. 현수는 거의 목욕재계 한 뒤에 엄마를 조립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열심을 보였지만 실수로 손끝을 베어서 핏방울이 엄마의 가슴 위로 떨어졌다. 피는 금세 엄마 몸에 스며들었다. 마치 심장이 뛰어야 할 자리를 찾아가듯이... 그런데 깨어난 엄마는 현수를 낯설어 했다. 식사를 챙겨 주었지만 방에 우두커니 앉아서 나오지를 않았다. 현수가 생각했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 날, 현수는 또 다시 지각했다. 학교 가는 길엔 지붕 위에서 똥을 던지는 고릴라와 마주치곤 했다. 벌써 두번이나 머리에 똥을 맞은 전력이 있던 현수는 하늘도 보랴, 똥도 피하랴 아주 힘들었다. 선생님은 또 다시 고릴라 핑계를 댈 거냐고 타박이시다. 현수는 속상했다. 릴라보다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가 깨워주지 않으신 것이다. 선생님은 현수에게 엄마가 없었던 것을 알기 때문에 또 믿지 않으시는 눈치다. 현수는 자꾸만 속상해졌다.

 

날씨가 화창했지만 현수는 비가 오기를 바랐다. 비가 오면 엄마가 우산을 들고 학교에 데릴러 와줄 것만 같아서였다. 본인이 원하는 엄마 모습이 분명 나타날 거라고 아직도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같은 반의 정태성은 현수의 엄마가 '불량품'이라고 했다. 파란 사냥꾼이 와서 잡아 갈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힘도 세고 키도 큰 정태성은 학급 친구들을 많이 괴롭혔다. 급식에 싫어하는 토마토가 나오면 주머니에 숨겼다가 현수처럼 작은 아이들에게 던지는 아이다. 사냥꾼에게 엄마가 잡혀가면 저 토마토처럼 망가질 거라고 무시무시한 소리도 해대는 아이다. 현수는 엄마가 불량품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정태성은 아침에 깨워주지도 않는 엄마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불량품이라고 거듭 말했다. 정태성이 설명하는 엄마의 역할이란 아이를 위해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설거지하고, 온갖 집안일을 해주는 도우미에 불과했다.

 

현수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집에 왔을 때 초인종을 누르면 환한 얼굴로 문을 열며 맞아주는 엄마, 잘못한 일이 있으면 야단도 치는 엄마, 벽에 세우고 키도 표시해 주고 심부름도 시키는 엄마, 같이 구름도 보면서 뭉실뭉실 하얀 양이랑 토끼도 찾고 축구도 같이 하고 화분에 꽃도 심는 엄마다. 지렁이가 나오면 무서워해서 자신이 쫓아내주면 자랑스럽게 바라봐주는 그런 엄마...

 

아이의 소박하면서도 구체적인 엄마 상이 뭉클하다. 다감한 아이다. 세상 때 묻지 않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아이다. 자주 넘어지곤 했던 현수는 넘어져서 다친 할아버지께 귀여운 조언도 해준다.

 

"이건 비밀인데요, 아무도 안 볼 때는 조금 창피하더라도 앉아서 신발을 신으면 돼요. 저도 사실 친구들이 안 볼 땐 바닥에 앉아서 신발을 신어요."

 

할아버지께도 구체적인 조언을 해주는 당찬 어린이 현수! 할아버지도 현수에게 조언을 해주실 차례다.

 

 

할아버지는 현수의 고민을 이해하셨다. 그러나 '엄마사용법'을 자세히 읽어봤지만 거기에는 현수가 원하는 '진짜' 엄마가 없다. 회사에서 소개한 사용법에는 가사 도우미 역할만 하는 엄마가 있을 뿐이다. 기계적으로 일만 하는 엄마는 표정이 없다.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습득이 빠른 엄마에게 현수가 진짜 엄마 역할을 가르쳐주라고 했다. 해서 현수는 본인이 만나고 싶은 그 엄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자기 전에 책도 읽어주고, 학교 갈 때는 환하게 웃으며 손도 흔들어주었다. 엄마는 현수보다도 더 실감나게 이야기책을 읽어주셨고, 현수와 함께 산책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현수의 얼굴이 활짝 핀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표정을 갖게 된 엄마, 웃을 줄 아는 엄마는 기존에 보이던 생명 장난감과 달랐다. 아랫집 할머니는 불량품이 분명하다며 신고까지 해버렸다. 파란 사냥꾼이 엄마를 잡기 위해 포위망을 좁혀 왔다. 현수는 엄마를 지붕 위로 끌어올려서 도망치려고 했는데 처음 받았을 때와 달리 엄마가 너무 무거웠다. 그렇다! 엄마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마음이 자라서 표정도 있고, 생각도 있고, 감정도 있는 엄마는 결코 장난감이 될 수 없었다.

 

 

위기에 처한 현수를 도와준 것은 뜻밖에도 고릴라였다. 늘 현수에게 똥을 던져서 힘들게 했던 바로 그 고릴라 말이다. 고릴라는 더듬더듬 말도 했다. 도움을 입은 현수는 왜 똥을 던지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고릴라는 그게 친구가 되자는 의미라고 생각했단다. 불량품으로 분류되어 수거될 상황에 처한 고릴라가 도망친 것은 정태성의 집에서였다. 늘 무언가를 던지곤 하는 정태성에게서 처음 받은 인상을 '친구가 되자'는 의미로 해석한 고릴라. 마음이 짠하다. 정태성은 무려 마음을 가진 이 고릴라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잠시 벗어난 위기가 끝이 아니었다. 파란 사냥꾼을 피하려면 엄마는 현수 곁을 떠나야 한다.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주어야 한다. 감정을 가진 엄마를, 진짜 엄마 같은 내 엄마를 만났는데, 그 엄마와 헤어져야 한다. 어린 현수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아픈 이별이다. 현수는, 정말 엄마와 헤어지게 되는 것일까? 다른 길은 없는 것일까?

 

상상력이 기발한 책이다. 재밌를 뛰어넘는 깊은 감동도 있다. '엄마'에게 기대되곤 하는, 그리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엄마의 '사랑'이라는 것을, 또 아이가 엄마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작품은 무생물 장난감을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 무게를 지닌 마음이 계속 입가에 맴돈다. 사람이 되고 싶었던 피노키오 마크를 가진 파란 사냥꾼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마저리 윌리엄스의 '헝겊 토끼 인형'이 괜히 진짜 토끼가 된 것이 아니다. 시간과 추억을 사랑으로 메꾼 관계가 생명력을 주었다. 그것이 마법이고, 그것이 기적이었다. 진짜 엄마 사용법을 알아차버린 현수, 진정한 엄마 사용법이란 '사랑'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낸 현수에게 진짜 엄마가 무사히 곁에 있어주기를!

 

덧글) 오타 하나 있다.

50쪽 그렇지만 그런 일을 절대로 없을 거야 >>> 그런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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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3-01-12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무슨 편집자의 글 같은 리뷰인가요.... 궁금해도 너~무 궁금해지잖아요.

마노아 2013-01-12 22:26   좋아요 0 | URL
으하하핫, 이 무슨 과찬의 말씀을~ 파비아나님 반갑습니다. 새해 복 듬뿍듬뿍 받으셔요~
혹시 작품의 결말이 궁금하시다면 비밀글로 말해줄 수 있어용~^^ㅎㅎㅎ

같은하늘 2013-01-17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지난주에 빌려왔다 못 읽고 반납했다는 슬픈전설이...ㅜㅜ
다시 빌려와야징~~ㅋㅋ

마노아 2013-01-18 18:45   좋아요 0 | URL
다시 봐요. 참 좋은 책이에요. 뭉클뭉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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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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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란은 궁금했다. 병아리를 키우는 남학생이 사는 집은 어떨까. 어떤 부모와 어떤 형제가 사는 집일까. 어떤 집에서 어떻게 자라야 달걀에서 병아리를 떠올릴 수 있을까. 지란에게 달걀은 그저 손쉽게 해먹을 수 있는 음식 재료일 뿐이었다. 그런데 해일은 달걀에서 병아리를 보았다. 부러웠다. 평화롭고 따뜻한 집일 것 같아서. 그런 집에 한 번이라도 가 보고 싶었다.-141쪽

'시원'과 별 차이도 없는데 이놈의 '쿨'은 뭔가를 강요하는 면이 있었다. 쿨하지 않으면 왠지 촌스럽고 질척한 인간처럼 만드는 요상한 말이었다. -143쪽

아이들은 해일의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담임뿐만 아니라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그렇지 않은가. 한없이 기대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쪼르르 달려가 폭 안길 만큼 편안한 존재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어떤 곤란한 일이 닥쳤을 때 "무슨 일이냐?"하고 등장한 선생님처럼 든든한 존재가 또 있을까?-152쪽

부릅뜬 지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달걀로 병아리를 부화시키는 동생, 외출하고 돌아와 병아리의 안부를 묻는 형, 아들이 부화시킨 병아리에게 꼬박꼬박 먹이를 챙겨 주는 어머니, 그것들에게 집을 지어 주겠노라 재료를 모아 둔 아버지. 그런 가족이 지란의 집에는 없었다. 갈기갈기 찢긴 종이처럼 너덜한 상처만 남은 집. '나'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이라는 말만 쏟아지게 만드는 집, 지란은 이 끔찍한 집이 싫었다.-178쪽

늦은 밤 닭갈비집은, 배부르고 맛있게 따뜻했다.-195쪽

남들과 너무 다르다는 말은 어린 해일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잔인한 억압이었다. 다르다는 말을 틀렸다는 말로 알고, 자신을 늘 틀린 아이로 생각했다. 그런데 감정 설계 전문가 형이, 남들과 아주 똑같다고 했다. 형이, 형이 그랬다. 너무 오래 기다린 말인 탓에 눈물이 나고 말았다.-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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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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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둑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누구의 마음을 훔친 거였다는 낭만적 도둑도 아니며, 양심에는 걸리나 사정이 워낙 나빠 훔칠 수밖에 없었다는 생계형 도둑도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한 도둑이다. 강도가 아니니 흉기를 지녀서는 안 되며 사람을 해쳐도 안 된다. 몸에 지닌 지갑이나 가방에 손을 대는 소매치기 날치기도 아니다. 나는 거기에 있는 그것을 가지고 나오는, 그런 도둑이다.

도발적인 첫문장이다. 스스로를 도둑이라고 밝힌 이 사람은, 올해 18세의 고등학생이다. 첫 도둑질이 일곱살 때였던, 타고나기를 섬세한 손을 가진, 그런 전천후 도둑이었다. 주인공 해일이 짝꿍 지란의 전자수첩을 훔쳐낸 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감쪽같이 물건을 손에 쥐었다. 훔쳐낸 전자수첩은 중고거래로 현금으로 만들었다. 깔끔하게 손에서 떠나보내고 그 돈은 통장에 모았다. 생계형 도둑도 아닌 해일은 훔쳐내어 만든 돈을 그저 쌓아둘 뿐, 어디에 쓰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이 아이, 어떤 문제아인가? 도벽을 가진 것인가?

 

도벽은 아닌 것 같다. 집안도 표나게 유복하지는 않아도 무척 화목한 편이다. 노상 싸우고 큰 소리가 넘나들지만, 그래도 서로 아껴주고 보듬어주는 가족의 모습이 분명했다. 띠동갑 형은 어릴 적 천재 소리를 들으며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현재는 백수다. 그렇다고 기죽어 사는 것도 아니고 '감정설계사'가 되겠다고 터무니없어 보이는 소리를 당당하게 내뱉으며 아버지의 애를 태운다. 그런데 그 감정설계, 무척 구미가 당긴다. 우리는 모두 감정에 휘둘리는 약한 사람들이 아닌가.

 

해일이 손을 댄 전자수첩의 주인 허지란. 아빠의 전자수첩을 일주일만 빌렸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아빠는 새아빠였다. 친아빠와 엄마가 이혼하고 마음으로 방황하던 아이가 처음으로 새아빠에게 애교를 떨어서 받아낸 전자수첩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니라 아이가 몇 해만에 마음을 열었던 증표였던 것이다. 그랬던 물건을 도난당했다. 그 사정을 도둑이 알까마는...

 

작품이 본격적인 재미를 주기 시작한 것은 해일이 병아리를 부화시키겠다고 유정란을 들이면서부터였다. 급하게 변명을 둘러대느라 눈에 띈 상자에 쓰여진대로 부화를 이야기했을 뿐인데, 그것이 판이 커졌다. 온 가족의 기대와 해일 자신의 격려 속에서 유정란 두개가 수정에 성공했고, 그 안에서 생명이 탄생했다. 이렇게 개인이 알을 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던 독자는 이 모든 과정들이 체험학습 하는 것처럼 신기하고도 신비롭게 보였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병아리를 키우겠다고 하는데 그것을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부모와 형님이라니, 이것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대한민국에 이런 고등학생이 있을 수 있다니! 이 사실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다.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담임과의 사이에 벽을 무너뜨렸고, 병아리송이라는 건전한 노래로 친구들의 시선을 끌었고, 병아리 구경하기 위해서 집으로 놀러오겠다는 아이들마저 생겼다. 그리고 그렇게 몰려온 아이들을 향해 재밌게 놀라고 권하는 엄마도 있다. 아, 이 소박한 모습이 왜 이리 감동적인가.

 

병아리 이야기에 잠시 마음을 빼았겼지만, 해일의 도둑질이 끝난 것은 아니다. 사이사이 해일의 빠른 손은 여전히 그 섬세함을 자랑했다. 그러나 물건에도 사연이 있다. 그 물건을 사용한 사람과의 추억이 있다. 자신이 건드린 무언가가 또 다른 부메랑이 되어서 자신에게로 돌아왔을 때 해일은 당황했다. 차라리 친구들에게 들켜서라도 멈추고 싶은 욕망마저도 있었다. 그렇게라도 벌을 받고 싶은 아픈 자아가 있었다. 대체 해일의 마음 속 무엇이 해일을 이렇게 도둑질하게 만들었을까. 이 다복해 보이는 가정에서 대체 무엇이....

 

지란의 이야기도 깊숙이 들어가본다. 친아빠의 외도, 행복하지 않은 엄마, 더불어 행복하지 않았던 어린 지란이의 상처가 독기로 똘똘 뭉쳐졌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도 작가는 변명을 해준다. 그래도 사랑했다는 것, 그래도 아꼈다는 것을 독자는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해서 마찬가지로 받아낼 수 없는 게 또 사랑 아닌가. 그걸 힘으로, 자격으로 밀어붙이면 그것도 폭력이 될 수 있으니...

 

작품은 무척 입체적이다. 반장병에 걸린 다영이와, 백설공주에 나오는 독사과 권하는 왕비 같은 미연이, 입은 거칠지만 나름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보이는 진오까지 저마다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캐릭터를 소화해낸다. 그 나이 또래 청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누군가는 진지한 역할을, 누군가는 유머러스한 역할을 맡았고, 누구는 다정하고, 누구는 또 까칠하다. 어느 쪽도 넘치지 않고, 어느 쪽도 모자라지 않다. 앞선 작품 완득이나 우아한 거짓말에서 보다 더 균형잡히고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전달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눈물 쏙 빼는 감동이 있다. 이 외로운 청소년들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괜찮다고 말해주는 목소리가 들린다. 궁디 팡팡!! 해가면서 격려해주는 손길이 느껴진다. 그래서 무척, 따뜻하다. 독자도 청소년들만큼이나 위로를 받은 모양이다.

 

작가님은 게다가 센스까지 있다.

 

"야!야!오늘담임중대발표가있나봐엄청엄한얼굴로온다!"

 

이 문장, 어떻게 읽히는가. 띄어쓰기가 없다. 그만큼 빠른 말로 쉬지 않고 말을 했다는 의미다. 아, 이렇게 종이 책을 오디오까지 곁들여서 표현하는 센스라니!!

 

담임 선생님의 과거 이야기가 덜 나온 것은 조금 아쉽다. 제자에게 폭행을 당한 선생님이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교단을 여전히 지킨 이 강인한 선생님. 직설적으로 학생 가린다고 말하는 선생님. 제 능력 이상의 것을 주려고 하지 않고, 오버해서 착한 선생님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여론을 조작해서 제 마음에 안 드는 학생을 따 시키려는 학생을 상징적으로 경고해주는 카리스마 있는 선생님이다. 이 선생님이 제시한 상징이 백설공주 새엄마의 '독사과'다. 요즘 독사과는 뭘까? 라는 질문에 진오가 답한다.

 

"음...... 조작으로 나쁜 여론 만들기? 우르르 몰려가서 끝장낼 수 있잖아요. 나중에 일이 잘못돼도 슬쩍 발 빼기 쉽고요. 쟤도 그랬고 너도 그랬잖아, 그런 식으로 죄책감을 n분의 1로 나누는 거죠."

 

뼈 있는 말이다. 비단 학교에서만 그런 게 아니지 않은가. 우리 살고 있는 세상에서 얼마든지 적용 가능하다. 지금처럼 온라인이 활성화된 상태라면 더더욱.

 

피자를 먹으면서 오고 갔던 독사과 공방은 시사점이 컸다. 과연 이런 목소리를 낼만큼 아이들은 생각이 여물었는가 잠시 머리를 갸우뚱했지만, 이런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는 우리의 교실이 비정상이라고 다시 고개를 끄덕여본다.

 

제목의 가시고백. 해일은 고백하고 싶었다. 자신이 도둑이라는 것을, 자신이 훔쳤다는 것을. 분명 가시를 뽑는 것은 큰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뽑지 않으면 그 상처는 곪을 것이다. 해일은 그 가시를 어떻게 뽑을 것인가. 어떤 고백으로?

지란도 가시가 있다. 친아빠와 새아빠의 사이에서 상처입고 자라지 못한 어린 아이를 해방시켜야 한다. 그렇게 지란의 가시도 뽑아야 한다.

 

청소년 소설은 대개 '성장 소설'로 귀결된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고민과 방황을 이야기하고, 이 아이들이 자신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결핍을 메우고 그렇게 자라가는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아이들은 한뼘씩 자라고, 독자는 그 덕분에 기운을 얻는다. 이미 다 자란 성인이지만, 그 아이들만큼이나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가 가슴 속에 하나씩 있고, 그 아이들처럼 채우지 못한 결핍을 늘 끌어안고 산다. 그리고 이런 작품을 하나씩 만나면 손톱 밑 가시 하나씩 들여다본다. 내 가시를 떨쳐낼 나의 고백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나의 가시가 혹시 나말고 다른 사람도 찌른 것은 아닌지 나의 '거울'을 쳐다본다. 내가 해치고 싶은 상대를 차지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도구로서 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좋은 작품을 만나서 몹시 고맙다. 눈시울이 촉촉해지면서 내 감성 아직 죽지 않았어! 라며 실없는 웃음도 지어본다. 이 작품, 참 좋다. 참 재밌고, 참 따뜻하다. 웃음과 깨달음, 감동을 함께 전달해주는 작가라니, 독자에게는 최고의 선물이다. 고맙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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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1-11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시고백, 참 좋았어요~ 다들 읽어보라 추천하고 싶은 책!
리뷰도 훌륭해요~ ^^

마노아 2013-01-11 11:46   좋아요 0 | URL
저 좀 시큰둥하게 읽기 시작했는데 갈수록 좋아지는 거예요. 저력 있어요. 근성도 있구요. 작가님이 더 좋아졌어요. 칭찬 감사해용! 저도 이 책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