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의 하루 - 오늘, 일본 황궁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요네쿠보 아케미 지음, 정순분 옮김 / 김영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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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금의 하루를 소재로 한 '왕의 하루'에 이어 이번엔 '천황의 하루'다. 그 중에서도 일본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메이지 천황의 하루를 통해서 전통과 규율을 존중하다 못해 거의 집착하는 이 '신성' 체제의 내부를 슬쩍 들여다보고 있다.

 

시작은 천황의 기상부터다. 평일 오전 8시, "오히~루(기상)"
라고 외치는 소리가 울리면 방에서 방으로 기상 시간을 알리는 말전달이 이어지고 궁성의 하루가 열린다. 전통은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에 천황은 8시보다 일찍 일어나서도 안 되고 늦게 일어나서도 안 된다. 천황이 일찍 일어나버리면 보필하는 이들의 스케줄도 모두 꼬이기 때문에 설령 아침 잠이 없어진 노년에 가서도 이 시간은 지켜져야만 했다. 잠에서 깬 천황은 시의의 진찰을 받고 화장을 한다. 이때의 '화장'이란 몸치장 전체를 가리키는 궁중 용어다. 이때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한 다음 따뜻한 물수건으로 상반신을 닦아낸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빗고 향수를 뿌리면 준비 끝! 메이지 천황은 외국의 향수 한 병을 이삼일 만에 다 썼을 정도로 향수 매니아였다고 한다. 어휴, 향수를 그렇게 뿌려댔으면 주변 사람들이 꽤 힘들었을 것 같다.

 

 

키 165cm정도의 메이지 천황. 당시 기준으로는 꽤 큰편이었다고 한다. 눈빛이 부리부리, 사진을 뚫고 나올 것만 같다.

 

 

 

황후 하루코다. 몹시 병약했다고 하는데, 아파보이는 건 둘째 치고 표정이 너무 없어서 종이 인형처럼 느껴진다. 부부가 모두 얼굴이 꽤 크다. 전통적 동양인의 체형이었을 테지. 지금이야 키도 커지고 얼굴도 작아진 모양새지만...

 

조식은 각자 먹고 천황의 하루 업무가 시작된다. 한시도 가만 있지 않는 성정의 천황은 심지어 모든 서류를 서서 검토했다고 한다. 천황이 서 있으니 결재 받으러 온 신하가 감히 앉아 있을 도리가 있나. 그런데 그런 천황 앞에서도 앉아서 볼일 본 사람이 있다고 한다.

 

 

황족이 알현을 왔을 때도 양쪽이 모두 기립한 상태에서 대화가 진행되었는데 예외적으로 의자에 앉은 인물들이 있었다. 아리스가와 다케히토 친왕과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이다. 보조가 특히 이토는 “어전에 나갈 때는 보통 검을 빼고 들어가는데 그 사람만은 찬 채로 들어갔습니다” “팔꿈치를 의자에 기대고 편안한 자세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메이지 대제의 일상을 추억하다》)라고 하는 것처럼 별격이었던 듯하다. -69쪽

 

이토의 파워가 이정도였구나. 굉장히 씁쓸해진다. 심지어 황태자는 아버지를 어려워해서 천황의 기분을 먼저 확인한 후에야 알현을 했다고 하는데 말이다.

 

메이지 천황은 꽤 세밀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배려심도 꽤 돋보인다. 잠시도 앉지 않고 서서 일을 보는 것도 사실 아랫 사람들을 고려한 습관이었다. 자신의 행동 반경에 따라서 뒤따르는 이들의 업무 양이 폭발학 때문에 산책도 삼가는 사람이었다. 사실 비합리적이거나 비상식적인 전통이 있다면 그걸 바꾸는 게 더 나은 법이건만,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던 메이지 천황은 자신이 불편을 감수하고 주변 사람들을 좀 더 편하게 만드는 차선책을 고집했다.

 

신하들에게 승마를 시켜 건강을 관리하게 하였지만 정작 자신은 운동 부족이었다. 운동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역시 그에 따라오는 번다한 규칙과 주변인들의 불편을 덜기 위함이었다. 여관들이 무거운 물건을 놓아다가 둘 일이 많은데 자신이 자리에 있으면 일일이 인사를 하고 무릎걸음으로 지나가야 하니, 이때도 자리를 비켜주는 것으로 그들의 불편함을 덜어내었다. 최선의 방법은 취하지 않아도 차선까지는 해내는 인물이었다. 전근대 사회와 근대 사회의 경계에 선 사람으로 보인다.

 

검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던 천황. 식민지배의 묵은 업이 있는 이나라의 독자로서 잠시 눈썹이 꿈틀대는 순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인데, 메이지 천황은 한 사람의 개인으로 보면 무척 괜찮은 인물로 보였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주변에도 규칙을 준수할 것을 강조하지만, 나름의 유머도 있고 섬세한 배려도 자주 보인 인물이었다. 병약한 아내는 물론이요, 보좌하는 신하들, 그리고 궁에서 어려서부터 생활한 소년들에게도 그랬다. 제 몸이 불편할지언정 신하들의 불편함은 최대한 덜어주려고도 애썼다. 그런데 그 메이지 천황이 집권한 시기에 조선은 강화도 조약을 체결했고 어마어마하게 수탈을 당하다가 끝내 강제 병합되었다. 문득, 청문회를 요란하게 했던 흡사마가 떠오른다. 그 사람도 자기 집에서는 따뜻하고 섬세한 아버지일지도 모른다. 가족을 위해서는 물불을 안 가린 행적을 보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공직에 어울리냐고 묻는다면 어휴, 말을 말아야지.... 일본 사람들에게 메이지 천황은 존경의 대상일지 모르겠으나 대한민국 독자로서 나는 어디 감정이 그래지는가.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로까지 범위를 넓혀도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최대한 담담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사실 책도 천황의 하루를 따라가면서 그 시대의 분위기를 보여줄 뿐, 심각한 정치적 역사적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 크게 웃기지는 않지만 나름 유머도 섞어가면서 애를 쓰는 게 보인다. 이를테면 천황이 아꼈던 개가 오히려 신하들을 아랫 사람으로 대하듯 심통 부리는 장면 등이 그랬다.

 

 

 

깨끗하고 신성한 것은 '청', 지저분하고 터부의 대상이 되는 '차'의 구분이 인상적이었다.

 

104

여관이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하는 것은 식사 당번 때만이 아니었다. 하반신은 인간의 몸에서도 대표적인 ‘차’의 장소이기 때문에 손이 더러워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여관은 자신의 양말이나 버선도 아랫사람의 손을 빌려 신었다고 한다. 다다미에 앉아서 엎드려 인사를 할 때도 발로 밟는 다다미 때문에 자신의 손바닥이 더럽혀질까봐 한 손은 손등을 바닥으로 향하게 하고 그 위에 다른 한 손을 포개놓는 식으로 했다. 만에 하나 손이 더럽혀지면 청정의 과정을 다시 되풀이해야 했다.

176

천황의 몸을 씻는 데도 청인 상반신은 권전시, 장시, 권장시가 씻고, 차에 해당하는 하반신은 명부, 권명부가 씻어야 했다. 천황은 신성한 존재이기 때문에 전신을 청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욕조는 물을 허리 정도까지만 채워서 하반신만 물속에 담그도록 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반신욕이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욕조 가득 물을 부으면 상반신까지 물속에 들어가 차인 하반신의 더러움으로 청인 상반신까지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218

몸에서 가장 더러운 발이 이불에 직접 닿으면 이불을 타고 더러움이 온몸에 퍼진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나이기의 잠옷에는 특수한 장치가 되어 있었다. “옷의 끝자락을 길게 해서 발을 감쌌다”고 하므로 발이 이불에 닿지 않도록 하얀 비단 잠옷으로 크레이프처럼 온몸을 싸도록 만든 것이다. 천황 부처와 여관들 모두 그런 잠옷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거의 강박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전통이라니, 그래서 지켜야 한다니 어쩌겠는가. 설마 요즘도 저러지는 않겠지? 답답해서 사람이 어디 살겠는가 싶다. 패기 있고 발랄해 보이던 마사코 황태자비가 칩거 중이라는 소식도 이런 숨막히는 규율 탓이 크지 않을까. 아, 갑자기 김진명의 '황태자비 납치 사건'이 궁금해지는군... ^^

 

책의 본문보다 맨 뒤 부록처럼 실린 신명호 교수의 해설이 더 흥미로웠다. 메이지 유신 때에 어떻게 그렇게 단번에 천황에게로 모든 권력이 옮겨졌을까 궁금했는데 이 부분을 적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타이밍이 잘 맞기도 했지만, 단번에 권력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한 것도 좋은 수확이다. 또 조선의 궁녀와는 신분 차이가 큰 천황의 후궁들에 대한 얘기도 무척 재밌었다. 확실히 일본은 동아시아에 위치해 있지만 유럽과 닮은 점이 많은 듯하다. 지방분권적 정치 스타일도 그랬고, 왕비를 모시는 시녀들이 귀족이었던 것과도 통하니 말이다.

 

앞의 시리즈 '왕의 하루'는 읽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는데 이 책은 무척 빨리 읽혔다. 글밥이 더 적기도 하지만 구성 자체가 보다 간결하고 '하루'라는 타이틀에 맞게 시간 흐름도 정방향이어서 읽는 게 더 수월했다. 혹시 다음 시리즈는 중국 황제의 하루가 되려나? 지배자 말고 또 다른 여러 인물들에게까지 관심을 확대해서 '하루' 시리즈가 더 나왔으면 좋겠다.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되면 무척 재밌을 듯하다.

 

덧글) 오타 하나 발견했다.

223

천황를 수행하는 >>>천황을 수행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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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3-01-24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어 보이네요.
눈썹과 콧수염과 눈빛이 참 인상적인 사진이네요. 그에 비하면 고종이 비슷한 예복 입고 찍은 사진은 얼마나 인자하고 자그마한 조선의 할아버지인가요.

마노아 2013-01-24 20:3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인상부터가 차이가 확 나네요. 한쪽은 순딩이 인상인데 말이지요.^^;;;;

노이에자이트 2013-01-24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후를 모시는 시녀가 귀족인 것 같은데요...왕비도 귀족이 모셨나요? 일황은 천황 한 명이지만 일왕은 여러 명이라 구분이 명확하더라고요.

마노아 2013-01-24 20:33   좋아요 0 | URL
왕비를 모시는 시녀들이 귀족이었다는 말은 유럽 얘기한 거였는데 좀 혼동이 되게 썼네요.
 
천황의 하루 - 오늘, 일본 황궁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요네쿠보 아케미 지음, 정순분 옮김 / 김영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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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천황기》에 의하면 천황의 신장은 5척 5촌 4부였다고 한다. 약 165cm이니 당시로는 체격이 좋은 편에 속했다.
-37쪽

나이기는 천황의 기상인 '오히루‘를 신호로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오히루‘ 전달이 없으면 궁전의 하루 일과가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즉 메이지 천황은 그 존재 자체로 궁전의 시계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천황이라는 궁전의 시계에 그 누구보다도 구속을 받던 존재는 다름 아닌 메이지 천황 자신이었다.

-38쪽

흔히 일본 남성은 가부장적이어서 상대방을 위한 자상한 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습관이 없다고들 한다. 그것이 과연 일본 전통의 모습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헤이안 시대의 문학 작품을 보면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였다. 여성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당시 남성에게는 기본적인 미의식이었다. 메이지 천황도 주위의 여성들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항상 잊지 않았다.

(...)

천황이 가장 좋아한 것은 도코노마(일본 건축에서 객실인 다다미방의 정면에 바닥을 한 층 높여 만들어놓은 곳으로, 액자나 꽃을 놓아두고 신성한 곳으로 여긴다)에 장식되어 있는 각종 검들이었다. 개중에는 천황 스스로 사 모은 것도 있었지만 신하들이 천황의 취미를 알고 헌상한 것들도 있었다.


-52쪽

이 시기 상류 계급에선 의외로 여성 끽연가가 많았다. 현재 우리가 전통적인 풍습으로 생각하는 것 중의 대부분은 중하급 무사의 생활습관을 기본으로 하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여자가 담배를 피우다니"하고 눈살을 찡그리는 것도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생활풍습은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57쪽

황족이 알현을 왔을 때도 양쪽이 모두 기립한 상태에서 대화가 진행되었는데 예외적으로 의자에 앉은 인물들이 있었다. 아리스가와 다케히토 친왕과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이다. 보조가 특히 이토는 "어전에 나갈 때는 보통 검을 빼고 들어가는데 그 사람만은 찬 채로 들어갔습니다" "팔꿈치를 의자에 기대고 편안한 자세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메이지 대제의 일상을 추억하다》)라고 하는 것처럼 별격이었던 듯하다.

-69쪽

여관이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하는 것은 식사 당번 때만이 아니었다. 하반신은 인간의 몸에서도 대표적인 ‘차’의 장소이기 때문에 손이 더러워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여관은 자신의 양말이나 버선도 아랫사람의 손을 빌려 신었다고 한다. 다다미에 앉아서 엎드려 인사를 할 때도 발로 밟는 다다미 때문에 자신의 손바닥이 더럽혀질까봐 한 손은 손등을 바닥으로 향하게 하고 그 위에 다른 한 손을 포개놓는 식으로 했다. 만에 하나 손이 더럽혀지면 청정의 과정을 다시 되풀이해야 했다.

-104쪽

천황의 몸을 씻는 데도 청인 상반신은 권전시, 장시, 권장시가 씻고, 차에 해당하는 하반신은 명부, 권명부가 씻어야 했다. 천황은 신성한 존재이기 때문에 전신을 청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욕조는 물을 허리 정도까지만 채워서 하반신만 물속에 담그도록 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반신욕이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욕조 가득 물을 부으면 상반신까지 물속에 들어가 차인 하반신의 더러움으로 청인 상반신까지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176쪽

몸에서 가장 더러운 발이 이불에 직접 닿으면 이불을 타고 더러움이 온몸에 퍼진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나이기의 잠옷에는 특수한 장치가 되어 있었다. "옷의 끝자락을 길게 해서 발을 감쌌다"고 하므로 발이 이불에 닿지 않도록 하얀 비단 잠옷으로 크레이프처럼 온몸을 싸도록 만든 것이다. 천황 부처와 여관들 모두 그런 잠옷을 사용했다고 한다.

-218쪽

다이쇼 시대의 나이기는 메이지 시대에 비해 크게 달라진 점이 있었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일부일처제가 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메이지 시대와 마찬가지로 궁정에 황후 사다코의 ‘대리인’인 공가의 미혼의 딸들의 재적하고 있었지만 실제적으로 ‘비妃(후궁)’로서의 역할은 없었다.

-231쪽

저녁 식사 때는 메이지 천황 부처가 각각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한 것과 달리 다이쇼 천황 부처는 하나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 식사를 했다.

-235쪽

해설
메이지 천황과 근대 천황제 (신명호)
1867년 12월에 이른바 ‘대정봉환’이 있었다. 에도 막부의 쇼군이 메이지 천황에게 권력을 되돌린 것이 대정봉환이었다. 이는 일본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가마쿠라 막부 시대부터 에도 막부 시대까지 8백 년 가까이 권력에서 소외되었던 천황이 갑자기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대정봉환 이후 메이지 천황은 종교적 권위는 물론 세속적 권력까지 장악한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대정봉환이 이루어지기까지 일본은 10여 년 이상 격심한 혼란을 겪었다. 1853년 6월 3일, 미국의 페리 제독이 네 척의 함선을 이끌고 도쿄 앞바다에 입항했다. 페리 제독은 일본과 수호통상을 요구하는 미국 대통령의 국서를 휴대하고 있었다. 페리 제독의 출현은 에도 막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에도 막부는 전쟁을 해서라도 페리 제독의 요구를 거절해야 한다는 쇄국파와, 전쟁을 해봐야 이길 수 없으니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는 개항파로 갈렸다. 스스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에도 막부는 전국의 영주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영주들 역시 개항파와 쇄국파로 갈렸다.

-260쪽

결국 에도 막부는 고메이 천황에게까지 의견을 구했다. 천황의 권위를 빌리려는 생각이었다. 고메이 천황은 개항에 절대 반대였다. 개항으로 서양의 문화가 들어오면 신국神國 일본이 더럽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의 페리 함대에 이어 8월에는 러시아 함대 네 척이 나가사키에 입항했다. 에도 막부의 입장에서는 쇄국을 고집하기가 더욱더 어려워졌다. 쇄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 러시아 등과 전쟁을 각오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1854년 3월, 에도 막부는 고메이 천황과 논의도 없이 미국과 가나가와에서 수호조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일본은 서구열강에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에도 막부의 개항 결정은 격심한 저항을 불러왔다. 당장 고메이 천황이 강력한 거부감을 표명했다. 하급 무사들은 에도 막부가 신국 일본을 서양 오랑캐에 팔아버렸다며 막부 타도 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서양 오랑캐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천황을 중심으로 뭉쳐 에도 막부를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쓰마 번, 조슈 번 등 거대 번들이 동조하면서 이른바 ‘존왕양이’ 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졌다. 막부파와 천황파 사이에서 유혈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261쪽

결국 에도 막부의 쇼군은 권력을 천황에게 되돌려서 궁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1867년 10월 14일에 에도 막부의 쇼군은 상서를 올려 대정봉환을 요청했다.. 다음 날 에도 막부의 쇼군은 입궁하여 메이지 천황의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12월 9일에 왕정복고가 정식으로 공포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메이지 유신의 시작이었다. 형식적으로 볼 때 메이지 천황은 1867년 12월의 대정봉환으로 세속적 권력까지 장악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일 뿐이었다. 일본은 여전히 수백 개의 번으로 나뉘어 있었고, 세속적 권력은 번 지사들의 손아귀에 있었다. (...) 반면 메이지 천황에게는 직속된 토지나 인민이 없었다. 군대도 없었고 자금도 없었다. 이런 상태로는 천황 주도의 유신이 성공할 수 없었다. 전국의 토지와 인민을 천황이 직접 장악해야 군대와 자금을 직접 장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폐번, 즉 번을 폐지함으로써만 가능했다. 가마쿠라 막부 이래로 8백여 년간 일본 사람들은 번주를 주인으로 알고 살아왔다. 비록 쇼군이 있었지만 실제적으로 세금을 걷고 군대를 징발하는 권한은 번주에게 있었다. 번은 곧 일본 사람들에게 나라였다.

-262쪽

1870년 12월, 메이지 천황의 핵심 측근인 이와쿠라 도모미는 당시의 대표적인 웅번인 사쓰마 번, 조 슈 번, 고지 번을 방문하여 폐번치현의 협력을 약속받았다. 이로부터 폐번치현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마침내 1871년 7월 14일, 메이지 천황은 폐번치현의 조칙을 선포했다. 폐번치현은 8백여 년간 지속되던 막부체제의 종말이자 지방분권체제의 종말이었다. 일본은 군현제에 의해 명실상부한 중앙집권체제로 탈바꿈했다. 그 체제의 정점에 메이지 천황과 하루코 황후가 있었다.

-263쪽

하루코 황후는 곧바로 황후에 책봉된 것이 아니었다. 일단 후궁인 여어어방에 책봉되었다가, 혼례식을 치른 후 황후에 책봉되었다. 천황의 황후가 애초부터 황후에 책봉되는 것이 아니라 후궁에 책봉된 다음에야 책봉된다는 사실은 황후나 후궁이 신분적인 면에서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았음을 뜻했다. 천황의 배우자는 황후이든 후궁이든 기본적으로 5섭가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황후는 어느 후궁이나 승진해서 올라갈 수 있는 자리에 불과했다. 사실 대부분의 천황은 아예 황후를 책봉하지 않기도 했다. 메이지 천황의 부친인 고메이 천황도 그랬다. 고메이 천황의 정실부인인 구조 아사코는 황후에 책봉되지 못하고 후궁 중에서 최고인 준후에 머물러야 했다. 준후는 말 그대로 황후 다음이라는 뜻으로서 엄격히 따지면 후궁이었다.

-265쪽

일본의 여관은 천황과 황후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육체노동을 제공하는 여성 관리였다. 조선으로 치면 궁녀에 해당했다. 하지만 일본의 여관과 조선의 궁녀는 전혀 달랐다. 무엇보다도 신분이 달랐다. 조선의 궁녀는 근본적으로 내수사 소속의 노비 출신이었지만, 일본의 여관은 공경의 딸들이었다. 따라서 일본의 여관은 명색만 여관이지 실제로는 후궁도 될 수 있었고 황후도 될 수 있었다. 신분적으로 여관은 후궁이나 황후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천황의 황후도 처음에 여관으로 시작했다.

-267쪽

(역자후기)
일본국 헌법에는, 천황을 일본국과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이라고 규정하고 있어서 천황 및 황족이 최상의 대우를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다. 황실의 호위만을 전문으로 하는 황궁경찰본부가 있고, 천오백 명에 달하는 궁내청 직원이 황실의 모든 생활을 관리하며, 황족에게는 소득세 납부 의무도 면제된다. 천황 및 황족은 말하자면 갖가지 국가의 특혜를 받는 세습제의 ‘고위직 국가 공무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만큼 그들이 포기해야 하는 인간적인 삶 또한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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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shindanmaker.com/214280

 

내가 태어난 이유는 톰을 놀리기 위해서라고...

톰... 그저께 톰 크루즈 주연의 잭 리처를 무척 재미 없게 보고 오기는 했다.

누구는 당신이 태어난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고 나왔다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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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3-01-22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 님이 태어난 이유는 이따가 알려드릴께요...라네요..ㅜㅜ

마노아 2013-01-22 17:13   좋아요 0 | URL
잠시 후에 다시 가보세요. 뭔가 새로운 게 있을 거예요.ㅋㅋㅋ

다락방 2013-01-22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태어난 이유는 스파이더맨이 되기 위해서래요. 헐.

마노아 2013-01-22 17:1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은 스케일이 크군요. 무려 슈퍼 히어로라니!!

레와 2013-01-22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뭔가요. ㅡ.ㅡㅋ
전 마요네즈를 먹기 위해서래요.ㅋㅋㅋ

마노아 2013-01-22 17:14   좋아요 0 | URL
아앗, 무척 참신한 걸요! 감자 찍어먹음 맛있는데...ㅋㅋㅋ

건조기후 2013-01-22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볼드모트를 무찌르기 위해서 ㅋㅋ 나는야 해리포터- ㅎ

마노아 2013-01-23 16:12   좋아요 0 | URL
장르도 넓어요. 이젠 판타지까지...ㅎㅎㅎ

같은하늘 2013-01-22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태어난 이유는 저만이 알고 있다는데...
난 당췌 모르겠는데 우짜지? ㅋㅋㅋ

마노아 2013-01-23 16:12   좋아요 0 | URL
오늘 다시 해보세요. 다른 이유를 말해줄 거예요. ㅎㅎㅎ

같은하늘 2013-01-22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혹시 초딩5학년이 재미나게 읽을만한 역사책 추천해주실 만한거 없을까요?
울 아이가 역사에 도통 관심이 없어서 5학년 사회가 걱정이랍니다. ㅜㅜ

마노아 2013-01-23 16:15   좋아요 0 | URL
울 큰조카랑 동갑이에요. 으히힛..ㅎㅎㅎ
제가 초등학생을 별로 접해보지 않아서 사실 한국사 편지랑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세트 정도만 알아요. 아이가 책을 많이 읽고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바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추천하겠는데 그렇진 않다고 하니까요. 사계절에서 나온 역사 일기 시리즈도 괜찮아요. 생활사박물관보다 글밥이 적고 그림은 좀 더 정겹고요.^^

같은하늘 2013-01-23 22:35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조카들이 아마도 울집 아이들과 모두 동갑일걸요~~ㅎㅎ
한국사편지는 집에 있으나 볼 생각도 않하고, 용선생 좋다해서 빌려줘 봤더니 어렵다고 투덜투덜~~~
다른책은 잘도 보는데 역사에는 통 관심이 없어요. ㅎㅎ 안그래도 며칠전 아이와 서점가서 사계절 시리즈 한 권씩 보고 왔는데... 저는 재밌던데 아이의 반응은 그냥저냥~~ 자꾸자꾸 보여주면 좋아할라나~~ 마노아님의 친절한 답변 감사해요~~~

마노아 2013-01-24 02:55   좋아요 0 | URL
우히힛, 맞아요. 전에도 그렇게 얘기했는데 그새 또 잊어버렸네요.^^
한국사 편지는 우리집에서도 인기가 그닥 없어요.
세현군은 요새 사계절 역사 일기를 읽고 있는데 몇 권 없어서 좀 갖춰야 할 것 같아요.
저 어릴 때는 맹꽁이 서당~ 이런 것 좋아했는데 말이지요.^^
우리 열심히 역사 공부 시켜보자구요. 불끈!!!

아무개 2013-01-22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님이 태어난 이유는 악마들을 퇴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음하하핫^^
무서운 질문에 더 무서운 답변이 나왔습니다.

마노아 2013-01-23 16:15   좋아요 0 | URL
영화로 비교하자면 아주 다양한 장르물이 나오고 있어요.^^ㅎㅎㅎ

paviana 2013-01-22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에 했더니 짐승이 되기 위해서라고 나와 이름과 성을 띄고 다시 했더니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라네요. ㅋㅋ

마노아 2013-01-23 16:16   좋아요 0 | URL
으하하핫, 비교체험 극과 극이네요. 우주 영웅까지 나올 기세예요. ㅋㅋㅋ

프레이야 2013-01-23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생존전략! 이라네요ㅎㅎ

마노아 2013-01-23 16:16   좋아요 0 | URL
뭔가 짧고 굵어요!!! ㅎㅎㅎ

자하(紫霞) 2013-01-23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상한 나라에 가기 위해서 ㅋ

마노아 2013-01-23 16:16   좋아요 0 | URL
청담동에 먼저 안 가도 되겠어요? ㅎㅎㅎ

Mephistopheles 2013-01-23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녀시대를 만나기 위해서" 라니.......생각해보니
애니팡으로 소녀시대 멤버들이 하트를 보내주긴 하더만..

마노아 2013-01-23 16:16   좋아요 0 | URL
오, 뭔가 현실적이면서 이상적입니다!!!

꿈꾸는섬 2013-01-26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님이 태어난 이유는 ...아 까먹었다.
저, 어째요.ㅜㅜ 사실은 엄청 웃었어요.ㅎㅎ

마노아 2013-01-26 01:50   좋아요 0 | URL
다시 가서 해보면 또 다른 이유가 나올 거예요. ㅋㅋㅋ 저도 한번 더 가봐야겠어요. ㅎㅎㅎ
 

원하던 것 갖게 되면 오히려 시들해지는 이유  

제 1786 호/2013-01-21

간절히 원하던 물건을 갖게 되면 막상 시들하거나 공허한 느낌을 받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갖고 싶은 물건을 갖게 되면 만족감이나 행복감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미주리 대학의 마샤 리친스 교수팀은 ‘중요한 구매 행위’ 이전과 이후의 감정 상태를 등급화해서 분석했다. 그 결과 갖고 싶던 물건을 얻기 전에는 물건을 얻었을 때를 상상하며 느끼는 기대감과 긍정적인 감정들이 최고조로 달했다가, 물건을 얻으면 이 감정들이 급격히 저하됐다.

물론 물건을 얻은 이후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지만 지속성이 짧으며 ‘쾌락의 저하’ 현상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리친스 교수는 오히려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과정, 주문한 물건이 배달되기를 기다릴 때의 설레는 마음이 구매 이후보다 더 크다고 말했다. 게다가 물건을 산 이후에는 카드 결제 등의 현실적인 걱정으로 행복감을 더욱 줄인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 잡지 ‘애틀랜틱’에 2013년 1월 17일 실렸다.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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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3-01-21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고 싶어 안달 난 책을 기어이 사고 나서 책장에 쟁여두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

같은하늘 2013-01-22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입학하는 아이가 선물받은 가방을 보고 친구엄마가 '넘 이쁘다. 나도 같은거 사도되?'하더니 손에 넣으니 별로 안이뻐보여~~ 하길래, 그때 제가 해주었던 대답과 같네요. ㅎㅎㅎ
 

   FOCUS 과학

제 1784 호/2013-01-21

미래 자동차 상상도, 현실이 된다!

오늘은 2018년 1월 21일. 새해가 벌써 20일 이상 지났다. 금연, 다이어트 등 새해에 두 손 꼭 모아 다짐했던 결심들이 손가락 사이 모래알 빠지듯 스르르 빠져나가려고 한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시 잡아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인생이란 게 이렇게 결심만 하다가 모래알처럼 흔적 없이 흩어져버리는 건가.

내 이름은 고수완. 올해 35세. 모출판사의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현재 도서 시장은 전자책이 7할, 종이책이 3할을 차지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태블릿PC의 보급으로 종이책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노인과 어린아이, 또 마니아층으로부터 꾸준히 사랑받는 탓인지 아직 건재하다. 늘 그렇듯 아날로그 시장은 일시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를 유지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LP판이 그렇고, 신문이 그렇고, 재래시장이 그렇다.

이번 달에 나올 책을 교정교열 보느라 어젯밤 늦게 잠이 드는 바람에 평상시보다 늦게 일어났다. 보통은 재택근무를 하지만 오늘은 출판사에 기획회의가 있어 출근해야 하는 날. 씻는 둥 마는 둥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집을 나섰다. 급히 자동차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그리고 시동을 걸자마자 상냥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인님, 어디로 모실까요?”
“홍대앞 대박 출판사”
“곧 길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요즘 내비게이션은 일일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할 필요가 없다. 음성인식 기능이 장착돼 목적지를 얘기하면 알아서 안내해준다. 자동차는 경기도 광명시를 출발, 서울의 구로동과 신도림동을 경유해 양화대교로 진입했다. 아침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차가 가다 서다를 지루하게 반복하고 있다.



“삐뽀! 삐뽀!”

그때 갑자기 자동차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나는 깜짝 놀라 경보 정지 버튼을 눌렀다.
이때 차에서 와이프의 잔소리 같은 쌀쌀맞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방금 주인님은 졸음운전을 하셨습니다. 안전운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어젯밤 늦도록 일을 하다 보니 피곤이 쌓여 순간적으로 깜박 졸았나 보다. 차가 어떻게 알고 졸음운전을 알려 주냐고? 이것이 바로 2018년에 상용화된 ‘운전자 상태 자동 감지 및 대응기술’¹⁾이다. 자동차에 설치된 카메라와 컴퓨터가 운전자의 상태를 파악해 안전 운전을 돕는 기술이다. 이로 인해서 교통사고가 10% 이상 감소됐다고 한다. 기술이 인간의 안전과 행복을 증진시키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기술을 믿고 방심하면 안 된다. 졸음이 오면 차에서 내려 스트레칭을 하거나 심호흡을 해서 잠을 깨는 게 사고를 막는 최선의 방법이다.

양화대교를 건널 때 쯤 충전계기판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앗!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자동차 배터리를 충전해 놓는다는 걸 깜박했구나!’

작년 가을에 나는 유류비 부담이 적고 환경오염 걱정 없는 전기자동차를 구입했다. 장거리 주행에는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출퇴근이나 가까운 근교 운행에는 전기차가 제격이다.

지방 출장이나 여행 등 장거리 운행에는 다양한 방식의 자동차들이 운행되고 있다. 휘발유를 연료로 하는 내연기관 자동차는 여전히 운행 중이지만 유류비가 높고 환경오염이 심해 계속 감소하고 있다. 디젤 엔진의 기능을 대폭 향상해 연비가 높고 오염물질 배출량이 적은 고효율/초저배기 클린디젤차²⁾나 배터리 가격이 높아 부담이지만 리튬이온전지의 개발로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전기자동차³⁾,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에 모터를 장착해 연비 향상과 배기가스 저감을 실현한 하이브리드 자동차⁴⁾, 그리고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을 생성하는 전기화학반응을 통해 만들어지는 전력으로 모터를 돌리는 무공해 연료전지 자동차⁵⁾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무공해 연료전지 자동차는 수소에너지 관련 법령이나 제도가 미비하고 수소저장시설의 안전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아 상용화가 늦춰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마 10년 뒤면 판가름 나겠지?

근처 충전소에 들러 방전된 배터리를 반납하고 충전된 배터리로 교체했다. 트렁크를 열어 롤 케이크 박스만한 배터리를 빼내 충전된 배터리와 바꾸면 된다. 요금은 단돈 1만원. 이걸로 일주일 동안 출퇴근이 가능하다. 참 저렴하다고? 쩝! 이것도 어제 집에서 플러그에만 꽂았어도 5천원은 아낄 수 있는 건데. 아무튼 전기차가 상용화된 요즘 유류비 걱정은 거의 하지 않는다.

요즘 주유소는, 아니 충전소⁶⁾로 이름이 바뀌었지! 옛날처럼 기름만 넣는 곳에서 많이 업그레이드됐다. 냄새 나는 주유기가 있던 자리에 넓은 주차장이 마련됐고, 다른 한쪽엔 카페가 차려져 있어 운전에 지친 고객들이 커피를 마시며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다. 카페에 앉아서 오전에 넘겨야 하는 원고를 편집장에게 넘기고 검토를 부탁했다. 충전소에서 오전 업무를 끝낸 셈이다. 늘 부산하고 기름 냄새나는 주유소가 도심 속 생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충전소가 배터리만 충전해주는 게 아니라 삶의 에너지도 충전해주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삶의 질과 여유는 점점 높아져 간다. 옛날처럼 24시간 각박하게 일하던 시대는 지났다. 또 그렇게 바쁘게 일한다고 일의 능률과 효율이 오르는 건 아니다. 충분한 여유와 휴식 속에 기발한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나오고 건강한 몸이 만들어진다. 기분 좋게 출판사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고 소화 좀 시켰다가 오후 업무를 시작해야겠다.

글 : 정영훈 과학칼럼니스트


각주
1)운전자 상태 자동 감지 및 대응기술 : 주행 중 운전자의 머리 움직임이나 시선, 생체신호 등을 분석해 운전자의 상태를 센싱 및 인식하고 이를 통해 운전자의 주의와 집중도를 분석, 운전자가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주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전운전 지원 기술. 기술 예상 실현시기를 7~8년 후로 보고 있다.
2)고효율/초저배기 클린디젤차 : 경유 연소가 기관의 내부에서 이루어져 열에너지를 기계적 에너지로 바꾸는 기관을 동력원으로 Euro-6 기준* 이상을 만족해 온실가스 및 오염물질 배출량이 적고, 연비가 높은 친환경 자동차. 기술 예상 실현시기를 3~4년 후로 보고 있다.
3)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전기자동차 : 차량에 탑재돼 있는 대용량의 에너지 저장시스템에 저장된 전기에너지만을 이용해 주행하는 자동차. 대기오염이나 화석연료의 소비, 소음 없이 장거리(수백 km 이상)를 주행할 수 있는 친환경 자동차로 1~2년 후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4)하이브리드 자동차 : 두 가지 이상의 동력원을 이용해 달리는 자동차.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에 모터를 장착해 두 동력원이 서로 고효율 영역에서 작동하도록 하며, 엔진의 불완전 연소구간에서는 모터를 이용해 구동함으로써 연비 향상과 배기가스 저감을 실현한 기술. 현재 국내외적으로 실현된 기술이지만 제품 경쟁력 향상 및 사후관리가 중요한 기술.
5)연료전지 자동차 :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을 생성하는 전기화학반응을 통해 만들어지는 전력으로 모터를 구동하며, CO2, HC, NOX 등의 오염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는 무공해 연료전지 자동차. 기술 예상 실현시기를 9~10년 후로 보고 있다.
6)충전소 : 전기자동차에 효율적으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급속․완속 충전기, 충전 인터페이스 부품 및 인증․과금 등을 위한 전기자동차 ICT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술. 배터리 교체는 충전소에 방전된 배터리를 반납하고 충전된 배터리로 교체하는 방식을 사용. 기술 예상 실현시기를 3~4년 후로 보고 있다.

참고 : <KISTI 미래백서 2013>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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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1-21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는 여자 3명의 말만 잘들으면 된다고 하죠.
1. 어머니
2. 아내
3. 네비게이션 여자음성.

^^

마노아 2013-01-22 10:57   좋아요 0 | URL
프하하핫!!!! 아주 지당한 말씀이에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