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4일에 개학을 했다. 1년 3학기제 학교인지라 겨울방학이 무지 짧다. 아침잠 없는 교장샘은 7시 반에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라고 말하기 무척 궁색한 자리이지만 전원 그 시간에 집합한다. 겨울방학 시작 전에 그만두신 샘이 하나 계신데 퇴직금을 요구했다. 당연한 자신의 권리다. 그러나 학교는 지급하기 싫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아마도 지불했을 것으로 보인다. 법으로 해결하면 사측이 더 불리하니까. 아무튼 그렇게 해서 제 권리를 찾아간 샘을 욕(개baby...)하는 걸로 시작된 회의 아닌 회의. 9시가 못 되어서 회의는 끝났고, 교무실에 남아있기는 싫었다. 집에 다녀오기는 너무 멀었고, 근무 시간까지는 7시간이 넘게 남아 있는 상황. 그래서 또 갈 데가 어디 있겠나. 김포 cgv에 가서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보았다. 워낙 긴 영화라 맘 잡고 봐야 하는 영화다. 하지만 전날 잠을 세시간 여밖에 못 자서 중간에 졸 것만 같았다. 예상대로 좀 졸긴 했다. 근데 영화는 예상보다 훨씬 재밌었고 꽤 감동적이었다.

 

원작이 한 권이면 좀 더 동했을 텐데 두 권이네. 영화랑 내용이 완저 똑같으려나. 영화를 두번 보기는 어려우니 책을 보는 것이 나을 것인가. 아님 1인 5역 이상을 소화해내는 배우들을 찾는 재미로 영화를 한번 더 볼 것인가. 고민하다가 영화가 상영관에서 내려올지도...;;;;;

 

 

 

2. 15일은 10시 반에 회의가 잡혔다고 9시 50분에 문자가 왔다. 당장 출근하라고. 헐.... 집에서 가는데 두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이 무슨...;;;; 그래서 시간 내에는 못 도착한다고 연락을 드리고 부랴부랴 출발했다. 12시 다 되어서 이제 내릴 찰나인데 회의 끝났다고, 원래대로 4시까지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 적응 안돼.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정말...;;;; 그렇게 이틀 연속 길에서 뿌린 시간과 추우니까 카페 들어가 있고, 배고프니까 밥 사먹고, 여러모로 지출이 컸다. 젠장....

 

학교 앞 이디야 커피에서 두 시간 정도 있었는데 점심 때라 사람이 많아서 굉장히 눈치가 보였다. 2인용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만약 자리가 한 개도 남는 게 없다면 당장 일어날 생각에 책 읽다가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봐야 했다. 다행히 끝끝내 한 자리씩은 여유가 있어서 두 시간은 채울 수 있었는데 화장실 가고 싶어져서 일어났다. 혼자 카페에 가면 이게 안 좋다. 지하철역에서 30분 정도 더 책을 읽었는데 추워서 도저히 안 되겠어서 결국 교무실로 돌아갔다. 내 자리는 온풍기 바람을 왼쪽 옆구리에 직통으로 받는 위치여서 무척 덥다. 그리고 내 뒷자리의 부장샘은 사각지대인지라 춥다. 이분은 여름엔 긴팔 옷 입고 와서 냉방을 18도로 잡아놓고, 겨울엔 옷을 덜 입고 와서는 30도 난방을 하는 양반이다. 여름엔 추워서 힘들었고, 요새는 더워서 힘들다. 미스트를 얼굴에 계속 뿌려가면서 열을 식히지만 피부가 엄청 건조해지고 있다. 역시 제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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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7일에는 언니의 동대문 사무실에 가서 앵글을 조립해 주고 왔다. 철구조물이 날카로워서 두군데 베었는데 하나는 상처가 깊어서 아직도 만지면 좀 아프다. 언니는 거주가 가능한 돈암동 오피스텔이 싫다고 동대문 사무실로 들어간 거였다. 주차 문제를 핑계로 댔는데, 동대문 오피스텔 역시 주차가 안 되어서 월주차를 해야 했다. 꽤 규모가 큰 삽질이다. 돈암동 사무실은 창문 열면 하늘도 보이게 시야가 트였고 화장실도 있고, 주방도 있지만, 동대문은 건물 안쪽 사무실인지라 창문 열면 그냥 복도다. 아주 답답한 구조다. 언니는 가습기를 사야겠다고 한다. 여긴 공동화장실을 써야 하고 세면대도 없다. 물을 마시고 버리는 모든 과정들이 다 불편하다. 좀 넓게 쓰겠다고 옮긴 거였는데 넓은데 가니 이웃 사무실 지인이 짐을 맡겨놓고는 찾아가질 않는다. 넓은 평수를 세 더 주고 쓰는 의미가 없어졌다. 여러모로 또 삽질. 그런데 아예 다 정리하고 집으로 다시 들어오면 어떻겠냐는 말까지 나와버렸다. 그야말로 헐.....이다. 제에에엔장!!!

 

4. 19일에는 조카들과 함께 북촌한옥마을을 다녀왔다. 모처럼 날이 풀려서 바깥 나들이가 가능한 날이었는데, 그래도 겨울은 겨울인지라 제법 추웠다. 많이 걷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오래 걸을 테니 추울까봐 롱부츠를 신은 게 잘못이었다. 추워서 다리가 얼마나 아픈 지를 몰랐는데 집에 돌아가보니 땡땡 부어서 며칠 동안 무척 고생했다. 어휴 바부팅이....

 

 

 

최근 이주 동안은 달이 아주 예쁘게 변했다. 가느다란 눈썹 같던 초승달이 지금은 보름이 되었는데, 지난 주에는 딱 저만큼의 크기였다. 사람이 많아 북적거렸지만, 집만큼은 고즈넉해 보였던 북촌에서 발견한 예쁜 달님이다.

 

돌아나오는 길에 크레페 집을 발견! 크레페 4개를 주문했더니 반죽이 모자라서 두개만 된다고 했다. 아해들 크레페를 두개 주문하고 났더니 하나까진 더 나오겠다고 해서 하나 더 추가! 그랬더니 미안하다며 아메리카노 한잔을 서비스로 준다. 센스쟁이 사장님!

 

 

조카들은 모두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걸 골라서 무척 추웠을 것 같은데 꿋꿋하게 잘 먹더라. 젊어 좋구나. ㅎㅎㅎ

 

 

5. 연말정산 신청이 한참이다. 지난 일년 동안 받은 급여를 한장의 종이에 편집해서 한눈에 바라보니, 박봉이었던 게 처음에 눈에 띄었고, 그 다음에는 누락된 게 있다는 것이 보였다. 내가 이 학교에 작년 3월 마지막 주부터 근무를 했는데 4월 급여에 그게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4월에 급여를 받았을 때는 이 학교가 워낙 급여가 적다는 것만 알았지 얼마나 주는지 몰랐기 때문에 비교를 못했고, 5월에 받았을 땐 4월보다 급여가 줄어 있어서 4월 급여에 3월에 일한 닷새 치가 들어가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국민연금이 나가지 않아서 그랬던 거였다. 이건 지난 7월에 석달치가 한꺼번에 나가서 아주 황망한 월급을 받고 난감했더랬는데, 하여간 그렇게 3월 급여가 부족한 것을 어제 알아차렸다. 해서 행정실에 전화했더니 대뜸 직원분이 그걸 왜 이제 따지냐고 타박을 놓는다. 나는 미처 몰랐던 거지만 너희는 일을 잘못해 놓고는 사과도 없다. 아무튼 자기 담당이 아니라고 해서 다시 연락준다고 했는데 연락이 안 와서 몇 시간 지나서 담당자와 재통화를 했다. 본인도 모르겠다고 해서 알아보겠다고 하고 끊더니 실장님(교장 큰며느리)께 묻고 다시 전화가 왔다. 계약이 2월 28일까지니까, 그럼 5일을 빼서 2월 23일까지만 근무하는 게 어떠냐는 거다. 그야말로 헐! 이 학교 와서 별 이상한 것 많이 보고 많이 들었지만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싫다고 하니 직원분이 당황. 실장님께 직접 얘기하란다. 그래서 전화를 바꿨더니 대뜸 "재계약은 어려운 거 아시죠?" 이런다. 하하하... 당연히 알지. 지금 정교사도 날마다 닦달해서 그만두게 하는 마당에 기대도 안 했고, 무엇보다 더 있기엔 많이 부끄러운 학교 아닌가. 하여간 제안한 것 싫다고 했더니 왜 이제와서 얘기하냐고 또 따진다. 이제야 알았고, 다른 학교도 급여 문제가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아차리면 학교가 바뀌거나 해가 바뀌어도 다시 정산한다고 하니 자기도 안다고 말한다. 그럼 그대로 해달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아씨, 도가니보다 심한 학교인데 이러다가 2월 근무가 통으로 날아가는 것 아닌가 싶어 기분이 더 나빠졌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학교 답다. 비.러.머.글..!

 

6. 세현군은 월요일에 개학이다. 방학 마지막 주말을 맞이하여 덕혜옹주 전시회를 보러 갔다.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 민속 박물관에서 무료로 열고 있고 내일이 마지막이다. 우리처럼 마지막 방학을 불사르러 온 초등생들과 부모님이 아주 많았다. 이런 전시회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제발 전시방향을 바닥에 화살표로 표시해 주면 좋겠다. 반대 방향으로 도는 이들이 아주 많다. 입구에 들어섰는데 양방향 길이 나오니 내키는 대로 지나가는 것이다. 오른쪽 방향이라고,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거라고, 제발 화살표 하나로 소박하지만 세심한 배려, 부탁한다.

 

7. 덕혜옹주 이야기는 많이 접했고 예전에 한국사 傳에서도 다뤄서 참 슬프게 보았는데,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때 영상을 일부 편집해서 쓰기도 했다. 일본에서 보관 중인 덕혜 옹주의 혼수품도 잠시 돌아와 있고, 옹주가 돌적 시절부터 입었던 옷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전에 보지 못했던 사진도 여러 장 볼 수 있었다. 더불어 조선의 복식에 대한 설명도 나오는데, 회장저고리와 반회장저고리의 차이점을 모르겠는거다. 우리의 전통 옷이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먼 옷들이다. 일년에 한번은 커녕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한번도 입어보지 못한 한복이 아닌가. 일본에서는 기모노를 꽤 자주 입는 것 같은데, 우리에게 지나치게 멀고 낯선 우리의 전통이 안쓰럽다. 관람객중에 일본인 학생 둘이 보였는데, 일본어로 쓰여진 편지를 소리내어 읽으며 지나갔다. 일본에 의해서 아주 비참한 생을 살다간 덕혜 옹주에 대해서 그들은 일말의 연민이라도 느꼈을지 궁금하다.

 

 

 

 

 

 

 

 

 

전시관 1층에 순종황제 어차도 보이던데 그게 창덕궁에 있던 걸 가져온 건지 잘 모르겠다. 암튼 우리가 타는 차보다 상당히 커보였다. 번쩍 번쩍!! 사진으로 보니 위에 것이 순종황제어차고 아래쪽이 순정효황후어차다. 색깔 마음에 든다. 그야말로 클래식한 걸!

 

 

 

특별전시관의 덕혜옹주 말고도 상설 전시관도 볼 게 많다. 조선의 국왕, 조선의 궁궐, 왕실의 생활까지. 로비 왼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돌면 쭈욱 이어서 볼 수 있다. 1층으로 가면 왕실의 의례, 대한제국과 황실, 천문과 과학 1관이 있고, 지하 1층으로 가면 왕실의 회화와 궁중의 음악, 왕실의 행차와 천문과 과학 2관이 준비되어 있다. 중간에 앉아서 쉴 공간도 있는 게 좋았다. 근데 한참 서 있었더니 배가 고파져서 많이 못 보았다는 게 함정!

 

 

8. 배고픈 우리는 다시 경복궁역으로 돌아와서 옛날국수를 맛보았다. 아주 맛나게~ 광화문 씨네큐브가 근처여서 나온 김에 '더 헌트'를 보고 싶었다. 시간도 밥 먹고 움직이면 딱 적당했다. 그런데 예매하다가 도중에 오류가 났고, 그 사이 내가 찜한 좌석을 누군가가 예매해 버렸다. 딱 그 자리 하나 뿐이었는데...ㅜ.ㅜ 그래서 이번엔 종로3가 피카디리에서 더 임파서블을 볼 생각에 예매를 시도하니 이번엔 카드 번호 오류가 났다. 처음에 번호 두번 틀리고 그 다음엔 연속으로 비밀번호가 안 맞았다. 분명 맞게 입력했는데 어디서 오류가 났는지... 그래서 결국 신경질나서 예매 포기. 오래 서 있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급 피곤이 몰려와서 집으로 와버렸다. 둘 중 하나는 보고 싶었는데 아쉽군...

 

9. 내일은 뮤지컬 레베카를 예매해 두었다. 정한 오빠, 우리 곧 만나요~

 

 

 

 

 

 

 

 

 

 

10. 오늘 불후의 명곡에 김다현이 출연했다고 언니가 말해주었다. 어이쿠, 놓쳤네. 다시 보기 해야겠다. 그런데 언니가 재밌는 걸 알려줬다. 김다현의 본명이 김세현이라고 한다. 으하하핫. 내가 왜 웃냐면.... 세현 다현이 모두 내 조카들이기 때문이다. 재밌는 우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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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1-27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한 번만 봐서는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마노아 2013-01-28 01:14   좋아요 0 | URL
다 보고 나서야 인과라던가 순서라던가 인물들의 변화를 다 알고서 다시 보며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한번 더 보고 싶어졌어요.^^

프레이야 2013-01-27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다사다난ㅎㅎ 마노아님 조카들이름이 둘다 이쁘네요. 덕혜옹주전을 못봐서 아쉬운 한 사람^^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마음 잡고 시간 잡아 봐야겠군요. 아ᆢ북촌마을도 가고싶어라. 편안한주일 보내세요.

마노아 2013-01-28 01:15   좋아요 0 | URL
나중에 서울 오시면 북촌 돌고 경복궁도 가고 민속박물관도 가고, 그렇게 코스를 쭉 돌도록 해요.
그래도 저는 앙코르와트가 더 부러워요.^^

꿈꾸는섬 2013-01-27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만장 마노아님ㅜㅜ 고생 많으셨어요. 그래도 앞으로 좋은 일이 더 많을거에요.^^

마노아 2013-01-28 01:16   좋아요 0 | URL
그렇게 믿고 아자아자 힘내고 있어요. 꿈섬님 고마워요!

굿바이 2013-01-28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접힌 부분을 펼치니 놀라운 내용들이 참으로 많아요~! 다음부터도 꼭 접힌 부분을 펼쳐봐야겠어요^^

마노아 2013-01-29 00:14   좋아요 0 | URL
스크롤바가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종종 접기 기능을 이용하고 있어요. 굿바이님도 애용해 주세요. ㅎㅎㅎ

BRINY 2013-01-28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정말 그 학교는 마지막까지 마노아님을 힘들게 하네요.

마노아 2013-01-29 00:14   좋아요 0 | URL
졸업식에 학생들 모두 한복 입고 오라는 교장샘 지시가 내려왔어요. 정말, 헐이에요....;;;;

같은하늘 2013-01-29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버라이어티한 마노아님의 일상~~~
그 학교 얘기는 들을때마다 제가 다 욱~~해요. -.-;;
방학과 함께 아이들과 여기저기 많이 가고싶었는데 그중 한곳 북촌한옥마을~~
하지만 이번 겨울 너무 추워서 나가는게 시로요~~~
글구 조카들과 나들이 나가실땐 동갑인 저희 아이들을 위해 저에게도 정보를 좀~~~끙~~~^^;;
(덕혜옹주 전시회를 하는것도 몰랐는데 끝났다니 아쉬움에...)

마노아 2013-01-29 17:18   좋아요 0 | URL
버라이어티 M이라고 이름을 바꿔야겠어요.^^
저희도 이번에 별로 간 곳이 없었는데 막판에 이렇게 방학을 끝낼 수 없다!!!하면서 다녀왔어요.
요새 트위터 시작하면서 이런 정보를 알게 되었어요.
또 좋은 것 발견하면 알려드릴게요.^^ㅎㅎㅎ
 

이번 주는 도서정가제 문제로 알라딘이 시끌시끌했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전에는 1+1이 참 많았다. 며칠 전에 읽은 파이 이야기는 당시 '셀프'를 팔면서 1+1으로 끼워서 판 비매품 책이다.

 

 

 

 

 

 

 

 

 

 

 

기억에 그때는 신간 하나를 사면 10% 할인에 20% 적립이었던가. 하여간 세일폭도 컸고, 마일리지도 많이 받았고, 아낌없이 질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잠시 이성을 찾는가 했더니 중고샵이 생긴 이후 다시 또 정신줄을 놓고 책을 참 많이 질렀다. 당장 기상 악화로 혹은 어떤 천재지변으로 전기 공급이 뚝 끊겨서 컴퓨터도 TV도 쓸수 없는 시간이 오더라도 몇 년 간은 지루해하지 않고 버틸 만한 책들이 충분히 있다. 뭐 그런 세상이 오면 한가하게 책붙들고 있을 수 있는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알라딘은 도서정가제 강화를 반대했고, 출판사들은 그런 알라딘을 괘씸해 했다. 알라디너들은 찬성도 하고 반대도 하고 분노도 하고 여러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이쪽 얘기 들으면 이 얘기도 옳은 것 같고, 저쪽 얘기 들으면 그 얘기도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똑 부러지게 이쪽이야! 싶은 방향을 모르겠다. 이를테면, 학생들 무상급식 문제는 두말할 것 없이 그게 대의이고 진보이고 바른 방향으로 보인다. 무상급식 시행으로 급식의 질이 떨어져서 차라리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난 이렇게 얘기하곤 했다. 시행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보완하고 고칠 생각을 해야지, 아예 그만둘 생각을 하면 되겠냐고.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안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출판계가 호황이었던 적이 과연 있었나 싶다. 손석희 씨였나. 얼마 전에 무슨 얘기를 하다가 출판업이 잘 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실제로 출판사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교정교열비 같은 경우 10년 동안 거의 동결이라고 했던가. 10년 전에도 아주 박했지만, 지금도 거기서 전혀 오르지 않았다는 얘기를 얼마 전에 들었더랬다. 물가는 꾸준히 올랐지만 사람 값은 여전히 크게 나아지지 않은 모양새다.

 

도서정가제가 강화된다고 동네 서점이 살아날 리는 없을 것 같고, 작은 출판사들에게 이익이 될 것 같지도 않지만 그게 대의이고 정말 맞는 방향이라고 한다면 그걸 알리고 설득시키는 과정이 더 필요해 보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과정들은 너무 급작스럽고 어쩐지 좀 폭력적으로도 보인다. 그나마도 여기서 아웅다웅 올망졸망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나 관심을 갖지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아웃 오브 안중일 것도 같다. 그리고 순서도 이게 맞는 건가? 난 적어도 도서관은 당연히 정가 주고서 책을 구입할 줄 알았다. 그런데 최저가 낙찰로 책을 구입한다는 얘기에 무척 당황했다. 공적인 공간에서도 지극히 자본주의의 논리를 적용시켜왔으면서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좀 더 싼 경로를 선호하는 것을 나무라는 모양새가 솔직히 언짢다.

 

그리고 사례로 많이 등장한 더 클래식의 레미제라블 반값 행사 말이다. 이 출판사는 다른 고전들도 이렇게 반값을 적용시켜놨다.

 

 

 

 

 

 

 

분명히 출간 날짜는 신간에 속하는데 영문판과 섞어서 팔면서 50%를 매겨놓았다. 최근 영화 레미제라블의 성공과 더불어 이 책도 아마 많이 팔렸을 것 같다. 번역이 워낙 날림이라고 사지 말라는 글도 종종 보았는데, 누군가는 가격에 현혹되어서 샀을 지도... 하여간 이 책이 신간임에도 이렇게 싸게 팔 수 있는 것은 '실용서적'으로 등록을 한 게 아닐까 싶다. 근데 그게 알라딘이 한 것인가? 출판사가 그렇게 한 것 아닌가? 이 책 이야기 나오면서도 알라딘은 싸잡아 욕을 먹었다. 이런 건 어떻게 규제하나? 공정하지 않은 거래를 출판사가 한 게 아닌가. 이런 것 단속하는 얘기도 같이 진행 중인가? 도서정가제를 강화하면 어차피 할인이 되지 않으니 다 함께 사라질 문제인가? 내부 문제 먼저 정리하고 그 다음에 소비자들에게 어필을 해서 이러저러하니 함께 살기 위해서 이게 좋은 길이다...라고 설득해야 하지 않나?

 

여러 나라들의 사례도 같이 나오는데, 할인을 하는 나라이거나 완전 정가제를 가는 나라이거나 모두 책을 만드는 자와 유통시키는자, 그리고 소비하는 사람들을 함께 만족시키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다 만족시킬까. 그나마 e북 시장이 커져가는 와중에 우리나라는 종이 책이 더 선호대상이 되는 게 다행일뿐.

 

개인적으로는 로쟈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신간은 완전 정가제로 가서 할인도 마일리지도 없게 하고 구간은(구간의 범위도 재정리해야겠지만....) 좀 더 재량에 맡기는 게 나아 보인다. 구간마저 할인이 전혀 되지 않는 건 누구에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기호 소장님이 쓰신 글은 솔직히 유감이다. 너무 선동적인 단어들을 사용했고 알라딘에 애정을 품은 사람으로서 맘 상하게 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알라딘은 비록 업계 4위로 위기감을 느꼈겠지만 편들어주는 충성고객들이 건재하다는 사실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까? 뭐 그게 알라딘의 재무재표에 별 영향을 안 주는지는 모르지만...

 

근데 업계 4위가 위기감을 느낄 정도면 우리나라의 책 시장이 참 작아 보인다. 정말 책들 안 읽는구나.... 업계 1위가 교보인가? 예스? 뭐 3위까지 잡으면 인터파크 정도 되려나? 업계 1위가 알라딘처럼 대놓고 도서정가제 강화를 반대했으면 출판사들이 이렇게 '응징'할 수 있었을까? 쫌!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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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3-01-26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정가제에 관해 올라오는 글들을 읽으면서 왜 다 그게 그 소리로 들릴까 이상했었어요. 마노아님 글을 읽으니 이유를 알겠어요^^ 어느쪽이든 상관없었던 거예요. 저는 레미제라블 영화를 보지 않았어요. 더클래식 eBook을 사서 읽었어요. 언젠가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늘 다음 기회에 다음 기회에 하면서 미루기만 하다가 더클래식 eBook 값이 싸기도 하고 또 무슨 이벤트도 하고 해서 주문을 한 거예요. 그런데 아이패드로 읽다보니 눈이 아프더라구요. 밑줄 긋기도 불편하고요. 그러면서도 내용이 좋아서 계속 읽고 싶기는 하고.. 해서 종이책 사서 맘껏 밑줄 그어가며 읽어야겠다 생각했죠. 지금은 어떤 출판사에서 나온 레미제라블이 좋을지 살펴보는 중이에요. 그래서 저는 지금같은 상황도 좋고, 혹시 도서정가제가 된다해도 괜찮은 것이, 아무래도 책값이 부담되면(지금도 충분히 부담되니까요^^;;) 충동구매 안하고 불편하더라도 도서관 자주 이용하면서 지역사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 역시 나쁠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더 이상 도서정가제에 관한 글은 더이상 읽지않아도 되겠어요. ^^ 마노아님 덕분입니다. 감사드려요!^^

마노아 2013-01-27 01:59   좋아요 0 | URL
원래부터 알라딘에서 열심히 책 사보던 분들은 이 법이 더 강화가 되어도, 혹은 지금 체제를 유지하든 큰 차이는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그분들은 어쨌든 책 좋아하는 분들이고 사서 보든 빌려 읽든 어떻게든 책과 함께 지낼 분들이죠. 헌데 대한민국의 책 시장이 워낙 작고 책 읽는 사람은 자꾸 줄어드니 그 외연을 더 넓히는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도서정가제 강화가 확답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서로가 내세우는 명분들이 확 와닿지도 않고요. 저는 레미제라블 책을 산지 좀 됐는데, 최근에 영화 개봉하고 나서 출판사별로 비교해 놓은 글들을 몇 개 봤거든요. 그나저나 레미제라블 언제 읽죠. 맨날 이래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8 - 헌종.철종 실록 - 극에 달한 내우, 박두한 외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8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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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순조가 효명세자를 앞세워 보냈기 때문에 그가 죽었을 때는 손자가 뒤를 이어야 했다. 새로 즉위한 임금의 나이는 고작 여덟 살. 당연히 왕실의 가장 큰 어른인 순조 비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맡게 되었다.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그녀는 친정 오라버니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렇게 헌종이 열다섯이 될 때까지  7년이 흘렀다. 열다섯이면 어른 취급 받던 시절, 헌종은 친정을 하게 된다. 안팎의 일은 여전히 안동 김씨 주도 아래 진행되고 있었고 헌종의 입장은 수렴청정 때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이름뿐인 왕이었지만 헌종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조용히 정치를 하던 임금은 스무살이 되면서는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왕의 의중은 안동 김씨가 장악한 권력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왕의 신호탄에 신하들은 왕이 아니라 안동 김씨의 눈치를 살폈다. 너무 심하게 밀어붙이면 오히려 역풍을 받는 법. 헌종은 나름 밀당을 시도하면서 서서히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침착하고도 차분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헌종은 명이 짧았다. 재위 15년, 23세 때이른 죽음이었다. 실록은 헌종을 아름다운 외모에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고 묘사했다. 오호라, 젊고도 아름다운 군주의 이른 죽음이 더 애석해지는 순간이다. 순원왕후는 편지에서 헌종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다른 이에 대한 칭찬이나 비난을 좋게 안 보고 곧이곧대로 믿지 않아요. 눈치 빠르고 시기심이 있어서...”

 

사방이 안동 김씨로 도배되어 있는 상황에서 왕은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했다. 이런 왕의 성격은 신중함의 한 단면으로 보인다. 좀 더 뜻을 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안타까운 일이다.

 

안동 김씨, 풍양조씨, 다시 안동 김씨로 이어지는 3대 60년 간의 세도정치. 헌종 때는 잠시 풍양조씨가 안동김씨를 누른 것처럼 묘사하곤 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안동 김씨 세상으로 보인다. 다만 풍양조씨가 세도정치의 한축을 잠시 발을 담그는 정도로 참여한 정도? 풍양조씨 일문이 좀 더 욕심을 내었더라면 아마 안동 김씨에게 바로 밟혔을 것 같다.

 

 

아무튼 임금은 죽었고, 후사는 없었다. 가장 가까운 종친을 찾아야 했다. 조선 전기만 해도 왕실엔 대를 이을 왕자가 부족한 경우가 드물었는데, 후기로 가서는 손이 너무 귀해졌다.

 

 

전반적으로 조선 왕실이 적장자가 왕이 된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임금의 아들이 왕이 되긴 했는데 헌종이 죽고 나서는 왕의 아들로서 임금이 될 사람이 없었다.

   

강화도령 철종이 후사로 결정된 것을 안동 김씨의 음모로 보기도 하는데, 조선의 왕실 시스템을 생각한다면 지나친 해석 같다. 임금이 죽으면 후사에 대한 결정권은 왕실의 큰어른이 갖는 것이 맞고, 핏줄상으로도 원범과 원범의 형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원범의 형이 원범보다 세살 많았는데, 수렴청정이 불가피했다면 스물 넘은 형보다는 그래도 좀 더 어린 원범이 더 적당했을 것이다. 흥선대원군이 둘째 아들을 왕으로 밀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튼 그렇게 해서 순원왕후는 조선 왕조 사상 유일무이하게 두 차례나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다. 농사짓고 살기 바빴던 원범이 정치를 아우를만큼의 식견이 당장에 있을 리 만무다. 대왕대비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언문 하교를 내렸다.

 

구구절절 바른 조언이다. 글밥이 많긴 하지만 깊이 새겨들을 메시지다.

 

순원왕후의 행적을 살피면 왕실을 꼼꼼히 챙기고 백성을 보살피는 면모들은 훌륭했다. 그러나 자신의 친정 가문이 나라의 가장 큰 해악이 되고 있다는 것을 못 알아차렸으니 그녀의 죄가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진심은 있었어도 구중궁궐 속에서 친정만 의지하며 제한된 정보만 받아들인 그녀의 필연적인 한계일 것이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갖고 싶어지는 게 권력이고 인간의 욕심인 법. 저 수많은 병자 돌림을 보고 있자니 어질어질하다. 김병연도 조상을 욕한 전적만 없었으면 저 행렬에 포함되었을까?

 

그렇게 안동 김씨의 전면적인 지배는 완성되었다. 마치 총수 일가가 재벌 경영권을 완전 장악하듯 한 가문이 나라를 통째로 삼켜버렸네. 무늬는 이씨 왕조, 실제론 김씨 왕조. -95쪽

 

때는 19세기. 세도정치로 정치가 무너져 내렸고,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의 삶도 무너졌다. 의무는 가득하고 권리는 없었던 조선의 백성들. 제도 상으로는 얼마든지 과거 응시가 가능한 나름 '열린 사회'였다지만,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 구조가 아니었다. 이게 전근대 사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게 씁쓸할 뿐!

 

 

사당오락도 아니고 삼당사락이다. 소는 네가 키워라. 공부는 내가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너의 경쟁자들은 열공 중에 있다....

 

아, 웃자니 또 슬퍼지네.

 

군포 징수에 따른 폐단을 개혁하고자 영조는 균역법을 실시했었다. 그러나 한 구멍이 막히면 다른 구멍을 뚫어서 또 다시 곳간을 채우는 공무원들이 부지기수. 기본적으로 급여 자체가 없던 고을 아전들은 당당하게 백성들을 털어먹었다. 기본적인 시스템이 문제가 있었고,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있으니 본전 찾으려면 부지런히 백성들을 짜먹는 게 수령과 그들을 보좌하는 아전들의 기본 책무였다. 이런 나라에서 반기를 들지 않으면 그게 정상이겠는가.

 

곡식이 많이 나기 때문에 털릴 것도 더 많은 삼남 지방에서 극렬한 저항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민란들은 산발적으로 일어났고 연대하지 못했다. 조선 왕조를 뒤엎을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허무하게 놓치고 말았다. 내가 다 속상할 지경이다.

 

각지의 난들은 상당한 유사점들을 보여주었다. 우선 난은 삼정의 문란, 그중에서도 특히 환곡으로 인해 일어난 경우가 많았다. 원성이 집중됐던 토호, 아전들을 죽이고, 그들의 집을 불태웠으며 관아를 습격해 불을 지르거나 수령을 붙잡아 능욕했다. 난이 진행될수록 백성의 분노는 양반층 전체로 확산되는 경향도 띄었다. 그런데 삼남 일대를 온통 뒤흔들었는데도 지배 세력에게 안긴 충격은 그리 크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이웃 고을의 소식에 영향을 받고 자극되었지만 적극적으로 이웃 고을과 연계하려 한 움직임도, 여러 고을을 통일적으로 묶어내려 한 시도도 없었다. 전국적인 봉기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개별적이고 고립적인 봉기들의 릴레이였을 뿐이다. 그리고 관아를 습격하고 아전, 토호들을 거침없이 죽이면서도 수령은 욕보이기만 했을 뿐, 약속이나 한 듯이 한 고을에서도 죽이지 않았다. 그토록 분노가 컸으면서도 문제의 근원은 보지 못한 채 이런 인식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수령이 나쁜 놈이긴 해도 우찌 됐든 나라님이 임명한 사람 아이가?"

“하모. 수령을 직이모 나라에 선전포고 하는 거랑 같은 기라.” -127쪽

 

 

이게 가장 화가 났다. 가장 윗대가리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것! 답답해도 너무 답답하다. 이게 다 유교 때문이 아닌가 싶다. MB가 아무리 큰 부정을 저질러도 그래도 대통령은 하늘이 내는 것이니 욕하면 안 된다고 하는 우리 엄니를 보는 기분이다. 민중이 움직인 혁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결정적 최후의 한방은 못 먹인 게 아닌가 싶다. 지금도 뻔뻔히 잘 살고 있는 전두환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온다. 그런 전직 대통령이 또 늘어날 판이니...ㅜ.ㅜ

 

백성의 고단한 삶을 몸으로 체험하고서 임금이 된 철종이다. 삼남에서 일어난 각종 농민 봉기들은 철종에게 어쩌면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안동 김씨 위세에 숨죽여 살아온 그에게 왕으로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명분과 분위기가 모두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삼정의 개혁은 조선 사회를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당연히 기득권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그걸 잠재우려면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인물이 필요하다. 뒷날의 흥선대원군처럼. 철종은 개혁의 칼을 빼들어서 그 칼을 안동 김씨에게 주었다. 개혁 대상에게 개혁을 맡겼으니 당연히 성공할 리가 없다. 애당초 사대부 전체와 한판 붙을 각오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더 실망스럽게도 신하들이 올린 존호를 받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사면령을 내렸는데, 민란을 촉발시킨 부정 수령들이 이때 모두 사면되었다. 근데 이 모습, 과연 19세기의 일인가? 오늘날의 얘기로도 보이는데...

 

때는 19세기. 서양 열강들이 앞다투어 이웃 나라들을 잡아 먹고 있던 시절. 세상의 중심을 자처하며 오만의 극치를 달리던 중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은 아편을 앞세워 청나라를 제대로 요리해버렸다. 부끄러운 전쟁이었다. 쇄국을 고집하던 일본도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조선은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했다. 수시로 이양선이 출몰했고, 그들의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세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다른 대응을 보여야 했고, 변화를 가져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에 기대어 사대 외교를 고집했고(너희가 오랑캐 취급하던 그 청나라에게!) 막연히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버텼다. 이렇게 일관성 있게 한심하고 무능할 수가! 대체 이순신은 왜 침몰하는 조선 호를 건져 놓은 것인지 갑자기 막 원망이 들려고 한다...;;;;;

 

하여간, 그렇게 조선은 더더더 기울어 갔고, 철종은 또 후사 없이 눈을 감았다. 아들은 여럿 있었지만 모두 일찍 죽어버렸다.

 

 

서른 셋, 지극히 젊은 나이였다. 죽어서 오히려 자유를 찾은 것일까. 그림 속 철종의 모습이 무척 외롭고 슬퍼보인다. 그림에서 약간 사팔처럼 보이게 나오는데 철종 어진도 그렇게 그려졌던가?

 

 

음, 약간 몰려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철종이 눈을 감았다. 이어지는 수순은 알다시피 조대비가 흥선군의 둘째 아들을 후계자로 세워 고종이 왕이 되는 것. 19권이 그렇게 시작된다.

 

헌종과 철종실록은 아무래도 기록이 부실한 편이다. 이 책도 다른 책들보다 많이 얇아졌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박시백은 책의 말미에 조선사를 쭈욱 한차례 정리를 해주었다. 그 과정은 사실상 사대부의 역사였고, 사대부들이 어떻게 정점을 찍고 분열했으며, 나라를 말아먹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고종실록은 그보다 더 답답했으니 벌써부터 숨막혀하면 곤란하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려운 법이다. 개혁의 주체가 개혁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개혁을 하고자 하는 권력자 자신도 개혁해야만 할 때도 있다. 철저하게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롭게 태어나지 않고는 뿌리부터 바뀌지 않는다. 조선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그렇다. 문득, 민주당 의원들부터 이 시리즈를 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열독하고 열공하고 깊이 반성 좀 하라고...

 

이제 이 시리즈는 딱 한권만 남았다. 그리고 남은 한권은 가장 가슴 아프고 사장 서러운 기록들로 덮일 가능성이 무척 크다. 바닥을 보겠지만, 그 바닥을 치고 일어나는 우리 역사의 가능성도 같이 보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사는 이 시간 속에서 확인할 수 있기를...

 

덧글) 오타가 하나 있다.

 

49쪽 박남 박씨 >>> 반남 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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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1-26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워낙 영 정조 시대에만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순조에서 대원군 등장까지는 무관심하죠.이게 문제입니다.그러다 갑자기 강화도 조약으로 넘어가려니 맥락을 못잡죠.박시백 씨가 그런 점에서 그 공백을 잘 메꿔준다고 봐야죠.그리고 박 씨는 요즘 통속적으로 유행하는 정조 편향적인 사관(그 극단에 이덕일 씨가 있습니다만...)에서 벗어나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니 다행이에요.

마노아 2013-01-26 22:04   좋아요 0 | URL
극단적인 정조 빠와 정조 까 사이에서 박시백 씨가 균형을 잘 잡고 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3-01-28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조 까로 마노아님이 간주하는 분은 누구신지 궁금궁금...혹시 정병설 씨?

마노아 2013-01-28 01:16   좋아요 0 | URL
네, 아마도요.^^ 안대회씨도 그쪽에 가깝다 느껴지고요. ㅎㅎ

노이에자이트 2013-01-28 21:08   좋아요 0 | URL
마노아 님의 속마음을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8 - 헌종.철종 실록 - 극에 달한 내우, 박두한 외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8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11월
구판절판


사도세자의 서자 셋 중 은신군은 영조 말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죽고 은전군은 정조 1년에 사사되었다. 은언군의 경우 그의 아들 상계군을 홍국영이 누이 원빈의 양자로 삼으려 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상계군을 내세운 역모사건이 이어지면서 이후 정순왕후를 필두로 신하들의 격렬한 처벌 요구가 있었지만 정조는 끝내 지켜냈다. 그러나 순조 시절 부인과 며느리가 천주교 신도임이 드러나고, 배소에서 탈출하려다 발각되면서 결국 사사되었다. 그에게는 군호를 받은 아들이 둘 있었는데, 장자인 상계군은 정조 10년에 의문의 죽음을 맞았고, 풍계군은 은전군의 양자로 입적되었다가 후사 없이 죽었다. 이광은 군호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서자였던 모양. 아비가 사사될 때 살아남아 순조의 적극적인 보호와 배려 아래 결혼도 했다. 그는 세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인 원경은 헌종 10년 민진용의 역모사건 때 이름이 거론되어 죽고, 둘째인 경응은 생존해 있었지만 세 살 아래인 막내 원범이 후사로 정해졌다.
-75쪽

헌종이 후사로 결정된 일을 안동 김씨의 음모로 보는 시각이 많다. 조선 왕실의 시스템을 무시한 해석이 아닌가 한다. 후사가 정해지지 않은 채 임금이 죽으면, 후사에 대한 결정권은 왕실의 큰 어른이 갖는다. 이때 왕실에는 세 명의 대비가 있었는데, 큰 어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순원왕후. 속마음이 어떻든 며느리인 신정왕후가 감히 경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실제로 헌종이 죽기 직전에 대보를 대왕대비전에 전했고, 마찬가지로 뒤에 철종이 후사 없이 죽었을 때는 대보가 조대비 신정왕후에게 전해졌다. 안동 김씨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헌종의 아저씨뻘인데도 원범을 후사로 삼았다고도 한다. 이 또한 지나친 해석이다. 후사는 가급적 선왕과 가까운 촌수에서 고르는 게 상례.
-79쪽

종친이란 신분은 안 그래도 책을 읽을 이유가 별로 없는데 농사짓는 강화 도령의 처지에서야 오죽했을까? 이제 종친도 농사꾼도 아닌 왕은 경연에 열심히 참여해 공부하고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을 보며 정치를 익혔다. 나이가 있어서인가? 철종 2년쯤 되니 곧잘 자기 의견을 말하기 시작한다. 왕은 제법 중심을 갖고 신하들을 달래거나 혹은 엄하게 제지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런 모습에 대왕대비는 그해 말 수렴을 거둔다. 그러나 친정이 시작되었어도 왕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신하들이 추천한 인물에 낙점하고 부임지로 떠나는 감사, 수령, 변장을 불러 잘 다스릴 것을 당부한다. 백성의 처지를 잘 아는 왕답게 수시로 삼정의 문란을 지적하고 수령들에게 경고하기는 했지만, 힘을 갖지 못했다. 왕이 그나마 자기 목소리를 내서 관철시킨 것은 죄안에 있는 이들의 사면 문제였다.
-98쪽

각지의 난들은 상당한 유사점들을 보여주었다. 우선 난은 삼정의 문란, 그중에서도 특히 환곡으로 인해 일어난 경우가 많았다. 원성이 집중됐던 토호, 아전들을 죽이고, 그들의 집을 불태웠으며 관아를 습격해 불을 지르거나 수령을 붙잡아 능욕했다. 난이 진행될수록 백성의 분노는 양반층 전체로 확산되는 경향도 띄었다. 그런데 삼남 일대를 온통 뒤흔들었는데도 지배 세력에게 안긴 충격은 그리 크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이웃 고을의 소식에 영향을 받고 자극되었지만 적극적으로 이웃 고을과 연계하려 한 움직임도, 여러 고을을 통일적으로 묶어내려 한 시도도 없었다. 전국적인 봉기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개별적이고 고립적인 봉기들의 릴레이였을 뿐이다. 그리고 관아를 습격하고 아전, 토호들을 거침없이 죽이면서도 수령은 욕보이기만 했을 뿐, 약속이나 한 듯이 한 고을에서도 죽이지 않았다. 그토록 분노가 컸으면서도 문제의 근원은 보지 못한 채 이런 인식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수령이 나쁜 놈이긴 해도 우찌 됐든 나라님이 임명한 사람 아이가?"
"하모. 수령을 직이모 나라에 선전포고 하는 거랑 같은 기라."
-127쪽

세도정치기를 거치면서는 삼정이 모두 문란할 대로 문란해져 외부적 요인 없이도 나라가 망할 충분조건이 구비되었다. 민란이 그 증거라 하겠다. 그런데 민란은 집권 사대부로 하여금 위로부터의 개혁을 실시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물론 집권 세력은 언제나 그랬듯이 이익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개혁의 기회를 무산시키고 말았다. (일관성은 있어.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탐욕스러운 것으로!) 이 사이 세계는 빠른 변화를 거듭했다. 백수십 년 전에 이미 북경이라는 제한된 창구를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일각의 지식인들은 다른 세상을 보았고 실학의 발흥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는 체제 안으로 수렴되지 못했고 조선 사대부들이 다시 유교 경전을 뒤적이는 사이 외부 세계는 더욱더 빠른 변화를 겪으며 이때에 이른 것이다.
-184쪽

헌종 6년는 가파도에 정박한 영국 배가 포를 쏘고 소를 뺏어갔다. 철종 5년 함경도에 나타난 이양선이 포를 쏘아 백성이 죽은 일도 있었다. 헌종 12년 충청도 서안에 프랑스 배가 정박했다. 해당 변장, 수령은 두려워 찾아와 보지도 않았고, 인근 백성이 접촉해 문답을 나눴다. 그리고 그들이 건넨 문서 한 통이 올라왔다. 기해박해 때 처형된 프랑스 신부들에 대해 항의하는 글. 이듬해 과연 프랑스 군함이 다시 나타났는데 700명이나 실은 프랑스 군함은 좌초되고 말았다. 고군산도에 머문 그들이 보낸 편지는 공손하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상해에서 삯 낸 배가 그들을 싣고 떠날 때까지 한 달에 걸쳐 조선 측은 생필품을 제공하는 등 구호를 다했다. 이때 비변사의 대책은 여전히 외부와의 문제는 중국을 통해 해결한다는 입장. 비록 별 탈 없이 넘어갔지만, 조만간 더 강력한 외부세력의 접근이 있으리라는 것은 중국이나 일본의 경험으로 보아도 자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비는 보이지 않는다. 개항에 대한 고려도, 척사에 대한 다짐도 논쟁의 흔적도 없다. 임진왜란 직전처럼, 정묘 병자호란 직전처럼. 아무런 대책 없이 그저 요행히 넘어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187쪽

삼정의 문란은 세도정치와 결합되면서 더욱 심화되었지만, 사실상 오래전부터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조선 사회를 바로 세울 수 없을 만큼 근본적인 문제였다. 서세동점의 물결에 대한 적절한 대응만큼이나 내부적으로 이 문제를 바로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리하여 민생을 편안케 하고 국가 재정을 넉넉히 해야 외생적 변수에 대한 대응책도 나올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문제와 관련해 정조는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근본적인 수술을 시도하지 않았다. 다만 관리하고 단속하는데 부지런했을 뿐이다. 과연 이 문제를 제쳐놓고 조선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 개혁이 가능했을까? 그래서 필자는 정조의 개혁과 관련한 많은 해석들이 판타지에 가깝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흐름 속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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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쪽까지 통으로 깊어서 커피 물 재는 게 다소 어렵지만, 색감으로는 단연 최고다. 마지막 네번째 머그가 내게 오는 중이다. 후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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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3-01-24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빨간색, 남색, 남색글씨 있는 흰색 이렇게 세개 와 있어요..ㅎ
이제 나머지 하나, 빨간색글씨 있는 흰식 머그컵 받으러 또 주문.... 후다닥 =3=3=3

마노아 2013-01-24 11:48   좋아요 0 | URL
처음에 빨강색이 품절이어서 남색을 먼저 사고요. 빨강색이 다시 들어와서 잽싸게 주문하고요. 알라딘에서 받은 건 하얀 바탕에 빨강이에요. 셋을 갖추고 나니 하나가 욕심이 나서 결국 다시 질렀어요. 머그컵 시즌에는 엄청 지르게 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