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2 : 진중권 + 정재승 - 은밀한 욕망을 엿보는 크로스 2
진중권.정재승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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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로또’란 ‘확률상 당첨자가 나오기 마련이지만 그게 ‘나’일 확률은 거의 없는 ‘심심풀이 도박’이다. 희망 없는 현대인들에게 ‘일상의 탈출구’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탈출 확률이 낮은가를 보여주는 절망적인 도박이 바로 로또 아닌가?
-17쪽

아마도 시청자들은 ‘나는 가수다’에서 우리의 현실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세계화의 깃발이 펄럭이는 21세기 들어 신자유주의 시장 한복판에 내몰린 우리의 운명은 ‘꼴찌가 되면 탈락하는 가수들의 운명’과 너무도 닮아 있다. 자유주의 사회에선 개인에게 자유가 주어졌지만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자유는 우리의 몫이 아니라 시장의 것이다. 그 안에서 무한경쟁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무시무시한 적자생존의 원리는 ‘서바이벌 게임과 메이팅 게임이 결합한 이종격투기’ 링 안으로 날마다 우리를 내몰고 있다. 만신창이가 된 우리, 내일의 운명조차 알 수 없는 우리, 그것이 바로 일요일 프라임 시간대에 얼굴을 내비치기 위해 진검승부를 강요받은 ‘아이돌 시대의 가수들’이 지닌 운명인 것이다.
-41쪽

많은 젊은 가수가 ‘나는 가수다’에 초대받기를 은근히 희망하듯, 많은 젊은이가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의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라도 갖기를 절박하게 희망한다. 꼴찌한 자들에게 ‘재도전’이 사치이듯 그들에겐 ‘무대의 경쟁’ 또한 부럽기만 한 역전의 기회다.
-45쪽

자살은 인간만이 하는 행위로 알려졌다. 자살하는 동물로 알려진 레밍도 실은 자살하려는 의지는 전혀 없으며, 자살로 보이는 투신 행위는 이동 중에 겪는 사고일 뿐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자해 혹은 그로 인한 죽음은 동물에게서 종종 발견되지만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차원의 자살은 아직 다른 동물에게서 발견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자살에 대한 이해는 인간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0년 자살에 의한 사망자 수는 총 1만 5566명,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31.2명으로 OECD 평균자살률(11.3명)보다 세 배나 높아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했다. 특히 20대 사망 원인의 44.9%, 30대 33.9%, 10대 24.3%가 자살이라고 하니 이들 연령대에서 전체 사망 원인의 1/3이 자살인 셈이다.(자살률을 줄이려면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2005년 무렵까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던 일본은 매년 3000억 원을 투자해 자살의 사망 원인 비율을 19.7%로 줄여 유지하고 있다.)
-49쪽

내가 자살에서 각별히 관심을 두는 부분은 의사결정 과정에 어떤 특징이 내재되어 있는가다.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은 여성이 두세 배 더 많지만 자살에 성공하는 사람은 남성이 네 배 정도 더 많다. 성호르몬이 관여되어 있나 보다.
-50쪽

한때 자살은 법적으로 금지되었고(특히 노예의 자살!) 영웅적 자살은 국가적으로 추앙받기도 했으며 고대 스토아 학파처럼 자살이 권리가 아닌 ‘의무’에 가까운 시절도 있었다.
자살이 비극인 이유는 자살한 자가 겪어온 고통이 자살의 순간 살아남은 자들에게 고스란히 건네지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남은 인생 동안 그 고통을 짊어져야 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죽음은 한 사람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비극이기에 죽음을 애도하는 종은 우리 모두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
-55쪽

서구에서 이타적 자살의 예는 보기 드물다. 하지만 기독교 문명 안에서도 ‘어떤’ 자살은 과거에 사회적 상찬의 대상이 되곤 했다. 동양의 열사에 해당하는 것이 서양의 순교자다. ‘순교’란 사실상 자살에 해당하나 순교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자신을 위해 죽는 것은 씻지 못할 죄에 해당해도 신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최고의 덕목이라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신처럼 이기적인 분도 없다.
-57쪽

키스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환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고대 핀란드 사람들은 키스를 매우 불결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서 심지어 발가벗고 섹스를 하는 동안에도 키스만은 하지 않았다. 지금도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는 콧수염이 있는 남자가 습관적으로 사람들에게 키스를 퍼부으면 폭력 행위로 간주해 체포한다. 또 믿지 못하겠지만 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퍼드 시에서는 아직도 남편이 아내에게 일요일에 키스하는 것을 불법으로 여긴다. 잡혀가는 사람이 실제로 있을까 싶지만 사실이다.
-74쪽

결과는 매우 명료했다. 2/3 정도 되는 사람들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여 키스를 하더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사람들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이며, 태어나기 전 며칠 동안 엄마의 뱃속에서 고개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그 자세가 본능적으로 좀더 편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두 연인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기울여 키스를 하고 있는, 구스타프 클림프의 작품 <키스>가 우리에게 그토록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리라.
-78쪽

라디오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기술은 제자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기술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요즘, 결국 살아남는 것은 우리 곁에서 우리 삶을 더욱 인간적이고 풍요롭게 해주는 기술들이다. 기술이 문화가 되는 순간 기술은 우리 삶의 동반자가 된다. 귓속말하는 친구 라디오가 꾸준히 우리 곁에 남아서 ‘과학의 시대에도 낭만이 있음’을 보여주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111쪽

추신 : 과연 라디오는 정말로 2020년 아니 2050년에도 우리 곁에 살아남을 것인가? 의외로, 오늘날과 같은 비디오 시대에 라디오를 그 존재만으로 기적이라 여기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인간 본성에 비추어보면 그 미래는 어둡지 않다. 정보 과잉은 사람들의 욕망을 거세하고 정보 결핍은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긴다. 라디오는 인간 두뇌의 정보처리 과정 중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시각정보의 결핍으로 비로소 그 생명력을 얻는다. 청각정보에만 의지해야 하는 라디오의 결핍은 시각적 욕망을 낳고, 충족되지 않는 욕망은 상상력의 여백을 메우면서 라디오의 수명을 조금씩 연장한다. 라디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수많은 음반회사들은 ‘음악을 공짜로 틀어주면 누가 음반을 사냐’며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음반 홍보의 가장 강력한 매체로 라디오가 자리하게 되면서 ‘공생’이 이루어졌다. 이 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한, 라디오는 ‘골골 할아버지’로 100년은 너끈히 버틸 것이다.
-111쪽

뽀통령을 모시는 이들이라고 그분을 뽀느님으로 섬기기를 꺼리지 않고, 뽀느님을 섬기는 이들이라고 그분을 뽀통령으로 모시는 데 이견을 달지는 않을 것이다. 천년왕국이 도래하면 어차피 하느님이 세속의 군주들을 제치고 직접 이 땅을 통치하신다지 않는가. 한마디로 뽀로로는 제정일치의 수장, 단군왕검 이후 최초로 한반도에서 다시 정치적 군장과 종교적 수장을 겸하신 분이다. 이러다가 민족의 토템이 곰에서 펭귄으로 바뀌는 사태가 일어날지 모르겠다.
-131쪽

UFO를 목격한 역사는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 탄생 1400여 년 전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세 3세의 문헌에 "불로 된 원들"이 며칠 동안 하늘에 떠돌아다녔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160쪽

성서에도 UFO를 연상시키는 구절이 다수 등장한다. 가령 "여호와의 신이 수면을 운행하시도다"는 <창세기> 구절,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 앞에 불기둥이 나타났다는 <출애굽기>의 구절을 생각해보라.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에스겔 선지자가 목격한 이상한 장면이리라. "그 순간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구름이 막 밀려오는데 번갯불이 번쩍이어 사면이 환해졌다. 그 한 가운데에는 불이 있고 그 속에서 놋쇠 같은 것이 빛났다(에스겔1:4)." 로마 작가 율리우스 옵세쿠엔스도 저서 《징조의 서》에서 "배", "둥근 방패", "불로 된 구체" 등 다양한 모양의 물체에 관해 언급한다. 16세기에 발간된 <뉘른베르크 전단>에 따르면 1561년 4월 뉘른베르크의 하늘에서 구, 십자가, 접시, 원통, 쐐기 등 다양한 모양의 물체들이 "서로 싸우기 시작"하더니, 한 시간 뒤 하늘로 치솟았다가 불타며 땅으로 추락해 하얀 김을 내며 사라졌단다. 뉘른베르크 시민들이 본 것은 UFO의 공중전이었을까?
-161쪽

UFO 목격담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광해군 시절에 강원도에서 목격된 UFO에 관한 기록이다. 이는 국가의 공식 문서인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었기에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광해군 1년(1609년)에 강원 감사 이형욱은 강원도에서 목격된 이상한 물체에 관해 보고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현상이 한 곳이 아니라 비슷한 시간에 간성, 원주, 강릉, 춘천, 양양 등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목격되었다는 점이다. "간성군에서 8월 25일 사시(오전 10시) 푸른 하늘에 쨍쨍하게 태양이 비치었고 사방에는 한 점의 구름도 없었는데, 우레 소리가 나면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해 갈 즈음에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보니, 푸른 하늘에서 연기처럼 생긴 것이 두 곳에서 조금씩 나왔습니다. 형체는 햇무리와 같았고 움직이다가 한참 만에 멈추었으며, 우레 소리가 마치 북소리처럼 났습니다."
-161쪽

쉽게 보이던 메모지가 점점 사라지고 서류 종이가 세상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오늘날 20~30년만 지나면 ‘그 귀한’ 종이에 낙서하는 행위는 범죄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전자책이 위용을 떨치고 태블릿 PC가 세상을 점령하는 시절이 와도 결코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나는 끝까지 종이책을 보리라 생각하지만 남미와 동남아시아에서 나무를 베어와 만든 종이책을 고집하는 것이 비윤리를 넘어 범죄가 되는 시절이 머지않았다.
-182쪽

5000년 전 선조의 동굴 낙서처럼 보존되기는커녕 빠르게 부수고 새로 지어지는 세상, 실제 현실이 가상현실과 교묘히 얽히고 때론 대체 되어버린 세상에서 우리가 편하게 자기 검열 없이 무의식적 흐름을 기록할 매체가 과연 세상에 남아 있게 될까?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낭만이 사라진 시대가 우울할 뿐이다.
-183쪽

요즘 한창 화두가 되고 있는 ‘지속 가능한 발전’은 사실 지금까지의 과학기술과 문명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종말론적 기술’이었음을 고백한 내밀한 자기반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단어는 과학 종말론이 범람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민낯을 가장 절묘하게 보여주는 자기 고백일지 모른다.
-203쪽

현대사회에서 왜 종말론이 이렇게 득세하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개인의 종말을 집단의 종말로 믿고 싶은,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일지 모른다. 그런 환상이 하필 요즘 더 득세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만큼 사람들이 현대 문명과 우리 사회에 대해 좀더 깊은 위기의식과 불안을 느끼고 있어서이리라.
-205쪽

자연현상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래서 시속 160km로 달리는 (박찬호의 공보다 빠른!) ‘달’ 위에 정교하게 우주선을 착륙시키는 현대사회에서도 ‘일본 지진은 신의 노여움’이라고 믿는 어리석음이 공존하는 이상 우리 문명을 가장 위태롭게 하는 것은 ‘종말론 그 자체’다. 종말론은 그것을 제기하고 떠벌리고 외치는 자에 의해서 늘 현재진행형이다.
-208쪽

우리 신체 중에서 성기관을 제외하고는 신체 사이의 길이 비율이 남녀 간 차이를 보이는 곳은 ‘오른손 검지와 약지’뿐이다. ‘검지와 약지 길이비는 임신 13주차 때 자궁 내 남성호르몬의 농도가 높을수록 작아진다. 그래서 남자는 대개 약지가 더 길며, 여성이라도 남성적 성향이 강할수록 약지가 길어져 검지와 비슷하거나 심지어 더 길게 된다.

-237쪽

앞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배우 고현정의 미래가 아니라 배우를 바라보는 대한민국 관객의 미래다. 우리가 준 애정으로 먹고살며, 그 덕분에 엄청난 부를 누리는 ‘스타’들에게 이따금씩 관객의 권력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그래서 적절한 꼬투리가 나타나면 스타의 권좌에서 그들을 냉혹하게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풍토에서 오랫동안 애정을 갖고 영화를 찍을 배우는 많지 않다. ‘스타의 개런티란 악플을 감당하라고 주는 정신적 맷값’이라는 의식이 팽배한 시대는 ‘자신이 하는 일에 애정을 가진 배우’를 얻지 못한다.

-240쪽

음악의 산업화는 어쩌면 불가피한 현상일지 모른다. 오늘날 케이팝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성장해 국제적 현상이 된 것도 실은 음악의 철저한 자본주의화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또 어린 시절부터 거의 ‘아동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혹독한 훈련을 거친 것이 케이팝 스타들이 지닌 음악적 기량의 바탕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고 아무리 대중의 취향에 맞더라도 ‘영혼’이 결여된 음악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뮤지션은 음악의 생산자이지 생산품이 아니다.

-256쪽

피델 카스트로는 혁명 직후에 쓴 자신의 저서《양키들아, 들어라》에서 쿠바 혁명에 영감을 준 원천으로 한국의 4.19 혁명을 들었다. 영광스러운 일이나 우리에게도 혁명은 쉽지 않았다. 그 혁명 이후에도 민주주의가 올 때까지 27년을 더 싸워야 하지 않았던가.

-303쪽

2009년 9월 9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의 한 인터넷 회사는 흥미로운 시합에 참여하게 된다. 영화 한 편 크기(4GB)의 데이터를 80km 떨어진 곳에 누가 더 빨리 전하는지 경기를 치르게 된 것이다. 누구와 했느냐 하면, 바로 비둘기와. 아프리카 대륙의 인터넷 전송 속도가 지나치게 느려 사용자의 불만이 극에 달하자 한 시민의 제안으로 이 시합이 성사되었다. 과연 승자는 누구였을까? 놀랍게도 비둘기였다. 평소 우편배달이 특기였던 이 비둘기는 2시간 6분 57초 만에 80km나 떨어진 곳에 데이터 파일을 무사히 전달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시간 동안 인터넷을 통해 전송된 데이터는 겨우 4%였다. 이 일화는 2009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의 인터넷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해프닝(비둘기를 활용했던 수백 년 전만도 못한!)이라 할 수 있다.

-304쪽

컵라면의 편의성이 빛을 발하는 곳은 역시 PC방이다. 하지만 거기서 컵라면을 먹는 게 법적으로는 아주 복잡한 모양이다. 강원도의 한 지역에서는 라면에 물을 부어줘도 되나 가져다주면 안 된다. 충북의 한 지역에서는 물을 부어주거나 가져다주는 것 모두 불법이다. 제주도의 어느 지역에서는 PC방에서 컵라면을 파는 것 자체를 금한다. 반면 전남의 한 지역에서는 단무지만 주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 2011년 6월 민주당 이낙연 의원의 질의에 보건복지부는 "PC방에서 컵라면에 물을 부어줘도 된다"고 대답했다. 휴, 컵라면에 물 붓기 참 힘들다.

-334쪽

우리나라의 연간 라면 소비량은 무려 36억 개다. 국민 1인당 소비량이 연간 80개에 이르는, 2위와 큰 격차를 보이는 압도적인 세계 1위다. 1963년 국내 최초로 판매된 삼양라면 가격이 10원으로, 당시 김치찌개 백반 가격이 30원 정도였다니, 라면은 50년 전부터 허기진 서민들의 배를 채워주는 식사 대용품이었다.

-336쪽

소 한 마리를 키우는 데 사람 한 명이 먹는 곡물의 11배가 필요하고, 쇠고기 1kg을 생산하는 데 보리 1kg을 생산하는 데 드는 물의 1000배가 필요하다고 하니, 육류를 폭식하는 도시는 가히 농촌에 기생하는 삶의 형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40쪽

2006년 <타임>은 "올해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온라인 백과사전, 영상파일 공유 사이트, 블로그 사이트를 비롯한 개인 미디어의 확산"이라며, 이 영역에서 활약한 ‘당신’을 ‘올해의 인물’로 뽑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타임>에서 밝히는 선정 사유. "‘당신’은 월드와이드웹을 파고들어 새로운 디지털 민주주의의 틀을 세우고, 대가 없이 그저 좋아서 하는 일임에도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신’을 우리의 정부는 탄압한다.
2008년 어느 포털 사이트에서 ‘올해의 인물’을 뽑는 인터넷 투표를 한 적이 있다. 투표 30분 만에 워스트 1위를 달린 것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 베스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투표는 중단되고 선정 방식이 바뀌더니, 결과도 수정되었다. 워스트 강병규, 베스트 김연아. 각하가 ‘당신’들한테 욕먹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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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양말 / 젊은 베르테르의 양말 : 4Type - 젊은 베르테르의 양말
aladin
절판


보통 이런 사은품스러운 품목들은 책을 사면서 끼어 주는 선물로 더 반가워 했는데, 이번 행사에는 행사 금액을 맞출 만큼 마음에 드는 책들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양말은 궁금하고... 별 수 있나, 직접 구매할 수밖에!

겨울이라서 목긴 양말이 필요했다. 수면양말은 많아서 일반 양말로 골랐다.
용의자 양말보다는 젊은 베르테르가 더 나아 보였다.
색깔은 내가 좋아하는 빨강색으로!

색감도 선명하니 예쁘고 감촉도 좋다.
다만 많이 얇다는 게 흠.
이 정도 두께에 3,500원은 솔직히 비싸 보인다.
그렇지만 무려 '젊은 베르테르의 양말'이지 않은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눈물 또르르 흘렸던 소녀적 감수성을 떠올리며 간택!

사실 신고 있으면 이게 이런 양말인 줄 누가 알겠냐만은,
다 자기 만족이지 뭐. 이 양말을 고르지 않고 넘어 가면 분명 궁금해서 못 샀던 걸 후회할 테니, 잘 샀다.
그나저나 알라딘에 화장품이랑 기프트 상품 사라진 게 정말 아쉽다.
다시 입점, 어려울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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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2-26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왜 화장품과 기프트가 없어졌는지 당최 모르겠네요ㅡ.ㅡ

마노아 2013-02-26 23:11   좋아요 0 | URL
이 추천들은 기프트와 화장품의 컴백을 바라는 요청같아요..^^
 
지구에서 가장 독한 동물들 사이언스 일공일삼 19
니콜라 데이비스 지음, 닐 레이튼 그림,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06년 9월
절판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껏 자만심에 빠져 있지만, 자연 앞에서 인간은 참 비루하기 짝이 없다.
추워도 못 살고, 더워도 못 살고, 물이나 음식이 없어도 며칠을 못 버티고, 공기 없이는 단 몇 분도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지구에 사는 생물들 중에는 우리 인간들은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혹독한 환경에서 기꺼이 살아남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그 '독한' 동물들을 소개하는 게 이 책의 역할이다.

북극으로 먼저 가 보자. 북극곰들은 우리처럼 겨울에 내복을 입지 않지만 천연 내복을 갖추고 있다. 바로 피부 밑에 7cm나 깔려 있는 지방층이다. 게다가 몸에는 길이가 다른 두 종류의 털이 나 있어서 따뜻한 공기를 한껏 품어 안을 수가 있다. 따땃한 솜이불을 걸치고 있는 효과일 것이다. 게다가 북극곰은 겉이 하얗게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피부는 시커멓다. 그 바람에 햇볕을 잔뜩 흡수해서 열을 품어 피부로 흡수시키는 일을 해낸다. 자신들의 열을 꽁꽁 숨겨두는 북극곰들 때문에 열감지기로 눈밭을 조사해서는 북극 곰을 셀 수가 없다. 털 바깥쪽의 온도가 눈밭의 온도와 같기 때문이다. 열감지기가 찾을 수 있는 것은 털이 덮여있지 않은 북극곰의 코 정도가 다다. ^^

북극사향소는 양털보다 8배는 더 따뜻한 털을 갖고 있다. 이런 털이 왜 상용화가 안 되었는지 궁금하다. 옷으로 만들기에는 털이 너무 거칠거나 예쁘지가 않은 것일까? 혹은 너무 더울까 봐?

해달은 아주 촘촘한 털을 가졌다. 1제곱센티미터 안에 무려 15만 5천 개의 털이 나 있다고 한다. 그 바람에 평생을 얼음장같은 물속에서 살지만 이렇게 촘촘한 털들이 따뜻한 공기를 품어 녀석들의 피부를 감싸준다.

북극해에 사는 북극고래는 심지어 털도 없다. 그러나 피부 밑에 거의 50cm나 되는 지방층이 있어서 추위에 끄떡 없다. 추위 다 나오라 그래! 라고 외치는 느낌이랄까.

남극 관련 다큐를 보면 가장 오래 시선을 끄는 것은 역시 황제 펭귄이다. 남극의 추위가 보통 추위인가. 바로 그 혹한의 땅에서 맨발 위에 알을 올려놓고 품어서 지켜낸다. 시속 150km로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55일 동안을 버틴다. 심지어 먹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로 황제 펭귄의 깃털 외투 덕분이다. 두께는 3cm에 불과하지만 깃털 안팎의 온도 차는 무려 60도나 된다. 어휴, 과학이 따라갈 수 없는 놀라운 생명력의 힘이다. 황제펭귄은 발을 통해서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반류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몸솜의 따뜻한 피가 발 쪽으로 가면 발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피에게 열을 넘겨준다. 그래서 발로 가는 피는 차갑고 몸으로 돌아오는 피는 항상 따뜻하게 유지된다. 귀뚜라미 보일러가 이런 메커니즘을 이용한 것일까?

파충류들은 사막 생활을 잘 견디는데 변온동물인 것 말고도 오래 굶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먹이가 별로 없는 사막에서 살아남으려니 허기를 견디는 것은 그야말로 생존의 절대 조건이다. 그런데 거미 역시 변온 동물이다. 게다가 굶주림을 참는 것은 파충류보다 더 뛰어나다. 영국의 박물학자 존 블랙웰은 1829년에 무려 일년 반 동안 먹이는커녕 물 한 방울 주지 않고 거미를 유리병에 넣어둔 채 관찰했다. 거미줄 쳐놓고 다른 벌레들이 걸려들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 쯤이야 거미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체온이 조금만 높아져도, 또 떨어져도 큰일 나고, 조금이라도 굶으면 성질 버려버리고 물이 없으면 단 며칠도 살 수 없는 우리 인간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체온을 유지하고, 또 음식을 구할 능력을 갖추기 위해 인간이 끊임없이 진화해오고 노력해 온 인간의 생존 의지가 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진 게 적으니까, 필요가 발명을 만든 것이다. 교만할 필요는 없지만 기죽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북극곰도 음식을 먹지 않고 8달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역시 북극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 겨울이 오기까지 몇 달을 굶어서 몸이 아주 홀쭉해진 녀석들을 볼 수 있었다. 요즘은 굶주림보다 얼음이 녹아버려서 사냥할 수 있는 터전이 사라지는 게 가장 큰 문제이지만...

몸집이 작은 철새인 검은머리솔새는 북아메리카에서 남아메리카까지 80시간 동안 쉬지 않고 날아간다. 자기 몸을 연료로 삼아서 그 먼 거리를 이동하니, 목적지에 도착하면 말 그대로 '반쪽'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해외 토픽에서 장시간 키스를 해서 신기록을 세운 커플이 생각난다. 화장실마저도 같이 가야 했다고.... 이렇게 장시간 한가지 일에 몰두해서 몇날 며칠을 보내는 인간은 무협지에서 곧잘 볼 수 있었다. 무림 고수들이 내공 수련을 할 때, 혹은 독을 내보내기 위해서 남의 기를 받아들일 때 등등 말이다. 그때도 이게 말이 되냐고 놀라워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극기훈련(?)을 하는 생물들이 있다는 게 아주 재밌다. 어휴, 정말 대단하십니다!!

황량한 극지방과 메마른 사방, 먹이 없는 유리병 안에서도 생물을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펄펄 끓는 용암 속은 어떨까? 이곳에는 박테리아가 살아남는다. 화산 근처에 사는 박테리아를 '호열성 유기체'라고 부른다. 호열성 유기체들은 철과 독성이 있는 유황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산소에 닿으면 죽는다. 이 단세포 생물은 바다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바다 속 용암 때문에 뜨거운 물기둥이 솟아오르는 곳 말이다. 이 호열성 박테리아를 먹는 장님새우, 그리고 바로 그 장님새우를 잡아먹는 더 큰 바다 생물도 있다. 균형을 이루는 먹이사슬은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그밖에 엄청난 수압을 버티는 바다 생물들이 있고, 엄청난 중력을 이겨내는 곤충들이 있다.
심지어 어떤 동물은 온몸이 산산조각 나도 목숨이 붙어 있다. 꽤 많은 무척추동물들이 이런 재주가 있다. 이중 갑은 스펀지라고도 부르는 해면동물이다. 해면동물을 걸쭉하게 갈아서 바닷물에 부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잘게 잘라진 조각들이 도로 다닥다닥 붙어서 서서히 하나의 생명체로 돌아가는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정도면 '기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

시간을 이겨낸 생물들도 있다. 장수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거북이!
다윈이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가져온 거북이는 2006년에 죽었다. 이 거북이는 175살 이상을 살아낸 것이다. 다윈이 데려왔을 때 갓 태어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오래 산 식물에 비하면 거북이는 겸손해져야 한다. 어떤 나무들은 천년이 넘게 살 수 있고, 또 미국 네바다 주와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브리슬콘소나무는 무려 5000년 수령을 자랑하고 있으니까. 인간은, 정말 초라해지는 것이다. 100년을 겨우 살아내면서 천년을 살 것처럼 끝없는 욕심만 채우고 있으니까......

이제 시선을 우주로 돌려보자. 우주는 넓다. 정말 많이 넓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인 알파 켄타우루스까지 가는 데는 4년 3개월이 걸린다. 빛의 속도로!
빛의 속도라면 화성까지 3분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 속도로 4년 3개월이라니... 정말 이 어마어마한, 천문학적 숫자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거리를 인간의 짧은 생으로 감당하려면 수면 상태로 오랜 세월을 견디는 수밖에 없다. 몇몇 씨앗들의 생명 저장 비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씨앗 중에는 수천 년 동안 잠을 자다가 뒤늦게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것들이 있다.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수수과의 식물인 소검의 씨앗은 무려 6천 년이 지난 뒤에도 싹을 틔울 수 있다고 한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단한 것은 분명하다!

이제 독하디 독한 마지막 생물을 소개해 보겠다.
이 녀석은 식물의 잎에 고인 얕은 물속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 연못이나 바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덩치카 크지도 않다. 기껏 커봤자 1mm 조금 넘는 정도. 이 동물은 물곰 혹은 완보류라고 불리는데, 무려 5억 3천만 년도 전에 지구에 나타났던 고대 생물 무리에 속한다.
물곰은 가뭄이나 갑작스러운 추위 등의 어려움이 닥치면 다리를 오므리고 온몸을 접는다. 그리고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몸을 포도당으로 채운다. 그러고는 몸속의 수분 가운데 단 1%만 남기고 모두 밖으로 내보낸다. '턴'이라고 부르는 이런 상태로 들어가면 이녀석들은 천하무적이 된다.
과학자들은 턴을 150도로 가열해 보기도 했고, 영하 272.8도로 얼려도 보았다. 바다 밑에서 경험할 수 있는 수압의 6배나 되는 압력으로도 눌러 보았다. 또 우주 공간처럼 진공 상태에도 두어 봤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수준의 천 배는 되는 방사선을 쪼여도 보았고 독한 화학물질도 써 봤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위기가 지나가고 원래 살던 물속으로 들어가면, 턴에서 다리가 튀어나오고 몸이 펴지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제 할 일을 한다. 이런 음폐 생활 상태로 수백 년, 수천 년을 살아남은 것이다. 어쩌면 물곰은 여원히 죽지 않고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뱀파이어물들이 매력적인 것은 그들이 아름다운 상태로 불멸의 생을 산다는 것이다. 물곰의 능력은 정말로 놀랍지만, 물곰으로 태어나서 천 년 만 년을 살고 싶지는 않다. 하하하!!!

글밥이 꽤 많다. 축약한 백과사전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주제로 묶어 소개한 동물들 이야기가 재밌었고, 감탄도 했다. 실제 사진도 같이 담아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또 미관상 너무 징그럽게 생겨서 거부반응이 들었을 지도...^^

사실 신체의 능력만 따지면 인간은 지구 상에서 순하디 순한 동물에 속할 테지만, 잔인함으로 따지면 누구보다 독할 수 있을 것이다. 배고프지 않아도 상대를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동물이니까.
즐겁고 신기한 정보도 찾고, 그 안에서 인간의 모습도 좀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의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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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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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가 쌍용 자동차 문제에 직접 뛰어들게 된 것은 파업 이후 열 세번 째로 나온 죽음을 맞닥뜨리고 나서였다. 해고 노동자 임성준 씨의 부인은 남편에게 보고 싶다며 일찍 들어오라고 전화를 했다. 불안해진 남편은 집에 돌아와서도 별다른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고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갔고, 아이들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남편이 돌아오자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베란다로 직행, 그대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1년이 채 못 되어 남편도 돌연사하고 말았다. 졸지에 어린 아이들은 고아가 되어버린 것이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시작된 이래 13번째 죽음이었다. 그리고 공지영 작가가 이 책을 탈고할 때에 그 숫자는 22명으로 늘어나 있고, 이 책을 읽은 내가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그 숫자는 다시 24명으로 늘어나 있다. 이렇게 참담한 숫자를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누구라도 죽을 결심을 하면 유서라도 남기기 마련인데, 22명의 노동자들이 죽어나갈 때, 하나같이 유서 없이 죽어버렸다. 한 노동자는 휴대폰에 저장된 모든 전화번호를 다 지우고 어머니 번호 하나만 남긴 채 세상을 버렸다. 그를 잡아줄 사람이 이 넓고 많은 사람 중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의 죽음을 수습할 어머니 외에는...

 

참담한 2009년이었다. 1월 추운 겨울에는 용산에서 비극적인 진압과 죽음이 있었고, 뜨거운 여름에는 쌍용자동차 파업과 강제 진압으로 생지옥이 연출되었다. 영화 '두개의 문'에서 공지영 작가를 흠칫 놀라게 했던 그 부분을 떠올려 본다.

 

“무리한 컨테이너 투입으로 무고한 경찰을 한 사람 잃고, 농성하던 시민 다섯이나 죽게 한 그 참사 앞에서 정부는 여론과 시민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 초기였으므로 자칫 정권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울 수도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몇몇 비난 여론이 일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러자 경찰은 쌍용자동차에 드러내놓고 컨테이너를 투입했다. 말하자면 용산에서 간을 본 것이었는데, 의외로 저항이 거세지 않자 이번에도 그걸 사용한 것이다 국민이 용산에 대해 국가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더라면 쌍용자동차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용산 참사는 국가에게 ‘이렇게 진압해도 된다.’는 몹쓸 교훈을 심어줬다.” -46쪽

 

'관용'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건 무책임한 방기였다. 불과 일년 전 광우병 사태 때에는 정말 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분노했고, 정부를 향해 소리를 높였다. 당장 광우병 걸린 소가 들어온 것도 아니었고, 발병까지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테지만, 우리가 먹고 있는 이 식탁이 안전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의 급식과 군대의 식재료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하자 국민들은 똘똘 뭉쳐서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용산에서 죄없는 시민들과 경찰 한명이 죽은 일에 대해서는 그리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이 죽었는데... 그렇게 하나의 둑이 터지자 더 큰 난리가 벌어졌다. 비단 쌍용자동차 문제만이 아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쫓기고 가정이 깨지고, 삶에 균열이 갔던가. 그것들이 모두 '남'의 이야기라고 믿고 싶을 테지만, 그건 '우리'의 이야기이고, 바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며칠 전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 망언을 한 것으로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그가 막말을 한 것도 맞고, 정말정말 죄값 좀 치르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그의 죄명은 명예 훼손이 아니라 쌍용자동차 강제 진압이 되었어야 했다. 징역 10월이 아니라 10년 이상의 중형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인간의 탈을 쓰고 짐승만도 못한 행태를 보인 이 일은 표창감이 되었다.

 

2012.3.12

경찰 수사 우수 사례로 쌍용차 사태가 선정되었다. 전국 수사경찰관을 대상으로 최근 3년간 주요사건 중 ‘베스트 10, 워스트 10’ 후보를 공모했는데 1,192명이 참여한 설문에서 ‘평택 쌍용차 점거농성 사태 조기 해결’이 베스트 5위로 선정되었다. -204쪽

 

불과 일년 전의 일이다. 우리는 얼마나 야만적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애초에 쌍용자동차는 부실기업도 아니었다. 그러나 회사는 기업을 헐값에 매각해 버렸고, 매입한 상하이차는 기술만 빼먹은 채 먹튀해 버렸다. 법인회계들은 멀쩡한 회사를 망가질대로 망가진 회사로 평가해 버렸고, 그 평가서를 기준으로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다. 함께 살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보여준 연대는 눈물겨웠다. 형편없이 줄어드는 임금에도 불구하고 교대를 늘려 일자리를 나누려고 하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살기 위해서 고용안정기금을 만들려고 했고, 심지어 퇴직금을 담보로 개발자금도 만들려고 했다. 이 순박하고 착한 노동자들은 정말 회사가 어려운 줄 알고 허리띠를 있는 대로 졸라 이렇게까지 양보하고 희생했지만, 회사는 이들을 내보낼 생각만 했다.

 

조합원들은 회사가 어렵다니까 이처럼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더라도 함께 살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정부와 채권단, 그리고 회사는 일방적인 해고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대화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이 해고하려는 2,646명은 전체 노동자의 37%, 현장직 노동자의 43%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말했던 안진회계법인과 삼정KPMG, 즉 대형 회계법인의 작품이었다. “함께 살자!”는 노조의 외침에 “미안하지만 너희가 좀 죽어줘야겠어.” 라는 대답일까?
이때부터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치워야 할 비용으로 보는 자들에 의한 보이지 않는 무자비한 폭력이 시작된다. 나는 22명이 자살한 원인을 이 순간부터 찾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이때부터 혼돈과 경계, 그리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이 죽어야 한다는 비인간적 폭력이 노동자들에게 가해지기 때문이다. -87쪽

 

노조는 똘똘 뭉쳐서 회사를 지켜내려고 했다. 한여름 땡볕에 단전, 단수 상황에서도 도장공장의 도료가 굳지 않게 하려고 비상발전기의 전기를 그곳에 썼다. 단전으로 도료가 굳어버리면 공장 재가동 시기가 한달 가량 늦춰지고, 그렇게 되면 피해 손실액이 1,300억에 보수 설비 및 기타 재가동 비용도 100억 원이 든다고 했다. 돈 없다고 노동자를 쫓아내는 사측은 이런 돈쯤은 아까워하지 않았다. 뿐이던가. 한번 띄우는데 600만원이라는 헬기도 수시로 띄워서 체루액을 살포했고, 파업 농성자들의 수면을 방해하며 불안에 떨게 했다. 진압 과정에서 내부에서 불이 났는데도 불 끌 생각은 하지도 않고 여전히 폭력 진압만 염두에 두었다. 이 정도면 광기를 뛰어넘은 것이 아닐까. 정상적인 사고 수준으로,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비상식적이고 몰염치하며, 비윤리적인 일이 그동안 얼마나 많이 있어왔는지...... 정말 이 사회에 '정의'란 있는 것일까 자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해고와 농성, 강제진압 과정에서 이들이 겪은 정신적 스트레스는 전쟁터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경찰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집에는 보험급여환수 통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쌍용차 파업노동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어 재취업도 힘들었다. 하루아침에 직장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삶이 무너졌다. 이들이 기꺼이 죽음을 향해 달려간 것이 아니라 이 나라가, 이 사회가 그들을 죽으라고 등을 떠민 것이다. 그런 가정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조국을 어떤 얼굴로 바라보아야 할까? 자신들의 부모님을 '빨갱이'라고 명명하는 선생님이 있는 교실에서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자리해야 할까. 언론에서도 손가락질을 하고, 이웃 사람들의 눈초리도 무섭다. 대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일까. 어디로......

 

의자놀이가 생각났다. 어렸을 때 하던 그 놀이. 의자를 사람 수보다 하나 덜 놓고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다가 노래가 멈추는 순간 재빨리 의자에 앉는 놀이. 행동이 굼뜬 마지막 두 명은 엉덩이를 부딪치며 마지막 남은 의자를 차지하려 하고, 대개는 한 명이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정말 그럴 생각은 없지만, 마지막 순간이 되면 술래가 되지 않기 위해 친구를 밀어버리고 내가 앉아야 하는 그 의자놀이. 쌍용자동차 관리자들은 이 거대한 노동자 군단에게 사람 수의 반만 되는 의자를 가져다 놓고 마치 그런 놀이를 시키는 것 같았다. 기준도 없고, 이유도 납득할 수 없고, 즐겁지도 않으며, 의자를 놓친 자들에게는 죽음을 부르는 그런 미친 놀이를. -92쪽

 

나만은 아닐 것 같은가? 내 의자만은 끝까지 남아 있을 것 같은가?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이 그냥 하는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사실이고 진실로 판명되었다. 이미 스물 네명이 죽었다. 범위를 대한민국 전체로 넓히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무참하게 죽었고, 또 죽어가고 있는지......

 

정혜신 박사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이 트라우마는 어떤 질병보다 많이 죽지만, 또 빠르게 개입하면 그만큼 많이 살릴 수 있다고 했다. 더 많은 '와락'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가 끝까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야 할 이유이다. 우리의 관심이, 우리의 연대가, 우리가 지고 있는 이 부채의식을 조금은 덜어낼 마지막 보루이다.

 

이 책을 읽으며 실소를 날린 게 한 번 있는데 난데없이 등장한 '맥쿼리 증권' 때문이었다. 세상에, 안 끼는 데가 없구나! 이제 이번 주말을 넘기면 대통령은 임기를 모두 마치고 사저로 돌아간다. 아, 근데 그 사저가 설마 내곡동은 아니겠지??? 광주를 피로 물들였던 전두환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고, 용산과 쌍용자동차에 이토록 많은 사람을 죽게 한 대통령도 멀쩡히 임기를 마치고, 자살한 부인을 애도하는 정책부장을 향해 '오 필승 코리아!'를 밤새 틀었다는 야만적인 회사도 살아 있다. 이런 사람들이 단지 역사의 심판만 받지 않기를 바란다. 물리적인 심판이 꼭 따라오기를 바란다. 최루액을 뿌리는 것은 향수 뿌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황당한 주장을 한 조현오 전 청장도 합당한 대가를 꼭 치렀으면 한다. 그렇게 정의가 조금이나마 실현될 수 있기를...

 

문득, 미국에서 유난히 슈퍼히어로가 많은 이유가 정의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의 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의롭고 힘도 센 슈퍼 히어로가 나타나서 악을 제거하고 응징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말이다. 외계 행성에서 온 슈퍼맨이나, 돈 많고 힘도 세고 솜씨도 좋은 배트맨이 우리에겐 없으니, 우리는 각자가 연대해서 스스로 슈퍼히어로가 되는 수밖에 없다. 기억하자. 잊지 말자. 함께 하자.

 

너희들은 참 좋겠구나   - 송경동

 

너희들은 좋겠구나

이제 518 광주에서처럼

총으로 곤봉으로 대검으로

때려죽이고 찔러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죽어가니

 

너희들은 좋겠구나

이젠 박창순처럼 YH 김경숙처럼 박종철처럼

굳이 끌고가 물먹여 죽여도

떠밀어 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떨어져 죽어가니

너희들은 참 좋겠구나

 

이젠 용산에서처럼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망루에 가둬두고

짓밟고 태워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피말라 죽어가니

너희는 정말 정말 좋겠구나

이런 만고강산

이런 태평천하

이런 브라보

시간만 가면 돈이 벌리는

이런 희한한 세상이

배터지게 입찢어지게

환장하게 좋겠구나

 

노동자들만 눈물바다구나

평생을 뼈 빠지게 일하며 눈물바다

평생을 생존권에 쫒겨다니며

평생을 길거리에서 싸워가며

급기야 저절로 목숨까지 반납하며 눈물바다

짜디짠 눈물 바다 뿐인 세상이 참 좋겠구나

 

이 더러운 세상을 어떻게 살란 말이냐

이 서러운 세상을 어떻게 살란 말이냐

더 이상 물량과 생산성에 쫒기지 않고

더 이상 구사대 경찰에 쫒기지 않고

더 이상 실업과 생활고에 쫒기지 않고

먼저 가서 자네는 참 좋겠네 라고 얘기해야 하나

차라리 먼저 가서 자네는 행복 하겠네 라고 말해야 하나

 

무한경쟁 무한생산 무한소비로

벼랑에 도달한 것은 자본인데

왜 등 떠밀려 묻혀야 하는 것은 착한 우리들 만인가?

 

돌려 말하지 마라

이것은 계획된 살인

이것은 준비된 학살

이것은 우리 시대 모두를 향한 자본의 테러다

 

우리는 더 이상 묻힐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서야 하는 것은 너희다

이 참혹한 땅에 매몰되어야 하는 것은

이 스물 두 명이 아니라

수백 수천 수만 수백만 해고 노동자들과 비정규직들이 아니라

이 시대 가장 악독한 강도이며, 구제역인 자본과 권력 너희다

너희를 묻지 않고

우리는 스물두분의 참혹한 시신을 묻을 수 없다.

너희를 단죄하지 않고

우리는 어미 아비를 잃은 이 아이들의 슬픈 눈망울을 쳐다 볼 수 없다.

더 이상 이런 아픈 추도시를 쓸 수 없으며

더 이상 뼈아픈 추도사를 읊을 수 없다.

 

우리 일어서자

더 이상 죽지 말고 일어서자

엄마 아빠 제발 죽지 말고 일어서자

여보 제발 쓰러지지 말고 죽지 말고 일어나 싸우자

일어나 새로운 시대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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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3 0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3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3-02-23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조현오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그렇구나'라고 새삼 깨달았습니다. 야만의 시대가 맞긴 맞습니다만, 그 야만의 시대가 대다수 국민들의 동의로 이루어졌기에 더 씁쓸하네요.

마노아 2013-02-24 19:39   좋아요 0 | URL
그 국민들이 뽑은 새 대통령이 내일 취임하네요. 어휴... 승질납니다..ㅡ.ㅜ;;;

saint236 2013-02-23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현오에게 막강한 비선 라인이 있지 않았나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마노아 2013-02-24 19:40   좋아요 0 | URL
문화방송 김재철도 그런 걸까요? ㅠㅠ
 
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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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상처를 감춤으로써 서로를 위한다고 생각했던 가족들은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소통이자 서로에 대한 이해라는 것도.
-24쪽

자살 시도 중 삶의 의지가 거의 없는 가장 절망적인 죽음은 고층에서 몸을 던지는 것이다. 자살이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은 보통 사회에 메시지를 남긴다. 그것이 유서이든 문자 메시지이든 마지막 전화이든 말이다. 그런데 여기 22명의 사람들은 그것조차 남기지 않았다. 이것은 아마도 세계 정신의학회에 보고될 일이 아닐까 싶다. 하나같이 아무런 메시지도 남기지 않은 그들은 어쩌면 세상과의 소통에 완전히 절망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아주 절망하기 전에 실은 메시지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살고 싶다고, 살려달라고 외쳤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3년 동안 하루에 ‘7분’씩 100번이나 비명을 지르고 살려달라고 외쳐왔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을 우리는 무심하고 태연하게 스쳐 지나가 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는 대체 왜 죽음에 이토록 무감각해진 것일까?

-37쪽

"무리한 컨테이너 투입으로 무고한 경찰을 한 사람 잃고, 농성하던 시민 다섯이나 죽게 한 그 참사 앞에서 정부는 여론과 시민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 초기였으므로 자칫 정권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울 수도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몇몇 비난 여론이 일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러자 경찰은 쌍용자동차에 드러내놓고 컨테이너를 투입했다. 말하자면 용산에서 간을 본 것이었는데, 의외로 저항이 거세지 않자 이번에도 그걸 사용한 것이다 국민이 용산에 대해 국가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더라면 쌍용자동차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용산 참사는 국가에게 ‘이렇게 진압해도 된다.’는 몹쓸 교훈을 심어줬다."

-46쪽

어떻게 기업의 건축물과 기계장치, 설비 등이 일 년 만에 100분의 1, 1,000분의 1로 가치가 떨어져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지진이 일어나거나 토네이도가 휩쓸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이들은 면허증을 가진 회계법인, 즉 권위 있는 전문가 집단이었고, 이들의 감정은 바로 법이 된다. 그들에게 부여된 면허증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항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75쪽

조합원들은 회사가 어렵다니까 이처럼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더라도 함께 살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정부와 채권단, 그리고 회사는 일방적인 해고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대화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이 해고하려는 2,646명은 전체 노동자의 37%, 현장직 노동자의 43%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말했던 안진회계법인과 삼정KPMG, 즉 대형 회계법인의 작품이었다. "함께 살자!"는 노조의 외침에 "미안하지만 너희가 좀 죽어줘야겠어." 라는 대답일까?
이때부터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치워야 할 비용으로 보는 자들에 의한 보이지 않는 무자비한 폭력이 시작된다. 나는 22명이 자살한 원인을 이 순간부터 찾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이때부터 혼돈과 경계, 그리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이 죽어야 한다는 비인간적 폭력이 노동자들에게 가해지기 때문이다.
-87쪽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부모의 양육태도가 아이들의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그중 아이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모호함이라고 한다.
-88쪽

일전에 가톨릭 피정을 갔다가 ‘악의 특징’이라는 정의를 배우게 되었다. 나는 그저 ‘나쁘고, 못되고, 잔인하고’ 같은 것들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아주 간단한 단어들이 나열되었다.
혼돈, 지연, 분열.
쌍용자동차에 대한 자료들을 읽었을 때 나는 가톨릭 피정에서 배웠던 세 낱말을 떠올렸다. 쌍용자동차의 노무관리는 이 모든 것의 종합선물세트 같았다.
-89쪽

사람들은 남는 명단에 있을 사람을 ‘산 자’, 나가야 한다고 지적당한 사람을 ‘죽은 자’라고 불렀다. 자조 섞인 농담이었으리라. 그러나 평택 시내에는 아이들까지 산 자와 죽은 자를 알았고,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가느다란 도랑이 파이고 졸졸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시냇물이 되고 폭포가 되어 대양처럼 넓어져 정말로 산 자와 죽은 자처럼 다시는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91쪽

의자놀이가 생각났다. 어렸을 때 하던 그 놀이. 의자를 사람 수보다 하나 덜 놓고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다가 노래가 멈추는 순간 재빨리 의자에 앉는 놀이. 행동이 굼뜬 마지막 두 명은 엉덩이를 부딪치며 마지막 남은 의자를 차지하려 하고, 대개는 한 명이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정말 그럴 생각은 없지만, 마지막 순간이 되면 술래가 되지 않기 위해 친구를 밀어버리고 내가 앉아야 하는 그 의자놀이. 쌍용자동차 관리자들은 이 거대한 노동자 군단에게 사람 수의 반만 되는 의자를 가져다 놓고 마치 그런 놀이를 시키는 것 같았다. 기준도 없고, 이유도 납득할 수 없고, 즐겁지도 않으며, 의자를 놓친 자들에게는 죽음을 부르는 그런 미친 놀이를.
-92쪽

일터는 단지 먹이를 구하기 위해 가는 장소가 아니다. 돈만 벌면 어디든지 다 좋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터, 우리에게 생활을 보장해주고, 우리에게 밥과 의복을 주며, 사람들을 엮어내서 인간의 사회적 욕구를 펼치게 해주는, 우리의 품위와 자부심, 그리고 긍지를 주는 내 인생이 펼쳐지는 현장이다. 가정과 직장, 이 두 들판이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그리고 가정이 무너지면 가끔 직장생활도 무너지지만, 일터가 무너지면 가정은 거의 대부분 무너진다. 아무런 사회안전망, 즉 재취업과 실업보험, 혹은 무상교육, 무상의료, 주거 등에 대한 약속 없는 정리해고는 삶에서 해고된다는 말과 같다.
-93쪽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물의를 빚은 점은 인정되나"라던 판사에게 김진숙 씨는 말했다. "물의라도 빚지 않으면 누가 우리의 말을 들어줍니까?"
-94쪽

회사는 "재들이 죽어줘야 우리가 산다."라는 말을 노골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쟤들이 살면 우리는 함께 죽는다."라는 말도 했다. 살아남은 인간이 가진 여러 속성 중 하나인 죄책감이 서서히 ‘죽은 자’들에 대한 분노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에서나 밖에서나 모든 노동자는 공통된 한 가지를 경험하는데, 그것은 ‘인간에 대한 환멸’이었다.

-109쪽

어떤 이는 평택의 상황을 제2의 용산사태로도 말하지만, 용산사태는 무리한 공권력의 집행으로 발생한 사고이며, 결코 경찰이 시민을 죽이려는 의도가 있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평택에서는 가진 자와 공권력이 의도를 지니고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 이것은 약 30년 전 광주에서 있었던 시민 학살의 또 다른 모습이다. 단지 총칼만 없을 뿐이지 우리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낸 그 폭력의 모습이 다시 일상의 얼굴로 되돌아온 것을 말한다. 언제나 공공질서를 내세우는 경찰과 정부가 용산에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이제는 시민에 대한 살인 방조에까지 참여하는 모습이 21세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인 한국의 현실이다. 약자의 생존이 위협받는 행위가 있을 때 이를 제지하지 않는 경찰과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국가 권력인가. 보호는커녕 기득권을 위해 또 무력 진압을 시도하고 있다. -우희종, <한겨레> 2009년 8월 4일자
-138쪽

녹색병원과 전국금속노조는 이 무렵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검진한 결과를 발표했다. 노조원 257명의 정신건강 상태를 연구한 임상혁 노동환경연군소 소장은 "처음에는 콤마를 잘못 찍은 줄 알았다. ‘정상’인 사람이 7%밖에 안 된다. 심리 상담이 필요한 중증도 우울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50년간 미군의 폭격으로 물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매향리 주민들보다 3배나 높다."고 말했다. 파업에 참가한 쌍용자동차 노동자 중 48.2%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고 있고, 전체 중 71%가 심리상담 등의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우울 증세를 보이고 있었으며, 이는 인명사고를 경험한 기관사나 성폭력 등 각종 폭력에 노출된 서비스 노동자보다 6~7배 높다는 것이다.
-147쪽

또 다른 보고서인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노동자 3차 정신건강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0명의 80%가 중증 이상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1년간 자살률은 일반인의 3.74배, 심근경색 사망률은 18.3배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도 이들은 계속 진압당하는 악몽을 꾸고, 헬기 소리는 물론 선풍기 소리에도 비명을 지르는 등의 엄청난 후유증을 보이고 있으며, 농성이 계속된다고 생각해 집 안에 비상식량을 쌓아두고 새총을 장전하는 등의 정신이상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혼으로 깨진 가정이 수없이 생겨났다. 거의 모든 사람의 삶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147쪽

정혜신 박사는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인구 10만 명당 31명이 자살하는 최고 자살국이다. 그러나 쌍용자동차의 경우 해고 노동자 2,646명 중 22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자살자는 12명이다. 국내 자살률의 15배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쌍용자동차 팀은 "내가 만난 환자들 중 최악"의 우울증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148쪽

정 박사는 이를 고문 피해자에 빗대 "극한의 고문을 당했던 분들에게 ‘무엇이 가장 고통스러웠느냐.’고 물어보면 놀랍게도 고문당했던 경험보다 감옥을 나와 사회생활을 하면서 받은 상처가 가장 끔찍했다고 얘기한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해고자들 또한 옥쇄파업을 하고 구속당하는 것보다 그다음 이어지는 삶이 이들에겐 더 큰 형벌이다.
그리고 이들은 아직도 죽음 앞에 서 있다. 희망이, 정의가 없는 까닭이며, 그것이 회복될 가능성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며, 자신들을 폭도로 몰아가는 힘센 정권과 언론과 여론이,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그들에게 억울함을 이야기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 출연했던 한 노동자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사회가 우리보고 죽으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이 사회에서 나가달라고."
-149쪽

그렇게 경찰서로 병원으로 돌아서 집으로 돌아온 이들에게 또 하나의 살인적인 무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4명의 부상자들에게 총 3,000만 원의 보험급여 환수가 통보되었다.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기인하거나 고의로 사고를 발생시킬 때에는 보험급여를 하지 아니한다."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8조 제1항을 들어서 의료보험료를 환급하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척추가 손상되는 등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이다. 이는 쌍용자동차뿐 아니라 용산 참사 피해자들에게도 마찬가지,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광주항쟁 부상자들에게까지 이어진다. 잔인하고 잔인한 일이다.
-150쪽

물리적 폭력은 가시적이기 때문에 공분의 대상이 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구조적 폭력은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무심코 지나가고, 그 폭력에 신음하면서 보내는 구호 요청의 신호에 전혀 응답하지 않는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 구조적 폭력은 국제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무관심과 순응의 자세로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당연히 이 자살은 자살이 아니라, 구조적 타살이며 사회적 타살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희연, <한겨레>, 2012년 4월 16일자
-151쪽

이제는 철학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 다시 온 것 같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삶이 무엇 때문에 지속된다고 생각하는지, 인간의 노동이 무엇인지, 인간은 진정 무엇으로 고난을 이겨내는지 그런 철학 말이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생애를 통틀어 어떤 때 가장 행복했을까? 그리고 어떤 때 인간은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할까? 이 연설문을 보면 그는 자동차가 한 대 생산될 시간에 세 대가 생산되면 행복하다고 믿나 보다. 그런데 그 자동차는 누가 탈까? 한 명씩 죽어가는데.
-156쪽

생각해보라. 삶은 파탄 나고 하루아침에 빈민으로 전락했다. 상처의 후유증은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져 하루 종일 쓰리다. 희망이라고는 아무 데도 없는데 폭도, 빨갱이라고 손가락질마저 받는다. 그런데 미워할 대상이 없다. 친구도 끊어지고 동료들도 뿔뿔이 흩어진 날, 곰곰이 생각해보니 더 공부 많이 해서 출세하지 못한 내가 바보고 내가 죄인인 것만 같다. 부모만 잘 만났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이제 나 만나서 아내와 아이들도 고생하는 것 같다. 다 내가 못난 탓이다, 내가 죄인이다,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게, 남 탓 해보지 못하고 평생을 산 착한 그들에게 가장 쉬웠을 것이다.
-167쪽

2012.3.12
경찰 수사 우수 사례로 쌍용차 사태가 선정되었다. 전국 수사경찰관을 대상으로 최근 3년간 주요사건 중 ‘베스트 10, 워스트 10’ 후보를 공모했는데 1,192명이 참여한 설문에서 ‘평택 쌍용차 점거농성 사태 조기 해결’이 베스트 5위로 선정되었다.
-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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