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SION 과학

제 1818 호/2013-03-06

[이달의 역사]최초로 이식된 장기는 ○○, 장기이식의 역사

병든 장기를 새로운 장기로 바꿔주면 건강이 회복될 것이라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기원전 2000년 이집트에 장기이식과 관련된 신화가 있고, 기원전 700년 인도에서도 자기 조직을 이식해 코 성형수술을 한 기록도 남아있다. 11세기에는 치아이식이, 15세기에는 피부이식이 시도됐다. 하지만 자기 조직을 이식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근대의학의 여명기라고 할 수 있는 18세기부터 의학자들은 동물 실험을 통해 이식에 관한 지식을 얻기 시작했다. 영국의 외과의사 존 헌터는 닭의 고환이나 동물의 아킬레스건을 동종끼리 이식했다. 이러한 노력이 축적돼 1880년에는 각막이식에 성공했다.

그러나 피부나 각막 같이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체내의 장기 같은 기관을 이식하는 것은 20세기가 될 때까지 불가능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작은 혈관이라도 막히지 않고 혈액을 통과시킬 수 있게 하는 봉합기술과 미세수술 기술이 부족했다. 둘째, 수술 후 이식한 장기가 염증을 일으키며 손상돼 버리는 현상, 즉 ‘거부반응’이 생겼다.

이 중 혈관 봉합기술은 1910년대에 해결됐다. 동맥을 자르고 이어줄 때 혈관 조직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잠시 피가 흐르지 않도록 집어주는 가위 모양의 동맥 겸자가 등장했고, 미국의 의학자 알렉시스 캐럴이 서로 이어줄 양측 혈관 단면을 삼각형처럼 만들어 봉합하는 ‘삼각봉합법’을 고안해 냈다. 캐럴은 삼각봉합법을 고안해 동물 이식 실험을 한 공로로 19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혈관을 이어주는 수술 기술이 확립되자 가장 먼저 이식 수술의 대상으로 떠오른 장기는 신장이다. 신장이식수술은 이미 1936년 러시아의 보로노이가 처음으로 시도했다. 비록 환자는 수술 후 이틀 만에 사망했지만 장기이식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수술로 기록된다. 이후 많은 의사들이 신장 이식수술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1969년 3월, 서울 명동의 성모병원에서 신장이식수술에 성공했다. 이는 국내 최초의 장기이식수술로, 국내 이식 의학의 바탕이 된 의미 있는 수술이었다.

그런데 최초로 시도된 장기이식이 심장, 간, 폐 등 다양한 장기 중 왜 하필 신장이었을까? 신장은 우리 몸에 두 개가 있기 때문 장기 제공자를 얻기 쉽다. 또한 내장 뒤에 위치해 비교적 쉽게 떼어낼 수 있는데다, 상대적으로 긴 동맥과 정맥, 요로를 이어주면 되기 때문에 다른 장기에 비해 수술이 쉽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수술이 면역거부반응을 해결하지 못해 실패로 돌아가는 동안, 극소수이지만 희망적인 결과도 있었다. 예를 들어 1947년 미국 보스턴에서 있었던 신장이식 수술이 그랬다. 독일의 의사 후프나젤은 임종 직전인 여자의 신장을 떼어 생명이 위독한 임산부에게 일시적으로 이식했다가 거부반응이 일어나기 직전에 이식한 신장을 도로 떼어냈다. 비록 완벽한 이식은 아니었지만 이식한 신장은 산모의 신장이 급성신부전에서 회복하는데 필요한 3일간의 시간을 벌어줬다. 1950년에는 혈액형만 동일한 타인의 신장을 이식받은 터커라는 사람이 11개월이나 살아남는 기적적인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거부반응은 여전히 장기이식에서 최대의 난관이었다. 이식에 필요한 외과적 문제들은 이미 극복했지만 거부반응은 정확한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954년 미국의 조셉 머레이가 일란성 쌍생아끼리의 신장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이로써 일란성 쌍생아끼리는 장기를 이식하더라도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머레이의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절반의 성공이었다. 거부반응이라는 장애물을 완전히 해결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머레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부반응 문제가 일란성 쌍생아라는 편리한 도구에 의해 잠시 우회됐을 뿐’이었다.

그러다 1960년 프랑스의 장 도세가 백혈구 항원이 거부반응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로써 의사들은 백혈구 항원이 비슷한 사람끼리 장기를 이식하면 거부반응의 확률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거부반응의 원인이 우리 몸을 방어하는 수단인 ‘면역 시스템’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식수술에 면역억제제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결국 머레이는 1962년 쌍생아가 아닌 타인 사이의 신장이식 수술에 성공하고 199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는다.

거부반응의 원인이 면역의 문제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면역억제제 개발이 중요한 변수가 됐다. 하지만 거부반응을 완전히 억제해 주는 면역억제제가 없어 이식수술의 성공률은 매우 낮았다. 그러던 1972년 획기적인 면역억제제가 등장했다. 스위스 제약회사 산도즈의 보렐이 이끄는 연구팀이 노르웨이의 흙 속에서 발견한 곰팡이의 부산물로 강력하면서도 부작용이 적은 면역억제제 ‘사이클로스포린’을 탄생시킨 것이다. 사이클로스포린은 당시 18%에 불과하던 간장이식 성공률을 단번에 68%로 끌어올리는 기적을 만들었다.

그 후로 사이클로스포린과 다른 면역억제제를 함께 쓰는 ‘칵테일요법’은 장기이식에서 가장 큰 문제였던 거부반응을 극복하게 해 줬다. 조금 과장해서 사이클로스포린 발명 이후 장기이식은 단지 외과 기술의 문제가 됐다. 하지만 장기이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늘 넘치는데 비해 장기공여자는 늘 부족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장기를 개발하거나 돼지 등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이종간이식’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이렇듯 여러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연구는 장기이식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글 : 이재담 울산대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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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 9
토모코 니노미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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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쿨 본선에 참가하게 되었지만 노다메는 심한 감기로 과제곡 세곡을 마스터하지 못했다. 마지막 한 곡은 곡을 다 익히지도 못한 채 연주회장으로 가는 노다메. 초인적인 집중력을 보이며 곡을 머릿 속으로 그려보지만 지하철에서 울린 휴대폰 음이 그만 섞여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최고의 기량으로 대회에 참가하다가 그만 섞여버린 음으로 작곡을 하고 만 노다메. 결국 콩쿠르 입상은 실패한다. 그렇지만 1위 없는 2위가 발표됨으로 사실상 노다메가 규정만 잘 지켰어도 1등 감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 목표로 했던 입상은 실패했지만, 이 한번의 도전이 노다메에게는 큰 도약이 되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한 인물이 그녀를 눈여겨 보았기 때문이다.

 

노다메의 재주를 아껴서 많은 사람들이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아오르라고 하지만 노다메는 그게 불만이었다. 왜 즐겁게 연주하면 안 되느냐고. 왜 꼭 프로가 되어야만 하느냐고. 그러나 노다메도 알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피아노를 들려주고 싶은 욕망, 그들의 환호성에 떨려오는 숨결, 그리하여 날개를 펼치고 싶은 간절한 열망. 그게 단순히 더 많은 명예와 성공을 추구하는 것과 동격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치아키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가기로 결정했다. 떠나기 전 마지막 라이징 스타 오케스트라 연주. 신년 맞이 연주회도 역시 대성공이었다. 유학파들이 자리를 비울 것을 대비, 새로운 멤버들이 그 자리를 채웠고, 연주는 역시 성공적이었다. 심지어 더 유명한 신임 지휘자까지 섭외해 놓은 상태다. 이제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면 되겠는데, 문제는 노다메다. 무려 석달이나 피아노에서 손을 떼고 칩거 상태인 노다메. 그렇지만 고향 집까지 찾아가서 그녀의 피아노를 응원해주는 치아키와, 새롭게 유학의 가능성이 열리는 덕분에 노다메는 다시금 새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유학 예상지는 프랑스. 그렇다면 이 연인 아닌 연인은 유럽에서 헤어져 지내야 할까? 그럴 리가. 그렇다면 이야기가 되지 않겠지. 두 사람의 유럽 분투기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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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 8
토모코 니노미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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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징 스타 오케스트라의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찾아왔지만 그들에게 치아키는 완벽하게 무명이었고, 지난 콩쿠르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오보에가 솔리스트라는 건 더더더 황당한 선곡 같았다. 이미 치아키와 오케스트라의 실력을 알고 취재를 온 잡지사 기자는 그 사실이 분했다. 동시에 이미 원석을 알아보고 그 환희를 맛본 감격도 느끼고 말았다. 객석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했다. 그중에는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 마스터도 있었고, 치아키의 가족들도, 그리고 노다메도 앉아 있었다. 슈만과 모차르트와 브람스까지 연주하고 나니 객석은 감동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았다. 근엄한 평론가가 눈물을 뺄 정도로 환호를 했다. 그리고 이 무대 덕분에 노다메가 깨어났다. 치아키와 함께 하고 싶다면 자신도 더 분발해야 한다는 걸, 벽을 뛰어넘어 날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하여 노다메는 콩쿠르에 도전하기 위해 에토우 선생님과 연습에 몰입한다.

 

그리고 치아키는 비행기의 벽을 뛰어넘는다. 회중시계를 이용한 최면 요법으로 옛 기억을 불러온 것은 설정상 허술하지만, 그 기억에 할아버지의 죽음이 있다면 치아키의 비행기 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치아키가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날개를 달고 더 높이 날아오를 채비를 해야 한다. 그 전에 라이징 스타 오케스트라의 재연이 잡혔다. 노다메는 예선 3차까지 무사히 패스하고 본선으로 올라갔다. 그 무대에는 치아키와 치아키의 어머니까지 노다메를 보러 갈 예정이다. 장차 노다메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등장하는 셈이다.

 

음악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한음 한음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음악을 만든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며 충분히 음악을 즐긴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종이 그림 위에서 이 정경은 충분히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이번엔 일부러 클래식을 틀어놓고 읽어보았다. 어쩐지 기분이 더 좋다. 좀 더 음악에 친해진 기분.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전 세계에서 함께 통할 아름다운 음악. 신의 축복이 아닐까. 인간이 음악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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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CUS 과학

제 1814 호/2013-03-04

 

마른땅에 날벼락…싱크홀의 비밀

#1.
2013년 1월 28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의 도로에서 지반이 갑자기 주저앉는 사고가 발생했다. 넓이 약 50㎡, 깊이 9m로 뚫린 커다란 구멍은 그 자리에 서 있던 건물을 순식간에 삼켜 버렸다.

#2.
2012년 2월 18일, 인천시 서구의 지하철 2호선 공사장에서 지반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왕복 6차선 도로 한 가운데 가로와 세로 12m 길이에 깊이 27m 가량이 둥글게 주저앉으며 인부 1명이 매몰됐다.

멀쩡하던 도심 한복판에 뚫린 이 구멍들은 모두 ‘싱크홀(sink hole)’이라 부른다. 싱크홀은 글자 그대로 가라앉아 생긴 구멍을 말한다. 본래 싱크홀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구덩이를 말하며, 산과 들, 바다 어느 곳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 인천에서 발생한 사고로 대한민국 역시 싱크홀의 안전지대가 아니란 것이 알려지면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림 1] 2012년 2월 18일 인천지하철 2호선 공사장 지반이 무너지며 생긴 싱크홀. 사진 제공 : 인천서부소방서

세계적으로 볼 때 싱크홀의 크기와 모양새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지각운동이 매우 안정적인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생각도 못할 경관이 많다. 예컨대 멕시코에 있는 제비동굴(Cave of Swallow)은 세계 최대의 수직 싱크홀로 지름 50m에 깊이가 376m에 달한다. 베네수엘라의 해발 2,000m가 넘는 산 정상부에는 사리사리나마(Sarisarinama)라고 불리는 지름과 깊이가 350m에 이르는 싱크홀이 단층선을 따라 연속적으로 나 있다.

이들은 모두 경이롭다 못해 보는 이의 심장을 멈추게 할 만큼 전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최근 도심지에서 발생하는 싱크홀은 공포의 대상이다. 도심지에서 싱크홀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알려면 싱크홀이 왜 생기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

싱크홀은 한마디로 땅속에서 지하수가 빠져나가면서 생긴다. 땅속에는 지층 등이 어긋나며 길게 균열이 나 있는 지역(균열대)이 있는데, 이곳을 지하수가 채우다가 사라지면 빈 공간이 생기면서 땅이 주저앉게 된다. 이것이 싱크홀이다. 싱크홀은 퇴적암이 많은 지역에서 깊고 커다랗게 생긴다. 빈 지하공간이 쉽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토 대부분은 단단한 화강암층과 편마암층으로 이뤄져 있어 땅 속에 빈 공간이 잘 생기지 않는다. 우리나라 싱크홀이 얌전한 축에 속하는 이유다.

겨우 지하수가 빠져나간다고 싱크홀이 생길까 생각한다면 지하수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땅속은 2.5m 깊이 들어갈 때마다 1기압씩 압력이 증가한다. 깊이 25m의 암반층은 10기압의 압력을, 250m 지점에는 100기압의 압력을 받는다. 이 힘을 지하수가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지하수가 사라지면 땅속 공간은 막대한 압력을 버텨내지 못하고 가라앉는다. 사라지는 지하수의 양이 많을수록 싱크홀의 규모도 커진다.


[그림 2] 베네수엘라의 해발 2,000m가 넘는 산 정상부에 있는 사리사리나마(Sarisarinama) 싱크홀. 지름과 깊이가 350m에 달하며 단층선을 따라 연속적으로 나 있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그렇다면 땅속을 잘 버티고 있던 지하수가 왜 갑자기 사라지는 걸까. 땅속에는 복잡한 지하수 네트워크가 있다. 장구한 세월 동안 땅속 깊숙이 침투해 들어간 빗물이 암반으로 스며들어 암반지하수를 형성한다. 이런 복잡한 지하수 네트워크가 융기와 침강, 단층과 습곡, 지진 등 지각변동과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변동 등으로 변하면서 싱크홀이 생겨나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싱크홀은 주로 석회암 지역에서 발견된다.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지하수에 녹으면 서서히 땅이 꺼져 내리며 용식돌리네가 만들어진다. 땅속에 석회암 공간이 생긴 경우에는 함몰돌리네가 생겨난다. 흐르는 지하수가 지하의 소금층이나 석고층을 녹여도 지하에 빈 공간이 생겨 싱크홀이 만들어진다.

도심에 생기는 싱크홀은 지하수 네트워크에 이상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지하수를 너무 많이 끌어다 쓰면 지하수위가 낮아지면서 지하수가 감당하던 압력을 땅 속 공간이 고스란히 받게 된다. 이 결과로 지표가 무너져 싱크홀이 만들어진다.

지하수를 너무 뽑아 쓰면 멀리 떨어진 곳의 지반도 내려앉는다. 지하수도 지표수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데, 지하수위가 낮은 지점에서 물을 많이 끌어 쓰면 높은 곳에 있는 지하수가 이동해 공동이 생기면서 땅이 내려앉게 된다. 2005년 6월 전남 무안과 2008년 5월 충북 음성에서 발생한 싱크홀도 이 같은 원인으로 생겼다.

싱크홀의 원인은 이 밖에도 많다. 지표수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릴 경우 그동안 물이 많지 않았던 흙에 물이 가득해진다. 이 때문에 응집력이 떨어지면서 지반이 약해져 땅이 내려앉을 수 있다. 또 공장에 쓸 저수지를 모래가 많은 지표층 위에 만들거나 도시 상하수관이 새면서 주변 흙에 물이 많이 스며들어도 싱크홀이 생길 수 있다.

지하수가 잘 흘러도 싱크홀이 생길 수 있다. 지하수가 흐를 때 점토, 실트, 모래 등 크고 작은 알갱이들도 함께 흐르며 지하수가 흐르는 구멍을 점점 깎아낸다. 지하수길이 침식돼 점점 커지면서 싱크홀의 위험도 높아진다. 2007년 2월과 2010년 5월 과테말라 도심지를 습격한 싱크홀은 허리케인이 쏟아 부은 빗물이 화산재층을 함몰시켜 만든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도 싱크홀이 점점 자주 출현하고 있다. 근본 대책은 무분별한 도시개발의 중단뿐이다. 지하수는 결코 우리가 맘대로 빼내 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싱크홀 발생을 막기 위해서는 도시 주요 지역에서 지하수의 흐름을 늘 모니터링 해야 한다. 특히 도심지 공사장의 무분별한 공사는 싱크홀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만큼 예의주시해야 하겠다.

글 : 박종관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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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 7
토모코 니노미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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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음악제에서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는 치아키를 보고 교수님들은 모두 경악했다. 이렇게 훌륭한 학생이 아직도 빛을 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치아키와 싸우고 결별했던 에토우 코조우 교수는 더 분했다. 자신의 밑에 있을 때에 이 영롱한 진주를 빛내게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던 찰나에 치아키와 노다메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들었다. 에토우 코조우 교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노다메의 교수를 자처했지만, 강압적인 수업을 싫어하는 노다메는 이리 빼고 저리 빼고 도망칠 궁리만 한다. 게다가 그 훌륭한 재능을 더 꽃피울 생각도 하지 않고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모두들 말리고 있다. 노다메가 그 분야에서도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누구의 꿈을 상대적으로 작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노다메는 어린이들의 좋은 '친구'는 될 자질이 있어도 좋은 '교사'가 되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일단 학생의 안전을 장담할 수가 없다. 같이 망가지고 다치며 놀아줄 수는 있어도 말이다.

 

에토우 교수는 노다메와 협정을 맺는다. '북실북실조곡'의 마지막 1곡을 마무리 짓고 부채로 때리지도 않겠다고 각서를 썼다. 노다메 역시 약속이 이행되는 대로 충실히 레슨을 받기로 각서를 썼다. 성질 더럽고 손버릇도 좋지 않지만 학생을 향한 나름의 열정은 뜨겁다는 것을, 에토우 교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치아키도 교수님도 모두 노다메의 재능이 아깝지만, 본인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본인의 피아노를 향한 열망을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주변에서는 그걸 부채질하면서 지켜보는 게 최선이다.

 

나가노 니나 음악제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치아키와 함께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맹렬히 연습 중이다. 지휘자이면서 피아노는 물론 바이올린까지 수준급인 이 피곤한 선생님을 따라가는 게 친구들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적당히'를 모르는 치아키 선생님이니 말이다. 각자 콩쿠르 준비 중이라 연습에는 다소 소홀했던 친구들이 콩쿠르에서 각기 여러 난관에 부딪힌다. 그걸 털어내는 것도 제각각. 국제 대회에도 나가고 싶고, 무엇보다도 비에라 선생님 밑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싶은 치아키는 부러운 그 마음을 스스로 달래야 한다. 역시 모두들 제 몫의 성장을 해내고 있다. 열심히, 꾸준히.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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